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소소한 일상을 전하고 싶은 밴드가 있다. 예술가, 그것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라면 응당 사회적 시선이나 가치관을 담아내야 한다는 시선이 있지만 소소한밴드는 이런 것보다 생활 속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기로 했다. 멤버 각자가 머릿 속에,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 일상에서의 경험에다 노랫말과 멜로디를 붙여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연다. “소소한 일상을 노래하지만 적어도 음악은 소소하지 않다는 이야길 하고 싶은” 구례에 귀촌한 소소한밴드의 멤버 짓다, 라윤, 태준을 만났다.
왼쪽부터 소소한밴드의 태준, 라윤, 짓다
소소한 밴드 멤버를 소개합니다
태준
“기타만 합니다.” 소소한밴드에서 기타를 메인으로 연주하지만, 때때로 보컬을 한다. 스무 살 이후로 소소하게 밴드 음악을 연습하다 삶의 전환을 위해 구례로 이주했다. 짓다의 공연을 보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짓다&라윤 부부의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이 또래라는 걸 알고 더 가까워졌다. 언젠가 아이리쉬 음악을 하는 날을 꿈꾸지만 소소한밴드에선 안 될 것 같다고 믿는다.
라윤
셰이커와 멜로디언, 보컬을 맡고 있다. 방구석 뮤지션이었지만 꾸준히 공연을 하던 짓다의 연습실에 따라다니면서 ‘풍월 읊는 서당개’가 됐다. 앰프에 악기를 연결해 연주하는, 소위 ‘꽂고 하는’ 음악보다는 마음의 이야기를 담은 내추럴한 음악을 추구하며 이제는 다양한 음악을 깊이 즐길 수 있게 됐다. 밴드 세션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건반을 살지말지 고민하고 있다. 모든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소소한밴드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가장 많이 이해하는 멤버일지도 모르겠다.
짓다
부산의 인디씬에서 오랜 기간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소소한밴드에서 젬베, 카혼 등 리듬악기를 주로 담당하며 카주, 하모니카, 통기타, 베이스, 일렉 기타 등 멤버들이 ‘시키는 대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지만 잘 해내기는 아직 쉽지 않다. 임용고시를 핑계로 라윤과 함께 구례에 정착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례에서도 밴드 활동을 했으나 팀에서 나와 태준, 라윤과 ‘소소한밴드’를 만들었다. 언젠가 제대로 된 레게 음악을 하는 날을 꿈꾸지만 소소한밴드에선 안 될 것 같다고 믿는다.
소소한밴드의 태준
우리 팔자에는 어쩔 수 없는 시골살이
음악 뒤편엔 일상이 있다. 모여보니 멤버가 모두 대학원 경험이 있었다. 대학원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들에게는 대학원으로부터 도망쳐 돌고돌아 정착한 곳이 시골이었다는, 그리고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은 음악이었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다채롭고 소박한 삶을 꿈꿨던 세 사람이 모여 구례에서 음악을 하고 있다니, 음악 뒤에 있는 멤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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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은 학교를 ‘좀 길게’ 다녔다. 자기 시간도 없던 대학원 생활은 졸업한다고 해도 취업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았다. 의미 있는 공부와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원의 조직문화가 너무 힘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려 귀촌을 결심하게 됐다. 7년 전의 일이다.
태준:“엄청 고민을 하다가 그때 시골 가서 목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구 만드는 곳으로 목공을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회사를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휴가 받으면 혼자 지리산둘레길을 몇 번 걸었거든요. 그러면서 이 마을 좋네, 뭐 이런 데 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다녔었죠. 마침 아내도 시골살이에 뜻이 같은 사람을 만나서 자주 지리산권을 다녔어요. 구례를 많이 온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구례까지 오게 됐네요.”
태준의 전공은 환경 생태학이다. 음악 외에 일상의 중심을 가져가는 일은 생태 조사와 연구에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함양으로 식생 조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구례에 내려오고 나서부터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불리는 구례의 심원마을 식생 복원 과정 모니터링을 지속해왔고,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활동, 우리나라 토종 비둘기이자 멸종위기종인 화엄사 낭비둘기 모니터링 등 삶터 반경의 산과 강에서 생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소소한밴드의 라윤
소소한밴드의 짓다
부산에서 만나서 결혼한 라윤과 짓다는 밤낮으로 엇갈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결혼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어영부영 급하게 직장을 구한 탓이었다. “우리 결혼도 했는데, 밥 한 번 같이 못 먹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 라는 말이 나왔고, 하던 일들을 그만두고 서로의 시간대를 맞춰보기로 했다. 교육대학원에 다니던 짓다는 임용고시든 공무원 시험이든 준비하기 위해 어딘가 짱박혀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 라윤의 동생이 있던 구례로 내려오게 됐다.
라윤: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이 양반(짓다)이 여기에 눈을 뜬 거예요. 나는 품팔이만 하고 살아도 좋으니까 여기서 살게, 나는 몸을 쓰면서 살겠어, 하면서요. 공부 안 해! 교사 안 해! 공무원도 안 해! 나랑 안 맞아! 그러더라고요. 땡볕에 풀을 열심히 베고 와도 좋다 그러고, 벌에 쏘여도 좋다 그래서 그때 많이 싸웠어요. (웃음) 그래도 이 사람이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제가 진 거죠. 에라 모르겠다 했어요.”
라윤의 동생은 오히려 도시로 돌아갔는데, 라윤과 짓다는 이곳에서의 삶이 싫지 않았다. 품팔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짓다: “품팔이로 시작해서 거기서 알게 된 과수원과 목수 팀을 만나서 목수 일도 몇 년 했어요. 그러다가 임대로 나온 과수원이 있어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과수원 면적이 좀 넓어져가지고 목수 일은 거의 못하고 과수원에 올인을 하고 있어요. (웃음)”
양육자인 세 사람은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마을학교 사업도 담당하고 있다. 보조금 사업을 학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라윤은 대표를, 태준과 짓다는 진행팀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마을 극단, 작곡 수업 등을 하며 가진 능력들을 사회와 나눈다. 시골에서의 삶은 정해진 것도 없이 바쁘다.
