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청년들끼리 만나면 서로서로 자기 지역이 얼마나 더 열악한지 겨루는 서글픈 입씨름을 농담처럼 하곤 한다. 어느 함양 청년은 타지 사람들이 함양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른다고 푸념했다. 최학수도 그런 함양을 누구보다 떠나고 싶었다.
지역신문『주간함양』 기자이자, 함양 청년 모임 ‘이소’ 운영진인 최학수. 함양 지역 행사에서 종종 만났던 최학수는 항상 취재용 카메라를 들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미소는 느긋하게, 걸음은 빠르게. 그런 그와 늘 스치듯 인사를 나누곤 했다. 드디어 동네 책방 ‘오후공책’에 차분히 그와 마주 앉았다.
지역신문『주간함양』 기자이자, 함양 청년 모임 ‘이소’ 운영진인 최학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함양에 오래 있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함양으로 돌아온 얘기부터 해달라고 했다. 지금의 최학수를 설명하려면 거기서부터 이해해야 했다. 누구보다 떠나고 싶었던 함양에, 왜 다시 돌아와 살기로 했는지.
“그러니까 이게, 시골에서 난 사람의 결핍이 좀 있어요. 저는 (결핍이) 엄청 컸어요. 디지털 네이티브니까 내가 디지털로 보는 세계보다 주변은 항상 부족한 거죠. 중학생 때도 그랬고, 고등학생 때도 그랬고. 그래서 함양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함양 밖으로 나가면서 ‘함양에는 다시 오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대학 가서 교내 활동이나 대외 활동도 엄청 활발하게 했어요. 힘들긴커녕 너무 재밌었어요. 그렇게 대학교 잘 다니고, 군대도 갔다 오고, 실컷 놀다 보니까 돈이 떨어졌어요.”
돈이 떨어져서 고향에 돌아왔다니, 너무 단순한 이유라 허탈한 웃음이 났다. 아니 너무 친근한 이유라서일까.
“시기가 절묘했어요.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거든요. 그리고 군대에서 적금 넣은 돈으로 제주살이를 잠깐 했어요. 그러다 스스로 이젠 더 이상 진로 결정을 유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돈도 떨어졌어요. 진지하게 다음 스텝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었죠. 그때 집으로 돌아온 거에요.
당장 도시 나가서 집을 구할 때 보증금이라도 있으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일단 돈을 벌어야겠다 했는데 신문사 공고를 보게 됐어요. 글 쓰는 거 좋아하고, 사진 찍는 거 좋아하고, 영상 만드는 거 좋아하니까 적당히 적성에 잘 맞겠지, 하고 들어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함양에 오래 있을 생각 전혀 없었어요.”
국토대장정을 떠난 시절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최학수는 대학 초반에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그리고 대학 졸업 후 군대를 다녀와서 로망이었던 제주살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쌓아나갔다. 수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도구로 글쓰기와 사진, 영상을 즐기던 것이 신문사 취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니, 20년 내내 살아온 고향은 더 답답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국토대장정과 이야기 “부산에서 서울까지 대학생 144명이 한 번에 걸어가는데, 72명씩 줄로 두 줄로 쭉 서서 걸어가는 거죠. 50분 걷고 10분 쉬다가, 다시 출발할 때가 되면 줄 서서 50분 걷고 그런 시스템이에요. 10분 쉬고 오면 옆 사람이 바뀌어 있는 거예요. 휴대폰도 다 걷었고, 걸으면서 딱히 할 게 없잖아요. 그럼 옆 사람이랑 이야기하며 걷는 거예요.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어느 대학교 다니세요? 무슨 전공 하세요?’로 매번 똑같이 시작하는 대화지만 때마다 그 뒷이야기가 다 달라지거든요. 그 50분 사이에요. 그걸 3주 동안 매일 한 거예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 이야기는 되게 재밌고 소중하다는 감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죠.”
제주살이와 이야기 “제주에서 게스트 하우스에 계속 있었는데,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오거든요. 그 사람들이랑 대화하면서 남들 인생 찍먹해 보는 게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사람들 인생이 너무 궁금하고,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영감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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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기자 모드'의 최학수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몰라, 함양에서 재밌게 살기
나그네에서 주인으로
함양살이에 진심이 싹트다
스무 살에 떠난 둥지 함양을 6년 만에 돌아왔다. 나그네 같은 마음으로 함양에 온 지가 어느덧 4년, 이제는 함양에 엉덩이도 마음도 붙이고 주인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 ‘난 함양을 떠날 거니까, 뭐.’ 이런 마음이 늘 기저에 있었는데 그게 한 번 확 뒤집어진 그 순간이 있어요. 서하다움(*서하다움: 함양 서하면에 위치한 청년레지던스플랫폼)에서 였죠.
대학생 때 가끔 고향집에 오면 빈둥(*빈둥: 함양읍에 위치한 마을활력공간)소식을 접했고, 그런 걸 통해서 빈둥 협동조합이 함양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요. 그런 빈둥을 이끌었던 김찬두 대표님이 서하다움도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걸 취재과정에서 알게 됐고요.
