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쪼는' 일보다, 사람 곁에 있는 일이 좋았다
한국와이퍼를 지나온 사람들, 정민규
(노동존중세상을 향한 우직한 걸음 뚜벅이재단 사무국장 / 한국와이퍼 분회장)
정민규는 안산의 한국와이퍼 노동자였다.
2022년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통보 이후 시작된 한국와이퍼 해고투쟁을 함께 했고, 현재는 투쟁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연대를 바탕으로 설립된 뚜벅이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글은 한국와이퍼 투쟁을 지나온 한 사람의 삶과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 기록이다.

"만약 그때 누나들이 나를 매몰차게 대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해고와 투쟁을 겪은 노동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대개 극적인 장면을 떠올리지만, 정민규 분회장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한국와이퍼는 거대한 구호보다 사람.
투쟁의 강도나 성과보다 먼저, 함께 버틴 사람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얼굴로 남아 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웃음이 귀여운 인상. 정민규 분회장의 첫 인상은 긴 시간 해고와 투쟁을 겪은 사람에게서 흔히 떠올리는 비장함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 어릴 적 꿈도 의외였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웃으며 한 말이지만, 사람들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진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인터뷰 내내 심각한 이야기와 재미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었다.
웃음 뒤에는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가난의 기억도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누구를 앞에서 밀어붙이는 사람보다 곁에서 함께 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와이퍼에 들어오기 전, 통신 관련 회사에서 일했다. 팀장을 맡아 실적을 관리하고 팀원들을 챙기는 역할을 맡았다.
실적을 채워야 했고, 실적이 부진한 거래처를 찾아가 압박도 해야 했다. 위에서는 실적을 요구하고 아래에서는 사람들을 독려해야 했다.
"나는 그런 게 안 맞았어요."
거래처 사장을 찾아가 실적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누군가를 재촉하고 관리하는 일이 점점 싫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결국 다니던 회사를 떠났다.
그러다 우연히, 안산의 한 공장으로 오게 되었고 그곳이 바로 한국와이퍼였다.

그때는 그저 돈을 벌고 싶었다. 빚도 갚아야 했고 삶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야간조 고정을 선택했다. 몇 년 동안 밤에 일하고 낮에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쉽지 않았지만 특별히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남성이 드물던 현장에서 일도 잘 배웠고 관리자 역할을 맡아보라는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불편했다.
“나보다 오래 일한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 사람들을 관리한다는 게 맞나 싶었어요.”
오히려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사람 이야기였다. 입사 당시 그의 사수였던 선배들, 함께 일을 가르쳐주고 챙겨주던 누나들.
"그때 누나들이 나를 매몰차게 대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한국와이퍼에서 그가 처음 배운 것은 생산 라인의 일이라기보다, 함께 밥먹고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공동체의 느낌이었다.
“그때, 한국와이퍼에 노조는 없었지만 이미 현장의 민주화를 배워나가는 시기였고, 그래서 파견직에 신입인 내가 현장에서 버틸 수 있도록 품을 내어준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 말은, 단순히 고마웠다는 의미 그 이상으로 들렸다.
한국와이퍼는 자동차의 와이퍼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하지만 외국투자 자본의 철수 결정으로 공장은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 중년의 여성노동자가 주를 이루던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일터를 지키기 위해 긴 싸움을 시작했다. 안산 지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도 공장에서 같이 밤을 세우며 투쟁에 함께 했다.
정민규 분회장은 그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사람들은 한국와이퍼의 투쟁을 강한 투쟁의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정민규 분회장은 투쟁을 미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긴 싸움이 사람들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더 많이 이야기했다.
“한국와이퍼 때부터, 우리가 투쟁하려고 만든 조직은 아니거든요.”
투쟁은 필요했지만 누구도 평생 싸우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필요할 때 싸우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계속 일상을 살아가야 하고, 다시 일해야 하는데…. 그의 관심은 언제나 그 지점에 있었다. 한국와이퍼는 싸움을 위한 조직이라기 보다 서로를 지키는 공동체에 가까웠다. 서로를 챙기며 함께하는 그런 관계.
그래서 한국와이퍼 투쟁 이후에도, 그는 ‘투쟁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보다 ‘사람들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지금 정민규 분회장은 뚜벅이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뚜벅이재단은 한국와이퍼 해고노동자들과 지역 연대단위들이 함께 만든 재단이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노동자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돌보고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재단 활동을 하며 그는 같이 일했던 한국와이퍼 조합원들의 해고 이후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있다. 조합원 중 특정 인물을 앞세우기보다 한국와이퍼 사람들 전체에 대한 신뢰가 인터뷰 내내 묻어났다.
