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인터뷰 - 활동가, 전환을 말하다]
연구는 물론이고 활동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청년운동 연구자 정보영

연구자 정보영의 탄생
Q. 스스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인터뷰 연락을 받고 어떠셨는지도 궁금해요.
네, 저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이하 ‘신문연’)이라는 연구자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 정보영이라고 하고요. 지금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2010년대 청년 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한테 왜…. (웃음) 저는 요즘 거의 대학원생의 삶을 살고 있어서, 나한테 왜 이런, 훌륭한 일을 하신 분들이 많은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현장 참여도 하면서, 그걸 가지고 연구 작업을 해왔다 보니까 연락을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Q 오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자로서 현장 참여를 시작했는데요, 어떻게 사회학 연구자가 되셨나요?
학교를 다니다 보면 '좀 멋진' 선배들이 있잖아요. 다 사회학과에서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회학이 뭐 하는 건지도 정확히는 모른 채로 사회학 복수전공을 했어요. 근데 잘 맞더라고요. 사회학 공부가 잘 맞아서 리서치 회사 같은 데를 가볼까 생각도 했었어요. 근데 이제 또 이것도 '어떻게 하다 보니'인데, 저희 지도 교수님이 “대학원 올 생각은 생각은 혹시 없나요?” 물어보셔서 “있어요!” 라고 대답했어요. 그렇게 약간은 우연히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Q. 사회학에서 사실 다루는 분야는 되게 광범위하잖아요. 근데 그중에서 사회운동을 연구 테마로 잡으셨더라고요.
사회학을 배우다 보면, 다들 왜 이렇게 됐나를 연구하잖아요. 왜 불평등해졌나.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나. 그 원인들을 이렇게 파고 파고 들어가면 좀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하는 판단이 든달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물론 그걸 분석하는 것도 의의가 있지만, 사회운동했을 때 재미있었던 점이 무엇이냐면, 저는 약간 낙관적인 편이라 세상은 어쨌든 조금이라도 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거든요. 그런 변화에 있어서 사회 운동의 역할을 찾아내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활동가 정보영의 시작, 청년유니온
Q. 사회운동 중에서도 청년운동이라는 주제를 잡고 활동도 하시고 연구도 하셨는데 청년운동에 주목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제 대학원의 동료들은 활동을 하다가 온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항상 그런 점에서 콤플렉스라고 해야 되나, 약간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공부만 하다가, 공부가 재미있어서 대학원에 온 거니까. 그러다 보니 ‘사회운동 뭘 하지?’ 이런 걸 고민하는데, 저희 교수님이 최근 사회 운동 관련 기사들을 스크랩해서 리스트로 만들어 오는 과제로 주셨어요. 몇 개의 단체들을 거론하시면서. 근데 그때 읽었던 기사들 중에 제일 흥미롭게 봤던 게 청년유니온이었던 것 같아요.
문화적으로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느낌이 있었어 흥미로웠어요. 내가 연령상 청년이어서 청년운동을 연구해야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그들의 활동이 되게 '운동적으로' 재밌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노동운동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워낙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잖아요. 근데 거기에 소속되지 않고 ‘그냥 나의 길을 간다.’ 하는 면이라든지, 노동조합에 대해 사람들이 약간 심리적 진입 장벽으로 느끼는 부분들을 문화적으로 좀 다가가기 쉽게 한다든지. 이름부터 이제 '청년노조'가 아니고 '유니온'이잖아요.
처음에는 청년유니온의 어떤 운동들이 있었나, 어떤 전략들을 썼나 무작정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자료를 봤었는데요. 청년유니온의 최저임금 운동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면서 처음으로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게 되고, 그러면서 또 서로 알게 되고.
운동 조직은 항상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노동법, 노동인권 교육을 같이 나가보지 않을래?” “강사단을 해보지 않을래?”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일을 맡게 되었죠. 석사논문 마치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었어서, 어떻게 하다 보니까 같이 하게 됐어요. 저희 교수님도 한번 현장에 푹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시기도 했고요.
