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연두라 불리는 이남실은 성미산마을에 산다. 자녀를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 보내면서 18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다. 성미산지키기 활동, 마을카페 작은나무 운영 등 마을의 대소사에 늘 함께하는 마을활동가였던 그는 성미산학교 교사로도 활동했다. 지금은 발달장애청년허브 사회적협동조합 사부작(이하 사부작)의 활동가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 자녀의 자립을 고민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누구의 엄마가 아닌 오롯이 장애인권활동가 ‘연두’로 전국을 누비고 있다. 전날 제주도에서 찾아가는 북토크에 참여하고 돌아와 피곤할 법도 한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연두를 소개한다.

#발달장애청년의 마을살이를 위한 도전
Q. 사부작의 시작이 궁금해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건가요?
발달장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는 사회와 연결고리가 있지만, 졸업 후에는 대부분 사회적 관계가 끊어져 고립되기 쉬워요. 제가 사는 성미산마을도 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을임에도 그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죠. 어느 날 한 마을 분이 졸업한 00의 소식을 물었어요. “00이가 요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지내요?”라고 안부를 물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5명의 주민과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가 모였어요. 발달장애청년들이 이웃과 자연스레 만나고 일상을 함께 나누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시작한 거죠. 그런 움직임 속에서 2017년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이 탄생했어요.
Q. 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청년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안부 한 마디가 사부작 탄생의 계기가 되었군요. 사부작이 생겨난 지 7년이나 되었는데,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나요?
사부작은 발달장애인과 마을을 키워드로 많은 시도를 해왔어요. 처음부터 기획한 것도 있고 우연히 시작한 일도 있어요. 사람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고 발달장애 정책에서 빠진 곳을 메워주는 활동을 주로 했어요. 거기서 활동가는 상상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했죠.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발달장애청년들의 마을살이를 지원하는 ‘길동무연결’이 있어요. 발달장애청년과 이웃들이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도록 기획하고 연결하는 일이죠. ‘무경계 세상 만들기’ 활동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해야 한다 생각하지만 우리의 관점은 좀 달라요. 다른 사람이 발달장애인에게 익숙해져야 한다 생각하죠. 그런 관점에서 발달장애인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들어가는 ‘옹호가게 프로젝트’, 발달장애인의 말을 노래로 만드는 ‘사부작뮤직’, 지역에서 발달장애인의 삶을 고민하는 공동체 혹은 단체들을 초대하여 활동을 공유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 등의 무경계 세상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1동 1사부작’을 위한 북토크라든지 누구나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연대활동 등이 있어요.
이처럼 사부작은 발달장애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원단체예요. 발달장애인이 서비스의 대상자로 머무는 게 아니라 주민이자 시민으로 지역사회에서 하고 싶은 활동을 하도록 지지하고 지원하는 거죠. 사부작과 같은 단체가 전국 마을마다 생기는 게 우리의 목표라면 목표예요.

2023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
Q. 와~ 정말 많은 활동을 하네요. 사부작이 마을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즐거워 보여요. 보통 비영리단체들이 보이는 무거움이라든지, 경직성 이런 게 보이지 않아 좋았어요.
그래요? 좋게 봐줘서 감사해요. 맞아요. 동료들이랑 하는 말이 있는데요, 사부작에 카메라만 켜두면 날마다 시트콤 한 편씩 나올 거라고 말해요. 사부작은 비교적 자유로운 조직이예요. 목표를 향해 돌진하지 않아요. 관계맺음 자체가 단체의 목표라 할 수 있는데 이게 속도를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활동하니 더욱 그렇고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며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를 알고 뜻밖의 상황이 생기면 즐거워할 줄 아는 동료들이 모여있어요. 심각하고 힘든 순간도 물론 있지만 그럴 때 더 뭉쳐서 고민하고, 사소한 거라도 이루면 같이 기뻐하고, ‘우리 이거 해 볼까’ 상상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어요.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생각해 볼 틈도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잖아요. 많은 사람이 내 삶을 내가 어떻게 기획할까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휘몰아치며 사는 게 안타까워요. 사부작 활동가들은 당위로 움직이지 않아요. 사부작 안에서는 원래 이래야 하는 건 없죠. 우리는 돈도 없고 나이도 많지만 여유가 있어요. ‘우리가 뭘 알겠어. 하고 싶은 걸 그냥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활동해요. 그래서 즐거운 게 아닐까 싶네요.

