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복잡한 세상에서 복잡하게 말하기 -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류현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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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에서 복잡하게 말하기
4.16연대 류현아 활동가



이태원 참사 2주기 기록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책모임으로 만나게 된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이하 4.16연대) 활동가 현아. 책모임 날이 공교롭게도 생일이었지만 주최자로서 끝까지 자리를 함께한 현아를 보며 활동가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게다가 이전에는 영화 미술 감독이었다는 현아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현아를 활동가로 이끈 건 무엇이었을까?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찼다. 때마침 만 3년 근속으로 안식월을 보내고 있던 현아는 귀한 시간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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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장에서 류현아 활동가



- 소중한 안식월에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떤 계기로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첫 기억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행사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친구가 광화문 추모 행사를 간다길래 따라갔어요. 근데 그때 경찰과 엄청난 충돌이 있었거든요. 경찰버스로 차벽이 세워지고 분향소에는 도무지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경찰과 대치하는 와중에 사람들이 차벽에 국화를 붙이기도 하고. 저도 같이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다 돌아왔는데, 제 손에 경찰버스 사이드미러가 들려있더라고요. 너무 웃기잖아요. 주어온 사이드미러 사진과 함께 격렬했던 투쟁 현장 소회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하 알바 노조) 활동하던 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앞으로 집회 같이 다니자고.(웃음)

 그때 저는 인천에 살고 있었는데 마침 알바 노조에 인천지부가 없을 때라 친구랑 같이 인천지부를 꾸리게 되었고 그렇게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같이 알바 노조 활동하던 친구 대부분이 여자여서 자연스레 페미니즘에도 스며들었고, 이후에는 ‘불꽃페미액션’ 활동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었어요. 


- 하지만 활동가로서 최초의 시작은 공교롭게도 세월호, 이것은 운명이었다.(웃음)


 그렇죠. 그런데 저희 부모님이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분들이라, 저한테 광장에 나가라고 하신 건 아니었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어요. 정의감이 엄청 높아서 학창시절에는 일진이랑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사회 운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원래 꿈은 영화였거든요. 대학에서 공간 연출을 전공했는데, 무대 미술이나 조명 미술, 영화 미술을 배웠어요.

 그러다가 페미니즘 영화 이론에도 빠지게 되었어요. 페미니스트가 되기도 전인데 바바라 크리드가 쓴 『여성괴물』책을 보니까, 책에서 그려내는 여성의 몸이라던가 여성의 비체화 같은 표현이 너무 저 같더라고요. 여태껏 살면서 자기혐오를 심하게 해왔는데 나를 혐오스러워하던 그 모습과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했으면 하는 어떤 마음이 책이랑 잘 연결되는 거예요. 그래서 학문적으로 페미니즘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일상 생활에서의 평등 · 차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어요.(웃음)

 같은 시기에 영화를 엄청나게 만들었고, 처음으로 장편독립영화 미술감독을 하고 난 뒤에는 너무 힘들어서 휴학했어요.(웃음) 그러고는 알바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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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화 촬영 현장 (류현아 제공)



 - 역시 활동을 하려면 쉬어야 하는 건가요?


 맞아요. 진짜 딱 쉬면서 그런 계기가 만들어졌어요. 그래도 알바 노조 활동을 했다는 건 제가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알바를 정말 다양하게 많이 했는데 편의점 알바, PC방 알바, 카페 알바, 서브웨이 알바, 뷔페 알바 등등을 했었고, 카메라를 다룰 줄 아니까 결혼식 촬영 알바, 당일 촬영 알바 같은 촬영 알바도 거의 다 해봤어요. 그 당시 최저시급이 5천 원대였거든요. 알바 노조에서 최저시급을 1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최저임금 1만 원 운동)고 활동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경제 성장률과 여러 가지 이유로 드디어 1만 원이 되었는데 딱 10년 걸렸습니다.(웃음) 

 대학 졸업한 뒤에는 영화 일을 본업으로 하면서 동시에 알바 노조와 불꽃페미액션 활동을 했어요. 영화 찍으면서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점점 들었는데 영화를 찍으면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왔어요. 한 장면을 위해 준비하는 소품이 정말 많고, 심지어 세트장을 지어도 콘셉트가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번 촬영하고 나면 다시 쓸 수가 없어요. 버려지는 쓰레기가 너무 많은 산업인 거예요.

 게다가 팀 간 유리천장이 심했고 임금 차이도 엄청 났어요. 여성이 대다수인 미술팀, 소품팀은 남성이 대다수인 촬영팀, 조명팀에 비해 일하는 시간은 훨씬 긴데 임금은 절반 정도밖에 못 받았어요. 남자들은 돈 조금 준다고 아예 버티질 못하는데 여자들만 견디는 게 화가 났어요. 영화판은 조직 문화도 안 좋고, 그래서 도망쳤어요. 

