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변화를만드는사람들] 말할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갖는 것이 중요해요. 작은 그룹이든 큰 사회든 - 미디어 활동가 김설해

피플포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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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두고 누군가는 미디어 덕분이라 하고 누군가는 이게 다 미디어 때문이라고 한다. 미디어의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미디어를 잘 읽고 쓰고 있을까? 누구나 미디어를 잘 읽고 쓰는 시대에 살고 있긴 한 걸까? 

김설해는 미디어활동가다. 청소년,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미디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 고발자가 아닌, 연대자로 활동하는 김설해를 만났다. 누군가를 인터뷰를 하고 온다며 카메라와 각종 장비를 양쪽 어깨에 둘러메고, 두 손에 들고 나타났다.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설해입니다. 공룡에서 활동한 이후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서 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좀 난감하긴 한데, 예전에는 미디어활동가라고 스스로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받은 미디어 교육을 계기로 대학생 때 활동을 시작해서 미디어센터에서도 일했고, 영상을 가지고 계속 활동해서  ‘난 미디어활동가야’ 생각하고 살았어요. 지금은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미디어를 쓸 줄 아는, 활동가입니다. 주로 미디어로 작업을 하거나 제작, 교육 관련한 일들을 합니다."

(사진 촬영 : 천막사진관 오상민)

 

미디어로 변화를 만드는 사람, 김설해로 소개해도 될까요?

네. 그렇게 소개해 주셔도 괜찮아요.  


공룡은 청주에 있지만 전국을 다니며 필요한 일을 한다고 들었어요. 

공부모임으로 시작한 공룡이 만들어진 건 12년이 되었어요. 사직동이라는 청주 구도심에서 오랫동안 청소년 공부방이랑 한글 문해학교를 운영하는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이 만든 단체예요. 모단체가 있던 사직동에서 그동안 만나왔던 공부방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마을에서 같이 살아가기 위한 작업이나 교육을 해보자고 만들었어요. 저는 공룡이 공간을 오픈하는 시점에 합류해서 11년 째 같이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제 고향은 전북인데요. 대학을 경상남도 진주에서 다녔어요. 진주에서 미디어 활동을 시작을 했고 독립 다큐멘터리 조연출로 참여하면서 4년간의 진주 활동을 정리하고 서울로 오게 됐어요. 2009년 2월, 그때가 용산 참사가 있었던 시기였거든요. 알고 지내던 활동가들이 현장에 프레스룸처럼 미디어센터도 만들고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었어요. 현장을 지키면서 철거민들과 같이 투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다큐멘터리 후반작업 했어요. 장례를 치르고 투쟁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서 1년 정도의 서울 활동을 마무리하고 청주로 오게 됐죠. 지금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계속 살면서 활동하고 있고요. 청주, 그중에서도 사직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긴 한데 예전에 맺었던 관계들도 있고 또 공룡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투쟁 현장에서 연대 활동을 하다보니까 사회 이슈가 있는 지역을 찾아가게 돼요. 밀양 송전탑 투쟁 지역이라든가 강정 해군 기지 반대하는 분들이 있는 곳을 가다보니까 지역을 좀 다양하게 돌아다니고 있긴 한 것 같아요. 

2011년에 희망버스라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선 시민들의 광범위한 연대가 있었을 때 공룡도 같이 참여를 했었거든요. 그 이후부터는 동네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요. 자꾸 여기서 와라 저기서 와라 해서 여기저기 현장을 다니게 된 것 같아요.

활동을 잘하고 싶은 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인데...(웃음)


#. 미디어 교육은 우리 안의 이야기를 건강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경험


사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나요? 미디어 활동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거나.

어렸을 때는 제가 이렇게 활동할 거라고 생각은 안 했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가 영상제작교실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우연히 따라갔었어요. 수업은 영상 제작 기술을 알려주는 거였지만 강사 선생님이 미디어 활동가였어요. 다양한 지역에서 미디어 접근권이나 미디어센터 설립 운동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그걸 계기로 저도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미디어 교육가이기도 하죠? 지금도 계속 하나요?

