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니트컴퍼니에서 만난 동료다. 니트컴퍼니는 니트생활자가 만든 '백수만 입사할 수 있는 회사'다. 월급은 없지만, 무업 기간을 전환의 기간으로 보낼 수 있도록 넘치는 응원을 주고받는다. 수는 무업 기간 동안 다양한 일을 시도했다. 수가 청년 공간 유유기지 강화의 매니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좋은 활동가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 증거는 수가 통과한 시간 속에 있었다. 직장생활, 무업 기간, 니트컴퍼니 입사, 독립 출판, 동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연대한 경험에 있었다. 이제 막 청년들과 함께하는 일을 시작한 새싹 활동가 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듣고 싶었다.

#회사 밖으로 나오다.
"웹디자이너였어요. 여성 의류를 파는 곳이었고, 주로 사진 보정하는 일을 했어요. 모델을 더 예쁘게, 더 말라 보이게 하는 일이었어요. 온라인으로 제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일을 하는 거니까 거기서 보람을 찾으려 했는데, 그런 일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면, 보람을 느끼고 동력이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외모를 완벽하게 보정하는 일이 점점 무뎌지고 하기 싫더라고요.
업계가 나랑 안 맞나. 내 역량이 부족한가 그런 고민을 하던 때에 첫 번째 회사에서 임금체불이 되고, 이직한 두 번째 회사가 폐업하는 바람에 백수가 됐어요. 그러다 의류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하게 됐는데, 디자인 업무 외에도 기획이나 번역 등 해본 적 없는 일도 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계속하다가 견디기 어려워서 퇴사했죠. 그 시기에 역량을 키우고 싶어서 회사 다니면서 코딩 학원에 다니기도 했어요. 그동안 해온 일이랑 합쳐서 이직할 수도 있잖아요. 나중에는 그럴 동력이 없이 마비된 채로 회사를 나와서 오래 쉬었어요. 30대 초반에 회사랑 연이 끝났던 것 같아요."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했지만, 모든 힘을 소진하고 퇴사한 수는 일상 속 사소한 일도 버거웠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자는 일상의 박자를 잃었다. 박자를 잃은 수는 불안했다. '저 회사로 이직하고 싶다.'는 주변 친구들의 욕망을 보며 자신에게는 그런 욕망이 없음을 발견했다. 그러다 우연히 니트컴퍼니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저 회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니트컴퍼니는 '뭐라도 되겠지'라는 사훈을 가진 백수만 출근할 수 있는 가상 회사다. 참여자가 니트컴퍼니 대표를 면접해 보는 '거꾸로 면접', 100일 간의 회사 생활, 종무식으로 진행된다. 회사 생활은 매일 할 수 있는 업무를 정해서 출퇴근과 함께 인증한다. 사소한 것도 일이 된다. 100일 간의 회사 생활이 끝나면 업무를 하며 만든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 겸 종무식을 한다.
#작은 발전을 지켜봐 준 니트컴퍼니
"매일 할 수 있는 업무를 정해야 했어요. 머리로는 자격증 공부나 취업 준비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못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다 매일 할 수 있는 건 먹을 거다! 생각하고 일어나서 차 마시기로 정했어요. 눈 뜨자마자 할 일이 생긴 거죠. 그동안 아침에 눈 떠도 해야 하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견디는 것만 있었는데, 일어나서 차 마시고 사진 찍고 인증하는 게 일이 되면서 일상의 루틴이 생겼어요. 사원들이 내 글에 하트를 눌러주고 댓글도 달아주며 응원해 줬어요. 그때 나를 위한 소비를 하나도 못 했는데 다이소에 가서 차 마실 컵을 하나 샀어요. 그때 샀던 물컵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작은 발전을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게 큰 동력이 됐어요. 조금씩 바뀌는 걸 알아채 주는 사람들이 있고 또 사람들이 수고롭지 않게 서로를 알아주는 게 좋았어요.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게 컸던 것 같아요. 니트컴퍼니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때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아요.
'그래, 나는 나의 속도로 가는 거야.'라고 머리로는 알잖아요. 백 번 얘기해도 현실은 그대로고 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고 그런 걸 누구보다 내가 느끼니까 항상 마음속에 죄책감이 있었어요.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실제로 체험을 한거죠. 늦어도 괜찮다는걸요.

