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작은 제로웨이스트 가게 ‘숲을’을, 사람이 모이고 움직이는 예비 사회적협동조합 ‘숲을’로 바꾸어 자발적인 시민 환경모임으로 운영하고 있는 권은선 대표를 만났다. 어쩌다 활동가가 된 나를 발견하게 되었지만 그 이름은 아직 낯설다며 그녀는 웃었다.
제가 이런 인터뷰를 한다는 게 약간은 웃기는 거죠. 사실 활동가라는 이름 안에 들어가기가 부끄러운 마음도 들어요. 오랜 시간 지역을 지켜온 주변의 선생님들을 보면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대단하잖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오랫동안 활동한 세월을 생각하면 저 같은 초짜가 어디 명함을 내미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기를 쓰면서 내가 ‘숲을’ 활동에 대해서 어떤 할 말이 있을까를 생각해 봤죠.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나 같은 사람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모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 ‘나 같은’이라는 건 낮은 의미가 아니라 그냥 ‘누구나’라는 의미로 나와 비슷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 또 있을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활동에 대해 조금은 자신있게 오픈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오늘 어쩌다가 일회용품 썼다고 해서 다음 날 환경 활동가가 못 되는 게 아니라 누구나 푸른 지구를 지키거나 환경을 생각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면 언제든 가능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 일들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뿐이지 사실 활동에 대한 어떤 계획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아요.
Q. 그럼 본격적인 본인 소개와 ‘숲을’ 소개를 부탁 드릴께요.
저는 예비 사회적협동조합 ‘숲을’의 대표 권은선입니다. 제 이름이 ‘은혜 은’자에 ‘베풀 선’자를 써요. 어렸을 때부터 이름처럼 이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졌어요. 그래서 사회복지학을 전공으로 택하기도 했었죠. 이름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크고 또 그런 사람이 되는 거에 불편함이 없었어요.
지금도 나를 소개하는 자리가 생기면 ‘숲을은선’이라고 말해요 ‘숲을’은 경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환경모임으로 비영리 단체에 등록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판매하는 가게도 운영하고 있고요. 그 공간에서 환경 관련 모임을 하며 책도 읽고 캠페인이나 행사 기획 같은 걸 함께 해요. 제로웨이스트 물건들을 판매해서 사람들이 무포장 알맹이를 살 수 있는 공간의 역할과 환경에 대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공유 공간의 의미로 만들어져 있죠.
‘숲을’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구를 위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특히 제로웨이스트를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실천하게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관광객이 많은 경주의 특성에 따라 황리단길 같은 곳에서 줍깅을 하기도 해요. 작년에는 전국 일회용컵 줍깅대회에 참가해서 황리단길에서만 500여 개의 일회용컵을 수거해 일등을 하기도 했어요. 그 작은 동네를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이긴 하죠. 지금은 정기적인 캠페인으로 쓰줍(쓰레기 줍기)과 환경교육, 재래시장에서 벌이는 ‘장주머니 캠페인’등을 진행 중이에요.
황리단길에서 진행한 줍깅 캠페인
Q. 어떻게 ‘숲을’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9년에 경주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가게인 ‘숲을’을 이림 선생님이 먼저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힘들었죠. 제가 2021년 부터 ‘숲을’에 자주 갔었는데 그때 가게를 운영하시던 이림 선생님이 이제 좀 젊은 사람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저한테 권하셨어요.
선생님이 너무 힘이 드시기도 했고 공간을 함께 쓰던 다른 팀이 공간확장을 생각하고 있어서 이전의 고민도 하던 시기였죠. 이러다가는 경주에 이런 가게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제가 맡아서 해볼까 생각하게 된 거예요. 결국 이림 선생님이 같이 일을 해주는 조건으로 시작하게 됐는데 이렇게 조금씩 커졌어요.
Q. 그러면 ‘숲을’이라는 이름은 이림 선생님이 처음 사용하신 거네요.
네. 선생님 이름이 ‘수풀 림’자예요. 지금은 공동체 안의 회원들이 ‘숲을’이라는 의미를 각각의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죠. ‘숲을장’(플리마켓)을 열 때도 ‘우리가 숲이 되자’ ‘숲을 이루자’ 등 으로 다양하게 사용해요. ‘숲을’은 환경에 대한 의미로 볼 수도 있고, 모인다는 의미가 들기도 하고 그냥 각자라는 의미가 되기도 해서 많은 분이 좋아하며 계속 써오고 있어요.
