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환경강사들과 함께 새로운 거버넌스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사람,
- 마을언덕의 박혜린 활동가

“주민자치역량의 성장,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과정”
커뮤니티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고 변화시키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누구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지역주축조직’이라는 개념이 있다. 실제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주민들의 자치력을 향상하고,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의제선정, 활동주민 발굴, 교육과 실천 등의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고,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속가능성 또한 확보되어야 한다. 지역주축조직은 바로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커뮤니티의 핵심조직을 말한다. 생태, 성평등, 돌봄이라는 의제 중심으로 끝없이 주민들과의 상호 성장을 이끌어내고 있는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지역주축조직의 박혜린 활동가를 만나봤다.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마을사업팀장을 맡고 있는 박혜린이라고 합니다. 2020년부터 마을언덕에서 활동하기 시작해서 올해 6년차입니다.
Q.관심이 있던 분야가 마을 공동체나 주민 역량 강화하고 관련이 있었나요? 어떻게 마을언덕으로 합류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대안교육에 관심이 있었죠. 대안교육 안에서도 마을학교 내지는 마을 내에서의 교육, 학교랑 마을과 네트워크라든지 이런 거에 대해서 책으로 접했기 때문에 필요성을 알고 있었죠. 어쨌든 가장 먼저는 대안학교에 갔어요. 교사보다는 학생의 위치가 더 적성에 맞았는지 교사가 너무 안 맞았어요.
그래서 연구자가 될까 하고 대학원에 갔거든요. 갔다가 논문을 못 썼어요.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논문도 포기하게 됐죠. 쉬고 있다가 우연히 이 동네에 와서 학교 선배를 만나고, 그 선배가 '이런 마을 공동체 활동해보지 않을래?' 제안해주었고, 그때가 아슬아슬 39살이라 청년 일자리로 결합해서 서대문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마을공동체를 좀더 알게 되었죠.
센터가 사정상 사라지고, 여성 노숙인 지원주택과 시설에서 일하다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팀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도 옮겨보고, 그러다 쉬고 있을 때 다시 마을공동체와 연이 닿았어요.
처음엔 마을의제 조사활동 하는데, 조사 연구원 아르바이트로 결합하다가 서로 괜찮으면 쭉 갈 수도 있다고 했었고요. 그런데 조사 업무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어느날 보니 제가 조사단도 운영해야 하는구나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프로젝트 전체를 내가 다 맡고 있더라고요.
이전 복지기관에서는 꾸준히 어느정도 되는 급여를 받으니, 그게 중요하다 느꼈었던 터라 여기 와서는 이걸로 먹고살긴 힘들겠다 싶어서 계속 활동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였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복지기관 쪽은 일이 많기도 한데, 너무 서비스 제공 위주라는 느낌이 저에게는 들어서.
여긴 사람들을 조직하고, 주축 조직이라는 개념을 배우고, 뭔가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아, 말로만 듣고 이론적으로만 들었던 마을 공동체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되는 거구나. 해보니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복지기관 쪽에서 다시 일이 있다고 불렀을 때도, 거기 소장님 만나서, “여기가 좀 더 맞는 거 같다.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 게 너무 재밌다.”라고 말씀드리고 눌러앉았어요.

Q. 재미를 느꼈던 구체적인 지점이 어떤 것이었을까요?
마을언덕에 와서 ‘지역 주축 조직’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그 역할을 알게 되니까 재밌었던 것 같아요. 로컬랩을 통해 의제를 발굴하고 솔루션을 작게 하나하나 해나갈 때에는 이걸 이렇게 해서 언제 변화를 만드나 하고 생각했었다가 주민들이 환경문제를 실제 실천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카페, 골목길 자원순환거점을 만들면서 플랫폼으로 치고 나가니까, 나도 자리가 잡혔어요. 또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 거점을 운영하는 계기로 확확 바뀌는 걸 보니까 그때 재미를 제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Q. 지역주축조직은 이론적으로는 복지기관도 할 수 있고, 다양한 비영리 조직이 그 기능을 할수 있는데, 실제 현장에서 느껴본 바는 어떤가요?
