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의 전문가’, 당사자 활동가로 존재하기
대구여성장애인연대 활동가 김양희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차별과 배제속에서,
전문성을 가진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끌어가는 장애인단체속에서,
중증의 뇌병변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로 버텨내온 삶의 기록들.

사진 : 제30차 대구경북여성대회에서 '성평등 전진' 피켓을 든 김양희 활동가
Q. 자신을 어떤 활동가라고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나는 장애여성 당사자이자 활동가로서 대구여성장애인연대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어요. 2000년 창립된 대구여성장애인연대는 여성장애인의 인권 향상과 사회참여 확대를 목표로 활동해 왔고,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나 역시 함께 걸어왔지요. 단체의 연혁 속에는 수많은 사업과 프로그램, 상담과 교육, 권익옹호 활동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기록들 사이에는 이름 없이 현장을 지켜 온 여성장애인 당사자들의 삶과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입니다.
Q. 여성장애인운동의 영역이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인지 그 특수성에 대한 경험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돌이켜보면 대구여성장애인연대가 걸어온 길은 여성장애인이 사회의 주변인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자리매김해 온 과정이었습니다. 창립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장애인은 장애인 정책에서도, 여성 정책에서도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였어요. 장애인 운동 안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운동 안에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장애와 성별이라는 두 개의 차별이 교차하는 현실 속에서 여성장애인의 삶은 사회적으로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대구여성장애인연대는 여성장애인의 삶을 사회에 드러내고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성폭력상담소와 통합상담소를 운영하며 여성장애인에 대한 폭력 문제를 공론화했고, 교육사업을 통해 여성장애인의 권리의식을 높였으며, 직업재활과 자립생활사업을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역량강화 사업과 지역사회 자립지원사업 등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여성장애인의 새로운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지요. 나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단순히 서비스를 이용하는 참여자가 아니라 장애여성 당사자 활동가로서 현장을 함께 만들어 왔습니다.

사진 : 대구시에 장애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서명전 현장
Q. 장애운동의 당사자성이라는 건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장애를 가진 당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책이나 교육으로 배울 수 없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는 일, 병원을 이용하는 일, 취업을 준비하는 일, 지역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은 비장애인에게는 일상일 수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권리의 문제이기도 하죠. 나는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여성장애인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활동해 왔습니다. 활동가로 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여성장애인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만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도 참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려 노력했고, 교육과 자립생활 사업에서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또한 여성장애인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사회에 알리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장애여성의 빈곤 문제, 폭력 문제, 노동 문제, 이동권 문제, 문화 접근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인데요, 저는 현장에서 만난 여성장애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글로 남기면서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던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회를 바꾸는 시작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진 : 2022 여성장애인 행복더하기 프로젝트 프로그램 진행
Q. 20년 가까이 장애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같은 것이 있을까요?
저는 “너는 숨만 쉬어도 활동가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장애여성으로 살아온 삶 자체가 활동의 역사이며,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인정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운동은 단순히 집회나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어요. 차별에 맞서 살아내는 일,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 자체가 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삶을 존중해 주는 말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때로는 그 말이 당사자 활동가에게만 부여되는 보이지 않는 부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예요. 장애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장애인의 입장을 대표해야 하고, 언제나 사회적 의미를 가진 존재여야 하며, 개인의 감정보다 운동의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요구받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쉬고 싶고, 평범하게 살고 싶고, 실수도 하고 싶은데 당사자 활동가라는 이유로 더 많은 책임과 기대를 짊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활동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장애인의 삶을 대표할 수는 없고, 늘 올바른 판단만 할 수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활동가에게는 종종 완벽함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숨만 쉬어도 활동가”라는 말은 자부심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임의 표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Q.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이어져 오는 과제들도 있고, 법과 제도로 정비되어진 삶의 환경변화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활동의 과제 같은 것은 무엇일까요?
최근에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기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장애인단체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장애인 당사자가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전문성을 갖춘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조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이는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변화이기도 합니다. 복지정책과 행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며, 사업 운영과 조직 관리에는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비장애인 활동가들의 헌신과 역량 역시 장애인운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됩니다. 장애인단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과 관점이 언제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실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경험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 : 사무국에서, 김양희 활동가.
Q. 장애인단체에서 당사자 활동가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경험의 전문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경험을 사회적 언어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정책으로 연결하고, 개인의 어려움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해석하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사자성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장애인단체의 미래는 당사자성과 전문성이 함께 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 경험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좋은 활동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책을 이해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회 변화의 방향을 고민하는 역량 역시 필요합니다. 저 역시 이러한 점을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는 어떤 활동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상이 있으신가요?
앞으로의 저는 단순히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라는 위치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성장애인의 삶을 기록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며, 후배 활동가들과 경험을 나누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 남아 있는 이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고, 정책과 제도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의 지난 25년은 여성장애인의 권리를 향한 도전과 변화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역사 속에서 당사자 활동가로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한계와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활동이 나를 성장시켰고, 나 또한 이 역사 속에 작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나는 장애여성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당사자성에만 머물지 않고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활동가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여성장애인이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인정받는 사회, 장애와 성별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구여성장애인연대와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속 이야기를 부탁드려요.
언젠가 다시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숨만 쉬어도 활동가다”라고 말한다면, 이제는 그 말을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단지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을 지키고 배우며 성장해 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앞으로도 여성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으로서 들을 수 있는 말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당사자 활동가의 가치이며, 앞으로도 내가 지켜가고 싶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 갓바위 등반
인터뷰어 : 임수정
양희 활동가가 몸담고 청춘을 바쳐 활동해온 대구여성장애인연대에 6년전부터 합류하여, 문제적 발언 ‘너는 숨만 쉬어도 활동가다’라는 말을 한 동료 활동가 임수정입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경험의 전문가’, 당사자 활동가로 존재하기
대구여성장애인연대 활동가 김양희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차별과 배제속에서,
전문성을 가진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끌어가는 장애인단체속에서,
중증의 뇌병변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로 버텨내온 삶의 기록들.