네. 스무 살 때 처음 미디어센터라는 이름을 달고 있긴 하지만 공적 지원이 아닌, 개인이 사비를 털어 만든 작은 규모의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교육은 계속 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도 우리가 미디어센터인데 교육을 하나 해야 되지 않을까 해서  공부방 초등학생 대상으로 했던 게 첫 교육이었어요. 그 이후로 청소년, 장애인 대상 미디어 교육도 꽤 많이 했었던 것 같고, 노동자 교육으로 노동조합원들한테 교육도 했어요. 되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제가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미디어센터는 ‘작든 크든 지역에서 미디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져야 하고, 그것을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이 권리다’라고 해서 장애인이 버스를 탈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미디어 기기를 활용해 자기의사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주민이 언어나 여러 가지 장벽들로 인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을 때 기술적인 부분이나 내용적인 측면의 교육을 지원을 하는 곳이었어요. 미디어 교육은 생애 주기에 따라 필요한 소양 교육일수도 있고요. 

공룡의 공동체 미디어 교육은 커뮤니티 안에서의 이슈를 건강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뭘 잘 찍고 잘 편집하고는 부차적인 부분이고요. “자, 넌 고민이 뭐니? 요새 뭐가 힘들어?” 직접적으로 막 물어보거나 권위의 상하가 있는 방식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작업자로서 같이 작업을 하면서 작업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공통의 이야기를 찾아서 콘텐츠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런 수업이었다고 알고 있어요. 저도 이제 특정 커뮤니티 안에서 장기간 교육은 잘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역을 혼자 돌아다니다 보니까 장기간으로 하는 경험을 제가 갖지는 못하게 되는데 청주 같은 경우는 거의 8년, 9년 가까이 한 공부방에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렇게 만나는 과정들을 거쳤다고 알고 있어요.


이 과정이 엄청난 기록이 되겠네요. 3년도 길다고 생각했는데 공동체 미디어 교육에서 3년은 엄청 짧은 거군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교육의 경험도 좋고,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가의 경험도 좋습니다.

이 질문이 되게 어렵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머릿속에 확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다큐멘터리 <사수>라는 작업에 공동 연출로 참여했는데요, 2016년에 시작해서 2018년 10월에 제작이 끝났어요. 2011년에 유성기업이라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회사가 노동조합원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탄압을 했던 사건이 있었고 수년째 회사와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탄압이 있었던 그 당시에는 인연이 닿아있던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저희가 현장이 없었어요. 유성기업의 갈등은 밤샘야간 작업에서 주간 연속 이교대제를 도입하려다가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소통을 끊고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거였거든요. ‘이제 밤에는 잠 좀 자자’가 그 당시에 가장 큰 구호였어요. 용역회사의 물리적인 폭력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했던 순간에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영상을 편집해달라고 저희를 찾아오셔서 그분들을 알게 된 거죠. 그 이후로 그 분들에게 필요한 미디어 교육을 하고 저희가 직접 그분들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55m 광고탑 위에 올라가서 고공농성 중이던 분들을 인터뷰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영상을 만들어서 속보로 알리기도 하고 기획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지역 방송사에 보내기도 했어요. 노력은 했지만 결국 방영은 못했어요.  

제가 공룡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영상작업만으로 연대했을 것 같은데 단체에 있다 보니까 농성장에 가서 같이 밥해서 나눠 먹기도 하고, 폭력을 당한 분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로 잠을 잘 못 잤어요. 밤에 고통스러운 꿈을 꾸지 않고 잘 주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드림캐처를 만들어 농성장에 예쁘게 장식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 분들의 이야기를 그림자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한번 해보자 했어요. 그 분들이 이야기하는 입말을 받아 적어 대본을 만들고 그 분들이 연기할 수 있게 움직여서 연기하고 목소리로 대사를 할 수 있게 해서 작은 그림자극을 만들어서 공연을 했어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되게 바쁘거든요. 정말 짬이 없어요. 그런데 그 공연에 성실하게 임해 주시고 저희와 교류하셨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공연의 기량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유성기업 투쟁 현장에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연대의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공연을 했는데 집회 현장에 왔던 수많은 연대하는 사람들이 그 조그만 화면에 집중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이 전달되는 모습을 봤을 때 벅찼어요. 공연 끝나고 펑펑 울었죠. 다큐멘터리 <사수>에도 살짝 들어가 있는데요, 그 장면이 생각나네요. 어떻게 보면 농성장에 안 어울린다고 하겠지만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분들과 만나려고 했던 저희 마음이 좀 통했던 자리였던 것 같아요. 