이론적으로는 맞아요. 그런데 실제 몸담아본 경험으로는 복지기관에서 대상자들의 임파워먼트보다는 대상자를 서비스 받는 사람으로 보는 그 관점을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당사자 주체성, 피어상담 이런 걸 공부하고 외국 사례도 찾아봤어요. 그런데 그걸 적용하기엔 이론과 실제 조건의 갭이 너무 커요. 그리고 제가 혼자서 그걸 다 바꾸기엔 영향력도 부족했어요. 거기서 좀 많이 힘들었어요. 심지어 그런 걸 유사하게라도 실현하고 있는 곳을 가봐도, 책에서 본 것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어요.
지역주축조직은 참여자와 핵심 활동가들이 실제로 목표 설정과 수정도 계속 함께 논의하면서 하는 건데, 주축조직 역량에 따라서 방향이 너무 달라질 수밖에 없죠. 마을언덕에서는 확실히 그런 측면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었고, 실제 성과도 나타났어요. 그게 차이였어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지향하는 조직이라 해도 지역주민들의 자치적 역량을 성장시키면서 실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은 맞아요.
Q. 실제 본인이 하는 활동에 대한 효능감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나요?
대안학교 시절은 발이 땅에 없었고, 그냥 하늘 위에 떠 있었죠. 글로 배운 게 왜 안 되지? 그걸로 고민만 하고 있었던 시기였어요. 그러니 당연히 효능감이 없겠죠. 복지 쪽도 발이 완전히 땅에 닿은 건 아니었어요. 지금은 좀 다르죠. 마을언덕 와서야 조금은 땅을 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결국 내 스스로의 변화발전이 효능감을 갖는데서 중요한 조건인 것 같고, 또한 내가 한 활동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또 하나 ‘누구와 일하는가’에서도 오는 것 같아요. 복지 쪽에 있을 때, 대상자들이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의사결정 권한을 그 사람에게 주질 않아요. 마치 금치산자처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런 관점을 바꿔주고 싶지만 나도 그걸 바꿀 만큼의 영향력은 없었어요. 끌려다니다 보면 힘들고, 설득해야 하고. 진짜 말이 안 통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관점과 감수성이 맞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예전엔 누구와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보여요.
Q. 지금은 좀 땅에 발이 붙은 느낌인가요?
네. 여기 와서야 내가 땅에 발을 붙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와 로컬랩을 맡은 이사님께 많이 기댔는데 끝까지 챙겨주셨어요. 이사님 수업 끝나는 밤까지 기다렸다가 붙들고 질문하면 2~3시간씩 이야기 들어주시고 의논해 주시고 했었죠. 그때 정말 감사했어요.
지금은 효능감도 생기고, 변화도 눈으로 확인되니까 더욱 땅에 발이 붙은 느낌이죠.

Q. 환경 쪽으로 관심이 옮겨진 계기는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그냥 마을언덕 사협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 의제를 발굴하고, 새 사업영역을 발굴한 생존의 숙제처럼 느껴졌어요. 이건 해야 되는 거구나 정도로. 그런데 체력을 위해 백련산으로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진짜 풀,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길도 보이고, 감수성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이게 진짜 중요한 의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민들도 이렇게 자기 생활과 밀접한 장소에서 변화를 위한 계기를 만나겠구나 싶었고요.
그때 도시에서 환경감수성을 기른다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왔어요. 내 지역, 내 마을, 내 장소를 인지한다는 것이거든요. 그걸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단순한 환경 주제 교육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얘기할 수 있고 환경의제를 다루고 환경교육을 하는 과정은 바로 그 태도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는 걸 느꼈죠.
환경교육사 자격증을 딸 때에도 처음에는 잘 몰랐어요. 근데 공부하면서 ‘장소감’이라는 키워드가 나오는 걸 보고 점점 재밌다고 느꼈어요. 장소감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을 때 정말 좋았어요.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 개입, 변화와 환경교육이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중에 교육과정이 완전히 장소기반이라는 개념으로 재편되는 걸 보면서, 이게 생태전환교육의 키워드구나 확신하게 됐어요.
Q. 환경 의제를 통해서 지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주민들이 자치 역량을 갖출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요?
맞아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주민 자치를 이야기하려면 굉장히 이론적이거나 주장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는 게 아니라, 백련산이나 홍제천 같은 의제 하나에 집중해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는 그런 것들을 실험할 수 있을 만큼 생존 기반이 생겼다고 느껴요.
