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며,
활동가로서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박슬기 활동가

사진 : 최근 새로 이전한 경주 독립서점 ‘너른벽’에서의 박슬기. ⓒ민뎅
퀴어, 장애, '정병', 비인간, 계급, 섹슈얼리티 등등을 간판에 전면적으로 내세운 책방이 생겼다는 친구의 말에 그곳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렇게 연을 갖게 된 책방지기는 어느 날엔 기후행진에, 어느 날엔 성매매 집결지에 어느 날엔 이주민 노동자와 함께였다. 경주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이 되기도 한 박슬기님의 이야기가 궁금하였다. 아직 활동가로서의 자신을 주춤하지만, 고민하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고, 하나 둘 실천을 해나가는 그를 기록하게 되어 반가운 시간이었다.
- 슬기님, 먼저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네. 경주에 이주해서 산지 3년차 되는 박슬기입니다. 23년 2월에 독립서점 ‘너른벽’을 오픈하면서 경주로 주거 이전을 완료했으니, 공식적으로 경주에서 거주한지 3년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 슬기님은 경주로 이주한 것이니까, 경주 태생이 아니고 그 전에 경주에서 활동한 것도 아닌데요. 자, 어떻게 경주로 오게 되셨는지 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우연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시간이 많아졌잖아요. 그래서 그때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도 해보고,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다 생각을 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지역 소멸 마을에 청년들이 입주해서 살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어요. 경주의 감포라는 바닷가 마을이었고 거기에 입주하면서 경주로 오게 된 거였어요. 그렇게 우연히 경주에 여행을 오면서 경주의 원도심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일주일 정도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동안 경주를 발견하고 알아가게 되었어요. 재미난 이 풍경 속에서 나도 무언가를 해보면 좋겠다. 정말 막연하게 아무 틀도 없이 생각하다가! 이주를 결심했어요. 그때가 한 여름이었는데, 이후에 경주를 다시 오가면서 집도 구하고, 책방도 구하고 3개월 만에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
- 추진력이 엄청난데요. 우연히 온 경주이지만, 서울이 아닌 이 지역의 어떤 매력과 또 다른 삶의 가치를 고민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슬기님은 경주에 오기 전에는 어디서 살고, 어떤 것들을 하셨나요?
"서울에서 살았어요. 왜 사람들은 항상 서른 살이 되면 뭘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 시기였던 거 같아요. 코로나 시기가 아직 진행 중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일도 그만뒀고. 서울에서는 6년 정도 살았습니다. 평범한 직장 다니면서 주임 직책까지 달았고 거기에 안주하면서 자기계발하고 더 좋은 직장으로 올라가야지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항상 사람이 마음먹는 것과 현실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일을 계속 다니면서 사실은 활동을 했어요. 예를 들면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시민들 대상으로 반성매매 활동 모니터링 이런 것을 했는데 그걸 관심 있게 했고. ‘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성문화활동을 하면서 대면으로 현장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고, ‘아, 이런 일을 하는구나!’ 알게 됐죠. 페미니즘 관점에서 학습도 하고, 이런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그때 좀 알게 되었죠. 그런 활동들과 임금노동을 하는 생계적 문제에서 고민을 정말 많이 됐어요. 활동이란 영역으로 넘어가 보고 싶은데, 용기가 없던 거죠. 익숙하지 않은 분야였고, 또 공부가 많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당연히 페미니즘 리부트가 제게도 정말 큰 영향을 미쳤고요. 젠더 폭력 관련된 집회에도 많이 나갔고요. 그러면서 페미니즘이란 이름 안에서도 되게 다양한 관점들이 있고, 다른 목소리도 계속 출현하는구나. 나는 어느 것을 좀 더 봐야할까? 공부해야 할까? 그런 질문들과 의문들을 가지며 고민도 했고. 그렇게 공부도 하고 하면서 지금 하는 활동들과도 만나게 된 거죠.
