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하면서 날 서지 않은 나루 활동가가 궁금했어요. 알맹이가 느껴지는 나루 활동가를 만나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구동물권행동 비긴'과 올해 3회를 맞이하는 '대구N맥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동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원하는 삶을 가꾸고 있는 나루 활동가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특명, 나루를 웃겨라! 6월 24일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왼쪽 나루, 오른쪽 명은)
#. 채식 학식 만들기를 하던 대학교 동아리부터 현재의 비긴까지
Q. 활동명 '나루'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원래는 제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동물권 운동으로 전향하면서 활동명을 지었어요. 페미니즘의 영향도 받기도 했는데, 나루터의 ‘나루’입니다. 나루터는 뭔가가 드나드는 곳이잖아요. 가지려고 하지 않고 흘려보내고 받아들이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
한 시간 남짓 나루와의 시간. 지면 관계상 모든 대화를 다 싣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금방 지나갔다.
Q. 나루 님이 활동하는 ‘대구동물권행동 비긴’을 소개해 주세요.
비긴은 대구 내 동물권 의제를 발굴하고 오프라인 활동을 만들기 위한 비건 커뮤니티입니다. 비긴은 코로나19가 터지고 만들어졌어요. 한 3~4년이 되었네요. 저는 혼자 비건을 실천해 왔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고 살처분이 이루어지는 데 대한 슬픔, 참혹함에 공감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코로나 때 어떤 동물을 중국 사람들이 먹어서 코로나가 발생했다 이런 얘기가 오갔었죠. 그런 것에 대해서 찾아보고 생각해 보다가 우리가 너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선상에서 제가 다니고 있던 학교에 비건 학식을 도입하는 것부터 한번 해보면 어떨까, 이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이런 걸 얘기하면서 비긴이 만들어졌어요. 처음에는 대학 소속 학생이라는 걸 내세우고 학교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대학 동아리를 표방했어요. 비긴으로 활동하다 보니 대구에는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 활동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일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멤버들이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서, 학교에서 벗어나서 동물권 의제를 소개하고 활동하는 조직으로 비긴을 만드는 변화가 있었어요.
Q. 비긴을 만들고 시작한 채식 학식 만들기는 성과가 있었어요?
네, 저희가 활동하고 나서 1년이 안 돼서 바로 채식 학식이 만들어졌어요. 거기에 피드백을 보탰더니 몇 개가 더 만들어지고 이런 성과가 있었죠. 도입을 위해 대학 생협 사무국과 얘기를 했고, 생협 사무국 밑에 학생위원회가 있는데 그분들이 그 당시에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이었어요. 정말 잘 맞았죠. 그분들이 비거니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학생의 권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었어요. 또, 총학생회에서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간식의 일부를 비건식으로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채식 학식 도입을 요구가 잘 안되면 서명 운동을 한다거나 의견서를 많이 받아서 제출한다거나 하는 사태까지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잘 풀렸어요. 그리고 저희 내부의 고민으로 봤을 때, 채식 학식은 비건 지향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동물권이 중요하고 소수의 인원일지라도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에 속한다, 국립대학교로서 해야 하는 일이다 하는 점을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도서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포스터를 이곳저곳에 붙이러 다니던 모습. 2021년. ⓒ나루
Q. 비긴에는 어떤 동료들이 있나요?
초반부터 활동했던 사람이 두 명, 최근에 들어온 사람이 두 명 있어요. 저를 포함해서 비긴은 다섯 명이에요. 그리고 거의 명예 멤버 같은 분이 한 분 있어요. 책빵 고스란히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분이죠.