제주에서 생활할 때부터 도시재생이랑 지역살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때쯤 청년 마을 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SNS에서도 많이 보였어요. 그렇게 다른 지역에서나 보던 ‘우수 사례’ 같은 것이 함양에도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서하다움에서는 지역살이 경험을 통해 지역과 관계를 맺고 지역을 이해해나갈 수 있는 ‘2주 살아보기’, ‘삶일놀이캠프’와 같은 프로그램이 열린다.)”
최학수에게 함양은 이전까지 ‘그 어떤 가능성도 없는 곳’이었다. 흔히 토박이들이 그렇듯, 함양은 새로울 것이라곤 없는 곳, 결핍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그런데 도시 청년들이 함양에 와서 살아보며 새로움을 느꼈다고 할 때, 함양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함양 청년 모임 ‘이소’도 만들어졌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최학수의 함양 인생을 바꿔놓았다. 함양에 남아 뭔가 더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서고부터 최학수는 확실히 더 바빠졌다. 그의 활동들은 한층 더 방향이 잡히고 깊이가 더해졌다.
“이전까지는 제 생각의 종착점은 함양이 아니니까, 함양을 늘 과정처럼 여겼던 것 같아요. 근데 이때 처음으로 기사에 진심을 담아 하나하나 엄청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
그걸 인연으로 22년 봄, 서하다움에서 했던 ‘소셜다이닝’에도 가게 됐어요. 거기서 함양에 대한 제 마음가짐이 바뀌었어요. 저는 그날 온 사람들, 공연들이 다 기억날 정도로 좋았어요. 그때 더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러면서 2022년 10월에는 ‘거함산 청년 문놀장’ 같은 큰 행사도 함께 기획해 보게된 거에요.”
지역신문 기자의 업무 목록에는 유튜브 라이브도 있다.
지역신문 기자 본캐와 청년활동가 부캐가 만나면!
#토박이 #청년 #활동가 #기자
“예전엔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지역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2023년쯤부터는 두 정체성이 되게 잘 어우러졌어요. ‘저연차 지역 언론의 기자’가 본캐라면, ‘청년 활동가’는 부캐라고 할 수 있어요. 본캐와 부캐가 서로 영향을 주고, 활동을 돕기도 하는 선순환이 제 안에서 잘 일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 언론인을 저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생각하게 된 게 청년 활동이었고, 지역 신문의 기자로서 청년 활동을 주목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심이 더 확장됐던 것 같아요.”
그의 욕심을 응원하고 싶다. 농촌에서 보기 드문 청년, 기자. 그 두 가지 역할을 잘 버무려 소화해 내는 최학수의 활동은 새로운 역사다. 지금 최학수라서 할 수 있는 활동, 그 고유한 영역을 계속 다듬고, 쌓고, 넓혀가고 있다.
“‘이렇게 열정 있는 사람이 서울에 가서 기자를 해야 되는데’ 같은 말씀을 하는 분들도 계세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 제가 도시에서 시작했다면 절대 이런 사명감으로 일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지역에 대한 애정이 중심이 되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뭐 다른 데서 기자 생활을 해본 건 아니지만, 지역에서 기자를 한다는 게 좀 다른 것 같아요. ‘풀뿌리 저널리즘’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지역에서 특히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는 거죠. 부패 감시나 그런 기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응원이 필요한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을 잘 다루어내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도 하는데 기사를 쓰면서 단순히 상황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해결책을 낼 수 있는지 그런 힌트를 행정에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는 어떻게 보면 ‘활동가’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제가 함양 사람이고, 청년 세대이면서 이 지역신문의 기자라는 게 다 모여서 결국은 지역의 소멸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위치가 되는 것 같아요. 사명감도 생기고요.”
그렇게 두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순간은 바로 청년 최학수가 기획한 행사에 기자 최학수가 취재를 가기도 하는 상황.
“처음에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 두 가지가 너무 붙어 있다고 느꼈어요. ‘내가 기획했는데 내가 취재하면 당연히 좋게 쓸 수밖에 없지.’ 그런 걱정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2023년에는 청년 모임 이소 관련 기사를 거의 안 썼어요. 지금도 조금 어려워요.
근데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그때는 엄청 엄격하게 피하려고 했거든요. 오히려 회사 회의에서 ‘이소에서 이런 저런 행사 있던데, 왜 기사 안 썼냐’고 물어보시기도 해요. 그럼 ‘다음부터 쓸게요.’하고 넘기곤 하는데, 내적으로 항상 고민이 되긴 해요. 내가 이렇게 기획하고 기사를 쓰는 게 맞는 상황일까.
그런데 한 편으론 기자로 일하면서 제일 만족스러울 때는 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들에게 제안해 볼때예요. (오후공책 벽면에 붙어있는 행사 포스터들을 가리키며) 저런 것도 저희가 기획했고, 제가 기사로 쓰기도 했거든요. 제가 기획하거나 취재한 것들이 지역에서 ‘먹히는’ 경험을 하면서 계속 자신감을 얻어가는 것 같아요. 제가 기자라는 것만으로 제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주려고 하는 상황도 저한텐 큰 자신감이 돼요.”