Q. 청년유니온을 연구하다가 천천히 활동에 스며들었군요. 청년유니온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어요?
청년유니온에서는 계속 반상근을 했어요. 제가 기여한 게 많지 않은데, 주로 정책 대응을 했어요. 최저임금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주휴수당이라는 게 있잖아요. 주휴수당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5시간, 14.5시간 하는 식으로 점주들이 계약을 하거든요, 쪼개기로. 월 단위 최저임금은 주휴수당이 포함된 상태로 계산이 되는데 여러 사업장에서 총 40시간을 일하더라도, 14.5시간씩 투잡·쓰리잡을 하니까 주휴수당을 받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그냥 주휴수당을 폐지하자. 근데 주휴수당만큼을 최저임금에 얹어서 몇 시간을 일하든 최저임금을 똑같이 받도록 하자. 그 대신 그 해에는 최저임금 안 올려도 양보해 줄게. 왜냐하면 명목상 최저임금이 확 올라가게 되니까.' 이런 대안을 제시했는데 당연히 받아들여지진 않았죠. 양대 노총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는 제안이었어요. 큰 사업장에 계시는 분들일수록 수당이 중요한데 그걸 없앤다고 하는 거니.
Q. 명목상 최저임금은 올라가는 거니 어떻게 보면 청년노동자들에게는 좋은 방향이었을 수 있었겠네요. 양대 노총은 반발했겠지만 청년 유니온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였네요.
그랬다고 생각해요. 풀타임 근무가 일반적인 사업장에서는 주휴수당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잘 인지하지 못할 때, 주휴수당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도 청년유니온이었거든요. 아르바이트 사업장에서도 주휴수당을 받게 된 건, 청년유니온이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그 부작용으로 이제 짧은 시간만 쪼개기 계약하게 되는 상황이었죠.
Q. 부작용이 있다고 하지만 대단한 성과인 거 같아요. 알바노조라든지 라이더유니온처럼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청년들의 조직의 어떤 시작점이었다고도, 혹은 그 청년유니온의 초창기 활동이 이후에 다른 조직들의 활동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런 것들을 박사 논문에도 잘 담고 싶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청년유니온이라는 조직이 되게 흥미로운 게, 청년 운동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유니온 운동의 시작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유니온’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거고 그다음부터는 양대 노총에 소속이 되더라도 스스로 유니온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조직들이 생겨났죠.

활동하는 연구자의 기쁨과 어려움
Q. 그럼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신문연(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활동도 함께 한 건가요? 신문연은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된 거예요?
그것도 어쩌다 보니 하게 됐는데요. 청년운동으로 논문을 쓰겠다고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녔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뭘 쓸지 정하지 않은 채로. 그때 지금 신문연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김선기 선생님이 청년과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람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저희의 겹치는 지인이 소개를 시켜주면서 연구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됐어요. 그게 2016년이었고, 그 팀이 다시 모여서 2018년에 또 청년 담론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한 번 더 하거든요. 이제 같이 뭘 해볼까, 스물스물 얘기가 나오면서 시작했죠.
Q. 신문연의 시작부터 같이 하신 거네요. 어떠셨어요? 어떤 단체든 조직이든 시작을 함께 하는 건 되게 운이 좋고 특별한 경험이잖아요.
맞아요. 처음에는 그냥 재밌게 했어요. 대부분이 저보다 조금씩 대학원을 먼저 간 친구들이었거든요. 선배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그냥 친구처럼 지내지만,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저 사람들의 모습이 제 미래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박사 과정을 간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어떻게 공부하나, 뭐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을 했죠.
Q.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도 신문연을 같이 하고, 활동가에 한발 걸치고 있지만 보영님 스스로는 자신의 본체를 연구자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석사 논문 마쳤을 때는 ‘박사 (과정은) 안 가야겠다, 공부 너무 힘든 일이구나.’ 이렇게 생각했고, 그러면서 또 활동가도 해봤는데…. 막상 활동을 하니까 뭘 해도 항상 좀 '확신 없는' 느낌이었어요. 저희 교수님은 이런 느낌을 '느낌표'와 '물음표'라고 설명을 해 주셨어요. 물음표가 많으면 연구자를 해야 하고, 느낌표가 많으면 정치를 해야 한다고요. 사회운동도 포함되는 거겠죠. 그러니까 적절한 시기에, 어떤 판단을 해서, 무언가를 조직해 나가야 되는데 저는 항상 약간 그게 좀 어려웠던 것 같고, 그래서 ‘나는 연구를 해야 되는가 보다.’ 하면서 다시 대학원에서 박사 공부를 시작했거든요.