요양보호사가 된 사람.
청소노동자가 된 사람.
다시 생산직으로 돌아간 사람.
조합원들은 지금 저마다 다른 현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와이퍼를 떠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지금 회사가 낯설다고 말하는 조합원들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조합원들이 이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면 문제가 해결됐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민규 분회장은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회사가 아무리 좋아도 정을 못 붙이면 오래 못 버티더라고요.“
그래서 재단은 계속 연락한다. 안부를 묻고, 계속 만나고, 같이 밥을 먹고, 다시 그 고리를 연결한다. 한국와이퍼를 관통해온 사람들, 조합원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여기 있으니까 잘 버텨라.“
그 말이 때로는 재취업 지원보다 더 큰 힘이 된다고 믿는다. 한국와이퍼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있다면, 바로 사람들과의 그런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투쟁 당시 한국와이퍼 분회장이었던 최윤미 뚜벅이재단 상임이사다.
정민규 분회장과의 인터뷰에서 최윤미 분회장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최윤미 전 분회장의 존재가 드러난다. 긴 투쟁의 시간을 함께 버텨낸 사람, 조합원들의 크고 작은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한국와이퍼 투쟁 과정에서 최윤미 분회장이 보여준 선택들, 결국 단식까지 이어졌던 시간들은 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누군가를 앞세워 싸우기보다 스스로 책임을 떠안는 모습. 조합원들을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 가장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서 지금, 뚜벅이재단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결국 사람 이야기로 돌아온다. 바로, 조합원들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

북콘서트 이야기
최근 한국와이퍼의 활동을 기록한 책이 나왔고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한국와이퍼의 투쟁은 한국와이퍼 조합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투쟁에 연대했던 지역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힘으로 지금의 뚜벅이재단을 만들수 있었다. 이번 북콘서트는 뚜벅이재단이 존재함으로 또 다른 연대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서로의 연대의 길을 돌아보는 자리로 기획했다.
함께해준 사람들, 연대단체 활동가들. 지역 시민들, 문화예술인, 이름 없이 함께해 준 수많은 후원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한국와이퍼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공장 안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공장 밖에서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밥 먹던 동료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조합원들, 곁을 지켜준 지역 사람들. 그들을 연결하는 일, 그것이 정민규 분회장이 한국와이퍼 이후에도 계속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인터뷰를 마치며,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당분간 목표는 다이어트에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툭 던지는 정민규 분회장의 대답이, 긴 싸움을 지나온 사람의 대답치고는 너무 맑아서 참 좋았다.
인터뷰어 : 송민아
안산의 노동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활동가라는 말이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그냥 세상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쪼는' 일보다, 사람 곁에 있는 일이 좋았다
한국와이퍼를 지나온 사람들, 정민규
(노동존중세상을 향한 우직한 걸음 뚜벅이재단 사무국장 / 한국와이퍼 분회장)
정민규는 안산의 한국와이퍼 노동자였다.
2022년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통보 이후 시작된 한국와이퍼 해고투쟁을 함께 했고, 현재는 투쟁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연대를 바탕으로 설립된 뚜벅이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글은 한국와이퍼 투쟁을 지나온 한 사람의 삶과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 기록이다.
"만약 그때 누나들이 나를 매몰차게 대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해고와 투쟁을 겪은 노동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대개 극적인 장면을 떠올리지만, 정민규 분회장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한국와이퍼는 거대한 구호보다 사람.
투쟁의 강도나 성과보다 먼저, 함께 버틴 사람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얼굴로 남아 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웃음이 귀여운 인상. 정민규 분회장의 첫 인상은 긴 시간 해고와 투쟁을 겪은 사람에게서 흔히 떠올리는 비장함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 어릴 적 꿈도 의외였다.
웃으며 한 말이지만, 사람들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진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인터뷰 내내 심각한 이야기와 재미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었다.
웃음 뒤에는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가난의 기억도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누구를 앞에서 밀어붙이는 사람보다 곁에서 함께 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와이퍼에 들어오기 전, 통신 관련 회사에서 일했다. 팀장을 맡아 실적을 관리하고 팀원들을 챙기는 역할을 맡았다.
실적을 채워야 했고, 실적이 부진한 거래처를 찾아가 압박도 해야 했다. 위에서는 실적을 요구하고 아래에서는 사람들을 독려해야 했다.
거래처 사장을 찾아가 실적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누군가를 재촉하고 관리하는 일이 점점 싫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결국 다니던 회사를 떠났다.
