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인터뷰 - 활동가, 전환을 말하다]
자기다움은 도시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인터뷰] 안연정 / (주)파도치다 대표 &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 전략・프로젝트 기획
- 시민들이 생산자로 나서면 자기다운 도시에 가까워질 수 있어
- 시민들의 배움과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
홍대의 풍경
통이 넓은 힙합 바지를 바닥에 끌고 가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던 청년이 길모퉁이에서 원색으로 머리를 과감하게 염색하고 가죽 재킷을 걸친 여자친구를 만나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골목을 나란히 걸어간다. 골목 한켠에서 통기타를 메고 서툰 코드 몇 개를 짚어보는 인디 뮤지션을 지나, 단독주택도 상가건물도 아닌 듯한 2층짜리 건물 앞에 선다. 어딘지 모르게 서툴고 깔끔하지 않은 입구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짝이 맞지 않는 빈티지 소파와 테이블마다 놓인 유리 재떨이, 세월의 흔적으로 가장자리가 바랜 예술영화 포스터들이 두 사람을 맞이한다. 정작 주인 사장님은 크게 반가운 내색을 하지 않지만, 손끝으로 내어놓는 요리만큼은 너무나도 기가 막혔던 그 곳. 투박하지만 속 깊은 사장님의 온기가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 우리의 홍대.
2000년대 초반 무렵.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 안연정(활동명 아랑, 이하 아랑)에게 이런 홍대는 이상하게도 매우 안전한 곳이었다. 거창한 성공을 좇기보다, 자기답게 살기 위해 기꺼이 노동하고, 그 작은 벌이로 작은 가게와 작업실을 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변변한 소속 하나 없어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하고 노는 그들의 풍경과 그들이 만든 홍대의 분위기는 마치 아랑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돼. 네가 살고 싶은 방식을 찾아가며 살아도 괜찮아.”
시간이 흐르면서 홍대 앞 풍경도 조금씩 변해갔다.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지만, 작은 가게와 작업실이 있던 자리에는 더 비싼 임대료와 더 익숙한 브랜드가 들어섰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하고 놀던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거나 밀려났다.
사라져가는 홍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아랑은 질문을 던졌다.
"자기다움이 도시의 언어가 될 수는 없을까?"
그 질문을 붙잡고 20여 년. 도시기획자, 문화기획자, 변화전략기획자 등 ‘기획자’로 성장한 아랑은 홍대에서 느꼈던 위로와 격려, 안전했던 감각을 도시를 다른 자리에서 다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통역사’이자 ‘번역사’로 살았다.
| [도시의 언어]
자기답게 살아가는 다양한 삶들을 이해하고 담아내는 따뜻한 말과 그 삶들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공동체의 규칙. 한 사람의 취향이나 바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공동체의 질서 안에 함께 담아내고자 하는 사회적 약속. |
우리 도시의 풍경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꿔온 아랑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사진: 2006년 홍대 인근에서 열린 땡땡마켓의 풍경. (안연정 제공)
돈으로 사는 삶에서 내 손으로 만드는 삶으로
아랑이 홍대 인근에서 처음 시도했던 도전은 2006년 문을 연 ‘공공시장 땡땡마켓’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홍대 앞 길거리에서 열린 이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의 장소가 아니었다. 돈으로 거래할 수도 있었지만, 돈만이 유일한 교환 수단은 아니었다. 각자가 가진 재료와 기술, 경험과 이야기까지 거래의 대상이 되는 조금은 특이하고 그래서 어쩌면 더 풍요로운 시장이었다.
표기(OO마켓) 그대로 어떤 것이든지 거래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자투리 종이와 페인트 같은 남은 재료를 가져와 팔았고, 누군가는 재봉틀 같은 소공구를 들고 나왔다. 어떤 사람은 그 도구를 다루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거래에 참여했고, 또 어떤 사람은 동네에서 수집한 열매로 술을 담가 나눴다. 지금이야 독립출판, 제작 워크숍, 로컬 마켓 같은 말들이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방식의 거래와 만남은 낯설고 새로운 풍경에 가까웠다.