사실 삶의 태도와 연결된 문제예요. 예를 들어 생태자원을 끝까지 다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제 시스템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Q. 생태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꽃이나 나무가 한 종류만 연달아 있는 걸 이상하게 보는 감각, 큰 나무들 사이에 자잘한 풀과 다양한 식물들이 있는데 그걸 정비라는 이름으로 다 잘라내는 게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 이걸 변화시키고 이런 방식으로 관리 해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이야기가 가능한 공동체, 그게 생태공동체 아닐까요?
유네스코가 발표한 지속가능목표 얘기를 처음 들을 땐 굉장히 한가롭게 들렸는데, 사실은 현장에서 부딪히며 비전을 만들었던 것이더라구요. 지금은 그게 정말 필요하구나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변화의 토대가 되는 공동체가 정말 중요하죠.
예를 들어 에너지 전환 같은 국가 정책이 들어올 때, 그것이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이걸 어떻게 활용할까?’라는 합의를 주민들간에 만들고 직접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경험과 훈련 수준이 필요해요. 자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주민들이 그걸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환경 의제는 실제로 삶과 맞닿아 있어서 접근도 쉬워요. 실제 주민들이 설계에도 참여하고 운영방식도 함께 정해보는 실험도 필요하고요.
Q. 주민들의 자치력에 대한 훈련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나요?
자치력은 자신에게 어떠한 권한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권한이 필요한데 없으면 요청하는 연습부터 시작이라고 봐요. 우리는 그동안 그런 훈련을 안 하고 살았으니까요. 서대문구청과의 경험도 그렇고, 서울시 환경교육협의체 활동도 그렇고, 경험이 없었으면 몰랐을 텐데, 겪고 나니 어떤 것이 거버넌스고 좋은 구조라는 게 보여요.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해보라는 회의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니, 서로 정보를 내놓고 권한과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해요.
Q. 주민들과 접점이 많은데, 기억에 남는 변화 사례를 소개해줄 수 있나요?
지금 환경분과장님이 계세요. 처음 2020년에 만났을 때에 분과장님은 회의에서 별로 거의 말을 안했어요. 뭔가 의사 결정을 할 때 말이 없다가 결정하면 따라서 그저 일을 도와줄 뿐이었고 바쁘시면 빠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냥 봐도 훨씬 더 많은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인 것 같았어요. 당시 저의 많은 고민이 ‘저 분이 어떻게 하면 여기서 활개를 칠까, 적어도 본인 역량을 다 발휘할까’에 있었어요. 근데 그분이 3년 차가 되면서 제로웨이스트 실천단 활동을 하면서 갑자기 전면에 나서고 그러다가 분과장을 하고 지금은 마을환경강사도 되셨지요. 마을환경강사 안에서도 완전 핵심적인 역할을 하시고, 다른 선생님들이 뭔가 있을 때 다 이 분만 바라보는 그런 분이 되셨어요.

Q. 주민자치 역량을 키워나가는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을언덕과 같은 공동체 지원 조직이 가진 숙제는 무엇일까요?
활동가는 내가 아닌 또 누군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에요. 뉴욕처럼 가로수 모니터링 같은 자원봉사 체계를 만들고, 교육받고 기록 남기고, 그렇게 시민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큰 마음 먹지 않아도 가족 단위로 한 번 가서 참여할 수 있는 정도로요.
이런 대중적인 참여 풀을 만들면서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해요. 우리가 정말 필요한 일을 하려면 지금보다 명확한 방향, 그리고 실질적인 동력이 필요해요.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식 사업을 줄이고 활동식으로 사업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어요. 그냥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걸 만들어야 해요.