홍성 꿈이자라는뜰에서 훌라 워크숍
Q. 사부작은 연대활동도 많이 해서 다른 지역 주체들과 교류도 많이 하던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대구, 춘천, 홍성, 강화 등 많은 지역을 다니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416합창단 워크숍이 떠오르네요. 416합창단이 워크숍을 가는데 사부작의 훌라 모임인 ‘선샤인아놀드훌라’를 초대해 주셨어요. 세월호 부모님들이 춤을 춰본 적이 없으시다며 처음엔 어색해하셨는데 파우(훌라 치마)를 입고 서로 머리에 꽂을 꽂아주며 웃음꽃이 피었어요. 하얀 달빛 아래서 함께 훌라를 추는 그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훌라를 춘 경험으로 그다음 공연에서 약간의 동작을 넣어 합창 공연을 하셨다고 해요.
어제 다녀온 제주 북토크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작년에 사부작이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출간한 『마을에서 경계 없이 다정하게』 도서를 바탕으로 찾아가는 북토크를 삼달다방에서 진행했어요. 사람들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장애인 부모, 대안학교 교사와 학생 등 많은 분이 오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북토크 말미에는 참석자들과 마당에서 훌라를 췄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삼달다방 주인장의 환대와 연대도 좋았고요.

찾아가는 북토크 - 제주편
Q. 사부작에는 장애 부모 외에도 많은 마을 분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자신의 니즈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지속해서 관심 가지고 참여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요.
사부작 활동가 네 명 중 두 명은 장애인 가족이고 두 명은 아니에요. 장애운동이나 장애 관련한 일을 한다고 하면 당사자나 가족일 거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사부작 청년들과 함께 활동하는 이웃을 우리는 길동무라고 부르는데, 사부작 청년들과 연결된 길동무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그림, 요가, 훌라, 요리 등 관심사가 비슷한 이웃을 길동무로 연결해주는 거죠.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때 가장 큰 장벽이 ‘관계없음’이에요. 장애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오는 분도 있고 활동을 함께하며 장애를 알아가는 분도 있고요. 몰랐던 영역을 발견하며 재미를 찾아가는 분들이 많아요. 함께하는 재미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었던 것 같아요.
#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Q. 연두의 둘째 마카롱(인찬)이 발달장애청년이죠. 마카롱에게 자폐성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나요?
누나가 있다 보니 아기 때부터 전형적이지 않은 발달, 사람보다는 사물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는 모습 등에서 다르다고 느꼈어요. 일찍이 아이가 장애가 있을지 모른다는 인지가 있어서인지 장애 진단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시행착오도 덜 겪은 듯해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마카롱은 내게 세상에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해준 인물이에요. ‘이게 맞나’, ‘더 나은 삶은 없나’ 그렇게요. 장애 자녀가 부모를 키운다고 하는 게 이런 거구나 알게 되었지요.
Q. 아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오래전 기억인데요. 살던 동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고 문의했더니 자기네는 장애아동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바로 거절했어요. 그런 적나라한 배제는 처음이라 많이 속상했죠. 우리 얘기를 들었는지 같은 지역에 있던 다른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직 장애아동과 지낸 경험은 없지만 우리가 뭘 준비하면 될까요?”라고 얘기해줬어요. 장애아동을 돌봄 경험은 없지만 한번 해보겠다고요. 따듯한 환대의 말에 울컥했어요. 경험이 없고 준비가 부족한 상황은 같지만, 두 어린이집의 상반된 태도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인연이 되어 마카롱은 영차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어요. 우리 아이를 위해 선생님이 1년에 걸쳐 안산에서 서울까지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받으러 다니고, 선생님이 교육받으러 가는 날엔 모든 조합원이 월차를 내고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봤어요. 공동육아라는 말뜻 그대로 정말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경험이었어요. 그때의 경험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방향성에 답을 주었어요.
Q. 감동이네요. 손 내밀어 준 교사와 이웃들도, 용기를 내 함께하자고 얘기한 연두도.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를 키운다는 공동육아 철학을 느낄 수 있네요. 장애 자녀를 키우며 마을이든 사회든 이건 정말 바뀌어야 해라고 느낀 순간도 있을 듯해요.
성미산마을에 이사 오고 섭섭할 때도 있었죠. 마을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지만 장애 이슈에 대해서는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때는 그게 섭섭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가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 잘 살아가는 게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그렇듯 힘을 모아야 할 때는 연대할 사람들이니까요.
