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활동가를 만나기 위해 반송 느티나무도서관으로 향한다. 4호선 윗반송역에서 내려 반송 큰시장을 지나고 이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골목을 지나서 큰길과 만나 조금만 걸으면 느티나무도서관이 나온다. (느티나무도서관은 희망세상이 ‘벽돌 한 장 기부하기’ ‘1만 원씩 1만 명’ 운동으로 만든 마을도서관이자 사립공공도서관이다.)
도서관 외벽에 핀 능소화 주황 꽃이 너무나 예뻐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간다. 4층에 올라가 기다리니 영미언니가 뜨거운 커피가 들어있는 컵과 차가운 얼음이 가득 들어있는 컵을 양손에 들고 나타난다. “뜨거운 커피를 마실지 차가운 커피를 마실지 몰라서 얼음을 담아왔다.” 하면서 웃는다. 김영미 활동가라고 해야겠지만 김영미 활동가라고 쓰고 났더니 글이 탁 막혀서 나아가지를 못한다. 익숙지 않다. 그냥 평소대로 영미언니라고 부르기로 한다. 부디 넓은 이해를 바란다.

Q. 너무 식상한 질문일 수 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언니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려는 사심 가득한 자리니까, 유치하고 식상해도 꼭 대답해 줘야 해요. (둘이 마주 보고 좀 웃었어요) 반송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부산에 태어나서 초, 중, 고 다니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해서 처음에 양정에서 살았어. 그곳에서 첫째를 낳고, 둘째를 임신해서 살고 있는데 남편의 외숙모가 반송이라는 곳이 있는데 아파트가 엄청 싸다는 거야. 그래서 알아봤더니 진짜 싼 거야. 그래서 살게 되었지. 처음에 반송에 이사 올 때는 1~2년 살다가 이사 가자 이렇게 생각했었거든. 그러니까 그때가 2000년도 1월일거야. 그렇게 반송하고 인연을 맺었어. 그런데 남편이 출퇴근하면서 석대만 넘으면 공기가 다르고 참 좋다고 하길래 그러면 좀 더 살아볼까? 하던 것이 지금까지 살고 있네.
Q. 그렇게 반송과 인연을 맺고 살다가 ‘희망세상’은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예요?
이사 오고 나서 둘째를 낳고 키워야 하니까, 그냥 나는 평범한 아줌마였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고 말이야. 그런데 동네를 막 돌아다니다 보면 현수막이 맨날 붙어있는 거야. ‘반사사(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가 '희망세상'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현수막도 붙어있고 동네에서 뭘 한다는 현수막이 계속 붙어있는데 밑에 보면 항상 ’희망세상‘이야. 그래서 이 동네일은 다 희망세상에서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큰 애 1학년 때, 당시만 해도 학교 급식이 시작된 지 몇 년 안 되던 때여서 엄마들이 가서 밥을 퍼주고 이런 일을 하던 시절이었거든. 맞아 급식 도우미. 나는 또 집에 있고 시간도 많으니까 학교에 자주 갔지. 자주 가면서 급식 도우미 끝나면 같이 차를 마시다가 애들 학교 끝나면 간식 사주고 학원 보내고 그러고 나면 집으로 가고, 뭐 이런 패턴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한 언니가 커피 마시러 갈래? 그러더라고. 일반적인 커피숍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희망세상 사무실이었어. 그때는 주거용 상가에 있었거든. 그때 멜빵바지를 입고 있던 아줌마가 와서 '희망세상' 회원에 가입하라고 하더라고. 그 사람이 ‘김혜정’ 대표였어. 회원 가입하는데 신분증하고 통장을 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줬지 뭐.
