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반, 비장애인 반. 그런 세상을 꿈꿔요.”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 박연지
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중심이 되어 자기권리를 옹호하고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을 뜻한다. 나는 피플퍼스트 운동의 지지자이자 영상 기록자로서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 머무르고 있다. 피플퍼스트성북센터 동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어느덧 2년 반을 넘겼지만, 나는 동료들에 대해 모르는 게 여전히 많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슬며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마침 박연지 활동가가 나의 인터뷰 제안에 응해주었고,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발달장애인 동료들에게서 받는 ‘힘’
Q.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서 하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 저는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일하고 있어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동료상담을 하고, 강의를 하고, 자조모임도 하고 있어요. 또 집회나 시위, 기자회견에서 발달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발언하기도 해요.
Q. 피플퍼스트 활동가로서 일한 지 1년 4개월 정도 됐잖아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기쁘고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해요.
- 첫 발언을 했을 때가 기억나요. 작년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에 제가 무대에서 ‘나의 자립’에 대해 발언을 했거든요. ‘엄마의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나왔다’ ‘난 자립해서 잘 살 거다’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 발언이 활동가로서 저의 첫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내 얘기를 끄집어내서 정리하고 그걸 사람들 앞에서 말한 게 좋았어요.
- 그때 병진이 찍은 사진도 기억나요. 4·20 행사가 열린 마로니에공원을 병진이 멀리서 찍었잖아요?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그때 장애인이 반, 비장애인이 반이었어요. 그 모습이 되게 좋더라고요. 저는 장애인이 넘치도록 많은 그런 세상을 꿈꿔요. 진짜로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 4·20 때 1박 2일 노숙농성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솔직히 말하면 ‘별로 안 하고 싶다’, ‘내가 왜 노숙을 해? 우리 집에서 자도 되는데’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평소에 자주 못 보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동료들이랑 같이 노숙농성을 한다고 하니까 약간 힘이 났어요. 그날 밤 동료들이 잠들었을 때 저는 발언문 쓰느라 너무 늦게 잠들었는데, 피곤해서 핫팩도 못 꺼내고 그냥 자버렸어요. 반소매 티에 후드 점퍼만 입고 자서 결국 감기에 걸렸죠.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눈곱도 안 떼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니까 웃기더라고요. 몸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사진 : 4. 20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행사에서 발언하는 박연지 활동가
Q. 피플퍼스트 활동 중에서 연지가 가장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요?
- 발달장애인 동료들과 무언가 활동을 할 때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동료들하고 야외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 동료들이 곁에 있으니까 나도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동료들이 없으면 되게 머뭇머뭇했을 텐데 동료들이랑 밖에 나오니까 그런 마음이 사라져요. 행진할 때도 그래요. 예전에는 ‘내가 왜 행진을 해?’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저도 당당하게 행진해요. 발달장애인 동료들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 동료들이 다 함께 행진하니까 더 힘이 나는 것 같아요.
Q. 피플퍼스트 활동을 하면서 나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이 더 있나요?
- 엄마가 저보고 ‘“너 용기가 생겼네?” “말발이 더 세졌네?”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좀 웃겼어요. 피플퍼스트 활동을 하면서 제가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비장애인들이 저를 약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는데, 이제 그런 시선들을 참지 않아요. 예를 들어, 예전에 병진이랑 걸어갈 때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할머니들이 저를 보고 “쯧쯧쯧” 혀 차는 소리를 내니까 제가 할머니들한테 화를 냈었죠. “그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제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 좋았어요.

사진 : 피플퍼스트성북센터 사무실에서.
