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만사X지리산]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괜찮아 - 로컬 오지라퍼 기획자, 양지영


어떤 분야에서 할 만큼 해본 사람들이 뭉쳤다. 이곳에선 쉴 새 없이 톱니바퀴가 돌아갈 것 같지만, 의외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은 느슨함이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마음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자’는 한껏 늘어진 태도로 변했다. 식물공방, 카페, 바느질 공방을 품은 하동의 유니크한 문화복합공간, ‘마을공방 두니’의 이야기다. 편안함과 활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곳에선 한 달에 한 번 하동 주민들의 놀이터 ‘빨간무마켙’이 열리고, 최근엔 취미로 하는 독립서점 ‘이런책방’까지 개업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느슨함이 무색할 정도로 일이 끊이지 않고 벌어진다. 속도보다 꾸준함을 선택한 그들이 일으키는 지역의 변화는 산을 내려가는 등산객의 발걸음처럼 조심스럽게 바지런하다.


일 벌리기를 좋아하지만 지금은 한량처럼 살고 싶다는 양지영은 ‘이런협동조합’에서 잡일을 담당하는 ‘대표 대표’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하동 이주 후 4년간 기획자로서 밤낮없이 일만 했던 자의 해탈한 모습이랄까. 그러나 어딘가에 진심인 기획자의 여유와 반짝임은 숨겨지지 않는 법.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믿는 양지영은 분명 누군가의 영감이 되기 위해 어디론가 나아갈 것이다. 언젠가 충전될 양지영의 에너지가 하동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궁금해졌다. 그곳이 어디든 그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이다.


  






Q. 스스로를 로컬 오지라퍼(오지랖-er)라고 소개하시는 영상을 봤어요. 자신을 소개한다면 어떤 정체성으로 소개하고 싶나요?

사실 좋게 말해서 오지라퍼인 것 같아요. 제가 지역에 살면서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느끼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미미하더라도 타인과 지역사회에 아주 작은 변화, 작은 영감이라도 주고 싶어요. 도시 살 때처럼 인구수에 포함되는 한 명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일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Q. 내가 나 답게 살기도 어려운 세상이잖아요. 사회에 작은 영향이라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하동 오기전 제가 산청에 살 때 너무 심심해서 친구와 함께 청년 커뮤니티를 함께 만들었어요. 커뮤니티를 만들고 나니 사람들이 모이고, 없던 것이 생겨나고 변하면서 제 삶의 질이 좋아지는 걸 느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남이 좋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몸소 체득하는 과정이었어요.

하동으로 와서는 로컬 공정여행 회사에 다니면서 이 과정을 일로 만드는 경험을 했어요. 일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으로 배웠어요. 그러니까 ‘지역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마음먹게 된 것 같아요.


Q. 자신의 일로 지역민들의 변화를 느꼈던 순간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이전 직장에 다닐 때 마을 어르신들 자서전 만들어드리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지역 복지관의 치매 예방 사업이었는데, 약 4년 동안 어르신들 60명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사진과 글을 편집해서 개별 자서전을 만들어드리는 일이었어요.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쓴다는 게 그들의 문해력이나 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다만 어렵게 살았던 당신들의 인생을 끌어내는 과정이 힘들었는데, 어느 하나 값지지 않은 인생이 없더라고요. 이걸 이성적인 일로만 대할 수는 없었고 감정적으로 소통하면서 어르신들과 연결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정말 많이 배웠고 제가 어르신들의 인생을 그렇게 다 훔쳐봤는데 보답이라도 하고 싶어서 사업 마무리 때 어르신들에게 손편지를 써드렸어요. 그만큼 보람 있었어요.

제 연령대는 ‘고향이 없는 세대’라고 생각했는데 하동에 아는 어르신들이 많이 생기니까 하동이 고향이 된 것 같아요. 지금도 어르신들께 한 번씩 전화하면 되게 좋아해 주시고 부둥켜안아 주시는데, 그런 건 처음 맺는 종류의 관계였어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넘어서 내가 지역 안에서 존재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커뮤니티의 물결을 타고 하동으로


Q. 청년커뮤니티를 조직했던 경험이 지영 님의 삶에 적지 않은 변화를 준 것 같아요. 산청에서 청년커뮤니티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제가 취업 준비하던 때에 부모님이 산청으로 귀촌하셨어요. 제가 뭘 할지 맥락을 못 잡고 방황하던 시기였는데, 몸이 안 좋아지면서 부모님 따라 산청에서 조금 쉬기로 했어요. 머리 비우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갔는데 거기서 못 나온 거죠. (웃음)

