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변만사] 활동가의 길,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시련과 어려움은 해결할 수 있어요. - 공동체활동가 정순영

건강한 에너지가 넘치는 옥천에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지칠 새가 없는 정순영이 산다. 지역에서 더 많은 일을 해 보고 싶어 기자에서 공동체 활동가의 길을 택했고 주민들을 만나고 주민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의 새로운 활동가들을 발굴하고 함께 일한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해서 가능한 일들을 최대한 즐겁게 하고 있다는 정순영을 만나기로 했다. 주민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커뮤니티 공간이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2년 동안의 준비 끝에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옥천 주민이 아니어도 ‘누구나’ 대환영일 것 같은 ‘누구나’에서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장 정순영을 만났다.   


“낙천적이고 명랑한 활동가 정순영입니다. 낙천성과 명랑함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 같아요. 그게 변화를 만드는 사람 정순영의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사단법인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소속 활동가이자,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_ 공동체 활동가 정순영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장, 사단법인 옥천순환경제공동체 활동가) /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옥천순환경제공동체(이하 법인) 사무국장에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이하 센터)장으로 일터가 바뀌었어요.

일터가 바뀌어도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여전히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소속 활동가예요. 그동안 법인이 하던 일들이 주민들에게 많이 지원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2020년 하반기에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운영을 수탁받았어요. 센터가 생겨서 법인이 하던 일들을 충분한 재원으로 더 체계적이고 확장해서 할 수 있게 되었고 저는 센터장으로 발령을 받아서 올해 1월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나홀로 상근 조직에서 10명의 동료와 함께 일하는 조직이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네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속에서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지칠 새가 없나요?

(웃음)하고 싶은 건 여전히 많은데 이제는 책임져야 할 것도 많고, 같이 가야 할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아무래도 조직에서 제일 오래 일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식구들이 들어와서 실무를 맡고 자리를 잡는데 제가 해야 할 역할이 있어요. 또 비영리 법인이 갖는 고유 업무들을 계속 해왔으니까 법인 사무국 새내기 활동가들이 너무 고생스럽지 않게 일을 배울 수 있도록 고민하고 인수인계하느라 상반기는 좀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지금은 둘 다 많이 안정화된 상태예요.


같이 일하는 활동가들은 옥천에서 활동하던 분들인가요? 

네. 모두 옥천에 살고 있고, 옥천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분들이에요. 서울과 가까워서 옥천으로 귀농, 귀촌을 굉장히 많이 하지만 의외로 활동가들이 거주지나 활동 근거지를 옮기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감내해야할 것들이 있잖아요. 전국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서울이나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왜 옥천으로 오지 않을까 생각해봤는데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일자리, 주거, 가족이 있을 경우에는 가족의 삶까지 다 고민해야 하니까. 


#. 즐겁게 만들고 즐겁게 문을 연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간 ‘누구나’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와 옥천군 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2018년 말에 저희 법인이 행정안전부의 이 공모사업을 먼저 알고 옥천군에 해보자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같이 하자고 해서 지원하게 됐어요. 다행히 충청북도 1호 사업대상 지역으로 선정이 되었고요. 저희 법인은 민간파트너로 결합해 공간 설계부터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참여했고, 2019년부터 2020년까지 2년에 걸쳐 공간을 조성하고 올해 3월에 공식 개관했어요.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설립이 결정되면서 ‘누구나’ 공간 운영을 마을공동체 지원센터가 맡기로 하고, 위탁운영자로 저희 법인이 결정됐어요. 

센터 사무실을 이 공간에 넣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기로 오게 됐고요. 법인 사무국은 시내에 따로 두고, 활동가들도 거기서 일하고 있어요. 


*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는 옥천순환경제공동체와 옥천군이 협업으로 행정안전부의 지역사회 활성화 기반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건립된 주민커뮤니티 공간으로 올해 3월에 개관했다.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누구나’는 주민 활동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에요. 활동가로서 이 공간을 굉장히 즐겁게 만들었어요. 예전에 법인이 ‘옥천사람들 공유공간’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시내에 만들어서 운영한 적 있거든요, 그 공간은 완전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공간 보증금 마련을 위해 후원 주점을 열었고 월세는 회원회비로 마련해서 3년 정도 운영했어요. 가진 것 하나 없이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유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솔직히 이 공간을 만드는 건 너무 즐겁더라고요. 정부와 지자체에서 예산을 마련한 상태여서 돈 걱정 대신 지자체와 주민이 같이 공간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어요. 사업에 선정이 되고 ‘누구나’ 함께 만들기 TFT를 꾸렸거든요, 저희 회원들도 참여했지만 커뮤니티 공간에 관심 있는 다양한 주민들도 참여해 같이 만들었어요. 1년 반 정도 팀을 운영하면서 견학도 다니고 설계 공부도 하면서 정말 즐겁게 이 공간을 만들었어요. 