수가 제본한 책들
니트컴퍼니 종무식 할 때 전시회를 해요. 그 때 처음으로 주간 업무 보고서를 직접 제본해서 책을 만들었어요. 세 권을 만들어서 판매도 했는데 완판했어요. 처음 만들어 보는 거라 멋있지 않았는데 마음에 들었어요. 책을 만들었다는 자체로 뿌듯했죠. 그 후 <백수 일기>라는 책을 직접 제본해서 만들었어요. 기한이 부족했고 인쇄 비용이 많이 들어서 직접 제본했다고 했지만, 사실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공정에 내 수고가 들어가고 어설픈 모습을 좋아하는 거죠. 사람들에게 부족하다고 소개하지만, 사실 그런 모습을 좋아해요. 그 후 만들었던 책도 직접 제본해서 몇몇 독립 서점에 입고했어요.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만들어요. 돈가스처럼 주문 즉시 튀겨드리는 것처럼요. (웃음)"
<백수 일기>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퇴사 후 나의 생활은 장기간 무기력했고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곧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는 걸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오랜 무기력을 뒤로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법을 몸으로 체득한 수는 <백수 일기> 이후 3권의 책을 직접 제본해서 만들었고, 인쇄 실수가 생긴 이면지로 노트를 만들었다. 손수 만든 책과 노트로 플리마켓에 참여했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동료들과 도래클럽을 만들다.
플리마켓은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플리마켓 신청에 떨어지거나, 참가비가 비싸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다. 수는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잠시 좌절했다. 니트컴퍼니에서 만난 문어빵, 쟌쟌, 토리와 비슷한 고민을 나누다 "우리끼리 플리마켓을 열어볼까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니트생활자 사무실을 빌려 플리마켓을 열었다.
플리마켓은 니트컴퍼니의 영향을 받아 무업 청년을 대상으로 했다. 참여자를 선정하지 않고 선착순으로 모집했다. 참가비는 1,000원이었다. 창작물이 없지만, 함께 하고 싶은 무업 청년들에게 중고 물품을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수와 동료들이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경험이 녹아든 다정한 플리마켓이었다. 그 후 그 동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여러 사람이나 물건이 주위에 동그랗게 둘러 있는 모양이라는 뜻의 도래도래라는 단어에서 따서 '도래클럽'으로 이름 지었다.

도래클럽
"혼자 창작 활동 하다 보면 외롭고, 다른 창작자를 만나기 어렵잖아요. 도래클럽을 통해 딱 나 정도 시작하는 창작자끼리 만나는 연결의 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단한 자리는 아니어도 내 창작물을 내보일 수 있고 한두 명이라도 손님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으면 그 사람에게 어떤 동력이 될지 모르니까요. 제가 처음으로 책을 팔고 그 이후 계속 책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런 경험을 누구나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도래클럽에서 한 달에 한 번 '니트 잡화점'이라는 이름으로 플리마켓을 열었고 네트워킹 파티도 열었어요. 니트 잡화점을 하면서 알게 된 창작자들이 있는데 유형이 다 달라요. 퇴사하고 시작한 분도 있고, 두세 가지 장르를 다양하게 창작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분들의 이야기가 고유하고 흥미로웠어요. 기회가 된다면 창작자들을 인터뷰하고 싶어요."
도래클럽 동료들과 자주 하는 말은 "내가 동료 중에 가장 일을 덜 하는 것 같아요."다. 서로 일을 하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려고 시작했기에 남들보다 일을 더하는 게 억울하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혼자 하다가 동료를 만나고 함께 하는 경험을 한다. 회사 밖에서 일하는 새로운 방식을 배워 나간다.

니트잡화점에 참여하다
#유유기지 강화에서 청년들과 함께하다.
니트컴퍼니에 입사할 무렵 수는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했다.
"사회복지 공부가 너무 재밌었어요. 사람들이 복지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들 있잖아요. 왜 나라에서 그런 것까지 해줘야 하냐, 내가 낸 세금을 왜 그 사람한테 줘야 하냐 이런 질문 하는 사람들 보면 답답했거든요. 왜 복지를 해야 히는지 당연하니까 오히려 몰랐던 것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약자한테 가는 복지는 결국 다 우리에게 돌아와요. 우리도 언젠가 약자가 되잖아요.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비영리 단체에 취업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어요. '어쩌면 내가 회사 생활이 안 맞았던 건 영리 회사였기 때문일까? 그래 난 비영리 안 가봤잖아.' 비영리에서 일하는 건 어떨지 실험해 보고 싶었어요. 거기도 취업은 취업이니까 허들이 있었어요. 실제로 지원하려고 하면 경력을 요구하거나 신입이어도 지원 자격 한두 개가 걸려서 차마 지원하지 못했어요. 그때 유유기지 강화 채용 공고가 딱 뜬 거예요. 지원 자격을 봤을 때 걸리는 게 하나도 없어서 냅다 썼어요. 전이었으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하다가 놓쳤을 텐데 그때는 무조건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합격했어요!"