Q. 처음 만났는데 신분증이랑 통장사본을 줬다고요?
생각해보니까 그랬네. 늘 마을에서 플랭카드 붙은 걸 보고 그랬으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회원이 됐던 것 같아. 그 뒤에는 뭐 문자가 막 오기 시작하더라고. 이것 합니다, 저것 합니다. 그리고 마을신문도 오더라고. 어느 날 마을신문을 받았는데 비즈 만들기를 한다는 거야. 이거나 해볼까 해서 참여하게 됐는데, 마치고 거기서 밥을 먹더라고. 혜정이랑 언니들이 밥 먹고 가라고 하는데 좀 부담스럽더라고. 그래서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오고 그랬어.
좀 있으니까 도서관을 짓는다고 하더라고. 그러고 나서 도서관 방부목에 페인트를 칠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이들하고 같이하면 좋은 경험이 되겠다 생각했지. 그래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그때도 여름이었어. 내가 땀이 많아. 땀을 막 흘리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엄청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 그때 우리 둘째가 좀 별났었거든. 그런 아이들 데리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니까 다들 '저 엄마 참 힘들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
그 후에 또 페인트칠을 해야 한다 해서 갔는데 서너 명이 모여있더라고. 모여서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혜정은 회의 하러 간다고 가더라고. 그러더니 또 다른 언니도 뭐가 있다고 가더라고. 그래서 그때 참 이상한 사람들도 다 있다고 생각했어. 일하자고 불러놓고 자기들은 다 가고 뭐 어쩌라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페인트를 칠하면서 남아있던 언니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언니랑 좀 친해졌지.
#.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그리고 부채감

2023년 문화의 날 후원주점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당시 도서관 총무였던 언니가 나한테 도서관에서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어. 그때 반송에서 건강 마을 사업이 막 시작되었는데, 그 언니가 그때 건강 마을사업 코디로 들어가면서 공백이 생긴 거였어. 그 제안을 받고 생각해보니까 애들도 좀 커서 초등학교도 가고 했으니 한번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는 단순하게 그냥 좋은 일 하는데 돈까지 준다고 하니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그래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야. 출산으로 인해서 경력이 단절된 뒤로 집에만 있다가 나와서 사람도 만나고 함께 어울리고 하니까 너무 재밌는 거지. 신세계였어. 저녁마다 회의하고, 그때는 회의가 끝나면 꼭 뒤풀이를 했거든. 그것도 너무 재미있는 거야.
희망세상이 이 세상의 구조나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시선들을 바꾸려고 하는 단체니까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어. 현대사 공부도 하고, 정치 관련 공부도 많이 했지. 그렇게 공부할 기회가 많았어. 그런데 그 시간이 나한테는 신세계였어. 새로운 세상이 열린 거였지.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느끼게 된 감정은 부채감 같은 게 들더라고. 나는 국가의 폭력이 난무하는 그런 시절에 관심도 없었고 그러니까 당연하게 아무것도 행동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게 뭔가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 앞서서 행동하고 많은 희생을 치렀던 사람들에게 말이야. 그래서 앞으로는 나도 뭔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그 마음이 희망 세상 활동을 쭉 연결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아.
#. 느티나무도서관

느티나무도서관 모임
Q. 시민들이 십시일반 해서 도서관을 만들게 되었잖아요. 마을 활동가들이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어떤 과정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이 활동하러 왔었어. 활동이라기보다는 직장처럼 왔었거든. 최저임금을 모아서 말이야. 우리 활동비는 30만 원 받으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친구들이 몇 개월 지나다 보면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하면서 그만두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거야. 그 친구들도 아무런 경험이 없이 졸업하고 바로 왔는데 우리는 자기만 쳐다보고 있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만 그 말이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 그렇게 두세 명의 친구가 왔다 가고 나서 안 되겠다, 우리 중 누군가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함께하게 되었지.
그래서 내가 사서교육원에 입학해서 사서 교육을 받게 되었지. 그때 그 학비는 남편한테 빌렸다. 하!하!. 1년을 다녀서 사서 자격증을 땄지. 그렇게 우리가 공부하면서 도서관을 운영했지. 그리고 느티나무도서관은 딱 도서관으로만 의미가 아니었어. 도서관은 희망세상의 한 조직이었고, 도서관의 활동은 희망세상의 활동이라고 생각했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희망세상의 철학과 의미가 도서관 활동에 어떻게 잘 녹아나게 하는가가 제일 큰 숙제라고 생각해.