‘누구나’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하나요?

‘누구나’는 저희 센터가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사람들을 모으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이 대관을 많이 하세요. 교육도 하고, 회의나 워크숍, 행사도 하고 그냥 혼자 와서 공부하는 분들도 있고요. 엄청 다양한 활동이 이 공간에서 일어나요. 센터 사무 공간이나 센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기획한 게 아니니까 열린 공간, 누구나 자유롭게 올 수 있는 공간이죠. 저희는 성실한 공간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주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제약은 있어요. 원래는 공동체 주방이라든가 먹거리 교육이라든가 여기서 뭔가 해 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식음료를 먹는 행사는 거의 못하잖아요. 동네 청년들이 여기서 파티 해보고 싶어 했는데 지금 전면적으로 금지된 상황이어서 많이 아쉬워해요. 그래도 굉장히 많은 주민들이 찾아와 주셔서 방문객 수도 꽤 많고 재미있게 잘 운영하고 있어요.


말그대로 주민주도형 커뮤니티 공간이군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는 공간 운영 외에 어떤 일을 하나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의 업무 중 하나가 이 공간을 관리하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옥천군 9개 읍면의 마을공동체 조직을 발굴하고 현장에서 활동을 컨설팅하고 지원, 모니터링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주로 현장으로 계속 다니니까 이 공간에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가 좀 독특한 위치에 있어요. 

대부분 중간지원조직은 지자체의 필요로 잘 운영할 파트너에게 위탁을 주는 방식인데 옥천은 주민 필요에 의해 마을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듯이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도 주민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껴서 지자체를 설득한 측면이 커요. 아마 충청북도에서 주민이 설득해 중간지원조직을 만들고 운영까지 책임진 경우는 옥천군이 최초일 거예요. 그러다 보니 옥천군이 이 일을 해달라 저 일을 해달라 요청하는 게 별로 없어요(웃음). 저희가 지역주민들과 해보고 싶고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다행히 옥천군도 지원을 잘해주고 있고요.

저는 민간이 주도하는 중간지원조직이 좀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중간지원조직은 주민을 지원하려고 만든 거잖아요, 행정과 주민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좀 더 주민의 필요에 맞게, 현장에 맞게 지원하려고 중간지원조직을 만든 거라면 사업이나 운영도 지자체가 발주하는 느낌보다는 주민들이 운영 주체가 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누구나’와 센터의 출발은 주민의 필요였잖아요. 주민이 만들자고 해서 같이 만들었고, 관의 협조를 이끌어내서 운영하고 있는데 앞으로 주민 중심의 운영을 어떻게 지켜갈 것이냐를 법인 활동가들, 센터 동료들과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이 구조가 튼튼해지면 제가 센터장이 아니어도 문제가 되지 않고, 활동가들이 한 단계 자기의 목표를 높이면 리더가 되는 거잖아요. 앞으로 많은 리더가 생겨날 거라고 믿어요.


#. 도모와 궁리에 능한 동네 옥천


옥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양하고 건강한 공동체’예요. 주민의 삶터로서, 공동체 활동가의 활동무대로서 옥천은 어떤 곳인가요? 

음... 옥천은 역동성이 살아있는 동네죠. 그리고 굉장히 재미있는 동네입니다. 저도 요즘 옥천을 새롭게 다시 생각하고, 여러 가지 고민도 하게 되는데요, 주민으로서도 활동가로서도 옥천은 역동적인 기운이 있고, 특히 주민들이 하고 싶은 게 항.상. 많은 동네인 것 같아요. 

