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그간 ‘일로만’ 만났지만 일과 활동을 넘어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두 번째는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대응부터 국경을 넘나드는 인권 관련 활동들까지, 국제민주연대가 빠지는 곳이 없지만 사실 현필은 단체에서 1인 상근자로 활동한 지 오래다. 무엇보다 한 단체에서 20년간 활동을 지속한 중견 활동가이기도 하다. 사회와 운동의 변화에 따른 여러 고민 속에서도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는 나현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소속단체와 주요활동 소개 부탁드려요.
단체 이름은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인데 보통 국제민주연대라고 부릅니다. 국제민주연대가 주로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를 감시하고 대응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초국적 기업의 인권 침해 문제를 다루는 여러 활동들에도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국제민주연대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라서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 차원에서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두 번째로는 외국에서 발생하는 민주주의와 인권 관련된 일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또 한국에서 이와 관련된 연대 캠페인을 조직하거나 참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를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 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있는데 특히 아시아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인권위를 감시하는 NGO 네트워크가 있어요. 이 네트워크에서 2년에 한 번씩 각 나라 인권위에 대한 영문 보고서를 발간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네트워크에 속한 단체가 국제민주연대 밖에 없기 때문에 국제민주연대가 한국 인권위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권위 관련 대응 활동을 한국의 다른 인권단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Q. 국제민주연대에서 본인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요?
국제민주연대는 2000년도에 생겼는데, 기본적으로 계속 상근자가 많지는 않았어요. 근데 제가 혼자 상근한 지는 5년 정도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유일한 상근자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활동들을 제가 커버하고 있고요. 또 거기에 플러스해서 단체 행정 업무도 하고 있습니다.
Q. 최근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이슈는 뭔가요?
원래는 주로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많이 대응해왔었는데 최근에는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상황이 매우 안 좋아져서 요즘은 아무래도 국가인권위 대응 활동을 가장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몇몇 위원의 노골적인 혐오발언과 반인권적 행보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인권위 대응을 위해 작년 말, 한국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이라는 네트워크를 꾸렸고, 국제민주연대가 그 네트워크의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인권 활동가
Q. 활동하시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외국에서 발생하는 민주주의, 인권 이슈 자체는 알려지기만 하면 시민들이 많이 지지를 해주세요. 반대할 이유도 없고 국내적인 갈등이 있는 문제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한국 기업이 개입되면 문제가 좀 달라져요. 미얀마 군부와 협력하는 한국 기업에 대해 제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를 많이 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많이 없고, 사회적 여론이 잘 안 모여지는 게 기본적으로 많이 힘든 부분이죠.
그리고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그렇겠지만, 정부나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또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로 다루다 보니 국내에서 시민 후원을 모으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물론 꾸준히 국제민주연대 회원으로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단체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후원회원이 크게 확대되지 않는 데는 사실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외국의 어떤 난민이나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자라는 취지면 후원 상황이 조금 나을 수도 있지만, 저희는 한국 기업에 대해 문제라고 하거나 그 나라 정부의 문제라고 접근을 하니까요, 선뜻 여기에 후원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또 일단은 피해자들이 해외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어떻게 보면 단체에 대한 후원보다는 피해자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있기도 하고요.
Q. 그럼에도 이 활동이 뿌듯하고 의미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외국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사실 국경을 넘나드는 조력을 받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계시기도 하고, 와서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세요. 처음에는 거기서 뿌듯함을 느꼈는데, 갈수록 감사하다는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분들께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서 고민이 많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진전이 조금씩은 분명히 있고, 기업이나 정부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있다는 점을 뿌듯하다고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또 해당 국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친구들이 감옥에 가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 소식을 접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죠.
