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과 밥과 바느질을 통해
사랑을 생성하고 건강을 생성하고 장소를 생성하는 사람
- 김은실 활동가
대전과 세종시, 전북 등지에서 지역 활동, 환경운동, 평화운동, 생태활동에 한 번이라도 발을 들인 적이 있거나 연대활동을 한 적이 있는 이라면 김은실 활동가를 모를 수 없다. 김은실 활동가는 현장을 뛰어다니는 활동가이기 때문이다.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농성장에, 세종보 지킴이 천막에, 논산 양촌면 확산탄 공장 반대 농성장에, 그리고 그 밖에 사람이 필요한 많은 곳들에 지치지 않고 몸을 세워두는 활동가이기 때문이다.
김은실 활동가는 밥과 반찬을 맛있고 넉넉하게 지을 줄 알고, 그 솜씨를 발휘해 모두에게 시시때때로 나누는 사람이다. 특히 활동으로 지친 동료 활동가들에게 그녀는 밥으로 힘과 사랑을 채워준다. 그녀 역시 현장에 다니며 피케팅을 하고 목청을 높이느라 힘이 들 텐데도, 다른 이들의 끼니와 영혼까지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김은실 활동가가 없다면 그녀가 품는 사람들과 투쟁의 장소는 지금의 풍경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사랑을 생성하고 건강을 생성하고 새로운 장소를 생성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을 티 내거나 생색 내는 일이 거의 없다. 그저 묵묵하게 그 자리에 머물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먹이고, 마지막엔 등을 두드려주곤 사라지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꼭 담고 싶어서, 그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부산 마덱스(해양무기박람회) 규탄 저항행동 당시 필자와 만나 인터뷰하던 모습
- 제가 보기에 은실 님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 만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스스로는 본인이 뭘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지 궁금해요.
저를 딱 규정하는 말을 하라고 한다면 그냥 ‘데모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것 같아요. 비슷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저를 ‘싸우는 사람’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요즘엔 이것이 조금 위험한 표현이라 여겨져요. 전쟁을 함의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 단어 자체를 이제는 쓰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그보다는 지키는 사람이면서, 반대하는 사람이고, 데모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게 맞겠다 싶어요.
- 지키고, 반대하는 일을 거의 일상처럼, 업처럼 하다 보니까 데모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이 길을 가게 되었을까요?
저는 신앙인이에요. 크리스천으로 지낸 지 좀 오래됐어요. 1980년에 있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사건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생각하게 한 하나의 축이라면, 교회를 다니며 그리스도인이 어떠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한 것이 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고민을 했죠.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침묵하면 안 되고, 어떤 불의한 일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 평생에 나라와 제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가장 많은 기도를 한 시기가 바로 이때였어요. 눈물로 기도하는 일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죠.광주에 살지도 않고 5.18 현장에 있지도 않았지만 그 이야기를 YWCA 활동을 하면서 듣게 됐거든요. 그것이 큰 계기가 됐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회운동하는 곳을 제 발로 찾아가고, 그 덕분에 대학 때는 5.18에 대한 대자보를 쓰는 일이 제가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됐죠. 그때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걸 저녁에 떼면 또 아침에 붙이고 하는 식으로 대자보를 열몇 장씩 갖고 다니면서 매일 붙였어요.

인터뷰 도중, 더 좋은 배경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옮겨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그러다가 그 이후에 결혼도 하고 출산, 육아 등을 하시게 됐잖아요. 운동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그런 요소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결혼을 하고 나서는 현장 활동은 좀 거리를 두면서 정당 활동 위주로 했어요. 당은 처음에는 민주노동당이었다가 정의당으로 옮기게 되었고요. 물론 따로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기도 했지만요.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소년원이나 보호시설 같은 곳에 봉사활동을 다녔죠. 아이들을 키우고 있던 시기였다 보니, 저희 아이들을 소년원이나 구금시설에 데리고 가기도 했어요.
