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변만사]내 안의 평화, 세상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평화운동가 미니

변화를만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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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인들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들을 위해 ‘뭐라도 하자’싶은 마음으로 집회·글쓰기·강연 등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때 용기를 얻는 편이고, 사람을 만나 커피 한잔하며 수다 떠는 걸 좋아합니다.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는 편이고, 바흐와 베토벤의 곡을 좋아합니다. 학원에 있는 작은방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 제일 마음 편합니다. 페이스북 주소는 facebook.com/mini20231007 입니다.



전쟁중단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 집회. 2023년


저는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미니라고 합니다. 

활동가라는 말보다 평화운동가가 더 좋은 말 같아요. 동네 사람들에게 활동가라는 말은 낯설 것 같아요. 그나마 평화운동이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단어 하나를 고를 때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쓰면 어떨까 싶어요.


우리 모두 사이좋게 친하게 지내면 좋겠어요. 저는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힘 세다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반대로 약하다고 괴롭힘당하고 하는 그런 게 없어지고 서로 그냥 상대가 어떤 존재이건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저 스스로도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예전에는 세상을 확 바꿀 수 있을 거라 큰 꿈을 꾼 적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크게’ ‘확’ 뭐 이런 것들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데 한 곡을 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이 노력해야 해요. 똑같은 곡을 수백 번씩 쳐요. 하물며 인간과 세상의 변화에 관련된 일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냐 싶어요


팔레스타인 관련 집회



팔레스타인 관련된 모임에 참여도 하고, 집회도 나가고, 글도 쓰고, 사람도 만나고 있어요.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모임이나 단체에 참여해서 집회도 하고 회의도 하고, 언론이나 잡지에 글쓰기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람 만나는 일도 하고 있어요. 한국에 와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을 만난다거나, 활동을 같이하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거에요. 회의나 사업은 같이 하지만 함께 하는 인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서로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해서 개인적인 만남도 갖는 거에요. 또 아니면 이런 일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관심은 있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요.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집회, 회의, 토론회, 강연, 글쓰기 등 수많은 일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내가 정말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람을 만났을까 하는 반성이 되는 거에요. 회의나 일 말고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물어보지 않았던 거 같아요.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어떻게 이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뭐가 좋은지, 어려움은 없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던 거에요. 

그래서 제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마음을 먹었던 것 하나가 제 활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사람을 만나자는 겁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제가 어떤 인간인지를 전해보자는 겁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갖게 되는 신뢰감이나 친밀감을 기반으로 삶이든 운동이든 꾸려가 보자는 거에요. 그래서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에게 제가 먼저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해요. 그렇게 한 사람을 알아가고 느껴가는 가는 과정이 좋아요.


어떤 운동이든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몰라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아요”

어떤 집단이든 사상이나 이념적인 경향을 가져요. 어쩌면 당연한 거구요. 또 어떤 때는 그런 것들이 아직은 잘 모르거나 처음 참가하는 사람에게는 선뜻 함께 하기 부담스러워지는 측면이 되기도 해요.  

제가 팔레스타인 관련 모임을 하나 기획하면서 “몰라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라는 말을 쓴 적이 있어요.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나 모임이 심리적으로 좀 더 안심할 수 있고 안전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거에요. 제가 사람들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는 이유이기도 해요. 함께 모여 있을 때는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집단이 추구하는 목표의 부품처럼 되지 않고, 개개인이 살아있는 활동이나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대부분의 사회운동이 모든 사람 또는 존재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꿀 거에요. 그러면 사회운동의 과정 또한 그러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개개인이 가진 가치와 의미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되더라구요. 혁명도, 해방도, 더 나은 세상도 결국 한 개인에게서 시작하고 그 끝도 한 개인에게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좋은 세상이란 게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안정감·신뢰감·평화로움 등 한 인간의 마음에 남게 되는 거라 봐요. 그렇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의 개인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거구요.


개인의 심리적 요인이 모여 집단의 힘이 되고, 더 나아가 정치권력이 되면서 전쟁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생각해요.

