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만사X지리산]마을의 대소사에 제로웨이스트의 깃발을 휘날리며 등장하는, 이재향


욕망과 포장의 무게가 비례하는 이 시대. 학용품 하나를 사도 쓰레기통을 가득 채우는 포장재가 같이 배달되는 이 삶에 어느덧 우리는 익숙해지고 있다. 

재향 씨를 만났다. 언젠가부터 마을 대소사에 제로웨이스트의 깃발을 딱 들고 나타나 온갖 뒷치다꺼리를 분연하게 해내는 이 여인의 살아온 삶이, 됨됨이가, 앞으로의 꿈과 길이 궁금했다. 쓰레기로 가득 찬 세상을 불평하고 등지는 대신, 느리지만 오롯이 샛길을 내는 사람, 딱 필요한 만큼만 덜고 빌려서 사는 삶을 추구하는 재향 씨를 대정리 마을 회관 뒤편의 <쓰레기 없는 점빵>에서 만났다.

 

매대 위에는 어린 시절 학교 앞의 잡화점 혹은 친구와 꾸몄던 소꿉놀이 살림을 연상시키는 소량의 다품종 제품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다. 천연재료로 만든 수세미나 칫솔과 같은, 일회용 플라스틱과 비닐이 포함되지 않은 생활제품 뿐 아니라 참기름이나 무농약 뽕잎 같은 지역 농산물까지, 여러 물건의 말간 민낯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인터뷰 현장의 이재향 씨



익숙한 서울을 떠나다



Q. 산내에 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서울에서 생업으로 디자이너 일을 했었어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졸업하고 천주교 시민단체 쪽에서 사회활동을 한동안 했었어요. 어릴 때부터 사회문제나 운동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돈벌이를 위해 학원 쪽 디자인실에서 광고나 기획을 하는 일을 했었죠. 창작이나 순수 미술 쪽과는 다르고 아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Q. 그런데 어떻게 산내를 알게 되셨어요?


직장 생활도 그렇고, 몸을 담그고 있던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상당히 지쳐있을 때였어요. 번아웃이었는지 모든 게 귀찮아지고 쉬고 싶을 때였는데, 남편이랑 그러면 아예 서울을 떠나 다른 데서 살아볼까 하다가 아는 분의 소개로 중황마을의 오순 언니를 알게 되었죠. 그때가 2018년도였어요. 그럼 3개월만 일단 살아보자 하고 오순언니네 이웃의 황토집을 빌려서 산내 살이를 시작했어요. 



처음 산내살이를 시작했던 중황의 황토집은 각종 벌레가 출몰하는 데다 갈라진 벽틈으로 햇빛이 들어와서 아침잠을 깨울 만큼 ‘야생적’이었다. 그래도 초기의 삶은 도시살이만 해왔던 재향 씨의 산골살이 로망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근사했다. 이사하자마자 야생 열매와 약초들을 캐러 다니고, 각종 효소를 담그고(버리고), 뱀사골 계곡에 몸을 풍덩 담그면서, 살아남기 위해 개헤엄을 배우듯이 산내 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산내에 오기 전의 재향 씨

산내에 오기 전의 재향 씨의 모습 (앞줄 왼쪽)



소식지와 마을극단을 통해 마을에 뿌리내리다



Q. 산내에 오자마자 ‘산내놀이단’ 활동을 하지 않으셨나요? ‘고사리(산내 소식지)’도 초기부터 멤버로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두 활동이 서로 관련이 있었나요? 