숲을장(플리마켓) 활동
Q. 지금의 공간으로 옮긴 지는 얼마되지 않았죠?
제로웨이스트 가게 ‘숲을’은 시내 여기저기를 잠깐씩 옮겨 다니다가 올 해 초까지 불국사 아랫마을에 있는 신촌서당의 한쪽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올해 3월 15일 바느질 공방이었던 황오동의 분이상점과 합쳐지면서 이 공간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밖에서 볼 때보다 내부 공간이 작아 보인다고 하는데 안쪽에는 바느질 모임이나 재봉틀을 사용할 수 있는 방도 있고 부엌, 창고, 화장실까지 있어서 나름 쓸모가 있고 따뜻한 공간이에요.
‘숲을’ 가게는 수, 목, 금, 토 문을 열고 조합원들이 로테이션으로 근무해요. 그리고 매주 회의를 하죠. 사실 같이 모여서 밥 먹는 게 가장 큰 일이지만, 지속적인 활동인 ‘쓰레기 줍기’나 ‘장주머니 캠페인’과 ‘숲을장’, 가게 운영에 대한 논의를 주로 해요.
Q. 협동조합 조합원은 어떤 분이세요?
협동조합 운영 멤버는 모두 7명인데 환경모임으로 운영되는 오픈 카카오톡 창 ‘숲을’에는 56명 정도가 모여있어요. 거기에서 함께 진행하는 캠페인 정보를 공유하고 사회적 이슈나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어요.
협동조합 멤버들은 지구환경을 지키자는 가치 외에 다양한 지향과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며 되살림 바느질 워크샵이나 자수 수업도 하고, 토함산아래 작은 서점을 운영하시는 분,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시는 분도 있어요. 그리고 연극이나 인도 요가에 관심을 가지고 하시는 분도 있고요.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진짜 보통 인간이죠.
유일한 재능이라면 사람을 잘 만나고 관계를 잘 맺는다는 정도죠. 사람들을 이어주는 허브 역할 정도를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대표가 된 거겠죠. 저는 ‘숲을’ 안의 사람들이 자기실현을 서로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맨 처음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맡았을 때 이런저런 환경캠페인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갑작스런 질문이나 불특정 다수를 대하는 게 좀 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협동조합 형태로 해야겠다는 생각하고 도움을 요청했죠. 그렇게 처음부터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제가 한 거죠.
그렇게 7명을 모았는데 무슨 일이든 7명이 똑같은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주로 제가 끌고 나가고, 나이대가 좀 있으신 선생님들이 든든하게 받쳐주시고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제로웨이스트가게 숲을공방
Q. 이런 활동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제가 최근에 조금 아팠는데요. 그 시간이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크다고 진단하더라고요. 내가 몰랐던 나의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해 보니 운영하면서 새롭게 만나는 일에 대한 겁이 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처음엔 시작하면 뭐든지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조금씩 증명이 필요한 과제들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활동에 대한 피드백들도 받기도 힘들고, 스피커로서 협동조합을 대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역할을 하는 데에 대한 자기 고민이 좀 있었어요. 활동가로서 캠페인하는 걸 좋아해서 참여했고 이거 하나 정도는 계속 지켜야지라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한건데, 그 하나를 지키기 위한 곁가지가 너무 많은 거지요.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때,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가족이나 친구들의 응원이 힘이 되더라고요.
‘원래 네가 하고 싶었던 거잖아. 그것만 생각하고 그 외의 것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라.’ 와 같은 말이 위로가 되었어요. 결국 남은 건 사람이더라고요. 지금도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을 덜어주는 것 같아요. 협동조합은 결국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거잖아요.