흔들리는 순간들
Q. 활동가로 일하면서 기쁘고 뿌듯한 순간도 있지만, 반대로 힘들고 지칠 때도 있잖아요? 연지는 언제 힘들다고 느끼는 편이에요?
- 발달장애인 동료들이랑 같이 일할 때 힘이 들기도 해요. 저한테는 인간관계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동료랑 의견이 다를 때 “넌 그렇게 생각해?” “난 이렇게 생각해”라고 이야기하다 보면 심장이 쫄깃쫄깃해질 때도 있어요. 싸우게 될까 봐. 그리고 동료랑 마찰이 생길 때도 좀 힘들어요. 그래도 우리 센터에서는 동료들이랑 사이가 나빠져도 한번 부딪혀보고 불만이 뭔지, 문제가 뭔지 서로 얘기해보려고 하잖아요. 그렇게 하다 보면 사이가 다시 좋아지기도 하고. 다른 직장에서는 이런 걸 못해본 것 같아요.
Q. 저는 동료들이 문서 작성할 때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본 것 같아요. 연지도 문서를 쓰거나 발언문을 쓸 때 힘들진 않나요?
- ‘이 생각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힘들어요. 그래도 근로지원인 동료랑 이야기하면서 쓰다 보면 좀 편해지는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일하는 근로지원인 동료가 아이디어를 굉장히 많이 주거든요.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저렇게 해보면 어때요?” 이렇게 의견을 줘요. 이 동료 덕분에 내가 좀 더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동료의 열정이 너무 강할 땐 제가 오히려 버거울 때도 있지만요. (웃음)

사진 : 행진하는 박연지 활동가의 뒷모습
Q.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잖아요? 혹시 활동하면서 무언가 걱정되거나 불안함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지하철 선전전에 참여할 때 시민들한테 욕을 먹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 활동가들은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외쳐야 하는 거고. 그런데 사람들이 가끔 저한테 물어봐요. “너, 왜 시위를 해?” “그러면 안 되지 않아?”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힘들었어요. 우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해질 때, 내가 혼자라고 느껴질 때 되게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Q. 지금 피플퍼스트성북센터가 큰 위기를 겪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피플퍼스트성북센터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다른 기관들은 서울시에서 돈을 받고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 센터는 돈을 못 받고 있어요. 월급이 적어서 힘들기도 하고 조력자가 거의 없어서 위태로운 상황이기도 해요. 조력자랑 근로지원인이 많아지면 좋겠고 발달장애인 동료들도 확 늘어나면 좋겠어요. 동료들이 많이 생겨서 다른 센터들처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올해 목표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동료들도 힘을 받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활동하는 것 자체가 버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활동하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앞으로 후원자도 더 생기고, 서울시의 지원도 생겨서 우리에게 힘이 되면 좋겠어요.

사진 : 참정권 문제, 사직동주민센터에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과 자기결정권
Q. 센터 상황이 어려워졌지만, 동료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활동에 힘쓰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연지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을 써온 활동은 무엇인가요?
- 발달장애인 참정권 문제요. 작년 대통령 선거 때, 동료 지은하고 제가 사직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 죄인처럼 서 있었던 일이 있었어요. 투표소 직원이 ‘발달장애만 가지고는 투표 보조를 해줄 수 없다’ ‘이게 선관위 지침이다’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투표 보조를 거절했거든요. 그게 지은과 저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정말 화가 났었어요. 우리의 참정권이 빼앗긴 거잖아요. 그래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피플퍼스트 동료들이랑 시위도 하면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알리고 있어요. 투표 보조, 그림 투표용지, 모의 투표, 우리의 알 권리를 위한 알기 쉬운 공보물.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해요.
Q. 참정권을 포함해서 연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발달장애인의 권리는 무엇인가요?
- 저는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을 하고, 그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책임지기 싫어서 안 고르는 사람들도 많지만요. 동료들을 만날 때 동료들과의 관계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잖아요? 불편한 사람이 있어도 그 불편한 사람과 함께 어울려야 되고. 일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가끔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늘 선택을 하면 결정을 하게 되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생기니까.