‘제니’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굉장히 잘 울고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에요. 항상 새로운 걸 잘 찾아오는 사람이어서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동료예요. 저는 활동을 해오며 주변 활동가분들한테 배워왔기 때문에 활동가 기질이 더 강해요. 그런데 제니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니로부터 제가 배울 게 많죠. ‘재효’는 굉장히 사랑이 많고 마음이 굉장히 약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이어서 저희의 자문위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죠. ‘예린’은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항상 자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소개해요.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 주는 분이에요. ‘근하’는 최근에 만나서 잘은 모르지만, 차분하지만 단단한 에너지가 있는 분이에요. 재미있는 분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희 멤버들은 활동의 특성상 폐쇄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는 경계를 서로에게 계속 하는 편이고, 서로를 굉장히 아끼는 만큼 그런 것을 조심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종합해 보자면, 우리 멤버는 자신이 변화하는 것의 중요함을 안다, 사랑이 많다, 그리고 유능하다 이렇게 정리를 해볼 수 있겠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멤버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잠깐만요. 책빵 고스란히의 ‘기훈’도 소개해야 하네요. 기훈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에요. 자신을 잘 못 보면서까지 타인을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소외에 대한 감각, 타인에 대한 관심
Q. 나루 님이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인 동물권과 비거니즘은 인간 중심이 아닌, 인간 이외 생명까지 다 포함해서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감수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해요. 학창 시절에 감수성이 또래보다 좀 더 깊은 편이었나요?
제가 감수성이 깊은 건지 그냥 그런 걸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아요.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 안에서 잘 어울리지는 못했어요. 그냥 노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놀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랑은 별개로 빨리 집에 뛰어가서 공부해야 하고 이런 학생이었어요. 소외의 경험을 하다 보니 소외에 대한 감각도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Q.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다 생각이 다르고 지향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요. 그런데 그런 다름을 대할 때 잘못했다고 공격하거나 날 서 있는 경우들을 접하게 돼요.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의 전망은 안 좋은 편이긴 한데, 바람은 있으니까 이런 활동을 하는 거겠죠. 저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이 진짜 필요한 걸 갖는 걸 생각해요. 동물들이 최소한의 동물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됐으면 하면서 동물권 활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너무 없고 내가 서 있는 땅이 너무 좁아서 타인을 나의 땅에 초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타인에 관한 관심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나 자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상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한데, 상담실 안 같은 최대한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안전하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건데, 우리 사회는 내 약한 부분을 내놓으면 너무 공격받고 더 소외되기 쉬운 세상이에요. 때문에 사람들이 더 자기를 방어하려고만 하고 나의 방어 차원에서 많은 공격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요새 상담을 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그 시장이 커지는 거니 상담사한테는 좋은 일이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사람들이 자기 약한 부분을 보였을 때 안전한 사회가 되어서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더 적어졌으면 좋겠어요.
노키즈존 반대 행진에서. 2022년. ⓒ나루
#. 꼭 하나가 답이 아니듯, 축제의 대안을 제시하는 대구N맥페스티벌
Q. 나루 님이 만들고 있는 대구N맥페스티벌은 어떤 축제인가요?
대구치맥페스티벌에 대항하는 안티 축제이죠. 그리고 대안 축제이고요. N맥 페스티벌 안에서 동물권과 교차하고 빼놓을 수 없는 기후정의나 다양한 차별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소비주의에 반대하고요. 치맥페스티벌처럼 대규모 페스티벌을 지향하는 건 아니에요. 개개인의 경험을 최대한 만족스럽고 평등하게 자유롭게 디자인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대구N맥페스티벌 기자회견 때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축제 초대장을 보내는 퍼포먼스. 2022년. ⓒ나루
Q. N맥은 진짜 새로운 축제잖아요. 올해 3회째를 맞이하는데 전과 다른 차별점이 있나요?
일단 올해는 토론회를 하기로 했어요. 치맥페스티벌 기간에 저희가 지속가능성이나 동물권을 다루는 대안 축제를 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시민 참여의 의미에서 치맥페스티벌이 이렇게 높이 살 만한 축제인가에 대해서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는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에요. 그런 목소리를 모아서 현장 액션도 치맥페스티벌 당일에 하고 이후에 N맥이 있게 돼요. 그래서 앞으로의 활동이 토론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겠죠.
또 작년과 다르게 영화제를 가져와서 같이 할 예정이에요. 올해 퍼레이드는 없는데, 현장 액션으로 대체가 되니까 좀 더 이런 의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작년에는 인플루언서들을 초청해서 학습하고 들어보는 시간이었다면, 올해는 우리끼리 잘 노는 그리고 우리끼리 친해지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어요.