- 그때나 지금이나 참 용기 있는 걸음을 걷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지금-여기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하는데요, 현재 집중적으로 하는 활동이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제가 가장 집중하는 일, 제게 가장 크다고 할 만한 일은 신공항 반대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4대강 관련해 세종보 투쟁에도 함께하고 있지만 결국 이 모두는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공항 건설이나 운영이 가장 큰 돈이 걸려 있는 거잖아요. 또 가장 위험한 것이고요. 너무도 막대한 규모로 자연성을 파괴하는 사업이기도 해요.

지난겨울, 국토부 앞에서 새만금신공항을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는 모습
- “공항 사업이 가장 위험하다”고 하셨는데요, 이에 대해 부연 설명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환경단체나 시민생태연구단에서 이야기하는 게 있어요. 새만금신공항 활주로를 중심으로 반경 3.7km 내에 조류 130여 종에 총 7만여 마리가 그쪽으로 날아다니거나 서식하고 있다고 말예요. 그렇게 새들이 많은 곳에 공항을 짓는다는 거잖아요. 이렇다 보니 새만금신공항의 예상 조류충돌 위험이 무안공항의 최대 610배나 돼요.
그리고 기후위기를 넘어서 이제 기후붕괴 시대라고도 하잖아요. 이런 시대에 탄소를 흡수하는 가장 뛰어난 것이 습지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는 습지가 그리 많지 않은데 서해안 쪽 갯벌이 연간 26만 톤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탄소를 흡수한다고 하는데, 그게 없어진다는 얘기거든요. 그렇게 되면 습지를 서식지나 쉼터로 삼아 살아가는 새들은 물론이고, 습지가 없어 더욱 급격히 뜨거워질 바다에서 살아가는 많은 생명들이 죽게 될 거예요.
그리고 새만금신공항 예정지 바로 옆에 군산공항이 있어요. 거기에 공항을 또 짓는다는 건 미군의 F35 전투기가 뜨기 쉽도록 활주로를 지으려는 의도가 깊이 스며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그 공항의 존재 자체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게 되고, 전쟁의 불안과 위험과 피해를 안아야 하는 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되는 거죠. 이렇게 세 가지를 ‘위험’의 핵심적인 이유로 꼽고 싶어요.
- 조류 충돌 위험, 기후붕괴 가속화, 전쟁 위험. 이 세 가지를 꼽아 말씀해주시니 새만금신공항 건설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무척 선명하게 와 닿아요. 최근에는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투쟁이 이제 전북지방환경청 앞 천막농성이라는 또 다른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이야기도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원래 천막은 국토부와 환경부가 있는 세종청사 앞에 3년 넘게 설치가 돼 있었거든요. 그걸 옮겨서 두 동의 천막을 전북환경청 앞에다 친 거예요. 국토부가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환경청에 접수했기 때문인데요. 그걸 부동의 하라는 목소리를 내는 거죠. 천막을 지키면서 피케팅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있어요.공항을 짓는 것이 지역 발전이고 지역경제 부흥이라고 하면서 도에서 집중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기업들조차 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기업들도 부담이 된다고 봐요. 생각보다 이윤이 나오지 않고, 조류 충돌 등 위험 요소가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일 거예요.
이뿐만이 아니에요. 지금 또 전북에서 올림픽까지 유치하려고 애를 쓰고 있거든요. 신공항 사업의 명분을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봐요. 우리가 2년 전에 잼버리 국제대회에서 그 망신을 당하고도 그걸 반복하려는 것만 같아서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요.
- 같은 답답함과 분노를 느껴요. 그러니 우리도 더더욱 운동을 멈출 수 없는 것이겠고요. 그 운동의 또 한 갈래인 계신 4대강 사업 관련 세종보 반대 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보 사업을 추진하고 실행한 뒤로 지금 전국의 많은 강들이 녹조 ‘곤죽’으로 가득한 썩은 강으로 변해버렸어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막혀 있던 공주보, 세종보를 한번 열어봤어요. 그랬더니 녹조가 창궐하던 강이 놀랍게도 조금씩 자연성이 회복되고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흰수마자도 돌아오고, 강가 모래밭에서 알을 낳고 사는 흰목물떼새 등 여러 새들이 돌아왔어요. 강이 흐르다 보니 많은 변화가 생긴 거죠. 그때 알게 됐죠. 보를 완전히 철거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요.
