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에게 해시태그를 붙인다면 #사회운동가, #진보 정치인, #커밍아웃, #요양보호사, #구술생애사, #작가, #홈리스활동가 일 것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을 합쳐 놓은 것 같다. 2008년 그녀는 커밍아웃 후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그 후 그녀는 진보 정치를 내려놓고 어디로 가서 내 밥 벌면서 소신을 실천하고 살지 고민했다. 2008년은 '돌봄 노동의 사회화'가 대두되던 때였고, 여성에게 전가된 무급 돌봄 노동이 임금 노동이 되었다. 최현숙은 요양보호사가 되어 밥을 벌었고, 요양보호사 여성 동료들을 만나 노동 운동을 하기 위해 조직 활동을 했다.
나는 최현숙의 책을 읽고 구술생애사에 대해 알게 됐다. 한 사람의 삶을 듣고, 그녀의 시선으로 한 사람의 삶을 해석한 책이었다. 책으로 만난 그녀의 인상은 솔직한 사람이었다. 책과 인터뷰로 그녀를 만났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인터뷰 제안을 했고, 그녀는 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서울역 근처 카페에서 최현숙을 만났다. 서울역 근처에서 홈리스 행동 활동을 하고 오셨냐고 물으니, 인터뷰가 끝나면 갈 예정이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질문을 건넸다.
사진출처 : 빅이슈 인터뷰 사진 (https://bigissue.kr/magazine/new/337/2548)
#. 구술생애사 작업의 시작
Q. 요양보호사를 시작하면서 구술생애사 작업을 시작하셨어요. 구술생애사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요양보호사가 되고 한 노인을 주 5~6일, 4시간씩 만나면서 관계가 만들어졌어요. 더구나 노인들은 젊은 세대보다 곁을 내준다거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해요. 제가 돌보는 과정에서 노인들이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가 굉장히 귀하게 들렸어요. 말로는 나 살아온 거 소설로 쓰면 열 그루마가 된다고 말만 하지 직접 기록할 엄두는 못 내요. 조금만 옆구리 찌르면 넘어와요. (웃음)
노인은 사회문화적 상류층이 아닌 이상 자기 생애를 시대적, 역사적, 계급적, 젠더 적인 측면으로 보지 못하죠. 저 하나 살아온 게 너무 기가 막히고 구구절절하고 징글징글하죠. 개인의 구구절절과 징글징글 속에 사회가 있어요. 한 개인의 삶을 풀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해석하는 게 중요하죠.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조명 해내는 게 제 구술생애사 작업의 지향점이에요.
Q. 구술생애사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었나요?
최현숙이라는 사람이 구술생애사를 한다면 제가 그동안 사회운동을 하면서 가졌던 시대, 역사, 계급, 젠더 등 여러 관점 속에서 쓰니까요.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죠. 나는 이렇게 해석했는데 너는 어떻게 해석할래? 묻는 거예요. 선배들이 이렇게 살았는데 후배인 너는 어떻게 살아갈래? 이런 질문도 함께요.
제 관점이 다 옳다는 게 아니에요. 사회운동을 했고 현재 홈리스 행동과 여러 활동을 하지만, 제 관점이 사회운동의 관점과 다를 때가 있어요. 이런 차이에서 나의 관점을 확인하는 거죠. 그럴 때 토론이 필요하면 토론도 하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차이로 놔두기도 하고요.
#. 그녀의 귀에 소수자의 목소리가 꽂히다.
Q. 한 인터뷰에서 구술생애사 할 사람을 '침 발라 놓는다'고 하셨는데, 어떤 분들을 침 발라 놓는지 궁금해요.
우리 사회에서 낙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꽂혀요. 우리 사회의 정상 이데올로기 밖에 있는 사람들, 소수자성이 깊은 사람들이요. 사람들이 자기 인생에서 우여곡절을 겪지만, 삶에서 상처라고 느끼는 지점은 우리 사회의 정상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요.