장애와 관련해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은 학교교육이예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한다고는 해도 엄밀히 말하면 분리 교육이잖아요. 어릴 적부터 장애인과 함께 있는 게 자연스러워야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이 당연한 일이 되지요. 장애인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는 편견을 없애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장애학생은 도움반으로 가야 하는 존재가 되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통합의 감각을 키우기 어려워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의 주체가 특수교사에서 모든 교사로 옮겨가야 해요. 교사 양성 과정에 장애학과 특수교육을 기본으로 하면 좋겠어요.

공연예술창작터 수다의 길동무들과 함께 올린 미디어오페라 공연
Q. 성미산마을에 이사 오고 아이가 공동육아 어린이집, 대안학교를 다니며 자랐는데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사람들은 성미산마을, 성미산학교를 이상적인 세계로 보기도 하는데 완벽한 환경은 없어요. 사람 사는 데는 모두 문제를 만나고 해결하며 살아가요. 다른 점이 있다면 문제를 만났을 때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죠. 마카롱도 여기서 대체로 잘 적응했지만 힘든 순간도 많았죠. 그때마다 교사와 부모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모색했어요. 우여곡절은 있었도 마카롱은 성미산마을이 함께 키운 청년이에요. 마을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반쯤은 힘이 덜어지고 안심이 되는 기분인 듯 해요. 각자도생과 적자생존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래요.
Q. 아이가 성인이 되고 자립이 필요할 때가 되면서 더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저희는 일찌감치 고민을 시작했음에도 고등과정을 마칠 무렵이 되니 긴장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저희는 운 좋게도 사부작이라는 기댈 언덕이 있었으니까요. 마카롱이 스무 살에 잡지사에 취직을 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는 마카롱을 장애인으로만 바라봐서 많이 힘들어했죠. 지금은 사부작에서 활동하며 반일제로 마포발달장애인문화창작소에서 일하고 있어요.
Q. 이제 마카롱도 반은 독립을 한 거네요.
그렇죠. 그래도 아직은 가족들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 있어요. 마카롱이 가족 말고도 기댈 곳이 더 많아지고 마을살이에 더 자신감이 붙으면 그때는 진짜 독립이 가능하겠죠.
#활동가 연두가 그리는 미래

연두가 직접 그린 오체투지하던 날에 대한 그림일기
Q. 페이스북에서 드로잉으로 그림일기를 쓰는 연두의 작업노트를 본적 있는데, 너무 멋지던데요.
그림일기를 시작한 게 사부작 청년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학창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했었죠. 그런데 사부작에서 발달장애청년들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고 전시도 하는 걸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 날마다 그림일기를 그리고 쓰고 있어요.
Q. 자녀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활동가 연두로서 목표가 있을 듯해요.
장애인 부모인 것이 장애인권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지금의 내 정체성을 설명하긴 어려워요. 지금은 마카롱과 별개로 활동하니까요.
목표라면 장애운동 영역에 당사자 부모가 아닌 사람이 더 많아지도록 튼튼한 기반을 만드는 거예요. 더 많은 사람이 장애해방이 곧 자신의 해방이자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걸 경험하면 좋겠어요.
Q. 마을과 장애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공익활동가로서 느끼는 점은?
사부작을 만들고 활동을 하면서 마을이 변화하는 걸 느낄 때 뿌듯해요. 사부작 청년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이웃들이 늘어나고 마을행사를 할 때도 사부작 청년들을 고려하는 모습을 볼 때 그래요. 기획 단계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고려하는거죠. 물론 한계도 많이 느껴요. 좀 더 깊게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고 싶을 때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잘 아는 게 중요한 듯해요. 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 나를 존중해줘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망치지 않고 지속가능할 수 있거든요. 활동가들이 자긍심을 느끼며 마음껏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부작에서 관심자들과 ‘배제된 노동 연구모임’을 하며 그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요.
Q. 10년 후 연두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면 좋겠어요. 제 꿈이 탈서울 하는 거거든요. 이 일이 의미 있고 재밌지만 언젠가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살고 싶어요. 물론 거기서도 뭔가 활동하고 있겠지요.
