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변화를만드는사람들]마을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연결하는 호기심 많은 농부,한량,교사. 김태정

지리산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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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겨울이 찾아왔다. 늦가을까지 분주하던 들녘이 잠잠해지고, 다들 어디로 갔는지 눈 온 다음 날, 세상이 고요하다. 그런 차갑고 고요한 어느 겨울 아침에 태정씨를 만났다. 소년같은 미소에, 말을 할 때면 눈이 먼저 반짝이는 사람, 올 한해 그 누구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도, 할 일도 많은 사람. 교직을 내려놓고 올 한 해 육아휴직 중인 세 아이의 아빠이자, 산내 놀이단의 핵심 단원 그리고 ‘농부와 한량’이라는 밴드의 일원, 그 뿐이 아니다. 

산내에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살래장 운영모임’의 주축이자 중심지 활성화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책읽기 모임에도 꼬박꼬박 참석한다. 아이돌 가수 못지않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여기에서의 삶이 더없이 만족스럽다는 그이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Q. 일단 산내 주민이시니 어떻게 산내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들어볼까요?

 

산내에 오기 전까지 대구에서 살았는데 일단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도시에서의 양육환경이 너무 어려웠어요. 아내와 같이 친하게 지내던 아이 엄마들이 애들이 서너살이 되자마자 영어유치원이며 학원을 알아보는 분위기로 가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고, 그때 또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났을 때라 마음 가누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대구의 보수적인 분위기도 숨이 막혔고. 마침 대안학교의 교사였던 아내의 인연으로 알게된 태준이형 소개로 중기마을에 집을 보러 산내에 처음 왔어요. 마을에 도착해서 만난 것은 ‘세월호 현수막’이 도로를 따라 쭉 이어져 걸려있는 모습이었어요. 너무 신선하고 멋지게 다가왔어요. 그날 그렇게 집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요

 

Q. 그럼 이사 오고 나서도 계속 교직 생활을 하셨는지?

 

2014년에 처음 들어왔는데, 이사 온 첫 해에는 휴직을 했고 다음 해에는 혼자 대구의 학교로 돌아가 1년 동안 주말부부 생활을 했어요. 하동에서 2년 혼자 생활했고 거창과 함양의 학교를 출퇴근하는 생활을 또 몇 년 하다가 지금은 2년째 휴직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동안 아이가 셋이 되었는데 거의 아내 혼자서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어했거든요. 게다가 쉬는 동안 마을 일도 늘어나고 해서 쉬는 김에 2년 쭈욱 쉬어보자(웃음)





Q. 쉬는 기간에 마을 활동을 바쁘게 하셔서 육아 활동을 할 시간도, 쉴 틈이 없을 것 같은데요(웃음) 지금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곳 중에 하나가 놀이단 활동이 아닌가요? 놀이단에는 어떤 계기로 들어가시게 되었는지, 그 전에도 문화단체 활동을 하신 적이 있었나요?

 

학교 다닐 때는 탈패 활동을 했어요. 아내도 탈패에서 만났고. 처음 산내에 와서는 굿패 활동을 했는데, 나중에 오순이 누님에게서 놀이단 배역을 제안 받았지요. 처음 맡은 배역이 놀부, 나름 주인공에 가까운 배역인데 초짜들에게는 그렇게 큰 배역을 덥석 안겨줘요. 그래야 꼬실 수 있으니까(웃음). 근데 처음에 힘들었던 건 공연이 있으면 대본 받고 두번 연습하고 공연에 서야 하는 거예요. 다들 바쁘니까 준비도 못하고 무대에 오르는 방식이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죠.

 

Q. 주인공 배역도 맡고 있는 데, 놀이단이 태정씨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우선 놀이단에서 만든 이야기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요, 올해는 동학에 관한 이야기를 극으로 올렸는데 반응도 좋았고, 나름 우리 생각도 잘 전달된 것 같아서 만족해요. 처음에 놀이단이 공연을 시작했을 때는 농한기의 어르신들을 위한 오락회 같은 컨셉이었다면 지금은 전체 주민의 소통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 같아요. 코로나로 인해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많아지면서 진체적인 공연의 질도 높이진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배우로서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신나고, 연습해서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는 것도 뿌듯하고 즐겁죠.



 


Q.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 신나고 즐겁다니, 역시 탈패 출신의 피는 못 속이네요. 현직 교사이시니 마을 아이들의 교육이나 성장에도 관심이 많으실테고, 그에 관해 여러가지 활동이나 제안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처음 산내에 와서는 산내들 어린이집 학부모였잖아요. 거기서 여러 형님들과 아빠들의 모임인 ‘산아빠’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죠. 주로 아이들의 놀이터를 만들거나 어린이집을 위한 울력을 조직했는데 입석리에 만든 밤나무 놀이터는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후로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아빠 중창단이라고 노래 모임을 같이 하기도 했고, 해산되고 나서는 뭐 없나 하다, 제가 노래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악기 연주하는 형이랑 태주씨랑 또 소영씨랑 이렇게 밴드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농부와 한량’입니다. 몇 번 공연도 했는데 다음 공연도 계획 중입니다.



 


Q. 태정씨는 한량인지, 농부이신지?

 

이래 봬도 농부 맞아요(웃음). 농지원부가 있고 300평 정도 되는 땅에서 아내와 농사도 이것저것 짓는데 올해는 천일홍 씨앗을 뿌려서 그 꽃으로 화환을 만들거나 꽃다발을 만들어 납품도 하고, 여러 학교에서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네팔에서는 천일홍 꽃과 메리골드 꽃을 엮어서 행운을 비는 화환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올해는 수세미 농사도 많이 지어서 제로웨이스트 가게에 내기도 했고요. 요즘은 농사와 사회서비스 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연결할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또 우리 마을에도 다문화가족이 많은데 이들과 어떻게 연결해서 산내의 문화를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까, 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요.

