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광장을 만드는 활동가] 탄핵 집회에서 안전선 붙이기로 활동전문성을 발휘하다 - 녹색교통운동 김광일 활동가


[기획인터뷰 -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

탄핵 집회에서 안전선 붙이기로 전문성을 발휘하다 - 녹색교통운동 김광일



녹색교통운동 활동 이야기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공식적인 것도 좋고, 사적인 소개도 좋아요.

공식적인 직함은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입니다. 그거밖에 없네요 사실 소개할 만한 게. 그리고 딸 둘 아빠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제 활동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진 않아요(웃음). 교통관련된 뭔가를 하고 있구나, 정도만 알고 있어요… 길 가다가 ‘녹색교통진흥구역’이란 걸 보고 “ 아빠가 하는 건가?”, 이렇게 물어보더라고요. “아빠랑 상관없어”라고 대답해 주죠. 환경단체들은 환경행사 때 부스 행사에서 체험하는 거 많이 하잖아요.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는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가서 다른 부스 체험도 하고 구경시키고 했는데, 아마 그런 경험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에는 저희가 하는 활동 중에 움직이는 소나무 캠페인이 캐릭터가 귀엽다는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Q. 활동하고 있는 녹색교통운동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떤 목표로, 주로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가요? 

1993년에 만든 단체니까 지금 32년 됐어요. 처음 시작은 도시 교통 문제를 시민 스스로 해결해 보자는 취지로 시작을 했어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자동차가 갑자기 엄청나게 늘었고 이로 인해 교통체증, 교통사고 문제, 그리고 승용차 중심의 도시 환경 문제들에 주목했고, 이런 것들을 정부의 책임과 의무로 맡기는 게 아니라 시민 스스로 해결해 보자라는 취지에서 모임 형태로 시작된 게 단체로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단체를 만들 때 ‘교통 체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게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 중심의 교통, 친환경적인 교통이라는 슬로건 아래 ‘보행권’이라는 사람의 권리를 들고 나왔어요. 여러 다른 권리들처럼 ‘걷는 사람한테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라는 것이고 그렇게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행권”이라는 이야기를 꺼낸 거죠. 이후에는 보행과 관련이 깊은 자전거, 대중교통, 나아가 도심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 배출가스 등 교통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교통수단과 이슈에 대해 활동을 확장하게 되었죠.



한국환경회의 국회 기후정책 제안 기자회견사진 (본인 제공)


지금 하고 있는 대표적인 캠페인은 ‘움직이는 소나무 캠페인’이 있어요. 시작한 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시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환경적 기여를 보상할 수 있게 만든 플랫폼인데, 일상생활의 소비랑 연결시켜 친환경 제품을 조금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올해까지 앱 가입자는 2천 명이 조금 넘을 거예요. 적지는 않지만 10년 전에 자전거 마일리지 캠페인을 했을 때는 가입자가 3만 명 정도였으니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지금은 걷기나 운동에 대해 보상을 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저희 (어플) 이용자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활동이 1993년부터 계속해오고 있는 교통사고 피해자 가정을 지원하는 사업이에요. 교통사고 피해 가정의 미취학, 초·중·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매달 또는 분기별로 지원하고 교육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 예를 들어 학업에 필요한 참고서, 교복, 온라인 강의, 학원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그리고,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경우 남겨진 가족들에게 일상생활의 변화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심리 치료 지원을 해드리고 있고,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가 있는 경우 문화생활에 제약이 있어서 학기별, 지역별로 영화 관람, 공연이나 뮤지컬 관람, 직업체험 이런 것들을 지원하는 문화체험 활동 프로그램이 있어요.


