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공익활동가주간]슬픔이 슬픔으로만 남지 않도록 -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이하영

변화를만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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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시로 변해서 계속 낯설어진다. 이십여 년을 반성매매 운동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단단한 구조는 깨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온라인을 통해 파편화되고, 비가시화된다. 알 듯하다 싶어질 때쯤 멀어진다. 그럼에도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가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만한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를 향해 단단하게 매일을 살아간다. 반성매매 활동 판에 머무는 동안 지치지 않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가고자 하는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 및 여성인권센터 ‘보다’ 소장을 만났다.


#. 오래 걸을 길을 만나며

Q. 2024년 제21회 미지상 수상 소감에서 대학생 때 페미니즘을 만나서 첫발을 디딘 곳이 반성매매 운동단체였다고, 운이 좋게 지금까지 이 운동과 함께하고 있다는 소감이 담긴 기사를 봤어요. 처음 어떻게 반성매매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듣고 싶어요.

대학 다니면서 총여학생회 활동을 했어요. 활동하면서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게 됐죠. 여성 운동을 처음 접하면서 굉장히 재밌게 했던 기억이 있어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도 차츰 생기고, 그중에서도 여성 문제에서 고민하게 됐어요. 이러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졸업을 앞두고 활동가로 계속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러 여성단체를 수소문했어요. 2003, 2004년 당시가 성매매피해상담소들이 막 생기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어요. 선배에게 소개받아서 자원 활동부터 시작했어요. 사실 자원 활동을 시작할 때는 성매매 문제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었어요. 활동하며 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걸 본격적으로 체감하게 된 거 같아요.


Q. 학부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는지도 문득 궁금해요.

기독교 교육학을 공부했어요. 1학년 때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목사 사모님이 되고 싶다고 하기도 했어요.(웃음)


Q. 반성매매 활동의 중추가 되는 단체에서 중책을 맡고 계세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와 여성인권센터 ‘보다’에서는 어떻게 일하게 되셨을까요. 

두 단체는 사실 하나의 단체에요. 전국연대가 법인이고, 전국연대 법인의 부설기관으로서 여성인권센터 ‘보다’가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여성인권센터 ‘보다’의 소장이면서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법인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거죠.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서울시에서 만든 상담소에서 2년 정도 일했었어요. 그러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사회학 공부를 했죠.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정미례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회의 있다고 부르고, 활동 있으면 부르고 해서 활동을 도와주면서 전국연대를 알게 됐죠.


Q. 본격적으로 반성매매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도 있으실까요?

처음에 정미례 선생님과 일하게 되면서 저를 여기저기 많이 보내셨어요. 성매매경험당사자 자조 모임의 대표들이 모이는 운영위원회 이름이 뭉치에요. 뭉치 회의와 운영위원회에 매번 갔었어요. 뭉치 토크 콘서트 ‘무한 발설’이 처음 열리는 자리에도 갔었죠. 리허설도 보고, 뭉치 활동가들에게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토크 콘서트에서 자신의 성매매 경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하시더라고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요.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갖게 돼서 정말 감사하고, 좋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뭉치 활동가들도 서로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한 게 처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사자들도 역시 서로 이러한 경험을 나누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인데 저는 운 좋게 함께 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반성매매 활동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당시가 본격적인 상근이 아닌 반상근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거든요.


Q. 어떤 시절의 힘든 기억을 다시 재해석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껴져요. 슬픔이 계속 슬픔으로 남지 않도록 하는데 뭉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져요.

네 맞아요. 자기 경험을 말하고 재해석하는 걸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다 보니 더 큰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서로 무너지지 않도록 힘을 준다고 많이 생각해요.


Q. 또 다른 계기도 있으실까요?

처음 상담했던 분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요. 첫 상담이 스물다섯 살이었는데 내담자도 동갑이었어요. 어떻게 성매매를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는데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답했어요. 실업계 학교에 다녔는데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를 가는데 졸업하는 학생이 10%도 안 된대요. 일이 힘드니까 2학년쯤 되면 유흥주점 가서 일한다고. 자신도 자연스럽게 유흥주점에 가게 됐고, 당시에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누구에게는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걸 그때 알게 됐어요. 