Q. 말씀하신 느낌표와 물음표의 비유처럼 활동가와 연구자는 시선이나 태도,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간관념 같은 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거 같아요. 활동가와 연구자의 정체성 사이에서 오는 혼란이나 갈등 같은 것은 없었나요?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학문이에요. 교수님들께서도 더 분석적이고 비판적일 것을 요구하시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참여하는 운동도 때로 비판해야 하는데 그럴 때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가장 어려워요. 내가 속해 있는 사회운동을 성찰한다는 것은, 동료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석사 논문은 청년유니온의 '기여'에 관해서 쓴 거니까 '이렇게 잘했어'라는 걸 증명해 내는 작업이어서 마음이 행복했고 정말 좀 더 기분 좋게 쓸 수 있었는데, 박사 논문으로 가면 운동의 과정 전체를 성찰해 보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서 좀 어려운 것 같아요.
Q. 다르게 여쭤보자면, 활동을 하면서 ‘내가 지금 이걸 할 게 아니라, 이걸 가지고 논문을 써야 되는데’ 하는 순간들, 혹은 연구를 하면서 너무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터졌을 때 ‘내가 여기 지금 한가하게 글 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 거리에 나가서 뭐라도 해야 되는데…. ’ 이런 내적 갈등의 순간들도 있었는지 궁금해요.
후자만 있어요. 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그냥 아이디어가 있으면 적어놓고 ‘나중에 써야지.’ 했는데, 연구에 매진할 때는 운동에 시간을 많이 못 쓰는 게 좀 아쉬울 때가 있어요. 지금 청년유니온에서 프리랜서 조직화를 위한 준비에 동참하고 있는데,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활동에 전념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냥 뚫고 가볼까.’ 하는 흔들림이 있을 때가 있어요. 지금 아무래도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는 상태에서 활동을 조금씩 하다 보니, 그 갈등이 더 많은 것 같아요.
Q. 사회 운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사회 변화에 사회 운동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싸워도 세상은 지금 너무 혐오로 가득 차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모르겠고, 그런 것 같지만 저는 조금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어서 과거하고 현재를 비교하면 분명히 나아간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가능하게 했던 게 무엇인가 하면, 사회운동인 거죠. 좁게는 정책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 좀 더 크게는 정책의 기조를 바꾸는 것. 새로운 제도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정권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고. 어마어마한 가능성이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청년유니온 이전의 청년 정책을 보면, 모든 정책이 다 실업대책이었어요. '청년 고용 촉진 특별법'이라는 법이 유일하게 청년 관련된 법으로 있었는데, 그 법을 보면 청년을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거든요. 물론 청년을 연령으로 규정하는 것도 나름의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그냥 미취업 상태에 있는, 사회 문제로만 생각을 했던 거죠.
여기서 청년 운동이 등장함으로써 '청년의 문제가 단지 일자리에만 있지 않다', '삶의 각 영역에서 이행의 불가, 불안정성의 증가 등이 문제가 된다' 이런 식으로 바뀐 거죠. 아직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청년 정책이 일자리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하는 인식이 된 거예요.

'운이 좋은' 사람
Q. 대학원에 진학하고 석사논문을 쓰고, 청년유니온과 신문연 활동을 병행하고, 박사과정까지 10년의 여정을 돌아볼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아쉬움이 남는 것들, 이런 이야기가 궁금해요.
