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운동이고, 삶이다. - 경기여성단체연합 이정희 활동가
이정희 사무처장은 현재 경기여성단체연합의 사무처장으로 재직 중이며, 20여 년간 여성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일선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경남여성회 사무차장으로 여성운동을 시작해, 경기여성연대 사무국장으로 10년 재직하고,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 팀장, 경기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부장 등 다양한 직책을 거치며 연대, 정책, 돌봄, 환경 분야 등 여러 방면에서 실천적 활동을 전개해왔다. 꿈많고 열정 가득했던 20대의 그녀는 ‘산동네 사람들’이라는 타이틀의 다큐멘터리로 시민영상제 장려상을 받은 바 있을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가까이, 그리고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살피는 시선의 소유자이다. 지금까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회 곳곳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향하고 건넬 수 있는 도움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활동가 역량을 점차 강화해온 그녀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쫓으며 사회적인 메시지를 기획하고 있으며, 여러 조례 제정 운동에 꾸준히 힘쓰고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녀의 근황을 물어봤다. 최근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신념, 그게 저의 시작이었어요"

Q. 어떤 분과 여행을 다녀오셨나요?
오랜 친구들과 다녀왔어요. 20여 년 전 자원봉사를 할 때 알게 된 친구들인데 한 번씩 여행도 다녀오고 이런저런 인생문제를 상담하는 소중한 친구들이죠.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마음은 참으로 푸근했어요.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들이라 더 그랬지요.
Q. 자원봉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어요?
고등학생 때 시작해서 아마도 10년이 넘게 다양한 곳에서 봉사했었어요. 엄마가 장애를 갖고 계셔서인지 장애를 지닌 분들에 대해 편견이 없었던 거 같아요. 양로원, 보육원에서 그리고 소년소녀 가장 돕기 등의 활동을 했네요. 자원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웠다고 느껴요. 양로원에 가면 ‘노인분들이 양로원에서 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육원에 가면 ‘친구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면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늘 고민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여성운동과의 운명적 만남
Q. 여성운동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생계를 꾸리기 위한 직업적 선택을 염두에 두고 대학 전공을 기계설계과로 택했어요. 그런데 그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짜인 틀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무래도 저와 맞지 않았죠. 자원봉사를 오랜 시간 하며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아왔었기에 적응이 잘 안 되었지요. 제가 원하는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어요. 결국, 사회복지로 방향을 바꿨고, 그에 따른 첫 직장이 경남여성회 부설 남산복지회관이었어요.
거기서 활동하면서 여성학을 처음 접했는데,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죠. 제 삶 곳곳에 있었던 차별을 미처 차별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한꺼번에 그 차별의 감각이 몰려왔었을 때 큰 충격이었어요. ‘내가 겪었던 차별이 구조적이었구나’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지요.
Q. 그때 어떤 감정이 드셨나요?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오빠는 청소를 안 해도 되고, 나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의 일상적 차별을 늘 겪어왔지만, 그게 차별인지 몰랐던 거죠. 알게 되니까 분노가 치밀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제 모든 신경이 차별의 촉각이 되어 정신이 바짝 들게 되었죠. 제 삶도 많이 변화했어요. 나처럼 차별받는 여성이 단 한 명이라도 없기를 바랐던 것이 저의 첫 다짐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한 시간, 활동가로서의 자각
Q. 이후의 삶도 계속 여성운동의 길이었나요?
아니에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병간호하던 시기엔 모든 걸 내려놨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기였는데요,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는 당장 생계를 꾸리는 것이 급했기에 건설회사 회계, 고시학원 상담원, 신문 배달까지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하지만 여성활동가로 몸소 부딪히며 많은 것을 해결하고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새겨진 감각은 없어지지 않았죠. 여성운동을 알고 난 이후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경기여성연대와 그때 인연을 맺게 되었죠.
“선생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인간적 접점들을 굉장히 많이 만들어오신 것 같아요. 선생님께 사람이란 무언가요?” 문득, 나는 선생님의 진심이 너무도 느껴져서 이 질문을 던졌다.
“그냥 사람이 우선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사람이니까 그저 무조건 좋아요, 아름답고요. 제가 20대 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찍었던 다큐멘터리 ‘산동네 사람들’에서도 소중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어요. 산동네에 살 수밖에 없는 그 사연, 힘겹지만 버텨내는 그 사람들의 아름답고 생생한 삶을 담고 싶었죠.”