최학수는 기자의 무게를 늘 생각하고, 안이한 태도를 늘 경계한다. 자신감을 쌓아가며 자만하지 않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마 근면성실을 지향하는 것이 그의 비법이 아닐까 싶다. 지역사회 입장에선 반짝반짝 재주 많은 청년이 나타나 이렇게 ‘일당백’을 해주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023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최학수
'건실한 언론' 주간함양
거기엔 건실한 청년PD 최학수가 있다
『주간함양』은 함양의 ‘바른 언론 젊은 신문’이다. 2002년에 뜻있는 함양 군민들이 주주로 참여해서 『함양군민신문』으로 창간했다가 지금은 『주간함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최학수 기자를 비롯해 8명이 근무하며, 월 8천 원의 구독료가 있는 신문을 매주 16면으로 발행한다. 최학수는 『주간함양』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되게 건실한 언론이에요. ‘지역신문 발전 기금’을 받는 신문사거든요. 이건 언론재단에서 나오는 기금인데 경상남도 내 지역 신문 중에서 한 다섯 곳 정도가 받고 있어요. 근데 이게 굉장히 깐깐한 기준을 통해서 선정되거든요. 대표자가 대표자의 범죄 경력이 있는지, 직원들의 월급은 밀리지 않는지, 언론중재위원회에 몇 번 회부되었는지, 그런 것까지 따질 정도로요.
편집국장님이 30대 초반으로 젊은 편이어서 굉장히 편하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어요. 그리고 저희 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기획 면이 엄청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신문이지만 매거진같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언론 윤리 강령 같은 것을 잘 지키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들을 실으려고 하는 그런 신문입니다.”
지난해에는 최학수의 기획으로 ‘고마워,할매’와 『주간함양』이 협업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의 함양 청년 마을 ‘고마워, 할매’에서는 타지 청년들을 대상으로 2주간 지역을 살아보는 프로그램이 열린다. 참가자 중 추가로 2주를 더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활동계획서’를 제출한다. 그 활동으로 최학수가 청년 인턴 기자를 제안한 것이다.
“처음으로 그렇게 활동하셨던 분이 엄청 만족스러워 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 지역을 바라봤을 때는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인턴 기자 생활을 통해서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온 거예요.
누군가는 골프장 회원권 때문에 이렇게 투쟁하고 있구나, 농사일지를 18년 동안 적은 사람이 있구나. 이런 구체적인 지역 이야기들을 접하게 됐죠. 그전까지는 함양이 여행지, 휴식지로서의 공간이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바뀌어 보이게 되는 경험을 하신 거예요.
실제로 그분은 지금 ‘고마워, 할매’에 일하면서 함양에서 계속 살고 계세요. 그래서 여행으로는 느낄 수 없는 지역에 밀착해 보는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평가했어요. 그래서 그 후론 아예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정착해 진행했었어요.
사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라기보다 굳이 말하자면 영상 기자의 역할이었거든요. 인터뷰에 동행하고, 인터뷰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누군가는 기사로 쓰고요. 참여하신 분들도 엄청 만족스러워했고, 『주간함양』 입장에서는 평소 제작하기 힘든 영상 콘텐츠를 남기게 되어서 되게 좋았죠. 영상 콘텐츠를 통해서 『주간함양』이 전하고자 하는 얘기를 더 생동감 있게 전할 수 있었으니까요.”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의 플로깅 인증 사진
사는 문제랑 뗄 수 없는 기후, 농업, 지방 소멸
다른 관심사가 없어요
『주간함양』에는 신문사의 의도가 반영된 주제의 기획 기사가 연재된다. 최학수는 한 해 동안 고민해 온 것들을 바탕으로 연말쯤 다음 해의 연재 주제를 결정한다. 올해는 나름대로 농업 3부작을 고민해 씨앗, 먹거리, 농업에 대한 기사를 다뤄내고 있다.
“방금도 여기서 <저속 노화 식단>이란 책을 한 권 샀어요. 저는 기후 위기에 관심이 크게 가더라고요. 그래서 2024년 1월 1일자 1면에 토종 씨앗으로 ‘2024’라고 쓴 사진을 냈거든요.
올해를 시작하면서 저 혼자만의 다짐이 있었어요. 조금 더 건강한 먹거리,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농업. 그런 것들을 올해 기사로 다뤄야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함양 농업에 토종종자 생태계 마련하기>라는 기획 기사를 9편 연재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함양의 발효문화 기반 활용을 통한 지방소멸 극복>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 중이에요. 추가로 계획 중인 건 ‘미래농업’에 대한 기획 연재예요. 내년엔 ‘사라질 결심’이라는 주제로 지역이 안전하게 사라져가는 방법에 대해 다루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의 프로필에는 늘 ‘지방소멸의 해법을 고민합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사라질 결심’이라는 말에서도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최학수는 함양 사람이고, 청년이면서, 지역신문의 기자이기 때문에 더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제가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건 계속 고민하고 실천할 것 같아요. 다른 관심사가 없어요.
지방 소멸을 막는 법은 이 지역의 매력을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청년 모임 이소를 만들기 전부터 그런 상상을 했었어요. 시대가 변하고 우리가 맞이하게 된 새로운 일상의 표준을 뉴노멀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뉴농촌’이 있을 것 같아요. 보수적인 선택이 겹쳐서 구성된 농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로 새롭게 구성된 농촌을 상상해 봐요. 저는 너무 기대되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함양이 어떻게 뉴농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시골 청년들이 쉽게 공감하는 생각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지역 사람들이 진짜 재미있게 잘 살면, 자연스럽게 지역은 활력을 띤다는 것. 그러면 인구 유입이니 지역 홍보니 하는 효과도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 애써 부자연스러운 행사나 사업을 새롭게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우리 지역이 가진 삶과 자원을 잘 알아가고 다루어내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라는 것.