하아… 항상 더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은 있죠. 제가 정책팀장이라고 했었잖아요. 정책팀장은 각종 현안에 대한 방향 대응 방향을 결정해야 되는 직책인데, 말만 그랬어요. 저는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좀 더 주도적으로 하지 못했던 게 조금 아쉽고 부족했던 점인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가 청년유니온 활동을 했잖아요. 청년유니온이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자리에 따라가서 옆에 앉아 있어 봤어요. 그러니까 저는 어떻게 보면, 그 제도에 있어서는 거리를 두고 쓴 거잖아요. 제 논문은 "이러한 담론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최저임금의 관심도가 늘어나고 인상될 수 있었다"라고 썼는데, 그 제도가 실제로 결정되는 곳에 가서 격렬한 토론의 장을 직접 경험해봤다는 건 연구자로서 잊지 못할 경험인 것 같아요. 합의할 수 없는 사안을 두고 토론을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구나.
Q. 10년의 여정을 떠올리시면서 한숨으로 시작을 하셨는데 어떤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운이 참 좋다고 생각해요. 중앙대에 갔는데 마침 중앙대 사회학과에 그런 교수님들이 계셨고, 교수님이 자료 서치해보라고 했을 때 우연히 청년유니온을 만났고, 거기 가서도 공동체에서 굉장히 환대 받고, 활동도 재미있게 하고, 연구 아이디어도 얻고. 사회운동을 연구한다고 하고 얘기하고 다니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굉장히 환대를 많이 받아요. 사단법인 시민(시민운동지원과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민간 중간지원조직)에서도 항상 찾아주시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되게 감사해요. 저는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이렇게, 그냥, 그때그때, 순간순간,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게 다 좋은 선택이었어요. 지나고 보니까 후회되는 게 별로 없고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Q. 개인이든 단체든 10년을 살아남는 거는 그건 진짜 굉장히 축하할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운도 중요하지만 운으로만은 불가능하죠. 마지막 질문인데 5년, 10년 후 활동하는 연구자 정보영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졸업을 하고 운동을 하게 될지, 연구자의 삶을 살게 될지 아직 모르겠어요. 어쨌든 연구자로서는 청년운동의 역사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는 게 박사 논문의 목표예요.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이게 한국만의 흐름인 것 같지는 않지만 또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는 거거든요. 청년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다든지, 그런 점들을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랑 비교해 보고 싶다는 먼 미래의 계획을 가지고 있고요.
활동가로서는 최근에 청년 유니온이 프리랜서 관련한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노동시장이 점차 더 회사에 속하지 않는 개인들의 1인 노동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많은 청년들이 그 장에 진입하고 있는데, 처음에 진입했을 때의 어려움이 너무 큰 반면 제도가 없거든요. 그래서 프리랜서 운동을 하려는 거예요. 프리랜서 조직화를 꼭 해보고 싶어요. 노동조합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려면 과거에 없었던 형태의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될 수도 있는 거예요. 노조의 성격도 가지고 있고, 공제회의 성격도 가지고 있고, 커뮤니티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 어떤 복잡한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공부하는 중이지만 해보고 싶어요.
정보영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옛 NPO 지원센터가 활동가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 ‘활력향연’에서였다. 청년운동의 네트워크를 연구한다는 말에 무척 반가웠다. 내가 청년운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시민사회운동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얼마나 귀한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작년, 사단법인 시민의 ‘현장지식×좋은연구’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또 한 번 만났다. 사회운동과 연구가 만나는 지점마다 정보영 선생님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보영 선생님을 인터뷰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선 혼자서 내적 친밀감에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2026년 인터뷰 주제어가 ‘전환’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정보영 선생님의 전환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내가 ‘전환’을 단선적인 흐름으로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사회운동 연구자로만 알고 있던 내 인식이 얼마나 2차원적이었는지 반성했다. 정보영은 연구와 활동 사이를 분주하게 넘나드는 사람, 활동을 연구하고 연구자로 활동하며 전환의 경계를 새롭게 그려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보영의 전환은 두 세계를 오가는 SF 소설의 주인공처럼 무척 역동적이고 재미있어 보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공간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왔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인터뷰어 : 이용석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 평화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니 평화활동가가 되었다. 프로야구 기록지 살피기, 보드게임 하기, 라디오 듣기, 책 읽기를 좋아한다. <평화는 처음이라>, <병역거부의 질문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를 썼다.