“한번은 20년 동안 쓴 일기를 들고 나온 참가자가 계셨어요. 누가 그 일기를 살까 싶었는데 어떤 중년 남성분이 그 일기를 사겠다고 나서시더라구요.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죠. 한 사람의 오랜 시간이 담긴 일기에 얼마를 매겨야 할지 어느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했어요. 결국 해당 중년 남성분이 다음 주에 자신의 일기를 복사해 가져오셨고, 두 사람의 거래는 돈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건네는 방식으로 마무리됐어요.”
시민들은 각자가 가진 작은 재료와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로운 거래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을 익혀갔다. 그렇게 물건을 사는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것을 꺼내놓고 나누고 바꾸는 생산자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이처럼 느슨하게 공유되던 자립의 감각 위로, 시민들에게 ‘생산자’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쥐여준 것은 ‘1/4 하우스’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네 집의 버려진 가구가 만나야 한 집의 가구가 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9년 노동부 소셜벤처대회에서 수상한 1/4 하우스는, 산업폐기물이나 폐가구를 수거하고 분해해 새로운 가구로 재조합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모델의 핵심은 완벽하게 숙련된 한 명의 장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4분의 1만큼의 자투리 재료와 참여할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제작 과정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낮은 문턱을 넘어선 시민들은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만들고 고치는 법을 익혀갔다. 시민들은 이미 조각난 재활용 재료를 어떻게 결합할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갔다. 그렇게 단순히 물건을 사는 소비자에서 자기 삶에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고치고, 바꿔가는 생산자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랑은 “버려지거나 상처 난 가구도 해체하고 부피를 줄여 차곡차곡 정렬하면, 그 상처조차 하나의 무늬가 된다”며, 이곳을 “버려진 것들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시 쓰임을 얻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1/4 하우스의 작은 성취는 곧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랑이 초대 대표를 맡은 이 회사는 버려진 목재를 되살려 가구를 만든 활동 덕분에 훗날 ‘1기 서울형 사회적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아랑은 문화로놀이짱에 대해 "단순히 가구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면서 "재활용 목재를 기반으로, 삶의 기술을 배우고, 가르치고, 사물을 만들고 판매하며 먹고사는 공공 작업장이었다"고 소개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화로놀이짱 작업장 외부 전경, 문화로놀이짱 공방 내부 모습, 명랑에너지발전소, 비빌기지 전경 Ⓒ사진작가 조승현
조금 더 많은 시민들이 조금 더 오래,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던 문화로놀이짱. 그렇게 공공이 관리하는 유휴부지를 찾았고, 2010년 방치돼 있던 마포 석유비축기지 빈 부지에 들어가 이듬해 ‘명랑에너지발전소’를 열었다.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자로 살아보고 싶은 시민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2011년, 처음 컨테이너 네 동으로 시작한 작업장은 음악, 건축, 도시농부, 농부시장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며 열아홉 동까지 늘어났다. 고장 난 물건을 동네 장인들과 함께 고치는 ‘수리병원’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사다 쓰고 버리는 대신 고쳐 쓰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문화. 아랑과 동료들은 이 방식을 ‘D.I.O(Do It Ourselves)’라 불렀다.
로컬스티치의 김수민 대표는 자신의 브런치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단순히 가구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도시의 소비 구조를 제작 시스템으로 번역해낸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마포 일대에서는 이사철에 나온 생활가구와 목재뿐 아니라, 홍대가 상업화되며 빠르게 철거되고 교체된 가게들에서 나온 건축 폐기물 가운데 재활용 가능한 목재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었다. 문화로놀이짱 프로젝트의 핵심은 그것들을 수거하고, 분해하고, 다시 조합해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시 유통시키는 일련의 작동 방식을 구축한 데 있었다고 해석했다.