(이미지 출처 : 다큐멘터리 사수 페이스북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sasufordearlife)


김설해는 퍼포먼스로, 때로는 음식으로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영상과 원고로 책에 담는 작업들을 한다. 2019년 한 인터뷰에서 카메라를 들어야 하는 활동가의 고민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에서 카메라를 들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실 작업은 핑계이기도 했다. 이 작업을 함으로써 투쟁을 함께할 수 있는 조건이 가능하니까. 우리는 연대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활동가로 카메라를 든다.(리버스미디어. 2019. 목숨 걸고 연대 인터뷰 중에서)” 


#. 도움이 되면 기쁜 사람에서 그 이상의 역할로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김설해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뭘까요?   

그런 의미를 잘 정리해 놓고 표현하진 못하는데요, 저는 남한테 일단 도움이 되는 게 좋고요. 누군가에게 잘 쓰이면 좋아하는 편이에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한 곳에 잘 쓰이면 좋더라고요.

투쟁 현장에서는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내지 못하거나, 뭔가 부당한 일을 겪었거나 억울한 상황이거나 아니면 어디가 아픈데 치유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고 계속 그걸 감당해야 하는 분들에게 엄청 전문적인 기술이나 인력, 대단한 자원이 아니더라도 뭐라도 손이 보태지면 서로 서로 힘을 주고받는 신기한 경우들을 활동하면서 봤어요.  

‘어 이상하다? 이거 별거 아닌데 왜 이렇게 좋아하지?’ 라던가 ‘이상하다? 내가 뭔가 해주고 왔는데 나 왜 이렇게 기분 좋지?’ 이런 순간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내가 누구한테 도움이 되면 되게 기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미디어활동가로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마냥 서포트하는 존재로 활동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긴 해요. 이전에는 노조에서 필요로 하는 속보 영상이나 처음에는 ‘우리가 이렇게 맞았어’ 라는 영상을 편집하는 것부터 시작했죠. 지회에서 이런 현안을 알려야 돼요 하면 ‘네 알겠습니다’하고 만들어 드리면서 활동했었는데 <사수>는 유성지회의 요청을 받아서 만든 영상작업은 아니었어요. 노동자 한 분이 괴롭힘 끝에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살을 하셨는데 그때 이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아무도 해달라는 얘기는 안 했어요. 카메라를 드는 것도 불편한 상황이었고 그 분들도 불편하셨을 것 같아요. 그동안의 관계가 없었다면 할 수 없는 거였죠. 울면서 장례식장을 가려는데 동료가 “카메라 안 들고 가?” “카메라?” 그때부터 촬영을 시작하게 된 거거든요. 

노조가 보여주려고 했던 강한 모습이 아니라 제가 건네고 싶은 이야기들을 계속 작업을 하면서 찾았던 것 같고, 위로나 질문을 던지고 싶은 동기에서 출발을 한 작업이다 보니까 그런 걸 계속 고민을 하게 됐어요.

필요로 하는 것 혹은 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 이상으로 곁을 지키는 사람으로서 질문이나 시선을 더 많이 드러내고 제안해야겠다는 생각을 작업하면서 많이 했어요.  

작업 끝나고 나서도 작업하길 잘했다 생각은 했었거든요. 


#. 활동가로 당사자로 연대자로

(사진 촬영 : 천막사진관 오상민)


<사수> 작업이 미디어활동가 김설해의 역할을 찾고 옆에 있는 사람으로서 건네고 싶은 이야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군요.