2026 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6년에는 〈활동가, 전환을 말하다〉를 주제로 기획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공익활동가가 되는 데 정해진 경로는 없습니다. 교사였던 사람, 광장에서 처음 마이크를 잡았던 사람, 기존 활동의 궤적 위에서 변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전환'해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익활동'이 더 많은 사람의 선택지가 되길 바라며, 다채로운 전환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기획인터뷰 - 활동가, 전환을 말하다]
연구는 물론이고 활동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청년운동 연구자 정보영
연구자 정보영의 탄생
Q. 스스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인터뷰 연락을 받고 어떠셨는지도 궁금해요.
네, 저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이하 ‘신문연’)이라는 연구자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 정보영이라고 하고요. 지금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2010년대 청년 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한테 왜…. (웃음) 저는 요즘 거의 대학원생의 삶을 살고 있어서, 나한테 왜 이런, 훌륭한 일을 하신 분들이 많은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현장 참여도 하면서, 그걸 가지고 연구 작업을 해왔다 보니까 연락을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Q 오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자로서 현장 참여를 시작했는데요, 어떻게 사회학 연구자가 되셨나요?
학교를 다니다 보면 '좀 멋진' 선배들이 있잖아요. 다 사회학과에서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회학이 뭐 하는 건지도 정확히는 모른 채로 사회학 복수전공을 했어요. 근데 잘 맞더라고요. 사회학 공부가 잘 맞아서 리서치 회사 같은 데를 가볼까 생각도 했었어요. 근데 이제 또 이것도 '어떻게 하다 보니'인데, 저희 지도 교수님이 “대학원 올 생각은 생각은 혹시 없나요?” 물어보셔서 “있어요!” 라고 대답했어요. 그렇게 약간은 우연히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Q. 사회학에서 사실 다루는 분야는 되게 광범위하잖아요. 근데 그중에서 사회운동을 연구 테마로 잡으셨더라고요.
사회학을 배우다 보면, 다들 왜 이렇게 됐나를 연구하잖아요. 왜 불평등해졌나. 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나. 그 원인들을 이렇게 파고 파고 들어가면 좀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하는 판단이 든달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물론 그걸 분석하는 것도 의의가 있지만, 사회운동했을 때 재미있었던 점이 무엇이냐면, 저는 약간 낙관적인 편이라 세상은 어쨌든 조금이라도 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거든요. 그런 변화에 있어서 사회 운동의 역할을 찾아내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활동가 정보영의 시작, 청년유니온
Q. 사회운동 중에서도 청년운동이라는 주제를 잡고 활동도 하시고 연구도 하셨는데 청년운동에 주목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제 대학원의 동료들은 활동을 하다가 온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항상 그런 점에서 콤플렉스라고 해야 되나, 약간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공부만 하다가, 공부가 재미있어서 대학원에 온 거니까. 그러다 보니 ‘사회운동 뭘 하지?’ 이런 걸 고민하는데, 저희 교수님이 최근 사회 운동 관련 기사들을 스크랩해서 리스트로 만들어 오는 과제로 주셨어요. 몇 개의 단체들을 거론하시면서. 근데 그때 읽었던 기사들 중에 제일 흥미롭게 봤던 게 청년유니온이었던 것 같아요.
문화적으로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느낌이 있었어 흥미로웠어요. 내가 연령상 청년이어서 청년운동을 연구해야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그들의 활동이 되게 '운동적으로' 재밌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노동운동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워낙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잖아요. 근데 거기에 소속되지 않고 ‘그냥 나의 길을 간다.’ 하는 면이라든지, 노동조합에 대해 사람들이 약간 심리적 진입 장벽으로 느끼는 부분들을 문화적으로 좀 다가가기 쉽게 한다든지. 이름부터 이제 '청년노조'가 아니고 '유니온'이잖아요.
처음에는 청년유니온의 어떤 운동들이 있었나, 어떤 전략들을 썼나 무작정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자료를 봤었는데요. 청년유니온의 최저임금 운동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면서 처음으로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게 되고, 그러면서 또 서로 알게 되고.