Q. 활동을 이어오다가 희망세상의 대표가 되었잖아요? 내가 아는 언니는 대표 자리는 진짜 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대표가 된 거예요?
김혜정 대표의 임기가 4년이 끝나고 제안을 받았지. 너도 알겠지만 나는 정말 앞에 나서야 하는 자리가 싫거든. 실무가 재미있어. 실무형 체질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래서 대표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너무 힘들어서 안 된다, 싫다 했거든. 그런데 계속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만나자 해. ‘우리가 도와줄게’ 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생각했지, 대표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계속 누군가 만나자 하고 시달릴 게 분명하구나 하고 말이야.
그렇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좀 결심이 섰어. 같이 해보자 하니까. 그리고 처음에는 김혜정 대표가 함께 있었고, 반상근을 해주기로 했어. 그래서 한번 해보자고 결심을 하게 되었지. 대표가 되었지만 별로 변한 건 없었어. 김혜정 대표가 있었으니까 대부분의 일은 김혜정 대표가 결정해주고 나는 그대로 실무를 처리하고 그렇게 했어. 직함만 바뀐 거지. 그러니까 나는 너무나 편했어.
그런데 희망세상에서는 내가 대표로서 역량을 갖추기를 바랐던 것 같아. 김혜정이 있어서 내가 성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래서 김혜정 대표가 재단 일에서 손을 떼게 된 거지. 그 후로 정말 너무 힘들었어. 김혜정 대표의 부재도 힘들었겠지만 쉬지 않고 너무 긴 시간 동안 활동했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아. 그렇게 견디면서 4년을 채웠지.
임기가 끝났으니 당연하게 그만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재단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으니 1년만 더 대표를 해주면 우리가 대표를 준비시키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이야기를 했지. 희망세상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회원마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이 다 다르니까 그 당시에는 대표를 할 수 있는 여건의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모두 힘든 상황에서 견디면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감당할 몫이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
Q. 당시에 희망세상에는 청년활동가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잖아요? 희망세상은 어떻게 저렇게 청년이 많나? 하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나요. 그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어요?
맞아 진짜 많았지. 결론을 말하면 희망세상 안에서 청년활동가가 활동할 수 있는구조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 특히 재정적으로 말이야. 하지만 희망세상에서 자란 청년들이 부산 여기저기에서 활동하는 걸 보면 좋아. 희망세상이 그 활동의 시작이 되었던 거니까 말이야.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그때 희망세상을 그냥 청년들한테 맡겨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야. 그게 재단 대표자리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이든 말이야. 그리고 선배 활동가로서 지지하고 그 활동을 도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는 우리가 노력해서 좀 더 안정감을 찾고 청년활동가들도 조금 더 단단해지고 나서 넘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지만, 그때는 그 생각이 최선이었어.

2023년 부산풀뿌리대회
Q. 요즘은 어떤 꿈을 꾸고 있어요?
김혜정 대표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니어들의 여가 생활이 너무 빈약한 것 같다. 마을에 있는 빈집을 고쳐서 여가 생활과 돌봄이 함께 일어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 우리도 더 나이 들면 이용하면 좋겠다하는 이야기도 했고 이름도 지었다 <낭만할매>라고. 그런데 그렇게만 이야기를 나누고 구체화시키려면 그 활동에 깃발을 꽂는 사람이 필요한데 다들 너무 바빠서 더 이야기가 진전 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곳이 생기면 정말 좋겠어.
시니어들이 함께 여가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돌보는 곳이 마을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그리고 또 하나는 도서관 처음 만들 때 생각했던 것처럼 도서관에 오는 마을사람들하고 눈 맞추고, 함께 이야기 하고, 차마시고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좋겠어. 그런 생각 하고 살아. 매년 일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하면서 일을 줄이려고 마주앉는데 막상 일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또 줄일게 없어. 다 중요한 일인거야. 이게 해결되어야 시간이 나고 그래야 주민들과 함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데, 고민이야.