Q. 경주는 은선씨에게 어떤 곳인가요?
대구와 울산 같은 큰 도시에서 살다가 아이가 태어난지 100일쯤 되었을 때 경주로 이사를 왔는데 참 좋았어요. 시야도 편하고 풍경도 예쁘고 정겨웠죠. 이제는 시간이 좀 흘러서 더 정이 들었어요.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과 경주의 문화와 환경, 우리가 함께 보고 너무 감동했던 것들을 두고 다른 도시로 이주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해요. 관계와 인연, 정겨움이나 편안함 이런 것들은 버릴 수 없게 된 거지요.
경주가 이렇게 안 예뻤으면 보수적인 사람들과 쓰레기 문제, 핵발전소와 폐기물.. 같은 경주의 환경 문제에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여기 와서 내가 약자가 되고 외부인이 되고 보니까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더 많이 보였어요. 환경에 대한 고민을 더 적극적으로 풀어보고자 했을 때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 거죠. 처음 캠페인을 하기 위해 길에 나섰을 때 아기 띠를 하고 유모차 끌고 나가도 부끄러운 마음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 순간 과거의 내가 일회용품을 썼는지 안 썼는지 누가 알겠어요. 과거의 나와 상관없이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 거죠.
그때는 경주에서 이런 캠페인을 한 번 하면 서울에서도 이거 보고 하는 사람이 생기겠지 하는 그런 꿈을 꿨어요. 그냥 그런 꿈 때문에 그렇게 시작한 거 같아요.
반핵캠페인
Q. ‘숲을은선’의 활동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뭘까요?
‘숲을장’이 가장 재미있고 자유로운 시간이죠. ‘숲을장’은 쓰레기 없는 무포장 알맹이 장터예요. 무수히 많이 열리는 플리마켓이라는 기본적인 틀로 가면 별로 재미가 없는데 ‘숲을장’은 사람이 만나는 장터라는 개념이 더 커요. 경주에서 열리는 상업적이지 않은 장터, 사람들이 만나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도 이것저것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좀 더 푸른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작은 희망이 되는 것 같아요. 같이 하는 사람들 덕분에 진짜 ‘숲을장’이 열렸을 때 보람을 느끼죠.
아주 추운 겨울날이나 정말 더운 여름날이 아니면 거의 한두 달에 한 번씩 열어요. 비정기적이라 인스타그램이나 오픈 채팅방 등으로 공지해요. 보통은 10여 개의 팀이 참가하는데 중고 장터를 하시는 분들이나 어린이 셀러들도 있어서 어떤 때는 15개까지 열리기도 해요. 판매 물품은 주로 먹거리가 많은데 빵이나 떡부터 호박죽까지 저마다 집에서 해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만들어 오는 거죠.
처음엔 불국사 아랫마을에서 주로 열다가 얼마 전부터는 통일전 앞이 좋아서 주로 그곳에서 열어요. 가을엔 은행나무가 유명한 곳이니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진짜 포장지 없이 판매하는 걸 보고 신문지에 떡이며 먹거리들을 싸가며 신기해하기도 해요.
‘숲을장’에 올 때는 저마다 자기 의자, 자기 그릇 등을 다 챙겨 와서 돌아갈 때도 쓰레기 없이 헤어지죠. 그리고 마무리 단체 사진을 꼭 찍어요. 단체 사진을 찍는 이유는 우리가 무얼 했다고 알리는 의미보다는 우리의 시간을 추억하고 서로에게 용기와 에너지를 얻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예요.
‘숲을장’을 할 때는 캠페인을 나갈 때와 달리 마음이 자유롭고 편안해요. 사실 다른 환경 캠페인을 나갈 때는 남몰래 마음속으로 늘 방어를 준비하거든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면을 생각하죠. 그리고 완벽히 준비를 해서 나가려고 애쓰죠. 그런데 ‘숲을장’은 그런 게 없어요. 이제 2년여를 지나다 보니까 이 장에 왔던 사람들이 오히려 이걸 더 긍휼히 여겨주는 거예요. 이 장터를 불쌍히 여겨주는 거죠. 이 일이 그래도 계속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달돼요.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 내 생각을 확신하게 되면서 스스로 용기를 얻고 또 그 에너지를 받아서 다시 이 일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숲을장(플리마켓) 활동
Q.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건 뭘까요?