#공익활동가주간 #서울 #사부작 #발달장애인 #인권 #연두
글쓴이 : 나현윤
사회변화를 만들어가는 개인 또는 작은 조직의 고유 가치를 발굴하고 스토리를 담아 세상의 가치로 확산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마을에서 연두라 불리는 이남실은 성미산마을에 산다. 자녀를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에 보내면서 18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다. 성미산지키기 활동, 마을카페 작은나무 운영 등 마을의 대소사에 늘 함께하는 마을활동가였던 그는 성미산학교 교사로도 활동했다. 지금은 발달장애청년허브 사회적협동조합 사부작(이하 사부작)의 활동가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 자녀의 자립을 고민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누구의 엄마가 아닌 오롯이 장애인권활동가 ‘연두’로 전국을 누비고 있다. 전날 제주도에서 찾아가는 북토크에 참여하고 돌아와 피곤할 법도 한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연두를 소개한다.
#발달장애청년의 마을살이를 위한 도전
Q. 사부작의 시작이 궁금해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건가요?
발달장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는 사회와 연결고리가 있지만, 졸업 후에는 대부분 사회적 관계가 끊어져 고립되기 쉬워요. 제가 사는 성미산마을도 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을임에도 그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죠. 어느 날 한 마을 분이 졸업한 00의 소식을 물었어요. “00이가 요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지내요?”라고 안부를 물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5명의 주민과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가 모였어요. 발달장애청년들이 이웃과 자연스레 만나고 일상을 함께 나누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시작한 거죠. 그런 움직임 속에서 2017년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이 탄생했어요.
Q. 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청년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안부 한 마디가 사부작 탄생의 계기가 되었군요. 사부작이 생겨난 지 7년이나 되었는데,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나요?
사부작은 발달장애인과 마을을 키워드로 많은 시도를 해왔어요. 처음부터 기획한 것도 있고 우연히 시작한 일도 있어요. 사람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고 발달장애 정책에서 빠진 곳을 메워주는 활동을 주로 했어요. 거기서 활동가는 상상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했죠.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발달장애청년들의 마을살이를 지원하는 ‘길동무연결’이 있어요. 발달장애청년과 이웃들이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도록 기획하고 연결하는 일이죠. ‘무경계 세상 만들기’ 활동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해야 한다 생각하지만 우리의 관점은 좀 달라요. 다른 사람이 발달장애인에게 익숙해져야 한다 생각하죠. 그런 관점에서 발달장애인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들어가는 ‘옹호가게 프로젝트’, 발달장애인의 말을 노래로 만드는 ‘사부작뮤직’, 지역에서 발달장애인의 삶을 고민하는 공동체 혹은 단체들을 초대하여 활동을 공유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 등의 무경계 세상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1동 1사부작’을 위한 북토크라든지 누구나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연대활동 등이 있어요.
이처럼 사부작은 발달장애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원단체예요. 발달장애인이 서비스의 대상자로 머무는 게 아니라 주민이자 시민으로 지역사회에서 하고 싶은 활동을 하도록 지지하고 지원하는 거죠. 사부작과 같은 단체가 전국 마을마다 생기는 게 우리의 목표라면 목표예요.
2023 발달장애와 마을 포럼
Q. 와~ 정말 많은 활동을 하네요. 사부작이 마을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즐거워 보여요. 보통 비영리단체들이 보이는 무거움이라든지, 경직성 이런 게 보이지 않아 좋았어요.
그래요? 좋게 봐줘서 감사해요. 맞아요. 동료들이랑 하는 말이 있는데요, 사부작에 카메라만 켜두면 날마다 시트콤 한 편씩 나올 거라고 말해요. 사부작은 비교적 자유로운 조직이예요. 목표를 향해 돌진하지 않아요. 관계맺음 자체가 단체의 목표라 할 수 있는데 이게 속도를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활동하니 더욱 그렇고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며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를 알고 뜻밖의 상황이 생기면 즐거워할 줄 아는 동료들이 모여있어요. 심각하고 힘든 순간도 물론 있지만 그럴 때 더 뭉쳐서 고민하고, 사소한 거라도 이루면 같이 기뻐하고, ‘우리 이거 해 볼까’ 상상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어요.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생각해 볼 틈도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잖아요. 많은 사람이 내 삶을 내가 어떻게 기획할까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휘몰아치며 사는 게 안타까워요. 사부작 활동가들은 당위로 움직이지 않아요. 사부작 안에서는 원래 이래야 하는 건 없죠. 우리는 돈도 없고 나이도 많지만 여유가 있어요. ‘우리가 뭘 알겠어. 하고 싶은 걸 그냥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활동해요. 그래서 즐거운 게 아닐까 싶네요.
