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픔가치는 마을로 향하는 약사들의 플랫폼입니다. 약사들과 지역 주민을 연결하고 마을 약사들이 성장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듭니다. 약국 안에만 머무는 약사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통합 돌봄을 위해 주민의 삶으로 들어가 모두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하는데요. ‘약사이자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늘픔가치의 박상원 대표를 만났습니다.

(박상원 대표 인터뷰 진행 사진)
우리가 생각하는 공익적 약국 모델을 만들기까지
Q. 늘픔가치의 활동은 비영리스타트업 쇼케이스에서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응원하고 있었지만 공개된 여러 인터뷰를 읽어보면서 박상원 대표님이 더 궁금해졌어요. 늘픔가치의 시작에 앞서 개인적인 활동의 시작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비영리스타트업 관련 인터뷰나 브라이언 펠로우가 되고 나서 개인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더라고요(웃음). 저도 생각을 해봤거든요. 공익활동이라고 하는 일이 나에게 왜 중요해졌을까. 근데 저는 한 번도 이걸 배제하고 장래 희망을 떠올려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때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건축가가 되어야지 하기도 했고요(웃음). 꿈은 중구난방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감동을 주고 싶다고 항상 꿈꿔왔고 자연스럽게 공익활동이랑 연결된 것 같아요.
Q. 약사가 되고 나서는 활동이 어떻게 이어졌나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환자들의 편에 서는 약사가 이 현실에서 구현되기는 쉽지 않다는걸 많이 느꼈어요. 어떤 친구는 불법 행위를 하는 약국을 고발하고 퇴사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병원 안에서 노동조합에 들어가 보면서 각자의 일터에서 개인적인 노력들을 해왔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약국을 만들자’의견이 모아졌고 늘픔약국을 만들어 공익적 약국 모델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하기 시작했어요.
Q. 공익적 약국 모델이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수익이 발생했을 때 약국장이 그 수익을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지역사회 환원하는 구조로 만들기로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하는 약사들은 약국장을 포함해서 모두 동일하게 임금을 받기로 했어요. 그리고 지역사회 활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관악구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늘픔약국 사진
지역 공동체에 스며들고 싶은 마음
Q. ‘약사이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로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지역 활동이 기반이라는 인식이 있으신거겠죠?
관악구는 지역 공동체가 살아있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웃을 돌보는 활동과 시민 활동이 결합되어 있어요. 활동과 생활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는 활동가분들이 많이 계시죠. 아마 그런 영향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그 공동체에 스며들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 그렇게 소개하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약대 동아리 ‘늘픔’, 졸업생이 모이는 임의단체 ‘늘픔약사회’
공익적 대안 약국 ‘늘픔약국’ 그리고 ‘늘픔가치’
Q. 늘픔가치는 동아리 활동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건강권 증진 활동을 위해 2005년에 만들어진 ‘늘픔’이라는 약대 동아리고요. 건강권에 대해 세미나도 하고 동대문 쪽방촌 투약 활동을 주로 하죠. 2주에 한 번씩 필수 의약품, 가정 내 상비 의약품을 챙겨서 말벗도 해드리고 약도 제공해드렸어요. 이것도 계속 지속되는 활동이다보니 쪽방 주민분들과 학생들 간에도 관계망이 생기게 되고 약대생들에게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기게 되는 것 같아요. 약대의 교과 과정이라는게 약물 중심이라면 동아리 활동으로 인간 중심의 약료를 체득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을 한 약사들은 무언가 조금이라도 달라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할 줄 알게돼요.
학교를 졸업하면 늘픔약사회로 모이게 되는데 이건 임의단체 성격으로 약사들이 서로 같이 약에 대해 공부도 하고 세미나도 하는 동호회적인 활동을 하면서 유지하고 있어요. 늘픔약사회가 한 10년 정도 유지되면서 우리만의 공동체 역할만 하는게 아니라 좀 더 공익적인 활동을 펼쳐보자 해서 늘픔 약국과 늘픔가치가 생기게 되었어요.