그러다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공주에는 백제문화제라는 걸 매년 하는데, 이 축제에 쓸 유등을 띄우고 배다리를 만들기 위해서 공주보를 막았거든요. 그랬더니 공주보에 다시 금세 두터운 뻘이 생기고 새들이 알을 낳을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희 활동가들이 목소리를 내려고 그쪽에다 천막을 쳤는데 시에서 천막을 뜯어내버렸어요. 우리도 가만있지 않고 몸으로 밀고 들어가 여럿이서 팔짱을 끼고 버텼는데 거기다 강물을 채우기까지 했죠. 열 몇 시간을 얼굴만 내놓고 강 속에 잠겨 있었어요. 결국 공주보를 열지는 못했어요.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세종보도 다시 가동하겠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니, 필사적으로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보를 가동하면 완전히 침수가 되어버리는 위치에다가 천막을 쳤어요. 녹색연합 등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24시간 내내 돌아가면서 천막을 지키고 있고, 그게 이제 400일이 넘었어요. 그 덕분에 세종보는 가동되지 않고 있죠. 이걸 지켜야 다른 보도 철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결국에는 모든 보가 철거되어서 강이 바다로 흐르는 상상을 해요. 정권이 바뀌었으니 조금은 기대를 해보게 되기도 하고요.
- 천막을 직접 지키기도 하시지만, 천막 지킴이들에게 밥을 해 나르시잖아요. 그 밥은 운동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해요. 여러 투쟁의 현장에 먹을거리를 만들어 나눈다는 것은 은실 님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인지 궁금해요.
제가 그 일에 아주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아요. 우리가 젊은 시절에 운동하다 보면 밥 못 먹는 동료들, 후배들이 참 많았거든요. 그래서인지 누구 입에 밥 들어가는 그게 참 행복해요. 좋아요. 밥 먹는 모습이. 그리고 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좋은 걸 보면 이걸 싸가서 다 같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그래서 주변에 저에게 식재료를 나눠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잖아요. 밥이라는 게 우리를 힘나게 하는 거예요. 영양소가 몸에도 제공되지만, 마음에도 제공되잖아요. 밥을 나누는 게 힘을 나누는 거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김은실’ 하면 도시락이나 밥을 떠올리는 것, 그게 큰 기쁨이에요. 지금까지 전국에서 같이 연대해왔던 분들 대부분이 제 밥을 드셔보셨으니까. 그분들이 고마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좋은 거죠.

버려지는 조각천을 모아, 글씨와 무늬를 구상하고 바느질로 이어 붙여 만든 다양한 광목 피켓들
- 밥뿐만 아니라 다른 재주와 열정도 있으시잖아요. 피켓도 엄청 예쁘게 만드시고, 바느질을 통해서도 엄청난 걸 계속 만들고 계시는데, 저는 이것이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예술 그 자체가 아닌가 싶거든요. 이 예술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피켓을 들 때 보통은 검정, 붉은 글씨로 된 걸 드는데,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좀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만들어서 잠깐이라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자, 우리도 즐거워보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시도해보니까 반응이 또 좋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잘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그렇게 마음과 정성이 담긴 예쁜 걸 생각하다 보니 바느질 피켓도 만들게 됐어요.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제주4.3과 관련된 코사지, 리본 등을 넉넉하게 바느질해서 만들어, 유가족이랑 대책위에 선물로 드리기도 했어요.
제가 바느질을 오래 해왔거든요. 공방도 하고 수업도 다니고 하면서. 예전에는 일반 가방이나 소품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쓸모 있는 바느질을 하고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나누는 걸 하는 작업으로 방향이 바뀐 거죠.