이소의 2030모임
외로울 틈 없는 함양살이
힌트는 청년모임 이소
함양 청년모임 ‘이소’는 안부를 묻는 글 ‘이소’라는 뜻과 청년들의 이야기, 소리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함양 청년의 안부를 묻는 이 느슨하고 따뜻한 모임을 처음 만든 사람도 최학수다.
“제가 처음에 꿈꿨던 건 일종의 명단 형태예요. 왜냐하면 제가 낯을 가려서 이걸 모임으로 할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취재 과정에서 만나는 청년들을 다 목록으로 정리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누가 나에게 연락만 하더라도 필요한 누군가를 연결해 수 있으니까 좋겠다 싶었어요. 어디 가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뭘 잘하는지 함양 청년들을 아카이빙 하는 거죠.
함양에 청년이 운영하는 ‘쟈뎅드마망’이란 꽃집이 있어요. 꽃집 사장님이 제가 소개한 지원사업을 통해서 원데이 클래스를 연 거예요. 알려준 입장에서 뿌듯하고 좋아서 취재하러 갔거든요. 그때 원데이 클래스에 참가한 다솜 님을 처음 만났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이미 귀촌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주변에 친구도 없이 일만 한 거예요. 다른 분들도 ‘귀촌 우울증’ 같은 게 있더라고요. 뭔가 퇴근하고서 맥주 한잔할 친구가 없는 거죠. 어딜 가야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지 힌트도 없는 그런 지역이다 보니까 ‘여기 가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겠지.’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다솜님과 알게 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서 같이 이소를 만들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일상에서 다들 일부분 긴장이 있는 상태에서 살잖아요. 그런데 내 또래들과 만났을 때 그 긴장이 제일 덜 한 것 같아요. 건강한 청년단체가 지역의 문화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이소는 그런 맥락에서 계속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해보기로 하고 직접 연 '이소 문화센터'의 미술 수업시간
직업도 취향도 다양한 청년들을 처음 한데 모을 수 있었던 건, 최학수를 비롯한 운영진의 기획력과 친화력 덕분이다. 처음 모임을 열었을 땐 연결에 목말랐던 청년들이 매달 20~30명씩 모였다. 매달 자기소개 하기 바빴다고.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독서모임, 영어 모임, 글쓰기 모임, 플로깅 모임, 와인 모임 같은 소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는 ‘이소 문화센터’라고 해서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해보기로 했어요. 지역 문화 강좌는 아무래도 주된 대상이 정해져 있다 보니까 프로그램들이 청년 친화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열었어요. 청년 친화적인 시간대에, 청년 친화적인 주제로 청년이 가르치고 청년이 배우는 그런 구조로 만들어봤어요. 미술 수업, 가죽 공예, 취향 찾기 등의 모임이 열리고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계속 기획된 모임을 운영하자 운영진과 참가자가 뚜렷이 구분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누군가 계속 운영 에너지를 제공해야만 했다. 그래서 올해는 운영 체제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운영진들을 더 모아봤는데 너무 지원자가 없더라고요. 구글 폼에 응답해서 목록화되어 있는 청년은 100여 명인데 말이에요. 그게 이소의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느슨해서 언제든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지만, 제공자와 수혜자가 구분된 느낌이요. 그래서 올해는 5명이 협동조합의 형태를 갖췄어요.
제가 처음에 청년 모임을 생각한 게, 명단과 함께 네트워킹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거였어요. 지금은 여행자와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있으니까, ‘로컬 커뮤니티 호텔’을 해보고 싶어요. 이번에 독립하면서 생긴 제 집을 그렇게 활용할 방법을 구체화하고 있어요. 지금 협동조합원들이 지원사업 심사를 받으러 가 있어요. 좋은 소식 기대해 주세요.”
오후공책에서 열린 <어디에나 우리가> 북토크. 책은 지리산에 살기로 결정한 청년들의 인터뷰집이다.
‘낯은 가리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어딘가 쓰인 최학수의 소개 글이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은 사는 게 재미있다. 이렇게 재밌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멸’이라니, 가끔 그 말이 우습단 생각도 든다. ‘오래가는 것들을 좋아한다’도 최학수의 말이다. 최학수가 좋아하는 함양도 오래가면 좋겠다.
최학수의 진심 어린 고민과 성실이 촛불처럼 함양 구석구석 작고 소중한 이야기를 찾아 비춘다. 그리고 가사처럼 촛불은 주변으로 옮겨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된다. 그러다 어느새 어둠은 사라지듯, 최학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함양의 오늘과 내일이 환하게 밝혀지는 느낌이 든다. 10년 후엔 우리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뉴농촌’을 맞이하고 있을까. 그때까지 동료 활동가 최학수와 살맛 나는 새 농촌의 이야기를 같이 써나가고 싶다.
