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만사X지리산][지리산에서 살기로 했어] 먼지와 이르의 '산 너머 선' 결혼식 : 함께 만들어가는 축하와 환대


먼지와 이르의 '산 너머 선' 결혼식
: 함께 만들어가는 축하와 환대


진행 / 넉넉

글 / 승현




요즘은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아서, 아이를 낳지 않아 걱정이라는데, 올해는 신기하게도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아니나다를까 통계청에서는 2025년 1분기의 혼인 건수가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작년부터 매달 꾸준히 증가세라는 보도자료가 나왔다. 


그리고 올해 초, ‘인구감소지역’인 지리산권에서도 누군가의 결혼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주인공은 2022년 하동으로 귀촌한 먼지와 이르. 두 사람의 결혼식 소식은 금세 지리산권 전역으로 퍼져 겨우내 어려운 시국을 통과한 사람들을 굼실거리게 했다. 


“식목일에 야외결혼식을 한대!” 

“결혼식 진행하는 총감독을 섭외했대! 완전 조별과제처럼 한다는데?” 

“하동에 집을 사서 고치고 있다던데?” 


결혼식을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처럼 한다고? 첫 인터뷰 이후 2년 사이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고민의 시간은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 내가 만난 먼지는 범인(凡人)이 아니었지. 먼지와 이르의 결혼식이라면 그래야지. 두 사람은 어떻게 특별한 결혼식을 계획하게 되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온 지 며칠 되지 않은 두 사람을 구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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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탈


두 사람의 시작은 201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만남은 대학생 해외봉사단 ‘라온아띠’에서였다. 군대 전역 이후 YMCA 동아리 활둥 중에 해외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르와 부모님께 휴학을 허락받지 못해 탈출구를 찾던 먼지는 선택할 수 있는 다섯 국가 중 캄보디아 팀에 배정되어 함께 약 반년 간을 함께 지내야 했다. 



“가기 전에 저희가 받은 교육이 조금 특이했는데, 원래는 청년들이 모이면 ‘봉사 열심히 해야한다’ 이런 말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선 ‘너희들은 거기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국제 자원 활동이라는 게 10년 넘은 활동가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거죠. 외국인으로서 현지인을 대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냥 가서 재밌게 지내다만 와라. 현지인들 에게 너무 개입하려고 하지 말고.” 이런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단순한 일들만 하고 진짜 많이 놀았어요.” (이르)


“그때 다섯 명이서 홈셰어를 했거든요. 그러면 마음 나누기 하잖아요. 매일 회의하고 울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밥도 해 먹어야하는데 누가 하냐, 빨래랑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하냐, 이런 것들 조율하는 데 5개월 동안 하려니 지겹더라고요. 그러다 이르와 정이 든 거죠. 그런데 저희 활동에 연애 금지 조항이 있었어요. 그때도 이르와 자연스럽게 산책하고 대화도 하면서 저는 이르에게 호감이 있었는데도 언니들 눈치보면서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나요.” (먼지)


대학생들이 타국에서 동거동락하는데 연애 금지 조항이라니. 연애를 금지당한 삭막한(?) 환경에서도 다행히 먼지와 이르는 사랑을 얻고 돌아왔다. 캄보디아를 다녀오면서 파트너말고 또 얻은 것은 없었는지 물었다.


“저는 많이 전환된 것 같아요. 저는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입사가 꿈이었고, 모범생처럼 학점이 중요하고, 공기업 가서 빵빵하게 잘 해낼 거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영 아니란 걸 내면에서 느끼고 있었거든요. 학교다닐 땐 화장도 예쁘게 하고 다니고, 예쁜 가방 메고 다녔는데 캄보디아에서는 처음 화장을 안 해봤어요. 그게 너무 자연스럽고 사람들도 좋아해줬고요. 그리고 마을살이라는 걸 그때 처음 해봤는데 지나다니면서 서로 그냥 인사를 해요. 그때 어렴풋이 진짜 나 이렇게 살고 싶다, 눈 뜨면 산책하고, 같이 밥 해 먹고, 이웃들이 담 너머로 그냥 인사하는 거. 그때 마침 저희도 20살 초반이었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꿈을 꿨는데, 그게 연애하면서 커졌어요. 그게 지금 삶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먼지) 