딱 촉이 오는 사람들은 저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요. 홈리스 중에서도 그래요. 나도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던 어떤 혐오, 편견을 건드려주는 사람들에게 끌려요. 특히 노숙 현장에 남성 노숙인의 경우에는 공격적인 사람들도 많고, 여성 중에서도 나보다 훨씬 센 여자들이 많아요. (웃음)
Q.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 두렵지 않으신가요?
말초적인 두려움이 있죠. 여성 홈리스 이야기가 담긴 <그여자가방에 들어가신다> 인터뷰 주인공은 전과 30범이에요. 좋은 관계일 때는 괜찮다가도, 관계가 삐걱거릴 때는 온갖 욕을 다해요. 그럴 때는 거리두기도 하고, 냉정한 기간도 가져요. '그 사람은 사회적 약자고 나는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니까 끝까지 친절하고 다정하게 해야지.' 이렇게 안 해요. 싸울 때 되면 싸워요. 서로 밑바닥을 드러내면서 할 말 다 해요. 그 과정에서 라포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제 고정관념이 깨지기도 하고 관계가 다르게 맺어지기도 해요.
홈리스 야학 동료들과 나들이
Q. 구술생애사 작업을 할 때 작가님만의 철칙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제가 했던 구술생애사 인터뷰이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의 관계가 있다가 인터뷰이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인터뷰 주인공은 3~4년 알고 지내다 구술 작업을 했어요. 구술 작업 들어가기 전에 라포가 충분히 형성돼 있었고,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왜 내가 이 사람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지 분명해졌을 때 구술 작업을 해요.
제가 인터뷰이로 찾아가는 사람들은 소수자성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외적으로 공격적이거나 수줍어하기도 하고요. 빈곤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드니까 훨씬 예민한 사람들이죠. 특히 사회적 낙인이 많은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이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자주 만나고, 어울려서 놀고, 밥 먹고, 노래 부르고 그런 과정에서 만나는 거죠. 관계 속에서 구술 작업을 해요.
Q.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면서 아찔했던 실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천당하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김복례 할머니는 극단의 빈곤을 사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젊은 시절에 정신대를 피해서 급하게 한 결혼 때문에 매독균에 감염이 됐어요. 그때 감염으로 얼굴이 얽었고 언어 장애가 심해요. 내가 그 양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김복례 할머니의 자녀 두 분과 함께 인터뷰했어요. 이게 굉장히 안 좋은 구도예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식들 있는 자리에서 한다는 건, 자식들 있는 데서나 나올 말만 나오는 거죠.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워요. 자식들도 알고 엄마도 아는 징글징글한 가족사는 피하는 거죠.
모든 작업은 한계가 있어요. 한계 때문에 오히려 다른 특징을 가질 수 있죠. 김복례 할머니는 언어장애가 있었고, 자식들과 함께 인터뷰한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각자 가진 삶의 해석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게 가능했어요. 언제 엄마와 자식들이 이렇게 앉아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 봤겠어요. 각자 품고만 있었던 거지.
Q. 구술생애사 작업물을 인터뷰이와 어떻게 공유하고 소통하시나요?
인터뷰이에게 초고를 검토받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지껏 구술 작업했던 주인공 중 많은 사람들이 글씨를 못 읽거나 읽어도 긴 문장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럴 때는 초고를 녹음해서 들려줘요. 녹음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본인에게 한번 보여주는 거죠. 많은 경우에 "최 선생이 알아서 잘했겠지" 라고 하지만 검토를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석과 관련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죠. 예를 들어 어떤 인터뷰이가 나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우리 아들이 고생해서 서울대 갔다. 가난 극복을 성공이라고 보죠. 저는 성공이라고 보지 않아요. 빈곤 극복을 보람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사회적 성공에 의해서 성패가 갈린다고 보지 않아요.
#. 다른 시선으로 가난을 보다.