수가 유유기지 강화에서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청년들이 다양한 욕구를 갖고 있잖아요. 또 자신의 욕구를 모를 수 있으니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강화는 수도권이랑 가까워서 청년 유출이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수도권이랑 가까워서 입시, 취업처럼 해야 하는 일에서 살짝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작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대도시에서 벗어나 강화에 살아볼 수도 있고요. 삶을 실험해 보는 거죠. 강화에 있는 무업 청년들도 만나고 싶어요. 동네가 작으면 사람들이 나의 상황을 다 알아서 오는 외로움이 있을 것 같아요. 지역에서는 다른 형태의 고립이 있을 수도 있고요.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수는 30대 초반 회사와 연이 끝나고 7년 만에 유유기지 강화에 취업했다고 했지만, 무업 기간이 일하지 않은 시간은 아니었다. 웹디자이너의 경험을 살려 사진 누끼 따는 재택 아르바이트를 하고,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서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니트컴퍼니 입사와 동시에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서 공부했다. 수제본으로 책을 만드는 창작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위해 포장 아르바이트, 지역 행사가 있는 곳에 가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제본 워크숍을 열고 동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숱한 아르바이트와 창작 활동을 병행했다.
니트컴퍼니 종무식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던 책 세 권을 팔았다. 수는 이 작은 경험을 기억했다. 이 경험으로 다음 책을 만들고 동료들과 도래클럽을 만들고 유유기지 강화 매니저가 됐다. 작은 일을 모아 큰일로 만들었다. <백수 일기>의 부제는 '이력서에 쓸 수 없는 날들'이다. 이력서에 쓸 수 없는 시간 동안 수는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법을 몸으로 배웠다. 몸으로 배웠기에 자신의 속도를 쉽게 잃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청년들과 나눌 것이다.
#서울 #니트컴퍼니 #수 #도래클럽 #니트잡화점
글쓴이 : 선선
퇴사 후 <비자발적 퇴사자의 일일>을 썼습니다. 백수만 출근 가능한 회사인 니트컴퍼니에 입사 후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글을 씁니다. 동료들과 회사 밖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합니다.

수는 니트컴퍼니에서 만난 동료다. 니트컴퍼니는 니트생활자가 만든 '백수만 입사할 수 있는 회사'다. 월급은 없지만, 무업 기간을 전환의 기간으로 보낼 수 있도록 넘치는 응원을 주고받는다. 수는 무업 기간 동안 다양한 일을 시도했다. 수가 청년 공간 유유기지 강화의 매니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좋은 활동가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 증거는 수가 통과한 시간 속에 있었다. 직장생활, 무업 기간, 니트컴퍼니 입사, 독립 출판, 동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연대한 경험에 있었다. 이제 막 청년들과 함께하는 일을 시작한 새싹 활동가 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듣고 싶었다.
#회사 밖으로 나오다.
"웹디자이너였어요. 여성 의류를 파는 곳이었고, 주로 사진 보정하는 일을 했어요. 모델을 더 예쁘게, 더 말라 보이게 하는 일이었어요. 온라인으로 제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일을 하는 거니까 거기서 보람을 찾으려 했는데, 그런 일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면, 보람을 느끼고 동력이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외모를 완벽하게 보정하는 일이 점점 무뎌지고 하기 싫더라고요.
업계가 나랑 안 맞나. 내 역량이 부족한가 그런 고민을 하던 때에 첫 번째 회사에서 임금체불이 되고, 이직한 두 번째 회사가 폐업하는 바람에 백수가 됐어요. 그러다 의류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하게 됐는데, 디자인 업무 외에도 기획이나 번역 등 해본 적 없는 일도 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계속하다가 견디기 어려워서 퇴사했죠. 그 시기에 역량을 키우고 싶어서 회사 다니면서 코딩 학원에 다니기도 했어요. 그동안 해온 일이랑 합쳐서 이직할 수도 있잖아요. 나중에는 그럴 동력이 없이 마비된 채로 회사를 나와서 오래 쉬었어요. 30대 초반에 회사랑 연이 끝났던 것 같아요."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했지만, 모든 힘을 소진하고 퇴사한 수는 일상 속 사소한 일도 버거웠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자는 일상의 박자를 잃었다. 박자를 잃은 수는 불안했다. '저 회사로 이직하고 싶다.'는 주변 친구들의 욕망을 보며 자신에게는 그런 욕망이 없음을 발견했다. 그러다 우연히 니트컴퍼니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저 회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니트컴퍼니는 '뭐라도 되겠지'라는 사훈을 가진 백수만 출근할 수 있는 가상 회사다. 참여자가 니트컴퍼니 대표를 면접해 보는 '거꾸로 면접', 100일 간의 회사 생활, 종무식으로 진행된다. 회사 생활은 매일 할 수 있는 업무를 정해서 출퇴근과 함께 인증한다. 사소한 것도 일이 된다. 100일 간의 회사 생활이 끝나면 업무를 하며 만든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 겸 종무식을 한다.