Q. 모두가 마음을 합쳐도 실제 역할을 받아서 주도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그 역할을 맡으신 이유도 있을까요?
처음에 건강권 증진을 위해 모인 마음이 변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활동으로 드러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동호회적 성격으로만 남으면 와해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더라고요. 제가 늘픔, 늘픔약사회라는 공동체에서 받은게 더 크고 저도 여기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뿌리 깊게 있었죠. 저도 대학때 이런 활동으로 영향을 받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국민 건강권을 위하는 약사로 살고 있다는 게 뿌듯하고 자부심도 있거든요. 그래서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거죠(웃음).
Q. 다양한 비영리스타트업 지원 트랙에 참여하셨죠. 그 과정 자체가 새롭게 일하고 활동하는 방식을 체계화하는 과정이기도 하잖아요. 최근에는 사단법인 설립도 하셨는데 사단법인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해요.
비영리스타트업으로 활동을 시작해보게 된 건 약국 소속으로 일을 할 때 복지관에 강의를 나가거나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개인 활동으로만 남더라고요. 약국은 개인 사업이기도 해서 공익활동을 위한 컨소시엄을 맺는다거나 이런 일을 하는데 제약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약사를 동참시키려고 해도 다른 소속의 약사일 뿐 이게 어떤 그룹화되지 않는 정체성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죠. 별도의 이름과 활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건강권을 위한 활동을 약국 안에서, 약사끼리만 하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느낌이 있더라구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이나 주민활동과 협업하면서 약사들이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늘픔가치라는 별도 법인을 생각하게 되었고, 늘픔가치는 약사와 사회복지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안전한 의약품 이용환경을 만들기 위한 즐거운 도전
Q. 늘픔가치의 활동이 더 궁금해지네요.
대표적으로는 ‘찾아가는 복약 상담소’활동과 ‘마을 약사 아카데미’ 활동이 있어요. 주민, 돌봄 종사자 분들 교육하는 활동도 하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아직도 탐색기인 것 같아요. 약사의 직능을 활용해서 지역사회에 안전한 의약품 이용 환경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안전한 의약품 이용 환경’에 대한 정의를 해나가는 과정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처방받은 약을 잘 먹고, 남는 의약품을 잘 버릴 수 있도록 도우면 되겠다 생각했어요. 활동을 하다보니 약을 잘 먹기 어려운 상태나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들이 생겨요. 오늘 아침에도 장애인 지원 주택에 다녀왔거든요. 그래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어디일까 계속 파고들고 있는 것 같고요. 그와 동시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마을약사를 많이 만들기 위한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어요.

찾아가는 복약상담소 사진
Q. 사회적으로도 돌봄 영역이 중요해지고 있잖아요. 직접 찾아가서 접촉면을 늘리는 방식의 활동을 하시는 것도 늘픔가치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맞아요. 안전한 의약품 이용 환경을 만든다는 건 어떤 도구나 정보만 제공해서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 같아요. 주거환경이나 약에 대한 이해도, 노동 환경 같은 생활 환경 전반이 연결되어 있는 거니까요. 이런 부분을 통합적으로 관찰하고 살펴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직접 관계망을 만드는 방식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마을 약사 아카데미는 참여하신 분들이 후기를 되게 많이 쓰셨더라고요. 읽어보면서 늘픔가치의 활동이 다른 활동가를 또 키워내는 일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마을 약사 아카데미는 이름은 아카데미지만 아카데믹하지 않아요(웃음). 제가 마을 약사가 됐던 그런 과정을 축약해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저를 지역사회 활동에 결합시켜준 다양한 활동가, 의료인들,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돌봄 종사자들과 만나는 시간을 마을약사 아카데미에 포함시켰어요. 돌봄 영역에서 주민과 지역사회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기는 변화를 믿거든요. 그런 경험을 하면 늘픔가치의 마을 약사가 될 수도 있지만 약사로서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변화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하고 기획했어요.