네. 그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끄러운데 예전에는 어쨌든 뭔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의사를 일순위에 뒀어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필요하다고 표현하는 것, 결정과 선택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제 역할을 소극적인 위치에 두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마음이 편하거든요. 해달라는 거 해드리면 되고 그게 도움이 되니까. 서로에게 기쁘고, 좋은 마음으로 헤어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런 과정에서는 활동가와 당사자를 구분할 수도 없고 어느 순간 그런 부분이 없어져야 하는, 없어지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조심스럽기도 한 부분이라서 돌아다니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당사자들과의 관계,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계속 배워나가고 있는 거네요.

제가 지금 만나고 있는 군산이나 평택, 강정마을처럼 군사기지가 오랫동안 있었던 혹은 최근에 힘겹게 싸우고 있는 성주 소송리에서 활동가들을 계속 만나고 있거든요. 그 현장의 이야기를 담는 것도 있지만 그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 여러 가지 문제를 오랫동안 기록하고 모니터링하고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해 온 단체와 단체에 소속된 혹은 개인 활동가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한 게 2007년이에요. 1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그 사이에 수질이나 환경의 변화들을 계속 조사하고 기록하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있거든요. ‘활동가라면 이런 자세를 견지해야죠’ 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 분들 만나면서 저렇게 활동하는구나. 좀 배우는 거죠. <난리법석 프로젝트>를 하면서 저랑 같이 움직이는 팀원들도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뭐가 맞는 걸까 이런 거 고민하면서 살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지금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미디어로 현장을 살피고 돕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여러 가지 문제와 상황들을 계속 마주하게 되면 힘들지 않아요?

힘들죠, 다 힘들지 않을까요? 저는 복구 안 될 정도로 힘든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많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소진되기보다는 거기서 에너지를 얻어요.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니까 혼자 그것들을 소화하고 침잠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활동하는 방식이 제 성향과 잘 맞는 편이라서 돌아다니면서 재충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가 저한테 ‘자 1년 동안 글을 써 봐라’라고 하면 저는 충전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웃음)

제가 속한 단체는 어쨌든 공동체 방식이고 만약에 제가 번아웃이 오거나 내가 진짜 열심히 하려다가 너무 힘들어서 한 달 쉬어야겠다고 할 때 쉴 수 있는 조직이에요. 번아웃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소진이 되지만 기다려주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괜찮아요.  

그런데 조금 위기처럼 왔을 때가 있었어요. <사수>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인데 그 직전 3~4년 정도를 다양한 연대 활동하면서 현장에서 너무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었는데 저희가 연대하는 현장에서 노동자가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던 거잖아요. 유성기업은 저희 지역의 노동자들이어서 우리 이웃, 동네사람 느낌이었어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중에서도 자살을 한 분들이 있었고 그걸 보면서 ‘유성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저희끼리도 얘기 나누곤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건이 일어나니까 작업을 안 할 수는 없었고 그 과정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웠어요. 2년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작업을 하면서 그 위기를 조금 지나왔다고 생각이 들어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활동 현장은 어떻게 변했나요?

음...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직접 작업을 하거나 뭔가를 이루기보다 작업을 하는 분들을 연결하거나 프로젝트로 같이 움직이는 걸 훨씬 좋아하는 편이에요. 장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 건 정말 이례적인 케이스예요. 지금도 저를 다큐멘터리스트라고 스스로 생각하진 않아요. 

저는 활동가, 늘 미디어활동가라고 생각해요. <미디어로 행동하라>는 프로젝트를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 정도 했었거든요. 미디어활동가 여럿이 모여서 같이 현장에 가서 연대하고 취재해서 결과물을 만들고 나누는 프로젝트예요. 첫 회에는 25명 남짓한 활동가들이 프로젝트 지역에 갔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많은 활동가들이 모이는 거예요. 그런 자리가 되게 필요했었던 거죠. 