“저는 한 가지 바뀐 거라 하면 제가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뭔가 다를 것이다, 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런 게 많이 깨졌죠. 대외활동 온 사람들 중에 서울 지역 대학생이 되게 많았거든요. 근데 단지 암기를 좀 더 잘하고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구나, 다 똑같구나 깨닫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르) 


봉사활동이 끝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커플이 됐다. 활동이 끝나고 해방촌에서 만나기로 한 날, 먼지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이르를 보며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대학생이었던 먼지는 공강일을 만들어 순천에 있던 이르를 만나고, 그 다음주면 이르가 서울로 올라오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며 힘들었던 대학생 시절을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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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 사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아


이르는 봉사활동 이후 기계우주 항공공학부를 다니던 이르는 사회복지에 관심이 생겨 전과를 했다. 하지만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도 회의감이 생겼다. 실습을 나갔을 때 배운 것과는 다른 현장을 보면서 ‘이걸로 정말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게 맞을까?’, ‘나부터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방황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불안을 함께 고민해준 것은 먼지였다. 2018년, 먼지의 추천으로 서울혁신센터의 ‘비전화공방 서울’에 1년 과정을 밟게 되었다.



“9시부터 6시까지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었는데 진짜 지금까지도 그렇게 빡센 스케줄을 소화해 본 적이 없어요. 몰입도 있게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았어요. ‘3만 엔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기술들이 필요하니까 제작, 건축, 농사, 철학 수업을 듣고 나만의 비즈니스로 만들어내야 하고, 결국에는 장터에 결과물을 출품해야 했어요.”  (이르) 


비전화공방에서의 생활은 이르에게 커다란 전환을 주었다. 그렇게 ‘불편한’ 에코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꿈꾸며 순천으로 내려간 이르는 코로나 팬데믹을 마주하고는 본격적으로 제작에 몰두하게 됐다. 비슷한 때에 먼지는 청소년 교육 활동을 하면서도 이따금 사는 게 만족스럽지 않은데 왜인지를 고민하다가 요가 철학과 교육을 만났다. 



# 발음도 귀여운 하동으로


청소년 활동은 여전히 좋았지만, 직장생활과 서울살이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내면은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비슷했다. 그렇게 먼지는 교육과 요가, 이르는 목공과 제작으로 각자의 고민을 풀어나갔다. 고민과 방황 끝에 두 사람의 시선은 지역살이를 향했다. 2022년 무렵의 일이다.


“각자 힘이 조금 키워진 거죠.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살다보니까 라이프 스타일이 도시와는 맞지 않다라는 게 더 직감적으로 왔어요. 저는 저대로, 이르는 이르대로 능력이 쌓였고, 이르는 이미 순천 시골에 살고 있어서 시골살이는 저만 결정하면 됐거든요. 도시에서 부대끼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광역시가 아닌 곳으로 내려간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순천도 시(市)니까 더 작은 곳으로요. 그래서 지역을 고민했는데, 저는 아는 사람이 없는, 아예 모르는 곳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구례, 산청, 남원에는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동으로 선택한 것 같아요. 저는 꽂히면 그걸 해야하는 사람이라서요.”  (먼지) 


“지리산권에 오려고 온 건 아니었고 정말 그냥 하동이라는 지역이 좋았어요. 하동. 이름도 귀엽잖아요.”  (이르) 


시골살이는 낭만과 고됨이 공존했다. 하동의 온갖 전단지를 둘러보며 어렵사리 구한 집을 고치고, 공구도 없이 손으로 가구를 만들기도 했다. 먼지는 요가 수업과 청소년 방과후 강사를 하고, 이르는 집을 고치며 작업공방을 구하러 다녔다. 벌써 3년이 지난 지금, 지역살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변했을까. 


