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내人터뷰>는 지리산의 품 안에 자리 잡은 마을, 남원시 산내면에 사는 이웃들의 진솔한 삶의 모양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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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실상사 종무소 앞에 있던, 커다란 수양버들 가지가 드리워져 있던 연못이 평평한 너른 마당이 되고, 막 태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아이가 스무 살의 푸른 등을 펴고 세상 밖으로 걸어나갈 만큼의 시간.
이십 년 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사라지고 또 낯선 것들이 우수수 생겨나기도 했지만, 실상사 경내의 희고 붉은 두 그루 배롱나무처럼 묵묵히 한 자리에 서 있는 존재들도 있어 우리는 삶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처음 산내에 와서 해탈교를 건너며 보았던 밤하늘의 그 별도, 경이로움과 기쁨으로 반짝였을 현정씨의 눈빛도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한때 산내 방과후교사였다가, 어린이집 선생님이었고, 지금은 나눔꽃지기에서 살림꽃협동조합 대표로 한결같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김현정씨를 만났다.
2024년 10월, 자원순환가게 나눔꽃 리모델링 기간 중 인터뷰로 만난 김현정 씨
올해로 산내에 들어오신 지 20주년이 되셨지요? 이십 대 미혼 여성으로 산내에 들어온 극소수의 초기 귀농인이기도 한데, 산내와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세상에, 벌써 이십 년이 지났네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긴 했지만, 산내에 오기 전에는 지리산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어요. 대구에서 시민 단체 활동을 같이 했던 선배에게서 산내에서 방과후교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가보자 하고 처음 온 때가 2004년이었나? 그날 나보다 먼저 산내에서 방과후교사를 하고 있던 동갑 친구 숙현을 만나서(현 카페 히말라야 주인장이기도 하다) 하루 자고 가기로 하고 해탈교를 건넜는데 그 밤의 풍경을 잊을 수 없어요.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고 해탈교 아래로는 강물이 술렁거리며 흘러가고...그 순간에 지리산이 내 심장 속에 콱 와서 박힌 것 같아요. 아 여기서 나는 살아야겠구나!”
어떤 운명은 반짝이는 별과 술렁거리는 강물 소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함께 길을 걸어가기로 한 나를 닮은 친구와 동반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할 것이다. 이곳에서 활동가로 일하다가 평생을 같이할 반려자를 만나고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고 키웠다. 좋은 날 궂은 날을 함께 나누며 정이 더 깊어진 동무들도 여럿 만들었다.
2004년 산내 귀촌 초기의 김현정 씨와 동료들
그러면 실상사 방과후교사로 일하면서 계속 산내에 사셨던 거예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하시다가 다른 곳에 잠시 나가 살다 오셨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은데요.
“실상사 방과후교사로 반년 일하고, 자리를 옮겨 어린이 집에서 다시 1년반을 보내고 나서 다시 의성으로 돌아갔었어요. 산내에 오기 전 같이 활동하던 여성 농민회 언니들과 의성에서 어린이집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었거든요. 의성에서의 삶도 보람 있고, 재미있었지만 산내를 떠나 사는 동안 너무 이곳이 그리운 거예요. 당시 활동가 숙소였던 장항리 집에서 만수천 옆 둑길을 걸어 출퇴근을 했는데 오가면서 본 풍경들과 공기가 잊히지 않더라고요. 상사병이 이런 건가 싶었죠. 남편도 나도 산내라는 마을 공동체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니까 결국 결혼하고 산내를 떠난 지 4~5년 만인 2010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죠.”
결혼하고, 다시 산내로 돌아와서는 집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처음에는 귀농 동기였던 숙현 씨가 살던 백일리의 새벽이 공방 뒤쪽에 있는 집에서 잠시 살았다. 그러다 지금 살고 있는 중기 마을에 집을 구해서 올라왔고 그곳에서 아이 둘을 낳고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산내에서 활동가로서의 삶은 접고 마을 일에도 거의 관여할 생각도 못하는, 초보 양육자의 삶을 사느라 바빴다.
2012년부터 나눔꽃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마을 일에 다시 참여하게 된 건가요? 나눔꽃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2012년 한생명 총회 때 숙현이가 <아름다운 가게>처럼 우리 마을에도 재활용품들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죠. 처음엔 숙현과 나, 이렇게 둘이서 한생명 옆, 한때 건강 사랑방으로 썼던 공간 한 켠에다 옷걸이 몇 개를 걸고 마을 사람들에게서 안 입는 옷들을 받기 시작했어요. 그때 나도 숙현도 어린 아기들을 키우고 있던 시절이라 아이들은 나눔꽃 공간에서 기어다니며 놀고 우린 옷 정리하고 진열하는 자원봉사 일을 하면서 초기 육아의 괴로움을 덜었던 공간이기도 해요.”