거대 담론을 읊조리는 대신, 개인의 윤리와 미감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생활 방식이 일상에 스며들게 만드는 일. 그것이 아랑과 동료들이 함께 구축한 시스템이었고, 그들이 도시 안에서 실천한 번역이었다.
자기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다정한’ 도시
아랑은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고치고, 바꿔보는 경험은 단순히 개인 차원의 삶의 대응력을 높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경험을 가진 시민이 많아질수록 도시 역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는 모든 사람 안에 자기가 사는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고, 바꿔본 경험이 더해진다면 어떨까요. 아마 문제를 발견했을 때, 자기가 가진 시간이나 기술, 자원을 보태 문제 해결에 참여할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2024년 12월 3일 내란 이후 열린 집회에 등장한 1,178개의 가지각색 깃발을 아카이빙한 웹사이트 ‘깃발들’의 화면 일부. Ⓒ깃발들
지난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풍경은 아랑이 말해온 ‘생산자’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도심 한복판에서 누군가는 흩어진 정보를 모아 실시간 화장실 지도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선결제 방식으로 낯선 사람의 끼니와 커피를 미리 마련했다. 또 누군가는 깃발과 구호, 현장의 기록을 모아 아카이브로 남겼다. 각자의 작은 기여가 모여, 일시적이지만 서로에게 가장 안전하고 필요한 질서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랑은 이런 장면에서 삶의 의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평소엔 느슨하게 각자의 자리에 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저마다 기여할 수 있는 몫을 채우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것 같아요. 거창한 권력이나 막대한 자본을 가진 사람이 아니어도, 자신이 가진 작은 기술과 시간, 정보와 감각을 보태면 공동의 문제를 함께 풀 수 있죠. 저는 그런 작은 노력들이 모일 때, 그 안에서 일종의 ‘선의의 시스템’이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땡땡마켓의 자투리 재료와 일기가 그랬고, 1/4 하우스의 폐목재가 그랬다.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조각들은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물건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교환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었다. 화장실 지도를 만들 때 시민들이 정보를 보태는 일이나, 휠체어와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를 찾기 위해 직접 데이터를 쌓아가는 계단뿌셔클럽의 활동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각자가 가진 작은 재료와 시간, 정보와 감각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보태질 때, 그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필요한 하나의 쓸모로 이어졌다. 그렇게 도시는 조금씩 더 다정한 쪽으로 움직였다.
아랑은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일이에요. 내가 가진 것이 작고 불완전해도 공동의 문제를 푸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기면 사람들은 더 쉽게 참여하게 되죠. 그렇게 참여하는 시민이 늘어날수록 도시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배움과 활동, 나답게 살기 위한 모두의 공적 토대
그렇다고 해서 그의 낙관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믿음에 기초해있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가격과 젠트리피케이션, 점점 더 팍팍해지는 도시의 조건 앞에서 많은 도전과 노력들이 밀려나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다만 아랑의 경우 무력감 안에서는 좋은 것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의식적으로 낙관할 수 있는 지점을 붙잡는다. 시민들이 자기 삶의 문제를 직접 풀어가며 더 나은 공동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을 때 다음 시도도 가능해진다는 믿음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랑의 지난 20여 년은 대안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에서 사람의 ‘역량’을 기르는 일로 조금씩 무게중심을 옮겨왔다. 20대의 홍대 앞이라는 창의적 에너지 속에서 그는 다른 삶을 상상하는 힘을 배웠고, 30대의 공공 제작소 문화로놀이짱에서는 직접 가구를 만들고 해체하며 삶의 조건에 개입하는 생산력을 실험했다. 이후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2기 센터장을 맡아 청년들이 자기답게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는 일을 지원했고, 40대에 이르러서는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와 주식회사 ‘파도치다’를 통해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로 역할을 넓혀갔다. 치밀하게 설계된 경로라기보다, 현장에서 마주한 결핍과 질문들을 성실하게 따라가다 자연스럽게 도착한 흐름이었다.
