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광장을 만드는 활동가] 활동가 최보민의 에너지는 ‘묵묵히, 즐겁게, 열심히’ - 참여연대 최보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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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인터뷰 -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

활동가 최보민의 에너지는 ‘묵묵히, 즐겁게, 열심히’ 

- 참여연대 최보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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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최보민의 탄생


Q. 어떻게 활동가가 되었나요?

2014년에 급식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걸 다 같이 봤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근데 그때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보니, 어떤 활동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활동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었죠. 특히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인 단원고 학생들과) 또래였기 때문에 무력감이라든지, 사회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이 굉장히 심했어요. 

마침 그때 졸업사진을 찍었는데 ‘졸업 사진 찍을 때 노란 리본 달고 찍자고 친구들에게 제안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 노란 리본을 구매해서 사물함에 넣어놨었죠.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사물함 앞에서 노란 리본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을 한참 했어요. 친구들한테 하자고 해도 과연 될까, 너무 나댄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사물함에 리본을 그대로 넣어 놓은 채로 그냥 졸업사진을 찍게 됐죠. 그게 굉장히 지금까지도 어떤 후회로 남아있어요. 사회적인 이슈나 불합리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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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 청년활동가 기억순례에 참여해 팽목기억관에서 다른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최보민 활동가. / 사진 = 4.16연대


사실 제 또래 활동가들이랑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정말 많은 수의 활동가들이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고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더라고요. 저와 비슷한 나이대 활동가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정말 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마치 1980년대 청년들에게 광주가 그랬듯이.


Q. 참여연대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죠? 꿈꿔왔던 활동가가 되어보니 어땠나요?

사법감시센터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사법 영역을 감시하는 활동을 하는데요, 세부적으로는 검찰, 법원, 그리고 변호사 이렇게 세 부류에 대한 감시를 진행하고 있고 보통은 검찰과 법원에 대한 감시가 주력입니다. 그중에서 제가 주요하게 하는 일은 아무래도 검찰보고서 일이 가장 큰 거 같아요. 검찰이나 수사기관에 대해, 수사를 누가 했는지 정보 공개 청구를 하고 그 결과를 받아서 기록하는 작업을 주요하게 하고 있고, 검찰보고서가 발행되고 나면 거기에 실린 사건을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저희 홈페이지에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요. 그 사건들을 시민들에게 좀 더 쉽게 소개하고 알리는 활동들, 뉴스레터 발송하는 활동까지 하고 있습니다. 

활동가가 되어보니 가장 예상과 달랐던 것은, 포부에 가득차서 들어왔는데, 이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온 건데, 사실은 현실은 그렇지는 않잖아요. 예를 들어 제도를 바꾸고 법을 바꾼다는 게 긴 호흡을 가지고 실패해 가면서 해야 하는 활동이기도 하고요. 

또, 제가 활동하는 곳이 이름이 사법감시센터이기 때문에 사법 피해자 분들의 연락을 되게 많이 받아요. 그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절절하고 해결이 필요한 문제들이지만 그걸 해결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려야 될 때 느껴지는 그런 무력감 같은 것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개별 사건 대응이 아니라 제도 개선 위주로 활동하니까, 그리고 또 개별 사건들을 저희가 모두 할 수도 없죠.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 또한 저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가 제도 개선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결과적으로는 좀 더 피해를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그래도 좀 이어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활동가로 마주한 비상계엄, 그리고 비상행동


Q. 12월 3일 10시 20분,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늦은 시간이다 보니 핸드폰으로 재밌는 걸 보면서 하루 마무리하려 했는데 상근자 텔레그램방에 소식이 올라온 걸 봤어요. 처음엔 가짜뉴스라고 생각했어요. 그럴 리가 있냐. 상근자 방이 난리가 났고 저도 생방송 보면서 이게 진짜구나 알게 되었고. 상근자 방에 상근자들 어떻게 해라, 집에서 상황 보면서 대기해라, 지침이 내려오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되게 긴장된 상태로 그 밤을 보냈던 거 같아요. 결국 자긴 했는데, 왜냐하면 다음 날을 또 준비해야 해서. 자기 직전까지도 걱정되었고 일종의 공포감을 느끼면서 잠에 들었죠.  


Q. 비상행동에는 어떻게 결합하게 되었고 무슨 일을 했나요?

실무적으로는 계엄 직후부터 결합해서 활동을 했어요. 비상행동("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파면 이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이름을 바꿈)이 출범하기 전에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 비상행동’이라는 연대체가 있었고 그 연대체에서 저희 팀장님이 주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백업하는 일을 제가 같이 했었거든요. 본격적으로 비상행동이 발족하고 나서는 언론 대응팀에서 활동하게 됐어요. 언론팀에서는 주로는 비상행동 행사를 알리거나 혹은 입장낼 때 보도자료 배포를 주요하게 했고요 릴레이 기자회견를 한다든지, 릴레이 시국선언 한다든지, 여러 단체에서 진행하는 기자회견 보도자료를 배포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기자회견은, 대표단이 단식농성을 하다가 의료진에서 중단해야 한다는 소견을 받고 급하게 의장단을 병원으로 모시는 상황에서 급하게 기자 브리핑 정도로 진행했는데 그때 취재진들도 많이 왔어요. 단식농성을 하던 의장단이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장면을 보는 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사람들이 이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헌법재판소가 이 선고를 지연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약간 이런 생각이 든 것이 가장 컸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최후의 수단인 생명을 갈아내면서까지 그 수단까지 선택했어야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어요. 