라윤: “그런데 도시에서 이렇게 열심히 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시골에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태준:“나도 요즘 그 생각 진짜 많이 하지. 우린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짓다: “일단 우리 팔자에는 어쩔 수 없어.” (웃음)
남원시 산내면에서 열린 지리산포럼2023에서 공연 중인 소소한밴드
여전히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소소한밴드는 셋이서 한 팀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완성시킬 수 있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각자가 자기 스타일대로 만든 노래를 다같이 부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곡의 초기 컨셉은 개인의 스타일대로 작사와 작곡을 해오고 다함께 곡의 구성을 논의한다.
태준: “그런데 저희가 음악 스타일이 정말 많이 달라요. 짓다는 레게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할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저는 아이리쉬 음악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이렇게 하고 있다 말하고, 라윤은 딱히 하고 싶은 음악은 없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 연습할 때 짓다의 <뱃놀이>를 처음 연습하는데 코드는 단순한데 리듬을 못 치겠는 거예요. 이게 지금 읏-따다 인지 따다다 인지… 진짜 음표를 그려가면서 설명하는데 나는 모르겠다 하고. (웃음) 해본 적이 없는 리듬이었어요. 여전히 근본적으로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있어요.”
라윤: “여전히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웃음)
그렇다면 세 사람의 스타일이 합쳐진 음악은 아직 없는 것일까.
라윤: “그래도 저는 반 정도는 합쳐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짓다는 곡을 가져오면 자기가 이미 세팅이 완료된 상태에서 정확하게 나머지 멤버들이 해줘야 할 부분을 요구하는 편인데, 저와 태준은 한 80% 된 걸 던져놓고 같이 만들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혼자 만들었다고 하긴 좀 그렇고 여기서 이야길 들으면서 같이 수정을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순서를 바꾸자, 이 부분은 없애자, 박자를 바꾸자 같은 거요. 짓다에게는 주로 가사를 바꾸라고 제가 강요(?)하거나, '노래를 그렇게 부르지 마! (웃음)' 할 때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연습할 때가 되게 재밌어요."
소소한밴드의 공연 장면을 영상으로 남기는 행사 참여자
음악을 사랑하게 된 세 가지 장면
태준은 고등학교 때까지 남들 좋아하는 음악은 다 좋아하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아주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너바나(Nirvana)’의 락을 좋아했는데, 태준에게는 시끄럽기만 했고 심지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조그마한 산을 끼고 성균관대학교와 붙어있었는데, 어느 날 대학교 축제에 ‘시나위’가 온다고 해서 친구들 손에 이끌려 따라가게 됐다. 그때가 음악에 빠지게 된 첫 순간이었다고 태준은 똑똑히 기억한다.
태준: “그때 시나위 보컬이 김바다 씨였던 때였어요. 막 들뜬 친구들한테 이끌려서 산을 딱 넘어가는데 산 너머 대학 운동장에서 시나위가 공연을 하더라고요. 저는 서울 살면서도 그런 라이브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산을 넘어서 꽝꽝꽝 울리는 그 음악이 너무 새로웠던 거죠. 그땐 사람이 얼마 없어서 무대 앞에서 공연을 보는데 너무 멋있고 너무 좋아서 홀딱 빠졌어요. 그 공연 본 후로 시나위 앨범을 사고, 주말에 기타 연주도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음악에 대한 사랑은 서울살이를 전과는 다른 것으로 바꿔놓았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지만 서울엔 <수요예술무대>처럼 무료로 진행하는 공개방송이 많았고, 학교가 끝나면 태준은 친구들과 자우림, 박정현 같은 가수들을 보러 갔다. 성인이 되어서도 홍대에서 연습실을 잡고 음악을 만들었고, 가끔 버스킹과 공연을 했다. 일상을 음악에 바치는 ‘전문 음악인’으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다양한 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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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윤은 팀 활동은 해본 적 없이 혼자서 노래듣기와 가사쓰기를 좋아하던 ‘방구석 뮤지션’이었다. 그러다 동기의 졸업작품에 악기 소리와 허밍을 넣은 OST 작업을 처음으로 음악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단히 멋지게 녹음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잡음 없는 정도로 만들어진 단순한 음악을 두고 친구와 라윤은 기뻐했다.
라윤: “그냥 음악은 나의 삶인 것 같아요. 밴드 음악, 국악, 외국의 다양한 장르 할 것 없이 어떤 음악이든 다 좋아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디 한 군데에 꽂혀서 집중하는 타입이 아니예요.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잘 시도를 안 하다 보니 특별히 음악 할 생각도 없었죠. 오히려 지금 밴드 활동을 하면서 제 귀가 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짓다가 밴드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때와 라윤이 짓다와 연애를 시작한 시기가 우연히 맞물렸다. 그때도 바빠서 같이 있을 시간도 부족했던 때라 라윤은 매번 짓다의 연습실에 놀러갔다. 그렇게 7년이나 따라다니다 보니 라윤은 좋은 음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음악을 더 즐길 수 있게 된 시간들이었다.