-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페미니스트로의 정체화와 관련 활동들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고민의 영역이 활동과 만나졌던 슬기님이었네요. 그런데 우연히 경주에 와서 여기서 살아볼까? 결정을 내리고 무턱대고 이주해서는 책방을 열었단 말이에요? 책방이었던 이유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 그건 명확했습니다. 우선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술적인 게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해야겠고, 지역에 와서 일은 해야 되는데, 지역에 일자리가 없는 것은 너무 눈에 보이고. 뭔가 크리에이터를 하든 알바노동이나 비정규 노동이든 해야 되는데, 제가 여기까지 와서 또 다르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 게 있잖아요. 서울이 싫어서 떠났으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거. 그 공간을 만들고 무언가 해보고 싶다! 그런 열망.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재밌는 걸 하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평소에 책을 꾸준히 완독해온 건 아니지만, 책이랑 가깝게 살아왔기에 책이란 물성을 기반으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책방을 열었어요. 이 과정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경주서 살았던 기간 동안 원도심을 돌아다니면서 수중에 맞는 조건의 공간을 찾았고. 왜 그때가 서른 살이라고 했잖아요. 저한테 되게 중요했던 건데, 혼자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시기였어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생각만으로도 오는 설렘도 있었고. 물론 어떤 긴장도 있었지만 동시에 뭔가를 추동하는 힘도 됐어요. "
- 그 추동하는 힘이 ‘너른벽’을 만들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마주하게도 하였군요. ‘너른벽’은 간판이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곳이기도 하잖아요. 이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페미니즘에 심취했을 때라 책을 읽다가 나오는 키워드들을 걸어보자 생각했어요. 내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거니까. 그것에 동의하는 비슷한 누군가에게는 가 닿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사실 간판은 디자인이랄 것도 없고 그림판 이런 걸로 적어보았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임팩트 있게 다가가서 용기가 있다, 신선하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이게 어떤 파장을 만들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간판에 그 텍스트들이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구나 하면서 책방으로 올 수 있게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

사진 : 보자마자 여긴 가야한다! 생각하게 했던 ‘너른벽’ 시즌1의 간판. ⓒ민뎅
- 저도 간판이 꽤나 인상적이어서 꼭 이 책방에 오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요. 오히려 그게 문턱을 낮추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했던 지금 이야기도 인상적이네요. 책방 이름이 ‘너른벽’인 이유는 어떤 건가요?
" 『제로의 책』이라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기획자가 만든 책인데요. 이 책에 나오는 글을 보고 짓게 되었어요.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너른 벽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문턱이나 바닥을 낮춰야죠.” 이 글이에요. 너른 벽이지만 어쨌든 벽이 있다. 뭔가 안락함을 만들어가 무언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잖아요. 벽이라는 단단하게 지탱해줘야 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이 단어가 저에게는 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

사진 : 책방 이름을 설명하기 위해 책을 꺼낸 슬기님. ⓒ민뎅
- 경주에 와서 공간을 구하고 하는 과정이 순탄했다고 했는데요. 책방을 열고나서, 그러니까 실제 너른 벽이라는 장이 열리고 나서는 그때도 순탄하게 진행되었나요?
"아니요(웃음). 경주에서도 여기는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길은 아니잖아요. 물론 원도심에서 공간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올 거라 예상하진 않았고, 월세만 벌면 됐지 하는 생각도 있긴 했죠. 그냥 내 밥벌이면 하고.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구조가 발생했고, 중간 중간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어요. 모아둔 돈도 까먹고, 대출도 받고. 그런데 이제 3년이 지났잖아요. 그래도 대출도 갚아나가고, 생활이 그래도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낙관. 이게 놀라운 지점이죠. 또 반상근 단체도 생겼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와서 책도 사주고요. 지금 하는 것들이 모두 애초에 기획했던 것들은 아니에요. 그런데 하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하니까 뚜렷해지는 것도 있고. 또 사람들이 붙어주니까 방향도 더 구체적으로 잡아지고. 그러니까 이 너른벽은 저만 온전히 전담해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주고 있다 생각이 들어요. "
- 반상근 단체 이야기를 했는데요. 현재 경주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잖아요. 여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나요?
"경주 오기 전에 이룸이나 아하!센터에서 활동을 해봤고, 친구들이 하는 행사에 연대도 다녀보고 하면서 ‘아, 단체랑 연결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경주에 오자마자 지역에 대해 파악을 했거든요. 꼭 여성단체가 아니어도. 그래서 초반에는 환경운동연합이랑 제로웨이스트 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기후 행동도 가고, 그 사람들이랑 지역 활동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연결되다 보니까 저의 관심 의제에 대해서도 나누게 되었어요. 그래서 경주에 여성노동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제가 처음엔 노동 의제는 관심이 그리 크진 않았어요. 그래도 추천을 받아서 찾아가보게 되었죠. 비서울지역의 여성운동 단체들도 항상 활동가 재생산 문제나 새로운 세대에 대한 고민이 있는데, 저를 만난 걸 되게 반가워해주셨어요. 회원 가입도 하고 서로 알아가면서 관계가 생기고 활동비를 받으며 홍보 담당도 하고, 지역 여성 노동 글쓰기 모임도 맡아서 하면서 사업들을 기획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반상근 제안이 왔죠. 그렇게 책방과 여노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사진 : 기자회견에서의 슬기님 ⓒ 박슬기 제공
- 그 두 주요한 정체성과 위치성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연결된다 혹은 괴리가 있다, 이런 건 어떤 지점일까요?
