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함께 노래할래요?
_같이 있으면 마음이 환해지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저자 이한나
어디서부터 그를 소개해야 할까. 노래하는 사람. 그리는 사람. 경복궁 옆 고즈넉한 서촌에 사는 사람. 이것저것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만나면 유쾌한 사람. 헤어지고 나면 자꾸 떠오르는 사람. 그래서 오래 보고 싶은 사람.
한마디로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마침 계절마다 열리는 정기 ‘싱얼롱’(singalong. 노래를 함께 부른다는 영어 단어. 우리말에 해당하는 말이 없어 편의상 ‘싱얼롱’이라 쓴다. 덴마크어로는 펠레상(Fællessang)이라 부른다.)이 6월에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싱얼롱에도 참석하고 인터뷰도 하면 딱이다, 싶었다. 함께 노래하다 보면 그를 더 알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두 시간 남짓 네 곡을 불렀다.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간디학교 교가 ‘꿈꾸지 않으면’, 이소라 ‘청혼’, 여유와 설빈 ‘생각은 자유’. 가사를 곱씹으며 육성으로 또박또박 노래한 게 언제였던가. 내가 쓰지도 않은 가사에 힘을 받아 주문처럼 왼 적이 있었던가. 그 가사가 내 말인냥 세상을 향해 말했던 적 언제였나.
싱얼롱을 마치고 그의 집에 들러 장비를 정리했다.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며 인터뷰하기 좋은 타이밍을 살폈다. 싱얼롱할 때 놓아두었던 꽃이 방을 환히 밝힌다. 꽃을 바라보던 그가 불쑥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나: 이런 꽃도 처음에는 하나씩 줄 수 있게 준비했어요, 봄이면 봄에 어울리는 튤립. 스무 명이 온다고 하면 튤립 스무 개를 사는 거죠. 꽃병에 꽂았다가 마지막엔 포장지에 가져갈 수 있게…….

효림: 돈도 안 받는다면서요? 후원금은 있나요?
한나: 지금 하는 공간이 서울시에서 조성한 문화공간이라 규정상 참가비를 못 받아요. 영리적인 걸 할 수 없대요. 대관료는 있는데 저렴한 편이죠. 그 안에 음향, 화장실 등 시설이 다 있어요. 쾌적하고 교통편도 좋죠. 근데 참가비를 받지 않고 지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거예요.
다른 곳에서 대관을 20 인가 30만 원 내고 또 해 봤어요. 참가비를 좀 받았죠. 근데 한 번 해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장비는 만족스럽지 않은데 대관료도 비싸고……. 그리고 저는 공공적인 성격을 띠고 싶었거든요, 누구나 와도 되는. 너무 작고 폐쇄적인 공간을 빌려서 하게 되면 자칫 사적인 모임으로 설정될 것 같았어요. 공간이 말해주는 게 있잖아요.
효림: 공간의 힘이 있군요. 오늘 노래한 공간은 층고도 높고, 노래가 잘 울리는 곳이더라고요.
(서울생활문화센터 체부.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 있다. 1931년 건축된 체부동 성결교회를 서울시에서 매입 후 리모델링해 2018년 개관했다. 홈페이지에는 ‘생활 음악 동아리를 위한 거점 공간이자 지역 주민을 위한 생활권 형 문화공간’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싱얼롱에 딱 맞는 곳이란 얘기다.)
한나: 소리가 잘 퍼지지 않는 공간에 가서 해보니까 확실히 힘이 들어요. 여긴 오래된 건물이라 역사성도 있고, 건축 자체가 함께 노래 부르기에도 좋죠. 교회 공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더라고요. 한곳에서 계속하니까 단골들도 편하게 오시고요.
효림: 경복궁 옆이라 관광지이고 사람도 많은데, 여기에 들어오면 딱 ‘우리만의 공간’ 같아요. 조용히 노래 부르고 끝나면 다른 세계로 가는 느낌도 있고.
한나: 맞아요. 바로 나가면 주점이랑 먹거리 시장이잖아요. 사람들은 우리가 노래하고 왔는지 모르겠죠. (웃음) 작년 12월 조하문의 ‘눈 오는 밤’을 불렀어요. ‘옹기종기 모여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창 밖엔 조그만 눈송이’ 이런 가사였는데, 노래 부르고 나갔는데 진짜 눈이 오는 거예요! 가로등이 비치는 가운데 눈이 정말 예쁘게 왔어요. 사람들 다 ‘와, 눈이다!’ 이랬죠.
효림: 뭔가 다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죠.
한나: 그러면 사람들이 더 운명적으로 느끼죠. 그럴 때마다 참가비를 받지 않고 싶은 유혹이 강해져요. (웃음) 이런 시간이 다음에도 이어지길 원하신다면 후원을 해주세요, 이렇게 말해요. 저는 감사하니 차를 내리죠. 계절에 맞는 좋은 차를 골라서 정성껏 내려요. 오늘은 루이보스였어요. 카페인도 없고, 여름엔 좀 시원한 게 좋으니까.
효림: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군요.
한나: 이제 공간도 익숙해져서 제가 리허설하는 동안 팀얼롱 친구들이 다 세팅해요. 누군가는 컵 다 씻어놓고, 누구는 의자 놓고. 제 역할을 하죠. 손수 구운 쿠키를 가져와 나누는 친구도 있고요. 그전에는 제가 일을 나누지 못해 뒤에서 하는 게 많았다면 지금은 친구들이 많이 도와줘요. 그런 것들이 정돈되는데 1년 반 걸렸어요.

늘 준비하는 계절꽃
그러고 보니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기타와 피아노가 노래의 풍성함을 더하고, 처음과 끝에 마음을 적도록 마련한 방명록 등 준비한 손길이 세심하다. 노래 부르는 중간중간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팀얼롱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아니 그 전에 싱얼롱은 언제 시작했을까.