#작은 발전을 지켜봐 준 니트컴퍼니
"매일 할 수 있는 업무를 정해야 했어요. 머리로는 자격증 공부나 취업 준비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못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다 매일 할 수 있는 건 먹을 거다! 생각하고 일어나서 차 마시기로 정했어요. 눈 뜨자마자 할 일이 생긴 거죠. 그동안 아침에 눈 떠도 해야 하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견디는 것만 있었는데, 일어나서 차 마시고 사진 찍고 인증하는 게 일이 되면서 일상의 루틴이 생겼어요. 사원들이 내 글에 하트를 눌러주고 댓글도 달아주며 응원해 줬어요. 그때 나를 위한 소비를 하나도 못 했는데 다이소에 가서 차 마실 컵을 하나 샀어요. 그때 샀던 물컵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작은 발전을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게 큰 동력이 됐어요. 조금씩 바뀌는 걸 알아채 주는 사람들이 있고 또 사람들이 수고롭지 않게 서로를 알아주는 게 좋았어요.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게 컸던 것 같아요. 니트컴퍼니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때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바뀐 것 같아요.
'그래, 나는 나의 속도로 가는 거야.'라고 머리로는 알잖아요. 백 번 얘기해도 현실은 그대로고 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고 그런 걸 누구보다 내가 느끼니까 항상 마음속에 죄책감이 있었어요.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실제로 체험을 한거죠. 늦어도 괜찮다는걸요.
수가 제본한 책들
니트컴퍼니 종무식 할 때 전시회를 해요. 그 때 처음으로 주간 업무 보고서를 직접 제본해서 책을 만들었어요. 세 권을 만들어서 판매도 했는데 완판했어요. 처음 만들어 보는 거라 멋있지 않았는데 마음에 들었어요. 책을 만들었다는 자체로 뿌듯했죠. 그 후 <백수 일기>라는 책을 직접 제본해서 만들었어요. 기한이 부족했고 인쇄 비용이 많이 들어서 직접 제본했다고 했지만, 사실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공정에 내 수고가 들어가고 어설픈 모습을 좋아하는 거죠. 사람들에게 부족하다고 소개하지만, 사실 그런 모습을 좋아해요. 그 후 만들었던 책도 직접 제본해서 몇몇 독립 서점에 입고했어요.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만들어요. 돈가스처럼 주문 즉시 튀겨드리는 것처럼요. (웃음)"
<백수 일기>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퇴사 후 나의 생활은 장기간 무기력했고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곧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는 걸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오랜 무기력을 뒤로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법을 몸으로 체득한 수는 <백수 일기> 이후 3권의 책을 직접 제본해서 만들었고, 인쇄 실수가 생긴 이면지로 노트를 만들었다. 손수 만든 책과 노트로 플리마켓에 참여했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동료들과 도래클럽을 만들다.
플리마켓은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플리마켓 신청에 떨어지거나, 참가비가 비싸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다. 수는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잠시 좌절했다. 니트컴퍼니에서 만난 문어빵, 쟌쟌, 토리와 비슷한 고민을 나누다 "우리끼리 플리마켓을 열어볼까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니트생활자 사무실을 빌려 플리마켓을 열었다.
플리마켓은 니트컴퍼니의 영향을 받아 무업 청년을 대상으로 했다. 참여자를 선정하지 않고 선착순으로 모집했다. 참가비는 1,000원이었다. 창작물이 없지만, 함께 하고 싶은 무업 청년들에게 중고 물품을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수와 동료들이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경험이 녹아든 다정한 플리마켓이었다. 그 후 그 동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여러 사람이나 물건이 주위에 동그랗게 둘러 있는 모양이라는 뜻의 도래도래라는 단어에서 따서 '도래클럽'으로 이름 지었다.