네트워크가 약화된 상태였고 새롭게 활동에 발을 들이는 미디어활동가들이 현장에 갈 수 있을 만한 계기나 연결고리들이 부족하지만 가고 싶고 궁금한데 <미디어로 행동하라> 프로젝트가 있어서 많이 와주셨던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지속하면서 프로젝트 운영 경험도 쌓이고, 사람들이 연결되고 같이 작업도 하고 다음에 또 만나기도 하고요.

어쨌든 어딘가에서 계속 만나게 되더라고요. 저는 청주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 저희 프로젝트에 왔다가 친구가 되고 같이 작업을 하거나 싸우기도 하고 인연들은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활동가들의 교류도 이 프로젝트의 큰 목적이어서 현장에서 연대하는 것, 사회 문제를 알리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몇 년간 잘 지속되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의 손이 모여서 잘 진행이 됐던 것 같아요.

지금은 코로나19로 중단된 상태이기는 한데 2019년에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제주>를 기점으로 이제는 꼭 제가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아도 지속되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좀 있고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다른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닌지요.

공룡은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보람을 느끼는 것도 많이 있지만 지속적인 연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작년부터 <난리법석 프로젝트>를 하면서 군산을 작년부터 한 달에 평균 2~3번은 가는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씩 문화제도 하게 되었고요. 작년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활동가들이 그렇게 많이 붙어 있는 상태는 아니었거든요. 오래 활동한 평화바람이라는 단체가 있고, 외부 사람들은 잠깐 왔다 가거나 다큐멘터리를 찍는 분들은 계셨지만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와서 하는 건 없고 오래 오래 활동하셨던 군산지역의 활동가들이 매달 월례집회를 하셨던 거예요. 저희가 연대하면서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가들이 와서 같이 기록도 하고 답사도 하고 페스티벌도 열면서 군산에 왔다 갔다 하게 됐는데 좀 그게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한 곳에서 꾸준히 연대하는 거 해보자 밀양을 가든 성주 수성리를 가든 강정마을을 가든 한 번 갔다가 오고 나면 마음은 이미 한 번 통했는데 그다음에 안 가면 마음이 진짜 무겁거든요.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하면 결과물도 결이 달라질 거고 그 안에서 사람들의 경험도 좀 달라질 거다 해서 3개년 계획으로 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올해 2년차고요.

<미디어로 행동하라>의 경험이 <난리법석 프로젝트로>로 이어 온 거고 <미디어로 행동하라>는 꾸준히 다른 단위들이 더 주도적으로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고, 팀작업 네트워킹 활동을 해 온 것은 좀 잘했다고 생각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 미디어는 공평하게 말할 기회를 나눠 갖는 것

(사진 촬영 : 천막사진관 오상민)

미디어 교육을 할 때 특별히 강조하거나 미디어를 활용할 때 이것만은 놓치지 말자고 얘기하는 게 있나요?  

미디어 교육을 처음 했을 때 만들었던 교재가 있는데요. 나름대로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겠다고 만화도 그려 넣었어요. 우리가 대화할 때 한 쪽만 이야기하고 한 쪽은 듣기만 하면 안 좋지 않냐, 만약에 내가 들어야 되는 입장이면 정말 기분 나쁘지 않겠냐고. 서로 말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냐 이런 것들을 교재에 만화로 그려 넣었던 것 같아요. 

미디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금은 누구나 미디어 혹은 기기를 이용해서 자기를 표현할 수 있고 자기 콘텐츠를 팔수도 있고, 자기 주장을 사회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는데 잘 들여다보면 힘의 불균형이 늘 언제나 있어왔어요. 어쩌면 지금은 교묘하게 더 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해서 그렇지 공평하게 말할 기회를 나눠 갖지 못하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공평하게 말할 기회를 나눠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작은 그룹에서든 큰 사회라는 틀거리 안에서든.