Q. 경기여성연대에서 여성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어떤 감정이 드셨나요?
예전에 경남에서 운동하다 경기지역으로 옮겨왔는데요, 수도권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다루게 되는 일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주제영역도 훨씬 다변화되고 새로운 일의 방식도 습득해야 했어요.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기분이 들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요. 그래도 연대에서 10년 이상 꾸준히 일하면서 저 스스로 크게 성장했음을 느꼈고 다른 주제 영역에서 다른 활동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와 경기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도 업무경험을 쌓아보기도 했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 자유발언 중인 이정희 활동가
현장과 정책을 넘나들며
Q. 지금은 경기여성단체연합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계시죠?
네, 경기지역 15개 회원단체와 함께 활동하는 연합체입니다 회원단체 활동지원, 성평등 정책 대응, 대중 인식 캠페인, 아카이빙 등 늘 활동이 많지요 현재는 1995년에 베이징에서 개최된 ‘유엔 제4차 세계여성대회 이후 30주년이 된 지금 , 당시 결의된 사항이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점검하는 조례 모니터링과 성평등 인식 확대를 위한 성평등 페스타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때그때 생생한 이슈 파이팅, 입장문 기획, 대중 캠페인 진행과 대중과의 소통에서부터 정책 사업, 연대 사람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접근을 시도해요. 사실 정말 할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어요.
Q. 사무처장으로서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계신데요. 최근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모든 활동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는데요, 최근 돌아보면, 매년 진행하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라” 라는 슬로건 아래 행사를 개최한 것도 기억에 남고요. 대선 즈음에는 “성평등한 한 표로 바꾸고 싶은 세상” 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캠페인도 진행했습니다. ‘세상은 바뀝니다, 당신의 참여만큼’ 이라는 구호로 거리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활동도 계속 이어가고 있고요. 그런 일상적인 실천들이 쌓여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경기여성역사인물발굴 및 탐방로 조성인데요. 그 동안 여성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역사 속 여성인물을 발굴하는 이런 프로젝트는 여성운동에 의미 있고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Q. 너무 일이 많으신데요, 그렇게 많은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세요?
놓치는 것도 사실 많죠.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대응해야 할 이슈가 발생하고 있을 텐데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을지라도 연대하는 단체들과 함께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말 활동가로서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결국 동료들과 함께 하기에 가능해요. 저 혼자는 못할 일입니다.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위한 기자회견
활동가로 산다는 것
Q. 20년이 넘도록 꾸준히 해오신 힘은 어디에서 나는 것일까요?
결국, 사람, 그리고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에요. 같은 마음으로 같은 방향으로 함께 고생하고, 웃고, 울었던 동지들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하는 일이 ‘심장을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Q. 활동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무엇인가요?
많은 활동 들이 있지만 10년 넘게 싸운 끝에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일이에요. 경기도는 분단 이후 아직 미군기지가 많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회복과 지원을 위한 기자회견, 캠페인, 재판, 토론회까지 끊임없는 활동을 해왔는데 그 이어진 과정이 제 삶 그 자체였고, 그 결과가 바로 보람이에요.
Q. 후배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활동가의 삶이 편할 수는 없어요. 차별과 혐오에 맞서야 하고, 길거리에서 외쳐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진짜로 이 세상에 눈을 뜬 이상, 함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꼭 경험했으면 해요.

3.8세계여성의날 한국여성대회 "시대를 잇는 우리의 연대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
앞으로, 그리고 지금의 나
Q. 10년 후, 어떤 활동가가 되어 있고 싶으세요?
이 길을 잘 안내할 수 있는 중간자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으면 좋겠어요. 성평등이 제도적으로 완전히 뿌리내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요. 그날까지 흔들리지 않고 가고 싶어요.