1987년 민주항쟁 이후로 1989년도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되고 30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옥천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지방자치제를 제대로 하자고 지역 운동을 처음 시작한 선배들이 지역신문 만들고, 농민운동 일으키고, 환경운동도 시작하신 거였거든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동네고, 옥천 사람들은 하고 싶은 걸 도모하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도모. 이 멋진 표현을 참 좋아하는데 옥천은 ‘도모와 궁리에 능한 동네’라고나 할까요? 엄청나게 큰일들은 아닌데 계속 어디선가 뭔가를 도모하고 궁리해서 실행하는 에너지가 있는 동네인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듣고 보니 정순영과 잘 어울리는 동네라는 생각이 드네요. 

옥천이 왜 그런 것 같으냐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거든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저도 어느 정도 그런 에너지가 있는 곳에 들어온 사람이니까요. 아마 옥천이 아닌 다른 동네에서 제가 이렇게 활동하려고 했으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요즘 해요.  

저보다 앞서 지역 운동을 시작했던 선배님들과 엄청 자주 뵙는다거나 제가 그분들의 운동을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저나 후배들이 지역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면 든든한 지역의 선배로 항상 계셔주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 친구들이 뭔가 하려고 했을 때 이런 저런 눈치 보지 않고 해볼 수 있는 공기가 옥천에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옥천으로 오게 된 계기도 이런 이유일까요? 

서울 생활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막연히 농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농촌에 가서 언젠가 내 농사를 짓고 싶은데 당장 돈도 없고 기반도 없으니까 어떻게 할까 고민이 많았죠. 학교 다닐 때 언론 개혁 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옥천을 알게 됐고 진로를 모색하던 중에 옥천신문에서 공채 기자 뽑는다는 걸 봤어요. 원서를 냈는데 정말 채용될 줄은 몰랐어요. 별로 가진 게 없었던 서울 생활이어서 신문사 합격하고 일주일 만에 옥천으로 내려왔어요. 이런 게 운명인 거겠죠. 

그때 서울의 지인들은 3개월도 못 견딜 거라고 되게 걱정 많이 했어요. 시골 생활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했는데 저는 너무 좋았어요. 건강한 선배들이 있다는 게 되게 든든했거든요. 


15년 전 옥천과 지금의 옥천은 어때요? 많이 변했나요?

15년 전에는 뭔가 독보적으로 지역운동을 이끌어 나간 1세대 선배들이 계셨다면, 지금은 훨씬 폭 넓고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보여요. 여러 영역이 고루 성장해 있고 어딜 가도 사람들이 있고 뭔가 즐겁게 활동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역적으로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죠. 30년 전에 비해 인구가 엄청 많이 줄었고 계속 감소하고 있고. 전반적인 산업들도 다 쇠퇴하잖아요. 농업도 그렇고 기업들도 많이 외부로 빠져나가고 학교들도 폐교 위기에 놓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옥천이 변했다거나 옥천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농촌 지역이면 다 겪는 문제들이잖아요.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려고 계속 움직이는 주민들이 있다는 게 옥천이 가진 힘이죠. 인구는 줄었지만 우리가 같이 일하는 사람은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 하겠어는 아닌 것 같아요. 

손바닥만 한 동네에 신문, 라디오도 있고, 유투브를 기반으로 마을 미디어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꽤 많아요. 먹거리 문제나 로컬푸드, 마을 교육, 환경 이슈가 있을 때마다 지역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다양해지고 많아지는 동네니까요. 그게 옥천이 가진 큰 힘인 것 같아요.


#. 팬데믹에도 변하지 않는 것들, 돌봄의 주체들이 마을활동가들로 성장


코로나 이후에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이나 시민운동에도 변화가 생겼나요?

지난해 상반기부터 팬데믹 상황이 본격화되면서 우리 지역도 모든 걸 비대면으로 전환해야 되는 거 아니냐, 회의도 온라인으로 전환이 되는 거냐 여러 가지 상상과 우려들을 하긴 했어요. 지금 결론을 내리긴 그렇지만 우리 삶의 방식이 급속히 언택트로 바뀌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좀 덜 모이면 덜 모였지 온라인으로 전환되거나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활동과 운동 방식이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행정에서는 비대면 지침이 내려오는데 주민 조직은 ‘우리 이제 온라인으로 전환합시다’ 는 아닌 것 같아요. 삶의 방식 자체가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대규모 행사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를 활발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숫자를 줄여서 더 자주 모이고, 잠깐이라도 모일 수 있는 방식으로 가는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저희 활동이 비대면으로 전환해서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주민들을 만나야 하는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게 많겠어요. 공동체차원에서 특별히 신경 쓰거나 공동의 이슈가 있나요? 

