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내가 받았던 상호부조의 힘을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전하고 싶다 - 띵동 소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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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았던 상호부조의 힘을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전하고 싶다 

-  띵동 소라 활동가


2025년 6월 8일,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소라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는 소라 활동가의 동의를 통해 평어(예의 있는 반말)*로 정리되었습니다. 인터뷰 기획 의도와 과정의 이해를 위해 소라 활동가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하며, 본문은 인터뷰 구술을 정리하여 마무리했습니다.

*예의 있는 반말은 평어의 내용이고 평어의 형식은 ‘이름+반말’이다. 그렇다면 평어가 원하는 건? 평어의 지향점은 생물학적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연스럽게’ 기대되는 상호 존댓말이 아니라 나이나 지위에 영향받지 않는 상호 반말 속에서 각자의 우호 관계와 각자의 위계 없음을 실현하는 것이다. 삶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상실해 갈 수밖에 없는 또래문화의 가치를 언어로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 박혜진 에디터, 『격월간 문학잡지 Littor 39호: 예의 있는 반말2』, 민음사, 2022.12-2023.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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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8. 성북동 카페 늘 골목에서


소라에게.


소라, 안녕. 한톨이야. 종종 거리에서 안부를 나누지만, 새소식을 전하며 부탁의 글을 전해. 2025 공익활동가 주간을 맞아 내 곁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을 의뢰받게 되었어. 읽고, 듣고, 다시 쓰고, 말하고, 표현하는 일을 내 업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으니, 마침 딱! 이라고 생각했지. 

그동안 나는 이 세계의 소수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목도하며, 그 현실을 이웃에게 알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어. 이들은 소수자를 향한 따뜻한 관심과 연대를 부단히 요청했어. 내게는 로커(Rocker)처럼 멋있었고, 마음을 참 시원하게 해주었어. 사회의 태도가 보다 사람다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우리 생활이 안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었지.

이들 중 ‘활동가’는 고착된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당사자와 연대할 길을 찾는 사람들이었어. 또한 세상의 변화를 믿으며 스스로를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지. 극한 상황 속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속에 처한 존재들의 괴롭고 외로운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어. 나처럼 일상을 사는 이들이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야. 나는 활동가들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다른 존재의 연결을 찾고, 이 지구의 ‘생태’를 보다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존재들 같았어. 이번 기회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해보려고 해.

기록은 힘겹지만 그 순간이 아니면 놓치기 쉽고, 금방 사라져버리는 연약한 기억을 소중히 담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해.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한 기록은 그림자조차 갖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 때가 많아. 하지만 어느 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고자 빛을 비췄을 때, 그런 기록이라도 없다면 우리는 텅 빈 공간만을 바라보게 될지도 몰라. 나는 종종 우리가 상실한 수많은 슬픔들을 상상해. 그 애타는 슬픔이 보이지 않아 허무하게 주저앉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 티끌 같은 기록이라도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가 있고, 그 속에서 울림을 일으킬 공명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럼 활동가란 무엇인가? 왜 나는 활동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걸까? 지금은 직업으로서의 활동가가 늘어나는 시대야. 이 직업이 사회에서 더 확대되는 현실을 나는 정말 찬성하고 환영해. 돌봄의 태도와 노동이 사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인정받고, 제도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일이니까. 

소라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며 ‘현상과 실재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짚어보기도 했어. 돌봄과 사랑을 실천하고 혐오와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세상에 점차 많아지는 ‘현상’이 활동가라는 ‘실재’로 존재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예술가로 살아가기를 선택했지만, 이 또한 다른 형태의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분명 활동가라는 직업은 내게 아름답고 즐겁고 선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이 선함이라는 틀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그 선함을 자신보다 더 위에 두는 일들이 많아지곤 하잖아?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을 살리고,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양보하며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우려고도 해. 그러면 드는 생각은, ‘나’라는 존재는 과연 괜찮은지를 다시 묻게 되더라. 내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기에, 이는 합당하고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라고 느꼈어. 

다시 돌아와 ‘활동’의 본 취지를 생각해봤어. ‘나’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자신의 호흡으로 타인과 호흡하며 활발한 움직임을 나누는 일. 이것을 ‘활동’이라고 재정의해보았어. 그 일이 세상을 조금 더 이롭게 하는 방향과 태도를 발견하게 하고, 그 에너지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세우고 허물어내는 구체적인 과정과 결과를 얻게 되는 게 아닐까? 현재 활동가로 살아가는 소라는 사회와 호흡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삶의 루틴을 가지며, 어떤 취미와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소라의 바탕과 일상이 궁금해졌어. 그리고 삶의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다루며 일상을 지내는지도 말이지. 