홍성 꿈이자라는뜰에서 훌라 워크숍
Q. 사부작은 연대활동도 많이 해서 다른 지역 주체들과 교류도 많이 하던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대구, 춘천, 홍성, 강화 등 많은 지역을 다니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416합창단 워크숍이 떠오르네요. 416합창단이 워크숍을 가는데 사부작의 훌라 모임인 ‘선샤인아놀드훌라’를 초대해 주셨어요. 세월호 부모님들이 춤을 춰본 적이 없으시다며 처음엔 어색해하셨는데 파우(훌라 치마)를 입고 서로 머리에 꽂을 꽂아주며 웃음꽃이 피었어요. 하얀 달빛 아래서 함께 훌라를 추는 그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훌라를 춘 경험으로 그다음 공연에서 약간의 동작을 넣어 합창 공연을 하셨다고 해요.
어제 다녀온 제주 북토크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작년에 사부작이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출간한 『마을에서 경계 없이 다정하게』 도서를 바탕으로 찾아가는 북토크를 삼달다방에서 진행했어요. 사람들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장애인 부모, 대안학교 교사와 학생 등 많은 분이 오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북토크 말미에는 참석자들과 마당에서 훌라를 췄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삼달다방 주인장의 환대와 연대도 좋았고요.
찾아가는 북토크 - 제주편
Q. 사부작에는 장애 부모 외에도 많은 마을 분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자신의 니즈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지속해서 관심 가지고 참여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요.
사부작 활동가 네 명 중 두 명은 장애인 가족이고 두 명은 아니에요. 장애운동이나 장애 관련한 일을 한다고 하면 당사자나 가족일 거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사부작 청년들과 함께 활동하는 이웃을 우리는 길동무라고 부르는데, 사부작 청년들과 연결된 길동무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그림, 요가, 훌라, 요리 등 관심사가 비슷한 이웃을 길동무로 연결해주는 거죠.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때 가장 큰 장벽이 ‘관계없음’이에요. 장애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오는 분도 있고 활동을 함께하며 장애를 알아가는 분도 있고요. 몰랐던 영역을 발견하며 재미를 찾아가는 분들이 많아요. 함께하는 재미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었던 것 같아요.
#장애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Q. 연두의 둘째 마카롱(인찬)이 발달장애청년이죠. 마카롱에게 자폐성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나요?
누나가 있다 보니 아기 때부터 전형적이지 않은 발달, 사람보다는 사물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는 모습 등에서 다르다고 느꼈어요. 일찍이 아이가 장애가 있을지 모른다는 인지가 있어서인지 장애 진단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시행착오도 덜 겪은 듯해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마카롱은 내게 세상에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해준 인물이에요. ‘이게 맞나’, ‘더 나은 삶은 없나’ 그렇게요. 장애 자녀가 부모를 키운다고 하는 게 이런 거구나 알게 되었지요.
Q. 아이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오래전 기억인데요. 살던 동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고 문의했더니 자기네는 장애아동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바로 거절했어요. 그런 적나라한 배제는 처음이라 많이 속상했죠. 우리 얘기를 들었는지 같은 지역에 있던 다른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직 장애아동과 지낸 경험은 없지만 우리가 뭘 준비하면 될까요?”라고 얘기해줬어요. 장애아동을 돌봄 경험은 없지만 한번 해보겠다고요. 따듯한 환대의 말에 울컥했어요. 경험이 없고 준비가 부족한 상황은 같지만, 두 어린이집의 상반된 태도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인연이 되어 마카롱은 영차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어요. 우리 아이를 위해 선생님이 1년에 걸쳐 안산에서 서울까지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받으러 다니고, 선생님이 교육받으러 가는 날엔 모든 조합원이 월차를 내고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봤어요. 공동육아라는 말뜻 그대로 정말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경험이었어요. 그때의 경험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방향성에 답을 주었어요.
Q. 감동이네요. 손 내밀어 준 교사와 이웃들도, 용기를 내 함께하자고 얘기한 연두도.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를 키운다는 공동육아 철학을 느낄 수 있네요. 장애 자녀를 키우며 마을이든 사회든 이건 정말 바뀌어야 해라고 느낀 순간도 있을 듯해요.