사진 : 제30차 대구경북여성대회에서 '성평등 전진' 피켓을 든 김양희 활동가
Q. 자신을 어떤 활동가라고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나는 장애여성 당사자이자 활동가로서 대구여성장애인연대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어요. 2000년 창립된 대구여성장애인연대는 여성장애인의 인권 향상과 사회참여 확대를 목표로 활동해 왔고,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서 나 역시 함께 걸어왔지요. 단체의 연혁 속에는 수많은 사업과 프로그램, 상담과 교육, 권익옹호 활동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기록들 사이에는 이름 없이 현장을 지켜 온 여성장애인 당사자들의 삶과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입니다.
Q. 여성장애인운동의 영역이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인지 그 특수성에 대한 경험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돌이켜보면 대구여성장애인연대가 걸어온 길은 여성장애인이 사회의 주변인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자리매김해 온 과정이었습니다. 창립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장애인은 장애인 정책에서도, 여성 정책에서도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였어요. 장애인 운동 안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운동 안에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장애와 성별이라는 두 개의 차별이 교차하는 현실 속에서 여성장애인의 삶은 사회적으로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대구여성장애인연대는 여성장애인의 삶을 사회에 드러내고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성폭력상담소와 통합상담소를 운영하며 여성장애인에 대한 폭력 문제를 공론화했고, 교육사업을 통해 여성장애인의 권리의식을 높였으며, 직업재활과 자립생활사업을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역량강화 사업과 지역사회 자립지원사업 등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여성장애인의 새로운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지요. 나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단순히 서비스를 이용하는 참여자가 아니라 장애여성 당사자 활동가로서 현장을 함께 만들어 왔습니다.
사진 : 대구시에 장애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서명전 현장
Q. 장애운동의 당사자성이라는 건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장애를 가진 당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책이나 교육으로 배울 수 없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는 일, 병원을 이용하는 일, 취업을 준비하는 일, 지역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은 비장애인에게는 일상일 수 있지만 장애인에게는 권리의 문제이기도 하죠. 나는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여성장애인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활동해 왔습니다. 활동가로 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여성장애인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만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도 참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려 노력했고, 교육과 자립생활 사업에서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또한 여성장애인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사회에 알리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장애여성의 빈곤 문제, 폭력 문제, 노동 문제, 이동권 문제, 문화 접근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인데요, 저는 현장에서 만난 여성장애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글로 남기면서 사회에 알려지지 않았던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회를 바꾸는 시작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진 : 2022 여성장애인 행복더하기 프로젝트 프로그램 진행
Q. 20년 가까이 장애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같은 것이 있을까요?
저는 “너는 숨만 쉬어도 활동가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장애여성으로 살아온 삶 자체가 활동의 역사이며,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인정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운동은 단순히 집회나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어요. 차별에 맞서 살아내는 일,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 자체가 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삶을 존중해 주는 말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때로는 그 말이 당사자 활동가에게만 부여되는 보이지 않는 부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예요. 장애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장애인의 입장을 대표해야 하고, 언제나 사회적 의미를 가진 존재여야 하며, 개인의 감정보다 운동의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요구받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쉬고 싶고, 평범하게 살고 싶고, 실수도 하고 싶은데 당사자 활동가라는 이유로 더 많은 책임과 기대를 짊어져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활동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장애인의 삶을 대표할 수는 없고, 늘 올바른 판단만 할 수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활동가에게는 종종 완벽함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숨만 쉬어도 활동가”라는 말은 자부심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책임의 표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Q.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이어져 오는 과제들도 있고, 법과 제도로 정비되어진 삶의 환경변화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활동의 과제 같은 것은 무엇일까요?
최근에는 또 다른 고민이 생기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장애인단체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장애인 당사자가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전문성을 갖춘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조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이는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변화이기도 합니다. 복지정책과 행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며, 사업 운영과 조직 관리에는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비장애인 활동가들의 헌신과 역량 역시 장애인운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됩니다. 장애인단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과 관점이 언제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실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경험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 : 사무국에서, 김양희 활동가.
Q. 장애인단체에서 당사자 활동가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경험의 전문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경험을 사회적 언어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정책으로 연결하고, 개인의 어려움을 사회구조의 문제로 해석하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사자성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장애인단체의 미래는 당사자성과 전문성이 함께 갈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 경험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좋은 활동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책을 이해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회 변화의 방향을 고민하는 역량 역시 필요합니다. 저 역시 이러한 점을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는 어떤 활동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상이 있으신가요?
앞으로의 저는 단순히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라는 위치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성장애인의 삶을 기록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내며, 후배 활동가들과 경험을 나누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 남아 있는 이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고, 정책과 제도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의 지난 25년은 여성장애인의 권리를 향한 도전과 변화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역사 속에서 당사자 활동가로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한계와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활동이 나를 성장시켰고, 나 또한 이 역사 속에 작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나는 장애여성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당사자성에만 머물지 않고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활동가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여성장애인이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인정받는 사회, 장애와 성별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구여성장애인연대와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속 이야기를 부탁드려요.
언젠가 다시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숨만 쉬어도 활동가다”라고 말한다면, 이제는 그 말을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단지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을 지키고 배우며 성장해 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앞으로도 여성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으로서 들을 수 있는 말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당사자 활동가의 가치이며, 앞으로도 내가 지켜가고 싶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 갓바위 등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