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티는 게 아니라, 채우는 거다
4시간 자고 전국을 달리는 천안 청년, 임효빈
-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뭐 하셨어요?
"사실 오늘도 평범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오늘 점검 일정 확인하고, 현장 하나 다녀왔어요. 입주민분 만나서 하자 부분 같이 보고, 설명드리고, 보고서에 들어갈 사진 정리하고 오는 길에 여기로 바로 왔거든요. 사실 옷도 못 갈아입고 왔어요. 그만큼 이게 그냥 제 평범한 하루의 한 조각이에요. 인터뷰한다고 해서 뭐 특별한 걸 하고 온 게 아니라, 늘 똑같이 돌아가던 하루의 흐름 그대로 여기 앉아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머릿속 반쪽은 아직 현장에 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천안 청년 활동가 임효빈 (왼쪽), 김경민 (오른쪽)
1막 | "머릿속 반쪽은 아직 현장에 있다"
① 요즘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요? 아침 눈 뜨는 순간부터 밤에 눈 감는 순간까지, 한번 쭉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평일이랑 주말 나눠서요.
주말에는 일단 점검을 가기 때문에 주말이 더 바빠요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오늘 어디부터 가야 하지'예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이미 그날 일정이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어요. 점검 현장이 잡혀 있으면 거의 곧바로 옷 입고 나가고, 가는 길에 입주민분들 연락드리거나 자료 다시 한번 점검해요. 현장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정신없어요. 하자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설명드리고, 사진 찍고, 입주민분들 질문에 답하고요. 점검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는데, 그게 C3 미팅일 수도 있고, 정부지원사업 서류 작업일 수도 있고, 빈칸을 채우는 사람들 관련 협의일 수도 있어요. 낮에는 거의 이 세 가지 일이 번갈아 가면서 끊김 없이 이어져요. 그러다 저녁이 되면 그제서야 '내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생겨요. 콘텐츠 기획하거나, 사업 구조 다시 짜보거나, 다음 날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고, 그때 잠깐 눈을 붙이는 거죠. 사실 하루가 '끝난다'는 느낌은 거의 없어요. 그냥 멈췄다가 다시 이어지는 느낌이에요.
※ 임효빈 님의 본업은 아파트 단지 사전 점검 서비스 '점검하우', 활동가로서는 '빈칸을채우는사람들' 소속으로 천안역 지하상가라는, 주목 받지 못하던 공간에서 묵묵히 청년들의 자리를 만들어오고 있다.
② 4시간 수면이 습관이 됐잖아요. 몸이 버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진짜 괜찮은 건지, 스스로는 어떻게 느껴요?
솔직히 말하면 버티는 거 맞아요. 몸이 괜찮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할 일이 남아있는 상태로 누우면 잠이 안 와요. 머릿속에 빈칸이 보이는데 그걸 그냥 두고 자는 게, 차라리 못 자는 것보다 더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잠을 줄이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잠이 뒤로 밀리는 식이 됐어요. 처음엔 그냥 며칠 그런 거였는데, 그게 쌓이고 쌓여서 지금은 그게 그냥 제 생활 패턴이 됐어요. 몸은 분명 신호를 보내요. 어깨가 뻐근하거나, 눈이 침침하거나, 어떤 날은 그냥 멍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데 그 신호보다 머리가 항상 한 발 먼저 움직여요. '이거 하나만 더 끝내고' 하면서요. 그게 건강한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은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만 알아요.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가도, 막상 일정표를 펼쳐보면 줄일 수 있는 게 하나도 안 보여서 결국 또 그대로 가게 되더라고요. 언젠가는 이 패턴도 바꿔야 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일단 이 흐름을 끝까지 밀고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③ 주말에 일 하고 쉬지도 못하고 평일에 교육을 듣거나, 교육을 하거나, 일정이 있으면 많이 피곤할 거 같은데 어떻게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어요? 이 일정들을 버티게 하는 것이 뭐예요?
본업하랴 프로젝트팀 진행하랴 공익활동하랴 정신도 없고 시간도 쪼개서 하고 있긴 해요. 일정표만 보면 솔직히 저도 가끔 어떻게 다 소화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예요. 그런데 그 안에서도 기획을 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그걸 실제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혼자 다 짊어지는 게 아니라 팀원들이 옆에서 항상 같이 함께해주고 있어서, 힘들어도 같이 가는 길이라는 게 큰 힘이 돼요. 누군가는 자료를 조사해주고, 누군가는 현장을 같이 뛰어주고, 그렇게 서로 빈칸을 채워주니까 저도 더 힘내 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사진 : 임효빈 님은 2025년 12월에 있었던 천안시 AI캠프에 참여했다.