한나: 이 책을 2022년 언리미티드 에디션 (2009년부터 매해 열리고 있는 독립 출판, 아트북 축제.) 에 소개했는데, 그때 북페어 관계자분이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북서울미술관에서 무작위로 오는 사람들과 처음으로 싱얼롱을 했죠. 그때는 덴마크 노래를 불렀어요, 한글로 써서. 근데 점점 덴마크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어졌어요. 노래 부르는 게 뭐가 좋은지를 알게 된 단골이 생긴 거죠. 초반에는 저도 좀 갇혀 있었어요. 덴마크 얘기를 더 많이 했죠. 친구들이 덴마크 문화 대사라고 했어요. (웃음)
|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한나, 반채움 스튜디오, 2022. 덴마크의 성인들을 위한 학교 ‘호이스콜레(Folkehøjskole)’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접한 덴마크 고유의 함께 노래하는 문화, 펠레상(Fællessang)을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사진 그리고 글과 함께 소개하는 책이다. |
효림: 출발은 덴마크였지만 출판하고 나니 마치 생물처럼 변하는군요.
한나: 북서울미술관 워크숍에서 마스크 끼고 울면서 노래를 부른 여자 두 분이 있었어요. ‘이런 거 또 해주세요’ 나중에 이런 DM도 주셨고요. 다음 북토크에 그분들이 또 오셨어요, 제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서 책을 또 사가더라고요. 되게 신기했어요.

2022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의 첫 싱얼롱
한나: 이게 필요하고,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느끼던 차에 좀 더 용기를 내서 정기 싱얼롱을 시작했어요. 2023년은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해서 10번 했어요. 울면서 노래 부른 그 친구들이 한 번도 안 빠지고 10번을 다 왔어요. 그 친구들에게 송가이드(싱얼롱하는 노래들 중 한 곡을 선정하는 역할)를 해달라는 제안을 했어요. 노래를 가져와서 선정의 이유를 사람들에게 얘기했는데 이미 제가 하고자 했던 바를 더 넘어서 해석을 해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송가이드 코너를 만들었어요. 계속 오는 사람들도 선곡에 참여할 수 있게.
효림: 조금씩 진화했군요!
한나: 저는 똑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르니까.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하면서 많이 다듬어졌어요. 2년째 됐을 때는 쫄지 않게 됐죠. 왜냐하면 이미 저장된 게 있으니까. 밑천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느슨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서 단골이 생겼어요. ‘저도 뭔가 도와주고 싶어요. 이러다 지치면 안 되니까 뭐라도 할래요’ 이런 분들이요. 아예 생판 남인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팀얼롱이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혼자 한 시즌 1을 마무리하고, 시즌 2로 넘어갔죠. 제가 이런 거 한다고 하니까 친구들도 몇 번 왔어요. 또 반주하는 친구들도 생겼고요. 처음엔 4명이었는데 지금은 8명이 됐어요.
효림: 회의도 하나요?
한나: 회의는 안 해요. 그냥 놀면서 제 대화 파트너가 돼요. (웃음) 카톡방에서 상의하고 싱얼롱에는 시간 되는 사람이 오죠. 선곡이나, 모임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팀얼롱 친구들이 늘 좋은 의견을 줘요. 처음에 1년 넘게 뒤풀이를 안 했어요. 담백하게 노래만 부르고 헤어졌어요, 부담 주기 싫어서. 근데 사실은 다들 궁금했나 봐요. 그러다 한번 확 친해진 계기가 있었죠. 그때 밥도 먹고, 막걸리도 먹고. (웃음) 왜 노래 모임에 오게 됐냐, 이런 말도 오갔죠. 공통적인 얘기가 우리 생활 속에서 만나기 힘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 결론은 노래 부르자고 했을 때 오는 사람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어요.
효림: 싱얼롱 시작할 때 사람들 얼굴을 봤는데 다 해사하더라고요. 사심이 없고.
한나: 순수하고 맑아요. 나눠주는 말도 시 같아요. 애초에 노래하러 갈래, 했을 때 그러자고 응하는 사람의 정서가 이쪽에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자석처럼 붙는 거죠. 처음엔 걱정했거든요, 불특정 다수에게 열어놔도 될까. 근데 한 번도 불편감을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팀얼롱이 분위기를 만들어주니까 오는 분들도 맞춰지는 것 같아요.
효림: 사람들이 생글생글 웃고 있길래 저는 다 아는 사이인 줄 알았어요.
한나: 서로 다 몰라요. (웃음)

2025년 6월 7일 열린 여름 싱얼롱
학교는 주말을 빼고는 단 하루도 어김없이 두 곡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두 곡을 연이어 부르고 나면, 어느새 잠이 깨고, 정신이 명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중략) 학교 선생님 중 그 누구도 우리가 왜 노래를 부르는지,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구태여 설명하지는 않았다.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한나, p.34)
효림: 싱얼롱이 ‘활동’일까요? 한나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생각하나요? 싱얼롱이 한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한나: 규정을 내려본 적은 없어요. 나는 활동가다, 한 적도 없고, 활동가는 이래야만 한다는 틀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냥 저는 하고 싶은 거 하는 중이에요. (웃음)
이게 교육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일상에 이런 음악이 들어오는 게 굉장히 좋다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노래가 감상하거나 잘해야 하는 경연의 성격을 띠지 않고도 좋은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지만 꾸준히 실천해 보고 싶어요.
효림: 싱얼롱하며 어려웠던 적도 있겠죠?
한나: 싱얼롱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너무 없으면 걱정이 되죠. ‘몇 명이나 올까?’ 이럴 때가 있었어요. 한번은 참가자가 8명 정도 모였던 적이 있어요. 기대했던 인원보다 적어서 아쉬워하는 저에게 근데 반주하는 친구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너무 좋잖아, 행복하잖아, 3명이 와도 싱얼롱은 되잖아.’
근데 기획하는 저는 원래 취지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나를 도와주겠다고, 돈도 안 받고 반주해 주는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모으는 데는 문제 없어요. 제가 계속하니까 친구들이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5명이 있으면 3명은 한 번 와요. 근데 2명은 또 오거나 친구를 데리고 와요. 그러면 또 채워지는 거죠.
효림: 친구 데리고 오기 좋긴 해요. 만나면 다들 비슷하잖아요. 카페 가거나 전시 보거나 등. 결국 다 소비하는 건데 이건 새로운 경험이잖아요.
