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는 어떻게 생겨날까요? 스스로의 변화 과정을 모델로 삼아 다른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은 마음으로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활동가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환경정의에서 10년차 활동을 맞이한 ‘활동의 맛과 활동가의 멋’을 아는 사람, 황숙영 국장님을 만났습니다.
황숙영 국장 인터뷰 현장 사진
활동의 시작
Q. 환경정의에서 활동하신지 올해로 10차가 되셨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립니다(웃음). 환경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환경 활동을 하기 전에는 사실 환경에 그렇게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환경정의 활동 이전에 한 개신교 청년회전국연합회에서 7년 정도 활동했었는데, 그때 후쿠시마 원전사고 1주기를 맞아 일본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한·일 재일교포 청년들이 모여서 2년마다 한 번씩 하는 공동연수 프로그램이었거든요. 그때 가서 핵발전소 관련된 학습도 하게 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환경 문제가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느꼈어요. ‘아, 내가 앞으로의 인생은 좀 더 환경에 기여하며 살아야겠다’ 싶더라고요.
Q.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구체적 장면이 있을까요?
후쿠시마현으로 이동하는 차에서 세슘 측정기 수치가 올라가서 다같이 마스크를 쓰자고 해서 썼어요. 마스크를 쓰고 밖을 보니 사람들은 마스크나 안전장치 없이 일상을 살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이 저에게는 좀 충격이었어요. 내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인지하는게 얼마나 중요하고 그게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걸 온몸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알 수 있어야 대책과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도요.
Q. 환경에 기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잖아요. ‘환경정의’라는 단체에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도 있었을까요?
우선은 보람 없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고, 시민단체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웃음). 운명처럼(?!) 환경정의에서 신입 활동가를 모집하더라고요. 그래서 들어오게 됐고 그게 2015년 1월이었으니까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들어와서 보니 더 좋았던 게 활동의 결과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 당시에 환경정의가 미세먼지 이슈를 주도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캠페인도 많이 했거든요. 그 자료들을 가져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보여주면서 얘기할 수 있으니 되게 좋은 단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활동의 축적이 가져다 주는 것
Q. 2022 활력향연 시즌2 연구보고서인 <우리는 왜 라벨을 읽지 않는가? : 생활화학제품 라벨 문해력의 부재>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특히 ‘라벨 문해력’이라는 문구가 흥미롭더라고요.
환경정의에서 일한지 6년쯤 되었을 때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좀 더 분야를 파고들고 싶어서 유해물질저감 활동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내용을 잘 모르니까 홍보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유해물질의 위험성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강조하다보니 만들어 낼 수 있는 실질적 변화에 대해 고민이 생겼어요. 사람들은 위험 정보에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것 같기도 했고요. 2-3년 정도 고민하며 활동하다보니 제 안에서도 내용에 대한 축적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회의도 참여하게 되고 여러 연대체 활동도 하게 되면서 생활화학제품 라벨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활력향연 연구보고서
<라벨을 읽자>는 메시지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활화학제품의 중요한 정보를 먼저 읽어보고 주의사항을 정확하게 알고 사용 용도에 맞게 쓰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제품 라벨을 잘 읽지 않을까요? 사실 성분명만 나열된 라벨만 봐서는 위험성을 판단하기 참 어렵죠. 전문가들도 어려워해요(웃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품에 포함된 성분의 노출 방식, 함량입니다. 예를 들어 피부에 접촉될 때 독성이 위험한 정도는 아닌 성분이 호흡기로 들어오게 스프레이 분사 방식으로 사용되면 문제가 될 수 있는거죠. 제품 라벨을 잘 읽는 것부터 시작하면 용도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되니까 어떤 성분이 위험하다는 것만 강조하는 것보다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저는 읽어보면서 학술적으로는 전문적일 수 있는 내용을 활동가가 통역해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자체로도 좋은 활동인데 학술포럼에서 수상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제가 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숲과나눔 재단에서 하는 ‘환경학술포럼’에서 우수상을 받았는데 상 받을 줄 모르고 집에 와서 상장도 우편으로 받고 그랬어요(웃음). 아마 활동가로서의 시범적인 연구로 생각해주신거겠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해요. 저는 활동가의 전문성이라는 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한 분야의 전문가, 전문성의 의미보다 좀 더 포괄적이고 범위가 넓다고 생각하거든요. 전문성을 학술적이거나 기술적인 영역이라고 어렵게 생각하는 것들을 운동으로 만들어 내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참여하게 만들잖아요. 활동가가 볼 수 있는 영역이 더 넓고 상상하는 범위가 크죠. 그래서 저는 활동가들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Q. 활동의 전문성을 개인 연구로 정리해본 경험은 어떠셨어요? 수상하신 것 외에도 활동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사람들의 행동 변화에 관심이 높은 편이라는걸 깨달았어요.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은거에요. 그래서 연구 이후에 사업으로 만들어 보는데 도움이 됐어요.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공모 사업으로 <읽기 쉬운 생활화학제품 라벨 만들기 워크숍>을 열어서 시민들의 목소리로 대안을 함께 만들어 보는 작업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죠.