Q. 작가님과 인터뷰이 사이 해석이 달랐던 경우가 있었나요?
<할배의 탄생>에 나오는 두 번째 인터뷰이였던 이영식 씨가 생각나요. 남성적이지 않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군대를 갔어요. 군대 내 폭력이 힘들어서 월남 파병을 선택했고 전쟁이라는 더 폭력적인 상황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져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한동안 떠돌이처럼 지내다가 목수로 계속 일했고 계속 가난하게 살았어요. 이 사람은 자기가 제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선생님이 왜 쓸모없냐" 물었더니, "결혼도 안 했고 자식 하나 못 만들고 가난하게 살고..."그때 고시원에 사셨어요. 제가 이영식 씨에게 "가난하게 산 게 도대체 누구한테 잘못이냐?"라고 물었어요.
우리 사회는 성공, 효율, 물질 이런 것으로 판단을 하니까 이 양반 자신도 그런 관점을 내면화하고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도 그건 최 선생이나 그렇지 밖에 나가서 물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지나고 나서는 달라졌어요. 이분의 결정적인 상처는 아버지로부터의 상처였는데 아버지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끊어진 형제들과 다시 왕래도 하고요. 조금씩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굉장히 좋은 분이었어요.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를 하면서 만났던 분인데 안부 확인차 전화하면 다른 노인들은 다시 전화하지 않거든요. 이분은 꼭 다시 전화해요. 나 잘 있다. 그 얘기 하려고 다시 전화하는 분이에요.
Q. 전화하는 게 업무인 거죠?
노인들의 자살과 고독사 예방 업무에요. 어떤 노인들은 핵심을 찔러요. "안 죽었어!" (웃음)
Q. 저는 가난을 성공한 사람들에게 들었어요. 그들의 가난은 과거에 있었고, 가난을 말하는 이유는 지금의 성공을 더 빛나게 표현하려는 하나의 수단처럼 느껴졌어요. 저도 가난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작가님은 가난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홈리스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1등부터 100등까지 줄을 세워놓으면 꼴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꼴등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홈리스라고 할 때 그게 너냐, 나냐의 문제인 것뿐이지 이런 존재들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일자리는 없고, 늙고, 병들고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계속 극단적인 빈곤의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어요. 기껏해야 굶어 죽지 않을 죽을 정도의 복지가 있는 상황에서 그런 사람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죠.
빈곤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 전체로 봤을 때 가장 생태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도둑질을 해, 에너지를 많이 써먹기를 해, 하다못해 죄를 지어도 가난한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죄의 양과 질이 얼마나 많겠어요. 무죄할 수는 없지만, 적게 죄를 지었고, 적게 해로웠고, 남을 억압하지도 않았고, 가난했으니까 많이 소비하지 않았고, 욕심을 내지도 않았고요. 그랬다는 면에서 가장 생태적이고 좋은 삶이죠. 저는 그게 정말 사회적으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Q.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에요. 첫 소제목 '나는 도둑년이었다.'부터 강렬했어요.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화자가 지독하게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솔직하게 고백하고, 해방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작가님의 힘은 무엇인가요?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에도 나와 있지만, '도벽'이라는 단어를 글씨로도 못 썼어요. 꼭 써야 할 때는 '도'자 하나만 쓰고 '벽'은 동그라미로 표시했어요. 제게 심각한 어둠이었고 해석할 수 없었죠. 도벽의 습관은 20대 중반쯤에 끝났지만, 도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야 글로 쓰든 뭘 하든 할 텐데. 해석할 생각을 못 했어요. 깊은 어둠이어서 들여다보지 않은 거죠.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며 남의 생애를 듣다 보면 내 인생을 이야기하게 됐어요. 남의 어둠을 들으려면 내 어둠도 꺼내야지 서로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인터뷰이는 말하는데 저는 듣기만 하면 인터뷰이가 대상화되고 깊은 이야기가 안 나와요. 인터뷰이가 자신의 결정적인 어둠을 이야기할 때 모양은 다르더라도 내 어둠을 이야기하는 게 좋아요. 내가 먼저 내 어둠을 까고 나오면 너는 그랬냐, 나는 이랬다면서 자기 어둠도 까고 나오죠. 그러면서 저는 청소년, 청년 시절의 어둠으로 되돌아갔어요.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면서 내 어둠을 반추하게 됐어요.
