[2024 공익활동가주간]지역에서 활동가로 남고 싶은 활동가 – 대전YMCA 사무총장 김종남

변화를만드는사람들
조회수 401

청소년, 농업, 소비자 등 다양한 활동을 고민하고 이어가는 대전YMCA 김종남 사무총장을 만났다. 긴 시간 지역에서 어떻게 활동을 해왔는지 궁금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Q. 간단히 자기소개 해주세요.

지금 대전YMCA 활동하고 있고, 활동가로서 남고 싶은 김종남입니다. 


Q. YMCA가 지역별로 다 있는데 소개를 간단하게 해주실 수 있나요?

YMCA가 전국에 67개 지역 YMCA가 있고요. 전국적으로 연맹체도있어요. 운동의 독립성, 재정의 독립성을 위해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고요. 대전YMCA는 대전시에 등록된 재단법인 대전YMCA 유지재단이에요. 그리고 YMCA를 한글로 풀이하면 기독교 청년회에요. 그러니까 기독성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을 쫓아가는 제자들의 그런 활동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YWCA는 여자 기독교 청년회고 여성 중심의 활동이 많아요, 


Q.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남녀노소 유아부터 어르신까지의 다양한 그룹별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주 활동은 유아 대안학교라고 해서 5-7세 아이들이 매일 등원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신체 중심의 활동, 초등생은 방과 후 회원들 아이를 돌보기도 하지만 캠프단도 운영해요. 예를 들면 YMCA가 세계적인 조직이니까 아시아 지역 등을 다니면서 국제교류를 하는 캠프단, 그리고 전국을 누비며 다니는 캠프 활동 이런 게 가장 핵심인 활동이예요. 

청소년 ymca라고 청소년 동아리 활동도 있어요. 학교 안이 아닌 본인들이 하고 싶고 활동을 동아리 중심으로 지원해서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동아리들이 많았는데 입시를 비롯해 학교 안에서의 청소년 활동을 인정을 안 해주면서 많이 동력이 떨어져 나갔어요. 그래도 아이들과 요리하고 하는 활동 등도 이어가고 있고 세계 대회 등을 지원하고 있어요. 올해 저희가 77주년이거든요. 그 기념으로 청소년 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년에 3천만 원 정도의 장학기금을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을 선발해서 장학기금을 직접적으로 현금 지원도 하고요. 이 외에는 소비자 영역이 다양해지니까 로컬푸트 라온아띠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어요.



Q. 청소년 활동이 많은데 청소년이 많이 찾아오나요?

지금은 예전처럼 많지는 않아요. 현재 20-30명 있고요. 주로 학교를 찾아가서 아이들을 만나는활동이 많아요. 그래도 계속해서 동아리 활동 등에 고3인데도 계속 나오는 친구도 있고요. 청소년YMCA회장은 장학금을 주고, 외부 표창과 세계 아태 대회 등 기회를 주고 있어요. 작년에는 인도를 다녀왔는데 다녀온 청소년YMCA회장이 세계대회는 좋지만 인도가 힘들었다고 말했어요. 에어컨과 먹거리가 조금 불편했었나봐요. 코로나19가 조금 남아있어서 아픈 친구들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Q. 참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신겈가요? 첫 활동이 대전YMCA였나요?

첫 활동은 현재 박정현국회의원을 만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소비자 전공을 했고, 피해자 구제 실습 그러니까 인증을 받으려면 실습을 해야 됐죠. 실습을 해야 되서 대전YMCA랑 인연을 맺게 됏어요. 활동 하면서 내가 살고 세계와 다르게 시민사회 영역도 알게 됐쬬. 그냥 직장 잡고, 결혼 하고 인생이 아닌 정의와 평등을 외치는 삶이 멋져 보였어요. 상식적이지 않은 것으로 피해를 입은 분도 많았고요. 실습 기간이 3개월이었는데, 같이일해보지 않겠냐고 했고, 1997년도에 월급 40만원 받고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Q. 그럼 계속 대전YMCA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온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2001년도에 대전을 잠깐 떠나요. 새로운 회관을 짓고 조금 후회되는 지점이 있었죠. 이제 건물과 규모가 생기다 보니 내가 꿈꿨던 활동과는 조금 거리를 느꼈었나봐요. 그래서 무작정 사표를 내고 서울로 상경했어요 .2002년, 2003년 2년 동안은 서울에 가 있었고요. 그때 한참 픽셀 만들고 날아다니고 하는 홈페이지 만들고 하는 그런 게 유행이었어요.그거 배우고 싶어서 서울의 경실련에 6개월 과정이 있길래 고시원에서 살면서 배우고 만들었죠. 