 

미디어는 일방적이어서도 안 되고 균형이 흐트러져서도 안 되고 누구나 공평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네. 어떤 지점에서는 좋아진 부분들도 많이 있어요. 기존의 콘텐츠들을 보면 생산되는 방식이 불균형하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나 내용들도 불균형하거나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콘텐츠도 너무 많았어요. 이제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이런 것들은 조심해야지’라고 가이드를 제시하거나 모니터링 하는 활동들이 계속 이루어지기도 하고요. 미디어는 공공적인 거니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들이 좀 많이 좋아진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전히 기술적으로든 파급력 측면에서든 힘의 불균형이 있어서 저도 지금 사실 미디어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현업에 계심에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군요. 코로나19로 미디어 생태계에서 힘의 불균형이 좀 심해졌다고 생각하세요? 

네. 최근 10년간은 정말 혼란의 도가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나 코로나 이후에는 더더욱 수요와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 안에서 윤리성을 과연 누가 어떻게 얘기할 수 있는가 싶어요. 이제 겨우 팩트 체크를 얘기하면서 최소한의 것들을 담보해내고 있는데. 중요한 건 마치 팩트 체크 했다고 하면 그 자체로 콘텐츠가 검증된 것처럼 패스 되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팩트 체크는 콘텐츠의 내적인 기준인거지 그걸 누가 어떻게 만들어서 어떻게 파급력을 갖느냐, 이 힘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 보지 않으면 그 안에서 패트 체크를 했다 안 했다의 문제는 일부일 수밖에 없어서..... 

그런데 이건 꼭 미디어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이런 것들에 대해 계속 고민이 있음에도 같이 이야기하고 정책을 만들어 나가고 운동의 흐름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끈이나 기반 혹은 활동가들의 관계들이 많이 끊겨 있는 상태라는 거죠.   

그나마 목표나 과제들이 좀 더 명확했던 건 2000년 대 초반부터 10년까지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방송국만 방송할 거야? 시청자도 방송할 수 있게 열어줘!’해서 채널을 연다든지 ‘방송을 하라고 했는데 장비도 없고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르는데 교육할 수 있게 장비도 빌려줄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지’라고 해서 미디어센터를 열고 인프라가  갖춰지고 공적인 부분에서 조금씩 확보한 공간들은 생겼지만 환경 자체가 계속 꿀렁꿀렁 거리면서 변동을 겪고 있어요. 여기까지 이루어내기 위해 젊음을 받쳐 활동하고 이제 지쳐 힘들어서 하는 활동가들한테 급변하고 있는 생태계에서의 대처가 쉽진 않겠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기존의 운동에 참여하셨던 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해야 할까 라는 고민들 다 갖고 계실 것 같아서 저도 참 이거다 이렇게 답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찾아가는 중입니다.


#. 코로나19에도 우리는 현장에서 만나고 연대하고 배우는 중 


코로나19로 인해서 그동안의 활동에 변화가 있나요? 

저희는 사실 영향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미디어에 대한 수요 자체가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저희가 노조 간부들을 붙잡고 ‘노조에는 미디어교육이 필요합니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당신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드릴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 좀 만들어주세요’ 이랬거든요. 그런데도 그 시간을 만들기가 힘들었어요. 왜냐면 그렇게 필요하다고 생각을 못하셨던 거예요. 필요하면 우리는 집회를 하고 촬영은 방송국에서 하고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뭔가 영상을 만들어서 온라인에 올리는 걸 고마워하시고 좋아는 하지만 이제 약간 좀 다른 결인 거예요.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왜곡 없이 네가 들어줬고 이걸 잘 담아줬구나. 너무 좋아.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너무 고마워’하는 측면의 감동인거지 저희가 제작한 영상이나 콘텐츠가 어떤 파급력을 갖고 상황과 조건을 바꿔내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하는 거죠.  

결국에는 이 분들의 선택은 매스미디어, 주요 언론에서 취재를 하고 한 번이라도 일분이라도 나가면 그게 도움이 되거나 혹은 그것조차도 필요 없다고 여기는 분들도 사실은 있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활동하는 거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문의도 많고 요청도 많이 들어오기는 해요. 