지금 옥천은 주민 주도의 돌봄 활동이 굉장히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어요. 정부정책인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개념이 옥천군을 통해서 지역에 내려오지는 않았어요. 제가 봤을 때는 오히려 지자체 차원의 대응은 좀 느린 편이에요. 

그런데 농촌에 살아 보면 교육과 돌봄의 문제는 가장 관심사일 수밖에 없거든요. 농촌에서 돌봄은 어차피 시장 영역에서 서비스 제공이 안 되는 거잖아요. 도시는 돈을 주고라도 갈 수 있는 시설이 있지만 시골은 그런 시설 자체가 없으니까 아이를 돌보고, 어르신을 돌보는 것들이 주민들이 하면 문제가 해결이 되는 거고 주민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자체를 통해서 전달되는 서비스가 다인 거죠. 

옥천은 원래도 언론운동, 농민운동 환경운동과 함께 교육운동이 굉장히 활발한 지역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지역 아이들을 지역이 기른 거예요. 마을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돌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에 대한 고민이 몇 년 전부터 계속 있는 상황이었어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을 마을 선생님들이 같이 돌보고 기르는 거죠. 만약 마을학교라든가 마을 돌봄 공간이 없으면 아이들은 그냥 배회하는 거예요. 혼자 있거나. 그 문제를 해결하자고 옥천은 마을 차원에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돌봄 공동체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아예 학교가 문을 닫았잖아요. 엄마, 아빠는 일을 하러 가야 되니까 진짜 대책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예전부터 마을 차원에서 돌봄과 마을 교육을 했던 주민들이 조금 더 결의를 높여서 지자체나 교육청에 지원을 받아 종일 돌봄을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힘들었어요, 굉장히. 아이들을 방과 후에 두 세 시간 돌보는 것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보는 건 완전 다른 문제인 거잖아요.


그렇죠. 마을 주민들의 노력만으로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건 너무 어려운 거죠. 불가능한 미션 아닐까요?

선생님들의 역량이나 체력적인 한계도 있고 사실 정부나 지자체가 이분들의 노고를 굉장히 치하하지만 인건비로 보상을 해주지는 않았어요. 인건비가 충분하게 보장되지도 않는 자원봉사 수준에서 돌봄을 1년 이상 끌고 왔어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옥천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재난이 생겼을 때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실제 경험하면서 우리 지역은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는구나를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 법인의 주요 사명이 마을활동가들을 연결하고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보니까 지난 1년 6개월은 돌봄이나 마을 교육을 고민하는 주민들이 조금 더 전문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임의조직이었던 돌봄 조직이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할 때 설립 과정을 돕는 일에 주력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왜냐하면 뭔가 도움이 필요하고 연결되고 싶은 분들이 그 영역에 많이 계시니까. 그래서 교육도 하고 컨설팅도 하고 하다못해 모여서 커피 마시면서 지금 뭐가 힘든지 이야기하는 자리를 계속 만들었어요.  

우리가 항상 고민했던 마을 돌봄과 마을 교육 문제들이 이런 위기를 만나면서 오히려 기회가 되었어요. 행정은 이런 주민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 사람들이 뭘 할 수 있지 잘 모르잖아요. 학교가 문을 닫고 아무도 돌봄을 해 줄 수 없을 때 주민들이 나서서 하겠다고 하니 너무 고맙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예산도 지원하고 저희 법인도 돕고 하면서 1년 반을 흘러 온 것 같아요.


어쩌면 코로나가 옥천군에 새로운 마을활동가들을 탄생시켰네요. 

저희가 활동가들 만나면서 주민들도 만나고 워크샵이나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데 그동안은 “네가 활동가야, 마을 활동가야” 얘기하면 “내가 무슨 활동가야”라고 반응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번에 반갑고 좋았던 게 스스로 ‘나는 활동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정말 많으시더라고요. 저처럼 상근활동가가 아니라도 마을에서 일하는 마을활동가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주민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활동가가 뭐 별거 있느냐, 마을에서 마을과 함께 뭔가 하면 활동가지. 대단한 사람, 엄청 헌신적인 사람들만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처럼 활동하면 모두 활동가’라고 인식하시더라고요.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저는 좋더라고요. 놀랍기도 하고.