그러다 우연히, 안산의 한 공장으로 오게 되었고 그곳이 바로 한국와이퍼였다.
그때는 그저 돈을 벌고 싶었다. 빚도 갚아야 했고 삶을 다시 정리해야 했다.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야간조 고정을 선택했다. 몇 년 동안 밤에 일하고 낮에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쉽지 않았지만 특별히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젊은 남성이 드물던 현장에서 일도 잘 배웠고 관리자 역할을 맡아보라는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불편했다.
오히려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사람 이야기였다. 입사 당시 그의 사수였던 선배들, 함께 일을 가르쳐주고 챙겨주던 누나들.
한국와이퍼에서 그가 처음 배운 것은 생산 라인의 일이라기보다, 함께 밥먹고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공동체의 느낌이었다.
그 말은, 단순히 고마웠다는 의미 그 이상으로 들렸다.
한국와이퍼는 자동차의 와이퍼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하지만 외국투자 자본의 철수 결정으로 공장은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 중년의 여성노동자가 주를 이루던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일터를 지키기 위해 긴 싸움을 시작했다. 안산 지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도 공장에서 같이 밤을 세우며 투쟁에 함께 했다.
정민규 분회장은 그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사람들은 한국와이퍼의 투쟁을 강한 투쟁의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정민규 분회장은 투쟁을 미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긴 싸움이 사람들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더 많이 이야기했다.
투쟁은 필요했지만 누구도 평생 싸우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필요할 때 싸우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계속 일상을 살아가야 하고, 다시 일해야 하는데…. 그의 관심은 언제나 그 지점에 있었다. 한국와이퍼는 싸움을 위한 조직이라기 보다 서로를 지키는 공동체에 가까웠다. 서로를 챙기며 함께하는 그런 관계.
그래서 한국와이퍼 투쟁 이후에도, 그는 ‘투쟁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보다 ‘사람들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지금 정민규 분회장은 뚜벅이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뚜벅이재단은 한국와이퍼 해고노동자들과 지역 연대단위들이 함께 만든 재단이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노동자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돌보고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재단 활동을 하며 그는 같이 일했던 한국와이퍼 조합원들의 해고 이후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있다. 조합원 중 특정 인물을 앞세우기보다 한국와이퍼 사람들 전체에 대한 신뢰가 인터뷰 내내 묻어났다.
요양보호사가 된 사람.
청소노동자가 된 사람.
다시 생산직으로 돌아간 사람.
조합원들은 지금 저마다 다른 현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와이퍼를 떠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지금 회사가 낯설다고 말하는 조합원들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조합원들이 이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면 문제가 해결됐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민규 분회장은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재단은 계속 연락한다. 안부를 묻고, 계속 만나고, 같이 밥을 먹고, 다시 그 고리를 연결한다. 한국와이퍼를 관통해온 사람들, 조합원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 말이 때로는 재취업 지원보다 더 큰 힘이 된다고 믿는다. 한국와이퍼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있다면, 바로 사람들과의 그런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투쟁 당시 한국와이퍼 분회장이었던 최윤미 뚜벅이재단 상임이사다.
정민규 분회장과의 인터뷰에서 최윤미 분회장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최윤미 전 분회장의 존재가 드러난다. 긴 투쟁의 시간을 함께 버텨낸 사람, 조합원들의 크고 작은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한국와이퍼 투쟁 과정에서 최윤미 분회장이 보여준 선택들, 결국 단식까지 이어졌던 시간들은 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누군가를 앞세워 싸우기보다 스스로 책임을 떠안는 모습. 조합원들을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 가장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서 지금, 뚜벅이재단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결국 사람 이야기로 돌아온다. 바로, 조합원들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
북콘서트 이야기
최근 한국와이퍼의 활동을 기록한 책이 나왔고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한국와이퍼의 투쟁은 한국와이퍼 조합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투쟁에 연대했던 지역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힘으로 지금의 뚜벅이재단을 만들수 있었다. 이번 북콘서트는 뚜벅이재단이 존재함으로 또 다른 연대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서로의 연대의 길을 돌아보는 자리로 기획했다.
함께해준 사람들, 연대단체 활동가들. 지역 시민들, 문화예술인, 이름 없이 함께해 준 수많은 후원자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한국와이퍼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공장 안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공장 밖에서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밥 먹던 동료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조합원들, 곁을 지켜준 지역 사람들. 그들을 연결하는 일, 그것이 정민규 분회장이 한국와이퍼 이후에도 계속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인터뷰를 마치며,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툭 던지는 정민규 분회장의 대답이, 긴 싸움을 지나온 사람의 대답치고는 너무 맑아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