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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공익활동가주간]히말라야의 계란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 극단 일터 김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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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계란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극단 일터 김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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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계란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극단 일터는 일 년에 두 번 정도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여러 가지 레파토리가 있지만, 그중에 엄선하고 매년 그 내용을 검토하고 연출을 다시 짠다. 그렇게 일 년에 두 번의 극이 2주 정도 진행된다. 지난 5월 극단 일터는 <동희호태>를 공연했다. 10회의 공연을 마치고 조금 휴식을 취

한 김선관 선배를 부산 조방 앞 어느 생선구이집에서 만났다. 느슨한 만남을 선호하는 그는 그 식당의 중간 휴식시간이 끝난 직후 아무도 없는 식당의 문간에 앉아있었다. 들어서며 그다운 자리 선정이라 생각했다. 


무대에 올릴 극을 준비하고 연습하고 실제 무대가 진행되는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한다. 일시적인 알바가 되었던 연극 혹은 연출과 무관한 일이 되었던, 썩 내키지 않는 일을 제외하고는 하는 편이다. 일년에 절반 이상은 될 것 같다. 가끔 본인은 공공 지원금의 쓸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유용하게 잘 사용하여 그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면 모두에게 이익인 것 아니겠느냐는 주장이다. 특히 극단 일터의 작품들엔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슈들이 담겨있으니 너무나 당연히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김선관 선배는 이에 꽤 부정적이다. 단년도 사업에 지원을 하고 사전 공모단계에서부터 결과보고와 정산에 이르기까지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쓴다면 그것이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 것 같다. 극단 일터가 든든한 후원회원을 가진 단체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단원들에게 일시적으로라도 월급을 조금 더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 공공 지원금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조금 더 대우받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할 수 있다면, 김선관 선배가 지금껏 연극을 했던 것도, 부산에서 활동을 한 것도 모두에게 더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괜한 생각이다. 김선관 선배는 작년에 히말라야의 어느 세 봉우리에 올랐다. ‘허랑산악회’ 회장인 그는 부산의 명산 금정산을 비롯하여 곳곳의 산들을 다닌다. 히말라야에서 인적이 흔치 않은 봉우리를 오르다 만난 베이스캠프 마을의 숙박장소에서 지상에서 파는 가격의 10배에 달하는 계란과 만났다. 처음에는 “내려가서 먹으면 되지.” 싶었다고 한다. 몇 일 후에는 어차피 내려갈 것이고 당장의 먹고 싶은 마음은 잠시 참으면 그만이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곤 계란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싶어 먹었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하는 투자에 대해서 인색한 이들은 삶의 기쁨이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물론 타인을 본인보다 앞서 고려하는 삶이란 모두에게 존중받아 마땅한데, 그것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앞선다. 스스로를 챙길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을 나와 같이 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김선관 선배의 계란 한 알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말라야의 산중에서 사먹은 계란 한 알이 나를 위한 그날의 최고의 선물이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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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친척들이 나를 다르게 보게 되었지. 


김선관 선배의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였다고 한다. 동아대학교 병원에서 진행한 장례는 친척들이 들러 인사를 하는 소박하고 조용한 그런 시간을 가족들과 친척들은 예상했던 모양이다. 명절마다 다녀가는 김선관 선배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친척은 없었던 모양이다. 배우라고 하면 티비에 나오지 않으니 설명하기 힘들었을테고, 연극이나 연출은 구구절절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아질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서울이 아니라 부산이라고 하니 좀 더 부연설명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아마도 그런 까닭이었을 것이다. 정확히 설명을 하려는 이도, 들으려는 이도, 없었을지 모른다.


본인 또한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에 동의한다. 2010년 공간을 처음 열었을 때 이것을 일이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부모님께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많이 망설였다. 장사를 한다고 하기에도 활동을 한다고 하기에도 여러모로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때 공간을 여는 날 부모님을 모시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그것이 참 아쉬운 일로 남아있는데, 제대로 설명을 하기엔 너무 많은 부연 설명이 필요한 일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우리사회는 대학을 졸업하고  명확한 직업을 갖거나 취업이라는 과정을 거친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 그런 것 아닐까. 


그렇게 김선관 선배의 아버지 장례식에는 여러 동료가 모여들었다. 각자의 재주를 가진 이들이 모여서 장례식에서는 밤새도록 먹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사람은 바뀌기도 했으나 분위기는 내내 이어졌다. 그렇게 아버지는 잘 보내어 드렸다. 그리고 그 시간 내내 함께 있었던 식구들과 친척들은 김선관 선배가 사회에 나가서 신망을 얻고 동료들로부터 존중받는 사람인 것을 확인했다. 어떤 일인지는 아직도 자세히 모를 수는 있지만, 그가 허투루 살고 있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께서 가시면서 아들의 인생을 가족들에게 연결해주고 가신 것 아닐까싶다. 식구들에게는 마음 속에 든든함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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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조금 더 하면 되지. 