- 최근에 어떤 발달장애인 동료에게 투표를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은 투표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투표하지 말라고 했대요. ‘엄마 말이 옳아, 너는 가만히 있어’라는 거잖아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우습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참정권이 사라지는 거죠. ‘너는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Q.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뭔가 선택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하지 마’, ‘하면 안 돼’라고 말하니까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내 뜻대로 무언가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예를 들어, 돈 문제를 얘기하자면, 돈 많이 쓰면 왜 안 돼요? 솔직히 돈 많이 쓰는 게 뭐 어때서? 그건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 거고, 우리 입장에선 ‘써도 돼’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물론 돈 관리가 어렵긴 해요. 그렇지만 왜 어렵겠어요? 발달장애인들이 그만큼 결정을 해보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진 : 언론 인터뷰 현장에서
비장애인 중심인 세상을 고치고 싶어요
Q. 활동가가 되고서 많은 사람을 만나왔을 것 같아요. 그동안 만났던 활동가 중에 닮고 싶은 사람이 있었나요?
- 문애린 활동가요. 저는 그렇게 멋있는 활동가는 처음 봤거든요. 예전에 어떤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문애린 활동가가 나왔어요. 말투가 세고 되게 힘이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하려는 모습이, 또 즐겁게 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고 나도 저렇게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문애린 활동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문애린 활동가도 그렇고, 이형숙 활동가도 그렇고 활동가들은 다 멋있는 것 같아요.
Q. 나중에 그런 멋진 활동가가 된다면 연지는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어요?
- 이 세상을 고치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은 전부 비장애인밖에 없는 것 같거든요. 버스를 타도 비장애인들만 보이고, 지금 여기 카페에도 다 비장애인만 있어요. 장애인들이 좀 더 나와서 활동을 하면 좋겠어요.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하나의 공동체로 모여서 같이 하는 것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비장애인 세상에서, 장애인들은 눈곱만큼도 안 보이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진 않아요. 아까 말했듯이 장애인 반, 비장애인 반 이렇게 모여서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게 제 목표예요.
Q. 장애인도 당당히 사회에 나오도록 이끌고 싶은 거죠?
- 맞아요. 다 같이 활동하는 거죠. 그게 제 목표이고, 그러기 위해서 잘 싸워야죠.
인터뷰어 : 추병진
낯선 이들과 만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고자 한다. 다수의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을 영상으로 기록해왔다.피플퍼스트 활동가들과 만든 작품으로 <시설 밖, 나로 살기>, <나의 자립 일지>, <떨리는 손_우리들의 참정권 이야기> 등이 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반, 비장애인 반. 그런 세상을 꿈꿔요.”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 박연지
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중심이 되어 자기권리를 옹호하고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을 뜻한다. 나는 피플퍼스트 운동의 지지자이자 영상 기록자로서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 머무르고 있다. 피플퍼스트성북센터 동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어느덧 2년 반을 넘겼지만, 나는 동료들에 대해 모르는 게 여전히 많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슬며시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마침 박연지 활동가가 나의 인터뷰 제안에 응해주었고,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발달장애인 동료들에게서 받는 ‘힘’
Q.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서 하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 저는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일하고 있어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동료상담을 하고, 강의를 하고, 자조모임도 하고 있어요. 또 집회나 시위, 기자회견에서 발달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발언하기도 해요.
Q. 피플퍼스트 활동가로서 일한 지 1년 4개월 정도 됐잖아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기쁘고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해요.
- 첫 발언을 했을 때가 기억나요. 작년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에 제가 무대에서 ‘나의 자립’에 대해 발언을 했거든요. ‘엄마의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나왔다’ ‘난 자립해서 잘 살 거다’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 발언이 활동가로서 저의 첫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내 얘기를 끄집어내서 정리하고 그걸 사람들 앞에서 말한 게 좋았어요.
- 그때 병진이 찍은 사진도 기억나요. 4·20 행사가 열린 마로니에공원을 병진이 멀리서 찍었잖아요?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그때 장애인이 반, 비장애인이 반이었어요. 그 모습이 되게 좋더라고요. 저는 장애인이 넘치도록 많은 그런 세상을 꿈꿔요. 진짜로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 4·20 때 1박 2일 노숙농성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솔직히 말하면 ‘별로 안 하고 싶다’, ‘내가 왜 노숙을 해? 우리 집에서 자도 되는데’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평소에 자주 못 보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동료들이랑 같이 노숙농성을 한다고 하니까 약간 힘이 났어요. 그날 밤 동료들이 잠들었을 때 저는 발언문 쓰느라 너무 늦게 잠들었는데, 피곤해서 핫팩도 못 꺼내고 그냥 자버렸어요. 반소매 티에 후드 점퍼만 입고 자서 결국 감기에 걸렸죠.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눈곱도 안 떼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니까 웃기더라고요. 몸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사진 : 4. 20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행사에서 발언하는 박연지 활동가