Q. 함께 할 활동가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맞아, 우리는 공동체모임이라든가 함께 모여서 뭔가 하는 일들이 재미있었잖아. 활동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말이야. 함께 하는 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야. 어떤 공동체든 공동체의 경험을 가진 사람도 적고 말이야. 이 활동이라는 게 함께 모여서 뭔가를 의논하고 활동하는 것에 보람이나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데. 점점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아. 행사를 경험하러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함께 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거든. 그러니 함께할 활동가를 만나기도 쉽지 않고. 그렇지만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공동체 활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면서 이어갈 건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Q. 희망세상이 언니한테 어떤 의미였어요?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해. 희망세상을 못 만났으면 그냥 평범한 아줌마로 살았겠지. 수다쟁이 아줌마로 말이야. 그런데 희망세상을 만나면서 세상에 관심도 가지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마을 활동을 하면서 내 삶도 많이 달라졌고, 내 삶의 반경도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해. 그게 좋아.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게 희망세상이지. 그리고 김혜정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친구를 만난 곳이지. 뭔가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노년의 삶을 함께 꿈꿀 수 있는 사람, 그런 친구를 만나게 한 곳이야.

2024년 7월 희망세상 공간정리
Q.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일이 있어요?
새로운 일이라기보다 더 챙겨봐야 하겠다 하는 일들이 있어.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의 상근활동가들이 일에 치여서 본인의 삶을 돌아본다든가 역량을 강화하는 활동을 하나도 못하고 있어요. 모임도 진짜 딱 모임만 하는 그런 느낌.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내가 나의 역할을 찾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 함께 모임에 들어가기라도 하고, 화두를 던지기도 하고.
내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겠어. 항상 뭔가 역할을 주면 그 역할을 충실하게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떤 역할을 주지 않아도 두 다리 담그고 뭔가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먼저 온 활동가들이 그렇게 역할을 찾아가면 희망세상이 앞으로도 좀 건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 그리고 또 하나 청년활동가들이 희망세상에서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 그런 구조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걸까? 고민하고 싶어.
Q. 우리가 만난 시간이 길지만 이렇게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어땠어요?
다시 말하지만 네가 전화 안 했으면 나는 인터뷰 같은 거 절대 안 했을 거야. 네가 한다고 하니까 해보자 한 거고. 그런데 만나니까 좋은 것 같아. 이렇게 둘이 앉아서 오전 시간 내내 마을, 도서관, 활동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이런 시간이 생긴 게 참 좋네.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말이야. 뭔가 괜찮은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이라 좀 걱정이긴 하지만. 반송까지 찾아와줘서 진짜 고맙고 반가웠어.
활동가 인터뷰를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르는 사람이 영미언니였어요. 내가 기억하는 언니는 늘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따뜻해서 사나운 나까지 순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어요. 마을 활동이라는 게 늘 녹록지 않기 때문에 언니를 만나면 늘 푸념이나 불만을 쏟아냈던 것 같은데 늘 언니는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 하곤 했어요. 그런 언니의 따뜻함과 다정함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한번은 말하고 싶었어요.
인터뷰를 하러 가서 서로의 이야기를 마구 나누었어요. 답답한 일을 털어놓고 좀 울기도 했어요.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본격적인 인터뷰를 할 수 있었죠.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뭔가 주객이 전도된 인터뷰인 샘이었어요. 그런데도 두 명의 마을 활동가를 너무 바빠서 통화하기도 힘들었던 활동가 둘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4시간이 넘게 함께 있도록 만들어준 인터뷰 자리였습니다. 충분하고 충만했습니다.