저는 그동안 비영리 조직에서 일하면서 스스로 활동가라고 정의했고, 그러면서 나만 이러고 사나, 나만 활동가인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정말 많은 활동가가 내 주변에 있고 같이 할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니까 되게 좋은 거예요. 재미있어요.


#. 혼자가 아닌 같이 해서 가능한 일들을 즐겁게

*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같이 할 사람이 많아서 좋다는 얘기가 지금보다 일을 더 많이 하겠다는 말로 들려요. 변화를 만드는 사람 정순영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같이 하는 사람들’인가봅니다. 

혼자서는 절대 못하죠. 같이 하니까 가능한 거죠.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도 당연히 혼자서는 못하는 거예요. 옥천 특유의 좋은 일을 할 때 모이는 힘이 있어요. 혼자 하지 않으니까 가능한 거죠. 혼자 했다면 여기까지 오는 게 불가능했을 거고 재미도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오늘 동료들과 같이 인터뷰를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지 충분히 이해가 되실 것 같아서. 항상 제가 앞에 서게 되지만 저 이상의 활동가들이 있거든요. 

선배들의 힘도 있고, 또래 활동가들도 있고, 요즘의 동력은 젊은 활동가들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20대, 30대 초반의 청년 활동가들이 뭘 해보겠다고 하는데 힘들어서 나는 못하겠다고 할 순 없는 거죠. 선배들이 있고, 또래도 있고, 청년들도 있으니까 거기서 힘 받아서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지칠 때도 위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20대에 학생운동을 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남지 않고 농촌으로 내려 온 건 개인적인 성향도 있었지만 도망쳤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 미안함이 오래 남더라고요. 지금도 굉장히 고생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있고요. 그래서 내가 그 친구들만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내 영역에서 좀 버티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충분히 더 해볼 수 있었는데 도망친 경험 혹은 포기했던 경험들이 있어서 새로운 터전인 옥천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도망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고 사람들을 만나보자고 스스로 많이 다짐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손 잡아주는 지역 분들이 지금까지 오는데 큰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즐겁게 신문사 기자생활을 했고, 기자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있지 않을까 해서 선배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적정한 시점에 퇴사를 했고요. 그동안 뭔가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은데 그냥 타이밍에 맞춰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 틀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시간들과 위기의 순간에 손을 잡아준 사람들 


공동체의 욕구를 조직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원칙이나 일하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있나요? 

신문사를 그만두고 처음 공동체 일을 시작했을 때 어려웠어요. NGO 영역의 일 자체를  처음 해보는 거잖아요. 그때 한 1년 정도는 좀 고군분투했었죠.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요즘 제가 항상 대뇌는 건 ‘내가 틀릴 수 있다’예요. 

공동체의 일이라는 게 돈이 많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기술과 역량들이 있어서 하는 일도 아닌 거잖아요. 조금씩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고 서로의 기술을 모아서 하는 건데 그걸 모으는 일이 진짜 쉽지가 않아요. 

저는 의외로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기자생활 할 때도 선배들과 많이 다퉜었거든요. 그런데 여러 활동과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내가 꼭 옳은 게 아닐 수 있어 내가 틀린 걸 수도 있구나’ 깨닫게 되는 일들이 있었어요. 그걸 퇴사하기 전에는 몰랐어요.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업무적으로 옳다고 했던 일인데 그때 일로 제가 활동가로 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잡아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울기도 많이 울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내가 결심을 하고 지역에서 운동을 해보겠다고 나왔는데 사람들이 왜 좀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지 않을까 하소연하면서 굉장히 좀 서러워도 했어요. 이런 과정 속에서도 정말 고마운 분들이 계셨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제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걱정과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게 원칙이야 이렇게 하는 게 맞아’라고 말하는 저의 말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거예요.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걸 전달하는 방식이라든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에 제가 너무 서툴렀던 거죠. 그렇게 성찰하는 계기들이 있었어요. 사람을 대하는 저의 방식에 대해서도 반성을 많이 했죠. 

저의 가장 큰 변화라면 예전 같았으면 ‘내가 뭘 잘못했어?’ 이랬을 텐데 지금은 그런가, 내가 뭔가 실수를 했나. 자기반성이 되게 빨라졌어요. 내가 틀릴 수 있다. 내가 틀릴 수 있고 내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제가 하는 일이 어떻게든 사람들과 같이 해야 될 수밖에 없는 일이잖아요. NGO의 일과 공동체 안에서의 일은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거예요. 이 사람들과 같이 하려면 저를 많이 내려놓아야 하고,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야 되잖아요.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노력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익숙해지기도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다 보니까 주민들도 그렇고 동료들이 저를 편하게 대하고 있는 게 느껴져요. 그런 것들이 저를 성장시키고 변화 시킨 게 아닐까 해요. 