4ec47c4b34079.jpg범시민대행진에서 행진하는 시민들과 함께 '파면 파면 윤석열 파면' 구호를 외치는 최보민 활동가 / 사진=참여연대


Q. 비상행동 일을 해보니 어땠어요? 참여연대 활동과 비슷한 면도, 다른 면도 있을 거 같아요. 

긴호흡으로 활동을 가져가는 일과 당장 오늘 뭘 해야 하는지를 긴급하게 논의해서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의 템포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또 사법감시 센터에서 일하다보면 나가는 현장이 굉장히 제한적이거든요. 국회를 간다든지, 법원 앞, 검찰청 앞, 공수처 앞 딱 그 정도거든요. 

비상행동에서 활동 할 때는 광화문 광장에 있다가 여의도 앞에도 갔다가 수사기관들 앞에도 갔다가 한남동 갔다가 이런 현장들이 정말 다양하고 많았어요. 그런 점도 저에게는 되게 큰 차이로 느껴졌던 거 같아요. 시민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도, 이건 너무 명확한 의제들이고 이 명확한 의제들에 대해 어떻게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것인지가 되게 주요하게 고민했던 지점이에요. 어떻게 쉽게 풀어내고 설명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참여해주세요”가 주된 메시지였어요. 방향 자체가 달라서 그것도 저에게는 되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경험의 폭이 넓어진 느낌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저에게는 또래 활동가들과 같이 일하게 되는 기회였어요. 또래 청년 활동가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고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있었지만 이 사람들이랑 직접 일을 같이 해볼 기회는 저는 많지 않았거든요. 일을 하면서 좀 더 가까워지고 이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나눌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좀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그 활동가들, 특히 청년 활동가와의 관계 맺음에 있어서 저는 되게 얻는 게 많은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Q. 계엄과 광장을 겪으면서 활동가로서 새롭게 보이거나 고민하게 된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새롭게 고민하게 된 것은… 사실 이거는 고민의 비중이 좀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운동에 어떻게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것인가 혹은 어떻게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끌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 거 같아요. 

사법감시센터에서 활동할 때는 시민의 참여라든지 목소리 담아낸다는 것이 굉장히 제한적으로만, 예를 들어 모금을 한다든지, 정보를 전달하고 의견을 피드백 받는다든지. 그런데 계엄과 광장을 겪으면서는 시민 자원활동가들 없이는 이 집회가 굴러가지 않는 상황이었고, 그리고 이 사회대개혁을 위한 의제를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이것도 어떻게 보면 좀 제한적일 수는 있지만 어쨌든 시민들이 모이는 공론장을 계속해서 열었고, 그 공론장에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있었고 거기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게속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그런 활동들을 계속 같이 하고 또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면서 이 결국에는 시민들의 참여가 중심이 되는 활동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을 좀 하게 된 것 같아요.


Q. 개인적으로 비상행동 경험 중 최고의 한 장면을 꼽는다면?

최고의 한 장면은 파면 결정된 날입니다. 이때 무대 앞에서 프레스 라인 관리하고 선을 지키고 통제하는 역할을 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 결국에는 통제선을 풀고 사이드로 빠졌는데 그제서야 감정들이 막 올라오면서 펑펑 울었거든요.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일할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실무를 하면서 정신없이 일들 쳐내고 이럴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사실 저는 그때 분노도 막 너무 힘들고 이러니까 그냥 적정선에서 느꼈는데 그 감정들이, 이제 다 끝났다... 물론 다 끝나진 않았죠. 사회대개혁이 남아 있으니까, 근데 이게 일단 하나가 해결이 됐구나 하나가 끝났구나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막 쏟아져서 주변에서 저를 보면서 비웃으시고 깔깔거리고 웃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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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서십자각터 농성장 천막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최보민 활동가


계속해보겠습니다 


Q. 오늘 인터뷰에서도 말씀하셨고,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실린 집담회 글에서 젊은 활동가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생겨서 좋다고 말씀하신 걸 읽었어요. 또래 활동가들 만나는 이러저러한 프로그램도 적극 참여하시는 거 같고요. 활동가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네 맞아요. 관심이 많이 가는 이유는 저한테 되게 큰 힘이 되기 때문이에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조직에서 일을 하면서 젊은 활동가로서, 저연차 활동가로서 고민이나 고충이 좀 생기는 거 같아요. 단체 내부에서 이야기를 해서 해결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화모임을 나간다든지 저연차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소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고연차 활동가와 저연차 활동가들 간의 인식 차에에서 오는 고민지점이라든지. 그리고 오히려 우리 단체 외부에 있는 활동가들한테 이야기했을 때 인사이트를 얻는 것도 많고요.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쉽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래 집단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 그런 어떤 대화 욕구를 저연차 혹은 젊은 활동가들이 모인 곳에서 풀어낼 수 있다 보니 그럼 지점에서 좀 힘이 많이 되는 거 같아서 이런 네트워크가 시민사회라는 이 판에 대한 애정을 좀 가지게 해주는 거 같아요. 그래서 좋아해요. 그리고 재밌어요. 사람들이 다 좋아서. 