마을언덕은 지속가능성을 위해 환경교육의 전문성도 키워야 하죠. 동시에 활동가를 재생산하는 구조도 만들어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네요.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로 재정적 자립과 활동가 재생산이 가장 큰 숙제 아닐까요. 지역 사회의 상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가는 일까지요. 단순해 보여도 이 과정에는 다양한 레이어가 있고, 그걸 쌓아가야 해요. 지금 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개입하고, 시간을 내서 그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어 : 강순영
서대문 지역을 기반으로 주민들의 힘으로 지속가능한 생태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환경교육사이자 로컬 활동가입니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을환경강사들과 함께 새로운 거버넌스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사람,
- 마을언덕의 박혜린 활동가
“주민자치역량의 성장,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과정”
커뮤니티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고 변화시키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누구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지역주축조직’이라는 개념이 있다. 실제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주민들의 자치력을 향상하고,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의제선정, 활동주민 발굴, 교육과 실천 등의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고, 이러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속가능성 또한 확보되어야 한다. 지역주축조직은 바로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커뮤니티의 핵심조직을 말한다. 생태, 성평등, 돌봄이라는 의제 중심으로 끝없이 주민들과의 상호 성장을 이끌어내고 있는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지역주축조직의 박혜린 활동가를 만나봤다.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마을사업팀장을 맡고 있는 박혜린이라고 합니다. 2020년부터 마을언덕에서 활동하기 시작해서 올해 6년차입니다.
Q.관심이 있던 분야가 마을 공동체나 주민 역량 강화하고 관련이 있었나요? 어떻게 마을언덕으로 합류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대안교육에 관심이 있었죠. 대안교육 안에서도 마을학교 내지는 마을 내에서의 교육, 학교랑 마을과 네트워크라든지 이런 거에 대해서 책으로 접했기 때문에 필요성을 알고 있었죠. 어쨌든 가장 먼저는 대안학교에 갔어요. 교사보다는 학생의 위치가 더 적성에 맞았는지 교사가 너무 안 맞았어요.
그래서 연구자가 될까 하고 대학원에 갔거든요. 갔다가 논문을 못 썼어요.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논문도 포기하게 됐죠. 쉬고 있다가 우연히 이 동네에 와서 학교 선배를 만나고, 그 선배가 '이런 마을 공동체 활동해보지 않을래?' 제안해주었고, 그때가 아슬아슬 39살이라 청년 일자리로 결합해서 서대문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마을공동체를 좀더 알게 되었죠.
센터가 사정상 사라지고, 여성 노숙인 지원주택과 시설에서 일하다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팀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도 옮겨보고, 그러다 쉬고 있을 때 다시 마을공동체와 연이 닿았어요.
처음엔 마을의제 조사활동 하는데, 조사 연구원 아르바이트로 결합하다가 서로 괜찮으면 쭉 갈 수도 있다고 했었고요. 그런데 조사 업무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어느날 보니 제가 조사단도 운영해야 하는구나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프로젝트 전체를 내가 다 맡고 있더라고요.
이전 복지기관에서는 꾸준히 어느정도 되는 급여를 받으니, 그게 중요하다 느꼈었던 터라 여기 와서는 이걸로 먹고살긴 힘들겠다 싶어서 계속 활동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였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복지기관 쪽은 일이 많기도 한데, 너무 서비스 제공 위주라는 느낌이 저에게는 들어서.
여긴 사람들을 조직하고, 주축 조직이라는 개념을 배우고, 뭔가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아, 말로만 듣고 이론적으로만 들었던 마을 공동체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되는 거구나. 해보니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복지기관 쪽에서 다시 일이 있다고 불렀을 때도, 거기 소장님 만나서, “여기가 좀 더 맞는 거 같다. 변화하는 과정을 보는 게 너무 재밌다.”라고 말씀드리고 눌러앉았어요.
Q. 재미를 느꼈던 구체적인 지점이 어떤 것이었을까요?
마을언덕에 와서 ‘지역 주축 조직’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그 역할을 알게 되니까 재밌었던 것 같아요. 로컬랩을 통해 의제를 발굴하고 솔루션을 작게 하나하나 해나갈 때에는 이걸 이렇게 해서 언제 변화를 만드나 하고 생각했었다가 주민들이 환경문제를 실제 실천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카페, 골목길 자원순환거점을 만들면서 플랫폼으로 치고 나가니까, 나도 자리가 잡혔어요. 또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 거점을 운영하는 계기로 확확 바뀌는 걸 보니까 그때 재미를 제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Q. 지역주축조직은 이론적으로는 복지기관도 할 수 있고, 다양한 비영리 조직이 그 기능을 할수 있는데, 실제 현장에서 느껴본 바는 어떤가요?