그리고 최근에 대전 퀴어퍼레이드가 있었는데요, 그때도 행사에 필요한 무지개 피켓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대부분 한 번 쓰고 버리게 되는 것들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제가 다 거둬왔어요. 그 깃발들을 이어붙이고 그 위에다가 바느질을 해서 새 피켓이랑 현수막을 만들 생각이에요. 거기에는 새만금신공항, 세종보에 반대하는 메시지가 새겨질 수도 있고, 전쟁 반대, 기후정의 등등의 메시지가 새겨질 수도 있겠죠.
- 그렇게 손수 만드신 피켓으로 최근에는 대전 신설 야구장인 한화생명볼파크 신구장 앞으로 피케팅도 하러 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한화의 팬들 수만 명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곳에서 한화의 무기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러 가시는 거잖아요.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지지만 한편으론 큰 용기가 필요한 일로 보여요. 어떤 계기로 그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2018년에 유성에 있는 한화 폭탄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어요. 그때 다섯 분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분 중 한 분이 저희 교회에 다니던 분의 아들이었어요. 그때 교회 목사님이 멀리 휴가를 가 있어서, 제가 부목사님과 함께 전체 장례 일정에 함께했어요. 또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했었는데, 돌아가신 분의 아이가 저희 반 학생이기도 했어요. 그 아이를 챙기면서, 또 그 아이의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여전히 교인들 중에는 한화 폭탄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슬픔이 더 깊이 연결되기도 했어요.
또 2019년에도 폭탄을 생산하는 한화 대전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3명이 돌아가셨고 6명이 크게 다쳤어요. 2003년, 2022년에는 충북 보은의 한화 공장에서 폭탄이 터져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고요.
폭발사고로 사람이 죽으면 교통사고로 죽은 것과는 또 달라요. 특히 더 처참하고 조사도 복잡하고... 그래서 재발 방지 약속이나 시민감시단 만들기 등의 약속을 하는데 사실상 그게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를 잘 못 봤어요. 그런 약속들은 그냥 임시방편이었거나 보여주기 식의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알게 됐죠.
그런 와중에 논산 확산탄 폭탄공장이 지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확산탄은 전 세계적으로 생산 중단 추세에 있는 대량살상무기예요. 이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은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고 사업에 제약을 받게 되죠. 그렇다 보니 이 공장을 한화가 아닌 KDi라는 기업이 짓는데, 이 기업 대표가 한화의 전 임원이에요. 한화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한화가 요즘 야구를 잘해요. 원래도 팬이 많았는데 계속 이기니까 더 큰 사랑을 받아요. 한화가 이 야구 뒤에 숨어서 사람 죽이는 무기를 만들고 파는 걸 그냥 지켜만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야구장 가서 대전 공장 폭발 사고, 논산 폭탄공장 사업 등을 알리고 있어요.

동료 김명이와 함께, 대전 한화볼파크 앞에서 한화의 대량살상무기 생산에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는 모습
-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 반응이 어떨지 모르니까 조금은 꺼려지거나 무서웠을 것 같기도 한데요. 실제로 지금 반응들은 어떤가요.
무섭지 않았어요.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야구장 내로 진입을 하려면 정체가 되기 마련이거든요. 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 보고 들을 수밖에 없어요. 아주 좋은 조건이죠. 건너건너 야구장 안에서의 반응을 들어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간간이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화가 이렇대, 이런 일도 있었대, 하고요. 정말 잘했다 싶었어요.
무서운 게 있었다면 사실 그건 사람들의 무관심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제일 무서운 거죠. 그런데 저의 피케팅을 본 것을 계기로 한화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사람 중에 적어도 몇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그게 정말 뜻깊은 거죠.