팔레스타인 관련 활동을 하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 ‘이런 일이 왜 계속 일어날까?“라는 거에요. 분명 그 원인이 있을 건데 그걸 모르면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처음에는 사회 구조나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개인의 심리적 요인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도 많은 경우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생각해요. 

나치가 유대인을 많이 죽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는 수많은 독일인들이 히틀러와 나치를 지지했다는 거에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여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 많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들의 마음 또는 정신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팔레스타인 가자 출신 살레와 미니. 이스라엘 대사관 앞 집회. 2024년


개인이든 집단이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에 따르는 심리상태의 변화도 필요 해요. 

전쟁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책과 영화를 열심히 봤어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과, 히틀러나 나치가 하는 행동이 비슷했어요. 개인이 행하는 살인이나 폭력과 집단이 행하는 폭력의 심리적 동기나 작동 방식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이것을 달리 이야기하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평화롭고 안정된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에 따르는 심리 상태의 변화도 필요한 거구요. 


우리와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인간이라는 걸 전달하고 싶어요

제가 쓴 팔레스타인 관련 책을 읽고 감동도 받고 마음도 아파서 저에게 연락을 하신 분을 며칠 전에 만났어요. 제 책이 전쟁과 폭력의 이야기로만 끝났다면 ‘슬프다’라고 느끼고 끝났을 것 같은데, 그렇게 끝나지 않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미니님을 환대한다고 느껴져서 더 감동적이었다고 말했어요. 

글과 사진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생활을 담았던 이유도 그들이 우리와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그런 인간이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전쟁·상처·고통만 이야기하면 앞으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그런 희망이나 바람 같은 게 없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늘 절망하고 슬프기만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쓰거나 할 때 사람이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넣곤 해요. 제가 어떤 세상을 바라는지 보여주고 싶거든요.

저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좋아해요. 우리가 모두 이웃이자 동료로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담겨있어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 곡을 듣고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려요. ‘아 맞아. 우리가 저렇게 할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도 생기고, 무언가 하고 싶은 의지도 생기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에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만난 어린이들. 2006년


인간과 인간의 신뢰감이 바탕이 되어야 해요.

배드민턴을 치며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미니씨, 우리 애들 어떻게 좀 해줘요. 우리 애들도 미니씨처럼 책도 읽고 생각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한동안 중학생 몇 명과 책읽기 모임을 했어요. 심지어 어떤 분은 ‘우리 애를 미니씨 집에 몇 달 데려다 놓으면 안 될까요?’라고도 했어요. 그분들이 저에게 왜 그랬을까 싶어요. 

동네 사람들을 만나서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활동을 하는지 전혀 말하지 않았어요. 요즘은 뭐가 맛있는지, 남편은 또 무슨 사고를 쳤는지 등 그냥 수다를 떠는 것 밖에 없어요. 그 과정속에서 신뢰감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저에게 아이를 맡기고 싶어 했던 건 아닐까 싶어요. 

동네 사람들 가운데 한 분에게 처음으로 제가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쓴 글을 보여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카톡으로 길게 글을 써서 보내주셨어요. 자기는 그동안 사회문제에 대해서 관심도 별로 없었고, 팔레스타인이 있는지조차도 잘 몰랐는데 제가 쓴 글을 읽으면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그분들이 평화롭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우리는 뭔가 잘못된 게 있다 싶으면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비판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물론 법이나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겠지만, 인간의 마음이 변하는 일은 설명하고 비판한다고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나를 닮은 인간의 모습을 보고 느끼면서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떨 때 인간에게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보고 싶어요. 책을 읽기도 하고 좋은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가장 큰 거는 내가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느끼거나 마음이 뭉클해지는 그 순간이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나도 저렇게 해볼까’ 싶은 마음이 생길 거에요. 나를 닮은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나를 떠올리는 거지요.


#. 과거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에서 자원봉사. 2002년


미니님의 과거를 들려주세요.