Q.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와 여성인권센터 ‘보다’는 각각 어떤 단체인지도 궁금해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시민 운동 단체에요. ‘보다’는 전국연대에서 운영하는 성매매 피해 상담소에요. 자활 센터도 운영하고 있고요. 성매매 방지법은 피해자 보호법에 근거하고 있어요. 법령에 따른 여러 여성 지원 기관들이 있어요. 성폭력 상담소, 가정폭력 상담소는 각각 다른 법에 근해서 있는 거죠. 상담소인 ‘보다’는 여성들을 직접 만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요. 현장에서 여성들 만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다 보면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죠. 전국연대는 13개 회원단체의 네트워크 단체이기도 해요. 전국에는 13개 반성매매 활동 단체들이 있어요. 지역에서 각각 상담소, 자활센터, 쉼터를 운영하고 있고요. 현장에서 나오는 내용을 취합해서 전국연대로 가져오죠. 고민을 바탕으로 정책적 과제나 활동 방안을 만드는 게 전국연대에요.



Q. 전국 네트워킹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네트워크에도 여러 분류가 있어요. 전국연대는 각 지역 단체의 연대체잖아요. 지역 단체 대표들이 모인 운영위원회가 있어요. 단체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상담소, 쉼터, 자활센터가 있어요. 상담소 네트워크도 따로 있고요. 상담소 네트워크는 매달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회의를 해요. 지금 각 상담소에 어떤 사건이 들어와서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는지, 중요 사건은 무엇인지 공유하고 논의하죠. 올해 상담소 네트워크에서는 20주년을 맞아서 판례 분석을 하고 있죠.

자활센터 네트워크와 쉼터 네트워크도 따로 있어요. 자활센터 네트워크에서는 다정 사업이라고 해서 활동가들이 다른 자활센터를 방문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자활센터에 가보고, 서로의 상황과 방식을 공유하죠. 각각 상담소, 쉼터, 자활센터 운영위원회와 전체 활동가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이는 1박 2일 워크숍을 진행하죠. 전국 연대 총회라는 이름으로 1년에 한 번, 전체 활동가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네트워킹하는 행사도 있어요. 여러 네트워크가 각각 돌아가면서 조직 사업이 구성돼요.


Q. 여러 네트워킹 행사 중에서 가장 큰 행사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성매매방지법 시행일이 9월 23일이에요. 군산 대명동 화제 참사가 2000년 9월 19일이었거든요. 대명동 화재 참사가 있던 주간을 성매매 추방 주간으로 법적으로 정했어요. 해당 주간에 여러 캠페인과 행사가 진행되죠. 반성매매 운동이 시작된 게 군산에서의 화재 참사 때문이거든요. 2006년부터 매년 그 주간에 ‘민들레 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군산에 가요. 전국에 있는 반성매매 단체들이 한 날을 정해서 모이죠. 행사를 하고, 화재가 있었던 장소를 방문해요. 참사 피해자와 무연고자 시신을 안치해 둔 납골당을 순례하고요. 민들레 순례단을 통해 매년 만나게 되니까 반성매매 활동가들은 여러 방식으로 자주 만나게 돼요. 서로 끈끈하고, 네트워킹이 잘 되는 편이에요. 연계를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전화 통화도 자주 하고, 어떤 사건이 있으면 비슷한 사례가 있었던 단체에 물어보기도 하죠. 


Q. 보다에서의 상담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상담은 본인이 직접 요청하고, 동의가 있어야 진행돼요. 성매매 방지법 이전에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있었어요. 윤락행위등방지법에서는 여성의 동의 없이도 강제적으로 상담했어요. 강제로 직업 교육을 시키기도 했고요. 상담과 교육의 과정이 너무 폭력적이어서 탈출하려는 시도도 있었죠. 대표적으로는 경기여자기술학원 사건이 있고요. 이러한 일들이 터지면서 비판이 많았어요. 성매매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상담과 교육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법령이 생겼어요. 본인이 원하고, 동의해야 상담과 이후 행동을 진행한다는 내용을 법에 넣었어요. 