대구치맥페스티벌 조형물 앞에서 진행한 진실의 큐브. 2022년. ⓒ나루
Q.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동대구역 앞에 치맥페스티벌 캐릭터 조형물이 있었잖아요. 그게 아직도 있어요?
그게 N맥페스티벌의 출발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긴 하는데 저희 때문에 없어진 건 아니에요. 치야와 치킹이라는 캐릭터인데, 아직도 그 캐릭터가 이용되고 있긴 하거든요. 그런데 여성 닭으로 추정되는 치야 캐릭터는 다리를 꼬고 있거나 마른 외모로 자신을 뽐내고 있어요. 그리고 치킹이라는 캐릭터는 자기의 커다란 몸을 과시하고 있어요. 이런 모습을 한 조형물이 동대구역 광장에 있었죠.
조형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진실의 큐브 대구를 통해서 닭 사육의 현실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어요. 근데 쉽사리 어떻게 없애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던 와중에 제가 당시에 친해지기 시작했던 책빵 고스란히의 기훈 님과 함께 이건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하다가 N맥을 만들게 됐어요.
#. 인간, 동물 구분 없이 자유롭게 돌봄을 주고받는 세상이라면
Q. 원하는 초능력 하나 갖기, 대한민국 대통령 되기 둘 중의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요?
저는 초능력이요. 대통령 5년이면 끝나는데요. 초능력을 5년만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초능력이 더 나을 것 같아요.
Q.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싶으세요?
제가 지금 하는 공부나 활동의 끝에 있는 건 존재를 치유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게임으로 치면 힐러의 능력이겠네요.
Q. 나루 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요?
저는 어렸을 때는 오히려 세상은 이렇게 해서 변화하는 거야, 변하고 좋은 세상이 올 것이고 이런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좀 살아 있어도 되겠다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냥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기도 해요. 저는 나이 듦에 대한 계획도 별로 없고,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는 생각도 별로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걸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사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거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도 있고, 기후위기로 인한 부정적인 결말을 더 자주 상상하게 돼요. 이렇게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더라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세상에 한계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유토피아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하지만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최소한의 보장이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동물권에 있어서는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또 저는 가족주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인데 인간 사회로 굳이 한정하자면, 돌봄을 받고 싶은 존재에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교사는 돌봄하는 직업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원하는 교사를 학생이 고를 수 없어요. 그리고 원가족에게서 태어나서 내가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너무나 많은 구속을 당하고 평생을 살게 되잖아요.
어릴 때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내가 원하는 상대와 자유롭게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굳이 제도로 따지자면 생활 동반자 얘기를 하잖아요. 내가 같이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과 가족이 됐으면 좋겠고, 가족이 되고 싶은 동물들이 서로 가족이 됐으면 좋겠어요. 동물들은 농장 안에서 자기 가족을 꾸릴 관계를 만들 권리조차 없기 때문에 그런 관계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요.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회 현장에서 그린 그림. ⓒ나루
Q. 10년은 먼 것 같으면서도 가까운 시간이잖아요. 10년 뒤 나루 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10년 뒤면 제가 거의 마흔에 가까울 텐데요. 근데 뭐 비슷하지 않을까요? 바쁠 것 같아요. 다만 요새 진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데 조금은 안정이 되겠죠. 직업이든 활동이든 어떤 부분은 안정이 될 것 같은데, 저는 항상 지금이 제일 좋기 때문에 그때도 그때가 제일 좋지 않을까요?
Q. 어떻게 지금이 제일 좋을 수 있나요? 저는 늘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 같거든요. 지금을 잘 못 즐기는 편인데 비법이 있을까요?
비법은 저처럼 미래는 암울하다고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고점에 있는 거죠.
Q. 많은 이야기를 잘 나눈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명은 님의 얘기를 안 들어봤다 보니 궁금하기도 하고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대구동물권행동 비긴 알아보기
- 소개 페이지
- 인스타그램
- 비건식 제공 가이드라인
#나루 #대구동물권행동비긴 #동물권 #비거니즘 #대구N맥페스티벌 #공익활동가주간 #활동가인터뷰
인터뷰어: 이명은
파들거리는 불꽃처럼. 힘이 부족할지라도 밝히며 나아갈게요. 생명평화아시아에서 활동가로 있습니다.
