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왼쪽이 풍경님, 단체 활동 대부분 사진을 찍는 역할을 풍경님이 하고 있어서 본인 사진이 거의 없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활동가 풍경 입니다. 업무는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 입니다. 채용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하고, 전북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파견 보낸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Q. 원래 연고지가 전라북도 이신가요?
네 연고지는 전북입니다. 원래는 전라북도에 전북평화와인권연대라고 하는 이제 지역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었습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에서도 장애인 문제(탈시설 등) 접했습니다.
장수벧엘장애인의집이라고 하는 시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장애인 학대 사건이 발생해서 그분들을 구출해오고 탈시설 자립생활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투쟁을 하면서 장애 운동하고는 인연이 됐습니다.
420전국장애인대회
Q.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북장차연)는 장애대중투쟁을 통해 장애인의 차별철폐와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로 하는 활동들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 장애인 노동권, 탈시설권리, 장애인 자립생활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들을 합니다.
Q.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위에서 말씀 드렸듯, 원래 지역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안검연축이라는 질병이 왔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탓인지 자율신경계의 문제로 눈꺼풀을 제 뜻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증상이 왔었습니다. 이 증상으로 4개월간 치료를 했고 인권단체를 퇴사하고 1년을 쉬었습니다. 1년을 쉬는 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옥순 전사무총장님께서 제안을 해주셔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장연에서 제안을 받지 못했으면 전 실업자가 됐을 거에요.(웃음)
420전국장애인대
Q.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집행위원장이 되기까지, 집행위원장으로서의 역할?
처음 채용될 때 직함은 사무국장이었는데, 전북장차연은 제가 오기전까지 2017년 한 회원단체내에서 발생한 장애인 폭행사건에 대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오랜기간 조직내 구성원간의 갈등상태에 놓여 있었어요. 이 때문에 전북 장차연이 사고지부 상태였고, 2022년 제가 와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니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전북장차연을 떠난 분들이 2017년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라며 전북 장차연 대표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가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활동을 시작하려 한다고요.
제가 2022년 2월에 채용 됐는데, 6개월 동안을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출발을 해야하는데 진흙탕 속에 빠져 헛바퀴만 도는 거 같은 상황이 계속 됐어요. 그 일로 전북장차연 대표님이 많이 힘들어하셨고, 2년간의 활동 중지를 하겠다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전북장차연 대표가 공백상태이다 보니 저에게 집행위원장의 지위와 권한이 주어질 수밖에 없었고, 회의 소집을 비롯해 조직재건의 업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전북장차연 실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저 혼자입니다. 집행위원장의 역할은 조직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합니다. 회의 자료 및 문서 작성, 지자체장 면담 및 투쟁계획 세우기, 성명서 및 보도자료 작성, 웹자보 만들기, 회계정리, 집회 조직 및 사회보기 등등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Q.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오셔서 고생이 많으셨을 거 같아요.
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조직이 과거에 대표가 뭘 잘못했네식의 공격과 비난들만 오가니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더라고요. 2017년 당시 폭행사건을 잘 못 처리한 사람들은 이미 사임했고, 또 전장연에서 중재위를 꾸려 내려와 양측간의 중재절차들도 가졌지만 문제제기 한 측에서는 함께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책임을지지 않고 중재위가 끝나버렸어요. 그 뒤로도 문제제기 한 분들의 문제제기가 계속됐어요.
문제제기 한 분들의 문제제기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고, 조직의 대표가 잘못하면 사과하고 일을 바로 잡고 다시 출발할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고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기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문제제기 한 분들이 조직에 대한 불신이 매우 컸던거 같아요.
왜 그렇게 불신이 컸을까 추측해보면 당시 조직에 실무자의 지위가 불안정했고, 지역장차연 조직이 체계가 잘 잡혀있지 못한 면이 컸던거 같아요. 열악한 재정과 구조안에서 대표님들은 나름 한다고 했을텐데 문제제기한 분들의 성에 차지 못한면도 있지 않았을까 해요.
지역장차연에서 회의를 하면 회의참여도 잘 안되고 실제 실무를 함께 도와줄 분도 없어요. 회의 한번 끝나면 그 일을 거의 실무자 혼자 해야는 구조라서 실무자가 지칠 수밖에 없어요. 고충을 털어 놓을때도 마땅치 않고 혼자 버텨 살아남아야 해요.