마을약사 아카데미 포스터

마을약사 아카데미 활동
도시 건강에 대한 공부도 하고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학습도 하고 다양한 돌봄 직능과 간담회도 열어요. 약사로 살면 다른 분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더 참여하는 약사들의 만족도가 높아요. 작년부터 시작해서 1년에 두 번씩은 하고 있는데 꾸준히 계속 해보려고요.
Q. 어쩌면 모든 조직이 하는 고민일 수 있겠지만 특히나 초기 단계의 조직에서는 조직이 운영되기 위한 재정 구조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늘픔가치는 약국을 통한 재정 구조를 갖춘 운영 모델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늘픔약국에서 매년 정기 기부를 통해서 재정 지원을 해주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상근 인력 2명과 사무실을 갖고 있다는게 엄청난 장점인 것 같긴 해요. 그렇지만 약국도 시장에서는 경기를 타는 직종이기도 하고 계속 여기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측면에서 아직은 재정적으로 완전한 구조는 아니에요. 앞으로는 마을약사의 활동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더 많은 약사와 보건의료인, 돌봄 종사자들이 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모금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저는 개인후원으로 활동가 월급을 만들어 내고 싶어요. 대신에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사회문제 해결에 책임이 있는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받아서 해결하고 싶어요.
Q. 구체적인 어려움 같은 게 있나요?
재원이나 인력이 늘 충분하지 않다는거죠. 그래서 늘 풍족하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일을 해야 되고요. 그러다보니 우리 활동 취지에는 맞지만 아직 결합할 수 없는 일들도 생겨서 그런 점이 고민이죠.
함께 만들어낸 변화, 함께하는 사람들
Q. 사단법인 늘픔가치는 신생 조직이지만 대표님은 활동이 10년이 넘으셨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낸 것 같으세요?
관악 지역에서는 특히 지역사회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이제 아는 약사가 된 것 같아요. 지역 사회 내 돌봄이라는 주제 건강권에 관련된 이슈가 생겼을 때 같이 논의할 수 있는 파트너로 자리잡았다고 할까요. 그게 요즘 가장 체감하고 있는 변화인 것 같아요.
관악에서는 관련 이슈가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찾아주는 것, 그리고 제가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제일 많이 들었던 “약사가 이런 일도 하세요?” 질문을 이제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거요(웃음).
Q. 함께하는 활동가분들도 소개해주세요. 자랑을 해주셔도 좋고요(웃음). 최진혜 약사님의 책<알면 약 모르면 독>은 개정판이 최근에 나온 것 같더라고요.
최진혜 약사님은 늘픔약국을 대표하는 약사인데요. 두 개의 늘픔약국의 총괄 약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진혜 약사님의 가장 큰 장점은 매력이에요(웃음). 많은 네트워크를 갖고 계시죠. 사업영역이 확장되고 주제가 넓어지는데 다양한 관계 안에서 필요한 사람이나 기관을 잘 매칭해주세요. 늘픔가치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제가 도움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늘픔가치 단체사진
그리고 제가 늘 보물이라고 하는 박희선 사무국장님인데요. 약사를 지역사회에 잘 연결시켜주는 사람이에요. 청년 정책과 청년 네트워크 활동을 관악구 기반으로 하셨고 저보다 제가 하는 일을 잘 설명해주세요. 약사가 아닌 사람, 저와는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계셔서 늘픔가치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Q. 마지막입니다. 활동가로서 스스로에게 가지는 기대가 있을까요? 어떤 활동가가 되고 싶으세요?
퍼즐을 맞출 때, 주변 퍼즐이 다 채워져 있고 마지막 조각을 딱 맞추는 그런 재미 있잖아요. 내가 정말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곳에 잘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활동하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전체적인 그림도 완성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지역사회의 통합돌봄의 기반이 잘 갖춰지고 준비가 잘 되어 있을 때 약사로서 제가 적재적소에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주변부가 같이 성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활동의 밸런스를 잘 맞추고 싶어요. 내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주변을 같이 잘 살피면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박상원 #늘픔가치 #비영리스타트업 #마을약사 #건강권 #공동체약국 #서울 #공익활동가주간
※ 참고하기
- 늘픔가치 홈페이지 www.withnp.campaignus.me
- 늘픔가치 인스타그램 @with_np
인터뷰어 : 나혜수
활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활동의 발화점을 만들어 내는 일도 직접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만큼 의미 있다고 믿습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늘픔가치는 마을로 향하는 약사들의 플랫폼입니다. 약사들과 지역 주민을 연결하고 마을 약사들이 성장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듭니다. 약국 안에만 머무는 약사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통합 돌봄을 위해 주민의 삶으로 들어가 모두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하는데요. ‘약사이자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늘픔가치의 박상원 대표를 만났습니다.
