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만사X지리산][산내人터뷰] 몸과 마음을 살피고, 숲과 나무와 개천을 들여다보는 자연활동가. 정상은


✅ <산내人터뷰>는 지리산의 품 안에 자리 잡은 마을, 남원시 산내면에 사는 이웃들의 진솔한 삶의 모양을 담습니다.




산내는 산의 안쪽이다. 지리산에 등을 기대거나 바라보고 7개의 행정리가 17개의 마을이 자리 잡은 곳. 품이 넓은 지리산 자락답게 마을과 인가들이 별처럼 흩뿌려져 산자락 여기저기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은근슬쩍 몸을 틀고 자리를 내어주어 떠돌이 별들이 이곳에 알알이 박히도록 허락한 마음 너른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곳도 이곳이다. 

실상사 인드라망의 귀농학교가 시작되고 그 인연으로 도시 사람들이 마을에 정착하기 시작했던 지난 몇십 년 동안, 온갖 사연이 담긴 살림살이를 끌고 이곳에 내려와 뿌리를 묻었던 많은 이들이 그동안 삶의 궤도를 바꾸었다. 더러는 실망하고, 화를 내고, 더러는 올 때보다 더 지쳐 돌아가기도 했다.

그래도 더 많은 이들이 까슬해진 뿌리를 땅속에 더 깊이 내렸고, 겨울을 견뎠고, 봄을 맞이했으며,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사계를 몸으로 마음으로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담백하게 자기만의 색과 모양으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며 새를 불러모으는 또 한 사람, 정상은 님을 만났다.

 


 

| 일단 오랜만에 보는데 요즘엔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 좀 의욕이 없어요. 이렇게 의욕이 없는데 인터뷰에 뭔 생산적인 내용이 실리려나, 걱정이네(웃음)

 

| 2000년 초에 귀농학교 생기고 나서 산내에 들어와서 아직 살고 있는 초기 귀농민에 속하는데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산내로 오기 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오기 전에는 병원노조 일 좀 했지. 한 15년 정도 병원 노조 일을 했어요. 전공이 간호학이어서 병원에서 몇 년 일도 했거든. 그러다가 내 몸도 나빠졌지. 엄마도 당시에 몸이 안 좋아지셔서 그래, 그럼 남편이 먼저 내려와 있으니 지리산으로 가자, 그러고 엄마 모시고 내려왔죠. 

남편 내려오고 한 5년 있다 내려왔으니 이제 20년째네. 내려와서 다행히 대체 의학 하는 인중씨 만나서 목 디스크도 좋아지고 해서 엄마 모시고 여기저기 좀 다니기도 하고, 주로 농사지으면서 몇 년 살았지. 그때는 마을 일은 거의 들여다보지 못했어요. 내 일 돌보기도 빠듯했으니까.

 

| 그럼 지금 하고 계시는 자연 놀이터 ‘그래’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처음엔 자연이고 지리산이고 내가 아는 것이 없었어요. 냉이도 모르고 취나물도 몰라. 시골에서 중 2까지 살았는데도 관심 있게 본적이 없어서. 여기 내려와서 당시 남편이 일하는 실상사 농장도 다니고, 마을 사람들도 조금씩 만나면서 들이나 산에도 좀 다니면서 서서히 자연에 눈을 뜨게 된 거지. 

그러다 2005년쯤엔가 국립공원에서 하는 자연해설 강의를 듣게 되었어요. 주변의 숲이나 자연에 대한 강의를 듣다 보니 재미있고 해서 실상사에서 하는 문화예술 강의에도 참여하고, 조금씩 사람들과 어울렸어요. 그러나 2009년엔가 마천에 있는 지리산 휴양림에서 숲 해설사 모집한다고 자연생태교육을 받았던 사람들과 양윤화, 박한강이 말해줘서 몇 년 동안 휴양림에서 일했지. 자연 속에서 일하는 게 재밌기는 했지만 2012년에 그만두었어요. 좀 쉬고 싶었지.



 


| 그럼 휴양림 일을 그만두시고 자연놀이터 ‘그래’를 시작하신 거네요?

 

그렇지. 직장 그만두고 자연 놀이를 좀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2013년에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의욕도 많았지. 해설사도 키워내고 해야겠다. 그때 같이 자연생태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 그러니까 양윤화, 신강, 은숙, 또 희경이 이런 친구들이 모여서 용유담 식생 조사나 어류 조사 같은 것도 해보면 좋겠다 해서 모임을 만든 거지. 주로 현장을 다니면서 식물이나 동물 조사하는 거라 초기에는 어린이를 위한 생태프로그램을 3박 4일인가 하기도 했어요. 근데 애들은 안 되겠더라. 너무 힘들어서 다음 해부터는 포기했지(웃음)

 




| 그러면 벌써 자연놀이터 ‘그래’를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요즘에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회원 수는 얼마나 되는지요?