2막 | "신세계를 알게 된 느낌이었어요"
④ 12월 처음 AI교육이 있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그때 클로드 코드라는 걸 처음 접했는데, 정말 신세계를 알게 된 느낌이었어요. 이전까지는 AI를 그냥 정보 찾거나 글 다듬는 용도로만 써봤었는데, 클로드 코드를 보면서는 이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짜여진 코드를 직접 실행해보고, 원하는 결과가 눈앞에 바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머릿속에 있던 막연한 아이디어들이 갑자기 현실로 끌어당겨지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날 이후로 제 안에서 AI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좋았어요.
⑤ 제 뒤에 앉아 계셨는데 다른 팀은 분주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작업을 했는데, 제 기억으론 다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사주를 볼 수 있는 걸 만들고 있었는데 신기했거든요. 그 팀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그때 저희 팀 상황이 좀 특이했어요. 클로드 맥스를 받은 사람이 팀장 한 명뿐이라서, 다 같이 동시에 프로그램을 돌릴 수가 없는 구조였거든요. 그래서 팀장이 직접 코드를 만지는 동안, 나머지 팀원들은 옆에서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조사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버려서, 남는 시간에 그냥 손 놓고 있기보다는 클로드 코드를 직접 만져보면서 연습이라도 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다들 재미 삼아 사주를 봐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기로 했고, 그게 보기엔 따로 노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다들 각자 자리에서 클로드 코드와 친해지려고 했던 시간이었어요.
⑥ 1월에 교육이 다 끝나고, 제가 갑작스럽게 단톡방을 만들게 되었는데 어땠어요?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나요?
처음엔 갑자기 단톡방이 생겨서 살짝 어리둥절하긴 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좋았어요. 교육이 끝나고 나면 그날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거기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따로 연결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니까 오히려 반갑더라고요. 저는 평소에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좋게 다가왔어요. 부담은 전혀 없었어요.
⑦ 우리 아이디어톤에서 우수상 수상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상을 받은 자체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그날 다 같이 밤새서 아이디어 짜고, 다음 날 아침 바로 출장 때문에 일하러 가야 했어서 몸은 완전히 피곤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도 전날 밤에 다 같이 머리 맞대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과정 자체가 좋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 팀이 어떤 상이든 하나는 타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게 마음 한편에 있었어요. 출장 업무 끝내고 늦게나마 다시 복귀해서 팀원들 얼굴을 보니까, 다들 피곤에 완전히 절어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고생 많았구나, 다들 정말 열심히 해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막 |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어요"
⑧ 빈칸 활동하면서 딱 한 날만 고르라면, 가장 기억 나는 날이 언제예요?
버스킹 음악회를 하기로 했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그날을 위해서 다들 준비를 많이 했었는데, 정작 저는 전날부터 몸이 으슬으슬한 게 느낌이 안 좋더니 결국 그날 완전히 뻗어버렸어요. 다른 행사들도 기억나는 게 많지만, 그 날은 제가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워낙 크게 남아서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⑨ 버스킹 하는 날 제가 함께 하기 힘들다고 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 힘든데도 사무실로 온 이유는요?
그날은 약 먹고 좀 누워서 버텨봐야겠다 생각하고 잠깐 눕기로 했는데, 그대로 완전히 뻗어버렸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고, 그 순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어쨌든 그날은 제가 함께 했어야 하는 자리였고, 다른 사람들이 저 없이 혼자서 다 고생하고 있을 거라는 게 머릿속에 계속 걸리더라고요. 그 생각이 드니까 몸이 안 좋은 와중에도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고, 결국 몸을 일으켜서 사무실로 향했어요.
⑩ 그때 제가 많이 속상해했잖아요. 팀장으로서, 오빠로서 어땠어요? 본인도 쉬는게 아니고 바쁜 일정이 있었잖아요.
그때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어요. 팀장으로서, 또 오빠로서 함께 있어줘야 하는 자리였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거든요. 저도 그날 따로 바쁜 일정이 있었던 건 맞지만, 그게 핑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몸관리도 자기 관리의 일부인데, 그걸 미리 챙기지 못해서 중요한 날 빠지게 된 거니까 그건 제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한참 동안 스스로를 자책했던 것 같아요


4막 | "결국 다 같은 결 위에 있어요"
⑪ TOP100 선정된 거 축하드려요!! TOP100에 됐다는 거 알았을 때, 제일 먼저 뭐 했어요? 어땠어요? 누구한테 얘기했어요?