산청에 처음 갔을 땐 하루에 말 한마디 안 하는 날도 있었어요. 동네에도 거리에도 사람이 너무 없었거든요. 부모님도 직장생활 하시다 보니 낮엔 저 혼자 집에 덩그러니 있는 시간이 많았고요. 그러니까 너무 말하고 싶고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군청 농업기술센터의 사무 보조 일을 구했는데, 거기서 우연히 농촌 4-H모임을 소개받아서 친구 한 명을 만나게 됐어요. 그 친구랑 연말에 만나서 내년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그랬어요. “내년엔 책을 100권 읽겠다.” 마침 그 친구도 책을 좋아한대서 “그럼 둘이서 독서모임을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한 모임이에요. 그때는 로컬 커뮤니티도 없었으니까 터미널에 벽보 붙여서 홍보하고요. (웃음) 그렇게 농부, 영화 제작자, 직장인, 취준생까지 각자 직업이 다른 네 명이 모여서 시작한 거예요. 

근데 저희가 한 번 만나면 4~5시간 넘게 독서모임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정말 재미있었고 매주 독서모임이 기다려졌어요. 한 주에 책 한 권씩 읽어도 좋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서 저희 모임에 관심 가져주시고 모임을 도와주겠다는 분들도 생겨났어요. 덕분에 아지트도 만들고, 꽃꽂이도 하고, 영화도 봤어요. 

1년간 모임을 유지하다 보니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너무 재밌어서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던 차에 하동에 이런 걸 할 수 있는 회사를 알게 된 거죠.


Q. 취업 준비하셨을 때는 도시의 기업을 열망했던 거 아닌가요?

그런 건 아니었어요. 아무런 컨셉이 없었어요. 공부를 하다 인생의 방향을 살짝 잃었던 타이밍에 완전히 새로운 게 들어온 거죠. 다른 길로 너무 잘 들어섰다 싶어요. 저는 너무 흘러가는 대로 왔네요... 


Q. 흘러가는 대로 올 수 있었던 건 사실은 엄청난 능력자이기 때문 아닌가요?!

아니요. (웃음) 저는 제가 한 선택에 후회를 안 하려고 해요. "이게 맞아!" "역시 나쁘지 않았어!" 하면서요. 저는 자기합리화에 능합니다. (웃음)




‘두니플리마켓’에서 ‘이런책방’까지


Q. 식물공방, 책방, 카페, 농산물 판매까지, 마을공방두니는 복합문화공간처럼 느껴져요. 마을공방은 어떻게 열게 되었나요?

정확히 제가 연 것은 아니고 기존에 여기서 활동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 퇴사를 앞둔 시기였어요. 전 직장인 공정여행 회사도 열심히 일했던 곳이었고 애정이 너무 많았던 곳이라 퇴사 과정에서 정말 힘들었는데, 여기 선생님들에게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협동조합이라는 게 때로는 너무 지치고 힘든 일인데도 이분들은 이 공간이 지역사회에 어떤 공간으로 자리 잡겠다는 포부도 없이 이렇게만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계셨던 거예요. 그런 마음이 좋아 보여서 저도 합류하게 됐어요.

합류 후에 이 장소에 놀다 보니 좀 더 많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생겼어요. 그럼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시도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을 만들자고 했던 마음이 ‘이런책방’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이전에 선생님들이 공간을 꾸려 오셨던 게 시즌1이라면, 다양한 행사기획으로 사람들이 자주 놀러 오는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했던 게 시즌2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당근마켓을 본뜬 지역마켓, ‘빨간무마켙’도 진행 하고 계시죠?

제가 합류하기 전에도 선생님들이 ‘두니플리마켓’을 열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리뉴얼을 계획했어요. 이 행사에 마켓 운영방식이나 지역 문제를 심각하게 녹이지 말고 별다른 컨셉 없이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노는 날’로 하자고 했어요. 사실 판을 크게 키울 수도 없지만 만약 판을 키운다 해도 일하는 사람들은 즐기지 못하고 힘들고 괴롭단 말이죠. 

그래서 빨간무마켙에서는 물건을 사고 팔기도 하지만, 여름엔 물총놀이와 워터밤 파티, 가을엔 뱅쇼 마시면서 영화보는 시간도 가졌어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물품 거래는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기획한 대로 주민들이 모여서 노는 날이 됐어요. 지금 빨간무마켙은 ‘마켓’의 가치를 앞에 세우는 게 아니라 ‘모여서 노는 날’로 포지셔닝 한 다음 지역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협동조합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기획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이런협동조합 멤버들은 다들 협동조합을 해본 경험이 있고, 실패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협동조합을 시작할 때 딱 두 가지만 약속했어요. 하나는 절대 직원 쓰지 않는다, 우리가 한다. 나머지 하나는 사람을 잃을 바에 일을 벌리지 말자. 이렇게 두 가지만 약속하고 시작했어요. 왜냐하면 이게 가장 쉬운 방법이거든요. 협동조합을 시작하면 결국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에 저희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돈을 우선시하지 않고 각자 먹고 사는 일은 각자가 책임지자고 했어요.