#반송 #부산 #김영미 #희망세상 #느티나무도서관
글쓴이 : 백복주 (부산 맨발동무도서관)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김영미 활동가를 만나기 위해 반송 느티나무도서관으로 향한다. 4호선 윗반송역에서 내려 반송 큰시장을 지나고 이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골목을 지나서 큰길과 만나 조금만 걸으면 느티나무도서관이 나온다. (느티나무도서관은 희망세상이 ‘벽돌 한 장 기부하기’ ‘1만 원씩 1만 명’ 운동으로 만든 마을도서관이자 사립공공도서관이다.)
도서관 외벽에 핀 능소화 주황 꽃이 너무나 예뻐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간다. 4층에 올라가 기다리니 영미언니가 뜨거운 커피가 들어있는 컵과 차가운 얼음이 가득 들어있는 컵을 양손에 들고 나타난다. “뜨거운 커피를 마실지 차가운 커피를 마실지 몰라서 얼음을 담아왔다.” 하면서 웃는다. 김영미 활동가라고 해야겠지만 김영미 활동가라고 쓰고 났더니 글이 탁 막혀서 나아가지를 못한다. 익숙지 않다. 그냥 평소대로 영미언니라고 부르기로 한다. 부디 넓은 이해를 바란다.
Q. 너무 식상한 질문일 수 있는데 이 자리를 빌려 언니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려는 사심 가득한 자리니까, 유치하고 식상해도 꼭 대답해 줘야 해요. (둘이 마주 보고 좀 웃었어요) 반송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부산에 태어나서 초, 중, 고 다니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해서 처음에 양정에서 살았어. 그곳에서 첫째를 낳고, 둘째를 임신해서 살고 있는데 남편의 외숙모가 반송이라는 곳이 있는데 아파트가 엄청 싸다는 거야. 그래서 알아봤더니 진짜 싼 거야. 그래서 살게 되었지. 처음에 반송에 이사 올 때는 1~2년 살다가 이사 가자 이렇게 생각했었거든. 그러니까 그때가 2000년도 1월일거야. 그렇게 반송하고 인연을 맺었어. 그런데 남편이 출퇴근하면서 석대만 넘으면 공기가 다르고 참 좋다고 하길래 그러면 좀 더 살아볼까? 하던 것이 지금까지 살고 있네.
Q. 그렇게 반송과 인연을 맺고 살다가 ‘희망세상’은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예요?
이사 오고 나서 둘째를 낳고 키워야 하니까, 그냥 나는 평범한 아줌마였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고 말이야. 그런데 동네를 막 돌아다니다 보면 현수막이 맨날 붙어있는 거야. ‘반사사(반송을 사랑하는 사람들)가 '희망세상'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현수막도 붙어있고 동네에서 뭘 한다는 현수막이 계속 붙어있는데 밑에 보면 항상 ’희망세상‘이야. 그래서 이 동네일은 다 희망세상에서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큰 애 1학년 때, 당시만 해도 학교 급식이 시작된 지 몇 년 안 되던 때여서 엄마들이 가서 밥을 퍼주고 이런 일을 하던 시절이었거든. 맞아 급식 도우미. 나는 또 집에 있고 시간도 많으니까 학교에 자주 갔지. 자주 가면서 급식 도우미 끝나면 같이 차를 마시다가 애들 학교 끝나면 간식 사주고 학원 보내고 그러고 나면 집으로 가고, 뭐 이런 패턴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 한 언니가 커피 마시러 갈래? 그러더라고. 일반적인 커피숍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희망세상 사무실이었어. 그때는 주거용 상가에 있었거든. 그때 멜빵바지를 입고 있던 아줌마가 와서 '희망세상' 회원에 가입하라고 하더라고. 그 사람이 ‘김혜정’ 대표였어. 회원 가입하는데 신분증하고 통장을 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줬지 뭐.
