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교육발전소’는 충북 유일 지역 교육 문제를 다루는 교육 시민단체입니다. 충북교육발전소에서 더 나은 공교육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김성훈 사무국장을 만나 보았습니다.
#1.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성훈입니다. 현재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 지역 내 다양한 교육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활동가를 해야겠다고 특별히 마음 먹은 적은 없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사회의 불평등이 보여 사회복지와 교육에 대한 진로 고민을 했고, 대학생이 되어 보니 눈에 보이는 문제들이 있어 학생 운동을 시작했고, 교사가 되어 교육 현장에 있어 보니 역시나 보이는 문제들이 있어 교사가 아닌 시점에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2. 고교 시절 부터 교사 까지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지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인터뷰 제안을 받고 어떻게 오늘까지 오게 되었나 차분히 돌이켜 봤습니다. 그랬더니 고교시절, 대학생, 교사 재직 시절을 거쳐 오늘에 오게 된 긴 시간 동안에 몇 가지 사건들이 떠올랐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주로 봉사활동 동아리에 소속 돼 활동했습니다. 그 당시 빈부격차가 불러 온 삶의 질 차이가 무척이나 충격이었습니다. 노인요양원과 장애인복지시설 두 군데에 봉사를 다녀왔던 게 선명하게 대비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노인요양원은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어렸을 때도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분들이 가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요양원에서는 특별히 할 게 없었습니다. 세탁실에서 나온 빨랫감을 개고,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 드리고, 간단한 청소를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에 반해 장애인복지시설은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시설로 아주 열악했습니다. 위생이 좋기를 바라는 게 사치라고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IMF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는 게 아주 생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보육원에 갈 수 없는 장애인들은 장애인복지시설에 맡겨지곤 했는데, 사실상 버려지다시피 한 상태였습니다. IMF가 한 가정의 책임도 아닌데 가정이 파괴되는 걸 보면서, 개인이 원치 않은 상황에 놓여지면서 삶이 바뀌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 대학생 때는 학생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셨습니다.
네, 원래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사범대학에 가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범대에서는 ‘미발령교사완전발령추진위원회(약칭. 미발추)’라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생겨 버린 교원임용고사 때문에 교원에 임용되고도 발령받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제가 활동했던 때는 거의 끝물이었는데 사립대 사범대, 교직이수, 교육대학원 등 국립 사범대 외에도 교사가 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마련돼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들과 임용에 대해, 정부 정책에 대해 밤샘 토론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외에도 이 당시에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논리를 개발하고, 근거를 마련하고 했던 것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의 운동이 어떤 식으로 전개 되었고,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지가 그 안에 다 담기기 때문입니다.
#4. 이후 교원이 되셨고,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네, 임용고사를 통해 교사가 되었던 것은 아니고 기간제 교사를 오래 했습니다. 저는 특수교사로서 특수학교에서 만 10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교직에 있었습니다. 교직에 있을 때는 교육 환경 개선과 학생의 교육권 확보에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 환경 개선은 석면 제거 사업과 디지털 기자재 설치 사업 두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두 사업 다 정부와 여당을 설득해 이뤄낸 성과 중 하나라는 점에서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3D 프린터 등 다양한 공작 기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그것 또한 아주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활동을 더 해야겠다.’, ‘아 보람차다.’ 이런 생각보다는 정부와 여당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서 활동하시는 분께 공급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직접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이뤄지는 치열한 논리 개발의 중요성도 알게 되엇습니다. 이후 공주대 사범대 석사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5. 지금까지 이야기에서 충북이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충북 그것도 청주에 온 것 그리고 지금 충북교육발전소(이하, 발전소)에서 일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한 번도 ‘청주에 가서 살아야겠다.’ 라든지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일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청주에 오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석사 과정에 진학하고 인근에서 직장을 알아 보던 중 청주라는 도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그렇게 청주에 정착하기로 하고 일하던 중 발전소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쩌다 그냥이네요.
#6.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보면 참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습권을 온전히 보장 받지 못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 학습권을 보장해주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보장 받지 못하게 된 계기 그러니까 문제의 원인을 해결해주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아이를 위해 복지, 의료, 행정 등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다양한 방법을 논의했고,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그 아이는 저희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한 아이를 온전히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고 그 가운데 교육이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를 보고 가야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7. 발전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최근에는 단재고 설립, 오송 국제 학교 설립 반대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각종 1인 시위를 통해 더나은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송국제학교 설립 추진 반대 기자회견 중인 김성훈 사무국장(왼쪽 세 번째)
단재고 정상 개교를 위한 1인 시위 중인 김성훈 사무국장
#8. 발전소 활동도 4년이 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지역 사회를 위해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도 되고, 그것들을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도 더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는 정확히 알겠습니다.
가진 자를 더 가지게 하는 교육, 다수를 위한 교육이 아닌 소수만을 위한 교육은 하면 안 됩니다. 교육은 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9. 활동을 하며 가장 지치는 때는 언제이신가요?
활동은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게 없습니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해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를 더 잘 이끌어가 볼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은 오히려 힘들지 않습니다.
다만,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우리의 활동이 무시당할 때,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고생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종종 있곤 합니다.
#10.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동료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그 자리에서 버텨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버텨주시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됩니다. 우리의 고함에도 꿈쩍하지 않는 세상에 화도 나고, 섭섭한 마음도 들지만 뒤돌아 보면 우리는 무언가 조금씩 바꿔왔고 이뤄내 왔습니다. 세상이 시민사회를 대하는 시선이 많이 차가워지고 있고, 곁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춥고 외로운 시기 잘 버텨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입니다. 힘냅시다!