저는 모든 걸림돌은 밟고 일어서면 디딤돌이라고 생각해요. 걸려서 넘어졌지만 일어나서 재수 없네 하고 지나가면 그건 그냥 돌이고, 일어나서 그 돌을 밟고 올라서면 디딤돌인 거죠. 내게 온 어둠이든, 상처든, 고통이든, 시행착오든 잘 통과하면 오로지 나만 가질 수 있는 힘이에요. 남의 고통이 아니라 내 고통이었으니까. 내 삶을 통해서 얻어내는 나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출처 : 채널예스 인터뷰 사진 (https://ch.yes24.com/Article/View/54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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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천주교 사회운동,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 후 총선 출마, 요양보호사가 되고 시작된 구술생애사. 홈리스 행동과 함께하는 홈리스 구술생애사 작업까지. 최현숙의 삶이 하나의 사회운동 같다. 그녀는 자신이 쓴 구술생애사 책의 독후감을 찾아본다고 했다. <할배의 탄생>을 본 어느 독자가 쓸데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썼다고, 종이가 아깝다는 글을 봤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나는 그 말이 그녀에게 어떤 어둠도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 독자를 찾아 구술 작업을 제안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녀가 했던 다른 인터뷰에서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를 얘기하며 "죽어서 천국, 지옥이 있다면 나는 당연히 지옥이에요. 지옥이 얼마나 엉망일 거야? 가서 주거권 싸움하고 인권 싸움할 거예요."라고 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회운동을 하겠다는 최현숙. 죽을 때까지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
#홈리스 #최현숙 #서울 #요양보호사 #구술생애사 #인터뷰 #활동가인터뷰
글쓴이 : 선선
퇴사 후 <비자발적 퇴사자의 일일>을 썼습니다. 백수만 출근 가능한 회사인 니트컴퍼니에 입사 후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글을 씁니다. 동료들과 회사 밖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합니다.
최현숙에게 해시태그를 붙인다면 #사회운동가, #진보 정치인, #커밍아웃, #요양보호사, #구술생애사, #작가, #홈리스활동가 일 것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을 합쳐 놓은 것 같다. 2008년 그녀는 커밍아웃 후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그 후 그녀는 진보 정치를 내려놓고 어디로 가서 내 밥 벌면서 소신을 실천하고 살지 고민했다. 2008년은 '돌봄 노동의 사회화'가 대두되던 때였고, 여성에게 전가된 무급 돌봄 노동이 임금 노동이 되었다. 최현숙은 요양보호사가 되어 밥을 벌었고, 요양보호사 여성 동료들을 만나 노동 운동을 하기 위해 조직 활동을 했다.
나는 최현숙의 책을 읽고 구술생애사에 대해 알게 됐다. 한 사람의 삶을 듣고, 그녀의 시선으로 한 사람의 삶을 해석한 책이었다. 책으로 만난 그녀의 인상은 솔직한 사람이었다. 책과 인터뷰로 그녀를 만났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인터뷰 제안을 했고, 그녀는 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 서울역 근처 카페에서 최현숙을 만났다. 서울역 근처에서 홈리스 행동 활동을 하고 오셨냐고 물으니, 인터뷰가 끝나면 갈 예정이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질문을 건넸다.
