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변만사]나의 결핍을 우리 모두의 필요로 채우는 사람들① - "차별없는 교육에 나중은 없습니다. 롸잇나우!"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 박정경

변화를만드는사람들
조회수 371


▲ 박정경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사진=정재훈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의 박정경 이사장이 제주에 오게 된 것은 가족 때문이었다. 


“동네발달지원센터에서 건하가 발달장애 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좋은 환경에서 건하를 키우면 건하도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죠. 마침 남편도 쉼이 필요했다고 했구요. 대기업 광고홍보 계열사에 다니던 남편이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병에 걸려 죽겠다’며 딱 1년만 제주에 살아보자고 설득했거든요(웃음).”


그렇게 서울에 살던 전셋집 보증금을 밑천 삼아 2015년, 첫째 아들 성하와 둘째 아들 건하, 셋째 아들 정하 등 다섯식구가 제주에 내려왔다. 사표를 냈던 남편은 차라리 육아휴직을 쓰라는 회사의 제안에 육아휴직계를 제출했다. 

애나 어른 가릴 것 없이 정말 신나게 놀았다. 동네 뒷산은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비가 오는 날 묽게 젖은 진흙은 아이들의 장난감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갈 시간이면 정경씨와 남편은 오름을 같이 오르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2년을 놀고 나니, 제주살이 밑천이었던 서울 전셋집 보증금이 바닥을 보였다. 남편은 불행히도(?) 다시 복직을 해야 했다. 가족 모두 서울로 가려던 그 때, 첫째 아들 성하가 말했다. 제주에 있고 싶다고. 어쩔 수 없이 3년 동안 주말 부부가 됐다. 남편은 서울에서 가정경제를, 아내였던 정경씨는 삼형제 육아를 책임졌다. 


제주에서의 육아는 ‘휴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발달장애아동이던 둘째 건하를 보낼 유치원이 없었다. 2017년 당시 제주도내에서 특수 학급 수는 4개, 정원은 최대 24명에 불과했다.

막막했던 정경씨는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시도교육청에 민원을 넣었고, 사람들을 모았으며, 기자들을 상대로 보도자료를 뿌렸다. 선거 때가 되면 후보자들을 찾아가 ‘차별없는 교육’에 대한 후보자들의 견해와 공약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2023년 기준 제주도내 특수 학급 수는 15개로 늘어났고, 학생 정원도 64명으로 확대됐다. 


서울로 잠시 떠났던 남편은 퇴사한 후 제주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자영업자로 변신했다. 갈 곳이 없어 막막했던 유치원생 건하는 ‘아침 일찍 학교 가기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팔을 걷어붙이고 제주와 전국을 누빈 정경씨는 사단법인 제주아이 특별한 아이의 대표이자,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 그리고 어린이도서연구회 제주시 지회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제주지부장 등 다수의 화려한(?) 직함을 보유하게 됐다. 

2024년 7월. 제주로 날아가 유쾌한 정경씨를 만나고 왔다. 


#. 그럼 우리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박정경 : 그럼 우리 아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교육청 : 일반 유치원 보내세요.
박정경 : 일반 유치원엔 어떻게 가나요?
교육청 : 다른 아동과 같이 원서 넣고 추첨해서 가면 됩니다.
박정경 : 혹시 거기도 못 가게 될 경우에는요?
교육청 : 그럼, 사립 유치원에 가면 됩니다.
박정경 : 사립 유치원에서 장애아라고 입학을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청 : 원래는 그러면 안되는데 유치원에서 사정이 있었겠죠.
박정경 : 다른 어린이집에 대기라도 해야 할까요?
교육청 : 네 그렇죠.

_ 2017년. 제주시 교육지원청 담당자와의 전화통화내용/출처=박정경 이사장 블로그


건하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이었던 2017년. 제주시 교육지원청이 병설유치원 정원(7세반)을 늘리면서 건하가 갈 수 있는 유치원이 사라졌다. 병설유치원 정원이 늘자 어린이집 7세 아동의 대부분이 병설유치원으로 이동. 어린이집 7세반들이 문을 닫은 것이다. 장애아동들과 통합교육을 운영하던 어린이집 7세반이 남아있을리 만무. 박정경 이사장은 머리가 아팠다.