환경이라는 큰 비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좀 더 진실되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요. 당연히 지금처럼 캠페인도 하면서 일상을 살겠지만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꿈꾸는 방향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숲을’도 그런 가치에 좀 더 집중하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모이지 않을까요? 저는 ‘숲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를 바라고 있어요. ‘숲을은선’, ‘숲을혜린’, ‘숲을선미’가 100명의 이름으로 파생되어도 좋을 거 같아요. 벽 없이 사람들이 모여 함께 힘을 얻어가는 곳이 되기를 바라고 있죠.
그리고 환경에 대해 혹은, 사회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누구든 의견을 묻고 답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어요.
Q. 쉬는 시간이 생기면 뭐 하세요?
요즘 목표는 집에 가는 거예요. 집에 가서 책도 읽고 글도 쓰죠. 원래는 사람 만나고 이야기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 ‘숲을’ 활동 이후에는 그러면 안되더라고요. 그리고 아직 아이들도 어려서 할 일은 참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죠. 그래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려고 애쓰고 있어요. 예전에는 책방에 참 많이 갔었는데 이제 돈이 없어서 책방도 잘 못가요.(웃음) 요즘 목표는 진실되게 ‘숲을’활동을 좀 많이 기록하고 내 마음도 돌아보면서 내 에너지를 ‘숲을’에 나누고 싶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10년 후 ‘숲을은선’의 ‘숲을’을 생각해 보았다. 진실한 ‘숲을’과 맑은 ‘은선’을 꿈꾸는 그의 시간이 모여서 그의 삶이 될 것이다. 허투루 지나가는 시간은 없다. ‘숲을’의 활동이 큰 성과로 다가오지 않더라도 혹시나 작은 실패를 겪더라도 그 모든 경험이 자산이 될 거라는 응원을 나누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활동가라는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이름을 서슴없이 나누어 짊어지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항상 서툴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을 깊게 들여다보면 잊히기 쉬운 처음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경주 #제로웨이스트 #기후위기 #권은선 #숲을
글쓴이 : 윤정임
경주에서 일상 속 공동체의 재난대응을 준비하는 예비사회적 기업 [현관앞비상배낭]을 운영하며 재난피해자 중심의 “재난 현장과 구호의 기록”을 꾸준히 하고 있다.
경주의 작은 제로웨이스트 가게 ‘숲을’을, 사람이 모이고 움직이는 예비 사회적협동조합 ‘숲을’로 바꾸어 자발적인 시민 환경모임으로 운영하고 있는 권은선 대표를 만났다. 어쩌다 활동가가 된 나를 발견하게 되었지만 그 이름은 아직 낯설다며 그녀는 웃었다.
제가 이런 인터뷰를 한다는 게 약간은 웃기는 거죠. 사실 활동가라는 이름 안에 들어가기가 부끄러운 마음도 들어요. 오랜 시간 지역을 지켜온 주변의 선생님들을 보면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대단하잖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오랫동안 활동한 세월을 생각하면 저 같은 초짜가 어디 명함을 내미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기를 쓰면서 내가 ‘숲을’ 활동에 대해서 어떤 할 말이 있을까를 생각해 봤죠.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나 같은 사람도 이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모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 ‘나 같은’이라는 건 낮은 의미가 아니라 그냥 ‘누구나’라는 의미로 나와 비슷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 또 있을텐데..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활동에 대해 조금은 자신있게 오픈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오늘 어쩌다가 일회용품 썼다고 해서 다음 날 환경 활동가가 못 되는 게 아니라 누구나 푸른 지구를 지키거나 환경을 생각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면 언제든 가능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 일들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뿐이지 사실 활동에 대한 어떤 계획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아요.
Q. 그럼 본격적인 본인 소개와 ‘숲을’ 소개를 부탁 드릴께요.
저는 예비 사회적협동조합 ‘숲을’의 대표 권은선입니다. 제 이름이 ‘은혜 은’자에 ‘베풀 선’자를 써요. 어렸을 때부터 이름처럼 이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졌어요. 그래서 사회복지학을 전공으로 택하기도 했었죠. 이름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크고 또 그런 사람이 되는 거에 불편함이 없었어요.