초등학교 다닐 때, 반에서 힘없고 가난한 애들을 누군가 놀린다거나 무시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든 누구는 가난하거나 공부 못하는 친구를 무시하거나 하면 오히려 그 친구들 편에 섰어요. 제가 사회운동에 참여한 이유도 그렇고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어찌 보면 제가 대단한 신념이나 철학을 가졌다기보다 어릴 때부터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게 싫었던 것이 제일 큰 이유 같아요. 

1989년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풍물패를 하게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어요. 당시에 도서원이라고 하는 곳이 있었는데, 진보적인 입장의 역사나 문학 책을 빌려 주기도 하고 소모임도 하는 공간이 있었어요. 거기서 이런 저런 책을 빌려보면서 4·19도 알게 되고 친일파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학교나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어요.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어림잡아 천 대는 맞은 거 같아요. 맞으면서 아프다는 생각은 했지만 잘못 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새로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그러면서 그렇게 때리고 맞는 게 잘못된 일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고3때 부산대학교에서 부산지역고교생대표자협의회 출범식을 하는데 전투경찰과 백골단이 부산대학교를 둘러싸고 집회를 막았어요. 출범식을 시작하자마자 백골단이 학교 안으로 쳐들어와서 저는 도서관으로 피했어요. 백골단이 도서관으로 쳐들어오면서 유리창을 다 깨부수던 소리가 아직도 기억나요. 같이 활동하던 친구는 학교에서 짤리기도 했지요. 그때 ‘아, 뭔가 잘못 되었다’고 크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나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대학에 간다’,‘운동을 그만두면 대학도 그만둔다’였어요. 실제로 대학에 가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그만두면서 대학도 그만뒀어요. 


학생운동을 그만둔 계기는 무엇인가요? 

끼리끼리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참여하고 있던 조직이 다른 노선, 다른 입장에 대해서 폐쇄적이고 적대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 현재


월간 작은책. '미니의 평화 이야기' 연재


요즘 하루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공격하기 시작한 2023년 10월 7일 이후, 잠에서 깨어나면 먼저 저희 집 강아지 순돌이가 와서 뽀뽀를 해요. 그러고 나면 잠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핸드폰을 가지고 지난밤 팔레스타인에서 무슨 일이 일었는지, 혹시 전쟁이 멈췄는지를 확인해요. 그러고 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거지요. 오전에는 밀린 설거지나 청소 등 집안일을 하거나 글을 쓰기도 해요. 오후에는 회의나 집회도 갔다가, 사람도 만났다가 그래요. 매일 빼먹지 않는 거 하나는 순돌이 산책이구요.

또 하나 빼먹지 않으려고 하는 거는 피아노에요. 10여 년 사회생활을 쉬면서 느꼈던 게 그동안 심리적 안정을 챙기지 못했다는 거에요. 마음이 힘들다는 것조차 모르고 일을 하다 보니까 어느날 갑자기 때려치게 된 측면도 있어요. 정신 건강을 회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게 음악이에요. 듣는 것도, 직접 연주하는 것도 좋아요. 피아노 학원 연습실이 작잖아요. 그 조그만 공간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요. 


열심히 활동하시다가 10년 정도 활동을 멈추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그 시간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정도? ‘내가 부귀영화를 누린 것도 아니고,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가면서 이 짓을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바로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은 그냥 작은 계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것보다는 몸도 마음도 지쳤던 게 근본 문제였던 것 같아요. 

10여 년을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지내면서도 활동을 다시 해볼까 싶은 마음이 몇 번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어 자신이 없더라구요. 보다 결정적인 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잘못이나 실수 같은 게 계속 떠올랐어요.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제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사과도 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고등학교 때 동생을 때린 적이 있어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예전에 너를 때렸는데...오빠가 정말 미안해. 오빠가 지금이라도 사과할게”라고 문자를 보냈어요. 그러자 동생이 “오빠, 사실 난 기억이 안나.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라고 했어요. 10대 때 저지른 잘못을 40대가 되어서야 깨닫고 사과한 거지요. 

그렇게 제가 잘못했던 일이 떠오르니까 내가 또다시 그런 실수나 잘못을 반복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생겨서 다시 뭔가를 하고 싶다가도 주저하게 되더라구요. 