라벨 만들기 워크숍 진행 사진
시민들이 제안한 라벨 A/B안
생활화학제품 라벨에 포함되어야 하는 안전 정보가 무엇인지 먼저 공부하고 3개 팀으로 나눠서 가독성을 높이는 라벨로 개선해보는 작업이었어요.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정책에 참여하도록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더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라벨을 읽자는 캠페인을 환경부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려고 하더라고요. 미국 환경보호청에서는 ‘Read the Label First’라고 해서 라벨을 먼저 읽자는 캠페인을 하면서 스티커도 배포하고 강조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환경부는 ‘안전기준 확인 마크’를 확인하라고만 하고, 라벨에서 꼭 봐야 하는게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었는데 변화가 눈에 보이니까 개인적으로도 뿌듯하더라고요.
Q. 활동 전문성을 축적하고 활동 분야를 정립해간다는게 어떻게 가능한건지 궁금해요. 국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건 해볼 만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들면 조금씩 공부해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고민이 좀 더 뾰족해지면서 정리되는 것 같거든요.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들한테도 운동을 기획할 때 사전 조사를 많이 강조해요. 연구 자료도 보고, 기사도 보고 그 주제로 어떤 활동들이 있는지, 전문가 풀은 어떤지 이런 사전 조사가 잘 되어 있어야 기획을 잘하게 된다고 생각하고요. 꾸준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물론 스스로 찾아가고 알아가는 게 중요하기도 하지만 조직이라면 함께 활동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문성과 강점을 짚어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환경정의,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
Q. 유해물질저감 활동에서 라벨 문해력을 위한 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업들이 있을 것 같은데 소개해주세요.
특히 올해는 활동국 체제로 전환하면서 여러 개 팀으로 나눠서 하던 일을 묶어서 가보기로 했어요. 한 번 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활동국장을 맡고 있어요. 그래서 유해물질저감 관련된 활동 외에도 기후위기, 먹거리 정의 활동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해서 열심히 공부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웃음).
노동자 5인 인터뷰
반지하 대책 토론회
공유냉장고
향 사용실태
환경정의 활동은 환경 민감계층, 취약계층이 누구인가, 누가 더 피해를 보는가에 집중하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기후정의] 파트에서는 기후위기 적응 측면에서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 인터뷰와 대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 서울시 반지하 대책 점검 및 강화 방안 마련 토론회도 개최하고요. [먹거리정의]는 공유냉장고를 운영하면서 주민들이 먹거리 취약계층을 포함해서 이웃을 서로 돌보게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서 탄소배출감축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요. [유해물질저감] 활동은 올해는 향에 집중해 보려고 해서 실태조사도 진행하고 살생물제 관련 연구용역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Q. 활동 자체도 많아지겠지만 조직 체계에 변화가 있으니 그 부분도 고민이 생기시겠네요. 환경정의 내 일하는 분위기는 어떤가요? 서로 어떻게 북돋우며 활동하나요?
함께 활동하는 동료로 서로의 성장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요. 그러려면 정기적으로 소통하는게 중요하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솔직할 수 있어야 하죠. 개인적으로도 서로 친밀해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친밀함이라고 하는게 단순히 다른 활동가의 취향과 같은 개인적인 정보를 많이 안다고 되는게 아니더라고요.