"여전히 저는 활동가라기보다 연대 시민 같아요. 조금 더 분노하고, 조금 더 이야기하는. 반상근이기도 해서 매일의 연결성이 적기도 해서 그런가 싶고요.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감각이 있어요. 여노는 상담을 많이 하는데, 제가 상담 활동가가 아니거든요. 물론 활동가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에 신입활동가 교육을 했거든요. 그때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님께서 누구나 정의하는 활동가에 대한 것이 다르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제도 개선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는 사람이 활동가로서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이걸 좀 받아들여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
- 전상근이 아닌 상태에서 슬기님이 뭐랄까 좀 조심스러움이나 위축 같은 게 있을까요?
"확실히 있죠. 현장에 붙어서 탄력 있게 뭔가를 만들어가고 해야 하는데, 제가 그런 건 아니니까.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더 생기고 있어요. 나에게 활동가라는 정체성과 더 접점도 만들어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 활동가라 해도 되나? 고민한다고 했지만, 경주 지역의 성매매 집결지 관련해서도 활동들을 해왔잖아요.
"그것도 완결성의 무엇은 아니었어요. 서점 맞은편에 성매매 집결지를 허물고 커뮤니티 센터가 들어선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도 될까? 이런 궁금증과 질문들을 서점 계정에 올리고 공유하면서,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누군가는 그 물음에 응답을 해준 거죠. 사람들이 와서 질문도 던지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뭔가를 만들어나가게 되었죠. 그래서 작년에는 지역의 시의원이랑 공무원분들도 만나고, 간담회 자리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어요. 아무튼 정리를 해보면, 한국 여성운동 내에서 여전히 성매매/성노동에 대해서는 굉장히 첨예하고, 스펙트럼 안에서 얽히고설켜 있는 것 같아요. 다큐 촬영도 하면서 다양한 단위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는 아직도 계속 공부해가는 과정 속에 있어요. 뭔가 하나를 완수함에 있어서 또 다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생기진 않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고요. 너는 어떤 위치인가? 질문 받는 저의 위치성이 조금은 흥미롭다고도 생각하게 되어요. 어떤 면에서는 기존 판을 깨는 것이기도 할 테니까요. 회색지대는 아닌데, 어쨌든 다양한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들어볼 수 있는 장도 되고요. 서점을 운영하는 면에서도 그런 것이 가능하기도 했어요. "

사진 : 녹색평론 읽기 모임

사진 : 노동운동 학습 모임
- 최근에 읽은 소설에서 ‘소설가는 끝없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세상이 답하는 무수한 소리를 듣는 청자이다. 그리고 그걸 다시 글로 풀어쓰면서 화자가 된다’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슬기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활동가도 그런 존재이겠구나, 싶어요.
"음, 그거 너무 좋네요. 서울이 아닌 경주에서 살아보면서 몰랐던 나의 원함이나 질문들을 계속 발견하기도 해요. 막연히 불안했던 서울에서의 삶과 달리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뚜렷해지기도 하고. 경주 와서 다른 삶의 형태를 그려볼 수 있고, 풀어나갈 수 있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변경됐어요. 그런 걸 여전히 하나하나 발견되고 있는 과정이에요. 또 제가 원도심에 관심이 많단 말이에요. 여기서 서점도 하면서 포괄적으로 이 안에 사람들, 고양이들까지 관심을 갖게 되고. 뭔가 이런 것들을 끌어 모아서 뭔가를 하고 싶단 마음이에요. 이 지역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같이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작업하고 싶다 그런."
-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은 슬기님 (웃음). 책에서 너른 벽에 대한 개념을 만나고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 생각하여 책방 공간을 열게 되었어요. 지금 슬기님이 생각하는 너른벽의 가치? 너른벽은 어떤 공간이길 바라나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발을 들일 수 있게, 쉽게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그냥 누구나 편하게 와서 시간을 보내고 그러면 좋겠어요."
