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인지하고 더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명히 더 좋은 선택지도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잖아요. 나를 옭아매던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행복과 사랑을 가득 느끼게 해주는 그런 선택지 말이에요.”
먼지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mjoo07) ‘I am Will’ 중
어느 날 ‘먼지’라는 사람이 하동으로 이주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평화교육진행자’이자 숲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이라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지리산권에서 열리는 행사에 어디에나 먼지가 존재했다. 참가자로 만났는데 어느새 여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채로 말이다. 언제나 활짝 웃으며 행복 에너지를 뿜어대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하동에서는 ‘햇살요가’와 ‘산책서원’을 운영하며 다른 이들이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짝꿍 ‘이르’와 함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좋은 일로 확장하도록 돕는 워크숍 ‘소작단’ 활동도 시작했다. 그렇다면 먼지가 발견한 먼지는 어떤 사람일까?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진짜 나’를 알게 해주는 사람, ‘활동가를 돕는 활동가’ 먼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활력공간 빈둥에서 만난 활동가 먼지
Q. ‘먼지’라는 별칭은 어떻게 사용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많은 사람들이 먼지라는 별칭에 대해서 “내가 아는 먼지가 맞냐” 하시면서 궁금해하시더라고요. 20대 중반 때 한창 제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때가 있었어요. ‘내가 도대체 누구지?’ 하는 고민이 심각하게 들더라고요. 그 해답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찾을 수 없어서 마음이 붕붕 뜰 때 문득 내가 우주의 먼지 같다는 생각에 꽂혔어요. 또 다른 의미로는 내가 도무지 ‘뭔지’ 모르겠다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먼지로 지내고 있어요. 요즘 생각해봐도 우주의 먼지는 맞는 것 같고요. 두 번째 내가 뭔지에 대한 답은 조금 알 것 같아요.
Q. 요즘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루에 일상 루틴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저는 주로 아이들, 청소년 교육과 요가 안내를 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교육’이라는 테마로 묶여요. 제 일정은 주로 수업 준비-수업-수업 준비-수업의 반복이에요. 이렇게 일주일의 큰 계획은 잡혀 있고요. 하루의 시간을 보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만의 요가 수련 시간을 보내고, 어제의 설거지나 못다한 집안 정리를 하고, 오후나 저녁에는 대부분 수업 준비와 수업, 나머지 시간은 쉬고 있어요.
Q.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네요.
제가 사실 파워 계획형이라서요. (웃음) 예를 들어 4학년 청소년 수업이 있으면 학습 시기에 맞게 워크지를 만들고, 이걸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낼 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구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1시간 수업이면 적어도 5배 넘게 시간을 쓰는데, 그렇게 해야 1시간을 초대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수업이 많다 보니까 자연스레 수업 준비에도 시간이 많이 쓰여요.
산책서원 수업. 한달에 한 번 책거리를 하는데 아이들은 이 날만을 기다린다.
아이들의 아픔을 교육으로 풀어낼 순 없을까?
Q. 하동으로 이주하자마자 아이들과 청소년 수업을 시작했죠. 활동 지역을 서울에서 하동으로 바꾼 이유가 있나요?
서울에서는 청소년 교육기관에서 생태 인문학 교육을 했는데 일을 할수록 제가 배운 것,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어 졌어요. 좀 더 단순하고 느린 방식대로, 그리고 내가 뭔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환경에 놓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서 왔어요.
그래서 작년까지는 하동 방과 후 아카데미에서 담임 선생님으로 일을 했는데, 여기는 교육보다는 돌봄의 영역인 것 같았어요. 제가 담임 선생님으로서 가르치는 일 보다는 외부 강사님을 섭외하거나, 급식을 나눠주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일을 계속하기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너무 감사하게도 저희 집에 공간이 생겨서 2학년과 4학년, 중학생들이 한 주에 한 번씩 오고 있어요.
이 시간이 너무 좋은 게, 제가 상상해오던 교육 방식을 아이들과 같이 맞춰볼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책 읽기 수업도 연극식으로 해본다든가 인형극을 해보면서 제가 배웠던 방식을 그들과 함께 실험해 보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해요.
Q. 자신이 가진 걸 나누는 건 기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운 마음도 생길 것 같아요. 먼지가 가르치는 사람,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성향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저는 어떤 걸 먹고 너무 맛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먹어보라고 하고 싶거든요. 제가 느낀 경험이 진짜인 것 같을 때 “이렇게 살면 너무너무 기뻐!” “이렇게 하면 더 웃을 수 있어!” 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혼자 하는 게 너무 재밌고 빛날 수도 있지만 저 같은 사람은 말하는 게 편해서 말로 풀어내는 일이 좋았어요.
Q. 아이, 청소년에게 다가가고 용기내는 과정에서 ‘혹시 내 의견을 너무 강요하는 건 아닐까?’ 라는 부담이 든 적은 없으셨어요?
그것 역시 늘 갖고 있는 고민이긴 한데요. 예를 들면 요가 수업에서 몇 년 전에 제가 했던 말과 지금 한 말이 다를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 저는 솔직하게 “그때는 거기까지 밖에 몰라서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지금 와 보니 아니었습니다.” 하는 것도 진실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빈틈없이 완벽해지고 나서 얘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요. 그래서 순간순간의 진실됨을 선택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존경하는, 대안교육을 이끌었던 선생님도 자신이 했던 과거의 교육방향이 다 옳지는 않았다고 인정하시는 걸 보면서 진실된 마음을 많이 배우게 됐어요.
Q. 빈틈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만나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지점은 어떤 것인가요?
사실 아이들을 만나고 오면 늘 가슴에 뭔가 박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요. 예를 들면 초등학교 시기에는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서로 상처주는 말을 하는 때가 비일비재해요. 청소년 시기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수업하면서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그 상처가 쌓이고 쌓이면서 너무 마음 아팠어요.