인터뷰어 : 희음
시 쓰기와 기록노동을 겸한다. 기후정의운동을 해왔고, 돌봄의 인식론 및 실천을 확장하는 데 관심이 많다. <김용균, 김용균들>,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를 함께 썼고,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와 그림책 <무르무르의 유령>을 펴냈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몸과 밥과 바느질을 통해
사랑을 생성하고 건강을 생성하고 장소를 생성하는 사람
- 김은실 활동가
대전과 세종시, 전북 등지에서 지역 활동, 환경운동, 평화운동, 생태활동에 한 번이라도 발을 들인 적이 있거나 연대활동을 한 적이 있는 이라면 김은실 활동가를 모를 수 없다. 김은실 활동가는 현장을 뛰어다니는 활동가이기 때문이다.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농성장에, 세종보 지킴이 천막에, 논산 양촌면 확산탄 공장 반대 농성장에, 그리고 그 밖에 사람이 필요한 많은 곳들에 지치지 않고 몸을 세워두는 활동가이기 때문이다.
김은실 활동가는 밥과 반찬을 맛있고 넉넉하게 지을 줄 알고, 그 솜씨를 발휘해 모두에게 시시때때로 나누는 사람이다. 특히 활동으로 지친 동료 활동가들에게 그녀는 밥으로 힘과 사랑을 채워준다. 그녀 역시 현장에 다니며 피케팅을 하고 목청을 높이느라 힘이 들 텐데도, 다른 이들의 끼니와 영혼까지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김은실 활동가가 없다면 그녀가 품는 사람들과 투쟁의 장소는 지금의 풍경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사랑을 생성하고 건강을 생성하고 새로운 장소를 생성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을 티 내거나 생색 내는 일이 거의 없다. 그저 묵묵하게 그 자리에 머물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먹이고, 마지막엔 등을 두드려주곤 사라지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꼭 담고 싶어서, 그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부산 마덱스(해양무기박람회) 규탄 저항행동 당시 필자와 만나 인터뷰하던 모습
- 제가 보기에 은실 님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 만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스스로는 본인이 뭘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지 궁금해요.
저를 딱 규정하는 말을 하라고 한다면 그냥 ‘데모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것 같아요. 비슷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저를 ‘싸우는 사람’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요즘엔 이것이 조금 위험한 표현이라 여겨져요. 전쟁을 함의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 단어 자체를 이제는 쓰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그보다는 지키는 사람이면서, 반대하는 사람이고, 데모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게 맞겠다 싶어요.
- 지키고, 반대하는 일을 거의 일상처럼, 업처럼 하다 보니까 데모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이 길을 가게 되었을까요?
저는 신앙인이에요. 크리스천으로 지낸 지 좀 오래됐어요. 1980년에 있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사건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생각하게 한 하나의 축이라면, 교회를 다니며 그리스도인이 어떠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한 것이 또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고민을 했죠.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침묵하면 안 되고, 어떤 불의한 일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 평생에 나라와 제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가장 많은 기도를 한 시기가 바로 이때였어요. 눈물로 기도하는 일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죠.광주에 살지도 않고 5.18 현장에 있지도 않았지만 그 이야기를 YWCA 활동을 하면서 듣게 됐거든요. 그것이 큰 계기가 됐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회운동하는 곳을 제 발로 찾아가고, 그 덕분에 대학 때는 5.18에 대한 대자보를 쓰는 일이 제가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됐죠. 그때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걸 저녁에 떼면 또 아침에 붙이고 하는 식으로 대자보를 열몇 장씩 갖고 다니면서 매일 붙였어요.
인터뷰 도중, 더 좋은 배경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옮겨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그러다가 그 이후에 결혼도 하고 출산, 육아 등을 하시게 됐잖아요. 운동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그런 요소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결혼을 하고 나서는 현장 활동은 좀 거리를 두면서 정당 활동 위주로 했어요. 당은 처음에는 민주노동당이었다가 정의당으로 옮기게 되었고요. 물론 따로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기도 했지만요.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소년원이나 보호시설 같은 곳에 봉사활동을 다녔죠. 아이들을 키우고 있던 시기였다 보니, 저희 아이들을 소년원이나 구금시설에 데리고 가기도 했어요.