Q. 녹색교통에서는 언제부터 일하게 되었나요? 비영리단체로 활동을 시작한 이유, 계기가 궁금해요

2009년 11월부터 일했죠. 평활동가로 활동하다 사무처장이 되었는데 저의 선임 처장님도 그랬고, 그 위의 처장님도 활동가로 시작해서 처장까지 했어요. 원래는 교통 관련 전공을 하고 관련 회사를 8년 정도 다녔는데 전공을 살렸지만 일을 하는 것에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있었고, 교통 분야와 아예 다른 분야 일을 좀 고민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이 구직활동 하면서 다른 일을 찾아봐야지 하고 있다가 여기서 면접 보러 오라고 해서 면접을 봤고 덜컥 출근을 바로 하게 되었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녹색교통운동은 회사 다닐 때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비영리 단체가 어떤 조직이고,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떤 내용으로 일하는지 정확히는 몰랐어요. ‘교통’이라는 같은 분야면 일하는 데 크게 무리는 없겠구나 싶어서 출근을 하게 됐고, 한 3년 정도만 여기서 일을 하면서 다른 분야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렇게 16년이 흘러버렸답니다. 이제는 그만두고 싶어도 바로 그만둘 수 없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네요.(웃음)


Q. 16년, 긴 세월 동안 여러 활동을 했을 텐데 가장 애정하는, 혹은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제가 녹색교통운동에 와서 실제 사업을 했던 게 자전거 관련된 일이었어요. 들어오고 3년 정도 자전거 일만 집중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자전거 마일리지라는 캠페인이에요. “자전거 5km를 타면 탄소를 1kg으로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런 환경적인 기여를  직접 자전거 타신 분들에게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저희 단체 활동이 대부분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이 많은 편이라 현장이나 문헌조사를 통해서 정책제안을 하는 활동을 주로 했었는데,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캠페인을 고민하다가 이런 캠페인을 시작하게 되었죠. 자전거 마일리지라는 캠페인 자체가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수도권 외 대구, 광주 등 지역 단체들이 자전거 운동으로 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지역에서는 자전거에 직접 속도계(거리 측정기)를 달아서 수기로 홈페이지 등에 입력하고 개인별 주행거리에 따라 탄소감축량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었어요. 

이걸 스마트폰용 앱을 만들어서 캠페인을 하는 것으로 기획한 것인데, 이게 2011년 초였어요. 2011년이면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지 않을 때라 (보급이 시작된 갤럭시S 가 2010년 6월 출시) 단체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다행히도 비영리민간단체 공모사업으로 선정이 돼서 지원을 받아서 사업을 할 수 있었죠. 앱 출시 이후 저희가 생각하지 못했던 호응을 받아서 앱 회원이 3만 명까지 늘었어요. 그때 그분들께 후원요청을 드렸더라면 조직 차원의 변화도 있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남아요. 캠페인이 잘 되기도 했고, 제가 그 캠페인에 집중하기도 했고 그래서 기억이 많이 남아요.



녹색교통운동에서 진행한 걷기좋은 서울 시민공모전 시민공모 시상식에서 (본인 제공)


비상행동을 만든 활동가들 


Q. 본격적으로 계엄 이야기를 해볼게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 발표했을 때, 무얼 하고 계셨나요?

집에 있었는데, PC게임을 하고 있었나? 아님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나? 기억이 잘 나진 않아요. 제가 만난 활동가분들은 정말 또렷하게 그 시간에 무얼 하고 있었나 기억하던데 참 이상하죠.  확실한 건 실시간으로 뉴스를 보거나 휴대폰을 보고 있진 않아서 11시 반쯤인가 휴대폰을 보고 나서야 알았어요. 여러 단체톡방에서 알람이 와있길래 확인해 보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운영위 단톡방에서 운영위원장이 긴급한 상황이니 운영위원들은 여의도로 모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늦게 봐서 집에서 유튜브나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단톡방 상황들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당시 한국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인 이경석 사무처장이 전화가 와서 본인은 지금 국회로 가고 있으니 나오지 말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급하게 성명서 써야 하는데 성명서는 생태지평 강은주 실장한테 부탁했으니 대기하고 있다가 성명서 확정되면 한국환경회의 운영위 방에 공유하고 배포를 좀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어요. 그리고 성명서 초안이 나오자마자 운영위 방에 공유하고 정말 실시간으로 운영위원들의 동의를 받고, 언론사에 뿌리고, 한국환경회의 홈페이지에 올리고 나서 여의도 상황들을 계속 공유받다가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 거 같아요.