그런데 ‘그래서 좋냐?’라고 물어보면 저는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제가 코로나 영향을 별로 안 받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저희가 소규모라도 대면 활동을 계속하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에 별로 영향을 안 받았다고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난리법석 프로젝트>도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부터 시작을 했는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면을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최대한 현장에 찾아가는 것, 갔을 때 배울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책이나 영상으로 그분들의 이야기, 현장의 이야기를 접한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갔을 때 얻게 되는 공간에서 주는 메시지들이나 현장에 간 사람이 아주 입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정보를 캐치하게 되거든요. 만들어진 것을 그 안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뭘 볼 건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사람마다 보는 게 달라서 현장 활동은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정말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현장에 찾아가고 만나는 이벤트를 계속 열려고 했어요. 코로나에 큰 영향 없는 삶을 살아서 저는 어쩌면 럭키죠.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은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었을 텐데 저희는 지역에 있다 보니 그나마 가능했던 것 같아요.

 

#. 미디어가 변해도 활동에 담긴 메시지는 변하지 않죠


코로나19로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단체들은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어요.

비대면에 대한 궁금증 혹은 위기의식에서 ‘우리 도태 될 것 같아, 빨리 교육 해줘요’ 하면 도움을 드리지만 저는 교육 할 때도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라고 얘기해요. ‘당신들의 활동과 내용이 어느 순간 그냥 뼈하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매체니까 원래 빨리 바뀌는 거고 그게 좀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려요. 

미디어는 표현하는 수단일 뿐인 거고 기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담는지가 중요하니까 그 안에서 필요한 기술을 익혀서 사용하시면 된다고 얘기해요. 코로나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NGO나 활동가들에게도 비슷하게 말씀을 드리는 편이에요. 내용이 중요한 거지 그걸 담는 그릇이나 방식인 미디어는 천천히 단체나 본인에게 맞는 걸 고르시면 된다고.


#. 어딘가에 기록되거나 담긴 모습보다 조금 더 멋지게 살자

(사진촬영 : 천막사진관 오상민)


활동가들이 진짜 압박을 많이 느낀대요, 업무에 대한 압박. 내가 이 중요하고도 의미 있고 좋은 활동을 잘해야지 내가 이 사회에 도움이 돼야지, 단체에 도움이 해야지 하는 분들이 되게 많다고 해요. 그래서 번 아웃도 많이 오고. 어쨌든 활동가들이 그렇게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저도 약간은 그런 게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SNS에 계속 활동을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블로그로 저희 소식을 알렸었는데 SNS로 갈아타는 시기가 2010년에 왔어요. 저희는 사실 알릴 게 되게 많아요. ‘다큐 나왔으니까 보세요. 옥수수 땄으니까 사세요. 책 만들었으니까 보세요. 음반 좀 사 주세요. 아니면 희망버스 갈 건데 같이 갈 사람 손 드세요’ 하면서 계속 알려야 하니까 SNS를 계속 해야 될 것 같고 저희가 걸어온 길을 잘 정리해서 보여드려야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그렇게 담기는 것보다 좀 더 멋있게 살자 이런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저를 너무 멋지게 써주시면 그보다 좀 더 멋있게 살아야 돼요.(웃음)  

저도 기록을 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최근에 이렇게 기록되거나 어딘가에 담긴 모습보다는 멋있게 살자. 이런 생각을 해요.  

 

이렇게 멋진 분을, 멋지게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11년 째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잖아요. ‘느슨한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건 어때요? 장점, 단점, 변화 뭐든지 좋습니다.

수명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단체도 사람에게 생애 주기가 있듯 단체가 생기고 에너지가 솟아나거나 외부 자원들이 많이 연결될 때도 있고, 안정되는 시기도 있고 침체되는 시기도 있을 수 있잖아요. 구성원들이 아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만큼 괴로운 시기를 보내기도기도 하고요. 동료들이랑 같이 활동을 한다는 게 진짜 어렵더라고요. 