그리고 이제 취업을해서 온라인 교재를 만들었어요. 납품을 받으면 업체에서 일주일 동안 밤새면서 일해요. 플래시로 분필이 날아가고 이런거요. 그게 오류가 있으면, 오류 잡느라고 밤새서 작업하고 금요일날 마감하고, 술 밤새 먹고 그다음 날 월요일이면 또 다시 시작해요. 그러다가 내가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서울 YMCA를 가봤고, 그때 와이타임즈라는 온라인 신문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그래서 와이타임즈 기자로 채용이 됐죠.


Q. 뭔가 새로운 이벤트들이 발생하는거 같아요. 기자 생활은 재밌었나요?

와이타임즈 기사를 쓰고 하다 보니 전국을 다니면서 기사를 쓰고 다녔죠. 그런데 서울YMCA가 독특하게 여성 투표권을 인정을 안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했겠어요? 그때 커다란 캠코더 목에 줄 감고 다니면서 취재 대상자가 YMCA가 돼버렸어요. 와이타임즈에 고발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하고 그리고 서울이 종각에 있는 서울YMCA 회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촛불 들고 집회도 했어요. 지금은 다 인정해요. 그런 활동 하다가 퇴사를 하게 됐고, 당시 대전에서 이충재 총장님이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 운동이 답이다라고 말하기도 해서 다시 대전으로 내려가게 됐어요. 그렇게 다시 대전에서 활동을 시작했죠. 


Q. 이제 살짝 이야기를 봐꿔서, 대전 YMCA 첫 여성 총장이라는 타이틀이 있는데요. 어떠신가요? 그리고 사무총장 자리까지 가는데 있어서 과정에서 어려운건 없었나요?  

여성 남성을 가르는게 싫어서 예민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어요. 여성, 남성을 늘 가르는 걸 되게 싫어해서 여성 막 이렇게 하면 다시 얘기해 보라고도 했어요. 선출 되고 나니 여성이라는 단어가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더라고요. 어딜 가도 광역시도에서 첫 여성 사무총장이라는 소개를 받으면서 YMCA가 이렇게 보수적이었나 생각도 했어요. 

제가 대전에서 10대 사무총장이거든요. 사무총장 한 지가 8년 전 올해가 9년 차예요. 사무총장 선출은 공고를 통해서 진행돼요. 외부 공개 모집도 하는데 활동가가 사무총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늘 밖에서 목사님이 오시거나 누군가 와서 사무총장직을 맡았죠. 목사님들이 많이 오셨었어요. 

그래서 대전YMCA 활동가가 사무총장으로 가서 직책을 맡는게 맞다 아니다라는 내부 토론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선언을 했죠. 대전YMCA에서 활동한 활동가가 사무총장 직책을 맡는 게 맞다라고 이야기 했어요. 그리고 이제 사무총장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갔죠. 향후 운영 방향 등을 적어나갔죠. 그리고 이사회에서 첫 질문이 아마 이거였던 것 같아요. 여성이고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해 나갈건지 질문이었죠. 그 질문이 진짜 나올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답을 했죠. 여성으로가 아닌 대전YMCA의 한 사람으로 구성원과 같이 일하는 것이고, 저 혼자만 일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요. 그리고 여기 계신 이사님들과 함께 활동을 하는 거라고요. 그리고 나서 선출이 됐죠. 그리고 선출 된 이후에도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여성 사무총장이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게 돼서 불편하기도 했고,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해요.



Q. 자리과 성별과는 상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시각이 남아있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아쉬워요.

그렇다고 내부에서 차별 받거나 한 적은 없었어요. 과거에는 후배인 남자간사들이 직책을 더 받고 그런 문화도 있었어요. 지금은 이사회도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많이 하고요. 여성 남성 편 가르지 말라고 강조 많이 했죠.


Q. 새로운 변화를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되겠죠? 다음 질문은 일인가구인 저도 집에 소홀해지는데, 일과 가정 양립이라는 측면에서 균형을 잡기도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그리고 남편분도 대전에서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잖아요? 좀 달랐을까요? 