이론적으로는 맞아요. 그런데 실제 몸담아본 경험으로는 복지기관에서 대상자들의 임파워먼트보다는 대상자를 서비스 받는 사람으로 보는 그 관점을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당사자 주체성, 피어상담 이런 걸 공부하고 외국 사례도 찾아봤어요. 그런데 그걸 적용하기엔 이론과 실제 조건의 갭이 너무 커요. 그리고 제가 혼자서 그걸 다 바꾸기엔 영향력도 부족했어요. 거기서 좀 많이 힘들었어요. 심지어 그런 걸 유사하게라도 실현하고 있는 곳을 가봐도, 책에서 본 것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어요.
지역주축조직은 참여자와 핵심 활동가들이 실제로 목표 설정과 수정도 계속 함께 논의하면서 하는 건데, 주축조직 역량에 따라서 방향이 너무 달라질 수밖에 없죠. 마을언덕에서는 확실히 그런 측면에서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었고, 실제 성과도 나타났어요. 그게 차이였어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지향하는 조직이라 해도 지역주민들의 자치적 역량을 성장시키면서 실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은 맞아요.
Q. 실제 본인이 하는 활동에 대한 효능감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나요?
대안학교 시절은 발이 땅에 없었고, 그냥 하늘 위에 떠 있었죠. 글로 배운 게 왜 안 되지? 그걸로 고민만 하고 있었던 시기였어요. 그러니 당연히 효능감이 없겠죠. 복지 쪽도 발이 완전히 땅에 닿은 건 아니었어요. 지금은 좀 다르죠. 마을언덕 와서야 조금은 땅을 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결국 내 스스로의 변화발전이 효능감을 갖는데서 중요한 조건인 것 같고, 또한 내가 한 활동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또 하나 ‘누구와 일하는가’에서도 오는 것 같아요. 복지 쪽에 있을 때, 대상자들이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의사결정 권한을 그 사람에게 주질 않아요. 마치 금치산자처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런 관점을 바꿔주고 싶지만 나도 그걸 바꿀 만큼의 영향력은 없었어요. 끌려다니다 보면 힘들고, 설득해야 하고. 진짜 말이 안 통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관점과 감수성이 맞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예전엔 누구와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보여요.
Q. 지금은 좀 땅에 발이 붙은 느낌인가요?
네. 여기 와서야 내가 땅에 발을 붙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와 로컬랩을 맡은 이사님께 많이 기댔는데 끝까지 챙겨주셨어요. 이사님 수업 끝나는 밤까지 기다렸다가 붙들고 질문하면 2~3시간씩 이야기 들어주시고 의논해 주시고 했었죠. 그때 정말 감사했어요.
지금은 효능감도 생기고, 변화도 눈으로 확인되니까 더욱 땅에 발이 붙은 느낌이죠.
Q. 환경 쪽으로 관심이 옮겨진 계기는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그냥 마을언덕 사협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 의제를 발굴하고, 새 사업영역을 발굴한 생존의 숙제처럼 느껴졌어요. 이건 해야 되는 거구나 정도로. 그런데 체력을 위해 백련산으로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진짜 풀,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길도 보이고, 감수성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이게 진짜 중요한 의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민들도 이렇게 자기 생활과 밀접한 장소에서 변화를 위한 계기를 만나겠구나 싶었고요.
그때 도시에서 환경감수성을 기른다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왔어요. 내 지역, 내 마을, 내 장소를 인지한다는 것이거든요. 그걸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단순한 환경 주제 교육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얘기할 수 있고 환경의제를 다루고 환경교육을 하는 과정은 바로 그 태도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는 걸 느꼈죠.
환경교육사 자격증을 딸 때에도 처음에는 잘 몰랐어요. 근데 공부하면서 ‘장소감’이라는 키워드가 나오는 걸 보고 점점 재밌다고 느꼈어요. 장소감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을 때 정말 좋았어요.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 개입, 변화와 환경교육이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중에 교육과정이 완전히 장소기반이라는 개념으로 재편되는 걸 보면서, 이게 생태전환교육의 키워드구나 확신하게 됐어요.
Q. 환경 의제를 통해서 지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주민들이 자치 역량을 갖출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요?