운동 조직은 항상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노동법, 노동인권 교육을 같이 나가보지 않을래?” “강사단을 해보지 않을래?”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일을 맡게 되었죠. 석사논문 마치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었어서, 어떻게 하다 보니까 같이 하게 됐어요. 저희 교수님도 한번 현장에 푹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시기도 했고요.
Q. 청년유니온을 연구하다가 천천히 활동에 스며들었군요. 청년유니온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어요?
청년유니온에서는 계속 반상근을 했어요. 제가 기여한 게 많지 않은데, 주로 정책 대응을 했어요. 최저임금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주휴수당이라는 게 있잖아요. 주휴수당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5시간, 14.5시간 하는 식으로 점주들이 계약을 하거든요, 쪼개기로. 월 단위 최저임금은 주휴수당이 포함된 상태로 계산이 되는데 여러 사업장에서 총 40시간을 일하더라도, 14.5시간씩 투잡·쓰리잡을 하니까 주휴수당을 받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그냥 주휴수당을 폐지하자. 근데 주휴수당만큼을 최저임금에 얹어서 몇 시간을 일하든 최저임금을 똑같이 받도록 하자. 그 대신 그 해에는 최저임금 안 올려도 양보해 줄게. 왜냐하면 명목상 최저임금이 확 올라가게 되니까.' 이런 대안을 제시했는데 당연히 받아들여지진 않았죠. 양대 노총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는 제안이었어요. 큰 사업장에 계시는 분들일수록 수당이 중요한데 그걸 없앤다고 하는 거니.
Q. 명목상 최저임금은 올라가는 거니 어떻게 보면 청년노동자들에게는 좋은 방향이었을 수 있었겠네요. 양대 노총은 반발했겠지만 청년 유니온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였네요.
그랬다고 생각해요. 풀타임 근무가 일반적인 사업장에서는 주휴수당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잘 인지하지 못할 때, 주휴수당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도 청년유니온이었거든요. 아르바이트 사업장에서도 주휴수당을 받게 된 건, 청년유니온이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그 부작용으로 이제 짧은 시간만 쪼개기 계약하게 되는 상황이었죠.
Q. 부작용이 있다고 하지만 대단한 성과인 거 같아요. 알바노조라든지 라이더유니온처럼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청년들의 조직의 어떤 시작점이었다고도, 혹은 그 청년유니온의 초창기 활동이 이후에 다른 조직들의 활동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런 것들을 박사 논문에도 잘 담고 싶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청년유니온이라는 조직이 되게 흥미로운 게, 청년 운동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유니온 운동의 시작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유니온’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거고 그다음부터는 양대 노총에 소속이 되더라도 스스로 유니온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조직들이 생겨났죠.
활동하는 연구자의 기쁨과 어려움
Q. 그럼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신문연(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활동도 함께 한 건가요? 신문연은 어떻게 시작을 하게 된 거예요?
그것도 어쩌다 보니 하게 됐는데요. 청년운동으로 논문을 쓰겠다고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녔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뭘 쓸지 정하지 않은 채로. 그때 지금 신문연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김선기 선생님이 청년과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새로운 사람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저희의 겹치는 지인이 소개를 시켜주면서 연구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됐어요. 그게 2016년이었고, 그 팀이 다시 모여서 2018년에 또 청년 담론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한 번 더 하거든요. 이제 같이 뭘 해볼까, 스물스물 얘기가 나오면서 시작했죠.
Q. 신문연의 시작부터 같이 하신 거네요. 어떠셨어요? 어떤 단체든 조직이든 시작을 함께 하는 건 되게 운이 좋고 특별한 경험이잖아요.
맞아요. 처음에는 그냥 재밌게 했어요. 대부분이 저보다 조금씩 대학원을 먼저 간 친구들이었거든요. 선배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그냥 친구처럼 지내지만,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저 사람들의 모습이 제 미래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박사 과정을 간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어떻게 공부하나, 뭐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을 했죠.