진중하면서 날 서지 않은 나루 활동가가 궁금했어요. 알맹이가 느껴지는 나루 활동가를 만나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구동물권행동 비긴'과 올해 3회를 맞이하는 '대구N맥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동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원하는 삶을 가꾸고 있는 나루 활동가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특명, 나루를 웃겨라! 6월 24일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왼쪽 나루, 오른쪽 명은)
#. 채식 학식 만들기를 하던 대학교 동아리부터 현재의 비긴까지
Q. 활동명 '나루'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원래는 제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동물권 운동으로 전향하면서 활동명을 지었어요. 페미니즘의 영향도 받기도 했는데, 나루터의 ‘나루’입니다. 나루터는 뭔가가 드나드는 곳이잖아요. 가지려고 하지 않고 흘려보내고 받아들이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
한 시간 남짓 나루와의 시간. 지면 관계상 모든 대화를 다 싣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금방 지나갔다.
Q. 나루 님이 활동하는 ‘대구동물권행동 비긴’을 소개해 주세요.
비긴은 대구 내 동물권 의제를 발굴하고 오프라인 활동을 만들기 위한 비건 커뮤니티입니다. 비긴은 코로나19가 터지고 만들어졌어요. 한 3~4년이 되었네요. 저는 혼자 비건을 실천해 왔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고 살처분이 이루어지는 데 대한 슬픔, 참혹함에 공감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코로나 때 어떤 동물을 중국 사람들이 먹어서 코로나가 발생했다 이런 얘기가 오갔었죠. 그런 것에 대해서 찾아보고 생각해 보다가 우리가 너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선상에서 제가 다니고 있던 학교에 비건 학식을 도입하는 것부터 한번 해보면 어떨까, 이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이런 걸 얘기하면서 비긴이 만들어졌어요. 처음에는 대학 소속 학생이라는 걸 내세우고 학교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대학 동아리를 표방했어요. 비긴으로 활동하다 보니 대구에는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 활동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일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멤버들이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서, 학교에서 벗어나서 동물권 의제를 소개하고 활동하는 조직으로 비긴을 만드는 변화가 있었어요.
Q. 비긴을 만들고 시작한 채식 학식 만들기는 성과가 있었어요?
네, 저희가 활동하고 나서 1년이 안 돼서 바로 채식 학식이 만들어졌어요. 거기에 피드백을 보탰더니 몇 개가 더 만들어지고 이런 성과가 있었죠. 도입을 위해 대학 생협 사무국과 얘기를 했고, 생협 사무국 밑에 학생위원회가 있는데 그분들이 그 당시에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이었어요. 정말 잘 맞았죠. 그분들이 비거니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학생의 권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었어요. 또, 총학생회에서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간식의 일부를 비건식으로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채식 학식 도입을 요구가 잘 안되면 서명 운동을 한다거나 의견서를 많이 받아서 제출한다거나 하는 사태까지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잘 풀렸어요. 그리고 저희 내부의 고민으로 봤을 때, 채식 학식은 비건 지향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동물권이 중요하고 소수의 인원일지라도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에 속한다, 국립대학교로서 해야 하는 일이다 하는 점을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도서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포스터를 이곳저곳에 붙이러 다니던 모습. 2021년. ⓒ나루
Q. 비긴에는 어떤 동료들이 있나요?
초반부터 활동했던 사람이 두 명, 최근에 들어온 사람이 두 명 있어요. 저를 포함해서 비긴은 다섯 명이에요. 그리고 거의 명예 멤버 같은 분이 한 분 있어요. 책빵 고스란히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분이죠.
