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트랜스젠더들이 학교 밖을 넘어 세상과 뒤섞이길 - 학교 밖 성소수자 배움터 ‘무지개교실’ 꽁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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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들이 학교 밖을 넘어 세상과 뒤섞이길 

- 학교 밖 성소수자 배움터 ‘무지개교실’ 꽁치



한국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현실은 삶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깝다. 2022년 서울신문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74.5%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고, 53.5%는 자해 경험이 있으며, 65.3%는 탈학교나 학업중단 경험이 있다. 10명 중 2명은 가정폭력을 겪기도 했다. 통계 너머엔 수치로 말하기 어려운 폭력과 고립이 있다.


그러나 생존하는 삶은 결코 약한 삶이 아니다. 탈가정과 탈학교, 두 가지 경험을 모두 지나온 꽁치 활동가를 만났다. 그이는 청소년기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찾아 나섰고, 권리를 박탈당한 동료들과 손을 잡았다.


청년이 된 지금은 노동·정치·사람의 청년사업팀장으로서 학교 밖 성소수자 배움터 ‘무지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탈가정과 탈학교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이고 꿘이며, 고통을 알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이의 활동은 어떤 모습일까. 꽁치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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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페미니즘, 젠더, 퀴어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배우길 원한다’ 무지개교실 티셔츠를 입은 꽁치 활동가



“내가 자퇴생이니까 야학을 해볼까?” 주류 밖 퀴어들이 모이다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일단 티셔츠에 자꾸 눈길이 가요.


수험생이라 대충하고 다녀서 민망한데. (웃음) 티셔츠는 좋죠? 이번 서울 퀴어퍼레이드 때 공개할 무지개교실 티셔츠예요. 요즘은 시험을 준비하느라 많이 바쁜데요. 그래서 활동도 많이 빠지고 있는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됐네요.



- 활동하고 계신 노동·정치·사람은 어떤 곳인가요? 그리고 무지개교실을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노동·정치·사람은 노동 정치의 새로운 전망을 열기 위해...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면 안 되는데. (웃음) 정치가 너무 중앙 정당 위주잖아요. 여긴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새로운 노동 정치와 진보 정치를 만들기 위해 모인 단체예요. 노동 운동부터 지역 시민이 수어 공부를 하며 소수자와 연결되는 활동까지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고 있어요. 저도 취지에 공감해서 회원 활동을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청년 사업을 해보잔 얘기가 나왔어요. 이와 엮어서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어떻게 만들어 갈까 고민하다가, 하루는 술자리에서 제가 자퇴생이니까 야학을 해보면 어떻겠냐 우스갯소리를 했는데요. 다들 좋다고 해주셔서 진짜 어쩌다 보니 시작하게 됐어요.


무지개교실은 학교 안 다니는 퀴어 청소년을 위해 검정고시 수업과 자습 환경을 만들고 있는데요. 같이 공부하고 시간을 보내며 거점을 만들어 나가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성소수자 학습권 문제나 노동 문제로 확장해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들어 보려고 해요. 2022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24년에 본격적으로 첫 수업을 했고요. 벌써 50명 넘는 학생이 무지개교실을 거쳐 갔고, 온라인 커뮤니티엔 80명 정도가 들어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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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노동·정치·사람 동지들과 무지개교실 멤버들



- 학교 밖 교육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나온 아이디어는 아닐 것 같아요. 무지개교실 이전부터 트랜스젠더 청소년 인권모임 튤립연대에서 활동하기도 하셨죠.


네, 튤립연대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커뮤니티예요. 옛날에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모임이 있었어요. 17년인가 18년쯤 저도 거기 다녔는데요. 가보면 늘 게이와 레즈비언이 주류고, 외따로 떨어진 테이블 하나에 트랜스젠더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거기서 친구들과 계속 만날 구실도 만들 겸, 그리고 보통 트랜스젠더 모임에 가면 다 어른이어서 낯설다 보니까 우리 청소년 모임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시작됐습니다. 친목 활동이나 당사자 인터뷰도 하며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이 뭉쳤어요.


다들 학교 다니기를 힘들어해요. 실제로 탈학교도 많이 하고요. 그래서 무지개교실을 만들기 전에 시범 사업으로 튤립 교실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코로나19 시기여서 줌으로 검정고시 수업을 했었고요. 그때 만났던 학생들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튤립연대 멤버들이 무지개교실로 많이 녹아들어 왔어요. 무지개교실 학생으로도 오고, 선생으로 오기도 하고.




외딴섬에서 넓은 세계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교회에서 퀴어 파티하고



- 전부터 커뮤니티나 공부 모임을 시도하다가 지금 단체에서 추진력을 얻으신 거군요. 또 트랜스젠더 교실에서 모든 퀴어의 교실로 확장되기도 했죠. 전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으세요?


노동·정치·사람 사무실을 오프라인 거점으로 쓰면서 확실히 구심점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트랜스젠더들끼리만 모일 땐 아쉬움도 있었거든요. 우리끼리 동떨어져 있지 않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단 고민이 있었죠.


