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광장을 만드는 활동가] 건강하고 따뜻한 청년 커뮤니티를 꿈꾸는 활동가 - 평택 청년 플랫폼 피움 정종해 활동가


[기획인터뷰 -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

건강하고 따뜻한 청년 커뮤니티를 꿈꾸는 활동가 

- 평택 청년 플랫폼 피움 정종해 활동가



지역에서 청년운동 한다는 것


Q. 하는 일, 소속된 곳이 엄청 많은 거 같아요. 어떤 게 본캐이고 부캐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직접 소개를 해주시는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네 저는 평택 청년 플랫폼 피움이라는 청년 단체의 대표가 본캐고요.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죠. 진보당 평택시 지역위원회 부위원장 그러니까 이 두 개가 이제 본캐고, 나머지는 그냥 뭐 있다가 없다 하는 그런 부캐들입니다. 요즘에는 로컬 크리에이팅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원래 고향은 대구입니다. 보수의 심장. 용인에서 대학을 다녔고요. 굳이 졸업을 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서 졸업 안 한 채로 지역운동과 청년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노동 현장에 가고 싶었어요. 땀 흘려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하고 싶어서, 일자리 많은 곳이 평택이다 보니까 평택에 온 것이죠. 사실 2009년 쌍용자동차 투쟁 때 평택과 인연이 있었죠. 저도 옥새 파업 마지막 날에 연행되었거든요. 악연이라면 악연이고. 그런데 이게 또 계기가 되어서 평택에서 노동운동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제 평택으로 온 거죠. 

결론적으로는 민주노총 사무처일 잠깐, 지부일 한 2년 정도 하고, 찍먹 정도만 하고, ‘나랑은 좀 안 맞는구나’ 싶어서 열심히 청년들과 함께 활동을 했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운동에 대해서 배울 것도 되게 많았지만, 그냥 청년들과 지지고 볶는 게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나는 청년들이랑 놀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처음부터 지역운동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고, 노동운동을 하려고 일자리 많은 곳을 찾아보니 평택에 오게 되었는데 결국 지역운동, 청년운동을 하게 된 여정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평화운동, 그것도 특정 지역에 천착한 이슈를 다루는 게 아니다 보니 지역운동이나 청년운동에 대해서 잘 몰라요. 평택이라는 ‘지역’에서 ‘청년’운동을 한다는 건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지역운동은 생활에 맞닿아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보통, 뭐 지연 관계라고 하죠. 이런 관계가 좀 많다 보니까 막 날을 세우거나 이런 거는 지양해야 하는 분위기더라고요. 최대한 두루두루, 안 좋게 표현하면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하는데, 그냥 악습이나 이런 거를 묻어두기 위한 게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가 그래도 조금조금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포용하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이런 자세나 태도가요. 우리가, 운동이라는 게 같은 편 만들어 나가는 거잖아요. 

인권감수성, 평화감수성 낮은 분들도 많고 평화감수성 노동감수성 낮으신 분들도 많아요. 근데 이런 분들과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제할 수는 없잖아요. “저 사람은 맨날 차별 발언이나 하고 이러는 데 함께 못해, 이 사람은 왜 맨날 최저임금조차도 반대하는 사람인데 같이 못해.” 이러는 순간 내 편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같은 편을 늘려가기 위해서 많은 걸 포용해야…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다른 데서 보기에는 되게 뭉툭하고 두루뭉술하고 이래보일지 모르겠지만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런 게 좀 필요한 게 지역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청년운동은, 지금은 (청년들이) 어쨌든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로 경쟁이 과열된 이후에 성장한 사람들이잖아요. 이런 사람들에게 따뜻한 공동체에서 만나고 싶거나, 그런 데에서 끼치는 좋은 영향력을 저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누구나) 그런 걸 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일, 그게 그냥 청년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평택지역은 이슈가 많은 동네다 보니까, 불과 20년 사이에 에바다 투쟁, 대추리 투쟁, 쌍용자동차 투쟁이 있었죠. 갈등이 많았던 동네다 보니까 해결해야 할 것은 많은데 사람들은 지쳐있는 것도 있고 그래서 갈등 상황에 대해서 뭔가 좀 약간 꺼려하고 이런 것들이 쉽게 말해서 상처가 남아 있는 사람들인 거죠. 너무 고생들을 해서 그런지 마음을 잘 안 열려고 하고 그런 경향이 좀 있는 거 같습니다. 갈등 상황을 계속 겪어온 부모님 세대를 보고 자라온 청년들도 약간은 좀 주저주저하는 지역적 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세대 간에 드러나는 인식 차이나 이런 것들도 있죠. 그래서 저는 최대한 선배들한테도 그렇고 약간은 알아들을 수 있게 “청년들한테 이러면 안 된다, 그런 말씀하면 곤란하다, 요즘 그런 이야기하면 큰일 납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주의를 시키고, 청년들한테도 단호하게 이야기하되 표현이나 이런 것들을 솔직함으로 무례함을 포장하지는 말자는 식으로, 중간자적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청년운동을 중심으로 진보정당활동, 문화 운동, 지역 이슈 관련 활동 등 다양한 일을 해오셨는데요 10년 동안 평택에서 활동을 하며 가장 기억 남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선호 님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 활동을 한 것이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네요. 지역에서도 꽤 많은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죠. 왜냐하면 너무 안타깝잖아요. 그런 류의 산재사망사고는 잘 몰랐어요. 보통 절단, 끼임, 추락 이런 거 중심으로만 보도를 접하고 했었는데, 항만에서 일하던 어린 학생이 컨테이너 바닥 청소를 하다가 자기 몸보다 몇 배는 무거운 컨테이너에 깔리다니… 지역에서도 굉장히 많은 공분을 샀어요. 