사실 최근에 알게 됐는데, 제가 활동했던 것 때문에 해당 국가를 못 가는 경우가 생겼더라고요. 홍콩에 입국 금지를 당했고, 미얀마는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못 가는 것으로 확인이 됐어요. 우스갯소리로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었어?’라고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거기 살고 있는 활동가 친구들을 보기 어렵게 됐다는 게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공익활동가로서의 처음과 지금, 나누고 싶은 고민들
Q. 공익활동가 활동가로서의 나현필의 처음은 뭐였을까요?
학교 다닐 때 학생 운동을 했었고요. 그러다 보니 취업 준비를 제대로 안 해서 대학원을 갔고, 대학원 때 자원 활동을 하려고 찾아보다가 국제대학원이니까 ‘국제’ 자 들어간 시민단체를 찾다가 국제민주연대를 발견했고 그렇게 만나서 지금까지... (웃음)
저는 사실 활동가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대학원 때 자원 활동한 것도 사실 문제였더라고요. 대학원 때도 취업 활동을 했었어야 했는데 단체 활동을 계속 했으니까... 그때 단체에서 활동 제안을 주셔서 일단 시작해보자 했던 게 20년이 됐네요. 미래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다가 오히려 활동을 시작하면서 고민을 비로소 시작했던 것 같아요. 부끄러운 얘기인데 처음에 사명감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닌 것 같아요.
Q. 요즘 활동하면서 어떤 고민이 있나요?
활동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언행일치, 내로남불하지 않기입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는 내가 주장하는 것들을 삶에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를 돌아봤을 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잘 실천하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이를테면 성평등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실천할 때만이 사실 나의 주장이 힘을 가지는데, 운동 전반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경험을 하다 보니까 운동에도 위기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일치해서 사는 분들이 있으니까 또 지속되는 것이 아닌가.
또 SNS 시대에서의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거든요. 그러니까 유튜버만큼의 영향력이 활동가들에게 있을까? 단체들에게 있을까? 사람들은 단체가 아니라 점점 개인을 본단 말이에요. 사회운동이 과연 1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최소한 그 정도의 영향력을 지금 가지고 있나?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죠.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떻게 홍보를 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세상 같아요. 우리의 일들이 어찌 보면 SNS에서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활동가들이 점점 투사보다는 엔터테이너가 돼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받는 느낌이 들어요.
활동가 재생산 문제랑도 연동이 되는데, 청년들이 이런 단체 활동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라는 고민도 많이 하죠. 기본적으로 경제적 보상이 적었고, 그리고 재미가 없어 보일 테니까요. 재미가 있어 보이면 경제적 보상이 적더라도 같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이들에게 재미가 없어 보일까 고민을 하죠. 물론 굉장히 재밌어하고 같이 하고 싶어 하는데 경제적 문제가 안 돼서 같이 못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쨌든 지금 저희 후원회원분들도 연령별로 보면 20~30대가 거의 없고, 점점 다 은퇴하시고 나면 근본적으로 단체가 지속 가능한가라는 고민도 할 수밖에 없고요.
한편으로는, 국제민주연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말이 한국에서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단체였고, 어떤 한 시대의 상황들에 계속 부딪히고 바꾸려고 노력해온 것들이 설사 재생산이 되지 않거나, 앞으로 활동에 있어서 더 어떤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걸로 소멸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우리 단체가 갖고 있는 활동이나 의미가 지속되면 좋겠지만요.
Q. 활동한 지 20년, 그리고 1인 활동가로도 오래 일하셨어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일단 가족들이 지지, 지원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뭐 제가 엄청 힘들다, 어렵다 말을 하는 건 좀 어려운 것 같고, 일반적으로 말했을 때는 제가 너무 또 단체에 몰입하지 않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를테면 20년 동안 일을 하다 보면 사실은 활동을 사유화하기가 쉬운데, 저는 항상 ‘국제민주연대의 활동이다’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또 대표님부터 단체 이사님들이 기본적으로 권위적인 어른들이 안 계셔서 저의 활동을 굉장히 많이 믿어주시고 지지해 주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물론 일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많이 봐주신 것을 또 알고 있고.(웃음) 제가 어쨌든 이렇게 운이 좋게 활동하기 때문에 혼자 활동하면서 당연히 생기는 많은 어려움들을 그래도 감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저도 이제 나이를 먹고 있다 보니, 몸과 마음이 예전같지 않아요. 번아웃도 오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어서 어떻게 활동을 잘 마무리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해요. 또 자원활동가, 동료 활동가들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날 때도 고민을 하게 되죠. 이를테면 동료 활동가들하고 같이 회의를 했을 때 내가 혹시 활동을 오래 한, 나이가 많은 남성이기 때문에 내 말에 더 발언권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그런 고민들. 아니면 저 동료 활동가들이 나를 좀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면 저도 사실 좀 부담스럽거든요.