과거에는 쉼터에서도 마음대로 못 나갔어요. 지금은 다르죠. 주로 요청하는 상담이 법률적인 부분이 가장 많아요. 채무가 많으니까요. 고소 혹은 단속 문제에 대한 법률적 지원도 하죠. 병원 의료도 지원하고, 직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자활센터로 연계를 해요. 생활적인 지원이 필요하면 주민센터를 통해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알아보기도 하고요.


#. 또 다른 도약을 위해 모아 온 마음들

Q. 성매매방지법 제정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떤 활동들을 하고 보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성매매방지법의 성과와 과제를 분석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준비하고 있어요. 이와 연계해서 평가를 위한 토론회도 준비하고 있고요. 20년간 쭉 해오면서 느끼는 막히는 지점이 여성들이 처벌받는다는 점이에요. 여성들이 처벌받다 보니 법률 지원이 어려워요. 법률 지원이 안 되니까 다른 피해 지원이나 자활 쉼터와 같은 지원으로 연결이 어려워요. 탈성매매를 원하는 여성들이 상담소로 향하는 입구부터 막히는 거죠.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이 성매매 여성들이 처벌 안 받도록 하는 거예요. 재작년 2022년부터 성매매 처벌법 개정연대를 만들어서 법 개정 운동을 하고 있어요. 올해도 열심히 해볼 예정입니다.


Q. 말씀해 주신 3월 성매매처벌법 개정 촉구 전국 행진 이후 개정과 관련 기사를 찾기 어려웠어요. 어떠한 진전이 있는지 궁금해요.

법 개정 운동이다 보니 사실 정부와 국회랑 소통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지금은 소통이 아예 안 되고 있는 상황이죠. 여성가족부와도 소통이 어렵고, 국회 법사위와도 이야기해야 하는데 파트너조차 없는 상황이에요. 다른 여성 단체들도 국회와 네트워킹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죠.

누구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부터 고민이고, 소통이 된다고 해도 국회와 정부 분위기가 통과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국제 사회를 통해 국내 상황을 타개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올해 스위스에서 열렸던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에 12개 여성 단체에서 30여 명이 참여했어요. 심의를 4년에 한 번 진행하는데 한 해 밀려서 올해 5월에 진행됐어요. NGO 입장 보고서를 제출하고, 다른 CEDAW 위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한국 정부에 답변 요청을 했어요. 최대한 우리 의견이 담길 수 있도록 했죠. 성매매 여성 비범죄화, 인신매매 관련한 실질적인 예산 확보 같은 내용을요. CEDAW에서 우리 의견이 담긴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가 나왔어요. 한국 정부의 즉각적인 반응은 없는 상황이에요.


Q. 전국연대에서 바라보면 지역별로 두드러지는 양상들이 있을까요?

성매매는 지역별 차이가 크지 않아요. 여성분들이 일단 업소를 전국적으로 돌아다니게 돼요. 서울에서 상담받는 분들은 대부분 서울 출신이 아니세요. 출신 지역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지 않거든요. 서울에서 상담 받다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출신 지역 상담소로 연계해서 지원받도록 하죠. 성매매 내용이나 업소 유형이 지역 별로 큰 편차가 있지는 않아요.

그나마 최근 느끼는 편차가 있다면 서울은 업소에서 선불금을 안 줘요. 개인 사채를 쓰도록 하죠. 지역은 여전히 선불금을 주고요. 서울에는 티켓다방이 없는데 지역에는 여전히 많아요. 서울에는 외국인 여성들이 별로 없는데 지역에는 마사지 업소들이 많아 상담이 주기적으로 들어온대요. 서울에는 외국인 여성 상담이 안 들어오거든요. 