* "옥천 특유의 좋은 일을 할 때 모이는 힘이 있어요. 책임져야 할 일은 많아졌지만 같이할 사람이 많다는 게 되게 좋아요.” 정순영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옥천순환경제공동체 동료들과 함께.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옥천순환경제공동체는 아직 조직이 10년도 안 된 조직이거든요.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100명 넘는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조직인데 되게 든든해요.

제가 연대하자고 여러 조직에 손을 내밀었을 때 한참 거절당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저를 다시 일으켜주고 위로를 해준 분들이 법인 식구들이에요. 항상 든든하게 “조금 속도를 늦춰보는 건 어떻겠느냐”라고 조언해주시거나 해결 방법을 잘 제시해 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또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다행히 처음에 불편했던 관계들도 지금 많이 풀렸어요. 

 

신문사를 나와 처음 공동체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가 정순영의 옥천생활에서 위기라면 위기였네요.  

네. 공동체 일을 처음 시작할 때가 일적으로는 가장 큰 위기였죠. 일을 해야 되는데 아무도 나랑 일을 안 하겠다고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위기라고까지 말하기는 그런데 최근에 몸이 의도치 않게 안 좋아져서 병원을 다니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걱정을 끼쳤죠. 갑상선항진증이 이미 시작되었는데 제가 몰랐던 거예요. 몸은 계속 신호를 보내는데 바빠서 피곤한 거라고 무시했어요. 극단적으로 나타난 게 시력이었는데 잘 안 보이는 거였어요. 병원에서는 왜 이 지경이 돼서야 왔냐고 했어요. 지난해는 조직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는데 몸은 아프고 병원도 계속 가야하고 그런 게 위기라면 가장 제일 큰 위기였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되게 많이 도와주셨어요.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이제는 자신도 잘 돌보면서 일을 하셔야죠. 

여전히 가족과 지인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지만 많이 좋아졌어요. 너무 많이들 걱정하시니까 ‘일을 좀 덜 해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죠.


위기를 지나 보람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행복했던 장면도 좋고요. 

활동의 측면에서는 2019년에 제가 주민들과 신청서를 쓰고 주민커뮤니티 공간이 문을 열기까지 2년 가까이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일도 많이 했으니까 막상 열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어요. 열고나서 주민들이 자주 오시고 이 공간이 너무 좋다고 즐거워하면서 이용하는 그 장면을 보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내가 이걸 해서 행복하다보다는 아름다운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우리가 즐거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 행복해지잖아요.  


그리고 항상 혼자 일하다가 동료들이 많이 늘었잖아요. 그것도 엄청 행복하죠. 옥천은 상근자가 있는 주민 조직이 별로 없어요. 다들 자기 생업이 있는데 단체 사무국장을 맡는 거죠. 저는 혼자였으니까 밥도 맨날 혼자 먹고, 휴가 개념도 없고. 그런데 상근하는 동료들이 많이 생기니까 뭔가 회사 생활의 쏠쏠한 재미라고나 할까요(웃음). 항상 사람이 옆에 있으니까 참 행복해요. 


#. 주민들이 운영 주체가 되는 건강한 중간 지원조직으로 자리 잡으면 다시 현장으로 


다시 새로운 일을 도모해보고 싶어서 궁리하는 건 없나요?

주민들의 공간을 만들었고, 새로 생긴 센터도 자리를 잡아가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요즘 제가 하는 고민은 ‘다시 현장으로 가야 하나’예요. 제가 이 자리를 좀 내려놓을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새롭게 도모해보고 싶은 영역들이 있어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는 색깔이 있는 조직이 아니어서 센터장의 위치에서는 제 개인의 다양한 활동이나 실험들이 쉽지는 않아요. 많은 주민들이 ‘누구나’에 와주셨으면 좋겠는데 혹시라도 센터장의 행동이 센터와 공간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다시 현장으로 나가면 동네를 예쁘게 가꾸고,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 함부로 버려지는 쓰레기 혹은 분리수거 문제들을 너무 어려운 환경 운동 차원이 아니라 현장에서 조금씩 해결해보는 주민 조직을 만들어 보고 싶거든요. 