그게 특히 올해부터 많이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이건 단순히 쉼의 문제나 재충전이나 재교육의 문제로 해결될 부분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이냐 문제는 좀 접어두고 활동가로서 계속 활동을 얼마나,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귀엽고 깜찍한 것을 좋아하는, 나현필을 응원하며
Q. 취미가 있으신가요?
주로 아이돌 덕질을 즐겨합니다.
Q. 제가 앞 순서에 희망법 박한희 활동가를 인터뷰하고 왔어요. 다음 인터뷰로 나현필님 만나는데 궁금한 거나 하고 싶은 말 있냐고 했더니 “국가인권위 대응 활동 때문에 요즘 우울해보여요. 많이 지친 것 같아서 힘내라고 해주고 싶어요. 힘내서 같이 합시다!”라고... 그리고 요즘은 누구 덕질하냐고 물어봤어요.
(약간의 침묵) 눈물 날 것 같아요. 저는 근데 기본적으로 우울한 사람인데, 활동가로 살면서 많이 밝아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아이돌은 원래 러블리즈 덕질을 오래 했고, 요즘은 웬만하면 다 좋게 보고 있어요.
근데 요즘 우울한 건 맞아요. 국가인권위 상황이 안 좋아지고 나서 화병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덕질도 별로 재미없고, 건강도 좀 안 좋아진 것 같아요.
Q. 국가인권위 상황에서 화가 나는 포인트가 여러 가지 있을 텐데 특히 현필이 더 화가 나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아시아의 수많은 활동가들이 좋은 국가인권위원회를 갖기 위해서 굉장히 많이 노력하고 있고, 어쨌든 한국의 인권위에 대해 많이 참고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인권위원들과 이 정권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거예요. 인권위는 권고 기능만 있는 건데 왜 이렇게까지 망가뜨리려고 하나. 저는 사실 그래서 다른 나라 활동가들을 만나면 너무나 창피하거든요. 우리는 불만족스럽더라도 어쨌든 분명히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인데 너무나 후퇴와 파행과 퇴행의 폭이 갑작스럽게 큰 것, 특히 인권위가 너무 더 심각한 상황이라 당황스러운 거예요.
업보라는 개념으로 얘기하면, 저는 인권위가 이 정도의 업보를 가져야 되는지 동의가 안 되는 거예요. 이를테면 인권위가 그동안 편향적인 운영을 해왔다거나, 아니면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한 고통을 줬다면 저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역풍이 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면요. 근데 이건 전혀 그런 게 아닌 것 같으니 더 화가 나는 거죠.
저는 늘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했어요. 요즘은 지금까지 내가 설득력을 가지려고 노력했던 힘을 다 써서라도 인권위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어요. 근데 그렇게 다 하더라도 만약에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좀 생기죠. 이게 사실은 다른 활동가들은 진작에 많이 부딪혔고 힘겨웠던 부분인데 난 이제서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또 들면서... 그래서 나름의 자기 합리화들을 해서 버텨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힘내야죠. 근데 동료들이 나를 이렇게, 너무 우울해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좀 미안해지네요. 그래요. 웃으면서 해야죠.
Q. 요즘 좋아하는 게 있나요?
저는 기본적으로는 좀 귀엽고 깜찍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요즘은 좋아하는 게 별로 없긴 했는데... 아,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때문에 매우 행복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몰입해서 봤던 것 같아.
Q. 마지막으로, 다른 공익활동가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사람들은 활동가라고 하면 무조건 뭐 어려운 일 한다, 좋은 일 한다 정도로 생각하지만 분명히 그 안에서 좋고 재밌는 일도 많죠. 그리고 활동가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점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거 같아요. 그래서 그분들과 같은 범주에 묶여 있다는 걸 항상 의식하고, 누가 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진심으로 공익활동가분들을 존경합니다.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서울 #인권 #국가인권위원회
인터뷰어 : 도구
활동가, 영화감독.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궁금해합니다. 세상에 다정함 하나는 남기고 가고 싶어요.