팀원들 한테 제일 먼저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주최측에서 비밀로 해달라고 문자가 와서 더 이상 다른 곳에 얘기하진 않았어요.
⑫ 제가 알기론 창업지원사업이랑 빈칸, C3의 활동의 결이 다른데 공유오피스도 하고 싶어하잖아요. 음, 사업 아이템을 1개만 택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떤 것을 하고 싶어요?
저는 제가 하려는 사업들과 지금 하고 있는 공익활동들이 아예 따로 분리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국 다 같은 결, 빈칸을 채운다는 같은 방향 위에 있다고 보고 움직이고 있거든요. 그런데 정말 한 개만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쩔 수 없이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본업인 점검하우에 충실하지 않을까 싶어요. 본업이 받쳐줘야 다른 활동들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거니까요.

5막 | "천안은, 내가 빈칸을 채우기로 결심한 도시"
⑭ 천안이 본인에겐 어떤 도시예요? 딱 한 문장으로요.
천안은, 제가 빈칸을 채우기로 결심한 도시예요. 다른 도시였다면 똑같은 마음이 들었을지 모르겠어요. 천안에서 만난 사람들, 천안에서 겪은 일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으니까, 이 도시 자체가 제 결심의 배경이자 증인 같은 존재예요.
⑮ 솔직히,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일단은 청년일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청년일 때 최대한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게 가장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오늘도 그냥 버틴 게 아니라, 오늘도 분명히 채운 거다."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매일이 비슷해 보이고 똑같이 힘들어 보여도, 그 안에는 분명히 하나씩 채워진 빈칸이 있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주고 싶어요. 버티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채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천안역 지하상가 79,81호 문을 닫고 나오는 길, 그의 걸음은 여전히 빨랐다. 오늘도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어 : 김경민
김경민은 운동·건강·AI를 연결하며 사람과 지역의 성장을 기획하는 활동가이다. 시민참여 프로젝트와 공익 콘텐츠 제작을 통해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특히 사람들의 삶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실천과 용기를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인터뷰를 통해 변화는 특별한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우리 곁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오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버티는 게 아니라, 채우는 거다
4시간 자고 전국을 달리는 천안 청년, 임효빈
-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뭐 하셨어요?
"사실 오늘도 평범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오늘 점검 일정 확인하고, 현장 하나 다녀왔어요. 입주민분 만나서 하자 부분 같이 보고, 설명드리고, 보고서에 들어갈 사진 정리하고 오는 길에 여기로 바로 왔거든요. 사실 옷도 못 갈아입고 왔어요. 그만큼 이게 그냥 제 평범한 하루의 한 조각이에요. 인터뷰한다고 해서 뭐 특별한 걸 하고 온 게 아니라, 늘 똑같이 돌아가던 하루의 흐름 그대로 여기 앉아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머릿속 반쪽은 아직 현장에 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천안 청년 활동가 임효빈 (왼쪽), 김경민 (오른쪽)
1막 | "머릿속 반쪽은 아직 현장에 있다"
① 요즘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요? 아침 눈 뜨는 순간부터 밤에 눈 감는 순간까지, 한번 쭉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평일이랑 주말 나눠서요.
주말에는 일단 점검을 가기 때문에 주말이 더 바빠요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오늘 어디부터 가야 하지'예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이미 그날 일정이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어요. 점검 현장이 잡혀 있으면 거의 곧바로 옷 입고 나가고, 가는 길에 입주민분들 연락드리거나 자료 다시 한번 점검해요. 현장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정신없어요. 하자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설명드리고, 사진 찍고, 입주민분들 질문에 답하고요. 점검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는데, 그게 C3 미팅일 수도 있고, 정부지원사업 서류 작업일 수도 있고, 빈칸을 채우는 사람들 관련 협의일 수도 있어요. 낮에는 거의 이 세 가지 일이 번갈아 가면서 끊김 없이 이어져요. 그러다 저녁이 되면 그제서야 '내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생겨요. 콘텐츠 기획하거나, 사업 구조 다시 짜보거나, 다음 날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고, 그때 잠깐 눈을 붙이는 거죠. 사실 하루가 '끝난다'는 느낌은 거의 없어요. 그냥 멈췄다가 다시 이어지는 느낌이에요.