라윤: “지금 생각하면 엄청 심심했는데 왜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땐 짓다도 합주할 때 말을 안 하는 캐릭터였거든요. 심지어 ‘꽂는 소리’도 싫어했기 때문에 힘들었는데, 연습실과 공연장을 따라다니다 보니 듣는 귀가 생긴 거예요. 아, 여기선 베이스가 좀 작은 것 같고, 여기선 좀 더 살리면 좋겠네 하면서 전체 구성을 듣기 시작한 거죠. 나중에는 멤버들이 저한테 곡이나 연주가 괜찮은지 물어보더라고요. 잘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요. 그러면서 원래 좋아했던 음악이 더 좋아졌어요. 지금도 듣는 연습은 진행 중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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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가 음악에 발을 들인 건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주 친했던 친구가 스쿨밴드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래, 재밌게 해. 친구가 드럼을 친다고 하고 보컬과 기타를 구했다고 했을 때도 짓다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재밌게 해. 그런데 “베이스가 없어서 네가 하면 좋겠다.”는 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밴드에 들어가게 됐다. “악기는 어떻게 해야 돼?”라는 짓다의 말에 친구는 대답했다. “사와.” 베이스가 뭔지는 몰랐지만 짓다는 그날로 덥석 싸구려 베이스를 샀다.
짓다: “베이스를 샀는데 스쿨밴드 3학년 선배들은 졸업을 한 거예요.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독학을 했어요. 처음 베이스를 쳤던 기억이 되게 강렬했는데, 2학년 올라가는 봄방학이었거든요. 한 곡 악보를 놓고 베이스, 드럼, 보컬 맞춰서 봄방학 일주일 내내 연습한 거예요. 아침에 9시쯤에 나와서 연습을 하다가 점심 때 컵라면 하나 먹고 연습을 하다가 저녁 5시에 집에 가는 걸 일주일 동안 반복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더라고요. 그 경험이 너무 강렬했어요. 악기라고는 리코더와 캐스터네츠만 해봤던 상황에서 이 경험이 그 뒤에도 큰 울림이 있었어요. 그때처럼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생각도 하고요. 그게 제가 음악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짓다가 음악에서 받은 짜릿함은 스무 살 때도 이어졌다. 거제도에서 열린 작은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마침 스쿨밴드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은 것. 마치 청춘드라마의 이야기처럼 다시 한번 고등학교 때의 스쿨밴드 팀이 거제도로 뭉쳤다. 행사 주최 측에게 거제에 있는 한 대학의 동아리방을 연습실로 얻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같은 멤버, 같은 방식의 연습이었다.
짓다: “낮에 각자 일정이 있으니까 저녁에 만나서 산중턱에 있는 학교 동아리방에서 밤새 연습을 하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나오고. 그 다음날엔 오후 일정을 마치고 나면 집에서 자고. 그렇게 1박 2일 퐁당퐁당 일정을 계속 했어요. 그때 또 친구들이랑 같이 연습하다가 잼하다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하여튼 젊을 때 했던 기억들이 너무 좋아서 혼자서 음악하는 것보다는 팀으로 하는 걸 선호해요.”
짓다의 말을 듣고 있단 라윤이 한 마디를 보탠다. “젊다, 젊어. 우리도 일주일만 합숙하면 정말 잘할 텐데.”
남원시 산내면에서 열린 지리산포럼2023에서 공연 중인 소소한밴드
우리가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소위 ‘꽂고 해본 음악인’이 어떻게 구례 같은 소도시에서 소소한 음악을 만들게 됐을까. 음악 때문에 웃고 울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음악에 대한 욕심과 잘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는지 물어봤다.
짓다: “그 과정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내려놓는 과정. 부산에서 활동할 때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공연을 했는데 그러려면 공연 전에 압축적으로 집중해서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런데 소소한밴드를 시작하면서 저도 제가 잘 다루는 악기를 하는 게 아니고, 멤버들도 파트를 밀도 있게 연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저희가 합주를 하려고 하면 옆에서 애들이 “아빠~~~” 이러고 뛰어다니거든요. 저희 팀이 생긴지 햇수로는 몇 년 되었는데 사실 지금도 신생팀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짓다는 음악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누구나 음악을 할 수 있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음악을 들려달라고 요청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고, 여기에 대한 가치도 듣는 사람이 매기는 것이고, 뮤지션은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런 수준’의 공연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구례에서의 밴드 경험은 짓다에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을 줬다. 다행히 지금은 ‘그럴 때가 있었지’ 하며 흘려보낼 수 있게 됐다. 공연을 하는 자체가 부끄러웠던 때가 있었지만 매번 내려놓기로 했다.
짓다: “이제는 괜찮아요. 우리가 재밌어서 하는 거니까. 우리가 즐겁게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재밌어서 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즐거워해주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팀을 계속하고 싶으니까 흐름에 편승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웃음)
태준: “저도 기타만 쳤지, 보컬을 했던 건 아닌데 여기선 보컬도 하니까 사실 공연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죠. 실질적으로 삶이 바쁘고 연습시간도 부족하고요. 저도 집에 가서는 아내한테 노래하지 말아야겠다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되니까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되게 착해요. (웃음) 실력이 출중한 밴드가 많은 서울에서 제가 지금 정도 수준의 공연을 한다면, 글쎄요… 인기가 별로 없을 수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는 좋아해주시고 팬이라고 해주세요.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라윤은 다른 일에서는 기준에 맞춰서 ‘잘 해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밴드 음악에서는 스트레스나 강박이 없었다. 그 밑바탕에는 멤버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라윤: “이 두 사람이 일단 굉장히 성실한 사람들이고, 제가 걱정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리고 저희가 밴드 시작하면서 했던 약속이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만나는 거예요. 물론 실력으로도 더 잘하면 좋겠지만, 세 사람 다 너무 바쁜데, 아무리 바빠도 내 삶을 바꾸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온 거니까 밴드활동을 꾸준히 하는 걸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밴드 활동이 저에겐 1순위예요.”