“저는 순천에 살 때도 오지에 살았기 때문에 하동읍은 오히려 도시처럼 느껴졌어요.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우체국, 농협, 산책로가 다 있고, 러닝도 할 수 있었어요. 배스킨라빈스도 있고요. (웃음) 그리고 함께 지내는 사람이 있으니까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 많이 내게 됐어요.”  (이르) 


“저는 올 때 큰 기대나 목표를 정하고 온 건 아니라서 백지 상태였는데, 그게 저한테는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하동에 와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돈을 벌었고, 이후에 바로 프리랜서로 살게 될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가능한 일이더라고요.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방을 열면서 청소년 교육도 해보고, 요가 수업도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고요. 누군가에게 소속되거나 맡기지 않고 내면에서 하고 싶었던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장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사회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실제로 만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거리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도시에 있을 때는 어떤 고민이 있으면 강연을 들으러 가서 “맞아, 힘들지.” 하고 끝나는 정도였다면 여기에서는 고민을 활동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관계가 많았어요. 지리산권을 보고 온 건 아니지만, 확실히 이곳이 연대할 수 있는 폭이 넓다고 생각했어요. 도시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홍대로, 합정으로, 좋아하는 빈티지샵으로 놀러갔다면 여기서는 산 넘어 남원으로, 아니면 산청의 장터로 놀러가게 되는 거예요. 이게 되게 재미있어요.”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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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살이에 찾아온 선물


두 사람에게 하동살이가 무르익을 무렵, 이르와 먼지에게 ‘집’이라는 새로운 선물이 찾아온다. 먼지는 집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지만, 어느 날 친한 이웃이 소개해준 집을 보러 갔을 때였다. 마당으로 내리는 포근한 햇볕과 사방으로 거스름없는 시야에 마음을 빼앗겼다. 다음 날, 이르와 함께 갔더니 그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원래 집에 큰 꿈이 없었어요. 언젠가는 구해야겠지 정도의 마음이었어요. 5년 쯤 지나면 무르익겠지 하다가 집이 찾아온 거죠. 그런데 집을 보러 갔더니 이르가 봐도 거스를 게 없는 거예요. 우리 더 미루지 말자고 해서 결정을 했죠."  (먼지)  


“그리고 하동읍에 살던 집이 워낙 추웠어요. 어떻게 하면 따뜻해지는지 방법은 아는데 월세살이다 보니까 세입자가 집을 마음대로 손댈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보니 아쉬움이 계속 생기는 거죠. 차라리 모르면 추운 대로 살텐데… 언젠가 내가 고칠 수 있는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이르) 


먼지는 이반 일리치의 책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에 나오는 집에 대한 정의를 좋아한다. ‘내면의 힘을 키워줄 수 있는 창의적인 곳’이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 기억의 장소’. 두 사람은 그 마음으로 바람처럼, 선물처럼 찾아온 집을 고치면서 지냈다. 창문, 지붕, 전기, 가구들까지 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고치면서 지냈다’는 짧은 문장으로 이 거대하고 지난한 과정들을 모두 담을 수 없을만큼. 이윽고 2025년 4월, 두 사람은 결혼식에서 집을 오픈하우스로 열어두고 둘러본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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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결혼이라니


집이 생기면서 양가 부모님에게도 두 사람의 동거 소식을 알리고 인사를 나누는 일이 필요해졌다. 집의 어른들에게 이 말은 곧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르도 결혼식을 크게 생각해본 적 없었고, 먼지는 비혼인들을 인터뷰하는 학내 교지 작업 ‘비혼 뒤 맑음’을 기획했던 장본인이었다. 먼지와 이르는 두 사람이 같이 살기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결혼식이라는 것은 두 사람을 넘어 가족 간의 문제였다. 두 사람은 또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저희 부모님은 같이 사는 건 당연히 결혼이라고 생각하셨어요. 만약 20대 초의 먼지라면 싸웠을텐데, 이제는 부모님 의견을 거스르는 것도 진이 빠지더라고요. 양가에서 첫 결혼식이기도 했고요.”  (먼지)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식을 얼른 해치워버리자는 생각에 두 사람은 이르의 가족이 있는 광주에서 예식장을 둘러봤다. 그 과정을 통해 둘은 결혼식의 의미에 대해, 자신들이 하고 싶은 행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예식장을 세 군데 정도 정해서 갔는데 안내해주시는 분이 '신부님~ 신부님~' 하면서 막 따라오세요. 그분에게 신랑은 안중에도 없어요. 신상 최첨단 샹들리에가 자기네 식장 콘셉트라면서 보여주시고요. 그리고 '버진로드 한 번 서보시겠어요?' 하면서 두 사람이 손을 잡아보래요. 근데 둘 다 손이 축축한 거예요. (웃음) 걷는데 음향이 빠밤! 하고 터지면서 조명이 집중되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먼지) 