인터뷰어 : 김민정(민뎅)
비서울지역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여성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석사과정생. 퀴어페미니즘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에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이 섞여 들어가며 새로운 고민들과 질문들을 가지며 살아가는 중.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며,
활동가로서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박슬기 활동가
사진 : 최근 새로 이전한 경주 독립서점 ‘너른벽’에서의 박슬기. ⓒ민뎅
퀴어, 장애, '정병', 비인간, 계급, 섹슈얼리티 등등을 간판에 전면적으로 내세운 책방이 생겼다는 친구의 말에 그곳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렇게 연을 갖게 된 책방지기는 어느 날엔 기후행진에, 어느 날엔 성매매 집결지에 어느 날엔 이주민 노동자와 함께였다. 경주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이 되기도 한 박슬기님의 이야기가 궁금하였다. 아직 활동가로서의 자신을 주춤하지만, 고민하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고, 하나 둘 실천을 해나가는 그를 기록하게 되어 반가운 시간이었다.
- 슬기님, 먼저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네. 경주에 이주해서 산지 3년차 되는 박슬기입니다. 23년 2월에 독립서점 ‘너른벽’을 오픈하면서 경주로 주거 이전을 완료했으니, 공식적으로 경주에서 거주한지 3년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 슬기님은 경주로 이주한 것이니까, 경주 태생이 아니고 그 전에 경주에서 활동한 것도 아닌데요. 자, 어떻게 경주로 오게 되셨는지 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우연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시간이 많아졌잖아요. 그래서 그때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도 해보고,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다 생각을 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지역 소멸 마을에 청년들이 입주해서 살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어요. 경주의 감포라는 바닷가 마을이었고 거기에 입주하면서 경주로 오게 된 거였어요. 그렇게 우연히 경주에 여행을 오면서 경주의 원도심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일주일 정도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동안 경주를 발견하고 알아가게 되었어요. 재미난 이 풍경 속에서 나도 무언가를 해보면 좋겠다. 정말 막연하게 아무 틀도 없이 생각하다가! 이주를 결심했어요. 그때가 한 여름이었는데, 이후에 경주를 다시 오가면서 집도 구하고, 책방도 구하고 3개월 만에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
- 추진력이 엄청난데요. 우연히 온 경주이지만, 서울이 아닌 이 지역의 어떤 매력과 또 다른 삶의 가치를 고민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슬기님은 경주에 오기 전에는 어디서 살고, 어떤 것들을 하셨나요?
"서울에서 살았어요. 왜 사람들은 항상 서른 살이 되면 뭘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 시기였던 거 같아요. 코로나 시기가 아직 진행 중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일도 그만뒀고. 서울에서는 6년 정도 살았습니다. 평범한 직장 다니면서 주임 직책까지 달았고 거기에 안주하면서 자기계발하고 더 좋은 직장으로 올라가야지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항상 사람이 마음먹는 것과 현실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일을 계속 다니면서 사실은 활동을 했어요. 예를 들면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시민들 대상으로 반성매매 활동 모니터링 이런 것을 했는데 그걸 관심 있게 했고. ‘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성문화활동을 하면서 대면으로 현장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고, ‘아, 이런 일을 하는구나!’ 알게 됐죠. 페미니즘 관점에서 학습도 하고, 이런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그때 좀 알게 되었죠. 그런 활동들과 임금노동을 하는 생계적 문제에서 고민을 정말 많이 됐어요. 활동이란 영역으로 넘어가 보고 싶은데, 용기가 없던 거죠. 익숙하지 않은 분야였고, 또 공부가 많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당연히 페미니즘 리부트가 제게도 정말 큰 영향을 미쳤고요. 젠더 폭력 관련된 집회에도 많이 나갔고요. 그러면서 페미니즘이란 이름 안에서도 되게 다양한 관점들이 있고, 다른 목소리도 계속 출현하는구나. 나는 어느 것을 좀 더 봐야할까? 공부해야 할까? 그런 질문들과 의문들을 가지며 고민도 했고. 그렇게 공부도 하고 하면서 지금 하는 활동들과도 만나게 된 거죠.