그냥 병설유치원(일반 유치원)에 보내면 되지 않냐고? 박 이사장은 “일반 유치원은 장애아와 일반 아동을 특정 수업시간에만 함께 모여 수업을 한다. 그 외의 시간은 둘을 분리한다”며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의 통합교육을 원하는 부모들은 유치원 교육과정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7년 당시 제주시 기준으로만 따지면 노형초등학교와 삼성초등학교, 인화초등학교 등 세 곳의 병설 유치원만 장애통합유치원(특수교육기관)이었어요.”


박정경 이사장이 교육지원청 담당자와 날선 통화를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만큼 부족한 숫자 때문이다. 

그럼 그냥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면 안되나?


“아쉽지만 7세 장애아를 새롭게 받는 어린이집은 거의 없어요. 일단 기존에 다니고 있는 장애아가 있으면 자리가 나질 않구요. 인터넷에서는 장애통합 어린이집이지만 실제로 가보면 특수교사가 없어서 장애통합보육을 하지 않는 곳도 있구요.”


답답한 마음에 박정경 이사장은 교육지원청과 시청에 따져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부모님들이 특수교육 신청을 안했기 때문”이라는 무책임한 답변이었다. 박정경 이사장은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며 “실제로 가보면 과밀학급. 즉 교사 1명이 봐야하는 정원(4명)을 초과(6명)한 경우가 많아 학부모들이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정경 이사장은 명백한 정책 실패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책임을 져야 할 기관(교육지원청과 시청 등)들은 서로 자기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제주시 교육지원청이 무리하게 일반 병설유치원의 7세 정원을 늘리는 바람에 어린이집의 7세 반이 사라지게 됐고, 결국 장애아동들이 갈 곳을 없어졌어요. 당국은 장애통합 유치원에서 충분히 통합교육을 운영하고 있다지만 그마저도 분리교육이 현실이었죠.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았고 수요자가 어떤 교육을 원하는지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이건 바꿔야 했어요.”


박정경 이사장은 그렇게 민원인으로 거듭났다. 

“차별없는 교육에 나중은 없습니다. 롸잇나우!”



▲ 삼달다방에서 진행된 생태놀이터. 박정경 이사장은 &놀이 앞에서는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며 &생태놀이터는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 모두가 즐거운 공간"이라고 소개했다./출처=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


#. 혼자보다는 여럿이 나아


민원도 혼자 넣는 것보다는 여럿이 넣는 게 더 나았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던 7명의 엄마들이 릴레이로 민원을 넣었다. 처음에는 전화로, 나중에는 공문을 보냈다. 


“반드시 들어갈 내용이 정해지면 그걸 문서로 정리해요. 그리고 각자 순서를 정한 뒤에 계속 공문을 보내는 거예요. 공문으로 보내면 당국에서는 반드시 회신을 해야요. 한 명이 하면 진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웃음), 여러 명이 하면 그건 목소리가 되기도 하고요.”


도청과 시청, 교육청은 당혹스러워했다. 반복되는 릴레이 공문에 지친 교육청이 어느 날 연락을 해왔다.

“차라리 그냥 단체 하나 만들어서 공문을 &하나'로 만들어 보내주시면 안 돼요?”


제주도 내 200명이 넘는 발달 지연 및 발달 장애 아동 부모들이 모인 사단법인 제주 아이 특별한 아이(이하 제특)는 그렇게 7명 엄마들의 극성(?)으로 시작됐다. 장애아들에 대한 이해와 양육 정보를 공유하는 까페였던 제특은 이제 제주도 내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며, 아이들이 지역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만들기를 고민하고 준비해 나가고 있다. 

박정경 이사장과 엄마들이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본격적으로 연구 및 조사에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지금까지 영유아를 넘어 ▲발달장애 초등학생의 건강한 방과후 활동 ▲제주도 중・고등학교 특수학급 및 특수환경 교육환경 ▲발달장애아동의 건강한 돌봄을 위한 공간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돌봄 시스템 구축 등 연구 및 조사 보고서를 제작했다. 


5~6년 동안 보고서를 쓰다보니 박 이사장도 나름의 노하우가 쌓였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2년 전부터 준비를 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일단 특수학급 증설 때 보니까 우리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바뀌는 데에는 한 2년 정도 걸리더라고요. 보고서 내고 언론이 받아주고, 지방선거랑 국회의원 선거 등을 활용하려면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데이터가 중요해요. 데이터를 넣어줘야 기자분들이 조금 더 잘 받아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가 있으니까 눈에 확 들어오셨던 것 같아요.”