한나: 자꾸 색다르게 하고 싶어서 제가 돈을 안 받으려고 하나 봐요. 페스티벌이나 영화 보러 갈래 물어보면 보통 참가비 얼마야, 티켓 얼마야, 이러죠. 돈을 내고 즐기는 것이 당연한 문화죠. 거기에 저는 의외성을 주고 싶은 거예요. 순수한 의도와 자발적인 참여로 이렇게 즐거운 장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개별적으로 받는 참가비도 좋지만, 조금 더 안정적인 기금을 지원받아 정기 싱얼롱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지원사업에 공모하면 잘 안되더라고요. 이게 노래를 부르고 헤어지는 거잖아요. 그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건데, 거기에 뭔가를 붙일수록 그냥 평범해지더라고요.
저는 미술 전공하고, 미술 교육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어보고, 기관에서 일하면서 수업도 해보고,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근데 덴마크에서 인상 깊게 느꼈던 건 단순한 구조의 싱얼롱이예요.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 집중한다’예요. 내가 이곳에 속해 있음을 느끼는 감각 그 자체요. 화성을 나누고 음정과 박자를 따지고 이 부분을 이렇게 불러야 더 잘 부르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덧붙일수록 원래의 본질과 멀어지죠. 그래서 빼고, 더 빼고, 다 뺐어요. 그걸 서류로 쓰면 전달이 잘 안되더라고요.
효림: 서류는 증명해야만 하니까요.
한나: 그걸 영리하게 잘 써야지, 라는 마음과 서류 작업으로 소진되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 돈을 투입해서 이걸 끌어왔고, 의도와 방향을 지킬 수 있었고, 이것에 공감해 준 사람들과 팀얼롱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수익 구조부터 짰다면 팀얼롱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냥 사업화가 되어 역할을 나눴겠죠. 그러면 다른 성격으로 잘 갔겠지만, 이거는 그런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가난해졌고, 사람들이 도와주고, 커뮤니티의 성격이 생겼고, 후원금도 조금씩 받게 된 거죠.
효림: 스태프의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한나: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더 오겠죠. 아까 송가이드 한 ‘여리’ (여리는 이소라의 ‘청혼’을 선곡했다. 그리고 같이 온 남자 친구에게 그 자리에서 청혼했다!)가 친구를 데리고 오고 그러다 정말 결혼식에 저를 초대할 수도 있겠죠. 누군가한테는 저를 ‘노래하러 가서 알게 된 친구야’ 이렇게 소개할 수도 있어요. 저는 우연이 있고, 약간의 낭만이 섞인 그런 게 너무 달콤하고 좋아요. 그래서 이렇게 재미난 관계가 생겨날 수 있는 소규모가 좋은 것 같아요.

싱얼롱 끝나고 적은 소감
한나: 힘든 건 반주자들이에요. 그들은 돈을 받지 않고,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만들겠다는 선의와 팀얼롱이라는 소속감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 부분을 내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해요. 스태프뿐 아니라 전문 반주자들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친구들이 지치지 않으면서 의미를 갖게 할 수 있을까. 아마추어여도 충분히 반주할 수 있잖아요. 전문 연주자도 마인드가 어떻냐에 따라 해줄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저는 반주자들도 더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한 명이 무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금은 반주자 친구들과 리허설하고, 서로 생각과 고민을 나누며 먹는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 다예요. 그때 사는 밥은 사람들이 후원해 준 돈으로 먹어요. 각자 하는 일이 있으니, 일정을 맞추기 힘들 때는 기타는 또 기타대로,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따로 만나고. 소통에 드는 품이 많아요.
예전에 노래책 맨 앞장에 붙은 목차를 읽으며 덴마크인 친구에게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는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다르지”라고 대답했다.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한나, p.45)
효림: 싱얼롱하기 좋은 노래가 있나요?
한나: 단순한 노래요. 복잡한 기교를 부려야 하는 노래 말고요. 주로 포크가 많아요.
효림: 그래서 가사가 더 잘 들어오는 것 같아요. 멜로디를 금방 습득할 수 있으니까.
한나: 싱얼롱은 스토리텔링이 중요하죠. 사람들이 이야기하게끔 하는 게 포크니까. 때로는 가곡도 부르고 동요도 불렀어요. 일단 쉬워야 해요. 함께 모두가 금방 익혀서 부를 수 있어야 해요. 또 하나는 시국 상황. 우리가 처한 이 상황에 어울리는 곡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4월은 항상 추모할 수 있는 노래를 택했어요. 작년에는 선과영의 ‘슬픔의 자리’를 불렀어요. 네 곡 중 한 곡은 지금 우리 사회와 연결할 수 있는 노래를 항상 넣어요.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와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소화하기 어려웠던 감정도 함께 노래하며 해소할 수 있어요.
효림: 12.3 계엄 때는 뭐가 있었나요?
한나: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였어요. 탄핵 이후에는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었고요.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란 가사가 나오죠. 지금까지 한 60-70곡 모인 것 같아요.

책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한나: 이 책이 완성도를 완벽하게 해서 기성 출판사에서 낸 게 아니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디자인하고, 독립 출판으로 소개했잖아요. 그렇게 하길 잘했어요, 더 자유롭고. 만약에 이걸 기존 단행본으로 냈다면 저도 지금처럼 흥미를 갖고 끌고 오진 못했을 수도 있어요. 완결된 게 아니라 계속해서 채워가고 있다고 느껴요.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대안교육’, ‘덴마크 문화’, ‘음악’, 이 세 개가 엮여 있어 많은 사람을 묶을 수 있다고. 교육만 얘기하면 재미없고 따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덴마크만으로 접근하면 관광이나 여행 쪽으로 빠질 수 있고요. 성악 전공하는 사람이 친구한테 이 책을 선물 받았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클래식한 걸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래, 본질은 결국엔 사람과의 연결이지, 이런 공감을 받는 것 같아요.