나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세상으로 나가 타인에게 머물더라도, 다시 내게로 돌아와야 안착되고 뿌리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뿌리가 타인 안에서 온전히 자라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그 뿌리내림으로 자란 ‘소라’의 이야기를 기록해보고 싶어. 마치 어떤 환경과 자리에서 성장한 이름 모를 식물을 상상하며, 그 식물의 생태일지를 써보려는 나를 떠올려봐. 이 일은 나를 울게 할 거야. 울림은 떨림이 되고, 생을 감각하게 하는 환희가 될 거야.

그럼, 소라. 곧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
그리고 서로를 깨우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


한여름과 한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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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8. 성북동 카페 늘에서


Q. 소라, 소개를 부탁해.

나는 글 쓰고 활동하는 ‘소라’라고 해. 지금은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회원모금팀에서 활동하고 있어. 띵동은 소속팀에 관계없이 모든 활동가가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일을 해. 띵동은 정부 지원 없이 100%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단체야. 국내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학교, 가정, 사회에서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고 교육과 경험의 기회에서 박탈되는 현실에 처해 있어. 이런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청소년기를 잘 살아낼 수 있도록 상담과 지원을 하고 있어. 청소년 성소수자가 탈가정을 했을 때는 쉼터, 자립지원관 같은 생활할 곳을 연계하고, 생필품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해.

Q. 나는 소라가 그동안 어떤 자리를 자신의 서식지(머무름이 가능한 자리)로 여기며 살아왔는지 궁금했어. 흔히들 말하길 성공을 위한 원동력을 얻고자 한다면, 사회가 선망하고 인정하는 완성된 자리에 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잖아. 하지만 나는 다른 자리의 이야기가 궁금했어. 소라가 마음 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자리는 어디였을까?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 나는 소라의 삶의 이동과 그 이동에 따른 자신만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그 시간들 덕에 지금 소라가 하고 있는 띵동 활동과 다른 활동을 소화하는 역량이 생겼을 테니까. 그 자리는 구체적인 자리일 수도 있고, 때로는 텅 빈 자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한톨의 질문을 듣고 어떤 장면들이 생각났어. 세 가지 정도의 이야기인데, 모두 ‘빈집’이라는 겹치는 자리에서 일어난 이야기야. ‘빈집’은 일종의 생활공동체였어. 셰어하우스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려나. 실제로는 모두가 주인이자 모두가 손님인 곳이라는 뜻으로 게스츠하우스라고 불렀지만. 셰어하우스라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낭만은 1인 1실에서나 가능해. ‘빈집’은 가난한 사람들이 한 방에 네다섯 명씩 잠을 자는 곳이었고, 그렇게 생활해도 괜찮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어. 가난해도 서로를 지지하고 서로 기대면서 살 수 있다는 걸 실험해보자는 사람들이 모였지. 살 부비며 살다 보니 다투는 일이 잦았고, 지지고 볶으며 사는 공간이었어.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10년 전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빈집 공동체에 살면서 초반에 자주 하던 생각은 ‘저 사람들은 왜 일을 안 하지?’였어. 빈집은 최소한의 비용만 내고 월세와 생활비를 같이 충당했어. 최소한의 식재료비와 공과금을 같이 내고 그 외의 비용은 필요하지 않게끔 하는 주거 공동체였거든. 그래서 많은 식구들이 필요 이상으로 돈을 안 벌었어. 그리고 집에서 놀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동네 사람들이랑 꾸려서 놀았어. 그렇다고 집에 사는 사람들과 엄청 막역한 사이도 아니야. 그래도 어떻게든 그 안에서 살았어. 나도 그 방식을 점점 체득하게 되더라. 절약의 개념이 아니고 뭐랄까, 굳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까지 돈을 벌거나 무리해서 외부에 자원과 관계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상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어.

그 이상한 사람들 중에는 또 다른 무리가 있었는데, ‘동아시아 에코토피아’라는 모임이야. 이 사람들은 일 년에 한두 번씩 전국의 생태 파괴가 일어나는 현장에 전기 없이 자전거만 타고 가. 서울에서 출발해 가리왕산, 지리산, 낙동강까지 가서 어떤 생태 파괴가 일어나는지 현장을 목격하고 기록했어. 아무도 그 사건을 파헤쳐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었어. 대가 없이 고생스런 투어를 자처하고 현장을 만드는 사람들인 거지. 캠프가 없는 시즌에는 소소한 요리를 해서 우리 집 현관문 앞까지 가져다주고, 초코빵을 구워다주는 사랑스런 친구가 있어. 이런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 지금의 나를 구성했다고 생각해. 