아이들이 조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상처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선생님들이나 주변 어른들이 도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것도 참 어려운 문제긴 하잖아요. 상처주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의 경우에는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아버지가 술을 너무 많이 먹는다든가, 가정에서 돌봄의 손길이 부족하다든가, 양육자의 학업에 대한 압박이 너무 심하다든가. 이런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숙제처럼 남아있어요. 그런 걸 볼 때마다 좋은 어른들이 나서서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면 좋겠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생각하면 많이 아파요.
그런 걸 제외하면 어린이, 청소년들이 워낙 순수하고 맑아서 저에게 에너지가 되죠. 숙제를 내면 약속 꼭 지켜서 해오고, 상상력이 풍부한 말을 들을 땐 저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되기도 하고요.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이 되면 잊어버리는 감성이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의 아픔만 잘 닦아주면 너무너무 예쁘게 자랄 거라 생각하고 그 부분에 초점을 두고 계속 만나고 있어요.
Q. 저도 청소년 활동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그들의 일상 안에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했거든요.
저도 감정적으로 크게 다가오는 문제는 돌봄 영역에 있어요. 아이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건 아프고 힘들지만,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너무 깊게 빠지는 게 제 약점이거든요. 그래서 첫 터치는 돌봄이지만 방식은 교육으로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저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요.
이런 과정이 저에게도 배움이 돼요. 아이들 앞에서 휘둘리지 않고 “얘들아, 아무리 아플지언정 너가 지금 이 시기에 발달돼야 되는 것은 이거야.” 라는 식으로 올바르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특정 시기에 발달되어야 하는 것들을 꾸준히 배우려고 해요. 게다가 저는 교육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어떻게 하고, 교육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공부해야 하고요. 꾸준히 저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Q. 활동하면서 먼지의 에너지도 오르락 내리락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해가나요?
맞아요. 최근에 그런 순간이 온 것 같아서 어제도 10시간 정도 잠을 잤어요. (웃음) 최근에 일이 좀 많아서 그런지 몸이 반응하더라고요. 저에게는 많이 자는 것도 중요했고, 또 하나는 내가 이거를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 다잡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았어요.
예를 들어 교육이라 해도 어린이, 청소년, 성인, 활동가 교육처럼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는데 ‘도대체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한번 다잡아보고 ‘내가 이걸 위해서 하고 있었구나’ 하고 해답을 찾으면 계속해볼 수 있는 힘을 얻고, 그게 아니라면 ‘버리자!’ 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편이에요.
활동가들을 위한 요가
교육의 시작은 ‘진짜 나’를 아는 것부터
Q. 착실하게 블로그에 기록을 해온 것을 봤어요. 기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고등학교부터 20대 초반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썼어요. 저에게는 일기를 쓰는 것이 치유의 영역이었거든요. 기숙형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저는 정말 뛰어난 모범생이었어요. (웃음) 그런데 돌아보면 과거의 저는 뭔가를 많이 숨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입시와 공부의 압박 안에서 마음이 어려웠는데 잘 드러내지 못한 거죠. 그래서 일기장에다가 시를 쓰곤 했는데, 저희 학교에는 되게 똑 부러진 공부쟁이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걸 친구들한테 보여주면 “야, 무슨 이런 걸 쓰고 그래~” 같은 피드백이 돌아왔어요. 그래서 기숙사에서 혼자 있을 때 랜턴 켜 두고 일기를 썼어요. (웃음) 그게 나를 위해서 기록하는 습관이 된 것 같고,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블로그로 이어졌어요.
그런데 우리가 기쁠 때는 일기 잘 안 쓰잖아요. (웃음) 저도 어느 정도 지나니 쓰는 일에 대한 열정이 시들시들해지더라고요. 그럼 ‘나는 왜 기록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있어서 제 요가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이 있어요. “교사의 영역은 단순히 교실 안에서의 말뿐만 아니라 글을 통해서도 규정될 수 있다.” 이 말을 제가 이해한 바로는 내가 알고 있는 걸 상대를 대면해서 말로 알려줄 수도 있지만, 폭넓게 알려주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제 블로그의 글은 제 말투가 드러나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모두 담긴 글이예요. 변화를 바라는 지점이나 “이렇게 예쁜 것들이 있어요” 하는 경험들을 글로 알려주고 싶어서 꾸준히 기록하려고 해요. 일기처럼 자신을 위한 글쓰기는 쏟아내듯 적는데, 보여지는 글은 구성도 생각해야 하다 보니 요즘 글이 많이 밀려 있어요. 지금도 머리에 글감이 있거든요. 운전 중에도 이 에피소드를 어떻게 풀까 고민하면서 다니고 있어요. (웃음)
Q. 먼지가 기록해온 블로그 글을 보면 내면에서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 내면의 이야기를 포착하는 데 진심인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그런 방식은 어떻게 삶에 적용되었나요?
20대 초반에 방황하고 있을 때 만났던 게 요가였어요. 저는 ‘라자 요가’라는 명상 요가를 하는데, 저에게 요가는 ‘진짜 네가 뭐냐’에 대한 저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나’ 라고 했을 때 사회적으로 부여하는 역할이나 지위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나는 뭘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을 하는데, 저는 그 공부가 좋았고 이제 그것이 있다고 믿고 공부하다 보니까 좀 단단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진짜 자아를 일깨워주려고 애쓸 때 기쁘고, 그 마음의 현상으로써 어린이 교육, 청소년 교육, 요가 학원, 이야기 모임을 열고 있어요. 그 모든 일들을 대할 때 ‘나는 이 시간동안 이 사람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끌어가면 웬만한 일들은 수월하게 끌고 갈 수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를 벗겨내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다른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또 누군가에겐 공부를 추천할 수도 있고요. 뒤에서 지켜보다가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알맞게 탁탁 매칭해줄 때 어떤 짜릿함이 느껴져요.