(박상원 대표 인터뷰 진행 사진)
우리가 생각하는 공익적 약국 모델을 만들기까지
Q. 늘픔가치의 활동은 비영리스타트업 쇼케이스에서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응원하고 있었지만 공개된 여러 인터뷰를 읽어보면서 박상원 대표님이 더 궁금해졌어요. 늘픔가치의 시작에 앞서 개인적인 활동의 시작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비영리스타트업 관련 인터뷰나 브라이언 펠로우가 되고 나서 개인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더라고요(웃음). 저도 생각을 해봤거든요. 공익활동이라고 하는 일이 나에게 왜 중요해졌을까. 근데 저는 한 번도 이걸 배제하고 장래 희망을 떠올려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때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건축가가 되어야지 하기도 했고요(웃음). 꿈은 중구난방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감동을 주고 싶다고 항상 꿈꿔왔고 자연스럽게 공익활동이랑 연결된 것 같아요.
Q. 약사가 되고 나서는 활동이 어떻게 이어졌나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환자들의 편에 서는 약사가 이 현실에서 구현되기는 쉽지 않다는걸 많이 느꼈어요. 어떤 친구는 불법 행위를 하는 약국을 고발하고 퇴사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병원 안에서 노동조합에 들어가 보면서 각자의 일터에서 개인적인 노력들을 해왔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약국을 만들자’의견이 모아졌고 늘픔약국을 만들어 공익적 약국 모델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하기 시작했어요.
Q. 공익적 약국 모델이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수익이 발생했을 때 약국장이 그 수익을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지역사회 환원하는 구조로 만들기로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하는 약사들은 약국장을 포함해서 모두 동일하게 임금을 받기로 했어요. 그리고 지역사회 활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관악구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늘픔약국 사진
지역 공동체에 스며들고 싶은 마음
Q. ‘약사이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로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지역 활동이 기반이라는 인식이 있으신거겠죠?
관악구는 지역 공동체가 살아있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웃을 돌보는 활동과 시민 활동이 결합되어 있어요. 활동과 생활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는 활동가분들이 많이 계시죠. 아마 그런 영향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그 공동체에 스며들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 그렇게 소개하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약대 동아리 ‘늘픔’, 졸업생이 모이는 임의단체 ‘늘픔약사회’
공익적 대안 약국 ‘늘픔약국’ 그리고 ‘늘픔가치’
Q. 늘픔가치는 동아리 활동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건강권 증진 활동을 위해 2005년에 만들어진 ‘늘픔’이라는 약대 동아리고요. 건강권에 대해 세미나도 하고 동대문 쪽방촌 투약 활동을 주로 하죠. 2주에 한 번씩 필수 의약품, 가정 내 상비 의약품을 챙겨서 말벗도 해드리고 약도 제공해드렸어요. 이것도 계속 지속되는 활동이다보니 쪽방 주민분들과 학생들 간에도 관계망이 생기게 되고 약대생들에게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기게 되는 것 같아요. 약대의 교과 과정이라는게 약물 중심이라면 동아리 활동으로 인간 중심의 약료를 체득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경험을 한 약사들은 무언가 조금이라도 달라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사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할 줄 알게돼요.
학교를 졸업하면 늘픔약사회로 모이게 되는데 이건 임의단체 성격으로 약사들이 서로 같이 약에 대해 공부도 하고 세미나도 하는 동호회적인 활동을 하면서 유지하고 있어요. 늘픔약사회가 한 10년 정도 유지되면서 우리만의 공동체 역할만 하는게 아니라 좀 더 공익적인 활동을 펼쳐보자 해서 늘픔 약국과 늘픔가치가 생기게 되었어요.