2024 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그간 ‘일로만’ 만났지만 일과 활동을 넘어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두 번째는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대응부터 국경을 넘나드는 인권 관련 활동들까지, 국제민주연대가 빠지는 곳이 없지만 사실 현필은 단체에서 1인 상근자로 활동한 지 오래다. 무엇보다 한 단체에서 20년간 활동을 지속한 중견 활동가이기도 하다. 사회와 운동의 변화에 따른 여러 고민 속에서도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는 나현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소속단체와 주요활동 소개 부탁드려요.
단체 이름은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인데 보통 국제민주연대라고 부릅니다. 국제민주연대가 주로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를 감시하고 대응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초국적 기업의 인권 침해 문제를 다루는 여러 활동들에도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국제민주연대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라서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 차원에서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두 번째로는 외국에서 발생하는 민주주의와 인권 관련된 일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또 한국에서 이와 관련된 연대 캠페인을 조직하거나 참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를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 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있는데 특히 아시아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인권위를 감시하는 NGO 네트워크가 있어요. 이 네트워크에서 2년에 한 번씩 각 나라 인권위에 대한 영문 보고서를 발간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네트워크에 속한 단체가 국제민주연대 밖에 없기 때문에 국제민주연대가 한국 인권위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권위 관련 대응 활동을 한국의 다른 인권단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Q. 국제민주연대에서 본인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요?
국제민주연대는 2000년도에 생겼는데, 기본적으로 계속 상근자가 많지는 않았어요. 근데 제가 혼자 상근한 지는 5년 정도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유일한 상근자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활동들을 제가 커버하고 있고요. 또 거기에 플러스해서 단체 행정 업무도 하고 있습니다.
Q. 최근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이슈는 뭔가요?
원래는 주로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많이 대응해왔었는데 최근에는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상황이 매우 안 좋아져서 요즘은 아무래도 국가인권위 대응 활동을 가장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몇몇 위원의 노골적인 혐오발언과 반인권적 행보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인권위 대응을 위해 작년 말, 한국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이라는 네트워크를 꾸렸고, 국제민주연대가 그 네트워크의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인권 활동가
Q. 활동하시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외국에서 발생하는 민주주의, 인권 이슈 자체는 알려지기만 하면 시민들이 많이 지지를 해주세요. 반대할 이유도 없고 국내적인 갈등이 있는 문제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한국 기업이 개입되면 문제가 좀 달라져요. 미얀마 군부와 협력하는 한국 기업에 대해 제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를 많이 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많이 없고, 사회적 여론이 잘 안 모여지는 게 기본적으로 많이 힘든 부분이죠.
그리고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그렇겠지만, 정부나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고 또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로 다루다 보니 국내에서 시민 후원을 모으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물론 꾸준히 국제민주연대 회원으로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단체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후원회원이 크게 확대되지 않는 데는 사실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외국의 어떤 난민이나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자라는 취지면 후원 상황이 조금 나을 수도 있지만, 저희는 한국 기업에 대해 문제라고 하거나 그 나라 정부의 문제라고 접근을 하니까요, 선뜻 여기에 후원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또 일단은 피해자들이 해외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어떻게 보면 단체에 대한 후원보다는 피해자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있기도 하고요.
Q. 그럼에도 이 활동이 뿌듯하고 의미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외국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사실 국경을 넘나드는 조력을 받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계시기도 하고, 와서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씀을 하세요. 처음에는 거기서 뿌듯함을 느꼈는데, 갈수록 감사하다는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분들께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서 고민이 많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진전이 조금씩은 분명히 있고, 기업이나 정부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있다는 점을 뿌듯하다고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또 해당 국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친구들이 감옥에 가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도 많고, 그런 소식을 접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죠.