돌아보면 그 궤적 속에서 아랑이 줄곧 붙잡아온 본질은 ‘역량의 공통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누군가 혼자 운 좋게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공간을 발견하고, 사적인 배움의 순간을 우연히 통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활동가가 안전하게 배우고, 시도하고, 실패하며 자기 속도로 준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 말이다.

2025년 11월에 진행된 엣지온 활동의정석 온라인 강의(이계정 참여연대 시민소통국장편) 촬영 장면.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
특히 비영리활동가와 조직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인 ‘엣지’에서 전략·프로젝트 기획을 맡아 변화전략과정과 온보딩 교육을 이끄는 아랑의 도전은 그가 오래 다져온 생산자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 온보딩 교육 : 새로 들어온 사람이 조직이나 프로젝트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초기 교육. 새로 합류한 활동가가 이 조직이 왜 존재하는지, 어떤 문제의식으로 일하는지, 어떤 언어와 방식으로 협업하는지를 익히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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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교육 역시 누군가를 수동적인 교육 소비자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만드는 주체적인 생산자로 초대하는 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아랑은 엣지에서의 도전에 대해 땡땡마켓에서 자투리 재료와 삶의 노하우를 나누던 일, 문화로놀이짱에서 재료를 모으고, 도구와 방법(기술)을 공유해 시민들의 생활생산역량을 키우는 시스템을 만들었던 활동의 연장선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제게 ‘기획’은 하고 싶은 일을 실제로 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에 가까워요. 그래서 기획을 할 때에도 가장 먼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는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변화의 에너지는 변화를 원하고 꿈꾸는 시민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두의 목소리가 안전하게 발화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활동가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답게 살면서, 그 삶으로 사회에 기여하려는 사람을 지키고 북돋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안연정 (주)파도치다 대표&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 전략・프로젝트 기획 Ⓒ정재훈
물론 그가 세운 공간이 늘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비축기지도 센터장을 맡았던 청년허브도 정치권력의 변화와 자본의 속도 앞에 흔들린 적도 있다. 하지만 아랑은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이 얻은 역량은 또 다른 자리에서 또 다른 자기다움으로 되살아난다"고 힘주어 말한다. 자기다움이란 혼자 품고 있는 내면의 성질이 아니라, 배우고 시도하고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깊어지고 넓어지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랑이 자신의 일을 도시기획이나 문화기획을 넘어 ‘사회기획’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터뷰 말미, 자기답게 살고 싶은 시민들의 바람을 공간과 제도, 활동의 언어로 옮겨온 자신의 여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 여정에서 만난 배움과 학습의 순간들, 어쩌면 우연이고 운이 좋았던 그 찰나의 경험들을, 어떻게 하면 모두를 위한 ‘공적인 토대’로 전환할 수 있을까 궁리했던 시간”
그의 다음 궁리가 또 어떤 삶들을 위한 공적 토대가 될지 기대해본다.
인터뷰어 : 정재훈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제가 빚는 작은 노동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2026 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6년에는 〈활동가, 전환을 말하다〉를 주제로 기획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공익활동가가 되는 데 정해진 경로는 없습니다. 교사였던 사람, 광장에서 처음 마이크를 잡았던 사람, 기존 활동의 궤적 위에서 변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전환'해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익활동'이 더 많은 사람의 선택지가 되길 바라며, 다채로운 전환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리산이음에서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기획인터뷰 - 활동가, 전환을 말하다]
자기다움은 도시의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인터뷰] 안연정 / (주)파도치다 대표 &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 전략・프로젝트 기획
- 시민들이 생산자로 나서면 자기다운 도시에 가까워질 수 있어
- 시민들의 배움과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
홍대의 풍경
통이 넓은 힙합 바지를 바닥에 끌고 가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던 청년이 길모퉁이에서 원색으로 머리를 과감하게 염색하고 가죽 재킷을 걸친 여자친구를 만나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골목을 나란히 걸어간다. 골목 한켠에서 통기타를 메고 서툰 코드 몇 개를 짚어보는 인디 뮤지션을 지나, 단독주택도 상가건물도 아닌 듯한 2층짜리 건물 앞에 선다. 어딘지 모르게 서툴고 깔끔하지 않은 입구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짝이 맞지 않는 빈티지 소파와 테이블마다 놓인 유리 재떨이, 세월의 흔적으로 가장자리가 바랜 예술영화 포스터들이 두 사람을 맞이한다. 정작 주인 사장님은 크게 반가운 내색을 하지 않지만, 손끝으로 내어놓는 요리만큼은 너무나도 기가 막혔던 그 곳. 투박하지만 속 깊은 사장님의 온기가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 우리의 홍대.