-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페미니스트로의 정체화와 관련 활동들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고민의 영역이 활동과 만나졌던 슬기님이었네요. 그런데 우연히 경주에 와서 여기서 살아볼까? 결정을 내리고 무턱대고 이주해서는 책방을 열었단 말이에요? 책방이었던 이유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 그건 명확했습니다. 우선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술적인 게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해야겠고, 지역에 와서 일은 해야 되는데, 지역에 일자리가 없는 것은 너무 눈에 보이고. 뭔가 크리에이터를 하든 알바노동이나 비정규 노동이든 해야 되는데, 제가 여기까지 와서 또 다르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 게 있잖아요. 서울이 싫어서 떠났으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거. 그 공간을 만들고 무언가 해보고 싶다! 그런 열망.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재밌는 걸 하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평소에 책을 꾸준히 완독해온 건 아니지만, 책이랑 가깝게 살아왔기에 책이란 물성을 기반으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책방을 열었어요. 이 과정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경주서 살았던 기간 동안 원도심을 돌아다니면서 수중에 맞는 조건의 공간을 찾았고. 왜 그때가 서른 살이라고 했잖아요. 저한테 되게 중요했던 건데, 혼자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시기였어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생각만으로도 오는 설렘도 있었고. 물론 어떤 긴장도 있었지만 동시에 뭔가를 추동하는 힘도 됐어요. "
- 그 추동하는 힘이 ‘너른벽’을 만들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마주하게도 하였군요. ‘너른벽’은 간판이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곳이기도 하잖아요. 이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페미니즘에 심취했을 때라 책을 읽다가 나오는 키워드들을 걸어보자 생각했어요. 내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거니까. 그것에 동의하는 비슷한 누군가에게는 가 닿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사실 간판은 디자인이랄 것도 없고 그림판 이런 걸로 적어보았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임팩트 있게 다가가서 용기가 있다, 신선하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이게 어떤 파장을 만들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간판에 그 텍스트들이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구나 하면서 책방으로 올 수 있게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
사진 : 보자마자 여긴 가야한다! 생각하게 했던 ‘너른벽’ 시즌1의 간판. ⓒ민뎅
- 저도 간판이 꽤나 인상적이어서 꼭 이 책방에 오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요. 오히려 그게 문턱을 낮추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했던 지금 이야기도 인상적이네요. 책방 이름이 ‘너른벽’인 이유는 어떤 건가요?
" 『제로의 책』이라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기획자가 만든 책인데요. 이 책에 나오는 글을 보고 짓게 되었어요.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너른 벽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문턱이나 바닥을 낮춰야죠.” 이 글이에요. 너른 벽이지만 어쨌든 벽이 있다. 뭔가 안락함을 만들어가 무언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잖아요. 벽이라는 단단하게 지탱해줘야 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이 단어가 저에게는 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
사진 : 책방 이름을 설명하기 위해 책을 꺼낸 슬기님. ⓒ민뎅
- 경주에 와서 공간을 구하고 하는 과정이 순탄했다고 했는데요. 책방을 열고나서, 그러니까 실제 너른 벽이라는 장이 열리고 나서는 그때도 순탄하게 진행되었나요?
"아니요(웃음). 경주에서도 여기는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길은 아니잖아요. 물론 원도심에서 공간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올 거라 예상하진 않았고, 월세만 벌면 됐지 하는 생각도 있긴 했죠. 그냥 내 밥벌이면 하고.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구조가 발생했고, 중간 중간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어요. 모아둔 돈도 까먹고, 대출도 받고. 그런데 이제 3년이 지났잖아요. 그래도 대출도 갚아나가고, 생활이 그래도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낙관. 이게 놀라운 지점이죠. 또 반상근 단체도 생겼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와서 책도 사주고요. 지금 하는 것들이 모두 애초에 기획했던 것들은 아니에요. 그런데 하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하니까 뚜렷해지는 것도 있고. 또 사람들이 붙어주니까 방향도 더 구체적으로 잡아지고. 그러니까 이 너른벽은 저만 온전히 전담해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주고 있다 생각이 들어요. "
- 반상근 단체 이야기를 했는데요. 현재 경주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잖아요. 여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나요?
"경주 오기 전에 이룸이나 아하!센터에서 활동을 해봤고, 친구들이 하는 행사에 연대도 다녀보고 하면서 ‘아, 단체랑 연결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경주에 오자마자 지역에 대해 파악을 했거든요. 꼭 여성단체가 아니어도. 그래서 초반에는 환경운동연합이랑 제로웨이스트 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기후 행동도 가고, 그 사람들이랑 지역 활동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연결되다 보니까 저의 관심 의제에 대해서도 나누게 되었어요. 그래서 경주에 여성노동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제가 처음엔 노동 의제는 관심이 그리 크진 않았어요. 그래도 추천을 받아서 찾아가보게 되었죠. 비서울지역의 여성운동 단체들도 항상 활동가 재생산 문제나 새로운 세대에 대한 고민이 있는데, 저를 만난 걸 되게 반가워해주셨어요. 회원 가입도 하고 서로 알아가면서 관계가 생기고 활동비를 받으며 홍보 담당도 하고, 지역 여성 노동 글쓰기 모임도 맡아서 하면서 사업들을 기획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반상근 제안이 왔죠. 그렇게 책방과 여노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사진 : 기자회견에서의 슬기님 ⓒ 박슬기 제공
- 그 두 주요한 정체성과 위치성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연결된다 혹은 괴리가 있다, 이런 건 어떤 지점일까요?