저는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명확한 건 옥천에 건강한 여성 조직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고르게 성장한 옥천이지만 유일하게 성장하지 못한 불모지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1세대 언니들은 그런 영역이 없어도 지역에서 활동을 해 왔지만 저와 후배들은 그런 욕구들이 있어요.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여성의 장점을 더 발휘하고 싶은. 옥천군 지역주민의 절반이 여성인데 아직도 선출직 여성의원이 한 명도 없어요. 비례대표 한 명만 정당 차원에서 근근이 내는 게 옥천의 현실이에요. 지역운동의 전 영역에서 정말 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리더가 되지 못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의사 결정은 남성들에 의해 좌우되는 걸 보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돌봄 주체 90%가 여성인데 정작 정책이나 예산 결정은 남성 중심의 회의 문화에서 이뤄져요. 돌봄의 주체들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목소리를 내고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거죠.

기자생활을 할 때는 기자라는 역할이 주는 어떤 힘이 있었기 때문에 별로 눈치 보지 않고 일하다 보니 그런 걸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역을 움직이고 변화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현장에 우리가 있는데 왜 여성들이 결정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끼지 못할까 그런 얘기들을 동료들과 많이 해요. 이건 비정상인적인 거잖아요. 

지역에서 엄청난 한 명의 스타를 키워 정치를 하자는 게 아니라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정치를 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는 모두 수평적인 관계니까 주눅 들지 말자는 정신무장을 하는 거죠. 이런 고민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죠. 누군가는 계속 고민하고 행동해야 변할 수 있는 거니까요.

민-관 협치가 잘되고 있다고 해도 풀뿌리 운동이라든가 주민들이 지켜갈 운동의 영역이 있는데 아직은 그 영역을 끌고 갈 주민조직이 많지 않으니까 걱정도 되고, 내가 하러 가야 하지 않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죠. 현장에는 분명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5년 후에도 현장 활동가의 모습일까요? 

아마도요. 제가 활동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는 이상은 어떤 영역이든 현장 활동가로 있겠죠. 요즘 제 개인적인 고민이기도 하고 제가 5년 후에 어디에 있을 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데 저는 연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활동가로서 제가 가진 원천기술 중에 하나가 데이터를 보고, 분석해서 문제를 파악하는 거예요. 그게 활동을 하는 데 되게 힘이 되기도 하고요.

 

* 정순영 센터장은 기자에서 활동가로 나설 때 가장 많이 응원해 준 사람으로 사회적경제 연구자 故장원봉 박사를 꼽았다. 12년 전 처음 만나 멘토와 동지로 가르침을 주신 분이라고 했다. 고인을 기리는 추모집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하여>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여서  늘 책상 위에 둔다는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해그리드 인형과 함께.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옥천을 주제로 논문과 연구보고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해외 출판물을 보면 로컬 활동가들이 대학과 협업해서 연구 논문을 많이 내잖아요. 국내에서도 그런 노력을 하시는 교수님들, 학교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옥천은 아직 그런 게 활발하지 않은 것 같아요. 대학원이나 학위를 하지 않아도 연구하는 것에 갈증이 있어요.

지역에 보석 같은 연구자가 계시는데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주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옥천 뿐 아니라 모든 지역에 현장 활동을 데이터화한 지역 연구 보고와 논문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연구에 집중하려면 사실 지금처럼 활동에 집중하는 게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연구년이나 안식년을 좀 만들어야 되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옥천의 건강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주민이 필요해서 스스로 만든 조직들이에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도 옥천은 시작이 독특해요. 지자체가 관심 갖지 않았지만 주민들끼리 사회적경제를 좀 해 봐야겠다고 결심해서 시작됐어요. 그렇게 저도 12년 정도 지역에서 사회적경제 운동에 동참하고 있거든요. 2011년부터 3년 간 옥천신문사를 중심으로 사회적경제 함께 만들기 프로젝트를 했고 그때 발굴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지역 차원의 사회적경제 운동과 관련해 200% 주민 주도로 출발한 옥천의 사회적경제 운동 과정과 성과 그리고 전망에 관한 보고서를 제가 한번 써보고 싶어요. 전 과정 어딘가에서 저도 항상 함께 했으니까요. 그래서 좀 집중해서 쓰고 싶은데 여전히 할 일이 많아서 이걸 언제쯤 시기를 잡아서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웃음). 항상 연구하고 싶은 주제들이 있는데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그룹이 많았으면 좋겠고, 현장을 아는 사람이 쓰는 연구논문이 좀 많아지면 좋겠어요.


