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변만사]공동체를 향한 직진, 그 ‘밥 냄새’ 나는 이야기 - 전방위 마을활동가 박진숙

변화를만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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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막 뜯어온 아욱을 빠드득빠드득 치대어 아침 일찍 동네 ‘성님’이 마당에 부려놓고 간 다슬기와 함께 말가니 구수한 탕을 끓여낸다. 이걸로는 좀 부족할까 싶어 돼지등뼈에 햇감자와 묵은지 썰어 넣고 푹푹 고아낸 뼈다귀탕도 상 위에 올린다. 부추를 무치고 갓김치를 접시에 담는 사이, 어느새 회관 안은 “밥 먹으러” 온 이들로 꽉 차 있다. 마을에 특별한 경사가 있거나 뉘 집 잔칫날이어서가 아니다. 이는 그저 전남 곡성군 죽곡면 삼태마을의 흔한 점심 풍경일 뿐이다. 지방소멸의 시대라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인구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이 희귀한 시골 마을. 그 중심엔 어린아이부터 고령의 어르신까지 함께 둘러앉는 “밥상공동체가 있다”고 박진숙 씨(52)는 말한다. 


“날마다 밥 먹으러 오던 사람이 안 오면 궁금해지잖아요. 내가 가볼게,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고. 상시적 돌봄이 가능해지는 거죠. 마을 회의도 밥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돼요. 이장이 요즘 이런 게 있는데 어쩔까요, 하고 운을 띄우면 할매들이 서로 막 논의를 해서 결론을 내버려요. 만약 오늘 뭔가를 잘못 결정했다, 그래도 괜찮은 게 내일 밥 먹으면서 다시 하면 되니까.(웃음)”


곡성군 죽곡면 대황강 옆 숲에서 인터뷰 중인 마을활동가 박진숙 씨.


삼태마을에서 ‘이장댁’이나 ‘이장 각시’로 불리는 박진숙 씨는 마을 밖에서 더 바쁘고 유명한 사람이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관장,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죽곡면주민자치회 부회장, 섬진강마을영화제 공동위원장, 곡성교육회 감사 등, 그가 맡은 굵직한 직함만 꼽아도 다섯 손가락이 꽉 찬다. 이들 조직은 마을공동체 활동이라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들어진 것으로 그 시작점엔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하 도서관)>이 있다. 십 년 전 그가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도서관과 지역에 어떤 변화의 씨앗이 뿌려졌는지, 그 이야기부터 들어본다.


“도서관이 마을의 섬이어서야 쓰나요?”


2004년의 일이다, 죽곡면 농민회가 4평 남짓한 창고를 확보해 도서관을 만들었다. 당시 기세가 하늘을 찔렀던 농민회 회원들이 골짝 사이사이 마을을 돌며 1,200여 권의 책을 기증받은 사실은 지금까지도 구전되는 ‘죽곡 전설’로 남아 있다. 


“자리가 넘치게 책을 모았으니 새 공간이 필요했을 거잖아요. 마침 작은도서관 리모델링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지금의 건물을 세웠다고 해요. 책장 같은 건 농민회 회원들이 다 직접 만드셨고. 그분들의 열정과 의지가 아니었다면 이 작은 시골에 농민도서관이 들어서는 건 불가능했을 거예요.”


죽곡농민열린도서관 전경. 이곳은 주민 사랑방이자 활동가들의 거점 공간이다.


전북 진안이 고향인 박진숙 씨는 전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후 광주에서 대안교육 관련한 시민사회운동을 하다가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삶”을 꿈꾸며 2012년에 곡성군 죽곡면 삼태마을로 들어왔다. 소농으로 자립하길 원했던 그는 토종작물 50여 가지를 생태적인 방식으로 농사지으며 농민회와 인연을 맺었고, 농민회 총무를 맡으면서 일주일에 하루는 도서관 근무도 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 한 명 오지 않는 도서관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모름지기 도서관이라면 시끌벅적하고 음식 냄새가 나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그에게 이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농민회가 크게 위축한 것도 물론 영향을 미쳤겠으나, 그가 보기엔 도서관이 마을과 섞이지 못하고 “섬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 


군에서 갑자기 사서나 교사 자격증 있는 사람만 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다는 방침을 내리면서 교사 자격증 있는 그가 관장을 맡은 것이 2014년. 그는 먼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작은도서관들을 모아 연합회를 구성하여 작은도서관 지원 조례를 만드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최소한의 프로그램 진행비와 인건비 정도는 나와야 뭐라도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다음엔 죽곡초 학부모회와 새마을지도자회, 부녀회, 청년회, 이장단 등으로 도서관 운영위를 구성해 ‘지역도서관’으로서 체계를 갖추었다. 