성미산마을에 이사 오고 섭섭할 때도 있었죠. 마을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지만 장애 이슈에 대해서는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때는 그게 섭섭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가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 잘 살아가는 게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그렇듯 힘을 모아야 할 때는 연대할 사람들이니까요.
장애와 관련해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은 학교교육이예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한다고는 해도 엄밀히 말하면 분리 교육이잖아요. 어릴 적부터 장애인과 함께 있는 게 자연스러워야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이 당연한 일이 되지요. 장애인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는 편견을 없애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장애학생은 도움반으로 가야 하는 존재가 되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통합의 감각을 키우기 어려워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의 주체가 특수교사에서 모든 교사로 옮겨가야 해요. 교사 양성 과정에 장애학과 특수교육을 기본으로 하면 좋겠어요.
공연예술창작터 수다의 길동무들과 함께 올린 미디어오페라 공연
Q. 성미산마을에 이사 오고 아이가 공동육아 어린이집, 대안학교를 다니며 자랐는데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사람들은 성미산마을, 성미산학교를 이상적인 세계로 보기도 하는데 완벽한 환경은 없어요. 사람 사는 데는 모두 문제를 만나고 해결하며 살아가요. 다른 점이 있다면 문제를 만났을 때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죠. 마카롱도 여기서 대체로 잘 적응했지만 힘든 순간도 많았죠. 그때마다 교사와 부모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모색했어요. 우여곡절은 있었도 마카롱은 성미산마을이 함께 키운 청년이에요. 마을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반쯤은 힘이 덜어지고 안심이 되는 기분인 듯 해요. 각자도생과 적자생존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래요.
Q. 아이가 성인이 되고 자립이 필요할 때가 되면서 더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저희는 일찌감치 고민을 시작했음에도 고등과정을 마칠 무렵이 되니 긴장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저희는 운 좋게도 사부작이라는 기댈 언덕이 있었으니까요. 마카롱이 스무 살에 잡지사에 취직을 했어요. 하지만 그곳에서는 마카롱을 장애인으로만 바라봐서 많이 힘들어했죠. 지금은 사부작에서 활동하며 반일제로 마포발달장애인문화창작소에서 일하고 있어요.
Q. 이제 마카롱도 반은 독립을 한 거네요.
그렇죠. 그래도 아직은 가족들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 있어요. 마카롱이 가족 말고도 기댈 곳이 더 많아지고 마을살이에 더 자신감이 붙으면 그때는 진짜 독립이 가능하겠죠.
#활동가 연두가 그리는 미래
연두가 직접 그린 오체투지하던 날에 대한 그림일기
Q. 페이스북에서 드로잉으로 그림일기를 쓰는 연두의 작업노트를 본적 있는데, 너무 멋지던데요.
그림일기를 시작한 게 사부작 청년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학창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했었죠. 그런데 사부작에서 발달장애청년들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고 전시도 하는 걸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 날마다 그림일기를 그리고 쓰고 있어요.
Q. 자녀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활동가 연두로서 목표가 있을 듯해요.
장애인 부모인 것이 장애인권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지금의 내 정체성을 설명하긴 어려워요. 지금은 마카롱과 별개로 활동하니까요.
목표라면 장애운동 영역에 당사자 부모가 아닌 사람이 더 많아지도록 튼튼한 기반을 만드는 거예요. 더 많은 사람이 장애해방이 곧 자신의 해방이자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걸 경험하면 좋겠어요.
Q. 마을과 장애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공익활동가로서 느끼는 점은?
사부작을 만들고 활동을 하면서 마을이 변화하는 걸 느낄 때 뿌듯해요. 사부작 청년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이웃들이 늘어나고 마을행사를 할 때도 사부작 청년들을 고려하는 모습을 볼 때 그래요. 기획 단계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고려하는거죠. 물론 한계도 많이 느껴요. 좀 더 깊게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고 싶을 때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잘 아는 게 중요한 듯해요. 내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 나를 존중해줘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망치지 않고 지속가능할 수 있거든요. 활동가들이 자긍심을 느끼며 마음껏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부작에서 관심자들과 ‘배제된 노동 연구모임’을 하며 그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요.
Q. 10년 후 연두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면 좋겠어요. 제 꿈이 탈서울 하는 거거든요. 이 일이 의미 있고 재밌지만 언젠가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살고 싶어요. 물론 거기서도 뭔가 활동하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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