아마 올해 처음 활동국으로 바뀌게 되면서 각자 하던 주제와 사업에 더해 뭔가 혼란스러워하거나 힘들어하는 부분이 분명히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팀워크를 잘 만들어봐야죠.
활동의 맛, 활동가의 멋
Q. 2023년 환경정의 활동보고서에 각 사업을 담당하는 활동가의 한마디가 적혀있더라고요. ‘활동의 맛, 활동가의 멋을 이제 조금 알게 되었어요.’라고 써주셨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우선 활동보고서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웃음). 사실 활동의 보람이라고 하면 결국 아주 많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활동의 의미가 있었다는 걸 평가받을 때 느끼는 것 같아요. 내가 한 활동이 의미가 있다고, 잘 봤다고, 이런 걸 알게 됐다고 누군가 이야기해줄 때 ‘활동할 만하다’생각해요(웃음).
활동가의 멋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만들고 싶은지 그 마음을 계속 품고 있을 때 활동가의 멋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게 또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게 설령 지금 당장 뾰족하게 정리되지 않더라도 그런 질문을 스스로 계속하고 기억할 때 활동가의 멋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도 계속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짐 차원에서 썼던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Q. 앞으로 활동의 멋은 어떻게 만들어 가실 계획이신가요?
사실 먹거리정의 이슈나 유해물질저감 운동 다 환경정의에 들어와서 처음 접해본 것들이었어요. 활동 이전에는 내 삶과 전혀 관계 없다고 생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인데 알게 되니 저부터 변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행동 변화에 관심이 있는 것도 스스로의 변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사람의 변화 패턴이 다 같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소통하면 영향을 조금이라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저를 모델로 삼아서 활동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상상하면서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는 여러 그룹과 협업하면서 활동하고 싶어요.
#황숙영 #환경정의 #라벨문해력 #유해물질 #활동가의멋 #서울 #공익활동가주간
※ 참고하기
- 환경정의 홈페이지 www.eco.or.kr
- 환경정의 인스타그램 @ecojustice4747
- <우리는 왜 라벨을 읽지 않는가? : 생활화학제품 라벨 문해력의 부재> 읽어보기
인터뷰어 : 나혜수
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활동의 발화점을 만들어 내는 일도 직접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만큼 의미 있다고 믿습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황숙영 국장 인터뷰 현장 사진
활동의 시작
Q. 환경정의에서 활동하신지 올해로 10차가 되셨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립니다(웃음). 환경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환경 활동을 하기 전에는 사실 환경에 그렇게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환경정의 활동 이전에 한 개신교 청년회전국연합회에서 7년 정도 활동했었는데, 그때 후쿠시마 원전사고 1주기를 맞아 일본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한·일 재일교포 청년들이 모여서 2년마다 한 번씩 하는 공동연수 프로그램이었거든요. 그때 가서 핵발전소 관련된 학습도 하게 되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환경 문제가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느꼈어요. ‘아, 내가 앞으로의 인생은 좀 더 환경에 기여하며 살아야겠다’ 싶더라고요.
Q.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구체적 장면이 있을까요?
후쿠시마현으로 이동하는 차에서 세슘 측정기 수치가 올라가서 다같이 마스크를 쓰자고 해서 썼어요. 마스크를 쓰고 밖을 보니 사람들은 마스크나 안전장치 없이 일상을 살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이 저에게는 좀 충격이었어요. 내가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 인지하는게 얼마나 중요하고 그게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걸 온몸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알 수 있어야 대책과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도요.
Q. 환경에 기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잖아요. ‘환경정의’라는 단체에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도 있었을까요?
우선은 보람 없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고, 시민단체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웃음). 운명처럼(?!) 환경정의에서 신입 활동가를 모집하더라고요. 그래서 들어오게 됐고 그게 2015년 1월이었으니까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들어와서 보니 더 좋았던 게 활동의 결과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 당시에 환경정의가 미세먼지 이슈를 주도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캠페인도 많이 했거든요. 그 자료들을 가져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보여주면서 얘기할 수 있으니 되게 좋은 단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활동의 축적이 가져다 주는 것
Q. 2022 활력향연 시즌2 연구보고서인 <우리는 왜 라벨을 읽지 않는가? : 생활화학제품 라벨 문해력의 부재>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특히 ‘라벨 문해력’이라는 문구가 흥미롭더라고요.