그래도 그런 사안에 있어서는 과거에 좀 뭉치던 이력이 있다 보니까, 해본 게 있어서 (지역 차원의 대응을) 잘했던 거 같아요. 민주노총, 진보당, 정의당,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다 한마음 한뜻으로 했었기 때문에 잘 된 거 같습니다. 사측이 사죄하고 유족과 합의를 마쳤거든요. 또한 전국의 항만과 관련하여 고용노동부의 감시와 감독이 강화되었습니다. 다만 사측에게 가해진 형사처벌이 아주 약하게 되어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2021년 산재근본대책 촉구 및 고용노동부 항의 규탄 기자회견 / 본인제공


Q. 지금은 주로 청년들과 커뮤니티를 만든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활동을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텃밭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유튜브에 ‘평택 청년’ 치시면 지금 활동하는 있는 것들을 편집해서 올리고 있는데, 텃밭을 하면서 농사의 소중함과 먹거리의 소중함도 이야기하고, 같이 땀 흘려 일하는 것 자체가 되게 좋더라고요. 이런 공동체를 일궈 나가고 있습니다. 

엄청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하고 있어요. 삼성의 하청에서 일하는 청년부터, 장애인 활동보조사, 여론조사 하는 청년도 있고, 일반 회사 과장님도 계시고, 사회복지사, 대학생도 있고 다양하게 있습니다. 엄청 재밌습니다.

3월부터 7월까지 감자 수확하고 애프터 파티까지 하고요, 하반기는 무랑 배추를 김어서 김장할 수 있게, 이렇게 상하반기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대추리 평화마을에서 농사를 지었거든요. 대추리 이장님이 땅을 구해주셔 가지고요. 올해는 안중이라고 서쪽으로 더 멀리, 평택 농민회와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텃밭에서 회원들과 함께 / 본인제공


계엄 이후에는 텃밭공동체 멤버들과 함께 탄핵 집회에도 가고 그랬어요. 작년 12월 7일에 김장해야 하는데 미룰 수가 없는 거예요. 일단 대추리 어머니들이 재료나 이런 걸 다 사놓으시고 도와주시기로 해서. 토요일에 배추를 수확해서 소금에 절여놓고 다음 날 김장을 해야 하는데, 일부는 서울 (탄핵집회) 다녀오고, 일부는 남아서 김장을 했어요. 그다음 주부터는 농한기니까 거의 매주 (주말에 서울에서 열리는 탄핵집회에) 갔죠. 


평택 지역의 윤석열 퇴진 투쟁과 그 이후 


Q. 좀 더 본격적으로 계엄과 탄핵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12.3 이전에도 전국에서 여러 단체들, 시민들이 윤석열 정부와 맞서 싸웠습니다. 평택에서는 어떤 활동이 있었나요?

평택 지역의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시국회의라고 해서 윤석열 너무한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임시적인 연대체를 꾸린 적은 있는데 잘 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불씨라고 하죠,  불씨가 잘 안 붙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다들 안 그래도 바쁘고, 윤석열이 되게 잘못하고 나쁜 놈인 건 맞는데 지금 이렇게 하는 게 이것도 맞는 건지 잘 모르겠고… 그런 지지부진한 상황이었죠.  

그러다가 12.3 계엄 이후에 불씨가 확 붙었어요. 기본적으로 매주 목요일 12월 26일부터 매주 목요일에 평택역에서 집회와 행진을 10회 정도 했어요. 파면 선고가 좀 더 일찍 날 줄 알고 10회 정도 진행하고, 서울로 집중을 하자고 한 거죠. 저는 평택 비상행동 집행위원장을 하면서 거의 전반적인 실무를 담당했어요. 상임 대표들 보좌하면서요. 피움 멤버들도 사회도 보고, 노래도 하고, 집회 자봉단도 하고. 행진을 하면 (평택 시민들이) 되게 많이 좋아하셨던 거 같아요. 지역에서 행진 이렇게 여러 번 한 적은 없었거든요. 

제가 첫날  집회를 진행하는데, 사회를 보는데 ‘다시 만난 세계’ 이런 노래 틀면서 막 신나게 진행하니까 지나가던 한 50대 남성분이 지금 집회하는데 뭐 하는 거냐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시대 분위기가 달라졌는데 여기에 적응하셔야 한다… 확실히 젊은 세대 그러니까 청년 세대들이 보여주는 그런 에너지나 이런 것들이 훨씬 더 긍정적으로 뭔가 집회 문화도 바뀌고 했다는 게 지역에서도 좀 느껴졌어요.  