 


Q. 올해부터는 살래장의 운영위원으로도 참여하고 계신데 살래장 이야기도 좀 들어볼까요?


처음에는 한생명이 준비하고 주최했던 살래장이 코로나로 한동안 쉬다가 작년부터 다시 열리면서 좀 더 주민 중심으로 운영해보자 해서 살래장 운영위원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마을 주민 여러분들이 참여하고 있고 저도 그중 한 사람인데 살래장을 무엇보다도 문화가 있는 장터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놀이단 공연도 하고, 연주팀도 초청하고, 문화 공연에 공을 많이 들였죠. 또 우리 산내의 특성을 살려 환경을 생각하고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문화장터로 만들기 위해 애썼고요. 올해는 3월부터 11월까지 살래장이 매달 열렸는데, 갈수록 귀농인들뿐 아니라 원주민들이나 지역유지들까지 참여하는 장터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보람이 있습니다.

 


Q. 작은 동네에서 대략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문화와 환경을 모토로 한 살래장, 목적과 지향점이 이상적인 만큼 살래 장터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텐데 그중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뭐가 있을까요?


우선 일회용품을 안 쓰고 장터를 운영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요. 마을 분 중에서도 일회용품 안 쓰고 식기나 텀블러를 가져오시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지만 불편해하거나 언짢게 여기는 분들도 아직 많거든요. 장소도 고민이 많아요. 그전까지는 한생명 건물이 있는 느티나무 매장 앞에서 장터를 열었는데, 공간이 좁은 면도 있고 다양한 요구들도 있어서 면사무소 앞 주차장이나  산내초운동장에서도 장터를 펼쳐보려는 시도를 하고있어요.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터 장소가 마땅히 정해진 게 없어 앞으로도 계속 논의해야 할 것 같아요.



 


Q. 살래장이나 위에 말씀하신 단체 말고도 관여하고 있는 곳이 여럿 더 된다고 들었는데요…. 룰루랄라 일도 하고 계신 거죠?


룰루랄라는 우리 아이들, 초등 중등 아이들이 좀 자유롭고 편하게 놀며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 해서 마을 분들과 힘을 합쳐 만든 공간인데, 거기서 일을 하다 보니 중심지 활성 협의회라고, 마을 원주민들이 주로 참여하시는 협의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산내 청년회라든가, 마을 이장단협의회라든가 그전에는 잘 모르던 마을의 여러 단체를 접하게 되었고, 산내마을 전체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커진 것 같아요. 주로 마을의 60대 이상으로 구성된 중심지 활성화 위원회에 귀농인도 들어가면서, 그분들이 산내의 귀농인들이 하는 일에도 역으로 관심을 주시기도 하고요. 또 주축이 되시는 분들과 저희가 소통이 상당히 잘 되는 편이라 서로 유기적으로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Q. 그렇다면 산내를 중심으로 일하고 있는 단체인 우리 지리산이음 같은 곳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뭘까요?


제가 여러 단체에 참여하다 보니 선진지 견학도 많이 했고 다른 지역의 활동도 폭넓게 접했지만 산내만큼 여러 조건이 좋은 곳이 잘 없는 것 같아요. 일단 지리산이 있고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실상사가 있고, 또 그 아래의 풍부한 귀농 커뮤니티가 있지요. 이런 자원과 동력을 잘 연결해서 여러 구성원이 좀 더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방향을 우리가 찾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음이 지금 하는 일도 많지만, 앞으로도 잘 버텨서, 그런 역할을 잘 해주었으면 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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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지금이 더 좋고,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희망적이라는 태정씨, 비관과 우울이 넘치는 이 시대에 참 귀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다.

 


Q. 세 아이의 아빠이면서 오만가지 일에 관여하는 다방면의 활동가이신데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야, 말할 것도 없이 가족이지요. 아이들과 아내와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의논 끝에 산내에 들어왔고, 아이들 잘 키우려고 하면서 시작한 일들을 통해 제 자신의 자아실현도 좀 하고(웃음) 그러니 이 모든 에너지와 활동의 바탕이 저에겐 가족이 맞네요. 그렇습니다.

 





늘 웃고 있지만,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에게도 춥고 덥고, 풍랑이 치는 날들도 많았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다만 우리의 삶은 그것을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따라 모양과 깊이가 달라진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산내의 귀농 인구가 노후화되면서 마을이 활력을 잃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땅값이 오르고 빈집도 없어지면서 젊은 청년들이 정착하기 어려워진 산내가 걱정된다고 한다.

그럴 때 태정씨는 스스로 호기심과 활기로 반짝이는 아이가 되어, 젊은이가 되어 마을을 종횡무진 넘나들고 연결하고 통섭한다. 그가 피워올린 이 따스한 난롯불이 많은 이들에게 가닿기를, 더 많은 이들이 화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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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이덕임

살 곳을 찾아 지구 곳곳을 떠돌다 2005년에 지리산 산내에 가족과 함께 들어왔다. 2003년부터 전문 번역가로 일해왔으며 지금까지 약 30여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텃밭 가꾸기와 정원일, 이웃(들)과 산책하기가 본업보다 즐겁고 중요해질 때가 많은 시골 생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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