9a61672a1de7e.jpg2023년, ‘동아시아 에코토피아’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지리산 난개발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 출처. 소라


마지막으로 이 많은 이상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던 때를 이야기하고 싶어. 그 사람은 청소년이었고, 트랜스젠더였고, 장애인이었어. 같은 동네에 살았던 나는 그를 ‘케이시’라고 불렀어. 알고 보니 어느 단체에서는 ‘느루’라고 불렀고, 또 다른 단체에서는 ‘모모’라고 불렀던 ‘케이시-느루-모모’가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동네에서 말다툼을 하고 밥을 먹고 놀고 같이 춤을 추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거야. ‘그 트랜스젠더가 내 이웃이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 세계는 박살이 났어. 그때 내 자리가 또 하나 만들어진 순간이었어. 이게 다 빈집에서 일어난 일들이야.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이제까지 일궈온 굵직한 커리어들을 이야기하게 될 줄 알았어. 그런데 나를 구성하고 있는 건 빈집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이더라. 띵동에 오기 전에 해왔던 진보 정당 활동이라든지 영화제 커리어 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활동은 나한테 교훈과 상처를 줬던 일들이었지, 나를 세심하게 구성한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래서 한톨의 질문이 새삼 놀라웠네. 


Q. 소라가 들려준 세 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잘 들었어. 말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텐데. 얘기해줘서 고마워. 그럼, 다음 질문은 소라가 들려준 자리와 연결해 세 가지 기준을 제안해보려고 해. 첫 번째는 소라의 정체성과 연결된 자리, 다음은 타인과 연결된 자리, 마지막으로는 우리와 연결된 자리의 이야기야. 이 세 가지 기준을 제안한 이유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작은 단위의 존재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야. 결국은 내가 있어야 하고, 너가 있어야 하며, 우리라는 어떤 공동의 자리가 있어야 사회가 구성되잖아. 꼭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하지는 않더라도, 소라의 ‘자립과 관계 맺음’의 방식을 듣고 싶었어. 결국 내가 태어나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이 사회 안에서 연결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활동가’의 삶을 가능하게 했던 소라의 삶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나는 막내딸로 자랐어. 두 남매 중에 막내딸이고 오빠가 있어. 몰랐지? 나, 귀염둥이 막내딸로 자랐어. 사회적 통념 속 어린 여성들이 마땅히 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너무 잘 수행해왔던 여자아이였어. 그런데 20대 초반, 동네에서 진보 정당 활동을 시작하면서 뭔가를 느꼈어. 더 이상 막내 딸이 아닌, 내가 속한 사회 구성원과 동등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 비슷한 시기에 이성애도 그만두고 싶었어. 그것도 다름없이 내가 그냥 역할 수행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거든. 아무도 안 시켰는데 남자친구 어머니한테 잘 보이려고 하고, 맛있는 거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고. 

귀엽던 나, 막내 딸의 나, 남자한테 잘하는 나,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마땅히 해야 된다고 여겼던, 안 맞는 옷을 벗어봐야지 했어. 어느 날 머리를 빡빡 밀어봤어. 그때부터 퀴어로 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사회적인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나니 편안한 느낌이 들더라. 지금은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어.  


0b9d26aa6b696.jpg2024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띵동의 캠페인을 알리고 있다. / 출처.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두 번째로 ‘상호부조 모임’을 소개하고 싶어. ‘상호부조 모임’이 뭐냐면, 빈집에서 어떤 사람한테 큰 재난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그 사람을 도와주던 모임이야.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중고나라에서 카메라 사기를 당했어. 카메라를 샀는데 택배로 벽돌이 온 거야. 당시에 그 사람은 실직 상태였고 사고로 깁스를 한 상태였고, 하여튼 온갖 재앙이 다 겹치는 시기였어.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거 다 그 사람이 잘못한 거잖아. 부주의로 인한 자기 과실이니까. 그런데 다들 발 벗고 도와줬어. 어떻게 도와줬냐면, 하루는 전부 모여서 사과잼을 만들어서 주변에 팔아다가 돈 메꿔주고, 근처 카페 콩밭에서 콜드브루를 지원해줘서 그것도 팔아다가 돈 메꿔주고. 그렇게 상호부조금을 만들어서 도와줬어. 그 이후로 또 어떤 사람이 암 투병을 하게 됐어. 그 사람도 다 같이 그냥 병원비를 모아서 도와줬어. 그렇게 누구라도 도와줬어. 