 그래도 여전히 불꽃페미액션 활동을 계속 지속해오고 있어서인지 활동가라는 직업이 그리 멀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와 가장 멀리 있고, 쓰레기가 적게 나오며, 조직 문화로부터 나를 지키며 일할 수 있을까, 나에게 안전한 일터는 어디일까 고민하다가 4.16연대와 연이 닿았어요. 단체 웹 페이지 디자인을 해주다가 활동가 모집 소식을 전해 들었고 곧바로 입사하게 되었어요. 이때는 활동가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내가 안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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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불꽃페미액션 활동 :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8주기 추모행동 (류현아 제공)



-  우여곡절을 겪고 들어간 4.16연대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저는 4.16연대 사업팀에 있어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 책임자처벌 운동을 하고 있고 이와 관련해서 토론회 진행 · 포럼 운영 · 자료 수집 · 재판 방청 · 아카이빙 · 기록 등의 활동을 합니다. 다음으로 단체 활동가 모두가 같이하는 세월호 참사 관련 기억·추모 사업에서는 시민대회 개최 · 추모 주간 선포 · 온라인 추모 기획 · 크라우드 펀딩 등의 활동을 합니다. 제가 다룰 줄 아는 디자인과 영상 활동도 맡고 있어요.

 청년 TF팀도 겸하고 있는데 이태원 참사 추모 활동과 더불어 연대 활동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세월호 세대이자 이태원 세대로 연결되잖아요. 또, 청년 책모임을 운영하고,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에 관한 아카데미도 준비하고 있어요.


 - 지금 들려주신 활동이 너무 많은데 다 할 수 있나요?


 그럼요. 다 합니다. 이것이 활동가예요. 다 할 수 있다.(웃음)


- 사실 활동가라는 직업이 굉장히 궁금했는데 이렇게 물어보기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활동가들』이란 책을 읽었어요. 읽기 전까지는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다큐멘터리스트나 연극인도 활동가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으니까 활동가들이 예술가더라고요. 끊임없이 기획해야 하고 창작해야 하고 사람을 모아서 우리 활동에 오게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최적화된 인물이 현아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근데 다른 분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활동가가 됐을 수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달라요. 태어날 때부터 활동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을까요? 태어날 때 뭘 알겠어요. 살다 보니까 너무 화가 나서 활동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거잖아요. 오히려 활동가 되고 보니까 멋있는 직업이란 걸 깨달았지만 멋있는 활동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내가 안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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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16연대 활동 : 전국시민행진 (류현아 제공) 



- 안전을 찾아간 4.16연대에서 활동하면서 좋은 활동, 의미 있는 활동도 많이 했지만, 분명히 힘든 순간이 있잖아요.


 힘든 건 4.16연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활동하면서 만나는 관계에서 혹은 사회 문제에서, 종종 이분법적으로 편을 가르거나 쉽게 답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부치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제3의 지대가 있다는 걸 쉽게 상상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내 편 아니면 네 편, 이렇게 사고하는 건 너무 쉽잖아요. 제3의 지대가 모든 화해의 근원이라 생각해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저는 복잡한 걸 복잡하게 말하고 싶거든요. 근데 복잡하게 받아들이면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지니까, 나는 네 편이어야 해, 말아야 해?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라는 질문을 다시 떠안게 되더라고요. 여전히 우리는 쉬운 길을 좋아한다.(웃음)

 이 고민은 어디서부터 왔냐면 지금 불꽃페미액션에서 대표를 맡고 있어요. 대표자로서 대변할 일이 많은데 천천히 상황을 지켜보고 맥락을 다 설명할 수가 없더라고요. 명확하게 의견 제시를 바로 해야 하는 상황이 많은 거예요. 압박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화가 나기도 해요.

 결국 이분법적 사고는 불안감에서부터 온 게 아닐까 해요. 현대 사회에서는 순간순간 모든 걸 다 개인이 선택해야 하잖아요. 선택하는 게 힘든 사람들은 선명하게 A 아니면 B라는 이분법에 익숙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어떤 걸 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홍세화 선생님 강연에서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보면 불안을 느낀다. 불안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결국, 내가 행복하려면 타인의 불행을 좌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모든 사람이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취미로도 좋고 본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요. 시민 단체 활동가가 아니어도 한량처럼 발만 담그거나 프로그램에 잠깐만 참여하더라도 삶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지잖아요. 정말 좋지 않나요?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시민 단체 하나씩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애초에 활동가라는 직업을 선망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도 오히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조금씩 해나간다면 세상을 더 빨리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활동가라는 마음이 있다면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뀌지 않을까 합니다.


- 시민으로 역할을 다할 수도 있지만, 활동가로서 여전히 수많은 활동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안식월의 영향도 있을까요?