Q. 비상행동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녹색교통운동은 조그만 단체인데, 작은 단체일수록 연대체에 활동가 파견하면 단체 업무에 큰 차질을 빚어서 이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녹색교통운동은 3명이나 파견을 하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11월 달부터 저희가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 집회에 계속 나가고 있긴 했거든요. 그리고 당시 연대회의에서 현 정부와 관련된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워크숍을 열어서 당시 정부의 퇴행적인 여러 분야의 문제들을 서로 공유하고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 참여 정도로 정리가 되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12.3 계엄이 터지자마자 계속 비상 상황으로 돌아갔고 이후 상황실 구성을 꾸리고 직접 참여를 하게 되었죠.

개인적으로는 비상행동에 직접 참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박근혜 퇴진 때를 생각하면 제가 뭘 했는지 기억이 많이 남는 게 없어서예요. 물론 그 당시에도 열심히 집회 나가고 행진하고 그랬던 건 기억나는데 단체 차원에서 퇴진행동에 역할이 되어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또 온 거고, 그때는 제가 평활동가였지만 지금은 (사무처장이니까) 적극적으로 직접적인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연대회의에서도 대책회의를 하면서 실제 일을 할 수 있는 실무자들을 많이 파견해서 집중하자고 결의를 한 상황이었어요.

저희 단체에서 저 외에 두 명이 더 비상행동에 파견을 나가게 되었는데, 아마 이렇게 작은 조직에서 세 명이나 파견한 게 이상하다고 보일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단체 입장에서 무언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와 일 경험상 활동가들이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활동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파견을 두 명 더 결정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파격적으로 조직업무를 담당하는 한 명만 사무실에 남기고 저와 두 명을 아예 상황실 파견자로 다 보내게 된 거죠. 연대활동으로 활동가 경험을 쌓자. 그리고 저기 가서 우리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자. 이렇게 생각한 거죠.

한 3개월 바짝 하면 될 거 같아서 “2월까지만 하면 될 거야” 이렇게 활동가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네요. (웃음). 참고로 저희가 한 명은 정책팀에, 한 명은 선전홍보팀에 저는 사무국으로 이렇게 각각 나누어져 상황실에 파견을 했어요.


Q. 비상행동 상황실에서는 주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해요. 

저는 사무국에 일원으로 참여했어요. 사무국이 크게는 세 개 역할이 있는데 하나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집회에 자원봉사자를 관리하는 일, 그다음은 예산 집행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집행 관련 일, 그리고 각종 회의, 집회에 필요한 사전 준비를 하는 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사무국에서 예산 집행에 관련해서 각 팀에서 필요한 예산 지출내역을 취합하고 정산서류를 확인해서 지출을 요청하는 일을 했고, 자원봉사 관련해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집회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함께 맡아서 진행했었어요.