Q. 모두가 마음을 합쳐도 실제 역할을 받아서 주도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그 역할을 맡으신 이유도 있을까요?
처음에 건강권 증진을 위해 모인 마음이 변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활동으로 드러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동호회적 성격으로만 남으면 와해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더라고요. 제가 늘픔, 늘픔약사회라는 공동체에서 받은게 더 크고 저도 여기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뿌리 깊게 있었죠. 저도 대학때 이런 활동으로 영향을 받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국민 건강권을 위하는 약사로 살고 있다는 게 뿌듯하고 자부심도 있거든요. 그래서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거죠(웃음).
Q. 다양한 비영리스타트업 지원 트랙에 참여하셨죠. 그 과정 자체가 새롭게 일하고 활동하는 방식을 체계화하는 과정이기도 하잖아요. 최근에는 사단법인 설립도 하셨는데 사단법인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해요.
비영리스타트업으로 활동을 시작해보게 된 건 약국 소속으로 일을 할 때 복지관에 강의를 나가거나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개인 활동으로만 남더라고요. 약국은 개인 사업이기도 해서 공익활동을 위한 컨소시엄을 맺는다거나 이런 일을 하는데 제약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약사를 동참시키려고 해도 다른 소속의 약사일 뿐 이게 어떤 그룹화되지 않는 정체성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죠. 별도의 이름과 활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건강권을 위한 활동을 약국 안에서, 약사끼리만 하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느낌이 있더라구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이나 주민활동과 협업하면서 약사들이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늘픔가치라는 별도 법인을 생각하게 되었고, 늘픔가치는 약사와 사회복지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안전한 의약품 이용환경을 만들기 위한 즐거운 도전
Q. 늘픔가치의 활동이 더 궁금해지네요.
대표적으로는 ‘찾아가는 복약 상담소’활동과 ‘마을 약사 아카데미’ 활동이 있어요. 주민, 돌봄 종사자 분들 교육하는 활동도 하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아직도 탐색기인 것 같아요. 약사의 직능을 활용해서 지역사회에 안전한 의약품 이용 환경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안전한 의약품 이용 환경’에 대한 정의를 해나가는 과정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처방받은 약을 잘 먹고, 남는 의약품을 잘 버릴 수 있도록 도우면 되겠다 생각했어요. 활동을 하다보니 약을 잘 먹기 어려운 상태나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들이 생겨요. 오늘 아침에도 장애인 지원 주택에 다녀왔거든요. 그래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어디일까 계속 파고들고 있는 것 같고요. 그와 동시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마을약사를 많이 만들기 위한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어요.
찾아가는 복약상담소 사진
Q. 사회적으로도 돌봄 영역이 중요해지고 있잖아요. 직접 찾아가서 접촉면을 늘리는 방식의 활동을 하시는 것도 늘픔가치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맞아요. 안전한 의약품 이용 환경을 만든다는 건 어떤 도구나 정보만 제공해서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 같아요. 주거환경이나 약에 대한 이해도, 노동 환경 같은 생활 환경 전반이 연결되어 있는 거니까요. 이런 부분을 통합적으로 관찰하고 살펴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직접 관계망을 만드는 방식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마을 약사 아카데미는 참여하신 분들이 후기를 되게 많이 쓰셨더라고요. 읽어보면서 늘픔가치의 활동이 다른 활동가를 또 키워내는 일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마을 약사 아카데미는 이름은 아카데미지만 아카데믹하지 않아요(웃음). 제가 마을 약사가 됐던 그런 과정을 축약해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저를 지역사회 활동에 결합시켜준 다양한 활동가, 의료인들,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돌봄 종사자들과 만나는 시간을 마을약사 아카데미에 포함시켰어요. 돌봄 영역에서 주민과 지역사회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기는 변화를 믿거든요. 그런 경험을 하면 늘픔가치의 마을 약사가 될 수도 있지만 약사로서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변화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하고 기획했어요.