 이렇게 안식월을 보낼 수 있는 건 정말 큰 감사함이고요. 어떻게 계속 힘을 낼 수 있는지 쉬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저는 세상에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특히 왜 이럴까 왜 그럴까 왜 저럴까 질문을 한아름 품고 있고, 휴대폰 메모장에 질문도 엄청나게 적어놓거든요. 써놓은 질문을 보면서 혼자 자문자답할 때도 있고, ChatGPT랑도 대화해요. 특히 친구를 만날 때는 요즘 관심있는 주제나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가져가는 편이에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솟아나고, 어떤 걸 하면 세상이 나아질까 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현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답니다. 그래서 일할 때 기획서 쓰는 걸 무척 좋아해요. 세상에 낸 아이디어를 구조화시키는 일이요. 이렇게 시작한 일을 끝내는 방법은 책임감이지 않을까 해요. 활동해나가는 순간순간에 재미를 맛보고, 사람들이랑 같이 활동할 때 시너지 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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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장에서 류현아 활동가



- 이렇게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다니요. 알바 노조 활동으로 시작해서 여러 활동을 부지런히 해왔는데 꿈꾸던 걸 이뤄냈나요? 아니면 오랫동안 활동해왔지만 여전히 변화가 더딘 부분이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 같은 경우에도 정말 많은 걸 바꿔 냈잖아요. “국민의 안전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라는 사회적인 합의도 만들어내고, 대선 공약으로 “생명 안전이 우선시되는 국가를 만들겠다”라는 사회 대개혁 과제를 도출해내는 과정만 보더라도 저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에 반해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생전 들을 필요 없는 혐오의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페미니즘에서도 “우리가 당신들 밥그릇 뺏는 게 아니야. 우리의 권리가 이만큼 침해되어 있고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을 뿐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통 자체가 막혀있고, 혐오가 엄청나게 커졌다고 생각해요. 페미위키에서 낸 통계를 보면 12/3 비상계엄부터 4/4 파면까지 123일 동안 60명의 여성이 죽었대요. 여전히 이틀에 한 번씩 여성들이 죽어 나가는 현실은 그대로이고, 죽음에 무감각한 사회인 건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지만 이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또 사회 안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감각하는 문화가 생기긴 했잖아요. 낙태죄 폐지도 끌어냈고요.


-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듯하면서도 사회를 변화시키기는 참 어렵네요.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부분도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달라진 건 좋은 친구들이 정말 많이 생겼다는 거예요. 활동하기 전에는 제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뭘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래서 나만 이상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고 나만의 길을 가는 게 어려웠거든요. 활동가 친구들을 만나게 되니까 존경의 마음이 들더라고요. 세상을 바라보는 현명한 눈빛들을 마주했고, 이 눈빛을 따라가면 답이 있을 것 같고, 내 삶도 이렇게 바뀌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게 정말 좋았어요.

  예전에는 비건이 될 수 있을까, 지역으로 가서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자본주의와 멀어져서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전혀 못 했었는데 활동가의 삶에서는 이런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20대 때 페미니즘이나 사회 운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을 때는 우울감이 심했었거든요. 저는 30대가 되면 죽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40대, 50대, 60대가 안 그려지는 거예요. '집도 없이 불안하고, 다리를 절면서 폐지 주우러 다니는 비참한 할머니'가 될 것 같더라고요. 그 이유 중 하나가 성공한 여성 롤 모델을 찾기가 어려워서 였어요. 지금은 가난할 수는 있지만 좋은 친구들과 함께 오순도순 마을을 꾸리면서 다리 저는 할머니를 꿈꿀 수 있게 되었어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면서 개그도 치고, 기계도 잘 다루는 할머니요.(웃음) 다리를 저는 건 지금도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활동가는 배고플 때가 많을 수 있지만, 완전히 굶어 죽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람이 엄청 귀하고, 비교적 많이 봐줘요. 많이 혼내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게 기회를 주거든요. 저는 성장할 기회를 더 달라고 떼쓰고 있습니다.(웃음)

 달라지지 않은 점은 조금 슬픈 이야기인데 능력주의는 활동판 안에서도 그대로 있는 듯해요. 어쩌면 능력주의는 활동가들한테도 내재화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한테는 최대한 이런 자세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지만 스스로 저를 평가할 때 단점을 훨씬 많이 보더라고요. 왜 이렇게 난 말을 못 하지, 왜 나는 아직도 기술이 부족하지, 사람이 되고 있나 이런 질문을 많이 하고 있고, 여전히 나 자신을 바꾸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웃음)


정말 많은 활동을 해나가면서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현아를 보며 처음 마주했던 활동가의 무게를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질문과 고민을 품고 안전한 사회로의 변화를 이끄는 현아가 불안이 가득한 세상에서 흔들릴 때 평안을 잘 찾을 수 있기를, 좋은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할머니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인터뷰어 : 한량 (오민진)
좋아하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건 더 많은 일상수집가이자 부지런히 세상을 누비는 한량. 덕분에 일상이 자주 반짝였으며, 이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내 삶을 넘어 다른 이들의 삶도 수집하며,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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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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