2013년 나눔꽃의 옷가지를 정리하는 모습
과소비 문화에 일조하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소소한 소비 욕구와 필요를 해소해 주는 소중한 공간이 된 나눔꽃. 워낙 수익성을 보고 시작한 일이 아니고 공동체에 필요한 공간을 꾸린다는 보람과 즐거움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점차 커가면서, 나눔꽃의 운영 방식도 처음처럼 유지하기는 어려워졌다. (주로 어린이집을 다니는 자녀를 둔) 여러 명의 자원봉사자가 시간을 내서 옷이나 다른 중고물품들을 정리하고 진열하는 일을 해왔지만 지금은 대부분 아이들이 커서 기존 자원봉사자들도 좀 더 중요한 본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눔꽃에서 한 발 나가서 살림꽃이란 협동조합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요.
“나눔꽃이라는 공간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쓰임과 의미가 큰, 멋진 가게이긴 한데 자원봉사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지요. 또 운영자들이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내려면 나눔꽃만으로는 안되는 거예요. 물건값은 여전히 500원에서 1000원 정도이니 운영비로는 턱없이 모자라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정부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이런 저런 프로그램도 만들고, 3년 전에는 자립을 위해 같이 자원봉사를 해오던 선이 언니와 선희씨, 봄이씨, 경현과 영순 언니 그리고 온빛까지 여럿이 모여 살림꽃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도 했어요. 헌 옷감이나 재료로 새 제품을 만들어서, 재활용품의 새로운 탄생이라는 멋진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일인데, 생각보다 자립의 기반을 구축하기까지는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살림꽃협동조합의 튤립 보자기 만들기 교육
협동조합에 참여한 회원들도 모두 초짜들이라 다들 길을 찾느라 고생했는데,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하나 둘 조합일을 그만두었고 현재는 경현씨와 현정씨 두 사람이 남아서 나눔꽃과 살림꽃 양쪽을 맡아서 끌고 가는 중이다. 마을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얘기를 어디서나 듣긴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다.
“워낙 우리 동네에는 여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고 대부분 십시일반으로 꾸려가고 있는 곳이라 나눔꽃 운영이 어렵다고 우는 소리 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러다 보니 우리끼리 고군분투하는 동안 서운함과 고단함이 쌓여가고, 앞으로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런 오랜 고민을 얼마 전부터 ‘살래장’ 밴드에 올렸더니 의외로 많은 마을 분들이 응원과 공감을 해주셨어요. 마침 이번에 산내 주민공유 공간 환경개선 사업에 선정되면서 나눔꽃을 리모델링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손이 너무 많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지난 달부터 시작한 나눔꽃 리모델링 공사 때는 산내들 목수님부터, 마을의 씩씩한 지원봉사자들이 모여들어 여러 날 해야 할 일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어려운 일에 힘을 보태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또 다른 용기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 초 마을의 여러 모임 멤버들과 함께 일본의 제로웨이스트 마을인 카미카츠를 견학한 것도 이 일을 하면서 영감과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창조하고 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절감한 시간이었어요. 세상이 좋아지려면 구성원들의 선한 의지와 노력에 더해 이를 뒷받침하고 지원하는 지자체의 행정적 실천이 나란히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도요.”
리모델링 이전의 나눔꽃과 이후의 나눔꽃
공간을 비우기 위한 짐 정리를 도와준 마을 사람들
여러 도움으로 도배를 함께하고 있는 모습
아이들이 각각 중학교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좀 더 경제활동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겠어요. 이 마을 대부분의 부모들이 안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현정씨는 10년쯤 후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10년쯤 후에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독립할 것이고, 그때쯤이면 좀 더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 국선도를 꾸준히 수련 중인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지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처럼 마을에 대한, 가족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서 내가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해지는 일을 찾아보고 싶어요. 여행이 될지, 또 다른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나를 돌보고, 나 자신에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좀 더 재미있고 멋진 곳으로 만드는 데 흔쾌히 힘을 보태고 싶지만, 앞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게 무엇일지는 몰라도 현정씨가 찾는 자유는 바람부는 황야 위의 고독한 자유는 아닐 것 같다.
열기로 가득했던 청춘의 한 여름이 지나고, 선선해진 개울 위를 느긋하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반딧불이의 저녁. 그녀의 자유는 어쩌면 가득함과 비움 사이, 스스로 빛을 내어 밤을 밝히는 늦여름 반딧불이의 춤과 같은 것이 아닐까.
☕ 2024년 12월 11일(수) 저녁 7시,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사람책 김현정 씨와의 티타임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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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전북 #지리산 #김현정 #살림꽃협동조합 #자원순환가게나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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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이덕임
살 곳을 찾아 지구 곳곳을 떠돌다 2005년에 지리산 산내에 정착했다. 지금까지 약 30여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텃밭과 꽃밭 가꾸기, 이웃과 산책하기를 본업만큼 좋아하는 뼛속까지 시골 생활자이다.