지난해 활동가 인터뷰에서 공익활동기금을 모으고 싶다고도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공익활동기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뜻 맞는 여러 조직들이 작은 돈이라도 다 같이 모아서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조직들에게 제안하고 설명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서 당장은 좀 힘든 상황인 것 같아요. 우리 법인만이라도 이사회 의결 과정을 거쳐서 종자돈을 마련하고 단체들에게 제안하면서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기금을 만들고 싶어요. 법인조직이 안정되고 어느 정도 재정 윤곽이 나오면 청년기금이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금융도 해보고 싶고요. 


#. 변화를 만들고 싶은 청년들이 손 내밀 때 제일 먼저 손잡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함께 일하는 청년활동가들이나 지역에서 활동해보고 싶은 활동가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활동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뭔가 도모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때 하는 거잖아요. 젊은 활동가들에게 ‘지역에 오면 혹은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면 다 도와드릴 수 있어요’는 거짓말인 것 같아요. 최근에 청년들과 문화 프로그램사업을 하고 있는데 청년들이 이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진짜 하고 싶어?” 라고 물었어요. 돈을 준다니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라고 했어요.  

제 경험상 뭔가 하고 싶어서 신청해서 지원을 받고 프로그램을 해내는 게 너무 익숙해지면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가 하는 물음표와 맞닥뜨릴 때가 있어요. 분명 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하다 보니까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지역으로 오고 싶은 분이든, 지역에 사는 청년들이든 뭔가 하고 싶다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나, 원하는 게 뭘까 아주 깊이 고민하면 좋겠어요.

냉정한 말일 수는 있는데 변화를 만들고 싶으면 내가 움직여야 되는 거지, 누가 뭘 대신해주는 건 없어요. 다만 변화를 만들고 싶은 청년들이 사람을 모으고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언제나 제일 먼저 같이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청년들이 사람을 모으고 뭔가 일을 도모하기 어려운 시대예요. 저희 세대만 해도 와 달라고 하면 오고, 같이 하자고 하면 해주고 그런 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청년들은 명확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모여요. 청년활동가들이 이 길을 너무 고생스럽지 않게 찾아갔으면 좋겠는데 저도 그걸 경험해보지 않아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요. 


‘하고 싶은 걸 깊게 생각하라’ 평범한 조언 같지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말이네요.

저도 그랬고 모든 활동가들이 자기 비전이 명확하면 그 비전을 향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예전에 농담 반 걱정 반으로 “정국장, 뭘 그렇게 열심히 해?”하는 말을 들으면 “저희 법인을 엄청 부자로 만들 거예요.” 라고 농담처럼 얘기했어요.
부자라는 표현이 좀 우습긴 한데, 우리 법인을 지역 안에서 그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지역에서 필요한 일들을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벌여나갈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거든요.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직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옥천순환경제공동체는 비영리 법인이지만 컨설팅이나 연구 용역 사업도 해요. 그 사업을 시작할 때 내부 토론이 엄청나게 있었는데 저는 저희가 잘할 수 있고 저희가 했을 때 지역에 훨씬 도움이 되는 영역이라면 그 사업을 하는 게 맞다고 얘기했어요. 지금도 그 사업들을 하고 있는데 재정적으로도 법인을 좀 더 안정적으로 가져가고 체계도 갖추겠다는 제 나름의 비전이 있었던 거죠.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건 확고한 자기 비전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네요. 여기까지 오는 동력이기도 했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했고, 그 길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인되면 시련이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다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까지 이렇게 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래, 어떻게든 될 거야’하면서 즐겁게 웃으면서 너무 진지하지 않게 일하면 좋겠어요. 실없는 농담과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변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결을 지켜가려고 해요. 맡은 직책이 많아지고 복잡한 일들이 많아져도 짓눌리지 않고 명랑하게, 귀하게 일을 계속 벌여나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지금도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하면서 삽니다. 



피플포체인지가 만난 공동체 활동가 정순영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도모와 궁리를 즐기는 지역 탐험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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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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