Q. 처음 만났는데 신분증이랑 통장사본을 줬다고요?
생각해보니까 그랬네. 늘 마을에서 플랭카드 붙은 걸 보고 그랬으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회원이 됐던 것 같아. 그 뒤에는 뭐 문자가 막 오기 시작하더라고. 이것 합니다, 저것 합니다. 그리고 마을신문도 오더라고. 어느 날 마을신문을 받았는데 비즈 만들기를 한다는 거야. 이거나 해볼까 해서 참여하게 됐는데, 마치고 거기서 밥을 먹더라고. 혜정이랑 언니들이 밥 먹고 가라고 하는데 좀 부담스럽더라고. 그래서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오고 그랬어.
좀 있으니까 도서관을 짓는다고 하더라고. 그러고 나서 도서관 방부목에 페인트를 칠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이들하고 같이하면 좋은 경험이 되겠다 생각했지. 그래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그때도 여름이었어. 내가 땀이 많아. 땀을 막 흘리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엄청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 그때 우리 둘째가 좀 별났었거든. 그런 아이들 데리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니까 다들 '저 엄마 참 힘들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
그 후에 또 페인트칠을 해야 한다 해서 갔는데 서너 명이 모여있더라고. 모여서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혜정은 회의 하러 간다고 가더라고. 그러더니 또 다른 언니도 뭐가 있다고 가더라고. 그래서 그때 참 이상한 사람들도 다 있다고 생각했어. 일하자고 불러놓고 자기들은 다 가고 뭐 어쩌라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페인트를 칠하면서 남아있던 언니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언니랑 좀 친해졌지.
#.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그리고 부채감
2023년 문화의 날 후원주점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당시 도서관 총무였던 언니가 나한테 도서관에서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어. 그때 반송에서 건강 마을 사업이 막 시작되었는데, 그 언니가 그때 건강 마을사업 코디로 들어가면서 공백이 생긴 거였어. 그 제안을 받고 생각해보니까 애들도 좀 커서 초등학교도 가고 했으니 한번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는 단순하게 그냥 좋은 일 하는데 돈까지 준다고 하니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그래서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야. 출산으로 인해서 경력이 단절된 뒤로 집에만 있다가 나와서 사람도 만나고 함께 어울리고 하니까 너무 재밌는 거지. 신세계였어. 저녁마다 회의하고, 그때는 회의가 끝나면 꼭 뒤풀이를 했거든. 그것도 너무 재미있는 거야.
희망세상이 이 세상의 구조나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시선들을 바꾸려고 하는 단체니까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어. 현대사 공부도 하고, 정치 관련 공부도 많이 했지. 그렇게 공부할 기회가 많았어. 그런데 그 시간이 나한테는 신세계였어. 새로운 세상이 열린 거였지.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느끼게 된 감정은 부채감 같은 게 들더라고. 나는 국가의 폭력이 난무하는 그런 시절에 관심도 없었고 그러니까 당연하게 아무것도 행동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게 뭔가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 앞서서 행동하고 많은 희생을 치렀던 사람들에게 말이야. 그래서 앞으로는 나도 뭔가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그 마음이 희망 세상 활동을 쭉 연결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아.
#. 느티나무도서관
느티나무도서관 모임
Q. 시민들이 십시일반 해서 도서관을 만들게 되었잖아요. 마을 활동가들이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어떤 과정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이 활동하러 왔었어. 활동이라기보다는 직장처럼 왔었거든. 최저임금을 모아서 말이야. 우리 활동비는 30만 원 받으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친구들이 몇 개월 지나다 보면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하면서 그만두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거야. 그 친구들도 아무런 경험이 없이 졸업하고 바로 왔는데 우리는 자기만 쳐다보고 있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만 그 말이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 그렇게 두세 명의 친구가 왔다 가고 나서 안 되겠다, 우리 중 누군가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함께하게 되었지.