협동조합이라는 게 참 어렵지만 저희가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목적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각자 하는 일에서 스스로 더 발전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조합원들의 도움을 받자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같을 때는 공동으로 같이 하자고 했던 것. 이런책방을 열게 된 건 두 번째 경우인 거죠. 책방에서도 수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재밌는 취미, 값비싼 취미라 생각해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지역 서점이 지역에 임팩트도 줄 수 있고요. 이걸로 또 재밌는 일이 파생될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Q.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협동조합을 꾸려 가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람 때문에 너무 다들 아팠어요. 협동조합이 어려운 구조잖아요. 다들 경험이 있어서 협동조합을 시작할 때 일을 벌리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나 운영하면서 경계해야 할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했어요. 그래서 운영 문제에서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골에서 청년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Q. 지영님은 귀촌 이후에도 항상 일을 해오셨어요. 지역을 살면서 직장을 다니는 청년들이 항상 궁금했는데, 시골에서도 꾸준히 정규직 일을 하기로 선택하셨나요?

최근에 “청년들이 로컬에 이주하고 싶다면 뭐가 중요한가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직장인으로 지역살이를 시작해서 4년동안 있었잖아요. 너무 안전한 바운더리를 갖고 시작한 경우라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어요. 제가 4년간 회사생활을 한 것이 다행이었고, 지역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반과 사람들을 얻었던 것이 퇴사 이후에도 이곳에 뿌리내릴 수 있는 힘이었거든요. 그게 없었다면 좀 힘들었지 않았을까요? 엄두를 못 냈을 것 같아요. 너무 야생이니까… 정해진 일도 없고 문화권도 달라서 색깔이 뚜렷한 지역문화에 어떻게 섞여야 할지도 몰랐을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퇴사 이후에 다양한 일을 제안해주신 분들이 있었어요. 제가 재밌는 일이라고 판단이 되거나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걸 마다 않고 하기로 결심을 했죠.


Q. 4년의 직장생활 이후에 번아웃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다시 뭐든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돌아서신 것 같아요. 그때 당시 마음은 어땠나요?

박살났었어요. (웃음) 장소만 시골이었지 일은 도시처럼 했던 것 같아요. 평일엔 10 to 10 근무하고 주말도 거의 없었지만, 당시에는 일에 푹 파묻혀 사는 게 너무 좋고 너무 재밌었어요. 그게 제 삶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너무 헌신해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 큰 성인인데 생활도 엉망진창이고 밥도 챙겨 먹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내가 일을 아무리 잘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하는 허탈감이 오더라고요.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워야겠다 생각하면서 일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내려놨던 것 같아요.


Q. 어떤 일을 하더라도 비움과 채움의 순간이 반복되잖아요. 잘 비우기 위한, 또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한 지영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4년 동안 채우기만 해서 (웃음) 퇴사 이후엔 극단적으로 비우는 시간을 보내려고 했어요. 거기다 안 좋은 상황은 몰아서 온다고, 작년 연말에는 가족이 아팠어요. 극단적인 상황이 오니까 쉴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 강제로 쉬었던 1년이 살면서 처음으로 아무 생각없이 쉬어 본 때였어요. 그리고 지금 함께하는 이런협동조합 선생님들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회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기획자로서 영감을 얻고자 하면 여행을 많이 다녀요. 사실 지난 4년 동안 공정여행사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여행이 너무 싫었거든요. 남들 좋은 일만 시키고 나는 어디 일로 여행을 가는 게 싫었는데, 일을 그만두고 여행 다녔을 때 너무 좋더라고요. 나도 다시 여행자가 됐구나 생각했어요.