 

회원은 25명 정도가 십여년 함께하고 있고, 프로그램은 열려 있어서 알아서 오고 알아서 모이는 느슨한 모임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화요일마다 자연 답사를 하러 가요. 각자 도시락 지참해서 계절마다 다른 코스를 선택해서 점심 먹고 2, 3시쯤 하산하는 형식이죠. 걷는 길에 핀 꽃이나 식물을 들여다보고 같이 공부하거나 이야기 나누고 기록할 거 있으면 하고. 사진도 찍고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외부 나들이도 가요. 겨울에는 실내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같이 공부도 하고 영화 보기 같은 것도 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목 분위기 비슷한 느낌도 나게 되는데 그러다가 봄이 오면 또 열심히 싸댕기니까, 딴눈 안 팔고(웃음)



 


| 10년 동안 매주 사람들이 모여 지리산 곳곳을 다니면서 숲을 들여다보고, 갔던 길을 가는 게 이제 지겨울 만도 한데요

 

근데 그렇지 않은 게 지리산이 워낙 광활하잖아요. 가령 봄에 새싹이 올라올 무렵의 뱀사골, 여름 장마철의 백무동 계절마다 얼마나 제각각인데요. 7월에는 노고단에 올라가서 야생화도 봐야 하고, 작년 재작년부터는 한신 계곡 쪽도 다녀요. 다닐 때마다 그전에 못 보던 새로운 길과 생명을 만나는 거지.



| 근데 올해는 지리산 이음하고 3개월 정도 마을 조사 사업을 했었잖아요. 우리 동네를 한번 체계적으로 살펴보자고 한 일인데, .이 일이 끝나고 나서 산내라는 공간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느꼈던 바가 좀 있으신지? 

마을 조사 사업이란 산내 전체에 놓인 길이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숙박공간이나 식당, 동아리 등을 전반적으로 파악해보자 해서 이음이 정상은씨와 김은미씨와 함께 3개월여 작업한 사업이다. 

예전에 비해서 산내라는 공간이 활력을 많이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 예전에는 동아리도 60,70개 정도 있었잖아요? 이번에 조사해보니 이제 한 40개 정도로 줄었더라고. 물론 그것도 많긴 하지만 초기 귀농자들이 그동안 많이 늙기도 했고, 산내면의 유입인구도 요즘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은퇴자들이 더 많이 들어오는 추세이고. 더구나 우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 동네를 지키고 있던 분들도 이제는 자꾸 돌아가시고 80 넘은 노인들이 되고 했으니 전체적으로 좀 많이 바뀐 느낌이죠. 그래서 요즘에는 마을의 미래도 좀 걱정되고 내 노후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졌어요.

 


| 산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거나, 이음이라는 단체에 상상하고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면 뭘까요

 

나에겐 산내가 그래도 제일 좋은 거 같아. 그런데 산내가 예전에는 공동체의 느낌이 많았다면 귀농 인구가 늘고 어린이들이 줄면서 전체적으로 많이 개인화되고 구심점이 없어진 느낌이 들지. 애들이 많아지면 좋겠지만 억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우선은 새로운 사람들과 기존의 귀농인과 원주민들까지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단체나 중심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리산이음에 바라는 게 있다는 그런 역할이 아닐까? 요즘은 살래장이라는 밴드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소식을 주고받고, 필요한 것을 사고팔고 하면서 교류하던데 나도 그걸 통해 산내 소식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더라고. 그런 방식도 나름 좋은 것 같아요.

 


| 마을에 살면서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앞으로 살면서 이 마을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여기서 살면서도 직장은 아니더라도 경제 활동은 죽 해왔어요. 초기에는 병원노조 활동가도 겸했으니 수입이 좀 있었고. 요즘에는 국민연금과 노령연금 얼마 안 되지만 그걸로 살아요. 남편도 여기저기서 일하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큰돈 쓸 일을 줄이면 되니까. 나름 살만해요. 마을에서는 ‘그래’ 활동하는 거 말고는 요가랑 국선도를 하고 있어요. 첨엔 디스크 때문에 요가를 시작했는지 지금은 회원들을 가르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그러다 보니 일주일 내내 소소하게 일정이 꽉 차 있네(웃음)

 




요즘 들어 노후를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이리저리하고 있다는 상은님에게 자연 놀이터 ‘그래’와 요가와 국선도 모임은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구성원으로서의 제 몫을 하는데 큰 버팀목이 되어 준 작은 공동체이다. 몸을 돌보고 마음을 살피고, 부지런히 키를 낮춰서 숲과 나무와 개천을 들여다보는 상은님의 간결한 하루하루가 앞으로도 즐겁게 얽히고설키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계절도 같이 울창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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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이덕임

살 곳을 찾아 지구 곳곳을 떠돌다 2005년에 지리산 산내에 정착했다.  지금까지 약 30여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텃밭과 꽃밭 가꾸기, 이웃과 산책하기를 본업만큼 좋아하는 뼛속까지 시골 생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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