무지개교실은 학교 다니기 힘든 청소년 퀴어 모두를 대상으로 하면서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가 다 같이 지내요. 그리고 이 사무실을 쓰다 보니 여기 있는 비청소년, 노조나 다른 활동을 하는 동지들과 계속 안면을 틀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공부하러 오면 노조 동지가 TV 보고 있다가 “어, 왔어?” 하며 수박 썰어 주시고. 신기하게도 노동·정치·사람 활동가 중에 목사님 아들들이 많거든요. 덕분에 교회를 빌려서 무지개교실 추석 파티를 하기도 했죠.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있어요.


청소년 트랜스젠더가 너무 한 줌이다, 우리끼리 계속 연결되어보자 해서 튤립연대를 만들었던 건데, 이제 우리끼리를 넘어 관계가 확장되는 게 참 좋아요. 또 이 관계에서 당사자들이 변두리가 아닌 중심이 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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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소수자, 노동운동 포스터가 번갈아 붙어있는 무지개교실 배움터



- 단순한 공부 모임은 아닌 것 같아요. 같이 명절을 보내기도 하고, SNS를 보니 교가도 만들었더라고요. 무지개교실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나 공동체의 모습이 있나요?


어떻게 보면 단순해요. 학교에서 못해본 거 다 해보자는 거예요. 교가도 만들고, 추석이나 설날에 모여서 파티하는 것도 그렇고요. 운영을 시작한 멤버들이 대부분 중고등학교 안 다녔던 20대 퀴어들이거든요. 학교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여기서 한풀이 겸 해보자는 마음들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지개교실은 나이 많을수록 철딱서니가 없고, 나이가 적을수록 더 의젓해요. 탱이들이 더 신나서 한풀이 하죠.


탱이가 선생들인데요. 무지개교실에선 쟁이(학생), 탱이(선생), 뺑이(팀원)이란 호칭을 써요. 선생하고 학생은 너무 어색하니까, 학교가 만든 위계를 벗어나는 시도로 만든 호칭이에요. ‘쟁이’는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란 의미인데요. 학생이라고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걸 하니까요. 존중하는 마음에서 만든 호칭이에요. 탱이는 담탱이에서 따왔어요. 애증을 담은 이름이면 다가가기 편하지 않을까 해서. 뺑이는 뺑이치다에서 따왔는데... 뒤에서 짐 나르는 우리 팀원들. (웃음)



낯선 사람들이 뒤섞이며 만드는 위로와 성장



- 꽁치님은 사실 대학을 진학해 졸업도 하셨죠. 그런데 지금의 꽁치님이 중고등학교의 대안적 교육을 만드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왜 하고 싶을까, 무엇을 얻을까 궁금해요.


대학교에 가니 나름 재밌긴 했는데 외로웠어요. 저는 당연히 사람들이 제가 트랜스젠더인 걸 알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그냥 목소리 특이한 페미니스트 대장인 줄 알고. (웃음) 다들 트랜스젠더를 정말 안 만나며 자란 거예요. 대학이라는 곳이 엘리트주의가 있고, 만나는 삶의 반경도 제한적이고요. 그 속에서 되게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제가 성격 더러워지는 게 합리화되더라고요. 사실은 좀 더 친절해질 수 있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도 되는 건데, 혼자 모난 마음이 많이 자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무지개교실 하면서 그런 게 많이 풀렸어요. 나랑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럼에도 서로 다른 경로를 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삶도 충분히 살 만한 삶이었겠구나’ 싶었어요. 또 성소수자 친구들뿐 아니라 여기서 만나는 동지들, 활동가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경험이 큰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모나게 살았고, 한만 쌓였다는 기분이 들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무지개교실을 하면서 고마웠던 순간들을 찾게 돼요. 여기가 단순히 밥 먹고 공부하는 곳이지만 가끔은 정말 어른으로서 책임져야 할 때가 있어요. 청소년이 집을 나왔다던가, 교실에서 갈등이 생긴다던가. 선생 자리에 있는다는 게 부담스럽고 무서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예전에 제가 받았던 것들이 지혜가 됐던 것 같아요. 제가 모났을 때 품어주던 활동가들, 목사님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생각하게 되고요.


대학에서도 외롭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도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던 교수님이나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사실 그 사람들도 처음엔 저를 낯설게 느꼈을 거잖아요. 무지개교실에서 저도 낯선 존재들을 만나게 돼요. 같은 성소수자더라도 저랑 너무 다른 삶을 살았고, 그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 낯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죠. 그럴 때 내가 만났던 사람들한테서 힌트를 많이 얻어요.

무지개교실 덕분에 소중했던 기억들을 자주 떠올려요. 한만 있었던 게 아니구나, 기쁜 순간들도 있었구나. 그런 걸 되새기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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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교실 개교 파티, 가라오케 타임에 열창 중인 꽁치 활동가



- 재미있네요. 밖에서 볼 때 무지개교실은 배제된 사람들을 위한 인권 구제 활동 같기도 해요. 하지만 이곳에 속하고 만드는 사람들에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혹은 견지해야 하는 방향이 있을까요?