‘제니’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고 굉장히 잘 울고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에요. 항상 새로운 걸 잘 찾아오는 사람이어서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동료예요. 저는 활동을 해오며 주변 활동가분들한테 배워왔기 때문에 활동가 기질이 더 강해요. 그런데 제니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니로부터 제가 배울 게 많죠. ‘재효’는 굉장히 사랑이 많고 마음이 굉장히 약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이어서 저희의 자문위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죠. ‘예린’은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항상 자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소개해요.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워 주는 분이에요. ‘근하’는 최근에 만나서 잘은 모르지만, 차분하지만 단단한 에너지가 있는 분이에요. 재미있는 분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희 멤버들은 활동의 특성상 폐쇄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는 경계를 서로에게 계속 하는 편이고, 서로를 굉장히 아끼는 만큼 그런 것을 조심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종합해 보자면, 우리 멤버는 자신이 변화하는 것의 중요함을 안다, 사랑이 많다, 그리고 유능하다 이렇게 정리를 해볼 수 있겠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멤버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잠깐만요. 책빵 고스란히의 ‘기훈’도 소개해야 하네요. 기훈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에요. 자신을 잘 못 보면서까지 타인을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소외에 대한 감각, 타인에 대한 관심
Q. 나루 님이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인 동물권과 비거니즘은 인간 중심이 아닌, 인간 이외 생명까지 다 포함해서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감수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해요. 학창 시절에 감수성이 또래보다 좀 더 깊은 편이었나요?
제가 감수성이 깊은 건지 그냥 그런 걸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아요.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 안에서 잘 어울리지는 못했어요. 그냥 노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놀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랑은 별개로 빨리 집에 뛰어가서 공부해야 하고 이런 학생이었어요. 소외의 경험을 하다 보니 소외에 대한 감각도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Q.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다 생각이 다르고 지향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요. 그런데 그런 다름을 대할 때 잘못했다고 공격하거나 날 서 있는 경우들을 접하게 돼요.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의 전망은 안 좋은 편이긴 한데, 바람은 있으니까 이런 활동을 하는 거겠죠. 저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이 진짜 필요한 걸 갖는 걸 생각해요. 동물들이 최소한의 동물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됐으면 하면서 동물권 활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너무 없고 내가 서 있는 땅이 너무 좁아서 타인을 나의 땅에 초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타인에 관한 관심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나 자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상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한데, 상담실 안 같은 최대한 자신의 약한 부분을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안전하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건데, 우리 사회는 내 약한 부분을 내놓으면 너무 공격받고 더 소외되기 쉬운 세상이에요. 때문에 사람들이 더 자기를 방어하려고만 하고 나의 방어 차원에서 많은 공격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요새 상담을 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그 시장이 커지는 거니 상담사한테는 좋은 일이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사람들이 자기 약한 부분을 보였을 때 안전한 사회가 되어서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더 적어졌으면 좋겠어요.
노키즈존 반대 행진에서. 2022년. ⓒ나루
#. 꼭 하나가 답이 아니듯, 축제의 대안을 제시하는 대구N맥페스티벌
Q. 나루 님이 만들고 있는 대구N맥페스티벌은 어떤 축제인가요?
대구치맥페스티벌에 대항하는 안티 축제이죠. 그리고 대안 축제이고요. N맥 페스티벌 안에서 동물권과 교차하고 빼놓을 수 없는 기후정의나 다양한 차별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소비주의에 반대하고요. 치맥페스티벌처럼 대규모 페스티벌을 지향하는 건 아니에요. 개개인의 경험을 최대한 만족스럽고 평등하게 자유롭게 디자인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대구N맥페스티벌 기자회견 때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축제 초대장을 보내는 퍼포먼스. 2022년. ⓒ나루
Q. N맥은 진짜 새로운 축제잖아요. 올해 3회째를 맞이하는데 전과 다른 차별점이 있나요?
일단 올해는 토론회를 하기로 했어요. 치맥페스티벌 기간에 저희가 지속가능성이나 동물권을 다루는 대안 축제를 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시민 참여의 의미에서 치맥페스티벌이 이렇게 높이 살 만한 축제인가에 대해서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는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에요. 그런 목소리를 모아서 현장 액션도 치맥페스티벌 당일에 하고 이후에 N맥이 있게 돼요. 그래서 앞으로의 활동이 토론회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겠죠.