Q. 남아 있는 기지촌의 언니들 구성이 외국인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은 또 다른 맥락이 될 거 같아요.

저희는 외국인 여성들을 전문적으로 지원하고 있지 않아요. 제주, 목포, 인천 등에서는 요청이 종종 온다고 해요. 외국인 여성 전문 상담소인 ‘두레방’에 연계하죠. 쉼터는 평택에, 상담소는 의정부에 있어요. 두 곳 다 기지촌 지역이죠. 두레방 쉼터에서는 태국인 직원을 고용했대요. 언어가 되는 자국 여성이 없으면 상담이 어렵다고 해요. 태국 여성을 고용해서 SNS에 태국어로 홍보해야 상담 요청이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Q. 성 산업 혹은 성 착취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어요. 처음 활동을 시작하던 때와 지금은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요.

정말 어려워요. 분석과 실제가 굉장히 다른 거 같아요. 과거에는 업소가 많았어요. 업소에 진입하게 되는 여성들도 무차별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나이, 생활 수준, 학력 등과 무관하게요. 지금 업소의 여성들은 중고령 여성들이에요. 분석을 해보면 요즘 10대들은 오픈 채팅 방이나 그루밍을 통해 성매매에 접근하게 돼요. 20, 30대 여성들도 분명 여전히 성매매에 노출되어 있을 텐데 상담에 오지 않아요. 점점 비가시화되고 있다고 느껴요. 외국인들도 많을 텐데 역시 안 보이고요. 온라인 아웃리치도 계속하고 있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워서 계속 고민이죠. 과거에는 업소형 성매매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눈에 보였어요. 노래방, 유흥주점, 마사지숍 등으로요. 지금은 오피스텔 혹은 조건 만남이 성매매의 주류가 되다 보니 어떻게 여성들을 만나야 하는지 접촉 자체가 어려워서 고민이 되죠.


Q. 오프라인 아웃리치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나요?

업소가 모여 있는 지역들을 정해서 나가고 있어요. OO 쪽에 노래방이 100여 개가 되고요. OO 쪽에 맥양집이 밀집해 있죠. 이곳들을 2, 3년 이상 꾸준히 가요. 처음 가면 여성분들이 우리를 장사하러 온 줄 알아요. 그래서 ‘안 사요’라는 말만 들어요. 못 미더워하는데 꾸준히 가다 보면 우리가 어떤 단체인지 조금씩 알게 되죠. 그냥 반갑게 맞아주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상담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묻기도 해요.

업주들의 태도는 그때 그때 달라요. 본인들이 기분이 좋으면 잘 받아주다가 기분 나쁘면 쫓아내고, 욕하기도 하죠. 어떤 사건이 있고 나면 못 들어오게 하기도 하는데 다음에 모른 척 가면 또 받아주기도 하고요. 이번 주에 욕했던 이모가 다음 주에는 웃으면서 인사하죠. 


#. 더 길게,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

Q. 전국연대에서 하는 활동 중에서 의제 설정, 용어 정립 역시 중요한 일로 다가와요.

최근에는 ‘성 착취’라는 용어를 고민해 왔어요. ‘성매매’라는 용어에 한계가 많다는 논의가 있어요. 과거에는 ‘매춘’, ‘윤락’이었죠. 법이 바뀌면서 ‘성매매’라는 법적 용어를 만들기는 했지만, 함의를 살펴보면 성을 사고판다는 개념이에요. 해당 용어로는 행동의 성격이나 여성에 대한 착취적인 상황을 담아내지 못하고, 어떤 면에서는 은폐하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성매매’라는 용어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는데 대체어 설정이 어려운 실정이에요. 왜냐하면 대체어인 ‘성 착취’라는 용어도 너무 포괄적인 개념인 거죠. ‘성 착취’라는 포괄적인 개념 안에 ‘성매매’는 법적 처벌이 되는 특정 행위인 거죠. ‘성매매’를 ‘성착취’로 대체한다고 했을 때, 두 개념이 맞아 떨어지지는 않아요. 

성매매 처벌법 개정연대 활동을 하면서 개정 법률안을 만들면서 변호사 분들도 모셔서 토론회를 했는데 거기서 '성매매'를 ‘성착취’로 바꾸는 것을 고민했어요. 좀 더 좁혀서 돈 혹은 대가가 오고 가니까 ‘상업적 성착취'라고 해야 할지 고민했었어요. ‘성착취’라는 용어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걸 상상하게 해요. 용어가 가진 함의는 그렇지 않은데 뉘앙스가 강해서 우리 운동에 적합할지 걱정이 되죠. 성착취 피해자라고 하면 인신매매 피해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어요. 변호사분들은 ‘성 착취’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는데 단체 측에서는 우려했어요. 그렇다면 우선 ‘성매매’가 아닌 ‘성매수’로 용어 설정을 하기로 했어요. 여전히 지금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우리 운동에 적합한지 고민하고 있어요.