‘행복’을 보고 온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한나: 첫해 북페어에서 어떤 작가를 만났어요. 그분은 깊은 우울 끝에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죽음을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책을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그 부스로 다가가기 선뜻 어려워하는 분위기였어요. 이 분하고 북페어 3일 동안 얘기를 진짜 많이 했어요, 제 또래이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노래 모임에 오세요, 그랬어요. 그분이 그날 모임이 두 개였나 봐요. 하나는 생존자 모임.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았기 때문에 생존자들이잖아요. 그다음이 싱얼롱이었던 거죠. 그날 부르는 노래 중 가사가 ‘나는 살아있다, 나는 노래한다’ (권진원 x 2ONE ‘산,들,바람,숲’) 가 있었어요.
모임이 엄청 따뜻했어요. 임산부도 와있고, 아기들도 있고, 방에서 해서 되게 따뜻하고. 어떤 사람은 복숭아도 사 오고, 꽃도 있고. 그날 노래가 차분하고 살짝 울적한 느낌이었는데도 묘하게 따뜻해서 힘을 얻는 분위기였어요. 그분이 마지막에 ‘그래, 이렇게 살아도 되는데.’ 그러더라고요. ‘왜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모임에 갔다 왔는데, 여기에서는 어떻게 살고 싶니, 라고 묻네요.’ 라고.
고립되어 있거나 나도 모르는 불안에 잠식되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 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좋은 노래를 사람들과 안전하고 다정하게 부르며 마음이 후련해졌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다들 눈치 보다가 노래 부르고 나서 마지막에는 마사지 받은 것처럼 얼굴이 뽀얘져서 나가거든요. (웃음) 굳이 ‘치유’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죠. 음악 치료사라고 하며 제 책을 사는 분도 있었어요.
효림: 종교가 전부였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나가 노래했겠죠. 굳이 치료받지 않아도 다 같이 눈 마주치고 노래 부르며 자연스럽게 정화됐을 것 같아요. 그러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종교도 없고, 더 이상 학교도 다니지 않아 노래 부를 일 없는 현대인들은 뭔지는 모르겠는데 허전한 게 있는 거죠.
한나: 그게 퍼즐을 찾은 것처럼 하나의 요소가 채워지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함께 뭔가를 하는 행위, 예술 행위, 정신적 행위, 문화적 행위, 이런 걸 소비와 직결되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우리는 보통 경험을 사잖아요. 비싼 콘서트 같은 데 가야 문화적인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게 된 시대잖아요. 그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남들보다 더 잘나야 하고. 그러다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 거에 너무 몰리면 ‘죽고 싶은’ 상황이 오는 것 같아요. 그걸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스스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압박이 심하니까.
꼭 노래가 아니더라도 공동으로 뭔가를 하는 경험, 소비하지 않아도 낯선 사람들과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경험 자체가 귀해진 것 같아요. 농촌 사회에서는 농번기에 일도 도와주고,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호혜로 주고받는 게 있잖아요. 도시로 갈수록,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경험을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근데 싱얼롱은 돈도 안 냈는데 차도 주고,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강제하는 것도 없고, 느낌은 편안한 거죠. 그게 노래의 힘인 것 같아요, 영혼을 채워주는. 오래된 노래, 포크나 월드 뮤직, 많은 사람이 이미 증명한 노래를 부르니까 저는 그 힘에 기대서 가는 거예요. 굳이 창작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그걸 잘 배치하고, 그때그때 맞는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포인트만 잡아요. 제가 기획, 또는 매개 역할을 하고, 팀얼롱이 저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죠. 잘하고 있고, 필요하다고.

2025년 6월 5일 서촌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나도 노래 부르기 문화가 한국에 알려지는 것이 정말 좋아. 모든 나라에 이런 노래책이 존재한다면 좋겠어.”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한나, p.64)
한나는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 당연히 있을 것 같다. 이미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몇 개 떠오르지 않았을까.
한나: 제 명함에 ‘만나기 위해 그리는 사람’ 이렇게 적었어요. 작가, 활동가 이런 게 아니라. 상황을 연출하는 기획을 하는 것도 그리는 거잖아요. 지금 그림을 그리고도 있고요. (오늘의 인터뷰는 ‘노래’로 만났지만, 그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제가 지금 그리는 장면이 몇 개가 있어요. 동네 사람들하고 노래 부르는 거. 동네 어린이들, 주인집 아저씨, 아래층 사는 분, 욕쟁이 할머니 이런 분들이랑요. 그게 엊그제 됐잖아요, 어쩌다 보니 수성동 계곡에서 했잖아요. (웃음) (인터뷰 이틀 전, 서촌 수성동 계속에서 동네 사람들과 싱얼롱을 했다. 거기엔 무려 300명이 왔다고 한다.)
또 하나가 암 환자들. (2018년 그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집중 치료를 받고, 회복하며 적은 글을 다듬어 2024년, 『낫고, 낳고, 나아가기』라는 책을 펴냈다. 투병 생활을 했기에 헤아릴 수 있는 부분이다.) 회복 중이거나 이미 회복했거나 아니면 치료 상황에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편안하게, 또 죽음을 다룬 노래도 할 수 있겠죠.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에서 하면 어떨까도 생각해 봤어요. 그다음 어린이 싱얼롱. 근데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많이 부르겠죠? 인생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시기니까. (웃음) 그런 그림이 있어요, 그런 풍경이.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진다. 마지막에야 밝히지만, 그와 가까워진 계기는 처음엔 그림이었고, 두 번째는 서촌-지금은 산청에 살지만 나는 학창 시절을 서촌에서 보냈다-이었으며, 세 번째가 암-최근 유방암 판정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그였다-이었다. 인터뷰 모집 소식을 듣고,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 때문에 그에게 연락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싱얼롱이나 인터뷰는 매개에 불과했고, 이참에 그를 깊이 알고 싶었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온 세계를 감도는 시절이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남녀·세대·인종 간 양극화, 계엄, 전쟁, 산불, AI 등 도대체 뭐가 시급한 문제이며,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은 고사하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 하나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을 공기처럼 마시는 시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에서 본 짧은 문구가 떠오른다. ‘우울할 땐 내 방부터 정리하세요.’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일 땐 출발을 ‘나’로 잡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의 손도 잡아보자. 앞으로 나는 그의 말을 노래 가사처럼 떠들고 다닐지도 모른다. 노래는 힘이 세다고.