- 그때나 지금이나 참 용기 있는 걸음을 걷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지금-여기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하는데요, 현재 집중적으로 하는 활동이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제가 가장 집중하는 일, 제게 가장 크다고 할 만한 일은 신공항 반대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4대강 관련해 세종보 투쟁에도 함께하고 있지만 결국 이 모두는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공항 건설이나 운영이 가장 큰 돈이 걸려 있는 거잖아요. 또 가장 위험한 것이고요. 너무도 막대한 규모로 자연성을 파괴하는 사업이기도 해요.
지난겨울, 국토부 앞에서 새만금신공항을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는 모습
- “공항 사업이 가장 위험하다”고 하셨는데요, 이에 대해 부연 설명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환경단체나 시민생태연구단에서 이야기하는 게 있어요. 새만금신공항 활주로를 중심으로 반경 3.7km 내에 조류 130여 종에 총 7만여 마리가 그쪽으로 날아다니거나 서식하고 있다고 말예요. 그렇게 새들이 많은 곳에 공항을 짓는다는 거잖아요. 이렇다 보니 새만금신공항의 예상 조류충돌 위험이 무안공항의 최대 610배나 돼요.
그리고 기후위기를 넘어서 이제 기후붕괴 시대라고도 하잖아요. 이런 시대에 탄소를 흡수하는 가장 뛰어난 것이 습지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는 습지가 그리 많지 않은데 서해안 쪽 갯벌이 연간 26만 톤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탄소를 흡수한다고 하는데, 그게 없어진다는 얘기거든요. 그렇게 되면 습지를 서식지나 쉼터로 삼아 살아가는 새들은 물론이고, 습지가 없어 더욱 급격히 뜨거워질 바다에서 살아가는 많은 생명들이 죽게 될 거예요.
그리고 새만금신공항 예정지 바로 옆에 군산공항이 있어요. 거기에 공항을 또 짓는다는 건 미군의 F35 전투기가 뜨기 쉽도록 활주로를 지으려는 의도가 깊이 스며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그 공항의 존재 자체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게 되고, 전쟁의 불안과 위험과 피해를 안아야 하는 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되는 거죠. 이렇게 세 가지를 ‘위험’의 핵심적인 이유로 꼽고 싶어요.
- 조류 충돌 위험, 기후붕괴 가속화, 전쟁 위험. 이 세 가지를 꼽아 말씀해주시니 새만금신공항 건설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무척 선명하게 와 닿아요. 최근에는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투쟁이 이제 전북지방환경청 앞 천막농성이라는 또 다른 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이야기도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원래 천막은 국토부와 환경부가 있는 세종청사 앞에 3년 넘게 설치가 돼 있었거든요. 그걸 옮겨서 두 동의 천막을 전북환경청 앞에다 친 거예요. 국토부가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환경청에 접수했기 때문인데요. 그걸 부동의 하라는 목소리를 내는 거죠. 천막을 지키면서 피케팅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있어요.공항을 짓는 것이 지역 발전이고 지역경제 부흥이라고 하면서 도에서 집중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기업들조차 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기업들도 부담이 된다고 봐요. 생각보다 이윤이 나오지 않고, 조류 충돌 등 위험 요소가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일 거예요.
이뿐만이 아니에요. 지금 또 전북에서 올림픽까지 유치하려고 애를 쓰고 있거든요. 신공항 사업의 명분을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봐요. 우리가 2년 전에 잼버리 국제대회에서 그 망신을 당하고도 그걸 반복하려는 것만 같아서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요.