이곳이 어떤 공간일까. 처음엔 ‘학교와 다른 교육’이란 고민이 컸어요. 검정고시 수업이 중심이긴 하지만, 점수 부담이 덜한 만큼 교과서 밖의 수업을 많이 시도했거든요. 저는 도덕 수업을 맡았는데, 말이 도덕이지 사실은 삶에 대한 이야기였죠. 학교에서 못 했던 토론도 많이 했고요. 교양 수업이라고 해서 미술관에 같이 가거나, 근로계약서를 써보는 수업도 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논술도 과외처럼 몇 시간씩 따로 봐주기도 했죠. 어떤 학생은 원래 개인 과외를 하다 만났는데요. 알고 보니 트랜스젠더 자퇴생이더라고요. 무지개교실로 초대하고, 그동안 받은 과외비도 다시 돌려줬죠.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도 대학을 떨어졌어요. 입시 붙을 줄 알았던 두 학생이 나란히. 속상했죠. 동시에 경각심도 들었어요. 이 공간을 시작할 땐 입시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어느새 제 안에서도 욕심이 자라고 있었더라고요. 이게 맞는 걸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그런데 하루는 수업 끝나고 누가 그러는 거예요. “수업 내용은 기억 안 나는데 재밌었어요.”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수업이 아니라, 같이 재밌는 시간 보내고 서로를 챙겨주려는 누군가가 있다는 거. 가족이 축하해주지 않는 생일을 함께 챙기고, 알바 붙었을 때 파티하고. 그게 이곳의 의미 같아요.


살아온 배경이 어떻든, 돈이 많건 적건 간에 그런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보는 경험이 가장 중요해요. 평등한 교육이라는 건 결국 그렇게 섞여보는 시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고등학교 자퇴율이 2배로 늘었다더라고요. 학교에서 소외된 사람도 있지만, 성적이 위에서 노는 학생이 자퇴하는 경우가 늘었어요. 공교육에서 시간 써봤자 입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학교가 공동체가 아니라 각자도생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 돼버린 거죠. 무지개교실엔 입시 준비하는 학생도 있고, 그냥 놀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각자의 길은 스스로 정할 일이죠. 저는 여기 모이는 시간들이 가치 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뭐가 되든,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이 있었다”는 기억이 남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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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고 시간을 보내는 공동체, 무지개교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꽁치님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그러게요. 지금은 노무사 시험을 붙는 게 목적이고요. 원래는 대학원 가려 했거든요. 근데 노동·정치·사람 집행위원장 동지가 미래를 생각해 봐야 되지 않겠냐면서 갑자기 진로 교정을 해주셨어요. (웃음) 노동 운동과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이 중요하지 않겠냐 하셨죠. 그렇게 시험을 준비하게 됐는데 1차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집행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거예요. 과로였던 것 같아요. 다들 충격받고, 저도 시험 공부를 3일 날려 먹고 빈소를 끝까지 지켰어요. 그러다 보니 더 절실해지더라고요. 성소수자들끼리만이 아니라, 사회 여러 사람들과도 뒤섞일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중요하겠구나. 저에겐 그게 너무 중요했던 경험이니까요.


예전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모임 나오는 것도 되게 부끄러워했어요. 요즘은 10대 때부터 호르몬 치료 시작하는 분도 있고, 정체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청소년이 많아요. 운동이 포섭하는 언어 바깥에도 삶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어요. 수업을 통해 만났던 청소년이 지금 미용 전공 대학 다니고 있는데, 거기서 듣는 이야기가 되게 흥미로워요. 미용계 트랜스젠더 청소년들, 거기서도 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주춤하는 모습들. 그런 풍경들을 더 많이 보고 싶어요.


저는 트랜스젠더들이 부모가 되기도 하고,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고, 호방한 노조 동지들과 섞이기도 하는 그런 장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무지개교실이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고요. 언제든 청소년들이 와서 새로운 사람들과 섞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서도 이런저런 사람들 하고도 뒤섞여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 속에 함께하고 싶어요.




무지개교실은 학교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못해본 걸 해보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단순한 보충 수업이 아니다. 정체성을 드러내도 되는 공간, 입시를 준비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 젊은 퀴어들과 윗세대 동지들이 마구 뒤섞이는 공간. 이상하고 웃긴 이 모습이 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 아닐까.

여기서 꽁치 활동가는 담탱이면서 동료이고 때로는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수험생 신분에 맞게 삼선 츄리닝을 다섯 색깔 샀단다. 오늘은 새빨간 츄리닝을 입고 왔다. 이 사람이 가진 유머와 강인함을 만나면 세상이 정말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자신이 받은 지지를 관계로 잇고, 연대를 만드는 사람. 꽁치 활동가를 깊이 응원한다.




인터뷰어 : 보통 (유승희)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하며 사회로부터 배제, 고립된 청소년 성소수자의 다양한 위기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매일 울고 웃는 일이 많지만 언제나 사람들 덕에 풍요롭게 성장합니다. 눈 앞의 한 명이 더 행복해지길, 세상이 좀 더 평등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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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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