지금도 나를 소개하는 자리가 생기면 ‘숲을은선’이라고 말해요 ‘숲을’은 경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환경모임으로 비영리 단체에 등록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판매하는 가게도 운영하고 있고요. 그 공간에서 환경 관련 모임을 하며 책도 읽고 캠페인이나 행사 기획 같은 걸 함께 해요. 제로웨이스트 물건들을 판매해서 사람들이 무포장 알맹이를 살 수 있는 공간의 역할과 환경에 대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공유 공간의 의미로 만들어져 있죠.
‘숲을’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구를 위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특히 제로웨이스트를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실천하게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관광객이 많은 경주의 특성에 따라 황리단길 같은 곳에서 줍깅을 하기도 해요. 작년에는 전국 일회용컵 줍깅대회에 참가해서 황리단길에서만 500여 개의 일회용컵을 수거해 일등을 하기도 했어요. 그 작은 동네를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이긴 하죠. 지금은 정기적인 캠페인으로 쓰줍(쓰레기 줍기)과 환경교육, 재래시장에서 벌이는 ‘장주머니 캠페인’등을 진행 중이에요.
황리단길에서 진행한 줍깅 캠페인
Q. 어떻게 ‘숲을’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9년에 경주 최초의 제로웨이스트 가게인 ‘숲을’을 이림 선생님이 먼저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힘들었죠. 제가 2021년 부터 ‘숲을’에 자주 갔었는데 그때 가게를 운영하시던 이림 선생님이 이제 좀 젊은 사람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저한테 권하셨어요.
선생님이 너무 힘이 드시기도 했고 공간을 함께 쓰던 다른 팀이 공간확장을 생각하고 있어서 이전의 고민도 하던 시기였죠. 이러다가는 경주에 이런 가게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제가 맡아서 해볼까 생각하게 된 거예요. 결국 이림 선생님이 같이 일을 해주는 조건으로 시작하게 됐는데 이렇게 조금씩 커졌어요.
Q. 그러면 ‘숲을’이라는 이름은 이림 선생님이 처음 사용하신 거네요.
네. 선생님 이름이 ‘수풀 림’자예요. 지금은 공동체 안의 회원들이 ‘숲을’이라는 의미를 각각의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죠. ‘숲을장’(플리마켓)을 열 때도 ‘우리가 숲이 되자’ ‘숲을 이루자’ 등 으로 다양하게 사용해요. ‘숲을’은 환경에 대한 의미로 볼 수도 있고, 모인다는 의미가 들기도 하고 그냥 각자라는 의미가 되기도 해서 많은 분이 좋아하며 계속 써오고 있어요.
숲을장(플리마켓) 활동
Q. 지금의 공간으로 옮긴 지는 얼마되지 않았죠?
제로웨이스트 가게 ‘숲을’은 시내 여기저기를 잠깐씩 옮겨 다니다가 올 해 초까지 불국사 아랫마을에 있는 신촌서당의 한쪽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올해 3월 15일 바느질 공방이었던 황오동의 분이상점과 합쳐지면서 이 공간으로 들어오게 됐어요.
밖에서 볼 때보다 내부 공간이 작아 보인다고 하는데 안쪽에는 바느질 모임이나 재봉틀을 사용할 수 있는 방도 있고 부엌, 창고, 화장실까지 있어서 나름 쓸모가 있고 따뜻한 공간이에요.
‘숲을’ 가게는 수, 목, 금, 토 문을 열고 조합원들이 로테이션으로 근무해요. 그리고 매주 회의를 하죠. 사실 같이 모여서 밥 먹는 게 가장 큰 일이지만, 지속적인 활동인 ‘쓰레기 줍기’나 ‘장주머니 캠페인’과 ‘숲을장’, 가게 운영에 대한 논의를 주로 해요.
Q. 협동조합 조합원은 어떤 분이세요?
협동조합 운영 멤버는 모두 7명인데 환경모임으로 운영되는 오픈 카카오톡 창 ‘숲을’에는 56명 정도가 모여있어요. 거기에서 함께 진행하는 캠페인 정보를 공유하고 사회적 이슈나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어요.