문제가 있었던 연도의 회의록을 찾아보니 조직규합도 잘 안됐고, 회의도 잘 안돼고 실무자의 개인사로 인해 중요한 논의 사항을 전화로 논의해 결정하기도 하면서 벌어진 일이구나라는 추측이 됐어요.
문제제기한 측에서는 1년 대표활동중지 하라고 요구했고 대표는 이를 수용했어요. 그랬더니 문제제기한 측에서 1년은 모자라다 다시 2년~5년까지 활동정리를 하라고 하는거에요. 5년 활동중지면 그냥 조직 문닫으라는 소리에요. 우리내에서 2년으로 수용이 되었습니다.
조직은 재건해야 되는데 아예 활동을 못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어떻게 해야할지 앞이 정말 깜깜했어요. 하지만, 전장연이 지원을 해주어서 대표활동정지 기간을 잘 지나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Q. 이런 일을 하다보면 힘들었던 일들이 되게 많을 거 같습니다. 최근에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당시 조직이 와해가 되어버리니 지도부에 대한 불신들이 있고, 센터 내에서도 전북장차연 회원 단체 내에서도 신뢰가 사라지고 전북시민사회에서도 전북장차연은 문제가 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이런 것들이 많이 힘들었어요
내부 결속이 안 되니까 무언가 추진을 해서 치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죠. 상대방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격려하고 감싸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부가 결속되지 않고 내부에서부터 힘이 빠져서 많이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12월3일, 세계장애인의날 1박 2일 투쟁
Q.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당시 전장연 사무총장님께 부탁해 의사소통 교육을 추진했고 다음해에는 공익 조합 동행에서 집단 상담 신청을 했습니다. 원래 당시 사건 당사자들과 함께 집단상담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당사자분들이 참여하지 못해서 그 외 활동가들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내 감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 비난하지 않는 형식으로 표현하는 방법들을 배웠어요. 자신의 감정을 아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Q. 그 이후로 변화된 모습이 있나요?
우선은 서로 비난하는 것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의사소통 교육도 그렇고 일을 추진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투쟁을 해 나가다보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활동들이 언론에 나가고 변화되어가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특별교통수단이 늘어나고, 저상버스가 늘어나고, 저희가 계속 기자회견에서 고발하는 것들이 언론에 나가면서 사람들이 뭉쳐지고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
이것도 사실 전장연에서 함께 해줘서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의사소통 교육까지 함께 접목하여 대화를 하니 활동가들도 좋아하고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저도 비장애인 사회에만 있다 장애인활동가들과 처음으로 생활을 하게 되어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고, 지원을 해야하는 업무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신경이 곤두서서 힘들면 당사자에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돌봐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집단 상담을 받으면서 나에게도 문제가 있구나. 이런 것들을 알게 되어서 나도 많이 조심해야겠다 라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Q. 내가 건강하고 단단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잖아요. 지치셨을 때나 힘드셨을 때는 어디서 원동력을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전장연 활동가들에게 털어놓고 토닥토닥 받기도 하고, 사무총장님이 지역활동의 어려움을 잘 공감해주셨어요. 그 분들께 주로 이야기를 합니다. 또 저 스스로는 마음 공부가 취미여서 마음 공부 영상을 많이 찾아보고, 개인적인 문제나 의사소통 문제 등 유투브 영상이나 책을 찾아보면서 많이 읽고 있습니다.