환경정의에서 일한지 6년쯤 되었을 때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좀 더 분야를 파고들고 싶어서 유해물질저감 활동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내용을 잘 모르니까 홍보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유해물질의 위험성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강조하다보니 만들어 낼 수 있는 실질적 변화에 대해 고민이 생겼어요. 사람들은 위험 정보에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것 같기도 했고요. 2-3년 정도 고민하며 활동하다보니 제 안에서도 내용에 대한 축적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회의도 참여하게 되고 여러 연대체 활동도 하게 되면서 생활화학제품 라벨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활력향연 연구보고서
<라벨을 읽자>는 메시지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활화학제품의 중요한 정보를 먼저 읽어보고 주의사항을 정확하게 알고 사용 용도에 맞게 쓰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제품 라벨을 잘 읽지 않을까요? 사실 성분명만 나열된 라벨만 봐서는 위험성을 판단하기 참 어렵죠. 전문가들도 어려워해요(웃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품에 포함된 성분의 노출 방식, 함량입니다. 예를 들어 피부에 접촉될 때 독성이 위험한 정도는 아닌 성분이 호흡기로 들어오게 스프레이 분사 방식으로 사용되면 문제가 될 수 있는거죠. 제품 라벨을 잘 읽는 것부터 시작하면 용도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되니까 어떤 성분이 위험하다는 것만 강조하는 것보다 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저는 읽어보면서 학술적으로는 전문적일 수 있는 내용을 활동가가 통역해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자체로도 좋은 활동인데 학술포럼에서 수상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제가 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숲과나눔 재단에서 하는 ‘환경학술포럼’에서 우수상을 받았는데 상 받을 줄 모르고 집에 와서 상장도 우편으로 받고 그랬어요(웃음). 아마 활동가로서의 시범적인 연구로 생각해주신거겠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해요. 저는 활동가의 전문성이라는 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한 분야의 전문가, 전문성의 의미보다 좀 더 포괄적이고 범위가 넓다고 생각하거든요. 전문성을 학술적이거나 기술적인 영역이라고 어렵게 생각하는 것들을 운동으로 만들어 내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참여하게 만들잖아요. 활동가가 볼 수 있는 영역이 더 넓고 상상하는 범위가 크죠. 그래서 저는 활동가들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Q. 활동의 전문성을 개인 연구로 정리해본 경험은 어떠셨어요? 수상하신 것 외에도 활동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사람들의 행동 변화에 관심이 높은 편이라는걸 깨달았어요.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은거에요. 그래서 연구 이후에 사업으로 만들어 보는데 도움이 됐어요.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공모 사업으로 <읽기 쉬운 생활화학제품 라벨 만들기 워크숍>을 열어서 시민들의 목소리로 대안을 함께 만들어 보는 작업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죠.
라벨 만들기 워크숍 진행 사진
시민들이 제안한 라벨 A/B안
생활화학제품 라벨에 포함되어야 하는 안전 정보가 무엇인지 먼저 공부하고 3개 팀으로 나눠서 가독성을 높이는 라벨로 개선해보는 작업이었어요.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정책에 참여하도록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더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라벨을 읽자는 캠페인을 환경부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려고 하더라고요. 미국 환경보호청에서는 ‘Read the Label First’라고 해서 라벨을 먼저 읽자는 캠페인을 하면서 스티커도 배포하고 강조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환경부는 ‘안전기준 확인 마크’를 확인하라고만 하고, 라벨에서 꼭 봐야 하는게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었는데 변화가 눈에 보이니까 개인적으로도 뿌듯하더라고요.
