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광장을 만드는 활동가] 시민과 함께, 서로를 지키는 따뜻한 광장을 꿈꾼다.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서민영 활동가


[기획인터뷰 -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

시민과 함께, 서로를 지키는 따뜻한 광장을 꿈꾼다.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서민영 활동가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절박한 시기를 맞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라는 초유의 사태에 맞서, 전국 곳곳에서는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의 광장이 꾸려졌다. 그리고 그 광장 한복판에서 묵묵히,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단단한 의지로 시민들과 함께 길을 닦고, 무대를 세우고, 안전을 챙기며 ‘광장’을 만든 이들이 있다. 그중 한 명, 32세 공익활동가 서민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팀장을 만나 그가 기억하는 123일의 시간을 들어보았다. 

서민영 팀장은 MZ세대 공익활동가다. 


시민사회와의 첫 만남, 활동가로의 시작


서민영 팀장은 1994년생으로, 소위 MZ세대다. 그는 전국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학 시절 참여한 YMCA 활동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다.

“처음엔 복지정책에 관심이 있어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어요. 사회 문제를 본격적으로 마주한 건 대학 동아리 활동부터였죠. 그때부터 ‘세상에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공익활동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8년. YMCA 간사로 시작해 지금은 전국의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를 잇는 중간 실무자로 성장했다. 또래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데 부담은 없을까?

“저는 사람 만나는 걸 참 좋아해요. 현장을 오가며 활동가들과 시민들을 만나면 오히려 더 큰 에너지를 받아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지금의 삶이 저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서민영 팀장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계엄령 발표, 그날의 공포와 결심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발표 소식은 단체 온라인 채팅방을 통해 전해졌다. 소식을 듣자마자 서 팀장의 머릿속엔 ‘우리 단체 대표들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맴돌았다.

“그날은 정말 국회로 가기 싫었어요. 계엄령은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경찰이 대표들을 연행하는 장면만 머릿속에 그려졌죠.”


그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택시 대신 일부러 지하철을 탔다. 역에서 내리자 수많은 시민이 국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제 모습이 부끄러웠어요. 국회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민들과 머리 위로 떠 있는 헬리콥터를 보고서야, ‘이건 뉴스가 아니라 현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급히 성명서를 쓰고 단체들과 대책을 논의하느라 정신없었지만, 그날 현장의 긴박함과 시민들의 뜨거운 결의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비상행동 조직팀에서 마주한 연대의 힘


계엄령 해제 다음 날, 그는 오전 9시 기자회견부터 현장을 지켰다. 1700여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은 박근혜 퇴진 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조직됐다.

“단체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이름이 헷갈릴 정도였죠. 그래도 기존 네트워크 덕분에 연락망 정비나 역할 분담이 빠르게 이루어졌어요.”


집회 현장에서 형광 조끼를 입고 있는 서민영 팀장. 그는 매번 집회에서 비상행동 조끼를 입었다.(사진: 정운)


그는 지역 단체와의 소통을 하는 조직팀과 집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행사기획팀에서 역할을 했다.

“처음엔 체계도 없고 역할 분담도 명확하지 않아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분위기가 점점 안정됐어요. 다들 ‘이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했던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다양한 단체 간 관계를 조율해 온 그는 이번 활동을 통해 자신의 성장도 확인했다.

“제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만 느꼈는데, 이 공간 안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번 활동은 제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죠.”


서민영 팀장은 뮤지컬을 좋아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가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사진: 정진임) 


절박함으로 만든 광장, 기억에 남는 날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12월 7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된 날이다. 여의도에 수많은 시민이 몰렸지만, 자원봉사자와 활동가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날은 인터넷도 끊기고, 현장은 긴장감이 극도로 높았어요. 시민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기에 비상행동 활동가들 모두 역할이 정해지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며 일당백으로 움직였던 시간이었어요.”


현장에서는 뜻밖의 갈등도 있었다. 일본 시민사회 활동가의 연대 발언에 일부 시민이 항의한 것. 그 분의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해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사랑이 계엄을 이긴 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시민들의 응원과 연대는 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활동가들의 노란 조끼를 보고 길을 터주시는 시민들 덕분에 큰 힘을 얻었어요. 이번엔 앞에 나선 몇몇이 아니라, 묵묵히 뒷일을 감당하는 실무자들도 공감 받을 수 있었던 시간 같아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젊은 여성 시민들이 광장의 주인공이 되던 장면이다. 촛불 대신 각자의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온 이들.

“사실 저도 ‘데이식스’ 팬이라 응원봉이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알아요. 보통 집회에 들고 나오지 않거든요. 그걸 들고 나왔다는 건 내가 아끼는 존재를 지키기 위한, 진짜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죠.”


그날 그는 깨달았다. “계엄을 이긴 건 분노가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사람들을 거리로 이끈 건 ‘대통령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집회에서 많은 시민들이 특히 행진 시간을 즐겼으며, 행진 사회 역시 활동가들이 직접 맡아 더욱 뜻깊었다. 이날 서민영 팀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 ‘데이식스’의 응원봉을 들고 행진에 함께했다. (사진: 정운) 


시민이 만드는 자발성의 공간


123일간 67번의 집회가 열렸고, 그는 60회 이상 현장을 지켰다. 매번 느낀 것은 이 광장이 활동가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한강진에서 2박 3일 밤샘하면서도 자리를 지킨 시민들을 보며, 집회를 만드는 건 우리가 아니라 시민들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그에게 ‘광장’은 단순한 집회 장소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모이고, 자유롭게 소통하며 스스로 조직하는 ‘시민의 공간’이다.

“시민들이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굿즈를 만들며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야말로 진짜 힘이에요. 앞으로는 무대 중심이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되는 축제 같은 광장을 만들고 싶어요.”


2025년 4월 5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다음날 열린 집회 현장. 비가 쏟아졌지만 많은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참여했다. 그동안 행진차에서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선창하고 노래를 부르던 활동가들이 무대로 올라 마지막으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다. 


끝나지 않은 여정, 시민을 믿는 마음으로


그가 이번 활동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시민에 대한 믿음이다.

“예전엔 시민을 ‘동원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왜 참여하는가’라는 본질을 고민하게 됐어요. 공감과 자발성이 광장을 지탱하는 힘이에요.”


탄핵이 가결된 순간에도 그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눈물 어린 발언을 잊지 않는다.

“그 발언은, 우리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걸 상기시켜 줬어요. 광장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야 할 이야기예요.”


서민영 팀장은 앞으로도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더 많은 공감을 나누는 광장을 꿈꾼다. 그리고 그 길은, 사랑으로 시작되어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9일,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 마련한 '공익활동가를 위한 식탁'에서 비상행동 상황실 활동가들을 초대해 따뜻한 한 끼를 나누는 자리에서 발언 중인 서민영 팀장.


글쓴이 : 나현윤
사회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12.3 계엄 이후, 꾸준히 광장을 만들고 참여한 시민들, 그리고 그들 곁에는 광장을 함께 만들어간 활동가가 있었습니다. 광장을 열기 위해 집회신고부터 무대설치, 공연 섭외, 발언자 선정, 참여자 안전, 홍보까지. 분야를 넘어 매주 거리에서 광장을 만들고, 지키고, 지원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로 지금의 역사를  기록하고, 사회 변화에 있어 시민사회 활동가의 역할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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