협동조합 멤버들은 지구환경을 지키자는 가치 외에 다양한 지향과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며 되살림 바느질 워크샵이나 자수 수업도 하고, 토함산아래 작은 서점을 운영하시는 분,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시는 분도 있어요. 그리고 연극이나 인도 요가에 관심을 가지고 하시는 분도 있고요.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진짜 보통 인간이죠.
유일한 재능이라면 사람을 잘 만나고 관계를 잘 맺는다는 정도죠. 사람들을 이어주는 허브 역할 정도를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대표가 된 거겠죠. 저는 ‘숲을’ 안의 사람들이 자기실현을 서로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맨 처음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맡았을 때 이런저런 환경캠페인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갑작스런 질문이나 불특정 다수를 대하는 게 좀 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협동조합 형태로 해야겠다는 생각하고 도움을 요청했죠. 그렇게 처음부터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제가 한 거죠.
그렇게 7명을 모았는데 무슨 일이든 7명이 똑같은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주로 제가 끌고 나가고, 나이대가 좀 있으신 선생님들이 든든하게 받쳐주시고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제로웨이스트가게 숲을공방
Q. 이런 활동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제가 최근에 조금 아팠는데요. 그 시간이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크다고 진단하더라고요. 내가 몰랐던 나의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해 보니 운영하면서 새롭게 만나는 일에 대한 겁이 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처음엔 시작하면 뭐든지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조금씩 증명이 필요한 과제들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활동에 대한 피드백들도 받기도 힘들고, 스피커로서 협동조합을 대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역할을 하는 데에 대한 자기 고민이 좀 있었어요. 활동가로서 캠페인하는 걸 좋아해서 참여했고 이거 하나 정도는 계속 지켜야지라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한건데, 그 하나를 지키기 위한 곁가지가 너무 많은 거지요.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때,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가족이나 친구들의 응원이 힘이 되더라고요.
‘원래 네가 하고 싶었던 거잖아. 그것만 생각하고 그 외의 것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라.’ 와 같은 말이 위로가 되었어요. 결국 남은 건 사람이더라고요. 지금도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을 덜어주는 것 같아요. 협동조합은 결국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거잖아요.
Q. 경주는 은선씨에게 어떤 곳인가요?
대구와 울산 같은 큰 도시에서 살다가 아이가 태어난지 100일쯤 되었을 때 경주로 이사를 왔는데 참 좋았어요. 시야도 편하고 풍경도 예쁘고 정겨웠죠. 이제는 시간이 좀 흘러서 더 정이 들었어요.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과 경주의 문화와 환경, 우리가 함께 보고 너무 감동했던 것들을 두고 다른 도시로 이주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해요. 관계와 인연, 정겨움이나 편안함 이런 것들은 버릴 수 없게 된 거지요.
경주가 이렇게 안 예뻤으면 보수적인 사람들과 쓰레기 문제, 핵발전소와 폐기물.. 같은 경주의 환경 문제에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여기 와서 내가 약자가 되고 외부인이 되고 보니까 오히려 할 수 있는 게 더 많이 보였어요. 환경에 대한 고민을 더 적극적으로 풀어보고자 했을 때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 거죠. 처음 캠페인을 하기 위해 길에 나섰을 때 아기 띠를 하고 유모차 끌고 나가도 부끄러운 마음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 순간 과거의 내가 일회용품을 썼는지 안 썼는지 누가 알겠어요. 과거의 나와 상관없이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 거죠.
그때는 경주에서 이런 캠페인을 한 번 하면 서울에서도 이거 보고 하는 사람이 생기겠지 하는 그런 꿈을 꿨어요. 그냥 그런 꿈 때문에 그렇게 시작한 거 같아요.
반핵캠페인
Q. ‘숲을은선’의 활동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일은 뭘까요?
‘숲을장’이 가장 재미있고 자유로운 시간이죠. ‘숲을장’은 쓰레기 없는 무포장 알맹이 장터예요. 무수히 많이 열리는 플리마켓이라는 기본적인 틀로 가면 별로 재미가 없는데 ‘숲을장’은 사람이 만나는 장터라는 개념이 더 커요. 경주에서 열리는 상업적이지 않은 장터, 사람들이 만나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도 이것저것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좀 더 푸른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작은 희망이 되는 것 같아요. 같이 하는 사람들 덕분에 진짜 ‘숲을장’이 열렸을 때 보람을 느끼죠.