Q. 요즘에는 성공회대에서 실천여성학도 공부하고 계시죠?
네. 지금까지는 현장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 현장을 더 잘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는 언어를 갖추고 싶어요. 학문적 이론을 배우면서, 현장의 이야기를 더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더 성장했으면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에 대한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어요. 저 같은 사람의 활동도 의미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이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희 사무처장은 오늘도 성평등이라는 긴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동료와 함께 길을 열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이 결코 혼자였던 적은 없다는 것을, 그녀의 따뜻한 말과 단단한 신념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인터뷰어 : 최은영
엄마사회학 콘텐츠 창작소' <리브스토리즈>를 운영합니다. (Live Stories = 이야기를 살다) 엄마를 포함한 여성의 다음 삶의 실천을 위한 동기부여 콘텐츠(사회학적 분석)를 만듭니다. 다양한 사회문화적 이야기가 교류될 수 있는 장을 만듭니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운동이고, 삶이다. - 경기여성단체연합 이정희 활동가
이정희 사무처장은 현재 경기여성단체연합의 사무처장으로 재직 중이며, 20여 년간 여성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일선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경남여성회 사무차장으로 여성운동을 시작해, 경기여성연대 사무국장으로 10년 재직하고,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 팀장, 경기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부장 등 다양한 직책을 거치며 연대, 정책, 돌봄, 환경 분야 등 여러 방면에서 실천적 활동을 전개해왔다. 꿈많고 열정 가득했던 20대의 그녀는 ‘산동네 사람들’이라는 타이틀의 다큐멘터리로 시민영상제 장려상을 받은 바 있을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가까이, 그리고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살피는 시선의 소유자이다. 지금까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회 곳곳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향하고 건넬 수 있는 도움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활동가 역량을 점차 강화해온 그녀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쫓으며 사회적인 메시지를 기획하고 있으며, 여러 조례 제정 운동에 꾸준히 힘쓰고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녀의 근황을 물어봤다. 최근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이 먼저라는 신념, 그게 저의 시작이었어요"
Q. 어떤 분과 여행을 다녀오셨나요?
오랜 친구들과 다녀왔어요. 20여 년 전 자원봉사를 할 때 알게 된 친구들인데 한 번씩 여행도 다녀오고 이런저런 인생문제를 상담하는 소중한 친구들이죠.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마음은 참으로 푸근했어요.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들이라 더 그랬지요.
Q. 자원봉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어요?
고등학생 때 시작해서 아마도 10년이 넘게 다양한 곳에서 봉사했었어요. 엄마가 장애를 갖고 계셔서인지 장애를 지닌 분들에 대해 편견이 없었던 거 같아요. 양로원, 보육원에서 그리고 소년소녀 가장 돕기 등의 활동을 했네요. 자원봉사를 하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웠다고 느껴요. 양로원에 가면 ‘노인분들이 양로원에서 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육원에 가면 ‘친구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면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늘 고민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여성운동과의 운명적 만남
Q. 여성운동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생계를 꾸리기 위한 직업적 선택을 염두에 두고 대학 전공을 기계설계과로 택했어요. 그런데 그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짜인 틀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무래도 저와 맞지 않았죠. 자원봉사를 오랜 시간 하며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아왔었기에 적응이 잘 안 되었지요. 제가 원하는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어요. 결국, 사회복지로 방향을 바꿨고, 그에 따른 첫 직장이 경남여성회 부설 남산복지회관이었어요.
거기서 활동하면서 여성학을 처음 접했는데,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죠. 제 삶 곳곳에 있었던 차별을 미처 차별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한꺼번에 그 차별의 감각이 몰려왔었을 때 큰 충격이었어요. ‘내가 겪었던 차별이 구조적이었구나’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지요.
Q. 그때 어떤 감정이 드셨나요?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오빠는 청소를 안 해도 되고, 나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의 일상적 차별을 늘 겪어왔지만, 그게 차별인지 몰랐던 거죠. 알게 되니까 분노가 치밀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제 모든 신경이 차별의 촉각이 되어 정신이 바짝 들게 되었죠. 제 삶도 많이 변화했어요. 나처럼 차별받는 여성이 단 한 명이라도 없기를 바랐던 것이 저의 첫 다짐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한 시간, 활동가로서의 자각
Q. 이후의 삶도 계속 여성운동의 길이었나요?
아니에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병간호하던 시기엔 모든 걸 내려놨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기였는데요,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는 당장 생계를 꾸리는 것이 급했기에 건설회사 회계, 고시학원 상담원, 신문 배달까지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하지만 여성활동가로 몸소 부딪히며 많은 것을 해결하고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새겨진 감각은 없어지지 않았죠. 여성운동을 알고 난 이후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경기여성연대와 그때 인연을 맺게 되었죠.
“선생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인간적 접점들을 굉장히 많이 만들어오신 것 같아요. 선생님께 사람이란 무언가요?” 문득, 나는 선생님의 진심이 너무도 느껴져서 이 질문을 던졌다.
“그냥 사람이 우선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사람이니까 그저 무조건 좋아요, 아름답고요. 제가 20대 때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찍었던 다큐멘터리 ‘산동네 사람들’에서도 소중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어요. 산동네에 살 수밖에 없는 그 사연, 힘겹지만 버텨내는 그 사람들의 아름답고 생생한 삶을 담고 싶었죠.”