지속가능하기 위한 삶의 밸런스 맞추기


Q. 요즘의 일하는 방식과 휴식의 밸런스는 어떻게 맞추고 계세요?

최근에 개인적인 일로 숙박업을 시작했는데, 일을 시작한 후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제가 객실 관리랑 청소까지 다 하고 있어서 아직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예요. 최근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몇 개인지 정리해봤는데, 요일별로 일을 나누려고 하니 불가능한 거예요. 정해지지 않은 일도 많으니까 흐름이 끊기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조금씩, 시간을 쪼개서 하는 방식으로 바꿨어요. 오전에는 객실 정비를 하고, 오후에는 책방 일과 요즘 맡고 있는 프로젝트 일을 하고, 퇴근하고 집에 가면 억지로라도 쉬는 시간을 만들어요. 스스로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요즘 개인의 가장 큰 이슈는… 객실 관리인가요? (웃음)

다행히 비수기로 접어들어서… (웃음)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건 생활의 밸런스 맞추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오래 하고 싶거든요. 지금 생활의 만족도가 되게 높고,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것도 너무 재밌는데, 재밌는 일만 하면 먹고 사는 일이 문제잖아요. 그나마 여기에선 조금만 몸을 쓰면 먹고 사는 일은 일정 부분 해결이 되니까 어떻게 지금의 방식대로 생활을 유지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Q. 시골에선 하나의 일만 해서 살아남을 수가 없잖아요. 그럼에도 가장 하고싶은 일이 있으면 어떤 것일까요?

요즘 저는 지금처럼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한량처럼 지내는 게 너무 좋아요. 제가 바라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요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적당한 관계를 이어 나가면서 사람들과 모여서 놀 궁리를 계속 하는 거예요.


Q. 하고 싶은 일과 생계를 유지하는 부분에서는 어떻게 균형을 맞추세요? 

요즘은 결국 책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제가 로컬 관련 회사에 있으면서 들었던 생각이 ‘개인적이거나 공공적인 무형자산을 파는 일이 거짓부렁 같다’는 거였어요. 그 마음에 싫증이 났어요. 정직하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원래 하던 일이 기획 파트인데, 어쩌면 저는 겉모습만 좋게 포장해서 판매하는 부류의 기획자일 뻔했다가 지금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잡아가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겉포장만 파는 일 보다는 내가 A부터 Z까지 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먹고 사는 일은 정말 고민인데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지역에서 필요한 존재로 남아있다 보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Q. ‘나는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드나요?

그러려고 노력해야죠. 그러려면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스탠다드가 도시의 것과는 다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굉장한 맥시멀리스트인 제가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도록 삶을 단순화시키고 정제해야겠다 다짐하고 있어요. 지금이 붕붕 떠 있는 상태라면, 입자가 싹 가라앉았 때는 그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곁가지를 쳐가면서 애를 써야죠. 




부지런한 ‘한량’이 변화를 만든다

 

Q. 스스로 활동가라고 한다면 어떤 부류의 활동가라고 생각을 하세요?

활동가라고 하기 좀 부끄러워요.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활동가 대회가 있을 때 ‘내가 가도 되는 건가?’ ‘내가 사회에 무슨 영향을 주고 있지?’ 같은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자기 지역에 관심 갖고 있는 사람이면 충분히 활동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요. 

제 경우엔 여기에서 시간 보내면서 한량으로 머물렀던 게 제 활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는 저희가 이 공간을 활성화시키면서 하동 녹색당이나 하동 참여자치연대와도 연결이 됐어요. 운동회나 영화제, 장터, 작은변화지원센터 행사도 하게 되고요. 이런 일들은 저희가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Q. 자신의 활동으로 인한 개인의 변화 혹은 주변의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일을 하는 도중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다 끝나고 나서 복기해 보면 변화가 많았던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 변했다고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개인적으로는 예전엔 제가 좀 뾰족했다면 지금은 둥글둥글해진 느낌?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줄어들었고 사람을 미리 판단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걸 뭐라고 하든 저는 예전에 저보다 지금 제 모습이 더 마음에 들어요.

지역사회 변화는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회사에 소속되어서 일했기 때문에 제가 했던 모든 일이 스스로 했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단지 지역의 어려운 일들을 제 능력만큼 풀어보려고 했던 노력들이 좋은 영향으로 번지는 걸 볼 때 보람이 있었어요. 


Q.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하동에 녹차 관련된 일을 많이 했거든요. 저는 하동이 차 시배지인 줄도 몰랐는데, 지역 고유의 문화가 많이 사라진 요즘에도 하동은 여전히 차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올 만큼 좋았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좋은 걸 사람들에게 좀 알릴 수 없을까, 하동 차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하동에 200개가 넘는 차 생산 농가가 있거든요. 농가마다 차 맛이 다르고 다 나름의 헤리티지가 있는데 이걸 세상에 알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게다가 대부분 벌크 포장이라 단가가 높아서 여행객들이 선물용으로 차를 구매하기도 쉽지 않은 상태였고요.