※ 임효빈 님의 본업은 아파트 단지 사전 점검 서비스 '점검하우', 활동가로서는 '빈칸을채우는사람들' 소속으로 천안역 지하상가라는, 주목 받지 못하던 공간에서 묵묵히 청년들의 자리를 만들어오고 있다.
② 4시간 수면이 습관이 됐잖아요. 몸이 버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진짜 괜찮은 건지, 스스로는 어떻게 느껴요?
솔직히 말하면 버티는 거 맞아요. 몸이 괜찮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할 일이 남아있는 상태로 누우면 잠이 안 와요. 머릿속에 빈칸이 보이는데 그걸 그냥 두고 자는 게, 차라리 못 자는 것보다 더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잠을 줄이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잠이 뒤로 밀리는 식이 됐어요. 처음엔 그냥 며칠 그런 거였는데, 그게 쌓이고 쌓여서 지금은 그게 그냥 제 생활 패턴이 됐어요. 몸은 분명 신호를 보내요. 어깨가 뻐근하거나, 눈이 침침하거나, 어떤 날은 그냥 멍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데 그 신호보다 머리가 항상 한 발 먼저 움직여요. '이거 하나만 더 끝내고' 하면서요. 그게 건강한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은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만 알아요.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가도, 막상 일정표를 펼쳐보면 줄일 수 있는 게 하나도 안 보여서 결국 또 그대로 가게 되더라고요. 언젠가는 이 패턴도 바꿔야 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일단 이 흐름을 끝까지 밀고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③ 주말에 일 하고 쉬지도 못하고 평일에 교육을 듣거나, 교육을 하거나, 일정이 있으면 많이 피곤할 거 같은데 어떻게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어요? 이 일정들을 버티게 하는 것이 뭐예요?
본업하랴 프로젝트팀 진행하랴 공익활동하랴 정신도 없고 시간도 쪼개서 하고 있긴 해요. 일정표만 보면 솔직히 저도 가끔 어떻게 다 소화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예요. 그런데 그 안에서도 기획을 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그걸 실제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혼자 다 짊어지는 게 아니라 팀원들이 옆에서 항상 같이 함께해주고 있어서, 힘들어도 같이 가는 길이라는 게 큰 힘이 돼요. 누군가는 자료를 조사해주고, 누군가는 현장을 같이 뛰어주고, 그렇게 서로 빈칸을 채워주니까 저도 더 힘내 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사진 : 임효빈 님은 2025년 12월에 있었던 천안시 AI캠프에 참여했다.
2막 | "신세계를 알게 된 느낌이었어요"
④ 12월 처음 AI교육이 있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그때 클로드 코드라는 걸 처음 접했는데, 정말 신세계를 알게 된 느낌이었어요. 이전까지는 AI를 그냥 정보 찾거나 글 다듬는 용도로만 써봤었는데, 클로드 코드를 보면서는 이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짜여진 코드를 직접 실행해보고, 원하는 결과가 눈앞에 바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머릿속에 있던 막연한 아이디어들이 갑자기 현실로 끌어당겨지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날 이후로 제 안에서 AI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좋았어요.
⑤ 제 뒤에 앉아 계셨는데 다른 팀은 분주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작업을 했는데, 제 기억으론 다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사주를 볼 수 있는 걸 만들고 있었는데 신기했거든요. 그 팀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그때 저희 팀 상황이 좀 특이했어요. 클로드 맥스를 받은 사람이 팀장 한 명뿐이라서, 다 같이 동시에 프로그램을 돌릴 수가 없는 구조였거든요. 그래서 팀장이 직접 코드를 만지는 동안, 나머지 팀원들은 옆에서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조사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버려서, 남는 시간에 그냥 손 놓고 있기보다는 클로드 코드를 직접 만져보면서 연습이라도 해보자는 분위기가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다들 재미 삼아 사주를 봐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기로 했고, 그게 보기엔 따로 노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다들 각자 자리에서 클로드 코드와 친해지려고 했던 시간이었어요.
⑥ 1월에 교육이 다 끝나고, 제가 갑작스럽게 단톡방을 만들게 되었는데 어땠어요?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나요?
처음엔 갑자기 단톡방이 생겨서 살짝 어리둥절하긴 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좋았어요. 교육이 끝나고 나면 그날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거기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따로 연결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니까 오히려 반갑더라고요. 저는 평소에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좋게 다가왔어요. 부담은 전혀 없었어요.