“당시에 제가 죽곡초 운영위원을 하면서 몇몇 학부모들과 함께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모임을 하고 있었거든요. 우선 그 사람들부터 도서관으로 끌고 온 거예요. 한 번 학교에서 모이면 한 번은 도서관에서 모이자고 하는 식으로.(웃음) 그러면서 도서관 안에 다양한 모임과 활동이 생겨났고 그게 아이들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면서 마을학교로 이어진 거죠.”


자치회, 모두가 제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곳


<죽곡함께마을학교>가 활성화하면서 도서관은 학교와 마을을, 어른과 아이를, 관과 주민을 잇는 교육공동체 활동의 거점 공간으로 그 쓰임을 넓혀갔다. 이런 변화가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공동체 의식을 북돋우는 데 좋은 자극이 되어준 건 분명하다. 그러나 박진숙 관장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으며 마음 한편에서는 항상 뭔가가 아쉬웠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공모사업으로 하다 보니까 11월 말쯤 되면 다 끝나는 거예요. 시골에서는 같이 뭘 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12월부터 2월까진데 정작 그 시기엔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래서 주민들이 좀 더 주체적으로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또 공모사업을 하다 보면 흔히 약자라 불리는 어린이와 여성과 고령의 어르신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은연중에 그들을 대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종종 들거든요. 사실 가장 좋은 건 누가 누구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동등하게 만나는 시스템을 갖추는 거잖아요. 그 시스템을 우리는 주민자치회로 본 거예요.” 


죽곡면에는 열 살 어린이부터 팔십 대 노인까지 참여해 마을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민자치회가 있다. 


2018년 박진숙 씨와 죽곡면 사회복지과 공무원 등 4인은 ‘주민자치연구모임’을 만들면서 자치회를 향한 첫발을 내디딘다. 이들의 걸음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건 이 모임이 행정안전부 시범사업 주체로 선정되면서다. 돈 없이 움직이는 데 이골 난 사람들에게 예산까지 주어지자 마치 날개 달린 듯 일의 진척이 빨라졌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부터 80대 노인까지 참여한 48인의 ‘자치회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들이 전남대 대학원과 연계하여 실시한 죽곡면 지역조사를 통해 21개 마을의제도 발굴되었다. 이 중 가장 시급한 의제가 무엇인지는 28개 마을을 직접 찾아다니며 묻고 최종 결정은 주민 총회에서 했다. 그렇게 해서 ‘우선 사업’으로 정해진 것이 토란도란마을축제, 죽곡문화유산탐사대, 찾아가는 주민자치프로그램, 죽곡마을119다. 


“죽곡면이 토란의 주산지거든요. 어르신들이 주민을 위한 축제는 꼭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만든 게 토란도란마을축제예요. 농부들의 수고를 치하하고 수확에 감사하며 다 같이 즐겁게 노는 자리죠. 주민자치프로그램으로는 풍물, 목공, 국선도, 수지침, 도예 등이 진행 중인데, 다수가 1인의 강사에게 의존하는 강좌보다는 회원들이 모여서 함께 배우고 배운 것을 마을로 찾아가 다시 나눌 수 있는 동아리 형식을 지향하고 있어요. 동아리를 이끄는 분들은 백 퍼센트 지역 주민이고요. 그리고 죽곡마을119는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반장’ 같은 거라 할까요?(웃음) 시골에는 전구 갈고 텔레비전 손보고 시장 가서 뭐 사는 게 쉽지 않은 분들이 많으니까 그런 고충을 지역 공동의 힘과 돌봄으로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하고 있죠.”