보고서가 완료되면 지역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알렸으며, 선거철에는 토론회를 개최. 지역 정치인들을 만나 엄마들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정리해 전달했다. ‘2021 제주도 특수교육 환경 탐구보고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제특 소모임인 특수교육환경연구모임은 보고서를 통해 ▲특수학급 과밀 ▲효율적인 직업교육 ▲제주도내 대학에 특수교육학과 설치 ▲영지학교 분교 설립 ▲특수교육원 설립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후 지방선거 시기에 발달장애인 부모네트워크와 연대. 위의 5개 내용을 정책제안에 담아 발표했고 이 중 3개(제주도내 대학에 특수교육학과 설치, 영지학교 분교 설립, 특수교육원 설립)를 관철해냈다. 



▲ 지난 4월. 박정경 이사장이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 작은도서관에서 대구 호산대학교 특수직업재활학과 학생 및 교수 40여명 앞에서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에서 대해 소개하고 있다./출처=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


하지만 정작 박정경 이사장이 주목하는 변화는 다른 것에 있었다. 


“사실 제가 처음 제주에 왔을 때만 해도, 우리 발달장애 엄마들은 약간 위축돼 있었어요. 우리 아이가 발달장애라는 것을 쉬쉬하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러니 당연히 우리 목소리를 내는 걸 주저하는 분들도 많았죠. 근데 이렇게 몇 번 떠들고 언론이 받아주고 관에서 움직여주니까, 이제는 학습효과랄까요? 더 해 사람들이(웃음). 그게 너무 좋아요. 숨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떠들어도 된다는 것. 그게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고 큰 보람이에요.”


#. 삶이 계속되는 한 활동은 계속 된다

▲ 제1회 별난고양이꿈밭 앙상블 연주회. 발달장애아동들과 그 부모들이 연주회를 가졌다. /출처=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


인터뷰가 잡힌 7월 5일 오후 3시.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별밭 사협) 내 작은도서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아이들이 저마다 도구(?)를 챙겨 수업을 받으러 들어간다. 누군가는 첼로를, 누군가는 스케치북을 들고 교실로 들어간다. 별밭 사협은 작년부터 방과후 돌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은 청소년 발달장애인. 별밭 사협은 미술과 음악 등 예체능 프로그램부터 경제교육 자조모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해 아이들의 발달과 자립을 돕고 있다. 학부모들은 공공에서 지원하는 바우처로 별밭사협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제특 활동도 바쁜데 굳이 별밭 사협까지 만들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함께 일하는 고희순 별밭 사협 사무국장이 “장기적인 투자라고 생각해요”라며 거들었다. 


“저희는 아이들이 남들처럼은 아니어도 일을 했으면 좋겠고, 그마저도 어렵다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게 하루 아침에 안 되잖아요.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식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가 정말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필요했어요. 미술과 음악을 배우고 경제 자조모임을 운영하는 건 우리 아이가 정말 즐겁게 자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당사자인 우리가 제일 필요로하고 또 제일 알기 때문에 힘들어도 시작하고 운영하는 거죠.”


박정경 이사장도 마찬가지. “다 내려놓고 자유롭게 글이나 쓰고 싶다”며 웃어보이는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밭 사협 이사장부터 다수의 단체장을 맡게 된 데에는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 곧 활동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


“성격이 급해서 직접 나서다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웃음). 사실 그렇잖아요. 차별없는 교육에 나중이 어딨어요? 기다리면 해결해주나요? 저는 그런 말 사양합니다. 건하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 마주했던 문제들을 해결하니까,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 문제가 눈에 들어왔어요. 이제 건하가 중고등학교 들어갈 때 되니까 진학문제가 고민이고요. 졸업하면 이제는 일자리가 고민이겠죠? 그래서 일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바람이 있다면 나 없이도 최대한 잘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하하.”


▲ 고희순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왼쪽)과 박정경 별난고양이꿈밭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오른쪽)/사진=정재훈


#. 취재 뒷 이야기


“기자님이 같이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네?”라는 박정경 이사장의 부탁에 부리나케 달려와준 고희순 사무국장. 조금 전까지 발달장애 아들의 수영동아리 모임 준비위원회(?) 업무를 수행하다 왔다고. ‘활동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유. 저는 활동 이런 거 몰라요(웃음)”라며 손사래를 친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박정경 이사장이 웃으며 말한다. “국장님이 조금 전까지 수영동아리 만들다 온 게 활동이야(웃음).”

#제주 #박정경 #발달장애 #별난고양이꿈밭 



글쓴이_ 정재훈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제가 빚는 작은 노동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임팩트 그라운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재단법인 브라이언임팩트가 후원하고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