그래도 음악이 즐겁다
이렇게 바쁜 삶 속에서 소소한밴드는 자신들의 음악과 활동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바쁜 활동 속에서도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짓다는 연습과정도, 공연도 너무 재미있어서 이걸 유지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라윤은 멤버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던 연습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태준은 시골 와서 사는 것도, 밴드하는 것도 다 같은 마음이라고, 우리들 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라윤: “셋이 앉아서 연습하는데 진짜 못해 (웃음) 근데 너무 즐거워, 애들 막 뛰고 시끄러운데 어쨌든 이걸 하려고 앉아 있다는 게 되게 행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피곤하거나 상태 안 좋은 날에도 하다 보면 힘이 나요. 그래서 힘들다는 느낌이 저도 없어요. 즐거워요.
태준: “저는 되게 고등학교 때도 소위 말하는 범생이처럼 살아왔어요. 근데 음악을 놓고 싶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과거에 처음 시나위를 만났던 때,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 다녔던 그때가 제 삶을 많이 바꿔줬거든요. 삶에서 다른 방향을 볼 수 있다고 알려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음악도 너무 좋고 계속하고 싶어요. 시골을 선택했던 이유 중에 음악을 잘 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 이 조그만 동네에서 마음 맞는 사람 만나서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걸 아니까 멤버들한테 더 고맙고 좋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크고 작은 공연을 꾸준히 이어온 소소한밴드는 별도의 SNS 계정이나 홍보채널이 없기 때문에 기록된 공연 영상이 적은 편이다. 그나마 관객의 영상, 행사 주최의 영상에서 그들의 음악을 소소하게나마 즐길 수 있는데, 나는 바로 이런 점에서 음악 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그들의 태도가 느껴졌다. 멤버 각자의 성향이나 추구하는 스타일, 매력이 다른 만큼 각자가 좋았다고 생각했던 공연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태준: “저는 기타 치면서 노래 불렀던 게 구례와서 거의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해 동지 행사에서 ‘아이 동(童)’을 컨셉으로 아이들을 많이 불러보자고 기획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혼자 기타를 들고 가서 노래를 했는데 애들이 막 난리가 난 거예요. 아이들이 호응을 얼마나 열심히 해줬는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라윤: “산내면 ‘들썩’에서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했던 공연이 있었어요. 활동가들의 엄청난 집중력과 호응도가 너무 좋아서 놀라웠어요. 보통 실내 공연은 무대만 밝고 객석은 어두워서 공연하고 내려오면 끝인데, 들썩 공연은 전체가 밝았잖아요. 사람들의 표정이 다 보이는데 거기서 저희 노래에 집중해주시는 얼굴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참 하길 잘했다, 하는 공연이 있어요. 구례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 한번 다 모아서 놀아 보자 하고 만들었던 '구례행성추수절'이예요. 다양한 색깔의 음악이 펼쳐졌고, 모인 분들끼리도 가까워졌고, 보신 분들의 후기도 좋아서 뿌듯했어요. 언젠가 또 해보고 싶어요.”
짓다: “저는 한 공연을 꼽기보다는 기존에 해왔던 공연과의 차이가 새로웠어요. 관객과의 거리가 많이 달라졌거든요. 여기선 대부분의 공연이 관객과 바로 딱 붙어있는 상황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지금도 적응이 잘 안 되기도 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반응들이 즐겁기도 해서 얼떨떨할 때가 많아요.”
하늘빛, 오르막, 뱃놀이
가장 좋았던 공연에 이어 멤버들의 최애 자작곡도 소개를 부탁했다.
태준: “<하늘빛>이라는 곡이 있어요. 3년 전 쯤에 만들었던 노래인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되게 예쁜 시기잖아요. 어느 날 마을 산책하다가 노을이 엄청 예쁘게 지는 날이 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아이들이 저런 자연의 아름다운 빛처럼 자랐으면, 또 저와의 관계도 예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노래 뒷부분에 연주만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들판에서 아이들과 손잡고 춤추고 노는 느낌을 상상하면서 작곡했는데, 아이리쉬 느낌을 넣었죠. (웃음)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곡이예요.”
하늘빛
하늘빛처럼 푸른 마음 너의 눈에 담아가길 노을빛처럼 뜨거운 마음 가슴속에 간직하길 물빛처럼 투명한 마음 잊지 않고 기억하길 봄 햇살처럼 부드러움 마음속에 간직하길
먼 하늘 빛 나는 작은 별을 기억하렴 산 위에 떠 오르던 밝은 달을 기억하렴
하늘빛처럼 푸르른 마음 너의 눈에 담아가길 노을빛처럼 뜨거운 마음 가슴속에 간직하길 물빛처럼 투명한 마음 잊지 않고 기억하길 봄 햇살처럼 부드러움 마음속에 간직하길
먼 하늘에 빛 나는 작은 별을 기억하렴 산 위에 떠 오르던 밝은 달을 기억하렴
라윤은 짓다과 함께 네팔 트레킹을 하다 짓다가 고산병에 걸린 일화를 소개하며, 그때 만들었던 <다시 또 오르막이다>를 가장 애정하는 곡으로 꼽았다.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던 짓다를 보면서 내려갈까, 돌아갈까, 같이 걸어갈까 고민하던 순간에 떠오른 노래였다. 짓다가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자기 페이스를 늦출 수는 없었던 복잡한 상황이었다. 아득했던 그 시간이 지나고 내려와서 라윤은 그때의 마음을 담아 생각했던 곡을 녹음하면서 버텨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라윤: “생각해 보니 제가 뭔가 힘든 게 있을 때 그런 마음들을 정리하면서 노래를 만들더라고요. 그러고나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고. 그래서 부를 때마다 특별히 신나지도 않고, 특별히 제가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도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제가 좋아요. 그때 내가 잘 이겨냈다, 하고 떠올릴 수 있어서요.”