Q. 제가 비상행동 다른 분들한테도 김광일 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여쭤봤어요. 다들 답하길 “길에 안전선 붙이고 다녔다” 그래서 제가 “교통 전문가가 제대로 전문성을 살린 일을 한 거네”라고 했거든요.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대규모 집회를 몇 달 동안 수십 번 했는데도 큰 사고가 없었어요. 집회 참가하는 입장에서 예전 집회와 비교하더라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웃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더라고요. 원래 도로가 제 영업장이나 마찬가지여가지고… 약간의 직업병 같은 게 있거든요. 실제로 저나 활동가들이 길을 다닐 때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보행로를 보고  “여기 뭐가 잘못됐다. 이상하다. 여기는 이게 특이하다” 이런 얘기를 하긴 하거든요. 아마 그런 게 집회를 하면서 사람들의 통행이나 안전문제를 고민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부터 통행로 확보나 이런 부분이 잘 된 건 아니었어요. 12월 초 여의도에서 할 때는 정말 힘들었죠. 여의도 장소 자체가 구조적 문제도 있었지만 어떻게 사람들의 이동 동선을 관리할지 몰랐던 상황이고 자원봉사자도 당시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요. 그 이후 경복궁 쪽으로 집회가 넘어오면서 사무국에서도 노하우가 쌓이고 자원봉사자 규모도 늘어나면서 차츰차츰 나아지게 된 거 같아요. 일례로 바닥에 붙이는 안전선도 차도에다만 설치하다가, 워낙 집회 규모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면서 보도에 사람들이 밀집되고 통행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돼서 보도까지 확장하게 된 거예요. 보도에 처음 안전선을 설치하자고 이야기했을 때는 보도에 안전선을 치는 게 별 의미 없을 거다. 사람(자원봉사)을 최대한 배치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현장에서 한 번 쳐 본 거죠. 그러니까 확실히 안전관리 하는 게 수월하고 더 낫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부터는 지속적으로 안전통로 확보에 집중하게 된 거 같아요. 그걸 집회를 준비하는 상황실 활동가들이 많이 보게 된 것 같고요.



탄핵 선고일 당시 무대 앞 프레스존 안전관리하며 선고내용 방송 듣고 있다. (본인 제공)


집회를 제가 알기론 60회 이상 한 거로 알고 있는데 큰 안전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집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특히 자원봉사자 분들이 진짜 열정적으로 해주신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기본적인 안내만 드리는 편이었는데, 자원봉사자 분들이 집회가 거듭될수록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기셔서, 안전 팻말도 준비하시고, 열정적으로 안내해 주시는 게 안전한 집회를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자원봉사자 분들이 시민분들이랑 특히 무대 양쪽 주변에서 충돌이 많긴 했어요. 저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주로 무대 양쪽 구간에서 통행로 안전관리를 했는데 자원봉사자 몇몇 분들이 무대 양쪽에서 자원봉사 하는 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무대 양쪽엔 기자들을 포함해서 국회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많은 데다가, 일반 시민분들이 통행로에 무작정 서서 무대를 보다 보니 통행로 확보가 어렵기도 하고 통행로 안내를 드려도 폭력적인 언행으로 대하시는 분들이 계속 있거든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단체 채팅방에서 여러 분들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추가로, 집회의 진행과 관련해서 혐오발언이나 차별적인 언행 등이 이번 집회 때는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전체 상황실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회를 준비해 왔어요. 특히, 발언과 관련해서는 행사기획팀에 참여하는 활동가분들이 엄청 신경 쓰고 고생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Q. 이번 집회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집회 진행자나 행진 사회자 등 주목을 받는 자리에서 청년 활동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점입니다. 예전 같으면 중견 활동가나 선배세대 활동가들이 하는 역할을 청년 활동가들이 하고, 선배들은 집회가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눈에 드러나지 않은 일들을 처리한 거 같아요. 이런 문화, 분위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나요?

이전의 집회가 어땠는지 제가 잘 상황을 알지 못하고, 집회를 기획하는 행사기획팀이 아니어서 정확히 답변드리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몇 개 있었던 거 같아요. 