“버진 로드에서도 그렇고, 가격 상담을 하면서도 여기선 내 존엄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르) 


“그래서 결혼식장은 안되겠다 해서 하동에서 하기로 결정하고 공간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삼화 에코하우스를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는 결혼식을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하는 오기도 있었어요. 당일에는 힘을 많이 뺐지만, 전날까지 회의하고 그랬거든요.”  (먼지) 


한편, 결혼식을 앞두고 받은 다정한 안내 문자의 마지막 부분에는 ‘먼지이르 결혼식 대표 민주 드림’이라고 적혀있었다. 순간 여기에 아주 많은 의미가 담겨있겠구나 생각했다. 두 사람에게 대표를 정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작년 초에 먼지의 부모님을 뵙고 식구들도 알아가는 단계이다 보니까… 집을 장만해서 산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는데 폐허 같은 집이면 안되잖아요. 걱정을 너무 많이 하실 것 같은 압박감 때문에 집 수리를 엄청 열심히 했어요. 집을 보여주는 것까지가 결혼식 계획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집 수리 대표를 맡고, 먼지는 결혼식 대표를 맡았어요.”  (이르) 


“재미있었던 점이 저희가 행사 기획과 진행을 많이 했잖아요. 그러니까 결혼식은 또 다른 행사 기획이었어요. 음식, 사람,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엑셀 파일 정리해서 순서를 정하고, 섭외하는 과정, 식순 등을 이르랑 항상 고민했던 것 같아요. 거의 몇 달은 밤마다 둘이서 회의시간을 만들어서 회의했어요. '이거 체크 됐나요?', '아, 내일 확인해보겠습니다.', '친구 섭외 됐나요?', '아직 제가 바빠서….' 이러면서 집 공사 브리핑하고 결혼식 진행 브리핑 했었죠.”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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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환대합시다


결혼을 결정한 순간부터 두 사람은 비상체제에 돌입한 TF팀처럼 달력에 일정을 체크하고,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해결책을 논의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행사를 만들어 내는 일은 두 사람만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친구에게 총 감독을 부탁하고, 곳곳에 재주를 가진 친구들을 불렀다. 결혼식에 함께해주기를 제안할 때는 꼭 예쁜 꽃을 데리고 가서 건넸다. 둘의 마음이 닿은 것인지, 친구들은 흔쾌히 초대장 그림을 그려주고, 음악을 연주해주거나 공연을 만들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한 결혼식인만큼 논의할 주제는 일회용품 사용부터 부스의 위치, 친구들의 섭외, 비 올 상황을 대비한 ‘플랜 B’까지 행사에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이 많은 것을 챙기다보면 중심을 놓치게 되기 마련, 이들이 생각하는 결혼식의 중심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저희는 처음부터 결혼식을 왜 굳이 해야 하지? 이게 자꾸 의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옛날부터 이어져 온 문화를 봤을 때 결혼식은 저희가 '잘 살겠습니다.' 라는 다짐을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두 번째는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걸 인사하는 자리 같았어요. 그걸 잘 느낄 수 있도록 감사를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포인트로 잡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공연도 더 신경을 썼고 맛있는 것도 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환대하는 마음을 갖자고 했어요. 이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저희가 많이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먼지) 


“예를 들면 모르는 친척 분들이 오신다고 했을 때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는 항상 '환대합시다. 손님은 천사입니다.' 했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결혼식 준비도 하면서 집도 같이 수리하려니 밸런스를 잘 잡아야 했는데, 제가 집에 신경 쓰느라 가끔 결혼식 준비에 소홀해지면 그럴 떄마다 환대하는 마음을 다시 중심에 뒀어요.”  (이르) 


“도시에서 오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거든요. 친구들이 이런 분위기, 그러니까 서로 도우면서 친구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행사를 경험해보길 바랐고, 지리산의 문화와 분위기를 소개시켜주고 싶었어요.”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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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넘어 선(善)