저 스스로에게 정말 질문을 자주 하거든요. ‘활동을 같이 하는 게 좋겠냐 아니면 혼자 하거나 안 하는 게 좋겠냐’ 아직까지는 한 번도 ‘그래, 때려 쳐’ 아니면 ‘아니야 혼자 하는 게 훨씬 나아’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늘 그 고민의 끝은 ‘같이 하는 게 그래도 참 필요해 좋아’예요.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든든한, 내가 가장 마음 편하게 같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옆에 있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관계는 당연히 있거나 당연하게 유지되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유지해야만 하고 언제나 소중히 여겨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잘 못하지만 그래도 서로 그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년 전에는 제 또래 친구들이 뭔가 활동에 관심 있어 하거나 활동하는 친구들한테 “같이 해. 단체가 짱이야” 이러면서 “혼자하면 밥이나 제때 챙겨 먹냐? 우리는 맛있는 거 맨날 해 먹는다” 이러면서 자랑했어요. 같이 하면 혼자 할 때보다 훨씬 흥도 나고 힘든 일을 해도 나눠서 하면 금방 끝나는 기적을 자주 보잖아요. 저희는 농사도 오랫동안 같이 짓고 있는데 이 많은 사래 긴 밭을 언제 가냐고 하다가 해가 질 무렵에 박스째 고구마를 들고 나올 때 그 기쁨이 엄청나거든요.

‘우리 지금 이거 다 한 거야?’ 이런 뿌듯함이 엄청 있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와 그룹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신뢰, 확신이 컸던 시기도 있지만 지금은 확신한다기보다는 늘 질문하지만 답은 그래도 같이 하는 게 좋아라고 답하는 점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장, 단점이 있고.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지만 동료들과 함께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재미있고 소신 있게 해내고 휘둘리지 않고 잘 살고 있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혹시 최근에 특별히 관심 갖는 게 있나요? 

글쎄요. 재작년까지만 해도 공룡은 친노동단체예요 뭐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노동조합이랑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작년에 <난리법석 프로젝트>를 하면서 군사기지가 있는 군산에 가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평화활동가에 대해서 잘 몰랐거든요. 이제 배우고 있는 단계여서 최근에 생긴 관심일 수 있어요. 군사 기지의 문제와 기지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뭘 하고 사는지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고.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연대자와 당사자 사이의 어떤 정치성에 대해서도 활동을 하면서 고민하고 사람들 만나면서 배우는 과정인 것 같고요.


2021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하는 공통질문인데요, 김설해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는 누구인가요? 혹시 롤모델이 있나요?

네. 그건 당연히 공룡 활동가들이고요. 아주 지지를 심하게 하죠.

누가 롤모델이 있냐? 라고 질문하면 예전에는 청주의 이혜린 선생님이라고 했어요. 제가 스무한 살 때 처음 만났었는데요, 저는 그때의 롤모델과 지금 같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제가 ‘아, 저런 방식으로 활동하는 면 참 좋다. 그리고 어쩌면 나랑 잘 맞을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하는 분은 문화연대활동가 신유아님인데요, 현장을 다니면서 문화예술과 관련된 여러 자원들을 정말 잘 연결하세요. 필요한 곳에 필요한 작가와 예술가들을 연결하고 현장에서 계속 문화예술이벤트를 기획해요. 지금은 원주 건강보험공단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몇 주째 땡볕에 나가서 지금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판을 잘 짜고 사람들을 잘 연결하고 좋은 기획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5년 후 김설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저는 공룡에서 대걸레질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와서 화단에 물주고 청소하고 정리하면 되게 좋거든요.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힘을 받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여유로움이나 규칙적인 것들에서 힘을 받는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5년 뒤에도 공룡 마을카페에서 아침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걸레질을 하면서 커피도 한잔 내려 마시고 있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만났던 누군가가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사람 잘 변하지 않으니까 자기가 변하고 싶으면 자기 환경을 아예 바꿔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10여 년간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뀐 부분도 있지만 제가 노력해서 변한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작업을 하면서 잘하고 싶어서 공력을 썼지만 나 스스로 어떤 변화를 줘야지, 이건 바꿔야지, 성취해 봐야지는 거의 없었어요. 5년 후에는 정리정돈과 마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감을 잘 지키는 사람,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이 되자! 정말이에요.


피플포체인지가 만난 미디어활동가 김설해는 보고, 듣고, 전하며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지속가능형 연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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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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