비상행동 저연차 활동가들과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어요. 일 외적으로도 각자 단체 이야기 듣고, 특히 좋았던 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거예요. 언론대응팀에서 민언련과 활동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민언련 노동조합과 노동절 집회에도 같이 나갔어요. 시민사회단체에서 노동조합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누게 되고, 서촌에 사무실이 있는 단체에서 일하는 젊은 활동가들이랑 나중에 한번 만나자, 그런 걸 추진하기도 하고요.


Q. 소중한 또래 활동가들, 저연차 활동가들에게 한마디, 영상편지 느낌으로 부탁드려요. 

일단은 너무너무 고생 많았다는 얘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고, 그리고 이제 비상행동 활동은 비율이 좀 많이 줄어서 각자 단체 활동을 이제 많이 하고 있는데, 사실 그렇게 하면서도 좀 고생 많이 하겠지만 힘을 내고, ‘이 시민사회 안에서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 이 시민사회를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함께 이 일원으로서 지탱해 나가고 있다’라는 마음을 잃지 않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싶네요.


Q. 참여연대에서 2년 반, 그중 반년을 비상행동에서 활동을 하면서 여러 생각, 경험이 쌓였을 거 같아요. 12.3 이전과는 좀 달라진 것도 있을 거고. 그런 거를 고려해서, 어떤 활동가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어요. 

저는 첫 번째로는 건강한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비상계엄을 거치면서 되게 지쳤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지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려면 어떻게 활동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고민을 요새 좀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운동도 좀 하고 주면 사람들이랑 이런 고민 나누면서 방안을 좀 찾아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두 번째로는 전문성을 갖춘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학술적인 전문성을 말하는 건은 아니고, 그걸 포괄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저는 저를 활동가라고 소개할 때 굉장히 부끄럽거든요. 내가 이 활동을 하고있는 건 맞지만 활동가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가로서의 능력, 활동가로서의 전문성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되어요. 그게 어떤 형태의 전문성일지는 모르겠지만 활동가로서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나를 활동가로 부끄러움 없이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Q. 건강한 활동, 전문성 있는 활동가가 되기 위해 보민님, 주변 동료, 시민사회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우선은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요. 유도를 잠깐 했는데 흐지부지 되었고, 재밌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지요. 저만 노력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주변 동료들, 특히 참여연대 노조에서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같이 고민하고, 고민하는 자리가 있을 때 목소리 많이 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민사회 차원의 고민이 필요한 거 같아요. 단체마다 사정이나 환경이 다르고 단체에서 각자 하는 고민은 있겠지만, 청년 활동가 대화 모임이라든지 이런 데 나가 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이 이 활동을 내가 지속하고 싶은데 소진이라든지,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누거든요. “너무 힘들다, 너무 지친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또 듣게 되고. 시민사회 차원에서 활동가들의 일, 활동가들의 노동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문성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요? 책임을 넘기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전문성은 선배들이 고민해서 키워주면 좋겠어요. 다만 과로는 시키지 말고 전문성만 키워라(웃음). 


인터뷰어의 말

최보민 활동가를 인터뷰하고 나서 인터뷰 원고를 확인받기 위해 메신저를 열어보니 작년에 한 차례 업무로 그가 나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내가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 저연차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선배활동가로 참여했을 때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막연하게 같은 활동가로서 동료의식은 있었지만 제대로 아는 사이라곤 할 수 없었다. 

힘들지만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일. 인터뷰를 하는 내내 시민사회 운동에 대해, 활동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최보민 활동가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달됐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묵묵히 열심히 즐겁게 해내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좋은 에너지를 전염시킨다. 최보민 활동가와 인터뷰 하고 나서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글쓴이 : 이용석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 평화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니 평화활동가가 되었다. 프로야구 기록지 살피기, 보드게임 하기, 라디오 듣기, 책 읽기를 좋아한다. <평화는 처음이라>, <병역거부의 질문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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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12.3 계엄 이후, 꾸준히 광장을 만들고 참여한 시민들, 그리고 그들 곁에는 광장을 함께 만들어간 활동가가 있었습니다. 광장을 열기 위해 집회신고부터 무대설치, 공연 섭외, 발언자 선정, 참여자 안전, 홍보까지. 분야를 넘어 매주 거리에서 광장을 만들고, 지키고, 지원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로 지금의 역사를  기록하고, 사회 변화에 있어 시민사회 활동가의 역할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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