사진출처 : 빅이슈 인터뷰 사진 (https://bigissue.kr/magazine/new/337/2548)
#. 구술생애사 작업의 시작
Q. 요양보호사를 시작하면서 구술생애사 작업을 시작하셨어요. 구술생애사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요양보호사가 되고 한 노인을 주 5~6일, 4시간씩 만나면서 관계가 만들어졌어요. 더구나 노인들은 젊은 세대보다 곁을 내준다거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해요. 제가 돌보는 과정에서 노인들이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가 굉장히 귀하게 들렸어요. 말로는 나 살아온 거 소설로 쓰면 열 그루마가 된다고 말만 하지 직접 기록할 엄두는 못 내요. 조금만 옆구리 찌르면 넘어와요. (웃음)
노인은 사회문화적 상류층이 아닌 이상 자기 생애를 시대적, 역사적, 계급적, 젠더 적인 측면으로 보지 못하죠. 저 하나 살아온 게 너무 기가 막히고 구구절절하고 징글징글하죠. 개인의 구구절절과 징글징글 속에 사회가 있어요. 한 개인의 삶을 풀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해석하는 게 중요하죠.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조명 해내는 게 제 구술생애사 작업의 지향점이에요.
Q. 구술생애사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었나요?
최현숙이라는 사람이 구술생애사를 한다면 제가 그동안 사회운동을 하면서 가졌던 시대, 역사, 계급, 젠더 등 여러 관점 속에서 쓰니까요.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죠. 나는 이렇게 해석했는데 너는 어떻게 해석할래? 묻는 거예요. 선배들이 이렇게 살았는데 후배인 너는 어떻게 살아갈래? 이런 질문도 함께요.
제 관점이 다 옳다는 게 아니에요. 사회운동을 했고 현재 홈리스 행동과 여러 활동을 하지만, 제 관점이 사회운동의 관점과 다를 때가 있어요. 이런 차이에서 나의 관점을 확인하는 거죠. 그럴 때 토론이 필요하면 토론도 하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차이로 놔두기도 하고요.
#. 그녀의 귀에 소수자의 목소리가 꽂히다.
Q. 한 인터뷰에서 구술생애사 할 사람을 '침 발라 놓는다'고 하셨는데, 어떤 분들을 침 발라 놓는지 궁금해요.
우리 사회에서 낙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꽂혀요. 우리 사회의 정상 이데올로기 밖에 있는 사람들, 소수자성이 깊은 사람들이요. 사람들이 자기 인생에서 우여곡절을 겪지만, 삶에서 상처라고 느끼는 지점은 우리 사회의 정상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요.
딱 촉이 오는 사람들은 저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요. 홈리스 중에서도 그래요. 나도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던 어떤 혐오, 편견을 건드려주는 사람들에게 끌려요. 특히 노숙 현장에 남성 노숙인의 경우에는 공격적인 사람들도 많고, 여성 중에서도 나보다 훨씬 센 여자들이 많아요. (웃음)
Q.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 두렵지 않으신가요?
말초적인 두려움이 있죠. 여성 홈리스 이야기가 담긴 <그여자가방에 들어가신다> 인터뷰 주인공은 전과 30범이에요. 좋은 관계일 때는 괜찮다가도, 관계가 삐걱거릴 때는 온갖 욕을 다해요. 그럴 때는 거리두기도 하고, 냉정한 기간도 가져요. '그 사람은 사회적 약자고 나는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니까 끝까지 친절하고 다정하게 해야지.' 이렇게 안 해요. 싸울 때 되면 싸워요. 서로 밑바닥을 드러내면서 할 말 다 해요. 그 과정에서 라포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제 고정관념이 깨지기도 하고 관계가 다르게 맺어지기도 해요.
홈리스 야학 동료들과 나들이
Q. 구술생애사 작업을 할 때 작가님만의 철칙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제가 했던 구술생애사 인터뷰이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의 관계가 있다가 인터뷰이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인터뷰 주인공은 3~4년 알고 지내다 구술 작업을 했어요. 구술 작업 들어가기 전에 라포가 충분히 형성돼 있었고,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왜 내가 이 사람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지 분명해졌을 때 구술 작업을 해요.
제가 인터뷰이로 찾아가는 사람들은 소수자성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외적으로 공격적이거나 수줍어하기도 하고요. 빈곤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드니까 훨씬 예민한 사람들이죠. 특히 사회적 낙인이 많은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이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자주 만나고, 어울려서 놀고, 밥 먹고, 노래 부르고 그런 과정에서 만나는 거죠. 관계 속에서 구술 작업을 해요.