내 책임은 아닌 일이지만, 어떤 한 사람에게 재난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힘을 합쳐 도와주는 게 당연했어. 그냥 그랬어. 나는 이 상호부조의 경험을 20대 초반부터 해왔어. 사실 활동가의 삶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잖아. 나는 띵동 들어오고 나서 보험도 처음 가입했단 말이야. 근데도 그다지 불안하지 않거든. 아주 막연하지만, 내가 어려워지면 주변 사람들이 날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 같아서 그래. 사실 이게 나 혼자 김칫국 마시는 걸 수도 있는데 말이지. 그럼에도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크게 아프면, 예를 들어 암에 걸리면, 내 주변 사람들이 도와줄 것 같은 거야. 왜냐하면 난 봤으니까. 실제로 도와주는 모습을 봤고,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

(적금 물론 적금 들어야 돼요. 활동가들 적금 들어야 됩니다. 여러분, 적금 들고 재테크 나쁘다는 거 아니에요, 그냥 내가 재테크를 할 줄 모르는 것뿐이에요. 근데 나는 그거 할 시간에 주변 관계를 돌봐. 물론 재테크할 돈도 없지만.)

그런 상호부조의 경험이 내가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없는 활동을 할 때 적어도 내가 완전히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줬어. 되게 중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 물론 계속해서 불안감은 있지만.

동성애자나 비혼주의자한테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혐오 발언 중에 대표적인 게 있어. “결혼 안 하면 넌 나중에 늙어서 혼자 외롭게 늙어 죽을 거야.” 근데 외롭게 혼자 늙어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을 수 있잖아. 결혼을 안 해도 옆에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나 네가 있는 곳에 잠시 쉬러 가도 될까”라고 물어볼 사람이 있다는 확신. 어떤 곁이 있다는 확신 말이야. 

난 그게 다 상호부조의 원리 안에 있다고 생각해. 그게 나에게 되게 흔들림 없는 뿌리가 되어 있다는 게 나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고 사실 자긍심이기도 한 것 같아. 꼭 가족이나 동반자가 아니어도 믿을 수 있는 타인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믿음이 충분히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감정과 감각만 있어도 달라져. 

마지막으로 ‘우리’의 자리에 대한 이야기야. 이건 글쓰기와 관련된 거야. 인터뷰를 하러 오면서 ‘내가 활동을 왜 했더라’ 하고 오랜만에 생각해봤어. 활동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도 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그냥 내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 어느 매체에 기고할 때 필자 소개를 한 줄로 쓰는 란이 있잖아. 언젠가부터 나는 “지키고 싶은 게 있을 때 글을 쓴다”고 소개하곤 했어. 나를 울리는 걸 지키고 싶을 때 글을 쓴다고. 활동도 똑같아. 나를 울리는 것, 그러니까 이게 곧 나라고 생각되는 것. 그걸 지키고 싶은데, 그걸 지키는 건 곧 나를 지키는 거야. 그럴 때 글을 쓰고 활동을 해. 글을 쓸 때 나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써.

예를 들면, 나는 결코 마르지 않은 몸이고 어렸을 때부터 풍채가 있었어. 작은 사이즈가 아닌 몸의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산다는 게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어떤 시선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지 글로 이야기했어. 그때 받은 공감들이 또 나를 만들었지. 

HIV/AIDS나 트랜스젠더 인권에 관해 글을 쓰면서 내 삶에 포개지는 것들이 있어. 친구들과 함께 ‘연대하는 채식인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하게 쫓겨나지 않으려고 투쟁하는 세입자들에게 밥으로 연대하는 활동을 하기도 하는데, 그 현장이 어땠는지 글을 쓰고 사람들과 나누기도 했어.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있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만드는 게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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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서울 중구 을지OB베어에서 연대하는 채식인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 출처. @seyoungracie


내 자리가 이렇게 포개지는 느낌이 들었어. 인터뷰 시작 전에 얘기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이제까지의 활동들이 커리어로 쌓여서 하나의 지원처로 귀결되기도 해.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어. 내 활동들은 너무 산만하고 분산적이었거든.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한 활동들이 아니라, 냄새 맡는 강아지처럼 내 이야기들을 쫓아서 산책하듯 현장들을 다녔으니까. 때로는 외로워서 갔고,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갔어. 같이 있을 때 비로소 나도 회복되는 걸 느껴서 간 적도 있고. 이 사람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갈 때도 있었고, 솔직히 나한테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갈 때도 있었어. 난 그게 연대라고 생각해. 