그래서 ‘하동 차 피크닉 세트’를 개발했는데, 그 이후에 젊은 커플여행객들이 피크닉 세트를 들고 하동 차밭으로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 목표는 차 문화를 알리고 싶어서 티 코스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차 농가마다 고유의 개성을 살린 티 샘플러 패키지를 개발해서 팝업 스토어를 열고, 차 마을의 스테이 프로그램 개발하는 것까지 하고 나왔어요.


Q. 즐기면서 했다는 게 느껴지네요. 마을에도 정말 좋은 일이고요.

재밌어서 했어요. 차 스테이 경우엔 마을에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건물을 저희가 직접 리모델링해서 숙소로 바꿨거든요. 하동 화개면에는 숙소가 많은 것 같지만, 시설 구비나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여행객들이 편히 묵을 숙소는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마을의 차 농가와 연계해서 자연스럽게 숙박 손님에게 차를 소개하고 농가를 방문해서 차담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니까 마을에서도 좋아하셨죠. 저희 프로그램 안에 마을 재생이나 숙박 문제 같은 이슈가 포함돼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되게 진지하게 임했고, 지역에도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Q. 혹시 개인적으로 더 벌리고 싶은 일은 없으세요? 

제가 일을 거뜬히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가 될 때까진 그만하고 싶어요. 지금은 이런협동조합에서 재밌는 일을 벌리는 정도…? 아, 내년에 이런책방 중심으로 북페어 하고 싶어요. 보통의 북페어는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저는 책 읽고 책방 운영하느라 거북목이 된 출판업자, 책방 주인들 모아서 ‘거북목 북페어’를 열고 싶어요. 책 읽고 쓰고 만드는 분들 다 거북목이잖아요. 그날만큼은 아이들처럼 몸을 깨우는, 참여자가 즐거운 북페어로 만들고 싶어요.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서브 참가자로 두고요.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괜찮아


Q. 지금의 하동살이는 행복하고 만족하시나요? 어떤 부분이 좋았나요?

저는 완전히 100%. 저는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 100% 확신해요. 하동살이가 좋았던 제일 큰 이유는 밤이 깜깜한 거였어요. 시골에 살면 밤이 깜깜하다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도시에서는 깜깜한 밤에 잠을 자본 적이 별로 없더라고요. 여기서 자는 잠이 엄청 귀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인지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좋아요. 도시에선 휩쓸려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고, 왜 하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게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Q. 하동에 오는 활동가 혹은 대안의 삶을 꿈꾸며 오는 분들에게 지영님은 어떤 이야기를 가장 해주고 싶나요?

도시와 이곳을 비교해봤을 때 내가 삶에 기대하는 정도, 만족하는 기준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롭게 오는 분들이 어느 정도 마음을 열지 않고서 지역을 느끼면 당연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마음을 열 준비가 됐는가에 대해서 다시 고민을 해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 지역에 가장 도움되는 방법은 개개인이 여기에서 행복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큰 뜻을 갖고 오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 같아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오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커뮤니티가 주는 힘은 산청에서도, 하동에 와서도 느끼셨어요. 사람들과 연대해야겠다는 말씀도 해주셨고요. 지역에서의 연대는 지영님에게 어떤 힘을 주나요?

로컬에서 개인으로 활동하는 일은 너무 너무 힘들어요. 모여서 일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혼자보다는 같이 하는 쪽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측면에서 무조건 이득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희 책방 같은 경우도 모든 멤버가 해보고 싶었지만, 책방은 돈 벌기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망설이던 차에 ‘어차피 돈 안되는 거 같이 해보자’ 했거든요. 어쨌든 내가 이 삶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요. 그랬을 때 필요한 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용기’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이걸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책의 목차에 비유한다면 지금 어느 정도 온 것 같나요?

감사하게도 회사에 있으면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강연의 주제가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괜찮아’ 였는데, 저는 정말로 이때까지 계획을 한 적도 없고 앞으로 할 생각도 없어요. 왜냐면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게 너무 재밌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던 거겠죠. 그렇지만 흘러가서 도착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즐길 수 있으면 실패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후회 잘 안 한다고 했잖아요. ‘이 정도 했으면 됐다’ 하고 만족하고 있어요.

사실은 앞으로도 계획을 세우고 싶지 않아요. 원하는 어떤 모습이 있지도 않고요. 저는 오히려 제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여태까지 인생의 목차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오히려 예측하지 못한 일들을 겪을 때 성장하는 느낌도 들어요. ‘성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여기에서 겪는 경험들은 위를 향한 게 아니라 폭이 넓어지는 성장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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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승현
지리산 귀촌 6년차,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삼아 시골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 주변 존재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리산 귀촌인 인터뷰집 《어디에나 우리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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