Q.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면서 아찔했던 실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천당하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김복례 할머니는 극단의 빈곤을 사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젊은 시절에 정신대를 피해서 급하게 한 결혼 때문에 매독균에 감염이 됐어요. 그때 감염으로 얼굴이 얽었고 언어 장애가 심해요. 내가 그 양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김복례 할머니의 자녀 두 분과 함께 인터뷰했어요. 이게 굉장히 안 좋은 구도예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식들 있는 자리에서 한다는 건, 자식들 있는 데서나 나올 말만 나오는 거죠.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워요. 자식들도 알고 엄마도 아는 징글징글한 가족사는 피하는 거죠.
모든 작업은 한계가 있어요. 한계 때문에 오히려 다른 특징을 가질 수 있죠. 김복례 할머니는 언어장애가 있었고, 자식들과 함께 인터뷰한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각자 가진 삶의 해석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게 가능했어요. 언제 엄마와 자식들이 이렇게 앉아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 봤겠어요. 각자 품고만 있었던 거지.
Q. 구술생애사 작업물을 인터뷰이와 어떻게 공유하고 소통하시나요?
인터뷰이에게 초고를 검토받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지껏 구술 작업했던 주인공 중 많은 사람들이 글씨를 못 읽거나 읽어도 긴 문장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럴 때는 초고를 녹음해서 들려줘요. 녹음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본인에게 한번 보여주는 거죠. 많은 경우에 "최 선생이 알아서 잘했겠지" 라고 하지만 검토를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석과 관련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죠. 예를 들어 어떤 인터뷰이가 나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우리 아들이 고생해서 서울대 갔다. 가난 극복을 성공이라고 보죠. 저는 성공이라고 보지 않아요. 빈곤 극복을 보람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사회적 성공에 의해서 성패가 갈린다고 보지 않아요.
#. 다른 시선으로 가난을 보다.
Q. 작가님과 인터뷰이 사이 해석이 달랐던 경우가 있었나요?
<할배의 탄생>에 나오는 두 번째 인터뷰이였던 이영식 씨가 생각나요. 남성적이지 않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군대를 갔어요. 군대 내 폭력이 힘들어서 월남 파병을 선택했고 전쟁이라는 더 폭력적인 상황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져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한동안 떠돌이처럼 지내다가 목수로 계속 일했고 계속 가난하게 살았어요. 이 사람은 자기가 제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선생님이 왜 쓸모없냐" 물었더니, "결혼도 안 했고 자식 하나 못 만들고 가난하게 살고..."그때 고시원에 사셨어요. 제가 이영식 씨에게 "가난하게 산 게 도대체 누구한테 잘못이냐?"라고 물었어요.
우리 사회는 성공, 효율, 물질 이런 것으로 판단을 하니까 이 양반 자신도 그런 관점을 내면화하고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도 그건 최 선생이나 그렇지 밖에 나가서 물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지나고 나서는 달라졌어요. 이분의 결정적인 상처는 아버지로부터의 상처였는데 아버지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끊어진 형제들과 다시 왕래도 하고요. 조금씩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굉장히 좋은 분이었어요.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를 하면서 만났던 분인데 안부 확인차 전화하면 다른 노인들은 다시 전화하지 않거든요. 이분은 꼭 다시 전화해요. 나 잘 있다. 그 얘기 하려고 다시 전화하는 분이에요.
Q. 전화하는 게 업무인 거죠?
노인들의 자살과 고독사 예방 업무에요. 어떤 노인들은 핵심을 찔러요. "안 죽었어!" (웃음)
Q. 저는 가난을 성공한 사람들에게 들었어요. 그들의 가난은 과거에 있었고, 가난을 말하는 이유는 지금의 성공을 더 빛나게 표현하려는 하나의 수단처럼 느껴졌어요. 저도 가난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작가님은 가난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효율성 중심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홈리스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1등부터 100등까지 줄을 세워놓으면 꼴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꼴등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홈리스라고 할 때 그게 너냐, 나냐의 문제인 것뿐이지 이런 존재들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일자리는 없고, 늙고, 병들고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계속 극단적인 빈곤의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어요. 기껏해야 굶어 죽지 않을 죽을 정도의 복지가 있는 상황에서 그런 사람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죠.