Q. 경기여성연대에서 여성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어떤 감정이 드셨나요?
예전에 경남에서 운동하다 경기지역으로 옮겨왔는데요, 수도권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다루게 되는 일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주제영역도 훨씬 다변화되고 새로운 일의 방식도 습득해야 했어요.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기분이 들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요. 그래도 연대에서 10년 이상 꾸준히 일하면서 저 스스로 크게 성장했음을 느꼈고 다른 주제 영역에서 다른 활동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와 경기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도 업무경험을 쌓아보기도 했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 자유발언 중인 이정희 활동가
현장과 정책을 넘나들며
Q. 지금은 경기여성단체연합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계시죠?
네, 경기지역 15개 회원단체와 함께 활동하는 연합체입니다 회원단체 활동지원, 성평등 정책 대응, 대중 인식 캠페인, 아카이빙 등 늘 활동이 많지요 현재는 1995년에 베이징에서 개최된 ‘유엔 제4차 세계여성대회 이후 30주년이 된 지금 , 당시 결의된 사항이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점검하는 조례 모니터링과 성평등 인식 확대를 위한 성평등 페스타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때그때 생생한 이슈 파이팅, 입장문 기획, 대중 캠페인 진행과 대중과의 소통에서부터 정책 사업, 연대 사람 등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접근을 시도해요. 사실 정말 할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어요.
Q. 사무처장으로서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계신데요. 최근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모든 활동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는데요, 최근 돌아보면, 매년 진행하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라” 라는 슬로건 아래 행사를 개최한 것도 기억에 남고요. 대선 즈음에는 “성평등한 한 표로 바꾸고 싶은 세상” 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캠페인도 진행했습니다. ‘세상은 바뀝니다, 당신의 참여만큼’ 이라는 구호로 거리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활동도 계속 이어가고 있고요. 그런 일상적인 실천들이 쌓여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경기여성역사인물발굴 및 탐방로 조성인데요. 그 동안 여성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역사 속 여성인물을 발굴하는 이런 프로젝트는 여성운동에 의미 있고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Q. 너무 일이 많으신데요, 그렇게 많은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세요?
놓치는 것도 사실 많죠.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대응해야 할 이슈가 발생하고 있을 텐데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을지라도 연대하는 단체들과 함께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말 활동가로서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결국 동료들과 함께 하기에 가능해요. 저 혼자는 못할 일입니다.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위한 기자회견
활동가로 산다는 것
Q. 20년이 넘도록 꾸준히 해오신 힘은 어디에서 나는 것일까요?
결국, 사람, 그리고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에요. 같은 마음으로 같은 방향으로 함께 고생하고, 웃고, 울었던 동지들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하는 일이 ‘심장을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Q. 활동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무엇인가요?
많은 활동 들이 있지만 10년 넘게 싸운 끝에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일이에요. 경기도는 분단 이후 아직 미군기지가 많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회복과 지원을 위한 기자회견, 캠페인, 재판, 토론회까지 끊임없는 활동을 해왔는데 그 이어진 과정이 제 삶 그 자체였고, 그 결과가 바로 보람이에요.
Q. 후배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활동가의 삶이 편할 수는 없어요. 차별과 혐오에 맞서야 하고, 길거리에서 외쳐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진짜로 이 세상에 눈을 뜬 이상, 함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꼭 경험했으면 해요.
3.8세계여성의날 한국여성대회 "시대를 잇는 우리의 연대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
앞으로, 그리고 지금의 나
Q. 10년 후, 어떤 활동가가 되어 있고 싶으세요?
이 길을 잘 안내할 수 있는 중간자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으면 좋겠어요. 성평등이 제도적으로 완전히 뿌리내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요. 그날까지 흔들리지 않고 가고 싶어요.
Q. 요즘에는 성공회대에서 실천여성학도 공부하고 계시죠?
네. 지금까지는 현장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 현장을 더 잘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는 언어를 갖추고 싶어요. 학문적 이론을 배우면서, 현장의 이야기를 더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더 성장했으면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에 대한 소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제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어요. 저 같은 사람의 활동도 의미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이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희 사무처장은 오늘도 성평등이라는 긴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동료와 함께 길을 열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이 결코 혼자였던 적은 없다는 것을, 그녀의 따뜻한 말과 단단한 신념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