사실 최근에 알게 됐는데, 제가 활동했던 것 때문에 해당 국가를 못 가는 경우가 생겼더라고요. 홍콩에 입국 금지를 당했고, 미얀마는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못 가는 것으로 확인이 됐어요. 우스갯소리로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었어?’라고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거기 살고 있는 활동가 친구들을 보기 어렵게 됐다는 게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공익활동가로서의 처음과 지금, 나누고 싶은 고민들
Q. 공익활동가 활동가로서의 나현필의 처음은 뭐였을까요?
학교 다닐 때 학생 운동을 했었고요. 그러다 보니 취업 준비를 제대로 안 해서 대학원을 갔고, 대학원 때 자원 활동을 하려고 찾아보다가 국제대학원이니까 ‘국제’ 자 들어간 시민단체를 찾다가 국제민주연대를 발견했고 그렇게 만나서 지금까지... (웃음)
저는 사실 활동가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대학원 때 자원 활동한 것도 사실 문제였더라고요. 대학원 때도 취업 활동을 했었어야 했는데 단체 활동을 계속 했으니까... 그때 단체에서 활동 제안을 주셔서 일단 시작해보자 했던 게 20년이 됐네요. 미래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다가 오히려 활동을 시작하면서 고민을 비로소 시작했던 것 같아요. 부끄러운 얘기인데 처음에 사명감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닌 것 같아요.
Q. 요즘 활동하면서 어떤 고민이 있나요?
활동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언행일치, 내로남불하지 않기입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는 내가 주장하는 것들을 삶에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를 돌아봤을 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잘 실천하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이를테면 성평등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실천할 때만이 사실 나의 주장이 힘을 가지는데, 운동 전반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경험을 하다 보니까 운동에도 위기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일치해서 사는 분들이 있으니까 또 지속되는 것이 아닌가.
또 SNS 시대에서의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거든요. 그러니까 유튜버만큼의 영향력이 활동가들에게 있을까? 단체들에게 있을까? 사람들은 단체가 아니라 점점 개인을 본단 말이에요. 사회운동이 과연 1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최소한 그 정도의 영향력을 지금 가지고 있나?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죠.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떻게 홍보를 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세상 같아요. 우리의 일들이 어찌 보면 SNS에서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활동가들이 점점 투사보다는 엔터테이너가 돼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받는 느낌이 들어요.
활동가 재생산 문제랑도 연동이 되는데, 청년들이 이런 단체 활동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라는 고민도 많이 하죠. 기본적으로 경제적 보상이 적었고, 그리고 재미가 없어 보일 테니까요. 재미가 있어 보이면 경제적 보상이 적더라도 같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이들에게 재미가 없어 보일까 고민을 하죠. 물론 굉장히 재밌어하고 같이 하고 싶어 하는데 경제적 문제가 안 돼서 같이 못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쨌든 지금 저희 후원회원분들도 연령별로 보면 20~30대가 거의 없고, 점점 다 은퇴하시고 나면 근본적으로 단체가 지속 가능한가라는 고민도 할 수밖에 없고요.
한편으로는, 국제민주연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말이 한국에서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단체였고, 어떤 한 시대의 상황들에 계속 부딪히고 바꾸려고 노력해온 것들이 설사 재생산이 되지 않거나, 앞으로 활동에 있어서 더 어떤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걸로 소멸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런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우리 단체가 갖고 있는 활동이나 의미가 지속되면 좋겠지만요.
Q. 활동한 지 20년, 그리고 1인 활동가로도 오래 일하셨어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일단 가족들이 지지, 지원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뭐 제가 엄청 힘들다, 어렵다 말을 하는 건 좀 어려운 것 같고, 일반적으로 말했을 때는 제가 너무 또 단체에 몰입하지 않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를테면 20년 동안 일을 하다 보면 사실은 활동을 사유화하기가 쉬운데, 저는 항상 ‘국제민주연대의 활동이다’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또 대표님부터 단체 이사님들이 기본적으로 권위적인 어른들이 안 계셔서 저의 활동을 굉장히 많이 믿어주시고 지지해 주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물론 일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에 많이 봐주신 것을 또 알고 있고.(웃음) 제가 어쨌든 이렇게 운이 좋게 활동하기 때문에 혼자 활동하면서 당연히 생기는 많은 어려움들을 그래도 감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저도 이제 나이를 먹고 있다 보니, 몸과 마음이 예전같지 않아요. 번아웃도 오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어서 어떻게 활동을 잘 마무리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해요. 또 자원활동가, 동료 활동가들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날 때도 고민을 하게 되죠. 이를테면 동료 활동가들하고 같이 회의를 했을 때 내가 혹시 활동을 오래 한, 나이가 많은 남성이기 때문에 내 말에 더 발언권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그런 고민들. 아니면 저 동료 활동가들이 나를 좀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면 저도 사실 좀 부담스럽거든요.