- 같은 답답함과 분노를 느껴요. 그러니 우리도 더더욱 운동을 멈출 수 없는 것이겠고요. 그 운동의 또 한 갈래인 계신 4대강 사업 관련 세종보 반대 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보 사업을 추진하고 실행한 뒤로 지금 전국의 많은 강들이 녹조 ‘곤죽’으로 가득한 썩은 강으로 변해버렸어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막혀 있던 공주보, 세종보를 한번 열어봤어요. 그랬더니 녹조가 창궐하던 강이 놀랍게도 조금씩 자연성이 회복되고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흰수마자도 돌아오고, 강가 모래밭에서 알을 낳고 사는 흰목물떼새 등 여러 새들이 돌아왔어요. 강이 흐르다 보니 많은 변화가 생긴 거죠. 그때 알게 됐죠. 보를 완전히 철거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요.
그러다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공주에는 백제문화제라는 걸 매년 하는데, 이 축제에 쓸 유등을 띄우고 배다리를 만들기 위해서 공주보를 막았거든요. 그랬더니 공주보에 다시 금세 두터운 뻘이 생기고 새들이 알을 낳을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희 활동가들이 목소리를 내려고 그쪽에다 천막을 쳤는데 시에서 천막을 뜯어내버렸어요. 우리도 가만있지 않고 몸으로 밀고 들어가 여럿이서 팔짱을 끼고 버텼는데 거기다 강물을 채우기까지 했죠. 열 몇 시간을 얼굴만 내놓고 강 속에 잠겨 있었어요. 결국 공주보를 열지는 못했어요.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세종보도 다시 가동하겠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니, 필사적으로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보를 가동하면 완전히 침수가 되어버리는 위치에다가 천막을 쳤어요. 녹색연합 등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24시간 내내 돌아가면서 천막을 지키고 있고, 그게 이제 400일이 넘었어요. 그 덕분에 세종보는 가동되지 않고 있죠. 이걸 지켜야 다른 보도 철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결국에는 모든 보가 철거되어서 강이 바다로 흐르는 상상을 해요. 정권이 바뀌었으니 조금은 기대를 해보게 되기도 하고요.
- 천막을 직접 지키기도 하시지만, 천막 지킴이들에게 밥을 해 나르시잖아요. 그 밥은 운동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해요. 여러 투쟁의 현장에 먹을거리를 만들어 나눈다는 것은 은실 님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인지 궁금해요.
제가 그 일에 아주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아요. 우리가 젊은 시절에 운동하다 보면 밥 못 먹는 동료들, 후배들이 참 많았거든요. 그래서인지 누구 입에 밥 들어가는 그게 참 행복해요. 좋아요. 밥 먹는 모습이. 그리고 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좋은 걸 보면 이걸 싸가서 다 같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그래서 주변에 저에게 식재료를 나눠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잖아요. 밥이라는 게 우리를 힘나게 하는 거예요. 영양소가 몸에도 제공되지만, 마음에도 제공되잖아요. 밥을 나누는 게 힘을 나누는 거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김은실’ 하면 도시락이나 밥을 떠올리는 것, 그게 큰 기쁨이에요. 지금까지 전국에서 같이 연대해왔던 분들 대부분이 제 밥을 드셔보셨으니까. 그분들이 고마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좋은 거죠.
버려지는 조각천을 모아, 글씨와 무늬를 구상하고 바느질로 이어 붙여 만든 다양한 광목 피켓들
- 밥뿐만 아니라 다른 재주와 열정도 있으시잖아요. 피켓도 엄청 예쁘게 만드시고, 바느질을 통해서도 엄청난 걸 계속 만들고 계시는데, 저는 이것이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예술 그 자체가 아닌가 싶거든요. 이 예술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피켓을 들 때 보통은 검정, 붉은 글씨로 된 걸 드는데,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좀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만들어서 잠깐이라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자, 우리도 즐거워보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시도해보니까 반응이 또 좋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잘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그렇게 마음과 정성이 담긴 예쁜 걸 생각하다 보니 바느질 피켓도 만들게 됐어요.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제주4.3과 관련된 코사지, 리본 등을 넉넉하게 바느질해서 만들어, 유가족이랑 대책위에 선물로 드리기도 했어요.