Q. 피플퍼스트 활동 중에서 연지가 가장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요?
- 발달장애인 동료들과 무언가 활동을 할 때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동료들하고 야외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 동료들이 곁에 있으니까 나도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동료들이 없으면 되게 머뭇머뭇했을 텐데 동료들이랑 밖에 나오니까 그런 마음이 사라져요. 행진할 때도 그래요. 예전에는 ‘내가 왜 행진을 해?’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저도 당당하게 행진해요. 발달장애인 동료들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 동료들이 다 함께 행진하니까 더 힘이 나는 것 같아요.
Q. 피플퍼스트 활동을 하면서 나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이 더 있나요?
- 엄마가 저보고 ‘“너 용기가 생겼네?” “말발이 더 세졌네?”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좀 웃겼어요. 피플퍼스트 활동을 하면서 제가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비장애인들이 저를 약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는데, 이제 그런 시선들을 참지 않아요. 예를 들어, 예전에 병진이랑 걸어갈 때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할머니들이 저를 보고 “쯧쯧쯧” 혀 차는 소리를 내니까 제가 할머니들한테 화를 냈었죠. “그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제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 좋았어요.
사진 : 피플퍼스트성북센터 사무실에서.
흔들리는 순간들
Q. 활동가로 일하면서 기쁘고 뿌듯한 순간도 있지만, 반대로 힘들고 지칠 때도 있잖아요? 연지는 언제 힘들다고 느끼는 편이에요?
- 발달장애인 동료들이랑 같이 일할 때 힘이 들기도 해요. 저한테는 인간관계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동료랑 의견이 다를 때 “넌 그렇게 생각해?” “난 이렇게 생각해”라고 이야기하다 보면 심장이 쫄깃쫄깃해질 때도 있어요. 싸우게 될까 봐. 그리고 동료랑 마찰이 생길 때도 좀 힘들어요. 그래도 우리 센터에서는 동료들이랑 사이가 나빠져도 한번 부딪혀보고 불만이 뭔지, 문제가 뭔지 서로 얘기해보려고 하잖아요. 그렇게 하다 보면 사이가 다시 좋아지기도 하고. 다른 직장에서는 이런 걸 못해본 것 같아요.
Q. 저는 동료들이 문서 작성할 때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본 것 같아요. 연지도 문서를 쓰거나 발언문을 쓸 때 힘들진 않나요?
- ‘이 생각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힘들어요. 그래도 근로지원인 동료랑 이야기하면서 쓰다 보면 좀 편해지는 것 같아요. 저랑 같이 일하는 근로지원인 동료가 아이디어를 굉장히 많이 주거든요.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저렇게 해보면 어때요?” 이렇게 의견을 줘요. 이 동료 덕분에 내가 좀 더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동료의 열정이 너무 강할 땐 제가 오히려 버거울 때도 있지만요. (웃음)
사진 : 행진하는 박연지 활동가의 뒷모습
Q.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잖아요? 혹시 활동하면서 무언가 걱정되거나 불안함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지하철 선전전에 참여할 때 시민들한테 욕을 먹기도 해요. 그런데 우리 활동가들은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외쳐야 하는 거고. 그런데 사람들이 가끔 저한테 물어봐요. “너, 왜 시위를 해?” “그러면 안 되지 않아?”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힘들었어요. 우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해질 때, 내가 혼자라고 느껴질 때 되게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Q. 지금 피플퍼스트성북센터가 큰 위기를 겪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피플퍼스트성북센터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다른 기관들은 서울시에서 돈을 받고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 센터는 돈을 못 받고 있어요. 월급이 적어서 힘들기도 하고 조력자가 거의 없어서 위태로운 상황이기도 해요. 조력자랑 근로지원인이 많아지면 좋겠고 발달장애인 동료들도 확 늘어나면 좋겠어요. 동료들이 많이 생겨서 다른 센터들처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올해 목표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동료들도 힘을 받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활동하는 것 자체가 버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활동하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앞으로 후원자도 더 생기고, 서울시의 지원도 생겨서 우리에게 힘이 되면 좋겠어요.