아주 추운 겨울날이나 정말 더운 여름날이 아니면 거의 한두 달에 한 번씩 열어요. 비정기적이라 인스타그램이나 오픈 채팅방 등으로 공지해요. 보통은 10여 개의 팀이 참가하는데 중고 장터를 하시는 분들이나 어린이 셀러들도 있어서 어떤 때는 15개까지 열리기도 해요. 판매 물품은 주로 먹거리가 많은데 빵이나 떡부터 호박죽까지 저마다 집에서 해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만들어 오는 거죠.
처음엔 불국사 아랫마을에서 주로 열다가 얼마 전부터는 통일전 앞이 좋아서 주로 그곳에서 열어요. 가을엔 은행나무가 유명한 곳이니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진짜 포장지 없이 판매하는 걸 보고 신문지에 떡이며 먹거리들을 싸가며 신기해하기도 해요.
‘숲을장’에 올 때는 저마다 자기 의자, 자기 그릇 등을 다 챙겨 와서 돌아갈 때도 쓰레기 없이 헤어지죠. 그리고 마무리 단체 사진을 꼭 찍어요. 단체 사진을 찍는 이유는 우리가 무얼 했다고 알리는 의미보다는 우리의 시간을 추억하고 서로에게 용기와 에너지를 얻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예요.
‘숲을장’을 할 때는 캠페인을 나갈 때와 달리 마음이 자유롭고 편안해요. 사실 다른 환경 캠페인을 나갈 때는 남몰래 마음속으로 늘 방어를 준비하거든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면을 생각하죠. 그리고 완벽히 준비를 해서 나가려고 애쓰죠. 그런데 ‘숲을장’은 그런 게 없어요. 이제 2년여를 지나다 보니까 이 장에 왔던 사람들이 오히려 이걸 더 긍휼히 여겨주는 거예요. 이 장터를 불쌍히 여겨주는 거죠. 이 일이 그래도 계속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달돼요.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 내 생각을 확신하게 되면서 스스로 용기를 얻고 또 그 에너지를 받아서 다시 이 일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숲을장(플리마켓) 활동
Q.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건 뭘까요?
환경이라는 큰 비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좀 더 진실되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요. 당연히 지금처럼 캠페인도 하면서 일상을 살겠지만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꿈꾸는 방향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숲을’도 그런 가치에 좀 더 집중하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모이지 않을까요? 저는 ‘숲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를 바라고 있어요. ‘숲을은선’, ‘숲을혜린’, ‘숲을선미’가 100명의 이름으로 파생되어도 좋을 거 같아요. 벽 없이 사람들이 모여 함께 힘을 얻어가는 곳이 되기를 바라고 있죠.
그리고 환경에 대해 혹은, 사회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누구든 의견을 묻고 답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어요.
Q. 쉬는 시간이 생기면 뭐 하세요?
요즘 목표는 집에 가는 거예요. 집에 가서 책도 읽고 글도 쓰죠. 원래는 사람 만나고 이야기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 ‘숲을’ 활동 이후에는 그러면 안되더라고요. 그리고 아직 아이들도 어려서 할 일은 참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죠. 그래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려고 애쓰고 있어요. 예전에는 책방에 참 많이 갔었는데 이제 돈이 없어서 책방도 잘 못가요.(웃음) 요즘 목표는 진실되게 ‘숲을’활동을 좀 많이 기록하고 내 마음도 돌아보면서 내 에너지를 ‘숲을’에 나누고 싶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10년 후 ‘숲을은선’의 ‘숲을’을 생각해 보았다. 진실한 ‘숲을’과 맑은 ‘은선’을 꿈꾸는 그의 시간이 모여서 그의 삶이 될 것이다. 허투루 지나가는 시간은 없다. ‘숲을’의 활동이 큰 성과로 다가오지 않더라도 혹시나 작은 실패를 겪더라도 그 모든 경험이 자산이 될 거라는 응원을 나누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활동가라는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이름을 서슴없이 나누어 짊어지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항상 서툴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을 깊게 들여다보면 잊히기 쉬운 처음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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