Q.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들이 서로 부딪힐 때도 있나요? 예를 들어 나는 채식을 선호하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논비건 친구와 밥을 먹는 상황 같은 일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그런 것들을 사회적인 가치라고 하죠. 저 역시 사회적 가치들을 처음 접했을 땐 그것들이 저에게 엄청나게 울림이 컸기 때문에 그 가치를 기준삼아 제 안에서 종종 사람들을 재단하곤 했어요. 어떤 상황에서 속으론 ‘쟤는 왜 저래?’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엔 다양한 관점이 단 하나를 말하고 있을 것인데 내가 분절된 가치로 타인을 재단하는 건 이기적이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할 수밖에 없는 맥락이 있을 텐데, 이걸 어떻게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을지 관점을 바꿔보면 중요하게 느껴졌던 갈등의 순간이 중요하지 않아져요.
예로 들어준 같이 밥을 먹는 상황에서 상대가 제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저는 채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거나 보여줄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안 먹힐 것 같은 사람이면 차라리 그냥 같이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함을 더 나누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웃음)
결국 유연한 방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수업 준비할 때도 10분 단위로 시간을 굉장히 빡빡하게 계획하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면 계획은 다 잊어버리고 완전한 즉흥형이 돼 버려요. 아이들의 그날의 상태와 기질이 모두 다르고요. 만약에 한 아이가 선생님한테 혼나서 속상한 상황에서 제가 준비한 걸 하자고 하면 안 되잖아요.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대처하되 내가 알려줘야 하는 그 단 하나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했으면 그날의 수업은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를 돕는 활동가
활동가를 돕는 활동가
Q. 먼지가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어떤 활동가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저를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보다는 제 공간에서 아이들을 만나거나 요가 안내를 하는 게 더 편하긴 해요. 제가 구성할 수 있는 게 더 크니까요. 함께하는 활동도 해봤지만, 지역활동가로서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고 활동하는 건 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작업이더라고요.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활동가로서 제3의 자아를 꺼내는 이유는 다른 활동가분들이 기쁘게 그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활동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에요. 전장 같은 일선에서 활동하는, 멋진 활동가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분들을 볼 때마다 저는 너무 소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잃지 않고 활동하셨으면 좋겠다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정말로 이게 하고 싶은 지 들여다보게 한다든가 ‘이게 가장 최선의 방법일까요?’ 물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짚어볼 수 있게 하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어요. 저는 지역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치면 지쳤다고 인정할 수 있게 돕는 일을 계속할 것 같아요.
Q. 조만간 열리는 ‘소작단’ 프로그램이 떠오르네요. 소작단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소작(小作)이 ‘작은 일을 꾸리는 사람들’이예요. 같이 사는 짝꿍인 이르와 함께 기획한 프로그램인데요. ‘이르’는 ‘3만엔 비즈니스’라는 개념을 배운 비전화제작자예요. 이르도 저와 같이 있었던 8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해왔고 그렇게 각자의 심지가 생겼는데,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기획한 일이예요. 2에서 하나가 더 늘어나면 3이 되고, 4가 되고 5가 되잖아요.
소작단에서 역시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정리 정돈하는 거였어요. 공간 정리뿐 아니라 생각 정리하는 걸 잘하는 편이라서 일에 대한 가치관을 찾아보고,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중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그렇다면 그걸 관통하는 하나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워크샵이에요. 이르도 3만엔 비즈니스를 한국식, 지역 버전으로 변형해서 만들어서 소개할 예정이에요.
Q. 어떤 기대를 가지고 만든 기획이에요?
지역에 있다 보니 여기엔 기술과 능력이 대단한 친구들이 많아요. 돈을 벌어야 하는데 지역에서 직장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아서 대부분 자영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개중에는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게 뛰어난 친구들이 조금 더 내적인 확신을 갖고,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통해서 자기도 즐겁고 지역도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싹을 본 거죠. 이 워크샵을 통해서 참가자들이 ‘내가 이래서 이 일을 하고 있었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소작단' 활동
온전한 환대는 사람을 춤추게 한다
Q. 하동에 오신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먼지의 지리산권 활동량은 어마어마했던 것 같아요. 오자마자 지역의 다양한 행사와 모임과 연결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네요. 정말 여기저기 다녔어요. 지역에 사람이 없었잖아요. 제가 열심히 행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겠다 생각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하동뿐 아니라 지리산 지역 어디를 가더라도 큰 환대를 받았어요.
하동 이주 후에 많은 활동가분들이 저에게 “왠지 이거 잘할 것 같은데?” 하면서 일을 시켜주셨어요. 받은 일을 하면서 ‘나 할 수 있었네!’ 느끼고 계속 해보게 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저를 잘 이어주신 것 같아요. 저는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건 타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시켜 주셨으면 제가 어디서 이렇게 진행을 했겠어요. (웃음)
그리고 지리산권 활동을 다니는 게 너무 환기가 돼요. 하동에만 있으면 하동 지역 이슈에만 매몰되는데 다른 지리산 지역을 갔을 때 우리 지역문제의 해결법을 찾기도 하고 비슷한 주제로 다른 사람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좀 가벼워져요.
Q. 일을 제안 받았을 때 쉽게 긍정적으로 수락하는 에너지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왕 하는 거 한번 해보자, 일이 또 언제 들어오겠냐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일단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지 않고 다 해봤어요. 웬만한 건 다 오케이 했던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나를 단련한다는 마음으로 쭉 달려오다 보니 지금은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고 어떤 걸 하기 어려워하는지 보이는 시기인 것 같아요. 내년에는 어디에 중점을 두고 활동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태예요.
인터뷰 현장 사진
시골에서 동네 친구를 만들 수 있다고?
Q. 보통 사는 기존의 살던 곳에서 어렵거나 에너지가 떨어질 때 지역 이주를 선택하잖아요. 먼지의 경우엔 어땠나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더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이동을 했어요. 왜냐하면 서울에 있을 땐 좁은 아파트의 정해진 방, 정해진 이동 수단, 정해진 일 안에서 같은 루틴으로 생활했는데 그러다 보니 더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어요. 그래서 하동에 오자마자 일을 벌릴 수 있었던 것 같고, 비교적 올해는 저에게 여백이 많은 해였기 때문에 재밌게 하다 보니 일이 많아진 것 같아요.