사진 제공 / 이한나
인터뷰어 : 김효림
어쩌다 흘러 들어온 산청에 10년째 거주 중. 생긴 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날마다 관찰하며 산다. 그림은 자주 그리고, 종종 글도 쓰며, 가끔 인터뷰도 한다. 세 개의 빈도가 뒤바뀌기도 한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노래할래요?
_같이 있으면 마음이 환해지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저자 이한나
어디서부터 그를 소개해야 할까. 노래하는 사람. 그리는 사람. 경복궁 옆 고즈넉한 서촌에 사는 사람. 이것저것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만나면 유쾌한 사람. 헤어지고 나면 자꾸 떠오르는 사람. 그래서 오래 보고 싶은 사람.
한마디로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마침 계절마다 열리는 정기 ‘싱얼롱’(singalong. 노래를 함께 부른다는 영어 단어. 우리말에 해당하는 말이 없어 편의상 ‘싱얼롱’이라 쓴다. 덴마크어로는 펠레상(Fællessang)이라 부른다.)이 6월에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싱얼롱에도 참석하고 인터뷰도 하면 딱이다, 싶었다. 함께 노래하다 보면 그를 더 알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두 시간 남짓 네 곡을 불렀다.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간디학교 교가 ‘꿈꾸지 않으면’, 이소라 ‘청혼’, 여유와 설빈 ‘생각은 자유’. 가사를 곱씹으며 육성으로 또박또박 노래한 게 언제였던가. 내가 쓰지도 않은 가사에 힘을 받아 주문처럼 왼 적이 있었던가. 그 가사가 내 말인냥 세상을 향해 말했던 적 언제였나.
싱얼롱을 마치고 그의 집에 들러 장비를 정리했다.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며 인터뷰하기 좋은 타이밍을 살폈다. 싱얼롱할 때 놓아두었던 꽃이 방을 환히 밝힌다. 꽃을 바라보던 그가 불쑥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나: 이런 꽃도 처음에는 하나씩 줄 수 있게 준비했어요, 봄이면 봄에 어울리는 튤립. 스무 명이 온다고 하면 튤립 스무 개를 사는 거죠. 꽃병에 꽂았다가 마지막엔 포장지에 가져갈 수 있게…….
효림: 돈도 안 받는다면서요? 후원금은 있나요?
한나: 지금 하는 공간이 서울시에서 조성한 문화공간이라 규정상 참가비를 못 받아요. 영리적인 걸 할 수 없대요. 대관료는 있는데 저렴한 편이죠. 그 안에 음향, 화장실 등 시설이 다 있어요. 쾌적하고 교통편도 좋죠. 근데 참가비를 받지 않고 지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거예요.
다른 곳에서 대관을 20 인가 30만 원 내고 또 해 봤어요. 참가비를 좀 받았죠. 근데 한 번 해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장비는 만족스럽지 않은데 대관료도 비싸고……. 그리고 저는 공공적인 성격을 띠고 싶었거든요, 누구나 와도 되는. 너무 작고 폐쇄적인 공간을 빌려서 하게 되면 자칫 사적인 모임으로 설정될 것 같았어요. 공간이 말해주는 게 있잖아요.
효림: 공간의 힘이 있군요. 오늘 노래한 공간은 층고도 높고, 노래가 잘 울리는 곳이더라고요.
(서울생활문화센터 체부.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 있다. 1931년 건축된 체부동 성결교회를 서울시에서 매입 후 리모델링해 2018년 개관했다. 홈페이지에는 ‘생활 음악 동아리를 위한 거점 공간이자 지역 주민을 위한 생활권 형 문화공간’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싱얼롱에 딱 맞는 곳이란 얘기다.)
한나: 소리가 잘 퍼지지 않는 공간에 가서 해보니까 확실히 힘이 들어요. 여긴 오래된 건물이라 역사성도 있고, 건축 자체가 함께 노래 부르기에도 좋죠. 교회 공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더라고요. 한곳에서 계속하니까 단골들도 편하게 오시고요.
효림: 경복궁 옆이라 관광지이고 사람도 많은데, 여기에 들어오면 딱 ‘우리만의 공간’ 같아요. 조용히 노래 부르고 끝나면 다른 세계로 가는 느낌도 있고.
한나: 맞아요. 바로 나가면 주점이랑 먹거리 시장이잖아요. 사람들은 우리가 노래하고 왔는지 모르겠죠. (웃음) 작년 12월 조하문의 ‘눈 오는 밤’을 불렀어요. ‘옹기종기 모여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창 밖엔 조그만 눈송이’ 이런 가사였는데, 노래 부르고 나갔는데 진짜 눈이 오는 거예요! 가로등이 비치는 가운데 눈이 정말 예쁘게 왔어요. 사람들 다 ‘와, 눈이다!’ 이랬죠.
효림: 뭔가 다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죠.
한나: 그러면 사람들이 더 운명적으로 느끼죠. 그럴 때마다 참가비를 받지 않고 싶은 유혹이 강해져요. (웃음) 이런 시간이 다음에도 이어지길 원하신다면 후원을 해주세요, 이렇게 말해요. 저는 감사하니 차를 내리죠. 계절에 맞는 좋은 차를 골라서 정성껏 내려요. 오늘은 루이보스였어요. 카페인도 없고, 여름엔 좀 시원한 게 좋으니까.
효림: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군요.
한나: 이제 공간도 익숙해져서 제가 리허설하는 동안 팀얼롱 친구들이 다 세팅해요. 누군가는 컵 다 씻어놓고, 누구는 의자 놓고. 제 역할을 하죠. 손수 구운 쿠키를 가져와 나누는 친구도 있고요. 그전에는 제가 일을 나누지 못해 뒤에서 하는 게 많았다면 지금은 친구들이 많이 도와줘요. 그런 것들이 정돈되는데 1년 반 걸렸어요.
늘 준비하는 계절꽃
그러고 보니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기타와 피아노가 노래의 풍성함을 더하고, 처음과 끝에 마음을 적도록 마련한 방명록 등 준비한 손길이 세심하다. 노래 부르는 중간중간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이도 있었던 것 같다. 팀얼롱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아니 그 전에 싱얼롱은 언제 시작했을까.