산내에서 처음 알게 된 분이 하필이면 놀이단 활동의 핵심 멤버인 오순 언니였던 거죠. 대학 때 풍물패 활동을 한 적도 있고, 산내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놀이단 활동을 시작했고, 놀이단 활동하면서 현택형을 알게 되면서 그 양반이 편집장으로 있던 마을 소식지 ‘고사리’도 같이 하기로 했죠, 처음에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마을 행사나 이웃집 대소사에도 꼬박꼬박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졌고요. 늘 뭔가를 궁리하거나 추진하고 실천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마을 신문 활동이 산내에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고사리’ 활동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도, 산내의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마음에 기획 취재의 일환으로 쓰레기차 쫓아다니는 것도, 그녀에겐 새롭고, 신나고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쓰레기 문제를 취재하면서 재향 씨는 환경 문제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왕 하는 일의 저변을 좀 더 넓혀보기로 한다. 



Q. 그때의 경험이나 생각들이 지금 하고 계신 '비니루없는점빵'과 같은 환경실천 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네요?


산내 내려와서 살면서 한동안 실상사에서 근무했고, 다음에는 ‘지리산이음’에서도 활동가로 일했지만 배우고 느낀 것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 활동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더라구요. 마침 그때 산내에서 소소하게 환경운동을 실천하고자 하는 언니들을 여럿 알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당시 ‘작은학교’ 선생님이었던 진순 언니가 큰 힘이 되었어요. 그 언니와 또 나비(김은경 씨)와 함께 한동안 열심히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했지요. 인월 장터에도 나가고 다른 지역 장터에도 참가하고 하며 발을 넓혔는데 그러다 진순언니는 우리에게 집과 이 일을 넘겨주고 제주도로 이사갔죠.



일회용품 없는 마을행사를 꿈꾸며 활동하는 일없쓰

일회용품 없는 마을행사를 꿈꾸며 활동하는 산내 사람들



마을에서 시작한 제로웨이스트숍 '비니루없는점빵'


Q. 지금 운영하고 있는 산내 외에 남원 시내에서도 제로웨이스트숍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산내에서 남원으로 진출하게 되셨는지 좀 들어볼까요? 


나비와 거의 둘이서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하면서 수익이 없다 보니까 활동을 계속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마침 우리 지역에는 제로웨이스트숍도 없고 해서 친환경 용품을 판매해서 수익도 얻고 사람들에게 우리 활동을 알리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대정리에 공간을 얻어서 작은 점빵을 냈지요. 그런데 나비도 나도 장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보통 고역이 아니었어요. 물건에 마진을 붙이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또 판매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어요. 


자연스럽게 이 점빵을 개인사업이 아닌 협동조합 형태의 사업체로 설립하는 방향이 낫겠다 해서 교육도 받고 방향도 모색하던 차에, 좀 더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시에 가게를 여는 게 나을 것 같아 남원 시내를 알아보게 되었죠. 운 좋게도 제일교회 목사님이 시민공유 공간으로 내어놓은 공간을 소개받아 그곳에 입주하면서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었죠. 그저 막연한 희망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참 무모했네요(하하)

 


같은 건물에 입주한 지리산생명연대의 승명씨의 소개로 얼떨결에 입주하게 되었지만 남원의 '비니루없는점빵'을 통해 재향 씨는 그동안 꿈꾸어왔던 일을 하나씩 진행할 수 있는 제법 튼실한 동력을 얻게 되었다. 우선 남원 시내의 여러 초중학교에서 환경교육 강사로 맹활약하고 있다. 또한 ‘비니루없는점빵’을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어서 공동체의 이익과 활동가의 생계가 동시에 실현되는 미래를 열심히 도모하고 있기도 하다. 



남원 시내 광한루 앞의 비니루없는점빵 제로웨이스트숍

남원 시내 광한루 앞의 비니루없는점빵 제로웨이스트숍



Q. ‘비니루없는점빵’ 활동과 관련해서 올해 일본의 가미카츠 마을에도 다녀오셨죠? 마을 전체가 제로웨이스트의 장이기도 한 일본의 작은 마을을 다녀오신 얘기 좀 해볼까요?


예전에 진순 언니랑 같이 활동할 때, 쓰레기 재활용이 모범적으로 되고 있는 곳을 몇 군데 실태조사를 해서 선진지 견학을 했었어요. 거기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나중에 주민들이나 관을 설득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큰 힘이 되더군요. 그때 내가 조사한 곳이 가미카츠 마을이었는데 산내처럼 면 단위에서 쓰레기 재활용 프로젝트를 세우고 실행하여 세계적인 모델이 된 곳이니 배울 게 많다고 본 거죠. 이번에 다녀와서 마을 주민들에게 설명회도 열고 피드백을 받고 하는 과정도 되게 보람 있었어요. 