다시 또 오르막이다
다시 또 오르막이다 전보다 높은 것 같아 숨이 차고 눈앞이 흐려도 나는 걷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까마득히 길이 보이네 사람들이 저 멀리서 걸어가네 내가 있던 곳은 아주 멀리 거긴 구름 너머도 보이지 않네 미련으로 채운 일기도 베개 밑에 묻어 놓은 고민들도 지금 이 순간은 먼지일 뿐이야 발걸음 뒤로 흩어질 뿐이야 다시 또 오르막이다 전보다 높은 것 같아 숨이 차고 눈앞이 흐려도 나는 걷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쉬어 갈 마을이 보이네 어떤 얘길 배낭 속에 담게 될까 내가 있던 곳은 아주 멀리 거긴 지금쯤은 별이 뜨고 있겠지 미련으로 채운 일기도 베개 밑에 묻어 놓은 고민들도 지금 이 순간은 먼지일 뿐이야 발걸음 뒤로 흩어질 뿐이야
다시 또 오르막이다 전보다 높은 것 같아 숨이 차고 눈앞이 흐려도 나는 걷는다
다시 또 바람이 불어 저 높이 나를 밀어 올려 하늘 가까이 구름 위로 나는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짓다는 구례 최대의, 최고의 히트곡 <뱃놀이>를 꼽았다. 코 닿는 곳에 바다가 있었던 거제도에서 태어나 부산, 진해를 거쳐 산에 둘러싸인 구례로 들어오다보니 한 번씩 바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탁 트인 바다를 상상하며 만든 <뱃놀이>는 그가 생각했던 레게 감성과 밴드 음악이 잘 어우러진 곡이기도 했다.
짓다: “아까 라윤이 말했던 ‘구례행성추수절’ 공연에서 엔딩곡으로 뱃놀이를 준비했는데 모든 출연진이 함께 했죠. 제가 작곡하면서 상상했던 것이 그 때 실현된 거예요. 기존 세팅에 세트 드럼과 베이스, 트럼펫, 장구, 대금, 꽹과리가 모두 들어와서 합주를 하는데 그때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 곡이 제 최애곡일 수밖에 없어요.”
하품을 하며 출근하는 길 자욱한 안개 우뚝 솟은 산들 멍하게 차창만 바라보다 그러다 문득 바다로 떠나고만 싶네요 나는 해적왕이 될 남자 그대여 나의 동료가 되어주오 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자유 평화 그리고 그대뿐이라오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어야디야 어기야디어차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랄라 랄랄랄라
탈탈 털리고 퇴근하는 길 햇빛에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들 멍하게 차창만 바라보다 그러다 문득 바다로 달리고만 싶네요 젊어 고생은 집어치우고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봅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자유 평화 그리고 그대뿐이라오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어야디야 어기야디어차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랄라 랄랄랄라 한 번 더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어야디야 어기야디어차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랄라 랄랄랄라 뱃놀이 갑시다
남원시 산내면에서 열린 지리산포럼2023에서 공연 중인 소소한밴드
소소한밴드의 지향점은 소소해지기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그러니까 어떤 두 사람이 만난다면 두 사람 안에 가능성과 잠재력, 그리고 한계가 명확히 공존할 것이라는 생각. 만약 또 다른 사람이었다면 또 다른 이야기와 시너지가 펼쳐질 테니까. 그런 마음으로 소소한밴드가 생각하는 소소한밴드의 지향점을 물었더니 ’그저 오래가는 것’, ‘그냥 일상이 되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대답을 듣으며 그저 소소함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이 밴드와 관객이 낼 수 있는 가장 궁극의 시너지라고 생각했다.
짓다: “제가 여러 팀을 거쳐오면서 느낀 게 팀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궁극의 지점이 있어요. 어떤 노래를 커버하거나 곡을 만들어 공연하는데 똑같은 순간에 똑같이 틀리는, (웃음) 그러니까 멤버 모두의 해석의 방향이 똑같아진 거죠. 저는 우리도 오래해서 지향점이 똑같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그래서 내 레게 음악의 기타 리듬이 아이리쉬풍 일지언정 (웃음) 그것이 적절하게 섞여서 소소한밴드 음악이구나, 라는 느낌이 드는 지경까지 가면은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태준: “저는 그냥 지금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때 아이리쉬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자주 들지 않고요. (웃음) 저는 지금처럼 노래도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연습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게 되게 고맙거든요. 그곳이 집회든 어디든 우리를 불러줘서 가서 노래를 같이 하고 그걸로 응원을 해줄 수도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당신의 인생음악은 무엇인가요?
소소한밴드는 매년 리사이틀 형식의 정기공연을 열었다. 초청공연도 좋지만, 자신들이 하고 싶은 분위기에서 자신들의 곡과 세팅으로 여는 공연을 1년에 한 번씩은 열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바빠진 각자의 일상 때문에 작년에 공연을 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남은 올해 하반기 소소한밴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짓다: “매년 신곡을 만들기가 어렵다보니 매번 같은 곡으로 공연하는 게 관객에게 조금 지겹게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작년엔 ‘신해철 트리부트’ 공연으로 한 시간동안 신해철 노래만 했고, 올해는 어떤 주제를 잡아볼까 하다고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인생음악을 리메이크 해보자고 이야기가 나왔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인생음악에 대한 이야길 나누고 지금은 그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시기는 올해 11월쯤 될 것 같습니다.”
소소한밴드 연습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라윤은 합주시간 1시간 중에 30분은 웃고 떠드느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서로 “좀 잘해라~” “너무 못한다~” 하면서. 잘 해야하는 음악에 대한 짐을 내려놓고 내가 편안한 음악을 하니 연습시간은 그저 즐거운 시간이 됐다. 이번 소소한밴드 인터뷰도 그랬다. 멤버들은 어느 한 사람이 오랫동안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고 한 마디씩 얹었다. 웃는 시간이 절반이었다.