2000년대 초반 무렵.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 안연정(활동명 아랑, 이하 아랑)에게 이런 홍대는 이상하게도 매우 안전한 곳이었다. 거창한 성공을 좇기보다, 자기답게 살기 위해 기꺼이 노동하고, 그 작은 벌이로 작은 가게와 작업실을 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변변한 소속 하나 없어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하고 노는 그들의 풍경과 그들이 만든 홍대의 분위기는 마치 아랑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돼. 네가 살고 싶은 방식을 찾아가며 살아도 괜찮아.”
시간이 흐르면서 홍대 앞 풍경도 조금씩 변해갔다.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지만, 작은 가게와 작업실이 있던 자리에는 더 비싼 임대료와 더 익숙한 브랜드가 들어섰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하고 놀던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거나 밀려났다.
사라져가는 홍대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아랑은 질문을 던졌다.
"자기다움이 도시의 언어가 될 수는 없을까?"
그 질문을 붙잡고 20여 년. 도시기획자, 문화기획자, 변화전략기획자 등 ‘기획자’로 성장한 아랑은 홍대에서 느꼈던 위로와 격려, 안전했던 감각을 도시를 다른 자리에서 다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통역사’이자 ‘번역사’로 살았다.
자기답게 살아가는 다양한 삶들을 이해하고 담아내는 따뜻한 말과 그 삶들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공동체의 규칙.
한 사람의 취향이나 바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공동체의 질서 안에 함께 담아내고자 하는 사회적 약속.
우리 도시의 풍경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꿔온 아랑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사진: 2006년 홍대 인근에서 열린 땡땡마켓의 풍경. (안연정 제공)
돈으로 사는 삶에서 내 손으로 만드는 삶으로
아랑이 홍대 인근에서 처음 시도했던 도전은 2006년 문을 연 ‘공공시장 땡땡마켓’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홍대 앞 길거리에서 열린 이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의 장소가 아니었다. 돈으로 거래할 수도 있었지만, 돈만이 유일한 교환 수단은 아니었다. 각자가 가진 재료와 기술, 경험과 이야기까지 거래의 대상이 되는 조금은 특이하고 그래서 어쩌면 더 풍요로운 시장이었다.
표기(OO마켓) 그대로 어떤 것이든지 거래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자투리 종이와 페인트 같은 남은 재료를 가져와 팔았고, 누군가는 재봉틀 같은 소공구를 들고 나왔다. 어떤 사람은 그 도구를 다루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거래에 참여했고, 또 어떤 사람은 동네에서 수집한 열매로 술을 담가 나눴다. 지금이야 독립출판, 제작 워크숍, 로컬 마켓 같은 말들이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방식의 거래와 만남은 낯설고 새로운 풍경에 가까웠다.