Q. 많은 고충들이 있겠지만 기억에 남고 보람있는 일도 있으셨을 거 같아요.
저는 보람 있는 일들이 되게 많아요. 힘들지만 힘듦 속에서도 보람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저상버스가 100% 도입이 되면 좋겠지만 아직 3분의 1 수준만 도입된 상황입니다. 저상버스 도입이 안된 이상 장애인들의 이동수단은 특별교통수단인데 특별교통수단의 최대 대기시간이 2~3시간 입니다. 비장애인들은 이런 상태를 견디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특별교통수단 24시간 운행과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 지역에서 운전원이 모자라 특별교통수단이 차고지에서 쉬고 있는 차가 많습니다. 법정대수 도입하면 뭐합니까. 운전원이 모자라 차량이 쉬고 있는데...이런 낭비를 줄이려면 차량 1대당 운전원 2.5명이 필요한데 작년에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와 함께 투쟁해서 전라북도 및 시군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어요. 그때 이후부터 전북장차연 활동가들에게 자신감이 좀 붙은 거 같아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런 것들을 보면서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그러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이러한 배움들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광주518 장애인민주주의결의대회
Q. 혹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없는 거 같아요. 저도 이제 여기 들어와서 3년차 생활하다 보니까 이해를 조금씩 해가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는 조금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중 한명 이었어요. 근데 이제 직접 경험을 해보니 너무 한계가 많고 힘든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장애 운동은 전체 운동사에서 한 줌도 안 되는데 아무래도 언론에 많이 다뤄지다 보니까 사람들이 너무 크게 생각하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단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생각보다 인적, 재정적 자원도 없다보니 많이 힘듭니다. 아직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많은 연대가 필요한 단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너무 큰 단체로 생각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시민들의 협력, 지원, 관심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자기 옆에서 겪어보지 않으면 저 사람이 도대체 왜 저러지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 거 같아요. 같이 지내보지 않고 겉에서 바라보니까 쟤네는 왜 저렇게 하지 원칙을 왜 안 지키지? 하는 원칙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거 같아요.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들이 장애인활동가들에겐 하나의 폭력이 될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분들에 대해 알려면 많이 알아보고 책도 읽어보고 많은 것들이 필요할 거 같아요. 장애 문화를 많이 접해보려 노력하고 같이 더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장애를 가진 몸으로 운동하는 것 자체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의 몸이 아니기 때문에 그 상태로 활동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고 자기 몸이 늙거나 병들기 전까진 이해하기 어려운 영억인거 같기도 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왜 그렇게 처절하게 지하철에서 투쟁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모두 약자가 되는 날이 올텐데 그때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이해할 날이 올거라 믿습니다.
#장애인 #차별 #풍경 #전북 #전북장애인차별철폐
인터뷰어 : 여름
저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여름입니다.
공익활동가이자 심리상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고자 합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맨왼쪽이 풍경님, 단체 활동 대부분 사진을 찍는 역할을 풍경님이 하고 있어서 본인 사진이 거의 없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활동가 풍경 입니다. 업무는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 입니다. 채용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하고, 전북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파견 보낸 형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Q. 원래 연고지가 전라북도 이신가요?
네 연고지는 전북입니다. 원래는 전라북도에 전북평화와인권연대라고 하는 이제 지역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했었습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에서도 장애인 문제(탈시설 등) 접했습니다.
장수벧엘장애인의집이라고 하는 시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장애인 학대 사건이 발생해서 그분들을 구출해오고 탈시설 자립생활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투쟁을 하면서 장애 운동하고는 인연이 됐습니다.
420전국장애인대회
Q.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북장차연)는 장애대중투쟁을 통해 장애인의 차별철폐와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주로 하는 활동들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 장애인 노동권, 탈시설권리, 장애인 자립생활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들을 합니다.
Q.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위에서 말씀 드렸듯, 원래 지역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안검연축이라는 질병이 왔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탓인지 자율신경계의 문제로 눈꺼풀을 제 뜻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증상이 왔었습니다. 이 증상으로 4개월간 치료를 했고 인권단체를 퇴사하고 1년을 쉬었습니다. 1년을 쉬는 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옥순 전사무총장님께서 제안을 해주셔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장연에서 제안을 받지 못했으면 전 실업자가 됐을 거에요.(웃음)
420전국장애인대
Q.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집행위원장이 되기까지, 집행위원장으로서의 역할?
처음 채용될 때 직함은 사무국장이었는데, 전북장차연은 제가 오기전까지 2017년 한 회원단체내에서 발생한 장애인 폭행사건에 대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오랜기간 조직내 구성원간의 갈등상태에 놓여 있었어요. 이 때문에 전북 장차연이 사고지부 상태였고, 2022년 제가 와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니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전북장차연을 떠난 분들이 2017년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라며 전북 장차연 대표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가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활동을 시작하려 한다고요.