그래서 내가 사서교육원에 입학해서 사서 교육을 받게 되었지. 그때 그 학비는 남편한테 빌렸다. 하!하!. 1년을 다녀서 사서 자격증을 땄지. 그렇게 우리가 공부하면서 도서관을 운영했지. 그리고 느티나무도서관은 딱 도서관으로만 의미가 아니었어. 도서관은 희망세상의 한 조직이었고, 도서관의 활동은 희망세상의 활동이라고 생각했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희망세상의 철학과 의미가 도서관 활동에 어떻게 잘 녹아나게 하는가가 제일 큰 숙제라고 생각해.
Q. 활동을 이어오다가 희망세상의 대표가 되었잖아요? 내가 아는 언니는 대표 자리는 진짜 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대표가 된 거예요?
김혜정 대표의 임기가 4년이 끝나고 제안을 받았지. 너도 알겠지만 나는 정말 앞에 나서야 하는 자리가 싫거든. 실무가 재미있어. 실무형 체질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래서 대표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너무 힘들어서 안 된다, 싫다 했거든. 그런데 계속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만나자 해. ‘우리가 도와줄게’ 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생각했지, 대표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계속 누군가 만나자 하고 시달릴 게 분명하구나 하고 말이야.
그렇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좀 결심이 섰어. 같이 해보자 하니까. 그리고 처음에는 김혜정 대표가 함께 있었고, 반상근을 해주기로 했어. 그래서 한번 해보자고 결심을 하게 되었지. 대표가 되었지만 별로 변한 건 없었어. 김혜정 대표가 있었으니까 대부분의 일은 김혜정 대표가 결정해주고 나는 그대로 실무를 처리하고 그렇게 했어. 직함만 바뀐 거지. 그러니까 나는 너무나 편했어.
그런데 희망세상에서는 내가 대표로서 역량을 갖추기를 바랐던 것 같아. 김혜정이 있어서 내가 성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래서 김혜정 대표가 재단 일에서 손을 떼게 된 거지. 그 후로 정말 너무 힘들었어. 김혜정 대표의 부재도 힘들었겠지만 쉬지 않고 너무 긴 시간 동안 활동했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아. 그렇게 견디면서 4년을 채웠지.
임기가 끝났으니 당연하게 그만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재단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으니 1년만 더 대표를 해주면 우리가 대표를 준비시키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이야기를 했지. 희망세상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회원마다 각자의 사정과 상황이 다 다르니까 그 당시에는 대표를 할 수 있는 여건의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모두 힘든 상황에서 견디면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감당할 몫이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
Q. 당시에 희망세상에는 청년활동가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잖아요? 희망세상은 어떻게 저렇게 청년이 많나? 하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나요. 그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어요?
맞아 진짜 많았지. 결론을 말하면 희망세상 안에서 청년활동가가 활동할 수 있는구조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 특히 재정적으로 말이야. 하지만 희망세상에서 자란 청년들이 부산 여기저기에서 활동하는 걸 보면 좋아. 희망세상이 그 활동의 시작이 되었던 거니까 말이야.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그때 희망세상을 그냥 청년들한테 맡겨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야. 그게 재단 대표자리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이든 말이야. 그리고 선배 활동가로서 지지하고 그 활동을 도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는 우리가 노력해서 좀 더 안정감을 찾고 청년활동가들도 조금 더 단단해지고 나서 넘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지만, 그때는 그 생각이 최선이었어.
2023년 부산풀뿌리대회
Q. 요즘은 어떤 꿈을 꾸고 있어요?
김혜정 대표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니어들의 여가 생활이 너무 빈약한 것 같다. 마을에 있는 빈집을 고쳐서 여가 생활과 돌봄이 함께 일어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 우리도 더 나이 들면 이용하면 좋겠다하는 이야기도 했고 이름도 지었다 <낭만할매>라고. 그런데 그렇게만 이야기를 나누고 구체화시키려면 그 활동에 깃발을 꽂는 사람이 필요한데 다들 너무 바빠서 더 이야기가 진전 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곳이 생기면 정말 좋겠어.