시민들은 각자가 가진 작은 재료와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로운 거래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을 익혀갔다. 그렇게 물건을 사는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것을 꺼내놓고 나누고 바꾸는 생산자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이처럼 느슨하게 공유되던 자립의 감각 위로, 시민들에게 ‘생산자’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쥐여준 것은 ‘1/4 하우스’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네 집의 버려진 가구가 만나야 한 집의 가구가 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9년 노동부 소셜벤처대회에서 수상한 1/4 하우스는, 산업폐기물이나 폐가구를 수거하고 분해해 새로운 가구로 재조합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모델의 핵심은 완벽하게 숙련된 한 명의 장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4분의 1만큼의 자투리 재료와 참여할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제작 과정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낮은 문턱을 넘어선 시민들은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만들고 고치는 법을 익혀갔다. 시민들은 이미 조각난 재활용 재료를 어떻게 결합할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갔다. 그렇게 단순히 물건을 사는 소비자에서 자기 삶에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고치고, 바꿔가는 생산자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랑은 “버려지거나 상처 난 가구도 해체하고 부피를 줄여 차곡차곡 정렬하면, 그 상처조차 하나의 무늬가 된다”며, 이곳을 “버려진 것들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시 쓰임을 얻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1/4 하우스의 작은 성취는 곧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랑이 초대 대표를 맡은 이 회사는 버려진 목재를 되살려 가구를 만든 활동 덕분에 훗날 ‘1기 서울형 사회적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아랑은 문화로놀이짱에 대해 "단순히 가구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면서 "재활용 목재를 기반으로, 삶의 기술을 배우고, 가르치고, 사물을 만들고 판매하며 먹고사는 공공 작업장이었다"고 소개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화로놀이짱 작업장 외부 전경, 문화로놀이짱 공방 내부 모습, 명랑에너지발전소, 비빌기지 전경 Ⓒ사진작가 조승현
조금 더 많은 시민들이 조금 더 오래,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던 문화로놀이짱. 그렇게 공공이 관리하는 유휴부지를 찾았고, 2010년 방치돼 있던 마포 석유비축기지 빈 부지에 들어가 이듬해 ‘명랑에너지발전소’를 열었다.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자로 살아보고 싶은 시민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2011년, 처음 컨테이너 네 동으로 시작한 작업장은 음악, 건축, 도시농부, 농부시장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며 열아홉 동까지 늘어났다. 고장 난 물건을 동네 장인들과 함께 고치는 ‘수리병원’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사다 쓰고 버리는 대신 고쳐 쓰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문화. 아랑과 동료들은 이 방식을 ‘D.I.O(Do It Ourselves)’라 불렀다.
로컬스티치의 김수민 대표는 자신의 브런치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단순히 가구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도시의 소비 구조를 제작 시스템으로 번역해낸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마포 일대에서는 이사철에 나온 생활가구와 목재뿐 아니라, 홍대가 상업화되며 빠르게 철거되고 교체된 가게들에서 나온 건축 폐기물 가운데 재활용 가능한 목재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었다. 문화로놀이짱 프로젝트의 핵심은 그것들을 수거하고, 분해하고, 다시 조합해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시 유통시키는 일련의 작동 방식을 구축한 데 있었다고 해석했다.
거대 담론을 읊조리는 대신, 개인의 윤리와 미감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생활 방식이 일상에 스며들게 만드는 일. 그것이 아랑과 동료들이 함께 구축한 시스템이었고, 그들이 도시 안에서 실천한 번역이었다.
자기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다정한’ 도시
아랑은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고치고, 바꿔보는 경험은 단순히 개인 차원의 삶의 대응력을 높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경험을 가진 시민이 많아질수록 도시 역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24년 12월 3일 내란 이후 열린 집회에 등장한 1,178개의 가지각색 깃발을 아카이빙한 웹사이트 ‘깃발들’의 화면 일부. Ⓒ깃발들
지난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풍경은 아랑이 말해온 ‘생산자’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도심 한복판에서 누군가는 흩어진 정보를 모아 실시간 화장실 지도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선결제 방식으로 낯선 사람의 끼니와 커피를 미리 마련했다. 또 누군가는 깃발과 구호, 현장의 기록을 모아 아카이브로 남겼다. 각자의 작은 기여가 모여, 일시적이지만 서로에게 가장 안전하고 필요한 질서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랑은 이런 장면에서 삶의 의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땡땡마켓의 자투리 재료와 일기가 그랬고, 1/4 하우스의 폐목재가 그랬다.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조각들은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물건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교환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었다. 화장실 지도를 만들 때 시민들이 정보를 보태는 일이나, 휠체어와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를 찾기 위해 직접 데이터를 쌓아가는 계단뿌셔클럽의 활동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각자가 가진 작은 재료와 시간, 정보와 감각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보태질 때, 그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필요한 하나의 쓸모로 이어졌다. 그렇게 도시는 조금씩 더 다정한 쪽으로 움직였다.