Q. 서울에서 힘들었던 부분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들이 있었나요?
예를 들어 생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바깥에서 재밌게 놀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비해야만 했고, 또 너무 많은 일이 동시에 벌어지니까 선택지도 많아지면서 어떤 걸 선택해야 할 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주거를 보면 아파트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망이 없다 보니 팍팍한 것들이 있었죠. 그리고 임금노동자로 일하면서 어떤 일을 기획할 때 형식적인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지점이 어려웠어요.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은데 참가자 정원을 반드시 채워야 하거나, 예산을 잘 지켜야만 실행되는 방식을 마주할 때 저는 언제나 다른 방식은 없을지 고민하던 사람이었어요.
Q. 서울에서 느낀 어려움이 하동에서는 어떻게 변화됐어요?
우선 마을 생활은 너무 재밌어요. 오가면서 인사를 나눌 수 있고 얼굴 보고 지내는 사이가 많아져서 좋아요. 요가원을 하면서도 오신 분들과 친해지고 가까워졌어요. 공부방도 그 관계망 안에서 시작할 수 있었고요.
친구 관계를 보자면, 하동 이주 초기엔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신중했거든요. ‘안 맞으면 어쩌지?’ 걱정을 안고 산책하면서 한 6개월 간 다른 또래들의 활동을 지켜보기만 했어요. 그러다 지역에 있는 또래 친구들이랑 자연스럽게 얼굴을 알게 되고 또 그 친구와 연결해서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새로운 관계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내가 서른이 되어서 새 동네 친구가 생겼다는 게 너무 재밌어요.
일에 있어서는 어쨌든 프리랜서로 살아가면서 내가 나를 관리하고, 홍보하고, 회의도 나 혼자, 회고도 나 혼자 해보면서 내가 가져가야 될 중심에 대해서 계속해서 되묻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내가 바라는, 내가 재미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방식에 대해서 즐겁게 고민하고 있어요.
Q. 하동 이주 후에 경제적인 고민은 없었나요?
일단 하동에서는 소비가 확실히 줄었어요. 서울에서도 워낙 쓰는 게 거의 없긴 했지만요. 개중에 가장 큰 소비가 월세였는데, 1/4 정도로 줄었어요. 그리고 여기에선 계절마다 계속 이웃분들이 뭘 주세요. 쌀을 주고 감을 주고 고구마를 주고… 하동에서 많은 돈이 들어가는 건 기름값 정도인 것 같아요. 경제적인 고민은 크게 없어요. 저축도 많이 하고 있어요! (웃음)
Q. 마음을 따라 온 하동에서 요즘의 마음은 많이 편안해졌나요?
‘햇살요가’와 ‘산책 서원’이라는 걸 시작한 지 1년 정도 돼 가는데 이제서야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한 해의 루틴을 돌면서 이게 정말 필요하구나, 나도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이대로 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리산 자락 야외 요가
넓고 거대한 세상에서 시작되는 작은 변화
Q. 다양한 활동을 해오면서 느꼈던 개인의 변화가 있나요?
나 하나가 정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도 하고, 되게 작은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알아가는 지점인 것 같아요. 지역에 살면서 책으로만 배웠던 것을 눈앞에서 경험할 때가 많았어요. 서울에서 공부할 때는 개념적으로 사회 문제에는 이런 것들이 있고 이렇게 해결하면 된다고 배웠는데, 지역에 왔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더라고요. 그럴 때 내가 우연으로 만들어진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고 세상은 정말 넓고 거대하구나, 그리고 내가 건드릴 수 없는 부분도 있구나 느껴요. 묵묵히 ‘잘 되게 해주세요!’ 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이 좁은 지역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정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떤 행사에서 제가 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큰 영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영향을 받은 상대방이 “너무 좋았어요.” 혹은 “저는 다르게 생각해봤어요.” 라고 피드백해주실 때마다 좀 더 좋은 생각을 갖고 살아야겠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다짐해요. 진짜 지역에 사는 것은 실질적으로 살아있는 경험을 하게 해줘요. 많이 배웠어요.
Q. 요가 수업 중에도 인상 깊은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최근에 면 소재지 복합문화센터에서 어머님들과 함께 12주 요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일하다 흙 묻은 옷으로 오셔서 서로 인사 나누고 재잘재잘 김장 이야기를 하시다가 제가 “자, 이제 시작합시다”하고 10분 명상으로 시작해요. 10분 후에 눈을 뜨면 어머니들이 조용히 박수를 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시면서요. 저는 그게 너무 감동적이에요. 저에게 요가는 자신한테 오롯이 집중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좋은 면들을 더 밝혀내는 작업이거든요. 저는 ‘어머님들’이야말로 대부분 자아를 잊고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님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매번 먹을 걸 주시고, 시장이나 카페에서 만나도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어서 좋아요. 단순히 저는 선생님, 당신은 수강생이라고 분절되는 관계가 아니라 이 모든 관계 안에서 제가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이웃이기도 하고 어른으로 존경할 수도 하는 통합적인 관계가 되어서 신기하고 좋아요.
면으로 찾아가는 요가수업
산책서원 수업(여름날 봉선화 물을 들이면서 글쓰기)
언젠가는 읽고 쓰는 삶으로
Q. 가장 되고 싶은 모습이 있나요?
만약 지금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세상이 덜 흉흉하다면, 눈 떴을 때 내가 기쁜 걸 할 수 있다면 저는 작가로서 많이 읽고 쓰고 싶어요. 정말 좋은 공간에서 소설 같은 걸 쓰고 싶다. 짝꿍한테 이런 말을 했더니 “그건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니라 사실 언제든 할 수 있는 건데…” 하더라고요. (웃음) 어쨌든 최종적으로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로망이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미하일 엔데의 『모모』 를 읽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청소년 때 읽었다가 최근에 청소년 수업하면서 다시 한번 읽고 있는데 새롭게 다가오는 지점이 많더라고요. 어른은 어른대로 ‘진짜 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고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또 다가오는 의미가 다를 것 같아요.
#하동 #경남 #지리산 #먼지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피플포체인지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
글쓴이 : 승현
지리산 귀촌 6년차,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삼아 시골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 주변 존재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리산 귀촌인 인터뷰집 《어디에나 우리가》를 썼습니다.