진행 / 넉넉
글 / 푸른
인터뷰 일시 : 2024년 9월 24일
#함양 #경남 #지리산 #협동조합이소 #함양청년네트워크이소 #주간함양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피플포체인지 #브라이언임팩트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 #지리산이음
글쓴이 :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시골 청년들끼리 만나면 서로서로 자기 지역이 얼마나 더 열악한지 겨루는 서글픈 입씨름을 농담처럼 하곤 한다. 어느 함양 청년은 타지 사람들이 함양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른다고 푸념했다. 최학수도 그런 함양을 누구보다 떠나고 싶었다.
지역신문『주간함양』 기자이자, 함양 청년 모임 ‘이소’ 운영진인 최학수. 함양 지역 행사에서 종종 만났던 최학수는 항상 취재용 카메라를 들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미소는 느긋하게, 걸음은 빠르게. 그런 그와 늘 스치듯 인사를 나누곤 했다. 드디어 동네 책방 ‘오후공책’에 차분히 그와 마주 앉았다.
지역신문『주간함양』 기자이자, 함양 청년 모임 ‘이소’ 운영진인 최학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함양에 오래 있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함양으로 돌아온 얘기부터 해달라고 했다. 지금의 최학수를 설명하려면 거기서부터 이해해야 했다. 누구보다 떠나고 싶었던 함양에, 왜 다시 돌아와 살기로 했는지.
“그러니까 이게, 시골에서 난 사람의 결핍이 좀 있어요. 저는 (결핍이) 엄청 컸어요. 디지털 네이티브니까 내가 디지털로 보는 세계보다 주변은 항상 부족한 거죠. 중학생 때도 그랬고, 고등학생 때도 그랬고. 그래서 함양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함양 밖으로 나가면서 ‘함양에는 다시 오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대학 가서 교내 활동이나 대외 활동도 엄청 활발하게 했어요. 힘들긴커녕 너무 재밌었어요. 그렇게 대학교 잘 다니고, 군대도 갔다 오고, 실컷 놀다 보니까 돈이 떨어졌어요.”
돈이 떨어져서 고향에 돌아왔다니, 너무 단순한 이유라 허탈한 웃음이 났다. 아니 너무 친근한 이유라서일까.
“시기가 절묘했어요.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거든요. 그리고 군대에서 적금 넣은 돈으로 제주살이를 잠깐 했어요. 그러다 스스로 이젠 더 이상 진로 결정을 유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돈도 떨어졌어요. 진지하게 다음 스텝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었죠. 그때 집으로 돌아온 거에요.
당장 도시 나가서 집을 구할 때 보증금이라도 있으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일단 돈을 벌어야겠다 했는데 신문사 공고를 보게 됐어요. 글 쓰는 거 좋아하고, 사진 찍는 거 좋아하고, 영상 만드는 거 좋아하니까 적당히 적성에 잘 맞겠지, 하고 들어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함양에 오래 있을 생각 전혀 없었어요.”
국토대장정을 떠난 시절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최학수는 대학 초반에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그리고 대학 졸업 후 군대를 다녀와서 로망이었던 제주살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쌓아나갔다. 수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도구로 글쓰기와 사진, 영상을 즐기던 것이 신문사 취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니, 20년 내내 살아온 고향은 더 답답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국토대장정과 이야기
“부산에서 서울까지 대학생 144명이 한 번에 걸어가는데, 72명씩 줄로 두 줄로 쭉 서서 걸어가는 거죠. 50분 걷고 10분 쉬다가, 다시 출발할 때가 되면 줄 서서 50분 걷고 그런 시스템이에요. 10분 쉬고 오면 옆 사람이 바뀌어 있는 거예요. 휴대폰도 다 걷었고, 걸으면서 딱히 할 게 없잖아요. 그럼 옆 사람이랑 이야기하며 걷는 거예요.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어느 대학교 다니세요? 무슨 전공 하세요?’로 매번 똑같이 시작하는 대화지만 때마다 그 뒷이야기가 다 달라지거든요. 그 50분 사이에요. 그걸 3주 동안 매일 한 거예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 이야기는 되게 재밌고 소중하다는 감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감사한 일이죠.”
제주살이와 이야기
“제주에서 게스트 하우스에 계속 있었는데,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오거든요. 그 사람들이랑 대화하면서 남들 인생 찍먹해 보는 게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사람들 인생이 너무 궁금하고,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영감을 받아요.”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기자 모드'의 최학수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몰라, 함양에서 재밌게 살기
나그네에서 주인으로
함양살이에 진심이 싹트다
스무 살에 떠난 둥지 함양을 6년 만에 돌아왔다. 나그네 같은 마음으로 함양에 온 지가 어느덧 4년, 이제는 함양에 엉덩이도 마음도 붙이고 주인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 ‘난 함양을 떠날 거니까, 뭐.’ 이런 마음이 늘 기저에 있었는데 그게 한 번 확 뒤집어진 그 순간이 있어요. 서하다움(*서하다움: 함양 서하면에 위치한 청년레지던스플랫폼)에서 였죠.
대학생 때 가끔 고향집에 오면 빈둥(*빈둥: 함양읍에 위치한 마을활력공간)소식을 접했고, 그런 걸 통해서 빈둥 협동조합이 함양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요. 그런 빈둥을 이끌었던 김찬두 대표님이 서하다움도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걸 취재과정에서 알게 됐고요.