사실 우리나라도 그동안 쓰레기 배출에 대한 시민 의식이나 실천이 꾸준히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행정기관의 처리 능력이나 대처가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껴요. 아무리 꼼꼼하게 분리 배출을 하더라도 매립이나 소각은 함부로 한다든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그런 게 많이 아쉽죠. 요새는 남원 대산면에 들어서는 쓰레기 매립장 문제나 마을에서 쓰고 버려지는 영농 폐기물의 향방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쓰레기없는 마을 가미카츠

쓰레기없는 마을 가미카츠



끝을 살려서 잇다



Q. 그나저나 산내에 오신지도 꽤 오래 되셨는데, 여기서 살면서 좋다고 느낀 점, 부족한 부분은 뭐가 있을까요?


좋은 점은 뭐 다들 느끼시겠지만 가치관이나 삶의 관점이 비슷한 분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 장을 펼치기만 한다면 열심히 행동하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는 너무 장점이죠. 아쉬운 점은 활동과 생계를 너무 별개로 생각하는 분위기라, 약간 여기서는 가치와 여유를 향유하고, 돈은 딴 데서 벌고... 그러다 보니 지속가능한 운동과 생계 활동이 좀 어렵지 않나 싶어요. 마을이 나이 들어가고 젊은 귀촌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적어지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네요.



Q. 산내 마을이 ‘앞으로 좀 더 이랬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이 있다면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돌봄 이슈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잖아요. 다양한 연령대의 마을 구성원들이 각자의 필요와 재원을 나누고 교환할 수 있는 협동조합 같은 것이 있다면 마을 안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 내지 소망 같은 것이 있어서 꾸준히 방법을 모색해보고 싶어요. 어쩌면 산내 안에서 우리 사회에 맞는 모델이 될 만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머리에 붙은 나방도 머리핀처럼 멋스러운 재향 씨

머리에 붙은 나방도 머리핀처럼 멋스러운 재향 씨



Q. 개인적인 소망이 공동체의 이상향과 일치하는 활동가의 면모가 드러나는 말씀인데(웃음) 
휴일에는 뭐하고 지내세요?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 말고 시간을 주면서 쓰라고 한다면 뭘 하고 싶으신가요?


이게 사실 가장 고민되는 질문이네요(웃음). 제가 노는 건 좋아하고 잘 노는 편인데, 오히려 계획 없이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거리는 건 잘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시간이 있으면 텃밭 가꾸기도 좋고 산에 가는 것도 좋아하고, 명상이나 자아 성찰도 좀 해야죠. 아, 못 본 드라마나 영화도 보고 싶은 게 많네요. 




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 재향 씨, 들끓는 에너지를 잘 풀어서 두루두루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의로움이 좀 서투르면 어떻고 투박하면 어떤가.


온갖 물건들이 쓸모를 다해 폐기될 때, 그것이 세상을 향한 독이 되지 않도록 살려 고리를 만들어 주는 일, 끊기고 어긋나는 부분을 찾아내서 이음새를 다듬고, 그 끝이 다른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일을 재향 씨는 우당탕탕 잘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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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이덕임

살 곳을 찾아 지구 곳곳을 떠돌다 2005년에 지리산 산내에 가족과 함께 들어왔다. 2003년부터 전문 번역가로 일해왔으며 지금까지 약 30여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텃밭 가꾸기와 정원일, 이웃(들)과 산책하기가 본업보다 즐겁고 중요해질 때가 많은 시골 생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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