Q. 활동 전문성을 축적하고 활동 분야를 정립해간다는게 어떻게 가능한건지 궁금해요. 국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건 해볼 만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들면 조금씩 공부해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고민이 좀 더 뾰족해지면서 정리되는 것 같거든요.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들한테도 운동을 기획할 때 사전 조사를 많이 강조해요. 연구 자료도 보고, 기사도 보고 그 주제로 어떤 활동들이 있는지, 전문가 풀은 어떤지 이런 사전 조사가 잘 되어 있어야 기획을 잘하게 된다고 생각하고요. 꾸준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물론 스스로 찾아가고 알아가는 게 중요하기도 하지만 조직이라면 함께 활동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문성과 강점을 짚어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환경정의,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
Q. 유해물질저감 활동에서 라벨 문해력을 위한 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업들이 있을 것 같은데 소개해주세요.
특히 올해는 활동국 체제로 전환하면서 여러 개 팀으로 나눠서 하던 일을 묶어서 가보기로 했어요. 한 번 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활동국장을 맡고 있어요. 그래서 유해물질저감 관련된 활동 외에도 기후위기, 먹거리 정의 활동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해서 열심히 공부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웃음).
노동자 5인 인터뷰
반지하 대책 토론회
공유냉장고
향 사용실태
환경정의 활동은 환경 민감계층, 취약계층이 누구인가, 누가 더 피해를 보는가에 집중하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기후정의] 파트에서는 기후위기 적응 측면에서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 인터뷰와 대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 서울시 반지하 대책 점검 및 강화 방안 마련 토론회도 개최하고요. [먹거리정의]는 공유냉장고를 운영하면서 주민들이 먹거리 취약계층을 포함해서 이웃을 서로 돌보게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서 탄소배출감축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요. [유해물질저감] 활동은 올해는 향에 집중해 보려고 해서 실태조사도 진행하고 살생물제 관련 연구용역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Q. 활동 자체도 많아지겠지만 조직 체계에 변화가 있으니 그 부분도 고민이 생기시겠네요. 환경정의 내 일하는 분위기는 어떤가요? 서로 어떻게 북돋우며 활동하나요?
함께 활동하는 동료로 서로의 성장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요. 그러려면 정기적으로 소통하는게 중요하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솔직할 수 있어야 하죠. 개인적으로도 서로 친밀해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친밀함이라고 하는게 단순히 다른 활동가의 취향과 같은 개인적인 정보를 많이 안다고 되는게 아니더라고요.
아마 올해 처음 활동국으로 바뀌게 되면서 각자 하던 주제와 사업에 더해 뭔가 혼란스러워하거나 힘들어하는 부분이 분명히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팀워크를 잘 만들어봐야죠.
활동의 맛, 활동가의 멋
Q. 2023년 환경정의 활동보고서에 각 사업을 담당하는 활동가의 한마디가 적혀있더라고요. ‘활동의 맛, 활동가의 멋을 이제 조금 알게 되었어요.’라고 써주셨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우선 활동보고서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웃음). 사실 활동의 보람이라고 하면 결국 아주 많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활동의 의미가 있었다는 걸 평가받을 때 느끼는 것 같아요. 내가 한 활동이 의미가 있다고, 잘 봤다고, 이런 걸 알게 됐다고 누군가 이야기해줄 때 ‘활동할 만하다’생각해요(웃음).
활동가의 멋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만들고 싶은지 그 마음을 계속 품고 있을 때 활동가의 멋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게 또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게 설령 지금 당장 뾰족하게 정리되지 않더라도 그런 질문을 스스로 계속하고 기억할 때 활동가의 멋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도 계속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짐 차원에서 썼던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Q. 앞으로 활동의 멋은 어떻게 만들어 가실 계획이신가요?
사실 먹거리정의 이슈나 유해물질저감 운동 다 환경정의에 들어와서 처음 접해본 것들이었어요. 활동 이전에는 내 삶과 전혀 관계 없다고 생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인데 알게 되니 저부터 변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행동 변화에 관심이 있는 것도 스스로의 변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사람의 변화 패턴이 다 같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소통하면 영향을 조금이라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저를 모델로 삼아서 활동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상상하면서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는 여러 그룹과 협업하면서 활동하고 싶어요.
#황숙영 #환경정의 #라벨문해력 #유해물질 #활동가의멋 #서울 #공익활동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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