제주에서 생활할 때부터 도시재생이랑 지역살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때쯤 청년 마을 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SNS에서도 많이 보였어요. 그렇게 다른 지역에서나 보던 ‘우수 사례’ 같은 것이 함양에도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서하다움에서는 지역살이 경험을 통해 지역과 관계를 맺고 지역을 이해해나갈 수 있는 ‘2주 살아보기’, ‘삶일놀이캠프’와 같은 프로그램이 열린다.)”
최학수에게 함양은 이전까지 ‘그 어떤 가능성도 없는 곳’이었다. 흔히 토박이들이 그렇듯, 함양은 새로울 것이라곤 없는 곳, 결핍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그런데 도시 청년들이 함양에 와서 살아보며 새로움을 느꼈다고 할 때, 함양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함양 청년 모임 ‘이소’도 만들어졌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최학수의 함양 인생을 바꿔놓았다. 함양에 남아 뭔가 더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서고부터 최학수는 확실히 더 바빠졌다. 그의 활동들은 한층 더 방향이 잡히고 깊이가 더해졌다.
“이전까지는 제 생각의 종착점은 함양이 아니니까, 함양을 늘 과정처럼 여겼던 것 같아요. 근데 이때 처음으로 기사에 진심을 담아 하나하나 엄청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
그걸 인연으로 22년 봄, 서하다움에서 했던 ‘소셜다이닝’에도 가게 됐어요. 거기서 함양에 대한 제 마음가짐이 바뀌었어요. 저는 그날 온 사람들, 공연들이 다 기억날 정도로 좋았어요. 그때 더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러면서 2022년 10월에는 ‘거함산 청년 문놀장’ 같은 큰 행사도 함께 기획해 보게된 거에요.”
지역신문 기자의 업무 목록에는 유튜브 라이브도 있다.
지역신문 기자 본캐와 청년활동가 부캐가 만나면!
#토박이 #청년 #활동가 #기자
“예전엔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지역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2023년쯤부터는 두 정체성이 되게 잘 어우러졌어요. ‘저연차 지역 언론의 기자’가 본캐라면, ‘청년 활동가’는 부캐라고 할 수 있어요. 본캐와 부캐가 서로 영향을 주고, 활동을 돕기도 하는 선순환이 제 안에서 잘 일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 언론인을 저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생각하게 된 게 청년 활동이었고, 지역 신문의 기자로서 청년 활동을 주목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심이 더 확장됐던 것 같아요.”
그의 욕심을 응원하고 싶다. 농촌에서 보기 드문 청년, 기자. 그 두 가지 역할을 잘 버무려 소화해 내는 최학수의 활동은 새로운 역사다. 지금 최학수라서 할 수 있는 활동, 그 고유한 영역을 계속 다듬고, 쌓고, 넓혀가고 있다.
“‘이렇게 열정 있는 사람이 서울에 가서 기자를 해야 되는데’ 같은 말씀을 하는 분들도 계세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 제가 도시에서 시작했다면 절대 이런 사명감으로 일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지역에 대한 애정이 중심이 되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뭐 다른 데서 기자 생활을 해본 건 아니지만, 지역에서 기자를 한다는 게 좀 다른 것 같아요. ‘풀뿌리 저널리즘’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지역에서 특히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는 거죠. 부패 감시나 그런 기능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응원이 필요한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을 잘 다루어내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도 하는데 기사를 쓰면서 단순히 상황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해결책을 낼 수 있는지 그런 힌트를 행정에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는 어떻게 보면 ‘활동가’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제가 함양 사람이고, 청년 세대이면서 이 지역신문의 기자라는 게 다 모여서 결국은 지역의 소멸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위치가 되는 것 같아요. 사명감도 생기고요.”
그렇게 두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순간은 바로 청년 최학수가 기획한 행사에 기자 최학수가 취재를 가기도 하는 상황.
“처음에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 두 가지가 너무 붙어 있다고 느꼈어요. ‘내가 기획했는데 내가 취재하면 당연히 좋게 쓸 수밖에 없지.’ 그런 걱정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2023년에는 청년 모임 이소 관련 기사를 거의 안 썼어요. 지금도 조금 어려워요.
근데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그때는 엄청 엄격하게 피하려고 했거든요. 오히려 회사 회의에서 ‘이소에서 이런 저런 행사 있던데, 왜 기사 안 썼냐’고 물어보시기도 해요. 그럼 ‘다음부터 쓸게요.’하고 넘기곤 하는데, 내적으로 항상 고민이 되긴 해요. 내가 이렇게 기획하고 기사를 쓰는 게 맞는 상황일까.
그런데 한 편으론 기자로 일하면서 제일 만족스러울 때는 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들에게 제안해 볼때예요. (오후공책 벽면에 붙어있는 행사 포스터들을 가리키며) 저런 것도 저희가 기획했고, 제가 기사로 쓰기도 했거든요. 제가 기획하거나 취재한 것들이 지역에서 ‘먹히는’ 경험을 하면서 계속 자신감을 얻어가는 것 같아요. 제가 기자라는 것만으로 제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주려고 하는 상황도 저한텐 큰 자신감이 돼요.”