가끔은 불만이나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큰 산 같은 듬직함이 있는 선배이니 아무 이야기나 해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가능한 조언을 하는 사람이다. 니가 조금 더 마음을 쓰면 되지. 이런 말들이 요즘 세상에는 니가 더 손해보라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마음을 조금 더 낸 이에게 세상이 조금은 더 호의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도 최근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사회생활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사람과의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야기였다. 김선관 선배는 늘 타인의 잘못이나 타인의 행동 변화보다 나의 변화를 먼저 추구하는 사람이다. 조언도 항상 그런 방향이다. 가장 쉽고 현실적이지만, 막상 그 이야기를 듣다보면 공감을 해주는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 뾰로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며 곱씹으면 그의 말이 대부분 맞다.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나이를 들면서 좋은 것이 있다면 판단에 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원칙과 기준이 명확하고 사안이 특별한 경우가 많지 않기도 하다. 특별한 일이라고 해도 과거의 어떤 일과 유사함으로 인해 나아갈 방향이 명백해져있는 경우가 많다. 김선관 선배는 유난히 이 시간이 짧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끔은 도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명확한 인생의 기준과 원칙이 있어 본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곤 한다. 이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 김선관 선배는 카드 하나를 주었는데, 그 글귀가 “평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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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거나 혹은 없다고 생각하거나. 


처음 만났을 때 김선관 선배는 극단 일터의 대표였다. 몇 해 후 그 자리를 후배에게 넘겼는데, 그 때의 자연스러움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몇 년 했으면 다음 선수가 그 자리를 채워야 하고,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뉘앙스의 이야기였는데, 아주 추운 겨울 회관 2층의 사무실에 앉아서 바닥은 따뜻하고 코는 시렵던 그날의 장면이다. 


사람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지만, 많은 단체들에서 대표가 바뀌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하던 사람이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만들었으니 끝까지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이런 생각들로 그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 같다. 극단 일터의 대표는 몇 해 전에 김선관 선배보다 후배인 어느 배우가 맡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한겨울 일터의 사무실 바닥에 앉아서 들었는데 그렇게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그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느 단체에 속해 행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후배 녀석이 그 단체의 대표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동경하던 단체였고 그 안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 아주 기뻤다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아마도 이 단체에도 그런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와 격려를 하며 잘 해보자고 북돋았다. 그 후 7년 정도 지난 시기에 여러 경험을 훨씬 더 쌓은 그 후배가 그 기회를 맞이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결국에는 불발되고 말았다. 많은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그 녀석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의 편협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 중에 극단 일터의 자연스러움을 떠올렸던 것은 우리의 활동이 함께 한 사람들과 공유되고 결과물이 사회에 내놓은 이상 공공재로 기능한다는 주장이 그 안에 있었던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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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공공재 


김선관 선배는 아직은 예술이 공공재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인식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그것이 드러나고 현재 예술인들이 받는 대우가 그것을 상징하고 있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본인은 예술이 공공재인 것은 틀림없고, 우리나라도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김선관 선배는 그것을 위해 투쟁하거나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지만, 이를 위해 연극을 지속적으로 하고 본인이 가진 무기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이러한 변화에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활동이 공공재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흔적이 나타난다. 예술인복지재단의 탄생, 표준계약서의 등장, 활동증명을 해야하지만 산재보험, 고용보험의 혜택 등이 그것이다. 공익활동가라는 명명에서 예술인의 쓸모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여러 경험이 있다. 그런데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16년 겨울 부산 서면의 탄핵집회가 일어나는 현장에서였다. 늦가을 즈음 부터 시작한 이 집회는 매주 토요일 부산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참여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풍물을 치고 난장을 벌였다. 이 경험이 다수의 예술인에게 생기고, 모든 장면이 시민에게 드러남으로써 이후의 다양한 집회에 당연히 예술이 프로그램의 일부로 등장했다. 이후에는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서 스스로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한번도 없다. 


조금 더 풍성한 생활을 위해서는 예술은 필수이다. 생산성이 증대되고 수입이 늘어나고 국력이 강해지고, 모두 아주 좋은 기회이다. 그런데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만족은 숫자로 나타나는 그것의 배경이자 토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동네에서 벌어지는 작은 무대의 공연 하나가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다. 그 토대에 김선관 선배와 같은 예술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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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등장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청년문화기획자이자 활동가로 2010년에 시작했다. 주변에 대부분이 또래들이었고, 권위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잔뜩있었다. 일인지 놀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프로젝트들을 끝임없이 하면서 인생이 즐겁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청할 선배가 없었다는 점인데, 그 선배들이 2015년에 나타났다. 활동을 시작하고 5년만이다. 


이리저리 토론회나 행사장에서 눈인사 정도를 나누던 이가 어느날 일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고, 몇 개의 프로젝트를 거쳐 또 다른 일로 이어졌다. 그 속에 부산민예총의 금정산생명축전이 있었다. 금정산을 주무대로 벌어지는 산굿과 달빛걷기가 주요한 프로그램이고, 이야기 마당, 솟대 만들기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당시 2015년 2월에 예술감독 김선관 총연출 김인수 그리고 사무국장 김혜린으로 '삼김시대'를 열었다. 


익숙하지 않은 민예총이라는 조직에, 동네에서의 분위기와는 달리 진지하고 엄숙함에 약간 쫄았다. 매주 이어지는 회의와 어디선가 자꾸 나타나는 자원봉사에 가까운 일꾼들은 이 축제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느슨한 연대체로서의 축제 구성원들은 아무런 대꾸 없이 참여했고 자꾸 불어났다. 그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는 것도 의미심장해 보였는데, 이들을 대하는 두 선배의 아무렇지 않음과 분위기와 달리 전해지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축제가 가진 상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다. 도움을 청하고 조언을 구할 선배가 생겼다. 예술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생살이에 대한 모든 것에 있어 스승이 될만한 내공을 가진 이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인터뷰어 : 김혜린
2010년 생활기획공간 통에서 시작했다. 회춘 프로젝트, 제로페스티벌 등을 거치며, 뷰직페이퍼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후 다양한 시도를 하다가, 다시 활동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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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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