세 사람의 빛깔대로 가는 밴드, 그저 오래 하는 것이 꿈이라는 소소한밴드가 나는 정말로 오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자녀들이 음악하는 엄마, 아빠를 인지하고 있고 음악과 연주에도 관심을 가진다는 말을 들으며 언젠가 7인조 밴드를 꿈꾼다는 짓다의 말이 정말로 실현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소소한밴드의 멤버들이 음악하면서 느끼는 바로 그 즐거움이 관객에게까지 대대손손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두고 아프고 고민하고 멈춰버린 이들에게 그저 소소하게, 좋아서 하는 그들의 음악이 대대손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활속의 소소한 일상을 전하고 싶은 밴드가 있다. 예술가, 그것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라면 응당 사회적 시선이나 가치관을 담아내야 한다는 시선이 있지만 소소한밴드는 이런 것보다 생활 속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기로 했다. 멤버 각자가 머릿 속에,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 일상에서의 경험에다 노랫말과 멜로디를 붙여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연다. “소소한 일상을 노래하지만 적어도 음악은 소소하지 않다는 이야길 하고 싶은” 구례에 귀촌한 소소한밴드의 멤버 짓다, 라윤, 태준을 만났다.
왼쪽부터 소소한밴드의 태준, 라윤, 짓다
소소한 밴드 멤버를 소개합니다
태준
“기타만 합니다.” 소소한밴드에서 기타를 메인으로 연주하지만, 때때로 보컬을 한다. 스무 살 이후로 소소하게 밴드 음악을 연습하다 삶의 전환을 위해 구례로 이주했다. 짓다의 공연을 보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짓다&라윤 부부의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이 또래라는 걸 알고 더 가까워졌다. 언젠가 아이리쉬 음악을 하는 날을 꿈꾸지만 소소한밴드에선 안 될 것 같다고 믿는다.
라윤
셰이커와 멜로디언, 보컬을 맡고 있다. 방구석 뮤지션이었지만 꾸준히 공연을 하던 짓다의 연습실에 따라다니면서 ‘풍월 읊는 서당개’가 됐다. 앰프에 악기를 연결해 연주하는, 소위 ‘꽂고 하는’ 음악보다는 마음의 이야기를 담은 내추럴한 음악을 추구하며 이제는 다양한 음악을 깊이 즐길 수 있게 됐다. 밴드 세션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건반을 살지말지 고민하고 있다. 모든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소소한밴드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가장 많이 이해하는 멤버일지도 모르겠다.
짓다
부산의 인디씬에서 오랜 기간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소소한밴드에서 젬베, 카혼 등 리듬악기를 주로 담당하며 카주, 하모니카, 통기타, 베이스, 일렉 기타 등 멤버들이 ‘시키는 대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지만 잘 해내기는 아직 쉽지 않다. 임용고시를 핑계로 라윤과 함께 구례에 정착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례에서도 밴드 활동을 했으나 팀에서 나와 태준, 라윤과 ‘소소한밴드’를 만들었다. 언젠가 제대로 된 레게 음악을 하는 날을 꿈꾸지만 소소한밴드에선 안 될 것 같다고 믿는다.
소소한밴드의 태준
우리 팔자에는 어쩔 수 없는 시골살이
음악 뒤편엔 일상이 있다. 모여보니 멤버가 모두 대학원 경험이 있었다. 대학원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들에게는 대학원으로부터 도망쳐 돌고돌아 정착한 곳이 시골이었다는, 그리고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은 음악이었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다채롭고 소박한 삶을 꿈꿨던 세 사람이 모여 구례에서 음악을 하고 있다니, 음악 뒤에 있는 멤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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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은 학교를 ‘좀 길게’ 다녔다. 자기 시간도 없던 대학원 생활은 졸업한다고 해도 취업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았다. 의미 있는 공부와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원의 조직문화가 너무 힘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려 귀촌을 결심하게 됐다. 7년 전의 일이다.
태준의 전공은 환경 생태학이다. 음악 외에 일상의 중심을 가져가는 일은 생태 조사와 연구에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함양으로 식생 조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구례에 내려오고 나서부터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불리는 구례의 심원마을 식생 복원 과정 모니터링을 지속해왔고,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활동, 우리나라 토종 비둘기이자 멸종위기종인 화엄사 낭비둘기 모니터링 등 삶터 반경의 산과 강에서 생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소소한밴드의 라윤
소소한밴드의 짓다
부산에서 만나서 결혼한 라윤과 짓다는 밤낮으로 엇갈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결혼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어영부영 급하게 직장을 구한 탓이었다. “우리 결혼도 했는데, 밥 한 번 같이 못 먹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 라는 말이 나왔고, 하던 일들을 그만두고 서로의 시간대를 맞춰보기로 했다. 교육대학원에 다니던 짓다는 임용고시든 공무원 시험이든 준비하기 위해 어딘가 짱박혀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 라윤의 동생이 있던 구례로 내려오게 됐다.
라윤의 동생은 오히려 도시로 돌아갔는데, 라윤과 짓다는 이곳에서의 삶이 싫지 않았다. 품팔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양육자인 세 사람은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마을학교 사업도 담당하고 있다. 보조금 사업을 학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라윤은 대표를, 태준과 짓다는 진행팀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마을 극단, 작곡 수업 등을 하며 가진 능력들을 사회와 나눈다. 시골에서의 삶은 정해진 것도 없이 바쁘다.
남원시 산내면에서 열린 지리산포럼2023에서 공연 중인 소소한밴드
여전히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소소한밴드는 셋이서 한 팀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완성시킬 수 있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각자가 자기 스타일대로 만든 노래를 다같이 부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곡의 초기 컨셉은 개인의 스타일대로 작사와 작곡을 해오고 다함께 곡의 구성을 논의한다.