활동을 쉬면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심리학이나 상담, 뇌 과학 관련 책을 좀 읽었어요. 그 과정을 통해서 나의 잘못이나 실수를 변명하지 않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인정할 수 있게 되니까 사과할 마음도 생겼구요.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어린이. 2009년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작년 10월 7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가진 시간이 20년쯤은 되는데 그동안 정말 수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10월7일부터는 제가 들어본 적이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거에요.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랬어요.

그즈음에 예전부터 같이 활동을 했던 친구가 전화를 했어요. “형, 나 너무 힘들어, 잠도 잘 못 자겠어.”그러는 거에요. 물론 이유는 팔레스타인 때문이구요. 그 친구와 통화하고 나서 ‘뭐라도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때부터 10여 년 만에 집회도 나가고 다시 활동을 하게 된 거지요. 

저 자신에게도 힘과 용기가 생겼고, 또 과거의 잘못들에 대해 인정도 사과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게다가  마침 그 친구의 마음이 전해진 게 계기가 되어서 다시 세상에 나온 거에요.



오랜만에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힘든 점 같은 건 어떤 게 있나요?

음...뭐랄까...다른 사람과 교류하거나 대화하지 않고 끼리끼리만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사회운동이 엘리트화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구요.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동백꽃 필 무렵>이에요. 동백이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음식 장사를 하며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고아에다 학벌도 가진 돈도 없구요. 그렇지만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우려 하고 부당한 것이 있으면 맞서기도 해요. 

사회단체에서 노동자가 어떻고 여성이 어떻고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현실의 노동자나 여성은 함께 하기 어려운 활동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한번씩 하는 말이 ‘나는 동백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어’에요. 물론 이론이나 신념에 대해 주장할 수도 있고, 토론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어쨌거나 우리가 만나는 동네 사람들 아니면 동백이 같은 분들과 함께 대화하고 교류하고 교감하는 것이 기본이 되면 좋겠다 싶어요. 

내가 타인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느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팔레스타인이든, 노동자든, 여성이든 그 무엇이든 결국에는 사업이나 활동의 대상으로만 되고 말 거에요. 물론 처음에는 그들의 사연에 마음이 아파서 시작했을 거에요. 그런데 운동의 시스템이나 방식에 익숙해지고 그걸 반복하다 보면 오히려 마음의 중심이 사업과 활동으로 옮겨 가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의 고통이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사업과 활동이 중심이 되어 버리는 거에요.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고 교감하려면, 내 활동의 과정 자체가 그런 감정이나 정서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정 자체가 그래야 결과도 그렇게 나올 거니까요.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 타인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같은 것들을 밑바탕으로 이론에 대해 토론을 하든 뭐든 하면 좋겠어요.


#. 미래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걱정은 없는지?

타인을 향해 따뜻하고 열려있는 마음을 갖고 그걸 잘 유지하고 싶어요. 앞으로 제가 무언가 하게 된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어보고 느껴보고 싶어요. 그렇게 해야 신뢰감이나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를 만들 수 있을 테고, 또 그렇게 해야 서로 의지도 하고 위로도 하면서 운동이든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인간과 인간의 건강한 관계 맺음이 된다면 사회운동은 둘째 문제라는 생각도 들어요. 운동을 하려고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니까요. 삶이 바뀌고 관계를 바꾸려고 운동을 하는 것이지 운동을 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는 건 아니잖아요.

팔레스타인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모두 한 번뿐인 인생이고, 귀한 생명이에요. 누구도 힘없다고 고통 받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소중한 삶의 시간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그런 세상을 위해 작은 보탬이라도 된다면 저의 인생은 만족스러울 것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우주의 별들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니 #팔레스타인 #평화운동가 #활동가인터뷰 #변화를만드는사람들 


인터뷰어 : 강영석
성공회대 NGO학과 졸업 후, 시민단체(이주민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에서 일하다가 2008년 완주에서 농촌유학 교사를 거쳐 순창에 귀촌. 지금은 농촌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임팩트 그라운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재단법인 브라이언임팩트가 후원하고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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