한나: 이 책을 2022년 언리미티드 에디션 (2009년부터 매해 열리고 있는 독립 출판, 아트북 축제.) 에 소개했는데, 그때 북페어 관계자분이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북서울미술관에서 무작위로 오는 사람들과 처음으로 싱얼롱을 했죠. 그때는 덴마크 노래를 불렀어요, 한글로 써서. 근데 점점 덴마크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어졌어요. 노래 부르는 게 뭐가 좋은지를 알게 된 단골이 생긴 거죠. 초반에는 저도 좀 갇혀 있었어요. 덴마크 얘기를 더 많이 했죠. 친구들이 덴마크 문화 대사라고 했어요. (웃음)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한나, 반채움 스튜디오, 2022.
덴마크의 성인들을 위한 학교 ‘호이스콜레(Folkehøjskole)’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접한 덴마크 고유의 함께 노래하는 문화, 펠레상(Fællessang)을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사진 그리고 글과 함께 소개하는 책이다.
효림: 출발은 덴마크였지만 출판하고 나니 마치 생물처럼 변하는군요.
한나: 북서울미술관 워크숍에서 마스크 끼고 울면서 노래를 부른 여자 두 분이 있었어요. ‘이런 거 또 해주세요’ 나중에 이런 DM도 주셨고요. 다음 북토크에 그분들이 또 오셨어요, 제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서 책을 또 사가더라고요. 되게 신기했어요.
2022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의 첫 싱얼롱
한나: 이게 필요하고,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느끼던 차에 좀 더 용기를 내서 정기 싱얼롱을 시작했어요. 2023년은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해서 10번 했어요. 울면서 노래 부른 그 친구들이 한 번도 안 빠지고 10번을 다 왔어요. 그 친구들에게 송가이드(싱얼롱하는 노래들 중 한 곡을 선정하는 역할)를 해달라는 제안을 했어요. 노래를 가져와서 선정의 이유를 사람들에게 얘기했는데 이미 제가 하고자 했던 바를 더 넘어서 해석을 해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송가이드 코너를 만들었어요. 계속 오는 사람들도 선곡에 참여할 수 있게.
효림: 조금씩 진화했군요!
한나: 저는 똑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르니까.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하면서 많이 다듬어졌어요. 2년째 됐을 때는 쫄지 않게 됐죠. 왜냐하면 이미 저장된 게 있으니까. 밑천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느슨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서 단골이 생겼어요. ‘저도 뭔가 도와주고 싶어요. 이러다 지치면 안 되니까 뭐라도 할래요’ 이런 분들이요. 아예 생판 남인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팀얼롱이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혼자 한 시즌 1을 마무리하고, 시즌 2로 넘어갔죠. 제가 이런 거 한다고 하니까 친구들도 몇 번 왔어요. 또 반주하는 친구들도 생겼고요. 처음엔 4명이었는데 지금은 8명이 됐어요.
효림: 회의도 하나요?
한나: 회의는 안 해요. 그냥 놀면서 제 대화 파트너가 돼요. (웃음) 카톡방에서 상의하고 싱얼롱에는 시간 되는 사람이 오죠. 선곡이나, 모임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팀얼롱 친구들이 늘 좋은 의견을 줘요. 처음에 1년 넘게 뒤풀이를 안 했어요. 담백하게 노래만 부르고 헤어졌어요, 부담 주기 싫어서. 근데 사실은 다들 궁금했나 봐요. 그러다 한번 확 친해진 계기가 있었죠. 그때 밥도 먹고, 막걸리도 먹고. (웃음) 왜 노래 모임에 오게 됐냐, 이런 말도 오갔죠. 공통적인 얘기가 우리 생활 속에서 만나기 힘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 결론은 노래 부르자고 했을 때 오는 사람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어요.
효림: 싱얼롱 시작할 때 사람들 얼굴을 봤는데 다 해사하더라고요. 사심이 없고.
한나: 순수하고 맑아요. 나눠주는 말도 시 같아요. 애초에 노래하러 갈래, 했을 때 그러자고 응하는 사람의 정서가 이쪽에 열려 있다고 생각해요. 자석처럼 붙는 거죠. 처음엔 걱정했거든요, 불특정 다수에게 열어놔도 될까. 근데 한 번도 불편감을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팀얼롱이 분위기를 만들어주니까 오는 분들도 맞춰지는 것 같아요.
효림: 사람들이 생글생글 웃고 있길래 저는 다 아는 사이인 줄 알았어요.
한나: 서로 다 몰라요. (웃음)
2025년 6월 7일 열린 여름 싱얼롱
효림: 싱얼롱이 ‘활동’일까요? 한나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생각하나요? 싱얼롱이 한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한나: 규정을 내려본 적은 없어요. 나는 활동가다, 한 적도 없고, 활동가는 이래야만 한다는 틀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냥 저는 하고 싶은 거 하는 중이에요. (웃음)
이게 교육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일상에 이런 음악이 들어오는 게 굉장히 좋다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노래가 감상하거나 잘해야 하는 경연의 성격을 띠지 않고도 좋은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지만 꾸준히 실천해 보고 싶어요.
효림: 싱얼롱하며 어려웠던 적도 있겠죠?
한나: 싱얼롱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너무 없으면 걱정이 되죠. ‘몇 명이나 올까?’ 이럴 때가 있었어요. 한번은 참가자가 8명 정도 모였던 적이 있어요. 기대했던 인원보다 적어서 아쉬워하는 저에게 근데 반주하는 친구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너무 좋잖아, 행복하잖아, 3명이 와도 싱얼롱은 되잖아.’
근데 기획하는 저는 원래 취지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나를 도와주겠다고, 돈도 안 받고 반주해 주는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모으는 데는 문제 없어요. 제가 계속하니까 친구들이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나 봐요. 5명이 있으면 3명은 한 번 와요. 근데 2명은 또 오거나 친구를 데리고 와요. 그러면 또 채워지는 거죠.