제가 바느질을 오래 해왔거든요. 공방도 하고 수업도 다니고 하면서. 예전에는 일반 가방이나 소품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쓸모 있는 바느질을 하고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나누는 걸 하는 작업으로 방향이 바뀐 거죠.
그리고 최근에 대전 퀴어퍼레이드가 있었는데요, 그때도 행사에 필요한 무지개 피켓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대부분 한 번 쓰고 버리게 되는 것들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제가 다 거둬왔어요. 그 깃발들을 이어붙이고 그 위에다가 바느질을 해서 새 피켓이랑 현수막을 만들 생각이에요. 거기에는 새만금신공항, 세종보에 반대하는 메시지가 새겨질 수도 있고, 전쟁 반대, 기후정의 등등의 메시지가 새겨질 수도 있겠죠.
- 그렇게 손수 만드신 피켓으로 최근에는 대전 신설 야구장인 한화생명볼파크 신구장 앞으로 피케팅도 하러 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한화의 팬들 수만 명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곳에서 한화의 무기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러 가시는 거잖아요.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지지만 한편으론 큰 용기가 필요한 일로 보여요. 어떤 계기로 그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2018년에 유성에 있는 한화 폭탄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어요. 그때 다섯 분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분 중 한 분이 저희 교회에 다니던 분의 아들이었어요. 그때 교회 목사님이 멀리 휴가를 가 있어서, 제가 부목사님과 함께 전체 장례 일정에 함께했어요. 또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했었는데, 돌아가신 분의 아이가 저희 반 학생이기도 했어요. 그 아이를 챙기면서, 또 그 아이의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여전히 교인들 중에는 한화 폭탄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슬픔이 더 깊이 연결되기도 했어요.
또 2019년에도 폭탄을 생산하는 한화 대전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3명이 돌아가셨고 6명이 크게 다쳤어요. 2003년, 2022년에는 충북 보은의 한화 공장에서 폭탄이 터져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고요.
폭발사고로 사람이 죽으면 교통사고로 죽은 것과는 또 달라요. 특히 더 처참하고 조사도 복잡하고... 그래서 재발 방지 약속이나 시민감시단 만들기 등의 약속을 하는데 사실상 그게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를 잘 못 봤어요. 그런 약속들은 그냥 임시방편이었거나 보여주기 식의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알게 됐죠.
그런 와중에 논산 확산탄 폭탄공장이 지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확산탄은 전 세계적으로 생산 중단 추세에 있는 대량살상무기예요. 이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은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고 사업에 제약을 받게 되죠. 그렇다 보니 이 공장을 한화가 아닌 KDi라는 기업이 짓는데, 이 기업 대표가 한화의 전 임원이에요. 한화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한화가 요즘 야구를 잘해요. 원래도 팬이 많았는데 계속 이기니까 더 큰 사랑을 받아요. 한화가 이 야구 뒤에 숨어서 사람 죽이는 무기를 만들고 파는 걸 그냥 지켜만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야구장 가서 대전 공장 폭발 사고, 논산 폭탄공장 사업 등을 알리고 있어요.
동료 김명이와 함께, 대전 한화볼파크 앞에서 한화의 대량살상무기 생산에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는 모습
-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 반응이 어떨지 모르니까 조금은 꺼려지거나 무서웠을 것 같기도 한데요. 실제로 지금 반응들은 어떤가요.
무섭지 않았어요.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야구장 내로 진입을 하려면 정체가 되기 마련이거든요. 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이런저런 설명을 하면, 보고 들을 수밖에 없어요. 아주 좋은 조건이죠. 건너건너 야구장 안에서의 반응을 들어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간간이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화가 이렇대, 이런 일도 있었대, 하고요. 정말 잘했다 싶었어요.
무서운 게 있었다면 사실 그건 사람들의 무관심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제일 무서운 거죠. 그런데 저의 피케팅을 본 것을 계기로 한화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사람 중에 적어도 몇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그게 정말 뜻깊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