Q. <도시와 성매매, 여성인권의 사이에서>라는 글을 이하영 대표님의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어요. 석사 논문과 관련된 글이었을까요?

논문은 아니고 아티클이었어요. 사회혁신리서치랩에서 발간하는 <사회혁신포커스>에 실은 글이에요. 성매매 집결지도 도시 공간의 문제이자 인권 문제니까 같이 고민해 보자는 취지로 함께 했었죠. 성매매 집결지는 지금도 어려운 주제예요. 집결지 폐쇄가 결정되면 철거민과도 연결되고, 도시 빈민과도 닿게 돼요. 성매매 여성들은 생존권 시위를 하다보니 여성 단체가 오히려 성매매 여성들을 탄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전국연대에서도 이러한 고민이 있기도 했고요. 성매매 집결지를 바라보는 활동가의 복잡한 심경을 담은 글이에요. 집결지에서 했던 다양한 활동, 노력을 정리해 봤어요. 

집결지 폐쇄를 넘어서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고민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요. 미아리도 지금 폐쇄 과정에 있고, OO집결지도 싹 사라지고 아파트가 올라갔죠. 아무런 흔적도 없이요. OO에서 활동했던 선생님들은 마음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폐쇄를 위한 활동을 전개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한 공허함과 허탈함, 무력감이 다가오는 거죠. 우리가 성매매를 근절해야 되지만, 그 이후에 집결지를 거쳐 갔던 여성들에 대한 기록과 기억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집결지가 폐쇄되면 전시회를 하고, 기록지를 남기고,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안을 만들어요. 여성들이 어떤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상상하면서요. 집결지 폐쇄 과정이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Q. 연구 작업과 저술 작업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 진행했던 작업은 군산 화재 참사에요. 군산 화재 참사로 반성매매 운동이 시작됐기 때문에 기록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선배들의 이야기를 후배들이 잘 몰라서 우리 운동이 어떻게 출발했고, 초창기에 무슨 고민을 했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기록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워요. 우선 기록 자체가 잘 없어요. 80년대, 90년대 운동했던 선배들은 기록을 삭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과거 운동권은 기록이 남아 있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생산됐던 기록도 삭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제대로 정리된 내용이 없었고, 전국연대가 사무국이 있지 않았어요. 2016년, 여성인권센터 ‘보다’가 생기면서 상근 단체가 됐어요. 회원단체들이 있었지만, 전국연대에는 대표 한 명만 있었고, 그전까지 사무국 활동가는 없었죠. 아카이빙과 기록에 대한 욕구는 계속 있었는데 여력이 없었어요.

다행히 단체와 별개로 반성매매 관련된 책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전까지는 기록물과 책이 부족했거든요. 전 대표이고, 현 정책팀장님인 신박진영 선생님의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봄알람, 2020)이 나오고, 뭉치에서도 『무한발설』(봄알람, 2021)을 발간했어요.  해외 성매매 경험 당사자 책인 『페이드 포』(안홍사, 2019)도 번역되면서 반성매매 관련 책들이 생겼어요. 반성매매 운동을 소개할 때, 이런 책들이 있다고 소개할 도서들이 생겼죠.


Q.『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반비, 2019)는 여러 매체에서 언급하셨더라고요.

앞서 말한 책들 다 정말 좋은 책이에요.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은 와닿는 문구들이 많아서 인용을 종종 했어요. 강의하거나 글을 쓸 때, 경험 당사자의 말과 글을 자주 인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말들이 갖는 힘이 있으니까. 이 책 이전까지는 성매매 당사자의 기록이 전무하기도 했고요.