연대 현장에는 사실 마음 아픈 사람이 진짜 많아. 근데 난 그것 또한 현장의 힘이라고 생각해. 이런 것들이 복잡한 별자리가 되어 나를 만들었는데, 글쓰기가 그 별자리를 잘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이런 활동을 내 것으로만 남기지 않고 싶다는 생각인 것 같아. 그게 활동가 마인드 아닐까?


Q. 소라가 ‘나’를 발견하고 ‘너’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발견하는 방식에 ‘글’도 있었지만, ‘활동’이 있었다고 말해준 부분이 새로웠어. 이번 인터뷰는 공익활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관련 질문을 해볼게. 그렇다면 앞으로 활동을 통해 발견하고자 하는 ‘우리’는 무엇일까?

지금 정착한 곳은 띵동이니까, 띵동 활동가로서 먼저 이야기해볼게.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옛날의 나처럼 상호부조의 경험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 청소년 성소수자가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할 때, 대가 없는 지지와 지원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도 예전에 뭘 하고 싶고 뭘 좋아하는지 탐색하기를 멈추려고 했던 시기가 있었어. 그때 진짜 한 줌의 관심과 지지와 지원만 있었어도 달라졌을 거야. 내가 경험했듯이, 그런 작은 도움만으로도 사람은 꽃피울 수 있어. 내가 받았던 상호부조의 힘을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전하고 싶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이 일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모금도 잘 하고 싶고.

두 번째는 활동가로서 상처받아도 재미나게 살고 싶어. 모든 경험이 배움으로 남길 바라면서 계속 활동하고 싶달까. 어떤 시기에는 ‘출근하고 싶지 않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버티면서 활동했던 때가 있었어. 그때는 정말 도망쳤어야 했어. 지금은 내가 뭘 잘하고, 뭘 더 공부해야 하고, 뭘 돌보면서 해야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이걸 잘 다듬어가면서 오랫동안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 그게 나의 목표야.


Q. 소라의 자리와 삶의 이야기를 잘 들었어. 고마워.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 소라는 어떻게 일상을 건강하게 만들어가고 있어? 루틴이나 취미, 슬플 때 하는 일들처럼 나눌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소라의 하루나 일주일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들려줄 수 있어? 나 같은 너에게 보내는 편지일 수도 있겠어.

‘활동가’가 아닌 친구를 소중히 여겨야 해. 몇 년 전에, 소중한 친구가 나에게 용기를 내서 해준 말이 있어. “소라야, 나는 활동가로서의 너가 아니라 그냥 친구로서의 소라 이야기를 듣고 싶어.” 갑자기 머리가 띵했어. 내가 24시간 동안 활동가일 필요는 없잖아. 나도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인데. 뭐 먹었을 때 즐겁고, 뭐 먹었을 때 잘 싸고, 뭐 했을 때 잠 잘 오는지 얘기할 수 있는 건데. 어떻게 사람이 사회 얘기만 해? 운동 얘기만 해?

고결한 마음 같은 거 내려놓고 활동가가 아닌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퇴근 후에는 잘 놀면서 지내는 거. 그 균형을 맞췄을 때 삶이 진짜 좋아졌어. 나는 특히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데, 가장 친하게 지내는 자전거 모임 친구들은 클럽에서 춤추다가 만났어. 그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세상이 너무 좋고 무거운 짐을 벗은 느낌이야. 그때 비로소 나인 것 같아. 내가 어떤 것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지 생각 없이 그냥 있을 수 있어. 활동가 친구들밖에 없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 사람들은 “활동가 퇴근했다”고 하고, 스위치 끄고 일상 얘기하는 걸 연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두 번째는 나한테 맞는 신체 활동을 찾는 거야. 한창 도망가고 싶은 활동을 할 때는 집에 들어가면 사람도 싫고 몸도 천근만근이고 기진맥진해서 우울하게 잠만 자고 침대에서 안 나왔어. 어떻게든 활력을 찾아보려고 ‘내가 뭘 좋아했더라’ 하면서 나가서 춤을 춰봤어. 내가 춤을 좋아했더라고. 아프로팝이라는 장르의 춤도 한창 췄어. 지금은 이사 와서 멀어서 못 가지만. 지금은 자전거를 타고 요가도 해. 활동가들은 텔레그램 알림이 쉼 없이 울리잖아. 물리적으로 핸드폰을 보지 않고 완전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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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호주 멜버른 여행 중, 아프로팝 댄스 커뮤니티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 출처. 소라