먼지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mjoo07) ‘I am Will’ 중
어느 날 ‘먼지’라는 사람이 하동으로 이주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평화교육진행자’이자 숲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이라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지리산권에서 열리는 행사에 어디에나 먼지가 존재했다. 참가자로 만났는데 어느새 여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채로 말이다. 언제나 활짝 웃으며 행복 에너지를 뿜어대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하동에서는 ‘햇살요가’와 ‘산책서원’을 운영하며 다른 이들이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짝꿍 ‘이르’와 함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좋은 일로 확장하도록 돕는 워크숍 ‘소작단’ 활동도 시작했다. 그렇다면 먼지가 발견한 먼지는 어떤 사람일까?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진짜 나’를 알게 해주는 사람, ‘활동가를 돕는 활동가’ 먼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활력공간 빈둥에서 만난 활동가 먼지
Q. ‘먼지’라는 별칭은 어떻게 사용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많은 사람들이 먼지라는 별칭에 대해서 “내가 아는 먼지가 맞냐” 하시면서 궁금해하시더라고요. 20대 중반 때 한창 제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때가 있었어요. ‘내가 도대체 누구지?’ 하는 고민이 심각하게 들더라고요. 그 해답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찾을 수 없어서 마음이 붕붕 뜰 때 문득 내가 우주의 먼지 같다는 생각에 꽂혔어요. 또 다른 의미로는 내가 도무지 ‘뭔지’ 모르겠다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먼지로 지내고 있어요. 요즘 생각해봐도 우주의 먼지는 맞는 것 같고요. 두 번째 내가 뭔지에 대한 답은 조금 알 것 같아요.
Q. 요즘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루에 일상 루틴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저는 주로 아이들, 청소년 교육과 요가 안내를 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교육’이라는 테마로 묶여요. 제 일정은 주로 수업 준비-수업-수업 준비-수업의 반복이에요. 이렇게 일주일의 큰 계획은 잡혀 있고요. 하루의 시간을 보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만의 요가 수련 시간을 보내고, 어제의 설거지나 못다한 집안 정리를 하고, 오후나 저녁에는 대부분 수업 준비와 수업, 나머지 시간은 쉬고 있어요.
Q.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네요.
제가 사실 파워 계획형이라서요. (웃음) 예를 들어 4학년 청소년 수업이 있으면 학습 시기에 맞게 워크지를 만들고, 이걸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낼 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구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1시간 수업이면 적어도 5배 넘게 시간을 쓰는데, 그렇게 해야 1시간을 초대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수업이 많다 보니까 자연스레 수업 준비에도 시간이 많이 쓰여요.
산책서원 수업. 한달에 한 번 책거리를 하는데 아이들은 이 날만을 기다린다.
아이들의 아픔을 교육으로 풀어낼 순 없을까?
Q. 하동으로 이주하자마자 아이들과 청소년 수업을 시작했죠. 활동 지역을 서울에서 하동으로 바꾼 이유가 있나요?
서울에서는 청소년 교육기관에서 생태 인문학 교육을 했는데 일을 할수록 제가 배운 것,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어 졌어요. 좀 더 단순하고 느린 방식대로, 그리고 내가 뭔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환경에 놓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서 왔어요.
그래서 작년까지는 하동 방과 후 아카데미에서 담임 선생님으로 일을 했는데, 여기는 교육보다는 돌봄의 영역인 것 같았어요. 제가 담임 선생님으로서 가르치는 일 보다는 외부 강사님을 섭외하거나, 급식을 나눠주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일을 계속하기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너무 감사하게도 저희 집에 공간이 생겨서 2학년과 4학년, 중학생들이 한 주에 한 번씩 오고 있어요.
이 시간이 너무 좋은 게, 제가 상상해오던 교육 방식을 아이들과 같이 맞춰볼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책 읽기 수업도 연극식으로 해본다든가 인형극을 해보면서 제가 배웠던 방식을 그들과 함께 실험해 보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해요.
Q. 자신이 가진 걸 나누는 건 기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운 마음도 생길 것 같아요. 먼지가 가르치는 사람,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성향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저는 어떤 걸 먹고 너무 맛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먹어보라고 하고 싶거든요. 제가 느낀 경험이 진짜인 것 같을 때 “이렇게 살면 너무너무 기뻐!” “이렇게 하면 더 웃을 수 있어!” 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혼자 하는 게 너무 재밌고 빛날 수도 있지만 저 같은 사람은 말하는 게 편해서 말로 풀어내는 일이 좋았어요.
Q. 아이, 청소년에게 다가가고 용기내는 과정에서 ‘혹시 내 의견을 너무 강요하는 건 아닐까?’ 라는 부담이 든 적은 없으셨어요?
그것 역시 늘 갖고 있는 고민이긴 한데요. 예를 들면 요가 수업에서 몇 년 전에 제가 했던 말과 지금 한 말이 다를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 저는 솔직하게 “그때는 거기까지 밖에 몰라서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지금 와 보니 아니었습니다.” 하는 것도 진실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빈틈없이 완벽해지고 나서 얘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요. 그래서 순간순간의 진실됨을 선택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존경하는, 대안교육을 이끌었던 선생님도 자신이 했던 과거의 교육방향이 다 옳지는 않았다고 인정하시는 걸 보면서 진실된 마음을 많이 배우게 됐어요.
Q. 빈틈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만나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지점은 어떤 것인가요?
사실 아이들을 만나고 오면 늘 가슴에 뭔가 박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요. 예를 들면 초등학교 시기에는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서로 상처주는 말을 하는 때가 비일비재해요. 청소년 시기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수업하면서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그 상처가 쌓이고 쌓이면서 너무 마음 아팠어요.
아이들이 조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상처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선생님들이나 주변 어른들이 도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것도 참 어려운 문제긴 하잖아요. 상처주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의 경우에는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아버지가 술을 너무 많이 먹는다든가, 가정에서 돌봄의 손길이 부족하다든가, 양육자의 학업에 대한 압박이 너무 심하다든가. 이런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숙제처럼 남아있어요. 그런 걸 볼 때마다 좋은 어른들이 나서서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면 좋겠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생각하면 많이 아파요.