그렇다면 세 사람의 스타일이 합쳐진 음악은 아직 없는 것일까.
소소한밴드의 공연 장면을 영상으로 남기는 행사 참여자
음악을 사랑하게 된 세 가지 장면
태준은 고등학교 때까지 남들 좋아하는 음악은 다 좋아하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아주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너바나(Nirvana)’의 락을 좋아했는데, 태준에게는 시끄럽기만 했고 심지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조그마한 산을 끼고 성균관대학교와 붙어있었는데, 어느 날 대학교 축제에 ‘시나위’가 온다고 해서 친구들 손에 이끌려 따라가게 됐다. 그때가 음악에 빠지게 된 첫 순간이었다고 태준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렇게 시작한 음악에 대한 사랑은 서울살이를 전과는 다른 것으로 바꿔놓았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지만 서울엔 <수요예술무대>처럼 무료로 진행하는 공개방송이 많았고, 학교가 끝나면 태준은 친구들과 자우림, 박정현 같은 가수들을 보러 갔다. 성인이 되어서도 홍대에서 연습실을 잡고 음악을 만들었고, 가끔 버스킹과 공연을 했다. 일상을 음악에 바치는 ‘전문 음악인’으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다양한 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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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윤은 팀 활동은 해본 적 없이 혼자서 노래듣기와 가사쓰기를 좋아하던 ‘방구석 뮤지션’이었다. 그러다 동기의 졸업작품에 악기 소리와 허밍을 넣은 OST 작업을 처음으로 음악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단히 멋지게 녹음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잡음 없는 정도로 만들어진 단순한 음악을 두고 친구와 라윤은 기뻐했다.
짓다가 밴드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때와 라윤이 짓다와 연애를 시작한 시기가 우연히 맞물렸다. 그때도 바빠서 같이 있을 시간도 부족했던 때라 라윤은 매번 짓다의 연습실에 놀러갔다. 그렇게 7년이나 따라다니다 보니 라윤은 좋은 음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음악을 더 즐길 수 있게 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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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가 음악에 발을 들인 건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주 친했던 친구가 스쿨밴드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래, 재밌게 해. 친구가 드럼을 친다고 하고 보컬과 기타를 구했다고 했을 때도 짓다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재밌게 해. 그런데 “베이스가 없어서 네가 하면 좋겠다.”는 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밴드에 들어가게 됐다. “악기는 어떻게 해야 돼?”라는 짓다의 말에 친구는 대답했다. “사와.” 베이스가 뭔지는 몰랐지만 짓다는 그날로 덥석 싸구려 베이스를 샀다.
짓다가 음악에서 받은 짜릿함은 스무 살 때도 이어졌다. 거제도에서 열린 작은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마침 스쿨밴드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은 것. 마치 청춘드라마의 이야기처럼 다시 한번 고등학교 때의 스쿨밴드 팀이 거제도로 뭉쳤다. 행사 주최 측에게 거제에 있는 한 대학의 동아리방을 연습실로 얻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같은 멤버, 같은 방식의 연습이었다.
짓다의 말을 듣고 있단 라윤이 한 마디를 보탠다. “젊다, 젊어. 우리도 일주일만 합숙하면 정말 잘할 텐데.”
남원시 산내면에서 열린 지리산포럼2023에서 공연 중인 소소한밴드
우리가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소위 ‘꽂고 해본 음악인’이 어떻게 구례 같은 소도시에서 소소한 음악을 만들게 됐을까. 음악 때문에 웃고 울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음악에 대한 욕심과 잘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는지 물어봤다.
짓다는 음악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누구나 음악을 할 수 있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음악을 들려달라고 요청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고, 여기에 대한 가치도 듣는 사람이 매기는 것이고, 뮤지션은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런 수준’의 공연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구례에서의 밴드 경험은 짓다에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자괴감을 줬다. 다행히 지금은 ‘그럴 때가 있었지’ 하며 흘려보낼 수 있게 됐다. 공연을 하는 자체가 부끄러웠던 때가 있었지만 매번 내려놓기로 했다.
라윤은 다른 일에서는 기준에 맞춰서 ‘잘 해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밴드 음악에서는 스트레스나 강박이 없었다. 그 밑바탕에는 멤버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그래도 음악이 즐겁다
이렇게 바쁜 삶 속에서 소소한밴드는 자신들의 음악과 활동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바쁜 활동 속에서도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짓다는 연습과정도, 공연도 너무 재미있어서 이걸 유지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라윤은 멤버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던 연습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태준은 시골 와서 사는 것도, 밴드하는 것도 다 같은 마음이라고, 우리들 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크고 작은 공연을 꾸준히 이어온 소소한밴드는 별도의 SNS 계정이나 홍보채널이 없기 때문에 기록된 공연 영상이 적은 편이다. 그나마 관객의 영상, 행사 주최의 영상에서 그들의 음악을 소소하게나마 즐길 수 있는데, 나는 바로 이런 점에서 음악 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그들의 태도가 느껴졌다. 멤버 각자의 성향이나 추구하는 스타일, 매력이 다른 만큼 각자가 좋았다고 생각했던 공연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하늘빛, 오르막, 뱃놀이
가장 좋았던 공연에 이어 멤버들의 최애 자작곡도 소개를 부탁했다.