효림: 친구 데리고 오기 좋긴 해요. 만나면 다들 비슷하잖아요. 카페 가거나 전시 보거나 등. 결국 다 소비하는 건데 이건 새로운 경험이잖아요.
한나: 자꾸 색다르게 하고 싶어서 제가 돈을 안 받으려고 하나 봐요. 페스티벌이나 영화 보러 갈래 물어보면 보통 참가비 얼마야, 티켓 얼마야, 이러죠. 돈을 내고 즐기는 것이 당연한 문화죠. 거기에 저는 의외성을 주고 싶은 거예요. 순수한 의도와 자발적인 참여로 이렇게 즐거운 장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개별적으로 받는 참가비도 좋지만, 조금 더 안정적인 기금을 지원받아 정기 싱얼롱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지원사업에 공모하면 잘 안되더라고요. 이게 노래를 부르고 헤어지는 거잖아요. 그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건데, 거기에 뭔가를 붙일수록 그냥 평범해지더라고요.
저는 미술 전공하고, 미술 교육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어보고, 기관에서 일하면서 수업도 해보고,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근데 덴마크에서 인상 깊게 느꼈던 건 단순한 구조의 싱얼롱이예요.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 집중한다’예요. 내가 이곳에 속해 있음을 느끼는 감각 그 자체요. 화성을 나누고 음정과 박자를 따지고 이 부분을 이렇게 불러야 더 잘 부르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덧붙일수록 원래의 본질과 멀어지죠. 그래서 빼고, 더 빼고, 다 뺐어요. 그걸 서류로 쓰면 전달이 잘 안되더라고요.
효림: 서류는 증명해야만 하니까요.
한나: 그걸 영리하게 잘 써야지, 라는 마음과 서류 작업으로 소진되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 돈을 투입해서 이걸 끌어왔고, 의도와 방향을 지킬 수 있었고, 이것에 공감해 준 사람들과 팀얼롱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수익 구조부터 짰다면 팀얼롱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냥 사업화가 되어 역할을 나눴겠죠. 그러면 다른 성격으로 잘 갔겠지만, 이거는 그런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가난해졌고, 사람들이 도와주고, 커뮤니티의 성격이 생겼고, 후원금도 조금씩 받게 된 거죠.
효림: 스태프의 분위기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한나: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더 오겠죠. 아까 송가이드 한 ‘여리’ (여리는 이소라의 ‘청혼’을 선곡했다. 그리고 같이 온 남자 친구에게 그 자리에서 청혼했다!)가 친구를 데리고 오고 그러다 정말 결혼식에 저를 초대할 수도 있겠죠. 누군가한테는 저를 ‘노래하러 가서 알게 된 친구야’ 이렇게 소개할 수도 있어요. 저는 우연이 있고, 약간의 낭만이 섞인 그런 게 너무 달콤하고 좋아요. 그래서 이렇게 재미난 관계가 생겨날 수 있는 소규모가 좋은 것 같아요.
싱얼롱 끝나고 적은 소감
한나: 힘든 건 반주자들이에요. 그들은 돈을 받지 않고,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만들겠다는 선의와 팀얼롱이라는 소속감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 부분을 내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해요. 스태프뿐 아니라 전문 반주자들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친구들이 지치지 않으면서 의미를 갖게 할 수 있을까. 아마추어여도 충분히 반주할 수 있잖아요. 전문 연주자도 마인드가 어떻냐에 따라 해줄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저는 반주자들도 더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한 명이 무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금은 반주자 친구들과 리허설하고, 서로 생각과 고민을 나누며 먹는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 다예요. 그때 사는 밥은 사람들이 후원해 준 돈으로 먹어요. 각자 하는 일이 있으니, 일정을 맞추기 힘들 때는 기타는 또 기타대로,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따로 만나고. 소통에 드는 품이 많아요.
효림: 싱얼롱하기 좋은 노래가 있나요?
한나: 단순한 노래요. 복잡한 기교를 부려야 하는 노래 말고요. 주로 포크가 많아요.
효림: 그래서 가사가 더 잘 들어오는 것 같아요. 멜로디를 금방 습득할 수 있으니까.
한나: 싱얼롱은 스토리텔링이 중요하죠. 사람들이 이야기하게끔 하는 게 포크니까. 때로는 가곡도 부르고 동요도 불렀어요. 일단 쉬워야 해요. 함께 모두가 금방 익혀서 부를 수 있어야 해요. 또 하나는 시국 상황. 우리가 처한 이 상황에 어울리는 곡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4월은 항상 추모할 수 있는 노래를 택했어요. 작년에는 선과영의 ‘슬픔의 자리’를 불렀어요. 네 곡 중 한 곡은 지금 우리 사회와 연결할 수 있는 노래를 항상 넣어요.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와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상에서 소화하기 어려웠던 감정도 함께 노래하며 해소할 수 있어요.
효림: 12.3 계엄 때는 뭐가 있었나요?
한나: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였어요. 탄핵 이후에는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었고요.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이란 가사가 나오죠. 지금까지 한 60-70곡 모인 것 같아요.
책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한나: 이 책이 완성도를 완벽하게 해서 기성 출판사에서 낸 게 아니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디자인하고, 독립 출판으로 소개했잖아요. 그렇게 하길 잘했어요, 더 자유롭고. 만약에 이걸 기존 단행본으로 냈다면 저도 지금처럼 흥미를 갖고 끌고 오진 못했을 수도 있어요. 완결된 게 아니라 계속해서 채워가고 있다고 느껴요.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대안교육’, ‘덴마크 문화’, ‘음악’, 이 세 개가 엮여 있어 많은 사람을 묶을 수 있다고. 교육만 얘기하면 재미없고 따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덴마크만으로 접근하면 관광이나 여행 쪽으로 빠질 수 있고요. 성악 전공하는 사람이 친구한테 이 책을 선물 받았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클래식한 걸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래, 본질은 결국엔 사람과의 연결이지, 이런 공감을 받는 것 같아요.