최학수는 기자의 무게를 늘 생각하고, 안이한 태도를 늘 경계한다. 자신감을 쌓아가며 자만하지 않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마 근면성실을 지향하는 것이 그의 비법이 아닐까 싶다. 지역사회 입장에선 반짝반짝 재주 많은 청년이 나타나 이렇게 ‘일당백’을 해주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023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최학수
'건실한 언론' 주간함양
거기엔 건실한 청년PD 최학수가 있다
『주간함양』은 함양의 ‘바른 언론 젊은 신문’이다. 2002년에 뜻있는 함양 군민들이 주주로 참여해서 『함양군민신문』으로 창간했다가 지금은 『주간함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최학수 기자를 비롯해 8명이 근무하며, 월 8천 원의 구독료가 있는 신문을 매주 16면으로 발행한다. 최학수는 『주간함양』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되게 건실한 언론이에요. ‘지역신문 발전 기금’을 받는 신문사거든요. 이건 언론재단에서 나오는 기금인데 경상남도 내 지역 신문 중에서 한 다섯 곳 정도가 받고 있어요. 근데 이게 굉장히 깐깐한 기준을 통해서 선정되거든요. 대표자가 대표자의 범죄 경력이 있는지, 직원들의 월급은 밀리지 않는지, 언론중재위원회에 몇 번 회부되었는지, 그런 것까지 따질 정도로요.
편집국장님이 30대 초반으로 젊은 편이어서 굉장히 편하게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어요. 그리고 저희 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기획 면이 엄청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신문이지만 매거진같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언론 윤리 강령 같은 것을 잘 지키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들을 실으려고 하는 그런 신문입니다.”
지난해에는 최학수의 기획으로 ‘고마워,할매’와 『주간함양』이 협업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의 함양 청년 마을 ‘고마워, 할매’에서는 타지 청년들을 대상으로 2주간 지역을 살아보는 프로그램이 열린다. 참가자 중 추가로 2주를 더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활동계획서’를 제출한다. 그 활동으로 최학수가 청년 인턴 기자를 제안한 것이다.
“처음으로 그렇게 활동하셨던 분이 엄청 만족스러워 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 지역을 바라봤을 때는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인턴 기자 생활을 통해서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온 거예요.
누군가는 골프장 회원권 때문에 이렇게 투쟁하고 있구나, 농사일지를 18년 동안 적은 사람이 있구나. 이런 구체적인 지역 이야기들을 접하게 됐죠. 그전까지는 함양이 여행지, 휴식지로서의 공간이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바뀌어 보이게 되는 경험을 하신 거예요.
실제로 그분은 지금 ‘고마워, 할매’에 일하면서 함양에서 계속 살고 계세요. 그래서 여행으로는 느낄 수 없는 지역에 밀착해 보는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평가했어요. 그래서 그 후론 아예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정착해 진행했었어요.
사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라기보다 굳이 말하자면 영상 기자의 역할이었거든요. 인터뷰에 동행하고, 인터뷰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누군가는 기사로 쓰고요. 참여하신 분들도 엄청 만족스러워했고, 『주간함양』 입장에서는 평소 제작하기 힘든 영상 콘텐츠를 남기게 되어서 되게 좋았죠. 영상 콘텐츠를 통해서 『주간함양』이 전하고자 하는 얘기를 더 생동감 있게 전할 수 있었으니까요.”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의 플로깅 인증 사진
사는 문제랑 뗄 수 없는 기후, 농업, 지방 소멸
다른 관심사가 없어요
『주간함양』에는 신문사의 의도가 반영된 주제의 기획 기사가 연재된다. 최학수는 한 해 동안 고민해 온 것들을 바탕으로 연말쯤 다음 해의 연재 주제를 결정한다. 올해는 나름대로 농업 3부작을 고민해 씨앗, 먹거리, 농업에 대한 기사를 다뤄내고 있다.
“방금도 여기서 <저속 노화 식단>이란 책을 한 권 샀어요. 저는 기후 위기에 관심이 크게 가더라고요. 그래서 2024년 1월 1일자 1면에 토종 씨앗으로 ‘2024’라고 쓴 사진을 냈거든요.
올해를 시작하면서 저 혼자만의 다짐이 있었어요. 조금 더 건강한 먹거리,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농업. 그런 것들을 올해 기사로 다뤄야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함양 농업에 토종종자 생태계 마련하기>라는 기획 기사를 9편 연재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함양의 발효문화 기반 활용을 통한 지방소멸 극복>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 중이에요. 추가로 계획 중인 건 ‘미래농업’에 대한 기획 연재예요. 내년엔 ‘사라질 결심’이라는 주제로 지역이 안전하게 사라져가는 방법에 대해 다루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의 프로필에는 늘 ‘지방소멸의 해법을 고민합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사라질 결심’이라는 말에서도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최학수는 함양 사람이고, 청년이면서, 지역신문의 기자이기 때문에 더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제가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건 계속 고민하고 실천할 것 같아요. 다른 관심사가 없어요.
지방 소멸을 막는 법은 이 지역의 매력을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청년 모임 이소를 만들기 전부터 그런 상상을 했었어요. 시대가 변하고 우리가 맞이하게 된 새로운 일상의 표준을 뉴노멀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뉴농촌’이 있을 것 같아요. 보수적인 선택이 겹쳐서 구성된 농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로 새롭게 구성된 농촌을 상상해 봐요. 저는 너무 기대되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함양이 어떻게 뉴농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시골 청년들이 쉽게 공감하는 생각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지역 사람들이 진짜 재미있게 잘 살면, 자연스럽게 지역은 활력을 띤다는 것. 그러면 인구 유입이니 지역 홍보니 하는 효과도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 애써 부자연스러운 행사나 사업을 새롭게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우리 지역이 가진 삶과 자원을 잘 알아가고 다루어내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라는 것.