마지막으로는 힘들면 도망쳐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 도망쳐서 회복하는 경험 또한 그다음에 더 잘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거니까. 잘 도망쳐보는 경험도 끝까지 성사시켜보라고 하고 싶어. 책임감에 눌려서 찌부러지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르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해. 활동도 일이고, 나도 소중한 노동자니까!


소라의 What’s in my bag


1. 내가 말아 먹는 김밥

김밥의 핵심은 단무지야. 단무지가 없으면 김밥 맛이 안 나더라고. 그리고 당근은 볶아야 제맛이지. 또 다채로운 색깔도 중요해. 김밥의 색깔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거든. 손이 많이 가는 것 같아도 생각보다 재료는 간단해. 사실 재료 3개만 넣어도 맛있어. 왜냐하면 김밥은 단무지랑 간이 잘 된 밥이 맛의 대부분을 좌우하거든. 그러니까 파프리카 같은 재료로 노란색, 초록색 등 색깔만 잘 구성하면 그만이야. 거의 색깔로 먹는 김밥이랄까? 김밥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난 너무 좋아. 그래서 김밥이 나를 기쁘게 해.


2. 자주 듣는 것

쇼팽의 강아지 왈츠를 좋아해. 여름을 떠올리게 하거든. 유일하게 좋아하는 아이돌은 뉴진스였는데, 날아다녀야 할 때에 활동을 못하고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 받아. 뉴진스 힘내요! 내밀한 상담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너무 많이 들어와서, 더 이상 다른 이야기를 들을 여력이 없더라고. 그래서 가사 있는 음악이나 유튜브는 잘 못 봐. 주로 팟캐스트를 들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비혼세’ 그리고 ‘시골쥐 퀴엇쥐’야.


3. 힘든 책과 귀여운 책.

『디트랜지션, 베이비(Detransition, Baby)』  /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비채

디트랜지션을 결정한 전 애인과 다시 만나 지지고 볶으며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야기야. 막장드라마 같은가 싶겠지만, 이게 이 시대 퀴어들의 삶이고 트랜스젠더의 삶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어. 

트랜스젠더 여성 ‘리즈’와 ‘에이미’는 연인이었지만, 에이미가 트랜스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벅차 성환원(Detransition)을 결정하며 관계가 끝난다. 에이미는 다시 남성이 되어 ‘에임스’라는 이름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사인 시스젠더 여성 ‘카트리나’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문제는 에임스가 성전환 과정에서 잃은 줄 알았던 가임 능력이 온전했다는 것. 어느 날 카트리나가 임신 소식을 알려오고, 에임스는 혼란에 빠진다. 사회적 혐오 때문에 생물학적 남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실 자신이 남성인지 여전히 확신이 없다. 그런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되는 건 가장 ‘남자다운’ 일이어야 하지 않나? 그때 에임스에게 리즈가 떠오른다. 항상 아이를 키우고 싶어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트랜스 여성이기에 낙담하던 리즈. 에임스와 헤어진 뒤로 리즈는 소모적인 관계만 반복하며 지내고 있었다. 어쩌면 셋이서 가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카트리나, 에임스, 리즈는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한다. - 알라딘 책 소개

『여름의 책』 / 토베 얀손 지음, 안미란 옮김, 민음사

할머니가 웃겨, 그리고 좀 이상해.

할머니가 수많은 소녀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가르쳐 주었듯이, 이제 소피아 또한 자주적으로, 자신의 두 다리로 당당하게 여름 속으로 나아간다. 『여름의 책』은 여성 그리고 모두를 위한 아름답고 가슴 저린 ‘성장 소설’이다. - 알라딘 책 소개


인터뷰어 : 한톨
쌀 한 톨 한 톨을 모아 한 그릇의 밥을 짓듯이, 나와 관계한 멀고 가까운 생의 언어를 모아 밥 한 공기 짓고, 나눠 먹는 예술의 자리를 상상합니다. 예술의 자리와 생에 필요한 땅이 소유되기보다는, 생명이 돋아날 수 있는 서식지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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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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