#충북 #충북교육발전소 #김성훈 #변화를만드는사람들 #공익활동가주간
인터뷰어 : 민범기(충북시민사회지원센터 팀장)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충북교육발전소’는 충북 유일 지역 교육 문제를 다루는 교육 시민단체입니다. 충북교육발전소에서 더 나은 공교육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김성훈 사무국장을 만나 보았습니다.
#1.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성훈입니다. 현재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 지역 내 다양한 교육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활동가를 해야겠다고 특별히 마음 먹은 적은 없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사회의 불평등이 보여 사회복지와 교육에 대한 진로 고민을 했고, 대학생이 되어 보니 눈에 보이는 문제들이 있어 학생 운동을 시작했고, 교사가 되어 교육 현장에 있어 보니 역시나 보이는 문제들이 있어 교사가 아닌 시점에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2. 고교 시절 부터 교사 까지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지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인터뷰 제안을 받고 어떻게 오늘까지 오게 되었나 차분히 돌이켜 봤습니다. 그랬더니 고교시절, 대학생, 교사 재직 시절을 거쳐 오늘에 오게 된 긴 시간 동안에 몇 가지 사건들이 떠올랐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주로 봉사활동 동아리에 소속 돼 활동했습니다. 그 당시 빈부격차가 불러 온 삶의 질 차이가 무척이나 충격이었습니다. 노인요양원과 장애인복지시설 두 군데에 봉사를 다녀왔던 게 선명하게 대비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노인요양원은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어렸을 때도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분들이 가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요양원에서는 특별히 할 게 없었습니다. 세탁실에서 나온 빨랫감을 개고,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 드리고, 간단한 청소를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에 반해 장애인복지시설은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시설로 아주 열악했습니다. 위생이 좋기를 바라는 게 사치라고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IMF로 인해 가세가 기울어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는 게 아주 생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보육원에 갈 수 없는 장애인들은 장애인복지시설에 맡겨지곤 했는데, 사실상 버려지다시피 한 상태였습니다. IMF가 한 가정의 책임도 아닌데 가정이 파괴되는 걸 보면서, 개인이 원치 않은 상황에 놓여지면서 삶이 바뀌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 대학생 때는 학생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셨습니다.
네, 원래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사범대학에 가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범대에서는 ‘미발령교사완전발령추진위원회(약칭. 미발추)’라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생겨 버린 교원임용고사 때문에 교원에 임용되고도 발령받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제가 활동했던 때는 거의 끝물이었는데 사립대 사범대, 교직이수, 교육대학원 등 국립 사범대 외에도 교사가 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마련돼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들과 임용에 대해, 정부 정책에 대해 밤샘 토론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외에도 이 당시에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논리를 개발하고, 근거를 마련하고 했던 것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의 운동이 어떤 식으로 전개 되었고,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지가 그 안에 다 담기기 때문입니다.
#4. 이후 교원이 되셨고,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네, 임용고사를 통해 교사가 되었던 것은 아니고 기간제 교사를 오래 했습니다. 저는 특수교사로서 특수학교에서 만 10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교직에 있었습니다. 교직에 있을 때는 교육 환경 개선과 학생의 교육권 확보에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 환경 개선은 석면 제거 사업과 디지털 기자재 설치 사업 두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두 사업 다 정부와 여당을 설득해 이뤄낸 성과 중 하나라는 점에서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3D 프린터 등 다양한 공작 기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그것 또한 아주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활동을 더 해야겠다.’, ‘아 보람차다.’ 이런 생각보다는 정부와 여당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서 활동하시는 분께 공급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직접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이뤄지는 치열한 논리 개발의 중요성도 알게 되엇습니다. 이후 공주대 사범대 석사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5. 지금까지 이야기에서 충북이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충북 그것도 청주에 온 것 그리고 지금 충북교육발전소(이하, 발전소)에서 일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한 번도 ‘청주에 가서 살아야겠다.’ 라든지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일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청주에 오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석사 과정에 진학하고 인근에서 직장을 알아 보던 중 청주라는 도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그렇게 청주에 정착하기로 하고 일하던 중 발전소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쩌다 그냥이네요.
#6.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보면 참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습권을 온전히 보장 받지 못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 학습권을 보장해주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보장 받지 못하게 된 계기 그러니까 문제의 원인을 해결해주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아이를 위해 복지, 의료, 행정 등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다양한 방법을 논의했고,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그 아이는 저희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한 아이를 온전히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고 그 가운데 교육이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를 보고 가야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7. 발전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최근에는 단재고 설립, 오송 국제 학교 설립 반대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각종 1인 시위를 통해 더나은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송국제학교 설립 추진 반대 기자회견 중인 김성훈 사무국장(왼쪽 세 번째)
단재고 정상 개교를 위한 1인 시위 중인 김성훈 사무국장
#8. 발전소 활동도 4년이 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지역 사회를 위해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도 되고, 그것들을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도 더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는 정확히 알겠습니다.
가진 자를 더 가지게 하는 교육, 다수를 위한 교육이 아닌 소수만을 위한 교육은 하면 안 됩니다. 교육은 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9. 활동을 하며 가장 지치는 때는 언제이신가요?
활동은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게 없습니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해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를 더 잘 이끌어가 볼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은 오히려 힘들지 않습니다.
다만,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우리의 활동이 무시당할 때,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고생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종종 있곤 합니다.
#10.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동료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그 자리에서 버텨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버텨주시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됩니다. 우리의 고함에도 꿈쩍하지 않는 세상에 화도 나고, 섭섭한 마음도 들지만 뒤돌아 보면 우리는 무언가 조금씩 바꿔왔고 이뤄내 왔습니다. 세상이 시민사회를 대하는 시선이 많이 차가워지고 있고, 곁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춥고 외로운 시기 잘 버텨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입니다. 힘냅시다!
#충북 #충북교육발전소 #김성훈 #변화를만드는사람들 #공익활동가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