"여전히 저는 활동가라기보다 연대 시민 같아요. 조금 더 분노하고, 조금 더 이야기하는. 반상근이기도 해서 매일의 연결성이 적기도 해서 그런가 싶고요.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감각이 있어요. 여노는 상담을 많이 하는데, 제가 상담 활동가가 아니거든요. 물론 활동가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에 신입활동가 교육을 했거든요. 그때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님께서 누구나 정의하는 활동가에 대한 것이 다르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제도 개선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는 사람이 활동가로서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이걸 좀 받아들여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
- 전상근이 아닌 상태에서 슬기님이 뭐랄까 좀 조심스러움이나 위축 같은 게 있을까요?
"확실히 있죠. 현장에 붙어서 탄력 있게 뭔가를 만들어가고 해야 하는데, 제가 그런 건 아니니까.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더 생기고 있어요. 나에게 활동가라는 정체성과 더 접점도 만들어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 활동가라 해도 되나? 고민한다고 했지만, 경주 지역의 성매매 집결지 관련해서도 활동들을 해왔잖아요.
"그것도 완결성의 무엇은 아니었어요. 서점 맞은편에 성매매 집결지를 허물고 커뮤니티 센터가 들어선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도 될까? 이런 궁금증과 질문들을 서점 계정에 올리고 공유하면서,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누군가는 그 물음에 응답을 해준 거죠. 사람들이 와서 질문도 던지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뭔가를 만들어나가게 되었죠. 그래서 작년에는 지역의 시의원이랑 공무원분들도 만나고, 간담회 자리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어요. 아무튼 정리를 해보면, 한국 여성운동 내에서 여전히 성매매/성노동에 대해서는 굉장히 첨예하고, 스펙트럼 안에서 얽히고설켜 있는 것 같아요. 다큐 촬영도 하면서 다양한 단위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는 아직도 계속 공부해가는 과정 속에 있어요. 뭔가 하나를 완수함에 있어서 또 다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생기진 않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고요. 너는 어떤 위치인가? 질문 받는 저의 위치성이 조금은 흥미롭다고도 생각하게 되어요. 어떤 면에서는 기존 판을 깨는 것이기도 할 테니까요. 회색지대는 아닌데, 어쨌든 다양한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들어볼 수 있는 장도 되고요. 서점을 운영하는 면에서도 그런 것이 가능하기도 했어요. "
사진 : 녹색평론 읽기 모임
사진 : 노동운동 학습 모임
- 최근에 읽은 소설에서 ‘소설가는 끝없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세상이 답하는 무수한 소리를 듣는 청자이다. 그리고 그걸 다시 글로 풀어쓰면서 화자가 된다’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슬기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활동가도 그런 존재이겠구나, 싶어요.
"음, 그거 너무 좋네요. 서울이 아닌 경주에서 살아보면서 몰랐던 나의 원함이나 질문들을 계속 발견하기도 해요. 막연히 불안했던 서울에서의 삶과 달리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뚜렷해지기도 하고. 경주 와서 다른 삶의 형태를 그려볼 수 있고, 풀어나갈 수 있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변경됐어요. 그런 걸 여전히 하나하나 발견되고 있는 과정이에요. 또 제가 원도심에 관심이 많단 말이에요. 여기서 서점도 하면서 포괄적으로 이 안에 사람들, 고양이들까지 관심을 갖게 되고. 뭔가 이런 것들을 끌어 모아서 뭔가를 하고 싶단 마음이에요. 이 지역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같이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작업하고 싶다 그런."
-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은 슬기님 (웃음). 책에서 너른 벽에 대한 개념을 만나고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 생각하여 책방 공간을 열게 되었어요. 지금 슬기님이 생각하는 너른벽의 가치? 너른벽은 어떤 공간이길 바라나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발을 들일 수 있게, 쉽게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그냥 누구나 편하게 와서 시간을 보내고 그러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