그런 걸 제외하면 어린이, 청소년들이 워낙 순수하고 맑아서 저에게 에너지가 되죠. 숙제를 내면 약속 꼭 지켜서 해오고, 상상력이 풍부한 말을 들을 땐 저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되기도 하고요.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이 되면 잊어버리는 감성이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의 아픔만 잘 닦아주면 너무너무 예쁘게 자랄 거라 생각하고 그 부분에 초점을 두고 계속 만나고 있어요.
Q. 저도 청소년 활동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그들의 일상 안에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했거든요.
저도 감정적으로 크게 다가오는 문제는 돌봄 영역에 있어요. 아이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건 아프고 힘들지만,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너무 깊게 빠지는 게 제 약점이거든요. 그래서 첫 터치는 돌봄이지만 방식은 교육으로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저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요.
이런 과정이 저에게도 배움이 돼요. 아이들 앞에서 휘둘리지 않고 “얘들아, 아무리 아플지언정 너가 지금 이 시기에 발달돼야 되는 것은 이거야.” 라는 식으로 올바르게 가르쳐주기 위해서 특정 시기에 발달되어야 하는 것들을 꾸준히 배우려고 해요. 게다가 저는 교육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어떻게 하고, 교육학에서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공부해야 하고요. 꾸준히 저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Q. 활동하면서 먼지의 에너지도 오르락 내리락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해가나요?
맞아요. 최근에 그런 순간이 온 것 같아서 어제도 10시간 정도 잠을 잤어요. (웃음) 최근에 일이 좀 많아서 그런지 몸이 반응하더라고요. 저에게는 많이 자는 것도 중요했고, 또 하나는 내가 이거를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 다잡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았어요.
예를 들어 교육이라 해도 어린이, 청소년, 성인, 활동가 교육처럼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는데 ‘도대체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한번 다잡아보고 ‘내가 이걸 위해서 하고 있었구나’ 하고 해답을 찾으면 계속해볼 수 있는 힘을 얻고, 그게 아니라면 ‘버리자!’ 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편이에요.
활동가들을 위한 요가
교육의 시작은 ‘진짜 나’를 아는 것부터
Q. 착실하게 블로그에 기록을 해온 것을 봤어요. 기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고등학교부터 20대 초반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썼어요. 저에게는 일기를 쓰는 것이 치유의 영역이었거든요. 기숙형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저는 정말 뛰어난 모범생이었어요. (웃음) 그런데 돌아보면 과거의 저는 뭔가를 많이 숨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입시와 공부의 압박 안에서 마음이 어려웠는데 잘 드러내지 못한 거죠. 그래서 일기장에다가 시를 쓰곤 했는데, 저희 학교에는 되게 똑 부러진 공부쟁이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걸 친구들한테 보여주면 “야, 무슨 이런 걸 쓰고 그래~” 같은 피드백이 돌아왔어요. 그래서 기숙사에서 혼자 있을 때 랜턴 켜 두고 일기를 썼어요. (웃음) 그게 나를 위해서 기록하는 습관이 된 것 같고,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블로그로 이어졌어요.
그런데 우리가 기쁠 때는 일기 잘 안 쓰잖아요. (웃음) 저도 어느 정도 지나니 쓰는 일에 대한 열정이 시들시들해지더라고요. 그럼 ‘나는 왜 기록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있어서 제 요가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이 있어요. “교사의 영역은 단순히 교실 안에서의 말뿐만 아니라 글을 통해서도 규정될 수 있다.” 이 말을 제가 이해한 바로는 내가 알고 있는 걸 상대를 대면해서 말로 알려줄 수도 있지만, 폭넓게 알려주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제 블로그의 글은 제 말투가 드러나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모두 담긴 글이예요. 변화를 바라는 지점이나 “이렇게 예쁜 것들이 있어요” 하는 경험들을 글로 알려주고 싶어서 꾸준히 기록하려고 해요. 일기처럼 자신을 위한 글쓰기는 쏟아내듯 적는데, 보여지는 글은 구성도 생각해야 하다 보니 요즘 글이 많이 밀려 있어요. 지금도 머리에 글감이 있거든요. 운전 중에도 이 에피소드를 어떻게 풀까 고민하면서 다니고 있어요. (웃음)
Q. 먼지가 기록해온 블로그 글을 보면 내면에서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 내면의 이야기를 포착하는 데 진심인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그런 방식은 어떻게 삶에 적용되었나요?
20대 초반에 방황하고 있을 때 만났던 게 요가였어요. 저는 ‘라자 요가’라는 명상 요가를 하는데, 저에게 요가는 ‘진짜 네가 뭐냐’에 대한 저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나’ 라고 했을 때 사회적으로 부여하는 역할이나 지위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나는 뭘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을 하는데, 저는 그 공부가 좋았고 이제 그것이 있다고 믿고 공부하다 보니까 좀 단단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진짜 자아를 일깨워주려고 애쓸 때 기쁘고, 그 마음의 현상으로써 어린이 교육, 청소년 교육, 요가 학원, 이야기 모임을 열고 있어요. 그 모든 일들을 대할 때 ‘나는 이 시간동안 이 사람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끌어가면 웬만한 일들은 수월하게 끌고 갈 수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를 벗겨내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다른 사람을 연결해주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또 누군가에겐 공부를 추천할 수도 있고요. 뒤에서 지켜보다가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알맞게 탁탁 매칭해줄 때 어떤 짜릿함이 느껴져요.
Q.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들이 서로 부딪힐 때도 있나요? 예를 들어 나는 채식을 선호하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논비건 친구와 밥을 먹는 상황 같은 일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그런 것들을 사회적인 가치라고 하죠. 저 역시 사회적 가치들을 처음 접했을 땐 그것들이 저에게 엄청나게 울림이 컸기 때문에 그 가치를 기준삼아 제 안에서 종종 사람들을 재단하곤 했어요. 어떤 상황에서 속으론 ‘쟤는 왜 저래?’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엔 다양한 관점이 단 하나를 말하고 있을 것인데 내가 분절된 가치로 타인을 재단하는 건 이기적이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할 수밖에 없는 맥락이 있을 텐데, 이걸 어떻게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을지 관점을 바꿔보면 중요하게 느껴졌던 갈등의 순간이 중요하지 않아져요.