Q.『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을 읽기 전, 막연하게 성매매방지라고 생각하면 한 개인을 성매매 밖에서 자립할 수 있게 하는 활동을 생각했어요.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이보다 더 큰 맥락에서의 반성매매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느껴졌어요. 반성매매운동의 목표에 대해 듣고 싶어요.

반성매매 운동 목표는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가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만한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요. 


#. 담담하고 묵묵하게


Q. 지금까지 직업적인 얘기들을 많이 여쭤봤다면 생활적인 이야기, 인간 이하영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웃음) ‘여성 운동과 반성매매 운동에 더 기여하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는 소감을 봤어요. 어떤 선배들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셨을까요?

멋진 선배들 많죠. 일단 전국연대 선배들이 다 멋져요. 전국연대가 2004년에 만들어졌는데 저는 2017년부터 시작했으니까 꽤 많은 선배를 볼 수 있었어요. 전국연대에 들어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말 멋진 선배들이 많았어요. 이들을 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배가 되어줘야지 생각하게 됐죠. 누구 한 명을 꼽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정미례 선생님이 앞, 뒤 고민하지 않고, 반성매매 운동만 생각하는게 참 좋았어요. 이러한 태도는 사실 정미례 선생님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모든 선배, 동료, 후배들이 모두 가지고 있죠. 

시민단체 안에서도 정말 다채로운 태도와 목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반성매매 운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결이 비슷했어요. 모든 운동들이 힘들겠지만, 반성매매 운동은 그 안에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진심, 순수함을 좋아해요. 저는 같이 반성매매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아요. 그럴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동료들을 믿을 수 있어요. 운동을 시작하면서 봤던 멋짐이 내부에 들어와서 꽤 오랜 기간 활동을 했음에도 여전히 그대로 있어요. 물론 모이면 작은 투닥거림도 있지만, 솔직하게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요. 그러다가도 다시 웃으면서 풀고, 밥 먹으러 가고 이런 점들이 좋아요. 

저는 잘 질리는 편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반성매매 운동은 질리지 않아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언니들이 좋았어요. 다들 굉장히 세잖아요. 살아남기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니까요. 기지촌 여성들, 할머니들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죽고 싶은 순간도, 실제 시도한 경우도 있지만,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서 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신 거죠. 그들의 말에서 힘을 느꼈어요. 최선을 다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주는 에너지에서 제가 힘과 용기를 많이 받아요. 이들이 전해주는 힘과 자유로움에서 정서적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요.


Q. 활동을 하시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없으실까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있을 조직 내의 갈등이나 어려움 정도라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대표로 있으니 연대 활동을 할 때, 주어진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반성매매 운동을 욕 먹일 수 있으니 조심스러워요. 그러나 사람이다 보니 실수가 생길 수 있고, 여러 번 논의한 내용이지만, 반응이 기대와 다를 수 있죠. 이럴 때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Q. 직업과 생활의 경계를 정하는 일이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생각보다는 야근 없이 잘 퇴근하고, 퇴근하면 집에서는 일 안 해요. 대표들끼리 회의를 잡으려면 늦은 시간밖에 안 돼서 야근할 때가 있기는 해요. 써야 할 원고가 있으면 그때는 남아서 하는 편이고요.


Q. 퇴근하면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퇴근하면 그냥 집에 가서 누워 있어요.(웃음) 드라마 보는 거 좋아해요.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에요. 정말 모든 드라마를 다 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걸 좋아하죠. 그래야 환기가 되는 거 같아요. 주말에도 가능하면 산책하고 하고, 밀린 드라마보는 정도에요.


Q.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지도 궁금했어요.

일단 일이 재밌어요. 내가 구상한 일을 기획하고, 사업을 통해 실현하는 일이 좋아요. 전국연대에서 해보고 싶은 일을 제안하면 다 같이 으쌰으쌰 추진해서 해볼 수 있거든요. 일이 주는 효능감과 만족감이 큰 편이에요. 활동하는 동안 성매매 처벌법 개정 그리고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를 은퇴 전까지 실현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은퇴한다면 육체노동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상상해요.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이하영 #서울 #젠더 #여성


인터뷰어 : 김민범
문학을 오래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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