Q. 비상계엄-탄핵-대통령 선거까지 이어지는 지난 여섯 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면?

아무래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태령이었던 거 같아요. 한남동도 고생했고 남태령도 고생했고 다 고생했지만. 아침에 남태령으로 와달라는 걸 듣고 어떻게 해서든 갔는데 지하철 출구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올라오고, 배달 오토바이들이 계속 들어오고, 계속 발언을 이어나가고. 거대한 공동체가 이런 모습이구나,  사람들 마음이 따뜻하구나, 이런 것들을 다 똑같이 느꼈던 것 같아요. 



2024년 겨울, 동십자각 집회에서 청년들과 함께 / 본인제공


Q. 세상이나 개개인이 확 달라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엄과 탄핵이라는 큰일을 겪고 나서 평택의 시민사회운동 혹은 청년운동도 그전과는 좀 달라진 것이 있을 거 같아요. 

이번에 텃밭을 운영하는 운영진들이 훨씬 더 사회적인 의제나 이런 거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고. 이런 걸 바탕으로 우리가 비슷한 지향을 확인하니까 좀 더 편해진 거 같아요. 이걸 어떻게 잘 확대할 수 있을까를 미약하게나마 고민하게 된 거 같아요. 계엄, 내란이라는 이 사건 때문에 저 같은 사람들은 이야기할 거리나 이런 게 풍부해졌고, 사람들도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데 허들이 낮아지는, 장벽이 좀 낮아지는 계기가 된 거 같아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지요.  

저는 모든 일은 교훈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엄과 내란은 분명 안 좋은 일이지만) 윤석열이 한국 사람들 헌법 공부도 시켜주고, 저는 그건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안 좋은 경험에서 얻은 교훈.


Q.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사회대개혁이라는 광장의 과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계엄과 탄핵은 일단락되었습니다. 내란수괴 윤석열은 재판을 받고 아마도 감옥에 가겠죠. 윤석열 이후, 평택지역의 청년들의 고민, 청년운동의 고민은 무엇일까요?

평택 지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정말 획기적으로 한 가지씩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교육의 불평등과 주거의 불평등 이거는 반드시 해결하는 과정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정치권의 역할도 당연히 있겠지만 건강한 생각을 나누는 커뮤니티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고향이 대구잖아요. 대구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다양한 생각을 만나지 못했다면…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알아보고 하는 게 조금씩 조금씩 쌓이고 쌓이다 보면 바꾼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그러려면 바뀔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고, 구조랑 환경이 있어야 하는데, 건강한 청년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런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교육 불평등과 주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권의 역할을 담보하기 위해서 그런 건강한 공동체가 많아져야 한다. 저는 그게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Q. 그런 고민을 담아,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윤석열 퇴진과 관련해서는 평택비상행동에서  6월 27일 개헌 토론회를 한상희 교수님을 모시고 하기로 했어요. 마무리로.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커뮤니티가 더 활성화될 수 있는 구조나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을 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서 건강한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는 소모임을 여러 개 만들 예정인데요, 텃밭 공동체뿐만 아니라 플로깅을 위주로 하는 봉사동아리를 준비 중입니다. 


인터뷰어의 말

따뜻한 환대와 단호한 지적. 너무나 상반되어 보이는 이 두 가지는 사실 사회적인 관계에서 필수적인 태도다. 따뜻한 환대만 있는 공간은 안정하지만 배움이 없고, 단호한 지적만 이루어지는 공간에서는 버티는 것 자체가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 된다. 모순된 두 가지를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사회운동이 어려운 까닭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출판사에 다닐 때 대표님은 늘 대중적으로 인기 있으면서도 아방가르드한 표지 디자인을 원하셨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어쩌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는 게 바로 사회운동이고, 활동가들의 일이다. 

정종해는 그 어려운 일을, 기꺼이 해내는 사람이다. 따뜻하고 건강하면서도 단호함을 잃지 않는 청년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 어려운 일인 만큼 여러 시행착오와 실수도 있었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데 주저함은 없다. 그러고 보니 그의 따뜻함은 사람을 향해있고, 그의 단호함은 행위를 향해있는 것도 같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설득하고, 운동을 조직하는 사회운동의 기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글쓴이 : 이용석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 평화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니 평화활동가가 되었다. 프로야구 기록지 살피기, 보드게임 하기, 라디오 듣기, 책 읽기를 좋아한다. <평화는 처음이라>, <병역거부의 질문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를 썼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12.3 계엄 이후, 꾸준히 광장을 만들고 참여한 시민들, 그리고 그들 곁에는 광장을 함께 만들어간 활동가가 있었습니다. 광장을 열기 위해 집회신고부터 무대설치, 공연 섭외, 발언자 선정, 참여자 안전, 홍보까지. 분야를 넘어 매주 거리에서 광장을 만들고, 지키고, 지원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로 지금의 역사를  기록하고, 사회 변화에 있어 시민사회 활동가의 역할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