마을약사 아카데미 포스터
마을약사 아카데미 활동
도시 건강에 대한 공부도 하고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학습도 하고 다양한 돌봄 직능과 간담회도 열어요. 약사로 살면 다른 분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더 참여하는 약사들의 만족도가 높아요. 작년부터 시작해서 1년에 두 번씩은 하고 있는데 꾸준히 계속 해보려고요.
Q. 어쩌면 모든 조직이 하는 고민일 수 있겠지만 특히나 초기 단계의 조직에서는 조직이 운영되기 위한 재정 구조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늘픔가치는 약국을 통한 재정 구조를 갖춘 운영 모델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늘픔약국에서 매년 정기 기부를 통해서 재정 지원을 해주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상근 인력 2명과 사무실을 갖고 있다는게 엄청난 장점인 것 같긴 해요. 그렇지만 약국도 시장에서는 경기를 타는 직종이기도 하고 계속 여기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측면에서 아직은 재정적으로 완전한 구조는 아니에요. 앞으로는 마을약사의 활동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더 많은 약사와 보건의료인, 돌봄 종사자들이 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모금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저는 개인후원으로 활동가 월급을 만들어 내고 싶어요. 대신에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사회문제 해결에 책임이 있는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받아서 해결하고 싶어요.
Q. 구체적인 어려움 같은 게 있나요?
재원이나 인력이 늘 충분하지 않다는거죠. 그래서 늘 풍족하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일을 해야 되고요. 그러다보니 우리 활동 취지에는 맞지만 아직 결합할 수 없는 일들도 생겨서 그런 점이 고민이죠.
함께 만들어낸 변화, 함께하는 사람들
Q. 사단법인 늘픔가치는 신생 조직이지만 대표님은 활동이 10년이 넘으셨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낸 것 같으세요?
관악 지역에서는 특히 지역사회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이제 아는 약사가 된 것 같아요. 지역 사회 내 돌봄이라는 주제 건강권에 관련된 이슈가 생겼을 때 같이 논의할 수 있는 파트너로 자리잡았다고 할까요. 그게 요즘 가장 체감하고 있는 변화인 것 같아요.
관악에서는 관련 이슈가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찾아주는 것, 그리고 제가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제일 많이 들었던 “약사가 이런 일도 하세요?” 질문을 이제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거요(웃음).
Q. 함께하는 활동가분들도 소개해주세요. 자랑을 해주셔도 좋고요(웃음). 최진혜 약사님의 책<알면 약 모르면 독>은 개정판이 최근에 나온 것 같더라고요.
최진혜 약사님은 늘픔약국을 대표하는 약사인데요. 두 개의 늘픔약국의 총괄 약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진혜 약사님의 가장 큰 장점은 매력이에요(웃음). 많은 네트워크를 갖고 계시죠. 사업영역이 확장되고 주제가 넓어지는데 다양한 관계 안에서 필요한 사람이나 기관을 잘 매칭해주세요. 늘픔가치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제가 도움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늘픔가치 단체사진
그리고 제가 늘 보물이라고 하는 박희선 사무국장님인데요. 약사를 지역사회에 잘 연결시켜주는 사람이에요. 청년 정책과 청년 네트워크 활동을 관악구 기반으로 하셨고 저보다 제가 하는 일을 잘 설명해주세요. 약사가 아닌 사람, 저와는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계셔서 늘픔가치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Q. 마지막입니다. 활동가로서 스스로에게 가지는 기대가 있을까요? 어떤 활동가가 되고 싶으세요?
퍼즐을 맞출 때, 주변 퍼즐이 다 채워져 있고 마지막 조각을 딱 맞추는 그런 재미 있잖아요. 내가 정말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곳에 잘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활동하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전체적인 그림도 완성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지역사회의 통합돌봄의 기반이 잘 갖춰지고 준비가 잘 되어 있을 때 약사로서 제가 적재적소에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주변부가 같이 성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활동의 밸런스를 잘 맞추고 싶어요. 내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주변을 같이 잘 살피면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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