제가 2022년 2월에 채용 됐는데, 6개월 동안을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출발을 해야하는데 진흙탕 속에 빠져 헛바퀴만 도는 거 같은 상황이 계속 됐어요. 그 일로 전북장차연 대표님이 많이 힘들어하셨고, 2년간의 활동 중지를 하겠다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전북장차연 대표가 공백상태이다 보니 저에게 집행위원장의 지위와 권한이 주어질 수밖에 없었고, 회의 소집을 비롯해 조직재건의 업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전북장차연 실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저 혼자입니다. 집행위원장의 역할은 조직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합니다. 회의 자료 및 문서 작성, 지자체장 면담 및 투쟁계획 세우기, 성명서 및 보도자료 작성, 웹자보 만들기, 회계정리, 집회 조직 및 사회보기 등등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Q.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오셔서 고생이 많으셨을 거 같아요.
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조직이 과거에 대표가 뭘 잘못했네식의 공격과 비난들만 오가니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더라고요. 2017년 당시 폭행사건을 잘 못 처리한 사람들은 이미 사임했고, 또 전장연에서 중재위를 꾸려 내려와 양측간의 중재절차들도 가졌지만 문제제기 한 측에서는 함께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책임을지지 않고 중재위가 끝나버렸어요. 그 뒤로도 문제제기 한 분들의 문제제기가 계속됐어요.
문제제기 한 분들의 문제제기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고, 조직의 대표가 잘못하면 사과하고 일을 바로 잡고 다시 출발할수 있는 조건을 만들려고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기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문제제기 한 분들이 조직에 대한 불신이 매우 컸던거 같아요.
왜 그렇게 불신이 컸을까 추측해보면 당시 조직에 실무자의 지위가 불안정했고, 지역장차연 조직이 체계가 잘 잡혀있지 못한 면이 컸던거 같아요. 열악한 재정과 구조안에서 대표님들은 나름 한다고 했을텐데 문제제기한 분들의 성에 차지 못한면도 있지 않았을까 해요.
지역장차연에서 회의를 하면 회의참여도 잘 안되고 실제 실무를 함께 도와줄 분도 없어요. 회의 한번 끝나면 그 일을 거의 실무자 혼자 해야는 구조라서 실무자가 지칠 수밖에 없어요. 고충을 털어 놓을때도 마땅치 않고 혼자 버텨 살아남아야 해요.
문제가 있었던 연도의 회의록을 찾아보니 조직규합도 잘 안됐고, 회의도 잘 안돼고 실무자의 개인사로 인해 중요한 논의 사항을 전화로 논의해 결정하기도 하면서 벌어진 일이구나라는 추측이 됐어요.
문제제기한 측에서는 1년 대표활동중지 하라고 요구했고 대표는 이를 수용했어요. 그랬더니 문제제기한 측에서 1년은 모자라다 다시 2년~5년까지 활동정리를 하라고 하는거에요. 5년 활동중지면 그냥 조직 문닫으라는 소리에요. 우리내에서 2년으로 수용이 되었습니다.
조직은 재건해야 되는데 아예 활동을 못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어떻게 해야할지 앞이 정말 깜깜했어요. 하지만, 전장연이 지원을 해주어서 대표활동정지 기간을 잘 지나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Q. 이런 일을 하다보면 힘들었던 일들이 되게 많을 거 같습니다. 최근에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당시 조직이 와해가 되어버리니 지도부에 대한 불신들이 있고, 센터 내에서도 전북장차연 회원 단체 내에서도 신뢰가 사라지고 전북시민사회에서도 전북장차연은 문제가 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이런 것들이 많이 힘들었어요
내부 결속이 안 되니까 무언가 추진을 해서 치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죠. 상대방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격려하고 감싸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부가 결속되지 않고 내부에서부터 힘이 빠져서 많이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12월3일, 세계장애인의날 1박 2일 투쟁
Q.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당시 전장연 사무총장님께 부탁해 의사소통 교육을 추진했고 다음해에는 공익 조합 동행에서 집단 상담 신청을 했습니다. 원래 당시 사건 당사자들과 함께 집단상담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당사자분들이 참여하지 못해서 그 외 활동가들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내 감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 비난하지 않는 형식으로 표현하는 방법들을 배웠어요. 자신의 감정을 아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Q. 그 이후로 변화된 모습이 있나요?