⑦ 우리 아이디어톤에서 우수상 수상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상을 받은 자체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그날 다 같이 밤새서 아이디어 짜고, 다음 날 아침 바로 출장 때문에 일하러 가야 했어서 몸은 완전히 피곤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도 전날 밤에 다 같이 머리 맞대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과정 자체가 좋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 팀이 어떤 상이든 하나는 타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게 마음 한편에 있었어요. 출장 업무 끝내고 늦게나마 다시 복귀해서 팀원들 얼굴을 보니까, 다들 피곤에 완전히 절어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고생 많았구나, 다들 정말 열심히 해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막 |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어요"
⑧ 빈칸 활동하면서 딱 한 날만 고르라면, 가장 기억 나는 날이 언제예요?
버스킹 음악회를 하기로 했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그날을 위해서 다들 준비를 많이 했었는데, 정작 저는 전날부터 몸이 으슬으슬한 게 느낌이 안 좋더니 결국 그날 완전히 뻗어버렸어요. 다른 행사들도 기억나는 게 많지만, 그 날은 제가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워낙 크게 남아서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⑨ 버스킹 하는 날 제가 함께 하기 힘들다고 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몸이 힘든데도 사무실로 온 이유는요?
그날은 약 먹고 좀 누워서 버텨봐야겠다 생각하고 잠깐 눕기로 했는데, 그대로 완전히 뻗어버렸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고, 그 순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어쨌든 그날은 제가 함께 했어야 하는 자리였고, 다른 사람들이 저 없이 혼자서 다 고생하고 있을 거라는 게 머릿속에 계속 걸리더라고요. 그 생각이 드니까 몸이 안 좋은 와중에도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고, 결국 몸을 일으켜서 사무실로 향했어요.
⑩ 그때 제가 많이 속상해했잖아요. 팀장으로서, 오빠로서 어땠어요? 본인도 쉬는게 아니고 바쁜 일정이 있었잖아요.
그때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어요. 팀장으로서, 또 오빠로서 함께 있어줘야 하는 자리였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거든요. 저도 그날 따로 바쁜 일정이 있었던 건 맞지만, 그게 핑계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몸관리도 자기 관리의 일부인데, 그걸 미리 챙기지 못해서 중요한 날 빠지게 된 거니까 그건 제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한참 동안 스스로를 자책했던 것 같아요
4막 | "결국 다 같은 결 위에 있어요"
⑪ TOP100 선정된 거 축하드려요!! TOP100에 됐다는 거 알았을 때, 제일 먼저 뭐 했어요? 어땠어요? 누구한테 얘기했어요?
팀원들 한테 제일 먼저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주최측에서 비밀로 해달라고 문자가 와서 더 이상 다른 곳에 얘기하진 않았어요.
⑫ 제가 알기론 창업지원사업이랑 빈칸, C3의 활동의 결이 다른데 공유오피스도 하고 싶어하잖아요. 음, 사업 아이템을 1개만 택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떤 것을 하고 싶어요?
저는 제가 하려는 사업들과 지금 하고 있는 공익활동들이 아예 따로 분리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국 다 같은 결, 빈칸을 채운다는 같은 방향 위에 있다고 보고 움직이고 있거든요. 그런데 정말 한 개만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쩔 수 없이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본업인 점검하우에 충실하지 않을까 싶어요. 본업이 받쳐줘야 다른 활동들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거니까요.
5막 | "천안은, 내가 빈칸을 채우기로 결심한 도시"
⑭ 천안이 본인에겐 어떤 도시예요? 딱 한 문장으로요.
천안은, 제가 빈칸을 채우기로 결심한 도시예요. 다른 도시였다면 똑같은 마음이 들었을지 모르겠어요. 천안에서 만난 사람들, 천안에서 겪은 일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으니까, 이 도시 자체가 제 결심의 배경이자 증인 같은 존재예요.
⑮ 솔직히,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일단은 청년일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청년일 때 최대한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게 가장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오늘도 그냥 버틴 게 아니라, 오늘도 분명히 채운 거다."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매일이 비슷해 보이고 똑같이 힘들어 보여도, 그 안에는 분명히 하나씩 채워진 빈칸이 있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주고 싶어요. 버티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채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천안역 지하상가 79,81호 문을 닫고 나오는 길, 그의 걸음은 여전히 빨랐다. 오늘도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