Q.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도 신문연을 같이 하고, 활동가에 한발 걸치고 있지만 보영님 스스로는 자신의 본체를 연구자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석사 논문 마쳤을 때는 ‘박사 (과정은) 안 가야겠다, 공부 너무 힘든 일이구나.’ 이렇게 생각했고, 그러면서 또 활동가도 해봤는데…. 막상 활동을 하니까 뭘 해도 항상 좀 '확신 없는' 느낌이었어요. 저희 교수님은 이런 느낌을 '느낌표'와 '물음표'라고 설명을 해 주셨어요. 물음표가 많으면 연구자를 해야 하고, 느낌표가 많으면 정치를 해야 한다고요. 사회운동도 포함되는 거겠죠. 그러니까 적절한 시기에, 어떤 판단을 해서, 무언가를 조직해 나가야 되는데 저는 항상 약간 그게 좀 어려웠던 것 같고, 그래서 ‘나는 연구를 해야 되는가 보다.’ 하면서 다시 대학원에서 박사 공부를 시작했거든요.
Q. 말씀하신 느낌표와 물음표의 비유처럼 활동가와 연구자는 시선이나 태도,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간관념 같은 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거 같아요. 활동가와 연구자의 정체성 사이에서 오는 혼란이나 갈등 같은 것은 없었나요?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학문이에요. 교수님들께서도 더 분석적이고 비판적일 것을 요구하시고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참여하는 운동도 때로 비판해야 하는데 그럴 때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가장 어려워요. 내가 속해 있는 사회운동을 성찰한다는 것은, 동료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석사 논문은 청년유니온의 '기여'에 관해서 쓴 거니까 '이렇게 잘했어'라는 걸 증명해 내는 작업이어서 마음이 행복했고 정말 좀 더 기분 좋게 쓸 수 있었는데, 박사 논문으로 가면 운동의 과정 전체를 성찰해 보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서 좀 어려운 것 같아요.
Q. 다르게 여쭤보자면, 활동을 하면서 ‘내가 지금 이걸 할 게 아니라, 이걸 가지고 논문을 써야 되는데’ 하는 순간들, 혹은 연구를 하면서 너무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터졌을 때 ‘내가 여기 지금 한가하게 글 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 거리에 나가서 뭐라도 해야 되는데…. ’ 이런 내적 갈등의 순간들도 있었는지 궁금해요.
후자만 있어요. 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그냥 아이디어가 있으면 적어놓고 ‘나중에 써야지.’ 했는데, 연구에 매진할 때는 운동에 시간을 많이 못 쓰는 게 좀 아쉬울 때가 있어요. 지금 청년유니온에서 프리랜서 조직화를 위한 준비에 동참하고 있는데,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활동에 전념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냥 뚫고 가볼까.’ 하는 흔들림이 있을 때가 있어요. 지금 아무래도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는 상태에서 활동을 조금씩 하다 보니, 그 갈등이 더 많은 것 같아요.
Q. 사회 운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사회 변화에 사회 운동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싸워도 세상은 지금 너무 혐오로 가득 차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모르겠고, 그런 것 같지만 저는 조금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어서 과거하고 현재를 비교하면 분명히 나아간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가능하게 했던 게 무엇인가 하면, 사회운동인 거죠. 좁게는 정책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 좀 더 크게는 정책의 기조를 바꾸는 것. 새로운 제도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정권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고. 어마어마한 가능성이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청년유니온 이전의 청년 정책을 보면, 모든 정책이 다 실업대책이었어요. '청년 고용 촉진 특별법'이라는 법이 유일하게 청년 관련된 법으로 있었는데, 그 법을 보면 청년을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거든요. 물론 청년을 연령으로 규정하는 것도 나름의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그냥 미취업 상태에 있는, 사회 문제로만 생각을 했던 거죠.
여기서 청년 운동이 등장함으로써 '청년의 문제가 단지 일자리에만 있지 않다', '삶의 각 영역에서 이행의 불가, 불안정성의 증가 등이 문제가 된다' 이런 식으로 바뀐 거죠. 아직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청년 정책이 일자리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하는 인식이 된 거예요.
'운이 좋은' 사람
Q. 대학원에 진학하고 석사논문을 쓰고, 청년유니온과 신문연 활동을 병행하고, 박사과정까지 10년의 여정을 돌아볼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아쉬움이 남는 것들, 이런 이야기가 궁금해요.