품은 더 넓게, 연결은 더 촘촘하게   


올해로 3년째인 이들 사업은 주민의 참여와 호응 속에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가 확연히 높아졌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다만 이제 사람들은 “무엇을 줄 거냐”고 묻는 대신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자치회를 처음 만들 때와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박진숙 씨는 이를 자치회와 주민 사이에 점차 관계가 형성되고 신뢰가 쌓이면서 생긴 변화로 본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자치회 이전부터 활발하게 움직여온, 그리고 지금은 자치회가 구상하는 큰 그림의 콘텐츠를 생산해내며 촘촘하게 지역 구석구석을 잇는 마을활동가들의 역할이 컸다. 그들이 모여 2020년에 만든 것이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으로, 현재 협동조합은 마을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사회적농업 지역서비스공동체사업’의 주체가 되어 공유농장, 마을밴드, 공동체부엌반찬나눔, 마을빵집, 마을목공, 죽곡청소년커뮤니티 등 다양하고 폭넓은 사업들을 진행 중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돌봄문화교육공동체 활동을 펼쳐보겠다 하고 받은 게 지역서비스공동체사업이에요. 농업 기반이니 가장 기초가 되는 건 공유농장이죠. 제가 삼태마을 사람이기도 하고 거기가 마을공동체가 탄탄한 편이라 우선 삼태리 이장한테 땅을 좀 내놓으라고.(웃음) 그렇게 해서 얻은 열네 필지의 다랑이논을 밭으로 만들어서 공유농장을 시작했어요. 고용비 지출이 가능하니 동네에서 가장 약자인 할매들 다섯 분을 고용해서 인건비를 드리고 있고요. 제가 그때 마을회관에서 설명회 하면서 그랬네요. 동네에서 농장까지 6백 미터인데 그거 걸어오실 정도만 되면 다 하실 수 있다고요.(웃음)”


‘사회적농업 지역서비스공동체사업’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공유농장에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모습.


공유농장은 고용된 노인 5인을 비롯해 예비귀농인들이 생태적 방식으로 함께 일궈가고, 여기에 한울고와 죽곡초 학생 50여 명이 ‘배움’을 위해 수시로 온다. 적게는 83세, 많게는 93세에 이른 삼태마을 할머니들이 농사 선생이다. 단순히 돈 받고 일하는 것을 넘어 수십 년간 몸으로 터득한 지혜와 기술을 아랫세대에게 가르치는 역할을 하기에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예비귀농인과 아이들은 또 그들대로 생명에 덜 해로운 농사법을 통해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과 지역 농부에 대한 존중심을 품게 된다. 게다가 이들이 길러낸 다양한 채소는 공유부엌에서 반찬으로 변신해 취약 계층에게 배달되니, 이보다 더 배부르고 마음 따뜻해지는 연결이 또 있을까.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최근에는 주민자치회 안에 ‘전환마을죽곡’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죽곡에너지연구모임>도 만들었다. 재생가능에너지 강의와 죽곡에너지진단 워크숍을 열고 태양광조리기며 건조기 같은 제품을 만들어 선보이는 등, 이 모임은 전환마을로 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습득해가면서 나날이 실력과 내공을 키우는 중이다. 


“지금처럼 인류의 생존이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개인적인 실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봐요. 마을 전체가 생태공동체로 전환되지 않고서는 대안이 없는 거죠.” 


삼태마을의 십 년이 말해주는 것    


박진숙 씨의 활동 범주는 이미 한 마을과 면을 넘어서 있지만, 그가 뭔가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삼태마을이 있다. 집성촌이어서 은근히, 혹은 드러내놓고 외부자에게 폐쇄적이던 마을이 죽곡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귀농 일번지로 바뀌고 공동텃밭에 공동밥상을 꾸려가는 공동체가 되기까지는 십여 년이 걸렸다. 여러 난관과 시련도 있었으나 극복 못 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조급함 없이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천천히 가면 된다는 것을 이 마을에서 배웠다고 고백한다.


“처음엔 나 하나, 우리 가족 하나만 보고 들어왔죠. 그런데 조금 살아 보니 마을이 보이고 거기 사는 주민의 삶이 보이더라고요. 무엇보다 저한테는 마을이 오랜 세월 지켜온 자연환경과 문화적인 유산들이 크게 다가왔고, 그에 대한 부채감에 마을 주민으로 살아야겠다, 할 수 있는 일을 잘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먼저 들어와 살고 있던 두어 명의 귀농자와 생각이나 마음이 잘 맞은 건 행운이었다. 그들과 의기투합한 박진숙 씨는 밤마다 맥주 두어 병 들고 한 집 한 집 찾아다니며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한창 토란 철이라 집마다 토란 다듬는 게 일이던 시기. 그들은 집주인 옆에 앉아 손을 거들고 이따금 술도 한 잔씩 따라주면서 말을 걸었다. 이렇게 마을 속으로 서서히 스미는 가운데 60세 이하 ‘젊은이’ 12인으로 시작한 모임이 바로 ‘삼친회(삼태리에친한사람들)’다. 그들은 한 달에 두 번 만나 차와 술을 번갈아 마시며 이제껏 살아온 이야기를, 지금 여기의 삶에 깃든 고민을 나누었다. 그러다 누군가 ‘대청소 한 번 하자’고 하면 다들 우르르 나서서 동네를 치웠고, ‘이번에 천렵 갈 때 어르신들 모시고 갈까?’ 하면 그날로 계획에 없던 나들이 일정이 잡혔다. 