시니어들이 함께 여가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돌보는 곳이 마을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그리고 또 하나는 도서관 처음 만들 때 생각했던 것처럼 도서관에 오는 마을사람들하고 눈 맞추고, 함께 이야기 하고, 차마시고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좋겠어. 그런 생각 하고 살아. 매년 일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하면서 일을 줄이려고 마주앉는데 막상 일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또 줄일게 없어. 다 중요한 일인거야. 이게 해결되어야 시간이 나고 그래야 주민들과 함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데, 고민이야.
Q. 함께 할 활동가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맞아, 우리는 공동체모임이라든가 함께 모여서 뭔가 하는 일들이 재미있었잖아. 활동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말이야. 함께 하는 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야. 어떤 공동체든 공동체의 경험을 가진 사람도 적고 말이야. 이 활동이라는 게 함께 모여서 뭔가를 의논하고 활동하는 것에 보람이나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데. 점점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아. 행사를 경험하러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함께 하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거든. 그러니 함께할 활동가를 만나기도 쉽지 않고. 그렇지만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공동체 활동을 어떻게 변화시키면서 이어갈 건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Q. 희망세상이 언니한테 어떤 의미였어요?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해. 희망세상을 못 만났으면 그냥 평범한 아줌마로 살았겠지. 수다쟁이 아줌마로 말이야. 그런데 희망세상을 만나면서 세상에 관심도 가지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마을 활동을 하면서 내 삶도 많이 달라졌고, 내 삶의 반경도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해. 그게 좋아.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게 희망세상이지. 그리고 김혜정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친구를 만난 곳이지. 뭔가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노년의 삶을 함께 꿈꿀 수 있는 사람, 그런 친구를 만나게 한 곳이야.
2024년 7월 희망세상 공간정리
Q.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일이 있어요?
새로운 일이라기보다 더 챙겨봐야 하겠다 하는 일들이 있어.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의 상근활동가들이 일에 치여서 본인의 삶을 돌아본다든가 역량을 강화하는 활동을 하나도 못하고 있어요. 모임도 진짜 딱 모임만 하는 그런 느낌.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내가 나의 역할을 찾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 함께 모임에 들어가기라도 하고, 화두를 던지기도 하고.
내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겠어. 항상 뭔가 역할을 주면 그 역할을 충실하게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떤 역할을 주지 않아도 두 다리 담그고 뭔가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먼저 온 활동가들이 그렇게 역할을 찾아가면 희망세상이 앞으로도 좀 건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 그리고 또 하나 청년활동가들이 희망세상에서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 그런 구조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걸까? 고민하고 싶어.
Q. 우리가 만난 시간이 길지만 이렇게 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어땠어요?
다시 말하지만 네가 전화 안 했으면 나는 인터뷰 같은 거 절대 안 했을 거야. 네가 한다고 하니까 해보자 한 거고. 그런데 만나니까 좋은 것 같아. 이렇게 둘이 앉아서 오전 시간 내내 마을, 도서관, 활동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이런 시간이 생긴 게 참 좋네.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말이야. 뭔가 괜찮은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이라 좀 걱정이긴 하지만. 반송까지 찾아와줘서 진짜 고맙고 반가웠어.
활동가 인터뷰를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르는 사람이 영미언니였어요. 내가 기억하는 언니는 늘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따뜻해서 사나운 나까지 순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어요. 마을 활동이라는 게 늘 녹록지 않기 때문에 언니를 만나면 늘 푸념이나 불만을 쏟아냈던 것 같은데 늘 언니는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 하곤 했어요. 그런 언니의 따뜻함과 다정함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한번은 말하고 싶었어요.
인터뷰를 하러 가서 서로의 이야기를 마구 나누었어요. 답답한 일을 털어놓고 좀 울기도 했어요.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본격적인 인터뷰를 할 수 있었죠.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뭔가 주객이 전도된 인터뷰인 샘이었어요. 그런데도 두 명의 마을 활동가를 너무 바빠서 통화하기도 힘들었던 활동가 둘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4시간이 넘게 함께 있도록 만들어준 인터뷰 자리였습니다. 충분하고 충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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