※ 이 인터뷰는 브라이언임팩트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0년. 실상사 종무소 앞에 있던, 커다란 수양버들 가지가 드리워져 있던 연못이 평평한 너른 마당이 되고, 막 태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아이가 스무 살의 푸른 등을 펴고 세상 밖으로 걸어나갈 만큼의 시간.
이십 년 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사라지고 또 낯선 것들이 우수수 생겨나기도 했지만, 실상사 경내의 희고 붉은 두 그루 배롱나무처럼 묵묵히 한 자리에 서 있는 존재들도 있어 우리는 삶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처음 산내에 와서 해탈교를 건너며 보았던 밤하늘의 그 별도, 경이로움과 기쁨으로 반짝였을 현정씨의 눈빛도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한때 산내 방과후교사였다가, 어린이집 선생님이었고, 지금은 나눔꽃지기에서 살림꽃협동조합 대표로 한결같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김현정씨를 만났다.
2024년 10월, 자원순환가게 나눔꽃 리모델링 기간 중 인터뷰로 만난 김현정 씨
올해로 산내에 들어오신 지 20주년이 되셨지요? 이십 대 미혼 여성으로 산내에 들어온 극소수의 초기 귀농인이기도 한데, 산내와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어떤 운명은 반짝이는 별과 술렁거리는 강물 소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함께 길을 걸어가기로 한 나를 닮은 친구와 동반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할 것이다. 이곳에서 활동가로 일하다가 평생을 같이할 반려자를 만나고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고 키웠다. 좋은 날 궂은 날을 함께 나누며 정이 더 깊어진 동무들도 여럿 만들었다.
2004년 산내 귀촌 초기의 김현정 씨와 동료들
그러면 실상사 방과후교사로 일하면서 계속 산내에 사셨던 거예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하시다가 다른 곳에 잠시 나가 살다 오셨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은데요.
결혼하고, 다시 산내로 돌아와서는 집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처음에는 귀농 동기였던 숙현 씨가 살던 백일리의 새벽이 공방 뒤쪽에 있는 집에서 잠시 살았다. 그러다 지금 살고 있는 중기 마을에 집을 구해서 올라왔고 그곳에서 아이 둘을 낳고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산내에서 활동가로서의 삶은 접고 마을 일에도 거의 관여할 생각도 못하는, 초보 양육자의 삶을 사느라 바빴다.
2012년부터 나눔꽃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마을 일에 다시 참여하게 된 건가요? 나눔꽃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2013년 나눔꽃의 옷가지를 정리하는 모습
과소비 문화에 일조하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소소한 소비 욕구와 필요를 해소해 주는 소중한 공간이 된 나눔꽃. 워낙 수익성을 보고 시작한 일이 아니고 공동체에 필요한 공간을 꾸린다는 보람과 즐거움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점차 커가면서, 나눔꽃의 운영 방식도 처음처럼 유지하기는 어려워졌다. (주로 어린이집을 다니는 자녀를 둔) 여러 명의 자원봉사자가 시간을 내서 옷이나 다른 중고물품들을 정리하고 진열하는 일을 해왔지만 지금은 대부분 아이들이 커서 기존 자원봉사자들도 좀 더 중요한 본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눔꽃에서 한 발 나가서 살림꽃이란 협동조합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요.
살림꽃협동조합의 튤립 보자기 만들기 교육
협동조합에 참여한 회원들도 모두 초짜들이라 다들 길을 찾느라 고생했는데,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하나 둘 조합일을 그만두었고 현재는 경현씨와 현정씨 두 사람이 남아서 나눔꽃과 살림꽃 양쪽을 맡아서 끌고 가는 중이다. 마을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얘기를 어디서나 듣긴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달부터 시작한 나눔꽃 리모델링 공사 때는 산내들 목수님부터, 마을의 씩씩한 지원봉사자들이 모여들어 여러 날 해야 할 일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어려운 일에 힘을 보태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또 다른 용기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리모델링 이전의 나눔꽃과 이후의 나눔꽃
공간을 비우기 위한 짐 정리를 도와준 마을 사람들
여러 도움으로 도배를 함께하고 있는 모습
아이들이 각각 중학교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좀 더 경제활동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겠어요. 이 마을 대부분의 부모들이 안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현정씨는 10년쯤 후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지금은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좀 더 재미있고 멋진 곳으로 만드는 데 흔쾌히 힘을 보태고 싶지만, 앞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게 무엇일지는 몰라도 현정씨가 찾는 자유는 바람부는 황야 위의 고독한 자유는 아닐 것 같다.
열기로 가득했던 청춘의 한 여름이 지나고, 선선해진 개울 위를 느긋하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반딧불이의 저녁. 그녀의 자유는 어쩌면 가득함과 비움 사이, 스스로 빛을 내어 밤을 밝히는 늦여름 반딧불이의 춤과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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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인터뷰는 브라이언임팩트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