‘행복’을 보고 온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한나: 첫해 북페어에서 어떤 작가를 만났어요. 그분은 깊은 우울 끝에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죽음을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책을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그 부스로 다가가기 선뜻 어려워하는 분위기였어요. 이 분하고 북페어 3일 동안 얘기를 진짜 많이 했어요, 제 또래이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노래 모임에 오세요, 그랬어요. 그분이 그날 모임이 두 개였나 봐요. 하나는 생존자 모임.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았기 때문에 생존자들이잖아요. 그다음이 싱얼롱이었던 거죠. 그날 부르는 노래 중 가사가 ‘나는 살아있다, 나는 노래한다’ (권진원 x 2ONE ‘산,들,바람,숲’) 가 있었어요.
모임이 엄청 따뜻했어요. 임산부도 와있고, 아기들도 있고, 방에서 해서 되게 따뜻하고. 어떤 사람은 복숭아도 사 오고, 꽃도 있고. 그날 노래가 차분하고 살짝 울적한 느낌이었는데도 묘하게 따뜻해서 힘을 얻는 분위기였어요. 그분이 마지막에 ‘그래, 이렇게 살아도 되는데.’ 그러더라고요. ‘왜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는 모임에 갔다 왔는데, 여기에서는 어떻게 살고 싶니, 라고 묻네요.’ 라고.
고립되어 있거나 나도 모르는 불안에 잠식되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 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좋은 노래를 사람들과 안전하고 다정하게 부르며 마음이 후련해졌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다들 눈치 보다가 노래 부르고 나서 마지막에는 마사지 받은 것처럼 얼굴이 뽀얘져서 나가거든요. (웃음) 굳이 ‘치유’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죠. 음악 치료사라고 하며 제 책을 사는 분도 있었어요.
효림: 종교가 전부였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나가 노래했겠죠. 굳이 치료받지 않아도 다 같이 눈 마주치고 노래 부르며 자연스럽게 정화됐을 것 같아요. 그러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종교도 없고, 더 이상 학교도 다니지 않아 노래 부를 일 없는 현대인들은 뭔지는 모르겠는데 허전한 게 있는 거죠.
한나: 그게 퍼즐을 찾은 것처럼 하나의 요소가 채워지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함께 뭔가를 하는 행위, 예술 행위, 정신적 행위, 문화적 행위, 이런 걸 소비와 직결되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우리는 보통 경험을 사잖아요. 비싼 콘서트 같은 데 가야 문화적인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게 된 시대잖아요. 그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남들보다 더 잘나야 하고. 그러다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 거에 너무 몰리면 ‘죽고 싶은’ 상황이 오는 것 같아요. 그걸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스스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압박이 심하니까.
꼭 노래가 아니더라도 공동으로 뭔가를 하는 경험, 소비하지 않아도 낯선 사람들과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경험 자체가 귀해진 것 같아요. 농촌 사회에서는 농번기에 일도 도와주고,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호혜로 주고받는 게 있잖아요. 도시로 갈수록,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경험을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근데 싱얼롱은 돈도 안 냈는데 차도 주고,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강제하는 것도 없고, 느낌은 편안한 거죠. 그게 노래의 힘인 것 같아요, 영혼을 채워주는. 오래된 노래, 포크나 월드 뮤직, 많은 사람이 이미 증명한 노래를 부르니까 저는 그 힘에 기대서 가는 거예요. 굳이 창작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그걸 잘 배치하고, 그때그때 맞는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포인트만 잡아요. 제가 기획, 또는 매개 역할을 하고, 팀얼롱이 저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죠. 잘하고 있고, 필요하다고.
2025년 6월 5일 서촌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한나는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을까. 당연히 있을 것 같다. 이미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몇 개 떠오르지 않았을까.
한나: 제 명함에 ‘만나기 위해 그리는 사람’ 이렇게 적었어요. 작가, 활동가 이런 게 아니라. 상황을 연출하는 기획을 하는 것도 그리는 거잖아요. 지금 그림을 그리고도 있고요. (오늘의 인터뷰는 ‘노래’로 만났지만, 그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제가 지금 그리는 장면이 몇 개가 있어요. 동네 사람들하고 노래 부르는 거. 동네 어린이들, 주인집 아저씨, 아래층 사는 분, 욕쟁이 할머니 이런 분들이랑요. 그게 엊그제 됐잖아요, 어쩌다 보니 수성동 계곡에서 했잖아요. (웃음) (인터뷰 이틀 전, 서촌 수성동 계속에서 동네 사람들과 싱얼롱을 했다. 거기엔 무려 300명이 왔다고 한다.)
또 하나가 암 환자들. (2018년 그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집중 치료를 받고, 회복하며 적은 글을 다듬어 2024년, 『낫고, 낳고, 나아가기』라는 책을 펴냈다. 투병 생활을 했기에 헤아릴 수 있는 부분이다.) 회복 중이거나 이미 회복했거나 아니면 치료 상황에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편안하게, 또 죽음을 다룬 노래도 할 수 있겠죠.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에서 하면 어떨까도 생각해 봤어요. 그다음 어린이 싱얼롱. 근데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많이 부르겠죠? 인생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시기니까. (웃음) 그런 그림이 있어요, 그런 풍경이.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진다. 마지막에야 밝히지만, 그와 가까워진 계기는 처음엔 그림이었고, 두 번째는 서촌-지금은 산청에 살지만 나는 학창 시절을 서촌에서 보냈다-이었으며, 세 번째가 암-최근 유방암 판정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그였다-이었다. 인터뷰 모집 소식을 듣고,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 때문에 그에게 연락한 것이 여기까지 왔다. 싱얼롱이나 인터뷰는 매개에 불과했고, 이참에 그를 깊이 알고 싶었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온 세계를 감도는 시절이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남녀·세대·인종 간 양극화, 계엄, 전쟁, 산불, AI 등 도대체 뭐가 시급한 문제이며,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은 고사하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 하나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을 공기처럼 마시는 시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에서 본 짧은 문구가 떠오른다. ‘우울할 땐 내 방부터 정리하세요.’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망일 땐 출발을 ‘나’로 잡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의 손도 잡아보자. 앞으로 나는 그의 말을 노래 가사처럼 떠들고 다닐지도 모른다. 노래는 힘이 세다고.
사진 제공 / 이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