그게 특히 올해부터 많이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이건 단순히 쉼의 문제나 재충전이나 재교육의 문제로 해결될 부분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이냐 문제는 좀 접어두고 활동가로서 계속 활동을 얼마나,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귀엽고 깜찍한 것을 좋아하는, 나현필을 응원하며
Q. 취미가 있으신가요?
주로 아이돌 덕질을 즐겨합니다.
Q. 제가 앞 순서에 희망법 박한희 활동가를 인터뷰하고 왔어요. 다음 인터뷰로 나현필님 만나는데 궁금한 거나 하고 싶은 말 있냐고 했더니 “국가인권위 대응 활동 때문에 요즘 우울해보여요. 많이 지친 것 같아서 힘내라고 해주고 싶어요. 힘내서 같이 합시다!”라고... 그리고 요즘은 누구 덕질하냐고 물어봤어요.
(약간의 침묵) 눈물 날 것 같아요. 저는 근데 기본적으로 우울한 사람인데, 활동가로 살면서 많이 밝아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아이돌은 원래 러블리즈 덕질을 오래 했고, 요즘은 웬만하면 다 좋게 보고 있어요.
근데 요즘 우울한 건 맞아요. 국가인권위 상황이 안 좋아지고 나서 화병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덕질도 별로 재미없고, 건강도 좀 안 좋아진 것 같아요.
Q. 국가인권위 상황에서 화가 나는 포인트가 여러 가지 있을 텐데 특히 현필이 더 화가 나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아시아의 수많은 활동가들이 좋은 국가인권위원회를 갖기 위해서 굉장히 많이 노력하고 있고, 어쨌든 한국의 인권위에 대해 많이 참고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인권위원들과 이 정권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거예요. 인권위는 권고 기능만 있는 건데 왜 이렇게까지 망가뜨리려고 하나. 저는 사실 그래서 다른 나라 활동가들을 만나면 너무나 창피하거든요. 우리는 불만족스럽더라도 어쨌든 분명히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인데 너무나 후퇴와 파행과 퇴행의 폭이 갑작스럽게 큰 것, 특히 인권위가 너무 더 심각한 상황이라 당황스러운 거예요.
업보라는 개념으로 얘기하면, 저는 인권위가 이 정도의 업보를 가져야 되는지 동의가 안 되는 거예요. 이를테면 인권위가 그동안 편향적인 운영을 해왔다거나, 아니면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한 고통을 줬다면 저는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역풍이 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면요. 근데 이건 전혀 그런 게 아닌 것 같으니 더 화가 나는 거죠.
저는 늘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했어요. 요즘은 지금까지 내가 설득력을 가지려고 노력했던 힘을 다 써서라도 인권위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어요. 근데 그렇게 다 하더라도 만약에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좀 생기죠. 이게 사실은 다른 활동가들은 진작에 많이 부딪혔고 힘겨웠던 부분인데 난 이제서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또 들면서... 그래서 나름의 자기 합리화들을 해서 버텨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힘내야죠. 근데 동료들이 나를 이렇게, 너무 우울해 보인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좀 미안해지네요. 그래요. 웃으면서 해야죠.
Q. 요즘 좋아하는 게 있나요?
저는 기본적으로는 좀 귀엽고 깜찍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요즘은 좋아하는 게 별로 없긴 했는데... 아,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때문에 매우 행복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몰입해서 봤던 것 같아.
Q. 마지막으로, 다른 공익활동가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사람들은 활동가라고 하면 무조건 뭐 어려운 일 한다, 좋은 일 한다 정도로 생각하지만 분명히 그 안에서 좋고 재밌는 일도 많죠. 그리고 활동가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점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거 같아요. 그래서 그분들과 같은 범주에 묶여 있다는 걸 항상 의식하고, 누가 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진심으로 공익활동가분들을 존경합니다.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서울 #인권 #국가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