하늘빛
하늘빛처럼 푸른 마음 너의 눈에 담아가길
노을빛처럼 뜨거운 마음 가슴속에 간직하길
물빛처럼 투명한 마음 잊지 않고 기억하길
봄 햇살처럼 부드러움 마음속에 간직하길
먼 하늘 빛 나는 작은 별을 기억하렴
산 위에 떠 오르던 밝은 달을 기억하렴
하늘빛처럼 푸르른 마음 너의 눈에 담아가길
노을빛처럼 뜨거운 마음 가슴속에 간직하길
물빛처럼 투명한 마음 잊지 않고 기억하길
봄 햇살처럼 부드러움 마음속에 간직하길
먼 하늘에 빛 나는 작은 별을 기억하렴
산 위에 떠 오르던 밝은 달을 기억하렴
라윤은 짓다과 함께 네팔 트레킹을 하다 짓다가 고산병에 걸린 일화를 소개하며, 그때 만들었던 <다시 또 오르막이다>를 가장 애정하는 곡으로 꼽았다.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던 짓다를 보면서 내려갈까, 돌아갈까, 같이 걸어갈까 고민하던 순간에 떠오른 노래였다. 짓다가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자기 페이스를 늦출 수는 없었던 복잡한 상황이었다. 아득했던 그 시간이 지나고 내려와서 라윤은 그때의 마음을 담아 생각했던 곡을 녹음하면서 버텨냈던 시간을 떠올렸다.
다시 또 오르막이다
다시 또 오르막이다 전보다 높은 것 같아
숨이 차고 눈앞이 흐려도 나는 걷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까마득히 길이 보이네 사람들이 저 멀리서 걸어가네
내가 있던 곳은 아주 멀리 거긴 구름 너머도 보이지 않네
미련으로 채운 일기도 베개 밑에 묻어 놓은 고민들도
지금 이 순간은 먼지일 뿐이야 발걸음 뒤로 흩어질 뿐이야
다시 또 오르막이다 전보다 높은 것 같아
숨이 차고 눈앞이 흐려도 나는 걷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쉬어 갈 마을이 보이네 어떤 얘길 배낭 속에 담게 될까
내가 있던 곳은 아주 멀리 거긴 지금쯤은 별이 뜨고 있겠지
미련으로 채운 일기도 베개 밑에 묻어 놓은 고민들도
지금 이 순간은 먼지일 뿐이야 발걸음 뒤로 흩어질 뿐이야
다시 또 오르막이다 전보다 높은 것 같아
숨이 차고 눈앞이 흐려도 나는 걷는다
다시 또 바람이 불어 저 높이 나를 밀어 올려
하늘 가까이 구름 위로 나는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짓다는 구례 최대의, 최고의 히트곡 <뱃놀이>를 꼽았다. 코 닿는 곳에 바다가 있었던 거제도에서 태어나 부산, 진해를 거쳐 산에 둘러싸인 구례로 들어오다보니 한 번씩 바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탁 트인 바다를 상상하며 만든 <뱃놀이>는 그가 생각했던 레게 감성과 밴드 음악이 잘 어우러진 곡이기도 했다.
뱃놀이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어야디야 어기야디어차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랄라 랄랄랄라
뱃놀이 갑시다
하품을 하며 출근하는 길 자욱한 안개 우뚝 솟은 산들
멍하게 차창만 바라보다 그러다 문득 바다로 떠나고만 싶네요
나는 해적왕이 될 남자 그대여 나의 동료가 되어주오
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자유 평화 그리고 그대뿐이라오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어야디야 어기야디어차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랄라 랄랄랄라
탈탈 털리고 퇴근하는 길 햇빛에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들
멍하게 차창만 바라보다 그러다 문득 바다로 달리고만 싶네요
젊어 고생은 집어치우고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봅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자유 평화 그리고 그대뿐이라오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어야디야 어기야디어차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랄라 랄랄랄라
한 번 더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어야디야 어기야디어차
어야디야 노를 저어라 랄라 랄랄랄라
뱃놀이 갑시다
남원시 산내면에서 열린 지리산포럼2023에서 공연 중인 소소한밴드
소소한밴드의 지향점은 소소해지기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그러니까 어떤 두 사람이 만난다면 두 사람 안에 가능성과 잠재력, 그리고 한계가 명확히 공존할 것이라는 생각. 만약 또 다른 사람이었다면 또 다른 이야기와 시너지가 펼쳐질 테니까. 그런 마음으로 소소한밴드가 생각하는 소소한밴드의 지향점을 물었더니 ’그저 오래가는 것’, ‘그냥 일상이 되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대답을 듣으며 그저 소소함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이 밴드와 관객이 낼 수 있는 가장 궁극의 시너지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인생음악은 무엇인가요?
소소한밴드는 매년 리사이틀 형식의 정기공연을 열었다. 초청공연도 좋지만, 자신들이 하고 싶은 분위기에서 자신들의 곡과 세팅으로 여는 공연을 1년에 한 번씩은 열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바빠진 각자의 일상 때문에 작년에 공연을 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남은 올해 하반기 소소한밴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소소한밴드 연습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라윤은 합주시간 1시간 중에 30분은 웃고 떠드느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서로 “좀 잘해라~” “너무 못한다~” 하면서. 잘 해야하는 음악에 대한 짐을 내려놓고 내가 편안한 음악을 하니 연습시간은 그저 즐거운 시간이 됐다. 이번 소소한밴드 인터뷰도 그랬다. 멤버들은 어느 한 사람이 오랫동안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고 한 마디씩 얹었다. 웃는 시간이 절반이었다.
세 사람의 빛깔대로 가는 밴드, 그저 오래 하는 것이 꿈이라는 소소한밴드가 나는 정말로 오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자녀들이 음악하는 엄마, 아빠를 인지하고 있고 음악과 연주에도 관심을 가진다는 말을 들으며 언젠가 7인조 밴드를 꿈꾼다는 짓다의 말이 정말로 실현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소소한밴드의 멤버들이 음악하면서 느끼는 바로 그 즐거움이 관객에게까지 대대손손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두고 아프고 고민하고 멈춰버린 이들에게 그저 소소하게, 좋아서 하는 그들의 음악이 대대손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행 / 넉넉
글 / 승현
2024년 7월 19일 인터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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