이소의 2030모임
외로울 틈 없는 함양살이
힌트는 청년모임 이소
함양 청년모임 ‘이소’는 안부를 묻는 글 ‘이소’라는 뜻과 청년들의 이야기, 소리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함양 청년의 안부를 묻는 이 느슨하고 따뜻한 모임을 처음 만든 사람도 최학수다.
“제가 처음에 꿈꿨던 건 일종의 명단 형태예요. 왜냐하면 제가 낯을 가려서 이걸 모임으로 할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취재 과정에서 만나는 청년들을 다 목록으로 정리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누가 나에게 연락만 하더라도 필요한 누군가를 연결해 수 있으니까 좋겠다 싶었어요. 어디 가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뭘 잘하는지 함양 청년들을 아카이빙 하는 거죠.
함양에 청년이 운영하는 ‘쟈뎅드마망’이란 꽃집이 있어요. 꽃집 사장님이 제가 소개한 지원사업을 통해서 원데이 클래스를 연 거예요. 알려준 입장에서 뿌듯하고 좋아서 취재하러 갔거든요. 그때 원데이 클래스에 참가한 다솜 님을 처음 만났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이미 귀촌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주변에 친구도 없이 일만 한 거예요. 다른 분들도 ‘귀촌 우울증’ 같은 게 있더라고요. 뭔가 퇴근하고서 맥주 한잔할 친구가 없는 거죠. 어딜 가야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는지 힌트도 없는 그런 지역이다 보니까 ‘여기 가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겠지.’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다솜님과 알게 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서 같이 이소를 만들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일상에서 다들 일부분 긴장이 있는 상태에서 살잖아요. 그런데 내 또래들과 만났을 때 그 긴장이 제일 덜 한 것 같아요. 건강한 청년단체가 지역의 문화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이소는 그런 맥락에서 계속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해보기로 하고 직접 연 '이소 문화센터'의 미술 수업시간
직업도 취향도 다양한 청년들을 처음 한데 모을 수 있었던 건, 최학수를 비롯한 운영진의 기획력과 친화력 덕분이다. 처음 모임을 열었을 땐 연결에 목말랐던 청년들이 매달 20~30명씩 모였다. 매달 자기소개 하기 바빴다고.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독서모임, 영어 모임, 글쓰기 모임, 플로깅 모임, 와인 모임 같은 소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는 ‘이소 문화센터’라고 해서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해보기로 했어요. 지역 문화 강좌는 아무래도 주된 대상이 정해져 있다 보니까 프로그램들이 청년 친화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열었어요. 청년 친화적인 시간대에, 청년 친화적인 주제로 청년이 가르치고 청년이 배우는 그런 구조로 만들어봤어요. 미술 수업, 가죽 공예, 취향 찾기 등의 모임이 열리고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계속 기획된 모임을 운영하자 운영진과 참가자가 뚜렷이 구분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누군가 계속 운영 에너지를 제공해야만 했다. 그래서 올해는 운영 체제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운영진들을 더 모아봤는데 너무 지원자가 없더라고요. 구글 폼에 응답해서 목록화되어 있는 청년은 100여 명인데 말이에요. 그게 이소의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느슨해서 언제든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지만, 제공자와 수혜자가 구분된 느낌이요. 그래서 올해는 5명이 협동조합의 형태를 갖췄어요.
제가 처음에 청년 모임을 생각한 게, 명단과 함께 네트워킹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거였어요. 지금은 여행자와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있으니까, ‘로컬 커뮤니티 호텔’을 해보고 싶어요. 이번에 독립하면서 생긴 제 집을 그렇게 활용할 방법을 구체화하고 있어요. 지금 협동조합원들이 지원사업 심사를 받으러 가 있어요. 좋은 소식 기대해 주세요.”
오후공책에서 열린 <어디에나 우리가> 북토크. 책은 지리산에 살기로 결정한 청년들의 인터뷰집이다.
‘낯은 가리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어딘가 쓰인 최학수의 소개 글이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은 사는 게 재미있다. 이렇게 재밌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멸’이라니, 가끔 그 말이 우습단 생각도 든다. ‘오래가는 것들을 좋아한다’도 최학수의 말이다. 최학수가 좋아하는 함양도 오래가면 좋겠다.
최학수의 진심 어린 고민과 성실이 촛불처럼 함양 구석구석 작고 소중한 이야기를 찾아 비춘다. 그리고 가사처럼 촛불은 주변으로 옮겨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된다. 그러다 어느새 어둠은 사라지듯, 최학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함양의 오늘과 내일이 환하게 밝혀지는 느낌이 든다. 10년 후엔 우리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뉴농촌’을 맞이하고 있을까. 그때까지 동료 활동가 최학수와 살맛 나는 새 농촌의 이야기를 같이 써나가고 싶다.
진행 / 넉넉
글 / 푸른
인터뷰 일시 : 2024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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