이 치밀하고 치열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먼지와 이르의 결혼식이 치뤄지지까지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결혼식 열흘 전, 지리산에는 200시간이 넘도록 산불이 꺼지지 않아 주민들의 대피령이 내려졌고, 산불은 결혼식장인 삼화에코하우스에서 불과 20km도 떨어지지 않은 하동 옥종면까지 번졌다. 게다가 하루 전인 4월 4일은 전 대통령의 탄핵선고일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르와 먼지의 집안은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였다. 산불이 사그라든 4월 5일 당일에는 비 소식까지 있어 결혼식을 준비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어땠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앞날에도 산들을 기끼어 넘어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너머에 선(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결혼식에 ‘산넘어선’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런 게 너무 겹치면 그냥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게 돼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웃음) 마음이 힘들 때는 눈 앞에 닥친 일만 하자고 얘기하면서 초대장 접었어요. 알게 모르게 신경을 많이 썼는지 그날 목욕탕을 갔는데 살이 4kg가 빠져 있는 거예요. 드레스 피팅하는데 너무 헐렁할 정도였어요. 

우천 문제는 일주일 전부터 맨날 날씨 보면서 플랜B 까지 다 세워놓긴 했거든요. 비가 온다면 실내에서 경건하고 어두운 분위기에서 조용히 하는 걸로요. 그렇게 전날까지 고민을 하다가 외부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도와주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으니까 비가 많이 오면 아침에라도 실내로 옮기는 걸로 하고요.”  (먼지) 


많은 산을 넘어 열린 4월 5일 결혼식장에는 빗방울이 없었다. 공간을 데우는 살래재즈트리오의 연주를 배경으로 화관 쓴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행사를 함께 기획한 친구들이 분주하게 현장을 체크하고 있었다. 한 켠에서는 카페를 운영하는 또 다른 친구가 모카포트 커피를 내리고, 호텔에서 볼 법한 다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찬연한 분위기 속에서 먼지와 이르는 꼭 초대장 그림처럼 은목서 나무 아래 드레스와 정장을 멋지게 차려 입고서 손님들을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결혼식을 빛내고 있었다. 결혼식이 많은 산을 넘어 선(善)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행사를 빛낸 친구들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맞아요. 사람마다 역할 정하고, 정보 공유하고, 회의도 정말 많이 했어요. 식당 관련해서는 하동에 ‘모두의가게’ 언니들이 알아서 다 해줬어요. 정말 신경 안 써도 될 정도로요. 진짜 결혼식만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다 감사해요. 진짜 잘 살아야겠어!”  (먼지) 


결혼식을 시작하면서 먼지와 이르는 조금은 굳었지만 신이 난 표정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마음으로, 오직 사랑과 환대만 기억하자며 행사를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빈둥밴드 공연, 두 사람이 함께한 리코더 공연과 <바람이 불어오는 곳> 싱얼롱 공연까지 마치고서 찾아온 신랑 신부 퇴장식에서 두 사람은 가장 신나는 표정과 몸짓으로 빛나는 박수 사이를 걸어나갔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결혼식을 두 사람은 어떻게 기억할까.


“사람들이 결혼식 준비하면서 누구 부를지 고민한다잖아요. 초대할 사람들을 보니 생각보다 저희가 하동에 와서 만난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우리가 이웃이 많아졌다는 것에 되게 놀랐어요. 저희가 처음 하동 왔을 땐 일부러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지켜봤거든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알게 된 이웃들이 하나 둘 많아지면서 오히려 진짜 꼭 불러야 할 분들이 산청, 남원, 구례, 하동, 함양에 있으니까 그분들만 해도 공통 분모도 많아져서 되게 기뻤던 것 같아요.”  (먼지) 


"얼굴을 아는 사람들한테 이렇게 환대와 축하를 받으니까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이르) 


“우리가 환대해 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우리 환대를 많이 받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진짜 우리 잘 살아야겠어.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결혼식이 진짜 큰일이었구나. 우리가 결혼을 선언해 버리고 감사함을 덜컥 받아버리는 일이었으니까 이거는 정말 죽을 때까지 갚아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먼지) 


혹시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묻는 질문에 이르는 깜빡하고 냉장고에서 꺼내지 못한 음료들과 많이 연습했던 리코더 연주를 꼽았다. (얼렁뚱땅 리코더 합주는 두 사람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결혼식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부를까 말까 했던 사람들 그냥 부를 걸. 진짜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땐 왜 그렇게 막 걸러냈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이르) 