우선은 서로 비난하는 것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의사소통 교육도 그렇고 일을 추진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투쟁을 해 나가다보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활동들이 언론에 나가고 변화되어가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특별교통수단이 늘어나고, 저상버스가 늘어나고, 저희가 계속 기자회견에서 고발하는 것들이 언론에 나가면서 사람들이 뭉쳐지고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어요.
이것도 사실 전장연에서 함께 해줘서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의사소통 교육까지 함께 접목하여 대화를 하니 활동가들도 좋아하고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저도 비장애인 사회에만 있다 장애인활동가들과 처음으로 생활을 하게 되어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고, 지원을 해야하는 업무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신경이 곤두서서 힘들면 당사자에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돌봐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집단 상담을 받으면서 나에게도 문제가 있구나. 이런 것들을 알게 되어서 나도 많이 조심해야겠다 라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Q. 내가 건강하고 단단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잖아요. 지치셨을 때나 힘드셨을 때는 어디서 원동력을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전장연 활동가들에게 털어놓고 토닥토닥 받기도 하고, 사무총장님이 지역활동의 어려움을 잘 공감해주셨어요. 그 분들께 주로 이야기를 합니다. 또 저 스스로는 마음 공부가 취미여서 마음 공부 영상을 많이 찾아보고, 개인적인 문제나 의사소통 문제 등 유투브 영상이나 책을 찾아보면서 많이 읽고 있습니다.
Q. 많은 고충들이 있겠지만 기억에 남고 보람있는 일도 있으셨을 거 같아요.
저는 보람 있는 일들이 되게 많아요. 힘들지만 힘듦 속에서도 보람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저상버스가 100% 도입이 되면 좋겠지만 아직 3분의 1 수준만 도입된 상황입니다. 저상버스 도입이 안된 이상 장애인들의 이동수단은 특별교통수단인데 특별교통수단의 최대 대기시간이 2~3시간 입니다. 비장애인들은 이런 상태를 견디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특별교통수단 24시간 운행과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 지역에서 운전원이 모자라 특별교통수단이 차고지에서 쉬고 있는 차가 많습니다. 법정대수 도입하면 뭐합니까. 운전원이 모자라 차량이 쉬고 있는데...이런 낭비를 줄이려면 차량 1대당 운전원 2.5명이 필요한데 작년에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와 함께 투쟁해서 전라북도 및 시군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어요. 그때 이후부터 전북장차연 활동가들에게 자신감이 좀 붙은 거 같아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런 것들을 보면서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그러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이러한 배움들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광주518 장애인민주주의결의대회
Q. 혹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없는 거 같아요. 저도 이제 여기 들어와서 3년차 생활하다 보니까 이해를 조금씩 해가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에 들어오기 전에는 조금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중 한명 이었어요. 근데 이제 직접 경험을 해보니 너무 한계가 많고 힘든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장애 운동은 전체 운동사에서 한 줌도 안 되는데 아무래도 언론에 많이 다뤄지다 보니까 사람들이 너무 크게 생각하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단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생각보다 인적, 재정적 자원도 없다보니 많이 힘듭니다. 아직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고 많은 연대가 필요한 단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너무 큰 단체로 생각지 않으셨으면 좋겠고, 시민들의 협력, 지원, 관심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자기 옆에서 겪어보지 않으면 저 사람이 도대체 왜 저러지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 거 같아요. 같이 지내보지 않고 겉에서 바라보니까 쟤네는 왜 저렇게 하지 원칙을 왜 안 지키지? 하는 원칙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거 같아요.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것들이 장애인활동가들에겐 하나의 폭력이 될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분들에 대해 알려면 많이 알아보고 책도 읽어보고 많은 것들이 필요할 거 같아요. 장애 문화를 많이 접해보려 노력하고 같이 더 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장애를 가진 몸으로 운동하는 것 자체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의 몸이 아니기 때문에 그 상태로 활동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고 자기 몸이 늙거나 병들기 전까진 이해하기 어려운 영억인거 같기도 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왜 그렇게 처절하게 지하철에서 투쟁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모두 약자가 되는 날이 올텐데 그때쯤이면 많은 사람들이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이해할 날이 올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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