마을에 실질적인 변화가 생긴 건 서로 간에 정이 쌓이고 신뢰가 싹트고 나서의 일이다. 삼친회 안에서 당시 이장의 장기집권을 문제 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이장이 바뀌었다. 새로 당선된 이장은 삼친회에서 밀어준 선주민 여성이었다. 목소리 큰 몇몇 남성 노인의 훼방으로 마을 최초 여성 이장의 임기는 짧게 끝났지만, 선주민 남성 위주의 개발위원회를 선주민과 귀농인과 남녀 비율이 대등한 운영위원회로 바꾸는 등 삼친회를 중심으로 평등하고 민주적인 마을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최근에 한 일 중 가장 뿌듯한 게 마을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주민들 힘으로 해결한 거예요. 피해자 부모가 장애인이고 피해자에게도 약간의 장애가 있어요. 그 친구의 고백으로 제가 먼저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삼친회에서 논의를 했죠. 그런 다음 피해자의 동의하에 마을에 알려서 공론화를 하고 장애권익센터와 인권상담센터 등의 도움을 받아 법정까지 갔고요. 가해자가 구속되어 죗값을 치르게 되었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래도 다행히 피해자가 용기를 내줬고 삼친회라는 건강한 조직이 있기에 잘 해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러 그 친구를 마을 공동텃밭 활동에 참여시켰거든요. 피해자가 숨는 상황은 만들지 말자는 의도에서 그런 건데, 텃밭 일하는 할머니들이 피해자를 계속 챙겨주고 보호하는 역할을 해주셨어요. 그 친구도 그걸 느끼고 행복해했고요. 이런 게 마을공동체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싶네요.”


밥상공동체를 이룬 삼태마을에서는 매일 같이 모여서 점심을 먹는다. 


박진숙 씨가 들어올 때 40여 명이던 주민은 12년 사이 120명이 넘게 불어나 있다. 대부분 귀촌 귀농 인구다 보니 삼친회 회원도 그만큼 늘었다. 공동체 활동의 경험과 의식이 쌓인 데다 인원수까지 많은 까닭에 삼태마을은 종종 자치회와 협동조합이 벌이는 사업을 떠받치는 주춧돌이 되곤 한다. 이는 하나의 마을이 어떻게 지역의 모범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모여서 밥 먹으며 작당하는 사람이 마을활동가


언뜻 보기에 무모할 정도로 일을 벌이고 뛰어다니는 그에게, 지인들은 종종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좀 쉬엄쉬엄하라고 진심 어린 조언도 해준다. 아닌 게 아니라 올해 봄, 오랫동안 같이 활동해온 가까운 벗이 쓰러지면서 그는 갑자기 무릎이 꺾이는 걸 느꼈다. 내가 지금 잘살고 있는 것인지, 활동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 건지, 겹겹의 의문에 떠밀리면서 잠시 곁길로 빠져 방황 아닌 방황도 했다. 다행히 그에겐 속 깊은 이야기와 내밀한 고민까지도 함께 나눌 동료와 친구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할 때면 항상 그들을 찾았듯, 이번에도 같은 방법으로 고비를 넘긴 그는 더 씩씩하고 말개진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그냥 이렇게 좌충우돌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야 편한 사람인 거 같아요. 쉬려고 간 자리에서도 또 다른 작당을 하고 일 벌일 궁리를 하고 앉아 있으니까.(웃음) 마을활동가가 뭐 딴 게 아니잖아요. 같이 모여서 먹고 놀고 작당하는 사람이 마을활동가지. 왜 그런 걸 하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요. 나와 내 이웃이 사는 곳을 재미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그는 태생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한다. 자기가 호기심 느끼는 일에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도록 판을 벌이는 것만큼 그에게 신나는 일은 없다. 그런 점에서 박진숙 씨는 “중매쟁이에 연결자”며, 그 역할을 잘하기 위해 온갖 회의에 들어가고 필요한 돈 구하느라 발품을 판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가 가장 많이, 자주 하는 건 밥을 지어 누굴 먹이거나 누군가 지은 밥을 먹는 일이라 할까. 그의 손길, 그의 걸음이 가닿는 모든 곳에선 밥 냄새가 난다. 밥상공동체로 시작한 이 글이 다시 밥으로 돌아와 끝맺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남 #곡성 #박진숙 #공익활동가주간



글쓴이_ 자야.
함양에 산 지 15년째. 새벽 산책과 새 관찰,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읽고 쓰고 노래하는 것, 용기 있고 다정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일을 좋아한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임팩트 그라운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재단법인 브라이언임팩트가 후원하고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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