빈곤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 전체로 봤을 때 가장 생태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도둑질을 해, 에너지를 많이 써먹기를 해, 하다못해 죄를 지어도 가난한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죄의 양과 질이 얼마나 많겠어요. 무죄할 수는 없지만, 적게 죄를 지었고, 적게 해로웠고, 남을 억압하지도 않았고, 가난했으니까 많이 소비하지 않았고, 욕심을 내지도 않았고요. 그랬다는 면에서 가장 생태적이고 좋은 삶이죠. 저는 그게 정말 사회적으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Q.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에요. 첫 소제목 '나는 도둑년이었다.'부터 강렬했어요.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화자가 지독하게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솔직하게 고백하고, 해방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작가님의 힘은 무엇인가요?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에도 나와 있지만, '도벽'이라는 단어를 글씨로도 못 썼어요. 꼭 써야 할 때는 '도'자 하나만 쓰고 '벽'은 동그라미로 표시했어요. 제게 심각한 어둠이었고 해석할 수 없었죠. 도벽의 습관은 20대 중반쯤에 끝났지만, 도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야 글로 쓰든 뭘 하든 할 텐데. 해석할 생각을 못 했어요. 깊은 어둠이어서 들여다보지 않은 거죠.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며 남의 생애를 듣다 보면 내 인생을 이야기하게 됐어요. 남의 어둠을 들으려면 내 어둠도 꺼내야지 서로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인터뷰이는 말하는데 저는 듣기만 하면 인터뷰이가 대상화되고 깊은 이야기가 안 나와요. 인터뷰이가 자신의 결정적인 어둠을 이야기할 때 모양은 다르더라도 내 어둠을 이야기하는 게 좋아요. 내가 먼저 내 어둠을 까고 나오면 너는 그랬냐, 나는 이랬다면서 자기 어둠도 까고 나오죠. 그러면서 저는 청소년, 청년 시절의 어둠으로 되돌아갔어요.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면서 내 어둠을 반추하게 됐어요.
저는 모든 걸림돌은 밟고 일어서면 디딤돌이라고 생각해요. 걸려서 넘어졌지만 일어나서 재수 없네 하고 지나가면 그건 그냥 돌이고, 일어나서 그 돌을 밟고 올라서면 디딤돌인 거죠. 내게 온 어둠이든, 상처든, 고통이든, 시행착오든 잘 통과하면 오로지 나만 가질 수 있는 힘이에요. 남의 고통이 아니라 내 고통이었으니까. 내 삶을 통해서 얻어내는 나만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출처 : 채널예스 인터뷰 사진 (https://ch.yes24.com/Article/View/54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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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천주교 사회운동,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 후 총선 출마, 요양보호사가 되고 시작된 구술생애사. 홈리스 행동과 함께하는 홈리스 구술생애사 작업까지. 최현숙의 삶이 하나의 사회운동 같다. 그녀는 자신이 쓴 구술생애사 책의 독후감을 찾아본다고 했다. <할배의 탄생>을 본 어느 독자가 쓸데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썼다고, 종이가 아깝다는 글을 봤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나는 그 말이 그녀에게 어떤 어둠도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 독자를 찾아 구술 작업을 제안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녀가 했던 다른 인터뷰에서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를 얘기하며 "죽어서 천국, 지옥이 있다면 나는 당연히 지옥이에요. 지옥이 얼마나 엉망일 거야? 가서 주거권 싸움하고 인권 싸움할 거예요."라고 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회운동을 하겠다는 최현숙. 죽을 때까지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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