사진 : 참정권 문제, 사직동주민센터에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과 자기결정권
Q. 센터 상황이 어려워졌지만, 동료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활동에 힘쓰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연지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을 써온 활동은 무엇인가요?
- 발달장애인 참정권 문제요. 작년 대통령 선거 때, 동료 지은하고 제가 사직동 주민센터 투표소에서 죄인처럼 서 있었던 일이 있었어요. 투표소 직원이 ‘발달장애만 가지고는 투표 보조를 해줄 수 없다’ ‘이게 선관위 지침이다’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투표 보조를 거절했거든요. 그게 지은과 저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정말 화가 났었어요. 우리의 참정권이 빼앗긴 거잖아요. 그래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피플퍼스트 동료들이랑 시위도 하면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알리고 있어요. 투표 보조, 그림 투표용지, 모의 투표, 우리의 알 권리를 위한 알기 쉬운 공보물.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해요.
Q. 참정권을 포함해서 연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발달장애인의 권리는 무엇인가요?
- 저는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을 하고, 그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책임지기 싫어서 안 고르는 사람들도 많지만요. 동료들을 만날 때 동료들과의 관계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잖아요? 불편한 사람이 있어도 그 불편한 사람과 함께 어울려야 되고. 일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가끔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늘 선택을 하면 결정을 하게 되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생기니까.
- 최근에 어떤 발달장애인 동료에게 투표를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은 투표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투표하지 말라고 했대요. ‘엄마 말이 옳아, 너는 가만히 있어’라는 거잖아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우습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참정권이 사라지는 거죠. ‘너는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Q.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뭔가 선택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하지 마’, ‘하면 안 돼’라고 말하니까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내 뜻대로 무언가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예를 들어, 돈 문제를 얘기하자면, 돈 많이 쓰면 왜 안 돼요? 솔직히 돈 많이 쓰는 게 뭐 어때서? 그건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 거고, 우리 입장에선 ‘써도 돼’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물론 돈 관리가 어렵긴 해요. 그렇지만 왜 어렵겠어요? 발달장애인들이 그만큼 결정을 해보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진 : 언론 인터뷰 현장에서
비장애인 중심인 세상을 고치고 싶어요
Q. 활동가가 되고서 많은 사람을 만나왔을 것 같아요. 그동안 만났던 활동가 중에 닮고 싶은 사람이 있었나요?
- 문애린 활동가요. 저는 그렇게 멋있는 활동가는 처음 봤거든요. 예전에 어떤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문애린 활동가가 나왔어요. 말투가 세고 되게 힘이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하려는 모습이, 또 즐겁게 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고 나도 저렇게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문애린 활동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문애린 활동가도 그렇고, 이형숙 활동가도 그렇고 활동가들은 다 멋있는 것 같아요.
Q. 나중에 그런 멋진 활동가가 된다면 연지는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어요?
- 이 세상을 고치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은 전부 비장애인밖에 없는 것 같거든요. 버스를 타도 비장애인들만 보이고, 지금 여기 카페에도 다 비장애인만 있어요. 장애인들이 좀 더 나와서 활동을 하면 좋겠어요.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하나의 공동체로 모여서 같이 하는 것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비장애인 세상에서, 장애인들은 눈곱만큼도 안 보이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진 않아요. 아까 말했듯이 장애인 반, 비장애인 반 이렇게 모여서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게 제 목표예요.
Q. 장애인도 당당히 사회에 나오도록 이끌고 싶은 거죠?
- 맞아요. 다 같이 활동하는 거죠. 그게 제 목표이고, 그러기 위해서 잘 싸워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