도래클럽
"혼자 창작 활동 하다 보면 외롭고, 다른 창작자를 만나기 어렵잖아요. 도래클럽을 통해 딱 나 정도 시작하는 창작자끼리 만나는 연결의 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단한 자리는 아니어도 내 창작물을 내보일 수 있고 한두 명이라도 손님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으면 그 사람에게 어떤 동력이 될지 모르니까요. 제가 처음으로 책을 팔고 그 이후 계속 책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런 경험을 누구나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도래클럽에서 한 달에 한 번 '니트 잡화점'이라는 이름으로 플리마켓을 열었고 네트워킹 파티도 열었어요. 니트 잡화점을 하면서 알게 된 창작자들이 있는데 유형이 다 달라요. 퇴사하고 시작한 분도 있고, 두세 가지 장르를 다양하게 창작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분들의 이야기가 고유하고 흥미로웠어요. 기회가 된다면 창작자들을 인터뷰하고 싶어요."
도래클럽 동료들과 자주 하는 말은 "내가 동료 중에 가장 일을 덜 하는 것 같아요."다. 서로 일을 하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려고 시작했기에 남들보다 일을 더하는 게 억울하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혼자 하다가 동료를 만나고 함께 하는 경험을 한다. 회사 밖에서 일하는 새로운 방식을 배워 나간다.
니트잡화점에 참여하다
#유유기지 강화에서 청년들과 함께하다.
니트컴퍼니에 입사할 무렵 수는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했다.
"사회복지 공부가 너무 재밌었어요. 사람들이 복지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들 있잖아요. 왜 나라에서 그런 것까지 해줘야 하냐, 내가 낸 세금을 왜 그 사람한테 줘야 하냐 이런 질문 하는 사람들 보면 답답했거든요. 왜 복지를 해야 히는지 당연하니까 오히려 몰랐던 것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약자한테 가는 복지는 결국 다 우리에게 돌아와요. 우리도 언젠가 약자가 되잖아요.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비영리 단체에 취업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어요. '어쩌면 내가 회사 생활이 안 맞았던 건 영리 회사였기 때문일까? 그래 난 비영리 안 가봤잖아.' 비영리에서 일하는 건 어떨지 실험해 보고 싶었어요. 거기도 취업은 취업이니까 허들이 있었어요. 실제로 지원하려고 하면 경력을 요구하거나 신입이어도 지원 자격 한두 개가 걸려서 차마 지원하지 못했어요. 그때 유유기지 강화 채용 공고가 딱 뜬 거예요. 지원 자격을 봤을 때 걸리는 게 하나도 없어서 냅다 썼어요. 전이었으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하다가 놓쳤을 텐데 그때는 무조건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합격했어요!"
수가 유유기지 강화에서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청년들이 다양한 욕구를 갖고 있잖아요. 또 자신의 욕구를 모를 수 있으니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강화는 수도권이랑 가까워서 청년 유출이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수도권이랑 가까워서 입시, 취업처럼 해야 하는 일에서 살짝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작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대도시에서 벗어나 강화에 살아볼 수도 있고요. 삶을 실험해 보는 거죠. 강화에 있는 무업 청년들도 만나고 싶어요. 동네가 작으면 사람들이 나의 상황을 다 알아서 오는 외로움이 있을 것 같아요. 지역에서는 다른 형태의 고립이 있을 수도 있고요.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수는 30대 초반 회사와 연이 끝나고 7년 만에 유유기지 강화에 취업했다고 했지만, 무업 기간이 일하지 않은 시간은 아니었다. 웹디자이너의 경험을 살려 사진 누끼 따는 재택 아르바이트를 하고,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서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니트컴퍼니 입사와 동시에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서 공부했다. 수제본으로 책을 만드는 창작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위해 포장 아르바이트, 지역 행사가 있는 곳에 가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제본 워크숍을 열고 동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숱한 아르바이트와 창작 활동을 병행했다.
니트컴퍼니 종무식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던 책 세 권을 팔았다. 수는 이 작은 경험을 기억했다. 이 경험으로 다음 책을 만들고 동료들과 도래클럽을 만들고 유유기지 강화 매니저가 됐다. 작은 일을 모아 큰일로 만들었다. <백수 일기>의 부제는 '이력서에 쓸 수 없는 날들'이다. 이력서에 쓸 수 없는 시간 동안 수는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법을 몸으로 배웠다. 몸으로 배웠기에 자신의 속도를 쉽게 잃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청년들과 나눌 것이다.
#서울 #니트컴퍼니 #수 #도래클럽 #니트잡화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