맞아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주민 자치를 이야기하려면 굉장히 이론적이거나 주장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는 게 아니라, 백련산이나 홍제천 같은 의제 하나에 집중해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는 그런 것들을 실험할 수 있을 만큼 생존 기반이 생겼다고 느껴요.
사실 삶의 태도와 연결된 문제예요. 예를 들어 생태자원을 끝까지 다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제 시스템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Q. 생태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꽃이나 나무가 한 종류만 연달아 있는 걸 이상하게 보는 감각, 큰 나무들 사이에 자잘한 풀과 다양한 식물들이 있는데 그걸 정비라는 이름으로 다 잘라내는 게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 이걸 변화시키고 이런 방식으로 관리 해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이야기가 가능한 공동체, 그게 생태공동체 아닐까요?
유네스코가 발표한 지속가능목표 얘기를 처음 들을 땐 굉장히 한가롭게 들렸는데, 사실은 현장에서 부딪히며 비전을 만들었던 것이더라구요. 지금은 그게 정말 필요하구나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변화의 토대가 되는 공동체가 정말 중요하죠.
예를 들어 에너지 전환 같은 국가 정책이 들어올 때, 그것이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이걸 어떻게 활용할까?’라는 합의를 주민들간에 만들고 직접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경험과 훈련 수준이 필요해요. 자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주민들이 그걸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환경 의제는 실제로 삶과 맞닿아 있어서 접근도 쉬워요. 실제 주민들이 설계에도 참여하고 운영방식도 함께 정해보는 실험도 필요하고요.
Q. 주민들의 자치력에 대한 훈련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나요?
자치력은 자신에게 어떠한 권한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권한이 필요한데 없으면 요청하는 연습부터 시작이라고 봐요. 우리는 그동안 그런 훈련을 안 하고 살았으니까요. 서대문구청과의 경험도 그렇고, 서울시 환경교육협의체 활동도 그렇고, 경험이 없었으면 몰랐을 텐데, 겪고 나니 어떤 것이 거버넌스고 좋은 구조라는 게 보여요.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해보라는 회의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니, 서로 정보를 내놓고 권한과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해요.
Q. 주민들과 접점이 많은데, 기억에 남는 변화 사례를 소개해줄 수 있나요?
지금 환경분과장님이 계세요. 처음 2020년에 만났을 때에 분과장님은 회의에서 별로 거의 말을 안했어요. 뭔가 의사 결정을 할 때 말이 없다가 결정하면 따라서 그저 일을 도와줄 뿐이었고 바쁘시면 빠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냥 봐도 훨씬 더 많은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인 것 같았어요. 당시 저의 많은 고민이 ‘저 분이 어떻게 하면 여기서 활개를 칠까, 적어도 본인 역량을 다 발휘할까’에 있었어요. 근데 그분이 3년 차가 되면서 제로웨이스트 실천단 활동을 하면서 갑자기 전면에 나서고 그러다가 분과장을 하고 지금은 마을환경강사도 되셨지요. 마을환경강사 안에서도 완전 핵심적인 역할을 하시고, 다른 선생님들이 뭔가 있을 때 다 이 분만 바라보는 그런 분이 되셨어요.
Q. 주민자치 역량을 키워나가는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을언덕과 같은 공동체 지원 조직이 가진 숙제는 무엇일까요?
활동가는 내가 아닌 또 누군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에요. 뉴욕처럼 가로수 모니터링 같은 자원봉사 체계를 만들고, 교육받고 기록 남기고, 그렇게 시민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큰 마음 먹지 않아도 가족 단위로 한 번 가서 참여할 수 있는 정도로요.
이런 대중적인 참여 풀을 만들면서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해요. 우리가 정말 필요한 일을 하려면 지금보다 명확한 방향, 그리고 실질적인 동력이 필요해요.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식 사업을 줄이고 활동식으로 사업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어요. 그냥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걸 만들어야 해요.
마을언덕은 지속가능성을 위해 환경교육의 전문성도 키워야 하죠. 동시에 활동가를 재생산하는 구조도 만들어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네요.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로 재정적 자립과 활동가 재생산이 가장 큰 숙제 아닐까요. 지역 사회의 상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가는 일까지요. 단순해 보여도 이 과정에는 다양한 레이어가 있고, 그걸 쌓아가야 해요. 지금 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개입하고, 시간을 내서 그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