또 작년과 다르게 영화제를 가져와서 같이 할 예정이에요. 올해 퍼레이드는 없는데, 현장 액션으로 대체가 되니까 좀 더 이런 의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작년에는 인플루언서들을 초청해서 학습하고 들어보는 시간이었다면, 올해는 우리끼리 잘 노는 그리고 우리끼리 친해지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어요.
대구치맥페스티벌 조형물 앞에서 진행한 진실의 큐브. 2022년. ⓒ나루
Q.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동대구역 앞에 치맥페스티벌 캐릭터 조형물이 있었잖아요. 그게 아직도 있어요?
그게 N맥페스티벌의 출발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긴 하는데 저희 때문에 없어진 건 아니에요. 치야와 치킹이라는 캐릭터인데, 아직도 그 캐릭터가 이용되고 있긴 하거든요. 그런데 여성 닭으로 추정되는 치야 캐릭터는 다리를 꼬고 있거나 마른 외모로 자신을 뽐내고 있어요. 그리고 치킹이라는 캐릭터는 자기의 커다란 몸을 과시하고 있어요. 이런 모습을 한 조형물이 동대구역 광장에 있었죠.
조형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진실의 큐브 대구를 통해서 닭 사육의 현실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어요. 근데 쉽사리 어떻게 없애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던 와중에 제가 당시에 친해지기 시작했던 책빵 고스란히의 기훈 님과 함께 이건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하다가 N맥을 만들게 됐어요.
#. 인간, 동물 구분 없이 자유롭게 돌봄을 주고받는 세상이라면
Q. 원하는 초능력 하나 갖기, 대한민국 대통령 되기 둘 중의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요?
저는 초능력이요. 대통령 5년이면 끝나는데요. 초능력을 5년만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초능력이 더 나을 것 같아요.
Q.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싶으세요?
제가 지금 하는 공부나 활동의 끝에 있는 건 존재를 치유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게임으로 치면 힐러의 능력이겠네요.
Q. 나루 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요?
저는 어렸을 때는 오히려 세상은 이렇게 해서 변화하는 거야, 변하고 좋은 세상이 올 것이고 이런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좀 살아 있어도 되겠다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냥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기도 해요. 저는 나이 듦에 대한 계획도 별로 없고,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는 생각도 별로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걸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사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거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도 있고, 기후위기로 인한 부정적인 결말을 더 자주 상상하게 돼요. 이렇게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더라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세상에 한계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유토피아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하지만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최소한의 보장이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동물권에 있어서는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또 저는 가족주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인데 인간 사회로 굳이 한정하자면, 돌봄을 받고 싶은 존재에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교사는 돌봄하는 직업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원하는 교사를 학생이 고를 수 없어요. 그리고 원가족에게서 태어나서 내가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너무나 많은 구속을 당하고 평생을 살게 되잖아요.
어릴 때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내가 원하는 상대와 자유롭게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굳이 제도로 따지자면 생활 동반자 얘기를 하잖아요. 내가 같이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과 가족이 됐으면 좋겠고, 가족이 되고 싶은 동물들이 서로 가족이 됐으면 좋겠어요. 동물들은 농장 안에서 자기 가족을 꾸릴 관계를 만들 권리조차 없기 때문에 그런 관계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요.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회 현장에서 그린 그림. ⓒ나루
Q. 10년은 먼 것 같으면서도 가까운 시간이잖아요. 10년 뒤 나루 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10년 뒤면 제가 거의 마흔에 가까울 텐데요. 근데 뭐 비슷하지 않을까요? 바쁠 것 같아요. 다만 요새 진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데 조금은 안정이 되겠죠. 직업이든 활동이든 어떤 부분은 안정이 될 것 같은데, 저는 항상 지금이 제일 좋기 때문에 그때도 그때가 제일 좋지 않을까요?
Q. 어떻게 지금이 제일 좋을 수 있나요? 저는 늘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 같거든요. 지금을 잘 못 즐기는 편인데 비법이 있을까요?
비법은 저처럼 미래는 암울하다고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고점에 있는 거죠.
Q. 많은 이야기를 잘 나눈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명은 님의 얘기를 안 들어봤다 보니 궁금하기도 하고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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