예로 들어준 같이 밥을 먹는 상황에서 상대가 제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저는 채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거나 보여줄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안 먹힐 것 같은 사람이면 차라리 그냥 같이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함을 더 나누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웃음)
결국 유연한 방식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수업 준비할 때도 10분 단위로 시간을 굉장히 빡빡하게 계획하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면 계획은 다 잊어버리고 완전한 즉흥형이 돼 버려요. 아이들의 그날의 상태와 기질이 모두 다르고요. 만약에 한 아이가 선생님한테 혼나서 속상한 상황에서 제가 준비한 걸 하자고 하면 안 되잖아요.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대처하되 내가 알려줘야 하는 그 단 하나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했으면 그날의 수업은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를 돕는 활동가
활동가를 돕는 활동가
Q. 먼지가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어떤 활동가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저를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보다는 제 공간에서 아이들을 만나거나 요가 안내를 하는 게 더 편하긴 해요. 제가 구성할 수 있는 게 더 크니까요. 함께하는 활동도 해봤지만, 지역활동가로서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고 활동하는 건 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작업이더라고요.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활동가로서 제3의 자아를 꺼내는 이유는 다른 활동가분들이 기쁘게 그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활동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에요. 전장 같은 일선에서 활동하는, 멋진 활동가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분들을 볼 때마다 저는 너무 소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잃지 않고 활동하셨으면 좋겠다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정말로 이게 하고 싶은 지 들여다보게 한다든가 ‘이게 가장 최선의 방법일까요?’ 물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짚어볼 수 있게 하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어요. 저는 지역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치면 지쳤다고 인정할 수 있게 돕는 일을 계속할 것 같아요.
Q. 조만간 열리는 ‘소작단’ 프로그램이 떠오르네요. 소작단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소작(小作)이 ‘작은 일을 꾸리는 사람들’이예요. 같이 사는 짝꿍인 이르와 함께 기획한 프로그램인데요. ‘이르’는 ‘3만엔 비즈니스’라는 개념을 배운 비전화제작자예요. 이르도 저와 같이 있었던 8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해왔고 그렇게 각자의 심지가 생겼는데,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기획한 일이예요. 2에서 하나가 더 늘어나면 3이 되고, 4가 되고 5가 되잖아요.
소작단에서 역시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정리 정돈하는 거였어요. 공간 정리뿐 아니라 생각 정리하는 걸 잘하는 편이라서 일에 대한 가치관을 찾아보고,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중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그렇다면 그걸 관통하는 하나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워크샵이에요. 이르도 3만엔 비즈니스를 한국식, 지역 버전으로 변형해서 만들어서 소개할 예정이에요.
Q. 어떤 기대를 가지고 만든 기획이에요?
지역에 있다 보니 여기엔 기술과 능력이 대단한 친구들이 많아요. 돈을 벌어야 하는데 지역에서 직장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아서 대부분 자영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개중에는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게 뛰어난 친구들이 조금 더 내적인 확신을 갖고,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통해서 자기도 즐겁고 지역도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싹을 본 거죠. 이 워크샵을 통해서 참가자들이 ‘내가 이래서 이 일을 하고 있었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소작단' 활동
온전한 환대는 사람을 춤추게 한다
Q. 하동에 오신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먼지의 지리산권 활동량은 어마어마했던 것 같아요. 오자마자 지역의 다양한 행사와 모임과 연결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네요. 정말 여기저기 다녔어요. 지역에 사람이 없었잖아요. 제가 열심히 행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겠다 생각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하동뿐 아니라 지리산 지역 어디를 가더라도 큰 환대를 받았어요.
하동 이주 후에 많은 활동가분들이 저에게 “왠지 이거 잘할 것 같은데?” 하면서 일을 시켜주셨어요. 받은 일을 하면서 ‘나 할 수 있었네!’ 느끼고 계속 해보게 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저를 잘 이어주신 것 같아요. 저는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건 타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시켜 주셨으면 제가 어디서 이렇게 진행을 했겠어요. (웃음)
그리고 지리산권 활동을 다니는 게 너무 환기가 돼요. 하동에만 있으면 하동 지역 이슈에만 매몰되는데 다른 지리산 지역을 갔을 때 우리 지역문제의 해결법을 찾기도 하고 비슷한 주제로 다른 사람들과 얘기 나누다 보면 좀 가벼워져요.
Q. 일을 제안 받았을 때 쉽게 긍정적으로 수락하는 에너지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왕 하는 거 한번 해보자, 일이 또 언제 들어오겠냐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일단 들어오는 일을 거절하지 않고 다 해봤어요. 웬만한 건 다 오케이 했던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나를 단련한다는 마음으로 쭉 달려오다 보니 지금은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고 어떤 걸 하기 어려워하는지 보이는 시기인 것 같아요. 내년에는 어디에 중점을 두고 활동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태예요.
인터뷰 현장 사진
시골에서 동네 친구를 만들 수 있다고?
Q. 보통 사는 기존의 살던 곳에서 어렵거나 에너지가 떨어질 때 지역 이주를 선택하잖아요. 먼지의 경우엔 어땠나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더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이동을 했어요. 왜냐하면 서울에 있을 땐 좁은 아파트의 정해진 방, 정해진 이동 수단, 정해진 일 안에서 같은 루틴으로 생활했는데 그러다 보니 더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어요. 그래서 하동에 오자마자 일을 벌릴 수 있었던 것 같고, 비교적 올해는 저에게 여백이 많은 해였기 때문에 재밌게 하다 보니 일이 많아진 것 같아요.