원래 꿈은 혼자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안에서 사는게 꿈이었어요. 외부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챙겨야 할 가족이 생기는게 내 성격에 어렵다 생각했어요. 서울에 있다 대전에 다시 왔을 때 결혼을 하게 됐어요. 그때 임신을 하고 한 달 쉬개 됐는데, 그때 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집에만 있으니 힘들더라고요. 몸은 힘들었지만 활동을 조금씩 했고, 만삭일 떄도 청소년들과 캠프를 같이 다녔어요. 재밌고 좋았어요. 이후 아이가 태어나면 이제 누군가가 돌봐야 되잖아요. 주 양육은 저였죠. 돌봐야 되는 스케줄을 짜고, 제가 늘 요청을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싸우게 되더라고요. 서로 일이 바쁘니까 회의중에도 아이를 찾으러 가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말일 수 있겠지만, 나와서 활동하는 것도 좋았거든요. 그래서 경력단절을 다른 여성분들이 고민할 때 제 고민은 길지 않았어요. 다시 일을 하는게 맞았고, 나의 삶을 사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기 떄문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안 돌아가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열심을 다해서 살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라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Q. 그래서 대전에서 여전히 김종남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남편분이 요새는 집안일을 잘 하시나요?

잘 해요. 물론 아직까지 주체는 저에요. 뭐 물건이 떨어지고 사오는 걸 이야기 해야 사오고 이런 것은 이야기 해도 안 바뀌는 것 같아요. 


Q. 다시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변화를 계획하신게 있나요? 대전YMCA와 개인적인 변화요.

단체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곳을 이제 청소년회관이라고 하고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을 다시 한 번 선언 하는 계기가 될 거 같아요. 70주년 이후에 77주년일 때 그렇다는 의미에서 의미가 더 크다고 보고요. 여기는 이제 발달장애로 이렇게 등급을 받거나 등급 표현이라 그렇지만  지원을 받지 못하는 느린 학습 청소년들이 주변에 보면 많거든요. 그런 친구들 모아서 직업 훈련과 우리랑 같이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주고 싶은 꿈을 꾸는 거예요. 그림을 그리는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정식 작가가 아니어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기 어려워요. 임대도 안 해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사설 전시 공간은 너무 비싸요. 일주일 하는데 300만 원  강당 외벽도 가벽으로 해서 갤러리 공간도 만들고. 누구라도 와서 청소년들이 활동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러고해요. 농사, 텃밭도 지을 수 있는 그런 것들도요.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어요. 대전YMCA에 오래 있으면서 기록과 역사를 잘 하고 있는지 생각도 들기도 하고요. 앞으로 새로운 페이지로서 잘 정착해서 활동가로 남고 싶어요. 



Q. 활동가로 남고 싶다고 하셨는데 활동가로 남고 싶다는게 어떤 뜻일까요? 

제 나름의 정의는 이런 거를 벗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에요. 법인을 운영하고 직원과의 관계 다른 단체들의 사무처장들의 무게하고도 비슷하겠죠. 그런 부담 없이 나의 영역에서 나만의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고 활동의 영역들이 있잖아요. 환경의 영역, 무슨 영역 이런 것처럼 나의 소비자의 영역에서 무언갈 해보고 싶기도 하죠. 그리고 소비자가 꼭 내 영역인가 이 고민도 들긴 해요. 내가 청소년 지도사도 있고 평생교육사도 있고 보육 전공이기도 하거든요. 사회복지도 있고 뭐 이렇게 하면 저의 제2의 노후의 인생은 어떤 전문으로 어떤 활동가로 활동가로 있을지 고민이 들어요. 그냥 단어로 표현하면 자유로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제가 꿈꾸는 세상을 펼쳐서 개척할 수 있는 진짜 너무 이상적인 꿈인가요?


Q. 앞으로 5년 뒤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2029년, 29살에 떠난 것처럼 떠나야겠어요. 올해가 4년 임기 시작 하는 해에요. 2029년이니까 임기 끝나고 어디론가 떠날것 같아요 때는 떠나서 꿈 꾸고 있으려고 함. 자그마한 협동조합에 텃밭을 일구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고행이 부여기도 하지만, 땅을 일구는 활동을 좋아해요. 땅에서 호미질 하고 할 때가 행복해요. 조그마한 땅을 청소년과 소비자와 무언가를 계속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대전 #YMCA #공익활동가주간 #활동가인터뷰


글쓴이 : 설재균
대전에서 지역정치 이슈를 다루는 '띠모크라시'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