이번 집회에서는 높은 직책에 있는 분들이 무대 위에서 계속 나오시는 것보다는 집회에 오신 시민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민분들을 최대한 무대에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나은 집회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계속 해왔던 거 같아요. 그리고, 집회나 행진 사회의 경우도 실제 집회에 열정적으로 나온 분들과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는 활동가들이 역할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저 같은 선배(?) 그룹들은 아마도 저랑 비슷한 생각으로 집회에 참여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밖으로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이런 상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고, 그래서 상황실 파견자가 아니더라도 매주 집회에 자원봉사자로 같이 나와서 몇 시간씩 안전봉을 흔들며 함께 해주신 거고, 저도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이전부터 알던 활동가들이고, 제 동료들이니까 힘을 얻어서 같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원래 예상보다 길어졌다고도 하셨는데 광장의 과제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계엄으로 시작해 탄핵으로 끝나는 정치적 국면은 일단락이 되었고 비상행동 상황실도 종료된 거잖아요. 그전과 돌아온 이후 좀 달라진 게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의도했던 파견된 활동가들의 역량, 활동 경험은 확실히 쌓이지 않았을까요? 특히, 선전홍보팀에 파견된 저희 단체 활동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며칠 되지 않아서 바로 비상행동 상황실 근무를 한 거고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협업(?)을 한 경험이 거의 없이 참여했으니, 그런 경험이 앞으로 활동을 하는 동안에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경험으로 아주 오래 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단체 입장에서는 저희가 조직적으로 비상행동에 세 명이나 들어가게 되다 보니 정작 저희가 원래 해야 하는 “녹색교통”의 고유의 활동이 많이 지연되었죠. 그래서 지금은 밀린 일들을 열심히 수습하고 있는 중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비상행동 상황실 파견 할 당시에는 거의 매주 회의를 하고 매주 집회를 하다, 매일 집회를 하게 되었고, 이게 익숙해졌는지 사무처에서 일을 하는데 집중이 한동안 잘 안되더라고요.  평일은 오전에 출근하고 4시쯤 나가서 집회 참여하고, 주말은 집회 전에 일찍 나가서 집회 끝날 때까지 마무리하고 이걸 몇 달 하다 보니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어가는 데 이제야 좀 변화에 적응이 된 거 같아요.

상황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아직 단체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차츰 더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회가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빠르게 변화되지는 않겠죠. 늘 그렇듯 우리는 각자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원하는 활동을 지속해야겠죠.


인터뷰어의 말 

‘활동가’라고 하면 대체로 사람들은 묵묵히 꾸준히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지 않는 일을 해내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활동가들이 이렇게만 비춰지는 게 싫었다. 활동가들도 유쾌하고, 섹시하고, 때로는 욕심 넘치고, 매력적인 그런 모습이 많은데 어쩐지 그냥 묵묵함, 성실함, 헌신 이런 이미지로 굳어지는 거 같아서였다. 

그런데 김광일 님 인터뷰를 하면서 섹시하고, 유머러스하고, 매력적인 활동가들도 결국 그 활동을 지속하는 기본 속성은 묵묵함, 성실함, 꾸준함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주 오래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 필요한 때가 오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내어 사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 그들의 섹시함이, 유쾌함이, 매력이 특별한 까닭은 활동가들의 일상이 자아내는 묵묵함과 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사회 변화란 지난하고 오래 걸리는 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들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해내는 활동가들이 있기에 중요한 순간, 중요한 기회가 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시민들의 에너지를 조직하고 모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엄을 막고 윤석열을 탄핵 시킨 것은 분명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힘이지만, 활동가들의 꾸준히 묵묵하게 해낸 여러 활동들-윤석열 정부를 감시하고, 실정을 비판하고, 대안을 발굴하고, 불만을 조직해내지 않았다면 우리가 맞이한 현재가 지금과 같을 순 없었을 것이다. 집회를 기획하고, 공연을 섭외하고, 행진 코스를 짜고, 무대를 설치하고, 안전선을 붙이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그 모든 일들을 묵묵하게 꾸준하게 해온 활동가들에게 우리는 마땅한 존경을 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 이용석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 평화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다 보니 평화활동가가 되었다. 프로야구 기록지 살피기, 보드게임 하기, 라디오 듣기, 책 읽기를 좋아한다. <평화는 처음이라>, <병역거부의 질문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를 썼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12.3 계엄 이후, 꾸준히 광장을 만들고 참여한 시민들, 그리고 그들 곁에는 광장을 함께 만들어간 활동가가 있었습니다. 광장을 열기 위해 집회신고부터 무대설치, 공연 섭외, 발언자 선정, 참여자 안전, 홍보까지. 분야를 넘어 매주 거리에서 광장을 만들고, 지키고, 지원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로 지금의 역사를  기록하고, 사회 변화에 있어 시민사회 활동가의 역할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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