아랑은 이렇게 말한다.
배움과 활동, 나답게 살기 위한 모두의 공적 토대
그렇다고 해서 그의 낙관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믿음에 기초해있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가격과 젠트리피케이션, 점점 더 팍팍해지는 도시의 조건 앞에서 많은 도전과 노력들이 밀려나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다만 아랑의 경우 무력감 안에서는 좋은 것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의식적으로 낙관할 수 있는 지점을 붙잡는다. 시민들이 자기 삶의 문제를 직접 풀어가며 더 나은 공동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을 때 다음 시도도 가능해진다는 믿음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랑의 지난 20여 년은 대안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에서 사람의 ‘역량’을 기르는 일로 조금씩 무게중심을 옮겨왔다. 20대의 홍대 앞이라는 창의적 에너지 속에서 그는 다른 삶을 상상하는 힘을 배웠고, 30대의 공공 제작소 문화로놀이짱에서는 직접 가구를 만들고 해체하며 삶의 조건에 개입하는 생산력을 실험했다. 이후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2기 센터장을 맡아 청년들이 자기답게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는 일을 지원했고, 40대에 이르러서는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와 주식회사 ‘파도치다’를 통해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로 역할을 넓혀갔다. 치밀하게 설계된 경로라기보다, 현장에서 마주한 결핍과 질문들을 성실하게 따라가다 자연스럽게 도착한 흐름이었다.
돌아보면 그 궤적 속에서 아랑이 줄곧 붙잡아온 본질은 ‘역량의 공통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누군가 혼자 운 좋게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공간을 발견하고, 사적인 배움의 순간을 우연히 통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활동가가 안전하게 배우고, 시도하고, 실패하며 자기 속도로 준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 말이다.
2025년 11월에 진행된 엣지온 활동의정석 온라인 강의(이계정 참여연대 시민소통국장편) 촬영 장면.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
특히 비영리활동가와 조직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인 ‘엣지’에서 전략·프로젝트 기획을 맡아 변화전략과정과 온보딩 교육을 이끄는 아랑의 도전은 그가 오래 다져온 생산자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활동가 교육 역시 누군가를 수동적인 교육 소비자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만드는 주체적인 생산자로 초대하는 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아랑은 엣지에서의 도전에 대해 땡땡마켓에서 자투리 재료와 삶의 노하우를 나누던 일, 문화로놀이짱에서 재료를 모으고, 도구와 방법(기술)을 공유해 시민들의 생활생산역량을 키우는 시스템을 만들었던 활동의 연장선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안연정 (주)파도치다 대표&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 전략・프로젝트 기획 Ⓒ정재훈
물론 그가 세운 공간이 늘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비축기지도 센터장을 맡았던 청년허브도 정치권력의 변화와 자본의 속도 앞에 흔들린 적도 있다. 하지만 아랑은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이 얻은 역량은 또 다른 자리에서 또 다른 자기다움으로 되살아난다"고 힘주어 말한다. 자기다움이란 혼자 품고 있는 내면의 성질이 아니라, 배우고 시도하고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깊어지고 넓어지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랑이 자신의 일을 도시기획이나 문화기획을 넘어 ‘사회기획’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터뷰 말미, 자기답게 살고 싶은 시민들의 바람을 공간과 제도, 활동의 언어로 옮겨온 자신의 여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의 다음 궁리가 또 어떤 삶들을 위한 공적 토대가 될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