하아… 항상 더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은 있죠. 제가 정책팀장이라고 했었잖아요. 정책팀장은 각종 현안에 대한 방향 대응 방향을 결정해야 되는 직책인데, 말만 그랬어요. 저는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좀 더 주도적으로 하지 못했던 게 조금 아쉽고 부족했던 점인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가 청년유니온 활동을 했잖아요. 청년유니온이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자리에 따라가서 옆에 앉아 있어 봤어요. 그러니까 저는 어떻게 보면, 그 제도에 있어서는 거리를 두고 쓴 거잖아요. 제 논문은 "이러한 담론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최저임금의 관심도가 늘어나고 인상될 수 있었다"라고 썼는데, 그 제도가 실제로 결정되는 곳에 가서 격렬한 토론의 장을 직접 경험해봤다는 건 연구자로서 잊지 못할 경험인 것 같아요. 합의할 수 없는 사안을 두고 토론을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구나.
Q. 10년의 여정을 떠올리시면서 한숨으로 시작을 하셨는데 어떤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운이 참 좋다고 생각해요. 중앙대에 갔는데 마침 중앙대 사회학과에 그런 교수님들이 계셨고, 교수님이 자료 서치해보라고 했을 때 우연히 청년유니온을 만났고, 거기 가서도 공동체에서 굉장히 환대 받고, 활동도 재미있게 하고, 연구 아이디어도 얻고. 사회운동을 연구한다고 하고 얘기하고 다니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굉장히 환대를 많이 받아요. 사단법인 시민(시민운동지원과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민간 중간지원조직)에서도 항상 찾아주시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되게 감사해요. 저는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이렇게, 그냥, 그때그때, 순간순간,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게 다 좋은 선택이었어요. 지나고 보니까 후회되는 게 별로 없고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Q. 개인이든 단체든 10년을 살아남는 거는 그건 진짜 굉장히 축하할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운도 중요하지만 운으로만은 불가능하죠. 마지막 질문인데 5년, 10년 후 활동하는 연구자 정보영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졸업을 하고 운동을 하게 될지, 연구자의 삶을 살게 될지 아직 모르겠어요. 어쨌든 연구자로서는 청년운동의 역사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는 게 박사 논문의 목표예요.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이게 한국만의 흐름인 것 같지는 않지만 또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는 거거든요. 청년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다든지, 그런 점들을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랑 비교해 보고 싶다는 먼 미래의 계획을 가지고 있고요.
활동가로서는 최근에 청년 유니온이 프리랜서 관련한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노동시장이 점차 더 회사에 속하지 않는 개인들의 1인 노동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많은 청년들이 그 장에 진입하고 있는데, 처음에 진입했을 때의 어려움이 너무 큰 반면 제도가 없거든요. 그래서 프리랜서 운동을 하려는 거예요. 프리랜서 조직화를 꼭 해보고 싶어요. 노동조합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려면 과거에 없었던 형태의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될 수도 있는 거예요. 노조의 성격도 가지고 있고, 공제회의 성격도 가지고 있고, 커뮤니티의 성격도 가지고 있는 어떤 복잡한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공부하는 중이지만 해보고 싶어요.
정보영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옛 NPO 지원센터가 활동가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 ‘활력향연’에서였다. 청년운동의 네트워크를 연구한다는 말에 무척 반가웠다. 내가 청년운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시민사회운동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얼마나 귀한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작년, 사단법인 시민의 ‘현장지식×좋은연구’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또 한 번 만났다. 사회운동과 연구가 만나는 지점마다 정보영 선생님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보영 선생님을 인터뷰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선 혼자서 내적 친밀감에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2026년 인터뷰 주제어가 ‘전환’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정보영 선생님의 전환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내가 ‘전환’을 단선적인 흐름으로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사회운동 연구자로만 알고 있던 내 인식이 얼마나 2차원적이었는지 반성했다. 정보영은 연구와 활동 사이를 분주하게 넘나드는 사람, 활동을 연구하고 연구자로 활동하며 전환의 경계를 새롭게 그려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보영의 전환은 두 세계를 오가는 SF 소설의 주인공처럼 무척 역동적이고 재미있어 보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공간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왔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