Q. 서울에서 힘들었던 부분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들이 있었나요?
예를 들어 생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바깥에서 재밌게 놀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비해야만 했고, 또 너무 많은 일이 동시에 벌어지니까 선택지도 많아지면서 어떤 걸 선택해야 할 지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주거를 보면 아파트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망이 없다 보니 팍팍한 것들이 있었죠. 그리고 임금노동자로 일하면서 어떤 일을 기획할 때 형식적인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지점이 어려웠어요. 무언가를 더 해보고 싶은데 참가자 정원을 반드시 채워야 하거나, 예산을 잘 지켜야만 실행되는 방식을 마주할 때 저는 언제나 다른 방식은 없을지 고민하던 사람이었어요.
Q. 서울에서 느낀 어려움이 하동에서는 어떻게 변화됐어요?
우선 마을 생활은 너무 재밌어요. 오가면서 인사를 나눌 수 있고 얼굴 보고 지내는 사이가 많아져서 좋아요. 요가원을 하면서도 오신 분들과 친해지고 가까워졌어요. 공부방도 그 관계망 안에서 시작할 수 있었고요.
친구 관계를 보자면, 하동 이주 초기엔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신중했거든요. ‘안 맞으면 어쩌지?’ 걱정을 안고 산책하면서 한 6개월 간 다른 또래들의 활동을 지켜보기만 했어요. 그러다 지역에 있는 또래 친구들이랑 자연스럽게 얼굴을 알게 되고 또 그 친구와 연결해서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새로운 관계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내가 서른이 되어서 새 동네 친구가 생겼다는 게 너무 재밌어요.
일에 있어서는 어쨌든 프리랜서로 살아가면서 내가 나를 관리하고, 홍보하고, 회의도 나 혼자, 회고도 나 혼자 해보면서 내가 가져가야 될 중심에 대해서 계속해서 되묻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내가 바라는, 내가 재미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방식에 대해서 즐겁게 고민하고 있어요.
Q. 하동 이주 후에 경제적인 고민은 없었나요?
일단 하동에서는 소비가 확실히 줄었어요. 서울에서도 워낙 쓰는 게 거의 없긴 했지만요. 개중에 가장 큰 소비가 월세였는데, 1/4 정도로 줄었어요. 그리고 여기에선 계절마다 계속 이웃분들이 뭘 주세요. 쌀을 주고 감을 주고 고구마를 주고… 하동에서 많은 돈이 들어가는 건 기름값 정도인 것 같아요. 경제적인 고민은 크게 없어요. 저축도 많이 하고 있어요! (웃음)
Q. 마음을 따라 온 하동에서 요즘의 마음은 많이 편안해졌나요?
‘햇살요가’와 ‘산책 서원’이라는 걸 시작한 지 1년 정도 돼 가는데 이제서야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한 해의 루틴을 돌면서 이게 정말 필요하구나, 나도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이대로 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리산 자락 야외 요가
넓고 거대한 세상에서 시작되는 작은 변화
Q. 다양한 활동을 해오면서 느꼈던 개인의 변화가 있나요?
나 하나가 정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도 하고, 되게 작은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알아가는 지점인 것 같아요. 지역에 살면서 책으로만 배웠던 것을 눈앞에서 경험할 때가 많았어요. 서울에서 공부할 때는 개념적으로 사회 문제에는 이런 것들이 있고 이렇게 해결하면 된다고 배웠는데, 지역에 왔는데 정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더라고요. 그럴 때 내가 우연으로 만들어진 상황 속에 살아가고 있고 세상은 정말 넓고 거대하구나, 그리고 내가 건드릴 수 없는 부분도 있구나 느껴요. 묵묵히 ‘잘 되게 해주세요!’ 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이 좁은 지역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정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떤 행사에서 제가 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큰 영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영향을 받은 상대방이 “너무 좋았어요.” 혹은 “저는 다르게 생각해봤어요.” 라고 피드백해주실 때마다 좀 더 좋은 생각을 갖고 살아야겠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다짐해요. 진짜 지역에 사는 것은 실질적으로 살아있는 경험을 하게 해줘요. 많이 배웠어요.
Q. 요가 수업 중에도 인상 깊은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최근에 면 소재지 복합문화센터에서 어머님들과 함께 12주 요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일하다 흙 묻은 옷으로 오셔서 서로 인사 나누고 재잘재잘 김장 이야기를 하시다가 제가 “자, 이제 시작합시다”하고 10분 명상으로 시작해요. 10분 후에 눈을 뜨면 어머니들이 조용히 박수를 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시면서요. 저는 그게 너무 감동적이에요. 저에게 요가는 자신한테 오롯이 집중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좋은 면들을 더 밝혀내는 작업이거든요. 저는 ‘어머님들’이야말로 대부분 자아를 잊고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님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 되는 것 같아요.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매번 먹을 걸 주시고, 시장이나 카페에서 만나도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어서 좋아요. 단순히 저는 선생님, 당신은 수강생이라고 분절되는 관계가 아니라 이 모든 관계 안에서 제가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이웃이기도 하고 어른으로 존경할 수도 하는 통합적인 관계가 되어서 신기하고 좋아요.
면으로 찾아가는 요가수업
산책서원 수업(여름날 봉선화 물을 들이면서 글쓰기)
언젠가는 읽고 쓰는 삶으로
Q. 가장 되고 싶은 모습이 있나요?
만약 지금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세상이 덜 흉흉하다면, 눈 떴을 때 내가 기쁜 걸 할 수 있다면 저는 작가로서 많이 읽고 쓰고 싶어요. 정말 좋은 공간에서 소설 같은 걸 쓰고 싶다. 짝꿍한테 이런 말을 했더니 “그건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니라 사실 언제든 할 수 있는 건데…” 하더라고요. (웃음) 어쨌든 최종적으로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로망이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미하일 엔데의 『모모』 를 읽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청소년 때 읽었다가 최근에 청소년 수업하면서 다시 한번 읽고 있는데 새롭게 다가오는 지점이 많더라고요. 어른은 어른대로 ‘진짜 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고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또 다가오는 의미가 다를 것 같아요.
#하동 #경남 #지리산 #먼지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피플포체인지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