“저희 결혼식이 워낙 독특하다 보니까 누굴 초대할 지 고민이 많이 됐는데, 사람들이 오히려 “가도 돼?” 하면서 저한테 먼저 연락이 오는 거예요. 멀리서 와야 하니까 교통비도 못 해주고 미안해서 초대를 못했는데, 이럴 거였으면 다 불러도 됐겠다 싶었어요.”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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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환대와 축하, 기쁨만이 가득했던 그 순간을 천천히 소화시키며 먼지와 이르는 다시 공간을 꾸미고, 요가 수업을 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특별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두 사람이 새로운 집에서 그리고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집을 사기로 결정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 고쳐가면서도 그렇고 계속 하고 싶은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집 앞에 창고를 리모델링할텐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워크숍이나 행사가 많이 일어나면 좋겠고, 그런 일을 계속 벌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희 둘이 사는 집도 열어두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 좋겠어요. 8월 정도부터 공방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르) 


“저희가 집을 구하고 선택할 때도 고민했던 지점이 ‘월세 살아도 되는데 왜 지금 이 시기에 집을 구해야 하지?’ 였거든요. 그런데 이 집을 구하면서 거기서 재미있는 일들을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지 않겠냐, 라는 마음이었어요. 그 공간에 이르의 작업실과 제 요가원을 같이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이르의 작업실이 얼른 만들어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소망도 있어요.

그리고 최근에 저는 이 집에서 살림하고 생활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집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 초대하는 것도 너무 좋아하니까 ‘민박집 사장님이 되도 좋겠는데?’ 해서 집 앞 부지에는 요가원과 민박 건물을 지어서 운영하면 완성된 형태가 될 것 같아요.”  (먼지) 


새로운 워크숍, 행사, 초대. 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들을 고민하는 두 사람이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삶의 형태나 방향이 있을지 궁금했다.



“방향… 사실 요즘에 1년 넘게 오랜 시간 공사를 하다 보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져서 삶의 방향이나 거시적인 물음에 답하기가 어려워요. 예전에는 어떤 답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엔 그런 시간들이 거의 없어요. 너무 단순해졌어요. 오늘은 오늘 할 일을 하고, 내일은 내일 할 일을 해야지, 이렇게 단순하게 지내는 것 같아요. 힘들긴 하지만 요즘 외단열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숙원사업처럼 오랫동안 하고 싶었는데 요즘 그걸 하고 있어서 좋아요.”  (이르) 


“저는 다시 결혼식을 떠올리게 되면서 ‘그때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가 생각이 났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래? 라고 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환대’라고 답했던 그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앞으로 저희 집에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고, 많은 일이 벌어질텐데 그때도 모든 사람들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그저 하나의 기획이었던 그 결혼식이 아주 천천히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와요. 우리가 정말 큰 일을 했고 큰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이 사랑을 오래오래 갚으면서 살아야겠다는 게 결혼식이 저에게 준 큰 의미였던 것 같아요.”  (먼지) 


“저는 벌어진 일을 소화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뜬금없이 올라오는 타입이예요. 일상을 지내다보면 결혼식을 많이 잊어버리긴 하는데 지금처럼 종종 생각이 나겠죠?”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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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오픈하우스 날 두 사람의 집에 붙여진 여러 글 중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산너머선은 되어가는 집입니다. 언제까지 끝내야 할지도, 완벽한 모습도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삶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시는 모습도 어제와 다릅니다. 

그저 그 변화가 조금 더 아름답고 조화롭기를 바라며 매일 집과 사람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워갈 사랑이 흘러 넘쳐 여러분께 가 닿았으면 합니다.



결혼식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은 두 사람의 얼굴이 괜히 편안해보였다. 받은 사랑이 흘러넘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꼭 그럴까. ‘찾아올 변화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은 별 수 없이 타인에게 퍼진다. 두고두고 회자될 결혼식 <산 넘어 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지리산에 불가항력 같은 사랑을 잊지 않고 오래오래 갚으며 살아가자는 먼지와 이르의 목소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라니. 그들이 앞으로 되어갈 오늘과 내일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 인터뷰 일시 : 2025년 6월 19일



글쓴이 : 승현

지리산 귀촌인 인터뷰집 <어디에나 우리가> 저자.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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